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13 앗시시 성프란시스코 ● 성프란시스는 중세교회역사상 가장 빛나는 이름이다. 프란시스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방자로서 너무나도 유명하였으므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은 프란스시에 대한 대중들의 존경과 흠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를 찬탈했다고까지 주장할 정도였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중세의 모든 예술분야는 그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프란시스는 중세 천년 암흑기 가운데 가장 빛나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는 종종 이리를 길들이고 새들에게 설교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프란시스의 사역은 허물어진 한 예배당의 재건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영적 무감각에 빠진 교회를 재건하고자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나아가 로마의 궁전과 애굽에 있는 술탄의 장막에까지 가서 그리스도께 대한 자신의 단순한 신앙을 .. 2023. 12. 18. 쯔빙글리 1.개혁주의자가 되기까지의 쯔빙글리 쯔빙글리는 루터보다 7주 늦은 1484년 1월 1일 스위스의 작은 도시 빌트하우스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그 부락의 촌장을 역임해왔고, 그의 아버지는 당시 시장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카톨릭 사제였다. 쯔빙글리의 삼촌은 대학 학장이었는데, 쯔빙글리는 삼촌을 통해 신학교육을 비롯 새로운 학문 조류였던 인문주의에 대한 눈을 뜨게 된다. 쯔빙글리는 10세때 라틴어문법, 음악 그리고 변증학을 배웠으며, 열성적인 그의 부모는 영특했던 쯔빙글리를 아주 어릴 때부터 외지로 유학을 보냈다. 베른 대학과 비엔나 대학을 거쳐 1502년 바젤 대학에서 당대 최고학자인 에라스무스의 개혁 사상을 소개받아 인문주의자가 되었으며, 후일 에라스무스를 직접 만나 그와 학.. 2023. 12. 18. 존 칼빈 칼빈은 성직자의 사업 담당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노용 대성당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주교의 후원을 얻어 성당 신부에게 지불되는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는데, 12살 때에는 당시 성직자가 되는 풍습대로 삭발까지 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머리가 총명하고 뛰어났던 칼빈은 형제들과 함께 고향에서 카피츠학교를 다녔는데, 타고난 지성과 판단력으로 학우들 사이에서 뛰어난 인물로 인정을 받았다. 칼빈은 기록에 의하면 안색이 좋지 않았으며 몸이 허약하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수줍어하는 편이었다. 게다가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사리를 판단하는 데에는 정확했다. 그리고 그의 지적 능력은 아주 뛰어났으므로 아버지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칼빈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투.. 2023. 12. 18. 마틴루터 중세 시대에 사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였다. 사제의 속죄 권한에 대한 미신 때문에 중세인들은 사죄 받는 최선의 길이 수도승이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보통 신자로 살아서는 이 땅에서 예수님의 명령을 완전히 이룰 수는 없지만 수도 생활을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사상이 만연하여, 많은 사람들은 수도승이나 수녀가 되려고 하였다. 중세인들에게 있어 수도자로서의 서원은 일체의 부수적인 죄악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제2의 세례로 간주되었고, 수도복의 효력은 대단해서 생전에 그것을 입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임종시에라도 입어 보길 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무지와 미신이 왕 노릇하던 시기에 종교개혁의 횃불을 높이 든 마틴 루터가 태어났다. 마틴 루터(1483-1546)는 개신교 종교개혁의 아버지이다... 2023. 12. 18.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