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팀켈러의 기도'(4)/기도는 하나님과의 쌍방향 소통 활동이다
기도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은혜로 시작하신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가서 마침내 주님과 온전히 만나는 단계에 이르는 일을 가리킨다.
고난에 처한 욥은 시종일관 하나님께 부르짖듯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린다. 쉴 새 없이 불평을 쏟아 내면서도 욥은 절대로 주님께 등을 돌리거나 그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기도하면서 고난과 고통을 겪어 갈 따름이다. 그러나 그도 하나님이 주신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는가 싶더니 하나님이 욥에게 ‘폭풍우 가운데서’ 말씀하셨다. 주님은 온 우주와 자연계를 짓고 뒷받침하는 일들을 조목조목 생생하게 설명하셨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심오한 환상 앞에 욥은 탄식하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이제야 눈이 열린 것이다. 마침내 욥은 회개와 찬양이 어우러진 장대한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능력은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 또는 기교가 아니라 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달렸음을 알 수 있다. ‘욥에게는 하나님이 폭풍우 가운데서 귀에 생생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나에게도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명쾌하게 드러내는 패를 쥐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존 녹스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친숙하고 진심어린 대화’가 된다고 했다. 장 칼뱅은 ‘하나님과의 교제’(쌍방향 상호 소통활동)라고 했다.
* '팀 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 요약(4) - (파트2)기도를 분별하다(1)
'팀켈러의 기도'(5)/소견대로 하는 기도는 비극이다
1. 기도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다
사람들도 “방안에 빛이 있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스위치를 올려야 빛이 생긴다. 말대로 되려면 행동이 따라야 하고 움직인다 해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무산되는 법이 없다. 주님께는 말과 행동이 하나기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본시부터 말씀을 통해 행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히4:12) 말씀을 통해 일하시므로 크리스천의 삶 가운데 그분이 활발히 역사하게 만드는 길 또한 성경뿐이다. 성경 말씀을 깨달아 안다는 말은 그저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관심을 쏟는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들으며 주님을 만나는 창구가 된다.
2. 하나님 말씀에 풍덩 뛰어 들라
기도를 하려면 먼저 성경을 펴고 그 간구를 들으실 분에 관해 배워야 한다. 성경을 읽으며 깨달을 때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알게 된다. 유진 피터슨의 말대로 “인간의 기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까마득히 앞선다.”는 사실을 가슴깊이 새기는 것이 기도 훈련에 필수적이다. 기도는 성경에 깊이 침잠하는데서 비롯되어야 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의 바다, 즉 성경에 풍덩 뛰어들어야 한다.
기도의 목표가 진실하고 인격적인 교제라고 본다면, 온 마음을 다해 성경에 기록된 한 구절 한 구절에 깊이 몰입하는 것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유일한 길이다. 갓난아이가 말을 배우듯 더딜지 모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기도할 때마다 성경부터 읽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스펀지와 비슷해서 가끔씩만 물에 적셔 줘도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하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성경과 기도는 한 덩이가 되어 크리스천을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준다.
3. 기도는 마술이나 주문이 아니다.
동방정교회에서 옛날부터 드리고 있는 ‘예수기도’라는 것이 있다. 이는 ‘주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오랜 기간을 두고 꾸준히 되풀이하거나 하루 종일 낮은 소리로 음송하게 되어 있다.
존 제퍼슨 데이비스는 이 기도는 같은 글월을 끝없이 재탕하면서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려는 이들이 많으며 그렇게 대화와 교류, 언어와 사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는 향심기도나 동양 종교가 내세우는 다양한 형태의 명상과 다를 게 없다고 꼬집는다.
리드미컬하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똑같은 소리를 되풀이하다보면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의 디크르기도와 유사한 심리 효과를 낳기 쉽다고 한다. 예수기도는 마치 마술과 주문처럼 ‘말을 많이’(마6:7)해서 하나님의 관심을 받으려는 술수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
4. 말씀에 대한 반응은 다채롭다
내면의 욕구와 심리 작용을 좇아 스스로 기도를 주도해 가면 성경이 제시하는 기도의 폭을 다 따라가지 못한다. 오로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성품과 역사에 반응하며 기도해야만 가능하다.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은 위엄이 넘치면서도 자비롭고, 거룩하면서도 너그러이 용서를 베풀며, 사랑이 넘치는 동시에 사람의 지혜로 가늠할 수 없는 분이시다.
기도가 납작 엎드려 용납을 구하는 고백이나 승리의 개가, 또는 애처로운 하소연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크게 기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느 한 가지 표현으로 기도를 규정하고 제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친구와 나누는 친밀한 대화처럼 보이는 기도도 있지만 위대한 군주에게 호소하는 유형이나 마치 씨름 경기와 비슷한 형태도 있다.
어째서 그런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따라 기도의 성격이 가지각색으로 결정되는 까닭이다. 하나님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버지, 연인, 목자, 또는 왕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유형의 기도가 기대한 일이나 감정을 불러오는 데 가장 효과적일지를 토대로 기도하는 방법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반응, 또는 응답으로 드려야 한다.
거룩한 자녀들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에는 이런 범주에 속하는 다양한 대화들이 실려 있다. 크리스천의 기도 생활은 오로지 주님의 말씀에 반응할 때에만 풍성하고 다채로워질 수 있다.
5. ‘제 소견에 좋은 대로’ 드리는 기도의 비극
18세기 영국교회 목회자였던 조지 휫필드는 청중을 휘어잡는 연설가로, 교회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1743년 그와 아내 엘리자베스 사이에서 첫 번째 아기가 태어났다. 사내아이였다. 그는 아기가 잘 자라서 “영원한 복음을 선포하는 설교가”가 될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를 하나님이 주신 감동으로 여긴 휫필드는 아들에게 존(John)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세레요한의 이름을 딴 작명이었다. 어머니의 이름도 똑같이 엘리자베스(엘리사벳)였다. 휫필드는 수많은 교인들 앞에서 아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하나님이 장차 아기를 통해 큰일을 행사실 것이라고 설교했다. 마뜩치 않아 하는 이들은 예언적인 내용을 비아냥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생후 4개월에 접어든 어느 날 아기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깊은 슬픔에 잠긴 중에서도 휫필드는 속에서 불쑥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 말씀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게 여긴 처사가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교인들까지 잘못 이끌어서 똑같은 망상에 빠지게 만들었음을 통감했다. 그는 자신의 느낌을 하나님이 마음에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해석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을 위해 쓰라린 기도문 한 편을 짓는다.
“하나님께서 이 무지한 아비어미를 더 신중하고, 더 침착하며, 사탄의 술책을 더 잘 꿰뚫어 보게 하셔서 주님의 소유인 교회를 섬기는 데 더 요긴한 일군이 되게 해 주세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충동을 이끌어서 슬기롭게 행동하는 길을 선택하게 만드시는 경우가 전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성경을 읽지 않고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걸 확인할 길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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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 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5) - (파트2)기도를 분별하다(2)
'팀켈러의 기도'(6)/말씀은 기도하고자 하는 힘을 불러일으킨다.
권력의 정점에 선 다윗 왕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자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의 입을 빌어 전을 세우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시는 한편,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내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7:11~13)
왕은 하나님의 집을 짓고 싶어 했지만 주님은 말씀하신다. ‘아니다. 내가 네 집을 세우겠다.’ 일종의 언어유희이지만 대단히 강렬한 의미를 담고 있다. 다윗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주는 성전을 짓기를 원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실상 역으로 제안을 하셨다. (성전이 아니라) 다윗 왕가를 세워서 결국 더 영구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보편적인 방식으로 친히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이다.
은혜가 넘치는 약속을 받은 다윗은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삼하7:27). 기도가 작동되는 내면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다윗 내면에서 기도하고자 하는 소망과 욕구, 힘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원리를 한 마디로 정리해보자.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반응한다.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된 다윗의 간구는 참으로 대단한 기도지만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손꼽히는 구약시대의 신앙 위인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모세는 목숨을 잃을까봐 감히 마주할 수 없었던 바로 그 하나님의 영광이(출33:20) 이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은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것이다(요1:14, 벧후1:4).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전까지 존재했던 선지자 가운데 세례요한만한 이가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11:11)
당시의 청중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겠지만 놀랄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 능력이 넘치는 하나님의 말씀은 뭇 크리스천들의 속에 풍성히 살아서 기쁘고 진실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며 기도할 마음을 품게 한다(골3:16). 다윗도 세례요한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다.
다윗은 왕좌에 앉히고 집을 지어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받고나서 기도할 마음을 찾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크리스천들은 그보다 무한정 더 크고 위대한 약속을 이미 받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그저 집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주님을 좇는 이들 하나하나로 그분의 집을 삼겠다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임재와 아름다움, 영광으로 우리를 가득 채우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할 때마다 크리스천의 가슴에는 그 엄청난 약속의 말씀이 사무치고 번번이 기도할 마음을 찾을 것이다.
* '팀켈러의 기도'(티모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6) - (파트2)기도를 분별하다(3)
'팀켈러의 기도'(7)/하나님은 행복해지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 그 자체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드리는 기도, 열에 아홉은 하나님께 무얼 얻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세상에서 얼마나 성공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에 가장 깊은 소망과 기쁨을 두기 일쑤다. 그러니 직장생활이 곤고하거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거나, 관계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회적 지위에 위기가 닥치고 나서야 비로소 기도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인생만사가 순조롭고 심중에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안전하다 싶으면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무미건조해지기 십상이다. 오랜 시간 차분히 앉아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경우는 드물거나 전혀 없다. 한마디로, 내면으로부터 기도하고 싶어 하는 긍정적이고 전향적인 욕구를 찾아볼 수 없다. 형편에 쫓겨 어쩔 수 없다. 머리를 조아릴 따름이다.
어째서 그런가? 하나님이 엄연히 살아 계시다는 걸 알지만 무언가를 얻어내거나 행복해지는 수단쯤으로 여기는 탓이다. 대부분은 그분을 행복 그 자체로 삼지 않는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고 구하려고 기도하는 것이다.
제 힘으로 구원에 이르려고 끊임없이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상태를 빨리 파악하고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야한 국면을 총체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감수하신 크고도 놀라운 희생을 깨닫고, 소망의 대상을 물질에서 그리스도로 바꾸며, 예수님께 기대어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유익과 축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속속들이 알고 깊이 사랑하고자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못해 절박해진다. 거룩한 사랑과 배려를 받는데 온통 마음이 가서 세상의 지위 따위는 빛이 바래고 의미를 잃는다.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고 그분을 기쁘게 하는 일을 가장 만족스럽고 고상한 일로 여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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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켈러의 기도'(티모시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7) - (파트2)기도를 분별하다(4)
하늘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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