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켈러의 기도'(8)/어거스틴의 기도
이 책의 ‘(파트3)기도를 배우다’에서는 교회사를 주름잡았던 걸출한 세 스승, 즉 초대교회의 교부 성 어거스틴,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장로교의 창시자 캘빈 등이 제시한 기도의 모범을 서술하고 있다. 먼저 성 어거스틴이 가르친 기도부터 본다.
1) 무얼 어떻게 기도할까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이 세상에서 엄청난 복을 누리고 있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외로운 존재라고 생각해야 한다.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서, 이 땅에서 제 아무리 대단한 영화도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영원한 평화와 행복,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또렷이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시각이 확립되지 않으면 그릇된 방향으로 기도가 흘러갈 수 있다.
2)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요소들이 엉클어져 뒤죽박죽이 되지 않았는지 분별해야 한다.
세 번째나 네 번째로 사랑해야 할 것들이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 가장 큰 사랑을 드리는 게 마땅하지만 주님을 막연히 의식하기만 할 뿐 실질적으로는 그분의 은혜와 임재를 지상에서 누리는 번영과 성공, 지위, 애정, 또는 쾌락만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적어도 이러한 심적인 고장을 인식하고 그게 얼마나 삶을 뒤틀어 놓는지 자각하지 못하는 한, 기도는 치유의 통로가 아니라 문제의 일부가 될 따름이다.
3) 주기도문을 연구하며 구체적인 기도방법을 배우라.
찬양과 간구에서 감사와 고백에 이르기까지 그 안에 담긴 모든 종류의 기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라. 간구의 순서와 형식을 살피라. 주기도문이라는 더없이 훌륭한 기도의 모범답안을 오랫동안 꼼꼼히 짚어 가며 거기에 자신의 간구를 맞추라.
4) 암흑기, 즉 고난에 처했을 때 드리는 기도에 관하여
위 세 가지 규칙을 잘 따른다 해도 힘겨운 시절을 만나면 무얼 기도해야 할지 모르기 십상이다. 고난을 당했을 때 여건을 바꿔 주시길 구해야 할까? 아니면 견뎌 낼 힘을 청해야 할까? 이때 솔직한 소망(‘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과 하나님을 향한 순종(‘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제시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우리가 탄식하고 혼란스러워할 때 성령님이 대신 간구하시며 마음을 이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그 기도를 들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쏟아놓는 중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 '팀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8) - (파트3)기도를 배우다
'팀켈러의 기도'(9)/루터의 기도
1) 규칙적인 훈련으로 기도를 몸에 베개 하라
기도는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씩 어김없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크리스천은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에 못지않게 엄중하고 단호한 가르침이다.
2) 기도의 준비단계로 ‘성경묵상’의 시간을 가져라
기도하는 자녀의 마음이 차갑고 기쁨이 없는 건 틀린 것이다. 주님과 대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경묵상의 한 형태로 루터는 ‘음송’을 추천한다. 음송은 십계명이나 그리스도의 말씀 같은 성경 본문을 혼자 읊조리는 것을 말한다. 이 음송은 격식을 갖춘 성경 연구에서 기도로 넘어가는 일종의 다리 구실을 한다.
3) 자신만의 주기도문 변주곡을 만들라
묵상한 뒤에는 곧바로 기도에 들어갈 것인가? 물론 그래도 된다. 하지만 루터는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운 형식으로 기도하기 전에 주기도문의 간구를 한 구절 한 구절 끌어내어 기도하기를 권한다. 주기도문에 맞춰 저마다의 필요와 관심사를 다른 말로 표현하거나 개인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이다.
주기도문을 바탕에 깔고 기도하는 연습은 정신세계를 철저히 장악하게 해 주며 하나님께만 온 신경을 쓰는 과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무슨 일인가를 계획하다 기도를 시작하면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중에도 그 일에 대한 상념에 발목을 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본문을 묵상하는 것과 달리 주기도문에 따라 간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실질적인 기도가 된다.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갖는 권위에 기대어 하늘 아버지께 무언가를 아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평안과 위안을 줄 뿐 아니라 심령을 뜨겁게 해서 가장 긴급한 관심사들을 두고 열정적으로 기도하게 만든다.
4) 성령님의 터치를 놓치지 말라
주께 간구하는 내내 성령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치지 말라.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를 하다가 선한 생각들이 샘솟는다면 다른 제목들은 잠시 미뤄두고 그런 생각이 마음에 깃들일 여지를 확보하라. 침묵 가운데 귀를 기울이고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령님이 친히 말씀을 선포하시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보통 크리스천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믿었다. 말씀에 근거해 있다면 내면의 느낌을 하나님의 계시로 착각했던 조지 휫필드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 '팀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9) - (파트3)기도를 배우다(2)
'팀켈러의 기도'(10)/ 깔뱅의 기도
1) 사랑스럽고 행복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라
경외 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다. 칼뱅은 크리스천들에게 무엇보다 먼저 기도의 실상이 얼마나 엄중하고 광대한 일인지 의식하기를 주문한다. 기도란 우주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독대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하면서 경외의 실종보다 더 끔찍한 사태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엄에 이끌려 세속적인 염려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두려움이다. 이는 자신에게 몰두하는 이들에게 찾아온다. 복음을 받아들인, 다시 말해 아무 자격 없이 영원토록 한결같은 은혜를 받는 수혜자가 되었음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역설적이게도 사랑스럽고 행복한 두려움이 갈수록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나님 안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임재 가운데 머무는 특권에 가슴이 떨리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갈망이 나날이 짙어진다. 주님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스러워한다.
칼뱅은 이 경외감이야말로 기도의 핵심부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이자 열매이다.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그분의 임재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에 집중하고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야 한다.
2) 회개는 기도의 동기이자 열매이다.
스스로의 허물과 연약함에 무자비하리만치 정직해야 한다.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쓰는 허구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알고 회의와 두려움, 허무 따위를 솔직히 인정하며 그분 앞에 나와야 한다. 그저 가식을 남김없이 털어버리고 허위에서 벗어나라는 말이다.
고백과 회개는 진실한 기도에 꼭 필요한 결정적인 성분이다. 겸손은 기도하게 만드는 요인인 동시에 열매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데려간다. 인간의 결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현장이다. 결함과 결핍에 대한 새로운 자각은 크리스천을 이끌어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며 주님의 용서와 도우심을 한층 더 간절히 사모하게 만든다.
온전한 마음으로 찾기만 하면 그분은 어김없이 만나 주신다.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에는 회개가 따라야 한다. 스스로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지는 대신 우쭐거리며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게 아니다. 기도는 자기 합리화나 남 탓, 자기 연민, 영적인 교만 따위를 버리기를 요구하고 또 그럴 힘을 준다.
3)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한다.
크리스천은 바라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이는 또한 예수님의 원칙이기도 하다. 기도하는 이는 예외 없이 “(주님의)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라고 간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하게 이끄는 것도 기도의 목적 가운에 하나다.
“이런 것들이 제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최선을 알고 계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기도라는 독보적인 방식으로 모든 필요와 소원을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때에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와 안식을 얻는다.
4) 확신과 소망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참다운 겸손함에 사로잡히고 압도되었다 할지라도 반드시 응답을 받으리라는 확고한 소망을 품고 기운을 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항상 옳으며 그것에 순종하는 게 중요하다면 열심과 확신을 품고 기도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첫째, 주님은 간구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하시며 또 그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사랑이 많은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둘째, 주님은 종종 자녀들이 기도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은총을 베푸신다. 무슨 연유일까? 따로 구하지 않고 선한 것들을 받으면, 내심 스스로 똑똑하거나 열심히 일해서 얻은 열매로 착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셋째, 서로 균형을 이루는 이 두 진리는 모순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일단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약4:2)이다. 하늘 아버지는 자녀들의 소망을 무조건 충족시켜 주시는 게 아니므로 자신 있게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일의 결과를 조절하셔서 믿음과 오류가 뒤섞인 성도들의 기도가 허사로 돌아가지 않게 하신다.
* 칼뱅의 3),4)번째 기도의 원칙을 잘 조화시키면 기도에 큰 힘이 된다. 성경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7:7)이라고 말한다. 확신과 소망을 품고 구하라. 그릇된 청을 드리게 될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 당연히 그런 경우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헤아릴 수 없는 큰 지혜로 그 결과를 조절하신다. 부르짖어라! 구하라! 호소하라! 풍성한 응답을 받을 것이다. 응답이 없거나 기대했던 답이 아니더라도 기도로 그의 큰 뜻 안에서 평안을 갖도록 하라.
5) 참된 기도는 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
크리스천들이 원칙을 잘 따르면 응답받을 만한 가치를 얻는다는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하나님께 나갈 자격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은혜로만 가능하다. 즉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토대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원칙은 도대체 어떤 기능을 하는가? 모든 게 은혜로 통한다면 기도는 방법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기도는 은혜로, 은혜를 좇아 빚어져야 한다. 스스로의 노력이 아니라 선물로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었기에 행복한 두려움을 누리거나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제힘으로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며 주님의 자비가 필수적임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원칙을 따르기 시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기도하는 가운데 자기 능력이나 경력에 의존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고 용납해 주신 그리스도를 의식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배경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놓는 작업이다. 아울러 내면의 상태와 상관없이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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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켈러의 기도'(티모시 켈러 저, 최종훈 역) 독후요약(10) - (파트3)기도를 배우다(3) <하늘나그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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