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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갈 1:17)

by 은총가득 2024. 2. 25.

 

 

아라비아에서 보낸 삼 년(갈1:17)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분명히 진술합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거기서 조용히 칩거하면서 깊은 기도와 묵상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최근에 어느 주석학자는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모든 인간적인 접촉을 끊고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이것은 새롭게 개종한 유대 바리새인이며 기독교 박해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바울은 회심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계시된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기독교에 대해 자신이 이전에 견지했던 입장을 반성할 시간이 필요했다.이 모든 기간 동안 바울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이 정통해 있던 구약과의 관련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그랜트 오스본[편], 「에베소서」[성서유니온선교회, 2006], 73).

 

말하자면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은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던 셈입니다.

사역을 하기 전에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로 사역을 준비했다고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도 바울이 체류한 ‘아라비아’를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와 동일한 곳으로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25절에서 ‘아라비아’라는 지명이 다시 등장하는데, "4: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이 본문에서 바울은 아라비아를 시내 산이 있는 곳이라고 명시합니다. 회심한 뒤에 바울이 간 곳이 시내 산이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라면 그곳에서 그가 3년 동안 기도하고 묵상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광야나 사막에서는 기도와 묵상 이외에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다른 증거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9장 19-20절에서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라고 말합니다.

 

사울(바울)은 회심한 후에 다른 준비 없이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확신하는 일은 눈이 먼 상태로 보낸 3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행 9:9).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과정에서, 또는 핍박하기 전에 복음의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정통 유대인이라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불온하고 심지어 참람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강력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이 참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인생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멸하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다메섹 체험은 단순한 ‘회심’(conversion)이 아니라 ‘부르심’(calling)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는 데 있었습니다(갈 1:16). 따라서 바울이 다메섹에 머무는 며칠 동안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그가 멀리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까지 가서 새삼스럽게 3년 동안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사역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아라비아에 간 목적을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라비아에 갔다고 할 때 ‘아라비아’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광야나 사막 지대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F. F. 브루스와 리처드 롱게네커를 포함한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3년 동안 체류한 ‘아라비아’가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나 광야가 아니라, 아라비아나바티아(Nabatea) 왕국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이 왕국은 다메섹 동남부에서 시내 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데가볼리 성들의 일부와 거라사 등이 이 왕국에 속해 있었고, 남부의 페트라(Petra)와 북부의 보스트라(Bostra)가 이 왕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나바티아 왕국이 아라비아에 포함되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로마 시대에 나바티아 왕국은 아라비아의 나바티아로 알려졌습니다. 회심 후 바울은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 아니라 다메섹의 동남부에 있는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가서 그곳에 형성된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3년 동안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고린도후서 11장 32-33절에 기록된 바울 자신의 증언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이 옳게 지적하고 있는 대로, 사도행전 9장 23-25절에 기록된 사건과 동일합니다.

이 본문에서 누가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두 사건은 모두 다메섹에서 일어났고, 두 사건에서 모두 사울(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탈출합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는 아레다 왕의 방백이 사울(바울)을 잡으려 한 반면,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사울(바울) 죽이기를 공모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사울(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아레다 왕의 방백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또는 바울이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에서 3년에 걸쳐 유대인들뿐 아니라 나바티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전하는 것에 분개한 유대인들과 협력하여 나바티아인들이 바울을 체포할 목적으로 다메섹 성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본문에서 ‘여러 날’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표현은 사실상 오랜 기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많은 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에서 탈출한 사건은 그가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와 나바티아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혀 다메섹으로 돌아온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다메섹까지 바울을 추격한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은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과 공모하고 그 지역을 총괄하던 아레다 왕의 방백의 지휘 아래 바울을 체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밤에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바울이 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본문에 나오는 ‘아레다’ 왕이라는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레다 왕주전 9년부터 주후 40년까지 나바티아 왕국을 통치한 아레다 4세(Aretas IV)입니다(그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헤롯은 아레다 왕의 딸을 버리고 자기 형제의 아내이자 조카딸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34-39/40년 사이에 아레다 왕이 다메섹을 통치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간에 바울이 아레다 왕의 방백의 손을 피해 다메섹 성을 탈출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34-62년 사이에 주조한 로마 동전이 다메섹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다소 빈약한 증거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기간에 다메섹이 로마의 통치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에 다메섹에 많은 나바티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아레다 왕의 영향이 다메섹까지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레다 왕은 다메섹에 있는 나바티아인 공동체의 지도자를 방백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바로 이 방백이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과 함께 바울을 체포하려 한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증거(갈 1:17; 고후 11:32-33; 행 9:19-20, 23-25)를 이렇게 이해하면,

바울은 회심 후에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갔으며,

그곳에서 3년 동안 깊은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곳에서 3년 내내 복음을 전파하는 일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함께 정기적으로 기도와 묵상도 했을 것이고, 성경 연구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복음을 더욱 힘 있게 전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서 그가 주로 한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할수록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의 반대도 극렬해졌을 것이고, 결국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아라비아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했다면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레다 왕의 방백이나 유대인들이 그를 체포하거나 죽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사역을 위한 준비 없이 즉시 다메섹에서, 그리고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복음 사역을 위해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전통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도상의 체험을 통해 구약의 가르침과 유대교의 전통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의미를 극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하나님께서 벗겨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그의 마음에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바울은 이미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체류한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응답한 점입니다.

그가 상황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방지역에 들어가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까지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종교적 관용을 미덕으로 예찬하고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시대에

모든 기독교 사역자들이 따라야 할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길성남 교수 >


 

바울이 '아라비아'(갈1:17)로 간 까닭은‥

 

 



“사도”(Apostle)라는 직분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의 명칭으로 된 직분이다. 이는 구약성경 출 6:11절에서 바로에게 보냄을 받은 모세나, 왕상 18:1절에서 아합왕에게 보냄을 받은 것으로 나오는 엘리야의 경우와 유사한 의미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마 28:16)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며 보내신 열한 제자들과 달리, 바울은 그 자신 외에 그의 사도권에 대한 객관적 보증이 될 만한 부르심의 증거가 없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가 사도로 행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의 사도권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가장 시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아는바와 같이 그는 정작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께 부름을 받은 뒤에 거의 곧장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사역을 시작한다(행 9:20). 그러니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했을 때(행 9:26)에,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않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실 열한 제자들과 당시의 그리스도 교회가 그를 사도로 인정하게 된 것은, 그에 대한 스펙(specification)이 아니라 그가 지닌 “복음”(The gospel) 때문이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갔을 때에, 비록 바나바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이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을 전해주었을지라도(행 9:27), 결정적이었던 것은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에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오직 복음의 확실함만이 보냄을 받은 그의 직분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갈 1:11-12절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복음에 관해 이르기를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의 사도직에 관한 배경적인 설명 하나를 드러내는데, 갈 1:15-17절에서 바울은 이르기를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고 말했다. 따라서 행 9:26절 말씀은, 바울이 열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도됨을 인정받으려고 갔던 것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이처럼 신약 교회의 대표자들이며 지도자들로서, 그들의 가르침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사도직과 관련한 그 어떤 문턱도 성경은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하고 확실한 기준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복음의 순수성과 확실함이다.


그러나 복음의 순수성과 확실함이란 결코 주관적인 순수성이나 확실함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확실하게 말하는바 “다른 복음”은 없는 것이다. 오직 확실하고 분명한 한 복음이 있을 뿐,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복음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8절에서 바울은 이르기를 “우리가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담대히 말한다.


결국,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바울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된 사도들의 인정이 아니라, 그에게 있는 그리스도 복음의 계시를 명료하고 확실하게 새기기 위해, 다만 아라비아로 가는 일이었다. 복음의 진리 외에 그에게 당장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소명)이란,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복음의 진리가 항상, 그리고 확실하게 있는 것 외에 분명한 소명은 없으며, 그것 외에 시급한 문제도 없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갈 2:4)로 인해 미혹되는 갈라디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5절)고 사도는 말한 것이다.


한마디로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복음의 진리 가운데 있고자 함 외에 다른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그의 부르심의 가장 근본적인 근거인 것이다.


지금 당신(혹은 우리-교회-)에게 복음의 진리가 확실한가? 확실하다면 얼마나 확실한가? “나의(우리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확실하게(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가 말이다. 사도 바울은 갈 3:1절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말한다. 그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눈 앞에 밝히 보여준(눈 앞에 보이는 듯 명백하게 나타내준) 것이다. 바로 그것이 사도로 부르심의 목적이요 본질이다.

 

* 관련 자료

 

아라비아(Arabia)

뜻 : 사막

(1) 세계에서 제일 큰 반도로서 사막이 대부분이다. 홍해 페르샤 인도양에 둘러 쌓여 있다. 그 지방 족속은 아말렉 흐림 이스마엘 에돔 미디안 모압 암몬등 제족속이다. 회교의 교주 모하멧은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후손이다 에돔족은 야곱의 형 에서의 족속(창25:30, 36:9). 인데 일찌기 에서가 이스마엘의 딸을 취하였으니 애돔족과 이스마엘족은 동족이 되었다. 에서가 이스마엘과 관계된 것은 솔로몬왕이 아라비아 여러 왕에게서 금을 받고(대하 9:14).
(2) 여호사밧왕이 아라비아인에게서 국세로 수양과 수염소 각각 7천7백씩을 받고(대하 17:11).
(3) 여호람왕 때에 아라비아인의 침략을 당하고(대하21:16-17).
(4) 웃시야왕이 아라비아를 정벌하였고(대하26:7).
(5) 오순절 성신 강림시에 아리비아인이 참관하였고(행2:11).
(6) 바울이 초신자 때에 아라비아에 가서 3년간 있었다(갈1:17-18).

* 이슬람의 교주 무함마드가 탄생한 메카가 아라비아에 있어 전세계 이슬람 신자들은 일생에 메카에 한번 가보는 것을
최대의 소망으로 삼고 있다. 현재 이 반도내에는 예멘, 아덴,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있다.

http://cafe.daum.net/largoviva/Wp3W/10

 

<글 출처: cafe.daum.net/correcttheology>


<참고자료>

아랍과 아라비아, 중동 그리고 이슬람

 

아라비아반도를 비롯한 아시아 남서부와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국가들을 아랍국가, 중동국가, 때로는 이슬람국가라고 부른다. 그래서 때로는 이 말들이 모두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용어들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랍(Arab)과 아라비아(Arabia)

 

원칙적으로 아라비아는 아라비아반도에 해당하는 지명(地名)이다. 아라비아는 아시아 서남부 페르시아 만, 인도양, 아덴 만, 홍해에 둘러싸여 있는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다. 아라비아반도는 대부분이 사막이므로 주민들은 오아시스 부근에서 농사를 짓는다. 7세기 초에 마호메트가 통일한 후 이슬람 제국으로 번영하다가 16세기에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18세기 말에 민족 운동을 통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예멘 등의 나라로 독립하였다.

아랍과 아라비아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중동(Middle East)

 

중동(中東, Middle East)은 지리적인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서쪽의 서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북동부의 이집트, 때로는 리비아까지를 포함하여 이르는 말이다.

 

네이버 지도에 나오는 중동

 

중동이라는 말은 1900년대 영국에서 처음 사용했다. 당시에 영국은 유럽 발칸반도와 유럽에 가까운 아나톨리아, 레반트 등의 지역을 근동(近東)이라 하였고, 중국, 우리나라, 일본 등 아시아의 동쪽 지역을 극동(極東)이라 불렀다. 그리고 아시아 남서부와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이 근동과 극동의 중간에 있다하여 중동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중동이라는 말이 유럽인들 입장에서 멀고 가깝다는 생각에서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그 지역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중동에는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예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 키프로스,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터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웨스트 뱅크) 등의 나라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중동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수단, 모로코, 서사하라, 튀니지, 알제리, 모리타니, 소말리아, 지부티, 에리트레아, 코모로, 이집트 등의 나라도 포함한다.

 

아랍(Arab)

 

아랍국가는 언어와 문화적인 개념으로 아랍어를 사용하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중동에 있어도 아랍국이 아니다. 아랍국가들은 주로 아랍연맹(Arab League)에 가입되어 있는데 아랍연맹에 가입한 나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오만, 쿠웨이트, 바레인, 가타르, 아랍에미레이트,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수단, 리비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모리타니, 소말리아, 지부티,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코모로 등 22개국이다.

 

이슬람(Islām)

이슬람국가는 종교적 개념으로 쓰이는 말로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거나 이슬람교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랍국가는 이슬람국가이지만 민족적으로 아랍인이 아니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이슬람국가가 아랍국가는 아니다. 특히 중동에 있는 터키와 이란은 아랍민족이 아닌 이슬람국가이다.

 

마호메트와 이슬람교

 

6세기 후반 아라비아 반도 상류지역에서는 이란지역의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 제국이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는 새로운 무역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메카와 메디나가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무렵 메카에서 마호메트가 태어났다. 그는 처음에는 대상이 되어 장사를 하다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메카 교외의 히라 산에 있는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 610년 9월 천사 가브리엘의 계시로 알라의 예언자가 되었다. 하지만 메카의 지배층 사람들은 마호메트의 등장으로 경제적 손실이 생기자 마호메트를 따르며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622년 초승달이 뜬 밤에 마호메트는 신자들을 이끌고 메디나로 옮겨갔다. 이 사건을 헤지라라고 부르며, 이슬람국가들의 국기에 초승달과 별이 많이 있는 것은 이 사건에서 연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