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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팀 켈러 - 기도 1

by 은총가득 2020. 12. 10.

소요리 문답 98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죄를 고백하고 주님의 자비로우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식하며 거룩한 뜻에 합당한 것 들을 구하는 소망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을 뜻한다

프롤로그_ 왜 다시 기도를 말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분과 하나됨 이라는 견해와 내적인 평안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 견해가 있는데 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의 견해가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줄거워 하는것이다
고로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인 동시에 만남 이라고 본인의 의견을 피력한다.
찬양-고백-감사-간구 등의 절차로 기도란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길을 찾기 바로 그여정이다.


Part 1바른 기도를 꿈꾸다
1.
기도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인생 후반부에 기도를 체험하다


필자의 방법 (2년동안) 1. 시편정리 2. 성경을 읽은후 기도로 넘어가기전 묵상
3. 아침저녁으로 기도에 힘씀 4. 더 큰 기대를 품고 기도하기
기도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하나님 앞에선 어떤 문제도 하찮은 것이 된다
성경속의 기도 바울의 편지들_ 편지서두에 늘 기도함..


기도할것들
)마음의눈을 밝혀( 마음의 중앙관제소,전인격을 변화, 인지적 이해를 넘어, 주님의 거룩하심을 경이롭고, 아름답게 받아들여, 노엽게 하거나 가벼이 여기는 짓을 안하게함)
)성령님의 베품,
)하나님을 온전히 하는 지식
내면생활에 우선순위를 두어라 그렇지 않으면 백이면 백 위선에 빠진다. 은밀한 가운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느냐에 달림 기도가 풍성해지지만 더러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내면의 원한과 분노를 합리화 한다 처도, 하나님 앞에 앉는 순간 방향 전환이 일어나고, 애써 붙들고 씨름한 감정이 얼마나 하찮은지 한눈에 들어난다. (관점이 달라지고 상황이 상쾌하리만치 명확해진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 계율을 어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행위이다.
기도는 경이요, 친밀감이며, 고단한 씨름이지만 본질에 맞닿은 길이다.
그만큼 중요하거나, 힘겹거나, 풍요하거나, 삶을 바꿔놓을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다 . 기도만큼 위대한 일은 결단코 없다.


Part 2 기도를 분별하다


3.
기도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참된 기도는 본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미 주어진 주님의 은혜에 기대는 일, 하나님이 인간의 내면에 행하신 역사이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작업이 기도다. 주체는 하나님 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하기보다 듣기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에 기대어 쏘아 올리는 일종의 구조 요청 신호탄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적이고 의지적인 일뿐 아니라 감정적인 관계이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인격적인 존재들 사이의 깊은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욥은 처음에 불평과 하소연 뿐이던 기도가 나주에는 회개와 찬양의 장대한 기도를 드림 그럴수 있었던 이유가 점차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기도에 반응하는 상호작용때문 (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커짐)


4. 소견대로 하는 기도는 비극이다

말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기도의 출발이다
기도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편의 대답이다. (상호 대화와 만남으로 일상속에 하늘나라가 이루어짐) 하나님의 명령이나 말씀가운데 어느하나를 어기는 행위는 그분과 맺은 관계를 꺠트리는 처사다. 하나님의 음성을 어떻게 들을것인가? 성경이다. 인간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까마득히 앞선다. 성경에 뛰어들어라.(말을 많이하거나, 같은말반복, 무념_동양적신비주의에 곁눈질하지 말아라)
내면의 욕구와 심리작용을 쫒아 스스로 기도를 주도해 가면, 성경이 제시하는 기도의 폭을 따라 가지 못함.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에 반응하며 기도하라 내 가치와 신념과상처의 너울을 지나 울부짖으라)
우리는 살아있는 돌들로 지은 성령님이 머무시는 성전이다.


5. 기도는 결코 주문이 아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간다
삼위일체의 교제를우리와 나누시려는것_우리를 자녀로 입양하신 것 _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법에 온전히 순종하신 상급으로 교제가 가능..
주님의 중보는 그분이 가지신 친밀감과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려는 끝없는 열성을 보여주닌 사실, 우리를 향해 보내시는 한결같응 사랑을 보증해 주는 증거.

사람의 중보도 값진데, 예수님의 중보는 말을 해서 뭣하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의미_ 그분만이 하나님께 다가서는 유일한 방법이며, 창조주와 소통하는 외길임을 인정하고 간구 한다는 뜻.
이방사람과 유대 사람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 (2:18)
하나님은 행복해지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이다. 그분의 임재 를 즐거워하자.
소망의 대상을 물질에서 그리스도로 바꾸며, 예수님께 기대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안에서 누리는 유익과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섬기고자 하는 갈망이 생기지 않는 한 , 하나님을 아는 참되고 거룩한 지식을 갖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착하게 살아야만 이것저것 부탁할 거리를 들고 갈수 있는 두렵고 거룩한 하나님이 아니시다.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실감하며, 주님의 기쁨, 사랑, 평화와 확신을 공급받는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마음가짐, 행동, 성품이 달라진다.


Part 3 기도를 배우다
6.
어거스틴과 루터, 기도를 말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라

어거스틴_ 이세상에 엄청난 복을 누리고 있어도 스스로 자신을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대단 영화도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수 있는 영원한 평화와 행복, 위안을 주지 못한다. .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기억하고 그분을 향한 사랑에 다시 불을 붙히고 난뒤에야 비로소 일용할 양식과 필요한 것을 구하라. 세속적인 기도가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어려움에 짖눌리면, 어떻게 간구하는지 옳은게 헷갈린다.
마틴 루터 _ 하나님꼐 마음을 들어 바치는 일이므로 좋든싫든 반드시 기도하라 .
가르침을 고찰_ 깨달음을 감사_ 고백_기도
초청하거나 요청드린바 없는데 그저 한없이 긍휼히 여기셔서 자애로운 방식으로 찾아오심 & 성령님 이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깊이 묵상한 성경본문을 토대로 주님꼐 드리는 기도로 화답하라. _성령님의 설교도 놓치지 말아라


7. 칼뱅, 기도의 원칙을 논하다
하나님에 대한 행복한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라

경외&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_엄중하고 광대한일인지 의식하라
징벌에 대한 자기 중심적 두려움과 혼동하면 안된다.
회개는 기도의 동기이자 열매이다. _ 영적인 겸손으로 나의 허물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라. 무자비할정도로 정직해야 한다. 파멸로 이끌수도 있는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결함을 피하고 겸손한맘으로 기도하라.
믿음과 확고한 소망은 기도의 동력이다.
자기 영광을 생각하는 마음을 모두 버려야 한다
응답받으리라는 확신을 품고 기도하라
참된 기도는 은혜속에 이루어진다. 한점 흠없는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자비가 없다면 마음놓고 기도할수 없다. 오직은혜로만 가능하다.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앞에 나가는것을 말한다.
기도의 청구권은 오직예수님이다.
자기주도형 프로젝트가 아니다.

8. 기도 중의 기도, 주기도문을 말하다
주기도문, 익숙한 데서 벗어나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다정한) _ 기도시작전 스스로의 처지 되새김.그리스도 떄문에 갖게된 위치 자각하기 ,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고 믿음을 마음에 심어주길 간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_ 우리 스스로 선하고 거룩해질 힘을 주시도록 꾸준히 기도, 그 아름다움에 경이를 표함.
나라에 임하시오며_ 주님이 계셔야할 자리에 다른것들이 차지 않게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한다 정욕을 바로잡아 주시는 성령님, 우리의 생각들을 빚어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의와 평화가 흘러 넘치는 미래의 삶을 갈망하는 간구

 

하나님 나라의 완결과 완성
뜻이 이루어 지이다. _주님꼐 자신을 드리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인신공격, 중상모략. 험담, 저주를 피할수 있다. 쓰라린 아픔에 시달리거나 냉담하지 않도로 제 의지 뿐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 _자신을 향한 시야을 왜곡하는 자기중심적 마음가짐을 치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편으로만, 가난한이와 착취당하는자를 위한 교회의 중보이다. _루터의 해석 _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가 번영과 공정한 사회 질서를 간구.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_ 회개나 고백이 하찮게 여겨진다면
하나님앞에 바로 서있지 않은 것, 꼬박꼬박 죄를 뉘우치는데도 기쁨이 커지지않는다면,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신앙의 본질을 이해 못한 것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옵고_ 성경은 고난과 환난을 심령의 숱한 불순물 태워 없애서 더 건강한 자기 인식과 겸손, 참을성과 믿음, 사랑을 갖게 하는 도가니
오른편 시험 ( ,권력,명예) 왼편 시험( 가난,수치,멸시,고통_ 절망하게 하고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하고, 분노에 차서 하나님꼐 등돌리게 만드는 시험) 이런 시험들이 주님의 신뢰를 저버리고 다른 무언가에 대한 과도한 욕구에 집중하지 않도록 살자
악에서 구하시옵소서_ 위의 것들에 대한 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길 구하는 기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니다. _ 평온한 안식
기도는 오롯이 개인적인 일이 아니다. 함께든 ,혼자든 힘 닿는대로 더불어 기도하라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제각기 한면 만 목격하고 동료들과 공유한 것이다.
하늘의 양식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온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9. 기도의 시금석을 따르라
기도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행위다
기도란 한손으로 손뼉치는 소리를 내는 것 _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 철저한 은혜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가장 끔찍한 죄다. 크리스쳔 사이에 깜짝 놀랄 공공연한 죄다. 기도하지 않고 싶은 심리는 죄에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죄다. _ 무례이다.
기도는 노동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회이다. _오롯이 기다림
주기도문은 찬양과 경배로 시작하여 필요을 채워주길 요청하며, 죄를 고백하고 변화를 간구한뒤, 베풀어 주신 은총과 역경에 대해 감사하는 것
더많이 용서 받은이가 더 많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기도의 요소들


반드시 예수님 의 이름으로 드려야 한다. _예수님의 이름은 주님의 거룩한 인격과 구원 사역을 압축해 놓은 일종의 속기록이다. 성자의 중보와 성령님의 능력주심에 기대어 성부께 기도드리는 것


기도는 애정과 경외감이 공존하는 마음가짐 ?서로 죽고 못사는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 그분과 대화
기도는 연약함을 인정하고 기대는 행위 _ 무력한 이만 진심으로 기도할수 있다.영적 파산 상태임을 고백하라.극도의 무력감을 느낄수록 주님이 함께 하시며, 기도에 귀기울여 주신다


기도가 가져다 주는 선물
하나님쪽 으로 눈을 돌린다. _ 기도가 불러오는 시선전환, 기도는 나쁜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는 것.
하나님과의 영적인 연합 _ 거룩하신 하나님의 도덕적인 힘에 흡수되는 것 , 영혼을 먹이기 위해서는 기도의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도가 새로운 본성과 반응, 기질을 만들어 내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려는 노력 _ 제대로 기도하자면 애정( 두려움, 놀라움, 사랑이 뒤엉킨 마음) 이 필수적이다. 주님의 죽음과 고난을 애정어린 마음으로 묵상하며,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분발하여 그 은혜가 뜨겁게 나타나게 하라


기도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정직한 자기 인식_ 극도로 솔직해지는 단계 , 왕의 왕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시선으으노 나를 바라보면 , 주님의 거룩한 위대하고 거룩한 속성을 감지해낼 도리가 없다


철저하게 신뢰하는 마음가짐 _경외감,친밀감 + 순종과 끈기
성숙한 크리스천일수록 끝이 보이니 않는 지긋지긋한 상황을 견뎌 내는게 풍성한 생활에 대단히 중요하다.
온삶을 하나님의 사랑에 굴복시키는 마음가짐 _ 그 어떤것 보다 하나님의 교제를 더욱 소망하고 애지중지하는 자세 _ 하나님뿐임을 인지하지 못하면 간구나 간청은 또 다른 형태의 걱정과 욕심일 뿐이다.


Part 4 기도의 깊이를 더하다
10.
말씀을 묵상하라


곱씹으라, 마음을 쏟으라, 반응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행동과다의 사회에서 묵상은 구시대적 기술로 보이지면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의 거룩하심을 듣는 과정이 필수이다. ( 시편 1편 묵상에 대한 묵상)
성경연구와 기도의 중간지대.
성경을 읽으며,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실제로 말씀하시는 바에 토대를 두고 묵상할 길이 없다.
묵상은 영적으로 성경을 맛 보는길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진리를 잊어 버린다면 죄책감과 회한이 중심에 가득하고 남들과 나은 인간이란 느낌을 쫒아 권력과 돈과 우상에 사로잡혀 지낼께 틀림없다.
성령님의 거룩한 임재에 힘입어 거룩하게 되었음을 망각하면 자신을 굴복해
달라지려는 노력을 멈추게 되며, 부활의 소망을 간직하지 않으면, 나이를 먹어 세상을 떠나는것에 마냥 두렵기만 할것이다.


묵상방법 ㄱ) 생각의 초점 잡기 _ 예를 들어 사람을 낚는 어부의 성경구절을 읽을때에 _ 단순히 지식을 빨아들이는 학생이 아니라, 삶전체를 그리스도에 맞추어야 하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순종하라, 주님과의 따듯한 사귐, 우리를 변화시키겠다는 약속과 보장이란 여러가지의 뜻으로 말씀을 곱씹을수 있다.
) 말씀에 소망을 두고 마음 기울이기(마음쏟기) 쓸모없는 흙덩이에서 불꽃으로, 건망증 심하고 세상과 사랑에 빠진 죄인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으로 툭하면 두려워 떠는 겁쟁이에서 흔들림 없는 크리스쳔으로, 허망한 슬픔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에서 기쁨에 겨워 하는 삶으로 변화되길 간구하자. 마음이 지상에서 천국으로 옮겨가길 구해야 한다.
) 즐거워하거나 부르짖으라


11.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하나님과 연합하고 영광을 즐거워하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소망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자.
명색이 크리스쳔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가식적이고, 공허하고, 진정성 없는 삶을 살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무언가 받아 누리게 되었음을 알게 된후 부터, 마음가짐과 감정,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을 필자는 성령님의 화학처리 _ 즉 영적인 감도를 확보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머리로 진리에 동의하고 입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 나지 않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감지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얼굴을 잊는 사태나 다름 없다. 하늘의 소망,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법을 배우지 못하는한, 사실상 크리스쳔의 삶을 살아 내지 못한다.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는 것은 영적인 관념이나 의식을 갖는다는 뜻이 아니다.
신앙적인 의무들을 꾸준히 하는 것 도 아니다. 마음의 은혜 없이도 의무는 충분히 가능하다. 성령에 속한 생각을 하는 것은 하늘의 것들,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기뻐한다는 말이다.


무한정 탁월한 주님의 면모 앞에 바짝 엎드리는 것이 기도하는 이들의 목표이며, 스스로 낮아지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기억할 때, 흔히 누릴수 있다.
형식주의 와 미신의 늪에 빠지지 말자.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이 오히려 상당수는 기도의 중요성을 가벼이 여기고 하나님을 경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체험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 아닌 기독교가 되고 말것이다.
차라리 교리는 취약하더라도 하나님을 온마음으로 느껴가며 생동감 넘치는 기도생활기 하는 것이 교리적으로 한점 흐트러짐이 없지만, 냉랭하고 완고한 신앙생활을 하는것보다 휠씬 윗길이라는 뜻이다.


Part 5 이렇게 기도하라
12.
감사와 찬양이 먼저다
기도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충분히 생각하라
다른 무엇을 더 사랑하면, 그 그대의 무게가 상대를 으스러 트리고, 마침내 자신의 마음까지 상하게 한다. 나의 기대에 못미칠때, 분통을 터뜨리거가, 깊은 좌절에 빠지기 십상이다. 인간이란 자고로 어디를 바라보든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다면, 슬픔으로 흘러갈수 밖에 없는 존재다. 하나님을 가장사랑하고 그마음을 키우려면 경배와 찬양은 하나님으로부터 생겨난 기쁨이라는 감정을 부끄러워 하지않고, 자연스럽게 키워 나갈수 있다.
감사를 드리지 않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큰문제이다. 하나님께 공을 돌리지 않는 일종의 절도 행위이다. 우주적인 배은망덕이다. 평생 바른길을 가며, 위험을 피하거나 이겨 낼수 있다는 믿음의 표현이다. 아주 위험한 상상이다.
내가 허수아비라는 착각을 가질뿐이라, 삶의 주도권을 쥐고 집착하느라, 하나님을 경외하는일의 깊이와 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인생이 순탄하여도 그걸 의식하고 말없이 감복하고 고마워 할줄 모른다.
가장 낮아졌을 때 경배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면, 지극히 높아진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는 몹시 어렵다 .
기도는 찬양- 신조(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진리)- 간구- 염원(요청을 들어주셨을때의 선한 결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13. 고백과 회개는 필수다
용서받은 마음에서 바른 기도가 세워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약속과 의무를 짓밟고 깨트리는 사건의 연속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것은 언약을 성실히 지키신 하나님의 신비와 대비되어 비로소 값없이 허락하신 용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실히 대비 된다.
하지만 율법적인 회개를 경계하자. 그것은 자기의 이며, 제힘으로 죄를 씻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또다른 자학이고, 스스로 십가가에 못박히는 행위이다.
나의 행위자체에 초점을 맞추기에 급급해서 그뒤에 감춰진 태도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들여다 보지 못한다.
사랑하기에 돌이키는 자발적 참회여야 한다
죄의 값이 크고 어마하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 기도는 얄팍하고 천박해질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지도, 삶을 변화시키지도 못한다.
악이 삶을 휘두르지 못할만큼 죄 때문에 슬퍼하고 못견뎌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참다운 회개란 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죄에 대한 거부가 있어야 한다. 책임전가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것이다. 죄의 동기부터 꺽어버리고, 죄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 통탄 스러워 하는 마음을 확고히 지켜야 한다.
성령님의 친밀감 + 율법의 정의 + 그리스도의 값진희생 + 모든 영광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위엄+ 주님의 한없는 인내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
자기 점검을 하자 ( 철저한 겸손이 있는가? 방향을 정확히 잡은 열정이 있는가?
식지 않는 사랑이 있는가? 흔들림 없는 한결 같은 시선이 있는가?)


14. 하나님 뜻대로 간구하다
어려움에 처할 때 지체하지 말고 기도하라
간구를 일방적으로 내뜻이 무조건 이뤄지이다 라는 도구쯤으로 여기면 안된다.
무슨일이든 하나님이 좌우하신다. 우리들은 여기에 토를 달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다. 하지만 스스로 거룩한 목적에 부합하리라고 믿는 것들에 근거해서 최선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구하는 까닭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것이다.
요청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주의깊게, 따뜻하게 들으시므로,
그분 말씀에 기대어 품은 소망은 우리를 실망시킨법이 없다.
그럼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훈련해야 한다. 나의 간구의 동기가 무엇이며, 무얼 사랑하고 있고, 어떤죄와 연약한 부분이 얽혀 있는지 질문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간구의 두가지 목적은 세상을 바로세우고(나라가 임하시오며)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뜻이 이루어지이다) 간구의 두가지 목적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밖을 향한 기도
안을 향한 기도_ 평안과 안식을 얻고자 하는 것
육신의 잠_ 단단히 그러쥐고 있는 것들을 풀어놓는 행위 , 기도는 스스로 통제하려는 의지를 버리고 온갖 필요를 하나님의 보살핌에 맡기어 안식하는것
나쁜일도 선한 열매를 맺는다 ( 8:28)
선한것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 4:6-7)
가장 좋은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 고전 2:9)


15. 매일 기도하라
날마다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 전통이다

다니엘 _ 하루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6:10)
조지물러_ 경건의 시간의 물음( 따를만한 본보기가 있는가? 순종할명령? 피해야할 잘못은 있는가? 용서받아야할 죄는 있는가? 당당히 내세워야 할 약속은 있는가?
하나님 자신에 관해 새로이 알려주는 점이 있는가?)
마음잡기_ 묵상_ 말씀기도_ 자유기도_ contemplation 의 순서대로 기도 해보자


 

'팀켈러의 기도'(1)/기도는 만남인가? 간구인가?

 

1. 기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

고전적으로 기도에 대하여 쓴 책을 보면 기도의 접근법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하나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간구라는 것이다.

1) 먼저 기도는 만남이다’(교제 중심)고 하는 접근법이다. 이는 기도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분과 하나 됨을 경험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기도를 통하여 평안한 삶과 주 안에서 지속적으로 안식을 누린다. 이 부류의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임재 안에 안기는 느낌을 받았다고 간증한다. 기도는 평화로운 경배이다. 그런데 이 접근법은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는 수가 있다.

2) 다음은 기도는 간구이다’(하나님 나라 중심)고 하는 접근법이다. 기도의 핵심은 내적인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라는 부르심에 있다.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분명히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벌이는 일종의 씨름이다. 이 접근법은 기독교 신비주의를 비판한다. 기도를 통하여 제 존재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목적이 있다.

 

2. 기도란 만남인가? 간구인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1)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2)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짧고도 유명한 문장은 두 가지 기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1)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간구)를 말하고

2)는 교제하는 기도(만남)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 두 종류의 기도는 서로 상반되지 않으며 별도의 범주도 아니다. 기도는 두 가지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요컨대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인 동시에 간구인 것이다.

 

3.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 길

대화와 만남이라는 개념은 기도의 의미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기도생활에 깊이를 더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은 의무감에서 기도를 시작한다. 그러나 기도는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 길이 되어야 한다.

* '팀 켈러의 기도'(팀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1) - 프롤로그/왜 다시 기도를 말하는가?


'팀켈러의 기도'(2)/누구든지 기도하면서 황홀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8:15~16) 성령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증해 준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높으신 하나님을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로 믿고 다가가 부르짖게 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 영과 나란히 동행하면서 더 많은 증거들을 더하여 보여주신다.

 

이른바 ‘이성적 신비주의’에 대하여 언급한 스코틀랜드 신학자 존 머리가 인용한 성경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사랑하며, 지금 그를 보지 못하면서도 믿으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벧전1:8/표준새번역) 그런데 밑줄 친 부분에 대한 개역성경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는 믿는 자가 주안에서 누릴 황홀한 기쁨에 대한 표현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베드로가 글을 읽을 모든 독자들에게 위와 같이 단언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는 성도 가운데 몇몇 뛰어난 영성을 가진 이들은 기도하는 중에 큰 기쁨을 맛보는 단계에 들어서는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기도하는 가운데 더러 숨이 막히도록 큰 기쁨을 경험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존 머리의 ‘이성적 신비주의’라는 것은 하나님과 마주한다는 것은 내면의 감정과 마음의 확신을 모두 포함한다. 주님은 기독교인에게 진리와 교리에 기대어 살 것인지 영적인 권능과 체험이 차고 넘치는 생활을 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둘은 늘 붙어 다니는 법이다.

(나의 생각) 요컨대, 기도에는 이성과 신비 두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도하는 중에 주안에서 황홀한 기쁨을 누리는 것 역시 신비주의라고 배척할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직 할 줄 모르는 방언기도역시 기도 중에 맛보는 이러한 황홀한 기쁨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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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2) - (파트1)바른 기도를 꿈꾸다(1)

 


'팀켈러의 기도'(3)/기도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 바울이 신앙의 동지들을 위하여 구한 것은 주님을 더 잘 아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는 환경과 처지를 바꿔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인이 반드시 얻어야 할 결정적인 응답은 환경의 변화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지식이라고 말한다. 기도를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내는 통로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그분을 더 잘아가는 수단으로 인식한다.

-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직전에 가르쳐 주신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 은밀한 데서 이뤄지는 개인적인 기도 생활이야 말로 영적 상태를 족집게처럼 진단해내는 영적 시험지다.

흔히들 문화적이거나 사회적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또는 형편이 어려워져 걱정이 많을 때 기도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참으로 살아 움직이는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무릎을 꿇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외부적 압박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내면에서부터 기도하고자 하는 욕구가 끓어 넘친다. 사회적이거나 경험적인 보상이 전혀 없어도 영적으로 메말랐다 싶으면 당장 기도부터 시작한다.

- 기도에 하나님이 없다는 느낌을 극복하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도를 시작하면 마치 하나님이 곁에 계시지 않는 것 같은 메마른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빈곤감과 부재감이 지배적이기 쉽다는 말이다. 그러나 의무를 지나 기쁨에 이르는 길을 찾기까지 그런 형편을 훈련과정으로 여기고 애써 견디며 꾸준히 간구해야 한다.

일단 기도생활이 풍성해지지 시작하면 놀라운 결과들이 나타난다. 하나님 앞에 앉는 순간 방향 전환이 일어나고 애써 붙들고 씨름하던 감정이 얼마나 하찮은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근심 걱정에 찌들었다가도 주께 간구하노라면 겨우 그 정도 일로 뭘 그렇게 노심초사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자신이 우스워지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일들에 감사하게 된다. 드라마틱한 일이다. 관점이 달라지고 상황이 상쾌하리만치 명확해진다. 그런 경험이 되풀이되다 보면 결국 흔한 일이 되지만 기도생활을 시작하자마자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양성룡/성산서부교회 장로
* '팀 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3) - (파트1)바른 기도를 꿈꾸다(2)


 

1. 기도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다(5)

사람들도 “방안에 빛이 있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스위치를 올려야 빛이 생긴다. 말대로 되려면 행동이 따라야 하고 움직인다 해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무산되는 법이 없다. 주님께는 말과 행동이 하나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본시부터 말씀을 통해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히4:12) 말씀을 통해 일하시므로 크리스천의 삶 가운데 그분이 활발히 역사하게 만드는 길 또한 성경뿐이다. 성경 말씀을 깨달아 안다는 말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관심을 쏟는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들으며 주님을 만나는 창구가 된다.

2. 하나님 말씀에 풍덩 뛰어 들라

기도를 하려면 먼저 성경을 펴고 그 간구를 들으실 분에 관해 배워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깨달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게 된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인간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까마득히 앞선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기는 것이 기도 훈련에 필수적이다. 기도는 성경에 깊이 침잠하는데서 비롯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의 바다, 즉 성경에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기도의 목표가 진실하고 인격적인 교제라고 본다면, 온 마음을 다해 성경에 기록된 한 구절 한 구절에 깊이 몰입하는 것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유일한 길이다.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듯 더딜지 모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기도할 때마다 성경부터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스펀지와 비슷해서 가끔씩만 물에 적셔 줘도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성경과 기도는 한 덩이가 되어 크리스천을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준다.

3. 기도는 마술이나 주문이 아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옛날부터 드리고 있는 ‘예수기도’라는 것이 있다. 이는 ‘주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히 되풀이하거나 하루 종일 낮은 소리로 음송하게 되어 있다.

존 제퍼슨 데이비스는 이 기도는 같은 글월을 끝없이 재탕하면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려는 이들이 많으며 그렇게 대화와 교류, 언어와 사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는 향심기도나 동양 종교가 내세우는 다양한 형태의 명상과 다를 게 없다고 꼬집는다.

리드미컬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다보면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디크르기도와 유사한 심리 효과를 낳기 쉽다고 한다. 예수기도는 마치 마술과 주문처럼 ‘말을 많이’(마6:7)해서 하나님의 관심을 받으려는 술수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4. 말씀에 대한 반응은 다채롭다

내면의 욕구와 심리 작용을 좇아 스스로 기도를 주도해 가면 성경이 제시하는 기도의 폭을 다 따라가지 못한다.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에 반응하며 기도해야만 가능하다.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은 위엄이 넘치면서도 자비롭고, 거룩하면서도 너그러이 용서를 베풀며, 사랑이 넘치는 동시에 사람의 지혜로 가늠할 수 없는 분이시다.

기도가 납작 엎드려 용납을 구하는 고백이나 승리의 개가, 또는 애처로운 하소연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느 한 가지 표현으로 기도를 규정하고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친구와 나누는 친밀한 대화처럼 보이는 기도도 있지만 위대한 군주에게 호소하는 유형이나 마치 씨름 경기와 비슷한 형태도 있다.
어째서 그런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따라 기도의 성격이 가지각색으로 결정되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 연인, 목자, 또는 왕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유형의 기도가 기대한 일이나 감정을 불러오는 데 가장 효과적일지를 토대로 기도하는 방법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반응, 또는 응답으로 드려야 한다.

거룩한 자녀들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에는 이런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대화들이 실려 있다. 크리스천의 기도 생활은 오로지 주님의 말씀에 반응할 때에만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수 있다.

5. ‘제 소견에 좋은 대로드리는 기도의 비극

18세기 영국교회 목회자였던 조지 휫필드는 청중을 휘어잡는 연설가로, 교회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743년 그와 아내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첫 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사내아이였다. 그는 아기가 잘 자라서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가 될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를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여긴 휫필드는 아들에게 존(John)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세레요한의 이름을 딴 작명이었다. 어머니의 이름도 똑같이 엘리자베스(엘리사벳)였다. 휫필드는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아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하나님이 장차 아기를 통해 큰일을 행사실 것이라고 설교했다. 마뜩치 않아 하는 이들은 예언적인 내용을 비아냥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생후 4개월에 접어든 어느 날 아기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깊은 슬픔에 잠긴 중에서도 휫필드는 속에서 불쑥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 말씀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게 여긴 처사가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교인들까지 잘못 이끌어서 똑같은 망상에 빠지게 만들었음을 통감했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하나님이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해석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을 위해 쓰라린 기도문 한 편을 짓는다.

“하나님께서 이 무지한 아비어미를 더 신중하고, 더 침착하며, 사탄의 술책을 더 잘 꿰뚫어 보게 하셔서 주님의 소유인 교회를 섬기는 데 더 요긴한 일군이 되게 해 주세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충동을 이끌어서 슬기롭게 행동하는 길을 선택하게 만드시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성경을 읽지 않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걸 확인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 양성룡/성산서부교회 장로

* '팀 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5) - (파트2)기도를 분별하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