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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바울의 생애와 저작시기/ 동역자

by 은총가득 2022. 4. 6.

바울의 생애와 바울 서신들 저작 시기>

*이 내용은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단지 참고로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이 내용은 사도행전의 연대기와 가장 근접하게 작성했습니다.

<제1기 사역 : 회심과 예루살렘 방문>

32/33년 바울의 회심
33-35년 시내산 방문(예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곳으로 보임)
다메섹과 아라비아 사역
35/36년 회심 후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36-45년 길리기아, 수리아 사역
삼층천 경험(42년경)
45년 바나바의 초청으로 수리아 안디옥 사역
46년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기근을 위한 안디옥 교회 연보 전달)

<제2기 사역 : 제1차 전도여행과 예루살렘 공의회>

46년-48년 제1차 전도여행
① 갈라디아서(48/49년,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49년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
예루살렘 공의회

<제3기 사역 : 제2, 3차 전도여행과 예루살렘 성전 소요 사건>

50년 제2차 전도여행(50-52년)
51-52년 고린도 사역
② 데살로니가전서(51년 초, 고린도)
③ 데살로니가후서(51년, 고린도)
52년 여름 네 번째 예루살렘 방문
52년 제3차 전도여행(52-57년)
52-55년 에베소 사역
④ 고린도전서(55년 봄, 에베소)
55-57년 마게도냐, 일루리곤, 아가야 사역
⑤ 고린도후서(56년초, 마게도냐)
⑥ 로마서(57년 봄, 고린도)
57년 5월 다섯 번째 예루살렘 방문과 유대인 소요 사건

<제4기 사역 ; 가이사랴와 로마의 옥중 생활>

57-59년 가이사랴 옥중 생활
59년 9월 로마로 항해
60년 2월 로마에 도착
60-62년 로마 가택 연금
⑦ 골로새서
⑧ 빌레몬서
⑨ 에베소서
⑩ 빌립보서

<제5기 사역 : 로마 구금 이후 전도 활동과 순교>

62-64년 로마 옥에서 풀려난 후 계속적인 전도 활동
(서바나?, 에베소, 그레데, 마게도냐, 드로아, 밀레도,
고린도, 니고볼리, 로마 등에서 사역)
⑪ 디모데전서(62/63년, 마게도냐)
⑫ 디도서(63년, 마게도냐 혹은 니고볼리로 향하던 도중)
64/65년? 바울의 체포와 두 번째 투옥
⑬ 히브리서(64년 혹은 65년?, 로마?<히 13:23>)
⑭ 디모데후서(64년 혹은 67년?, 로마)

64(68?)년 바울의 순교

 

바울의 아라비아의 시간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고, 거기서 3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그는 자신이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고 분명히 진술합니다. 그러나 아라비아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거기서 조용히 칩거하면서 깊은 기도와 묵상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최근에 어느 주석학자는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모든 인간적인 접촉을 끊고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이것은 새롭게 개종한 유대 바리새인이며 기독교 박해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바울은 회심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계시된 복음의 진리에 비추어 기독교에 대해 자신이 이전에 견지했던 입장을 반성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 모든 기간 동안 바울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이 정통해 있던 구약과의 관련 속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생각했을 것이다(그랜트 오스본[편], 「에베소서」[성서유니온선교회, 2006], 73).

 

말하자면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보낸 3년은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위한 준비 기간이었던 셈입니다. 사역을 하기 전에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로 사역을 준비했다고 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사도 바울이 체류한 ‘아라비아’를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와 동일한 곳으로 생각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25절에서 ‘아라비아’라는 지명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 본문에서 바울은 아라비아시내 산이 있는 곳이라고 명시합니다. 회심한 뒤에 바울이 간 곳이 시내 산이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라면 그곳에서 그가 3년 동안 기도하고 묵상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광야나 사막에서는 기도와 묵상 이외에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의 다른 증거와 부합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9장 19-20절에서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라고 말합니다. 사울(바울)은 회심한 후에 다른 준비 없이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확신하는 일은 눈이 먼 상태로 보낸 3일로도 충분했을 것입니다(행 9:9).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과정에서, 또는 핍박하기 전에 복음의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을 정통 유대인이라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불온하고 심지어 참람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강력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했고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복음이 참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울의 인생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너무나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멸하는 자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다메섹 체험은 단순한 ‘회심’(conversion)이 아니라 ‘부르심’(calling)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는 데 있었습니다(갈 1:16). 따라서 바울이 다메섹에 머무는 며칠 동안 ‘즉시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그가 멀리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까지 가서 새삼스럽게 3년 동안 기도와 묵상을 하면서 사역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따라서 우리는 바울이 아라비아에 간 목적을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라비아에 갔다고 할 때 ‘아라비아’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광야나 사막 지대라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F. F. 브루스와 리처드 롱게네커를 포함한 많은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3년 동안 체류한 ‘아라비아’가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나 광야가 아니라 아라비아의 나바티아(Nabatea) 왕국을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이 왕국은 다메섹 동남부에서 시내 반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데가볼리 성들의 일부와 거라사 등이 이 왕국에 속해 있었고, 남부의 페트라(Petra)와 북부의 보스트라(Bostra)가 이 왕국의 주요 도시였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나바티아 왕국이 아라비아에 포함되어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로마 시대에 나바티아 왕국은 아라비아의 나바티아로 알려졌습니다. 회심 후 바울은 시내 반도에 있는 아라비아 사막이 아니라 다메섹의 동남부에 있는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가서 그곳에 형성된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3년 동안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고린도후서 11장 32-33절에 기록된 바울 자신의 증언에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이 옳게 지적하고 있는 대로, 사도행전 9장 23-25절에 기록된 사건과 동일합니다. 이 본문에서 누가는 이렇게 기술합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내리니라.” 두 사건은 모두 다메섹에서 일어났고, 두 사건에서 모두 사울(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탈출합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본문에서는 아레다 왕의 방백이 사울(바울)을 잡으려 한 반면,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사울(바울) 죽이기를 공모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아라비아와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이 사울(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아레다 왕의 방백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또는 바울이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에서 3년에 걸쳐 유대인들뿐 아니라 나바티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문제를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전하는 것에 분개한 유대인들과 협력하여 나바티아인들이 바울을 체포할 목적으로 다메섹 성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본문에서 ‘여러 날’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표현은 사실상 오랜 기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많은 날’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다메섹 성에서 탈출한 사건은 그가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그곳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와 나바티아 사람들의 반발에 부딪혀 다메섹으로 돌아온 직후에 일어났습니다. 다메섹까지 바울을 추격한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은 다메섹에 있는 유대인들과 공모하고 그 지역을 총괄하던 아레다 왕의 방백의 지휘 아래 바울을 체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도움을 받아 밤에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바울이 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본문에 나오는 ‘아레다’ 왕이라는 표현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레다 왕은 주전 9년부터 주후 40년까지 나바티아 왕국을 통치한 아레다 4세(Aretas IV)입니다(그는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의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헤롯은 아레다 왕의 딸을 버리고 자기 형제의 아내이자 조카딸인 헤로디아와 결혼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34-39/40년 사이에 아레다 왕이 다메섹을 통치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간에 바울이 아레다 왕의 방백의 손을 피해 다메섹 성을 탈출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34-62년 사이에 주조한 로마 동전이 다메섹 지역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다소 빈약한 증거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 기간에 다메섹이 로마의 통치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당시에 다메섹에 많은 나바티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아레다 왕의 영향이 다메섹까지 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레다 왕은 다메섹에 있는 나바티아인 공동체의 지도자를 방백으로 세웠을 것입니다. 바로 이 방백이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과 함께 바울을 체포하려 한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 증거(갈 1:17; 고후 11:32-33; 행 9:19-20, 23-25)를 이렇게 이해하면, 바울은 회심 후에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 갔으며, 그곳에서 3년 동안 깊은 기도와 묵상과 성경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곳에서 3년 내내 복음을 전파하는 일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 전파와 함께 정기적으로 기도와 묵상도 했을 것이고, 성경 연구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고, 그 결과 복음을 더욱 힘 있게 전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라비아의 나바티아 왕국에서 그가 주로 한 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할수록 유대인들과 나바티아인들의 반대도 극렬해졌을 것이고, 결국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아라비아에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했다면 반대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레다 왕의 방백이나 유대인들이 그를 체포하거나 죽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사역을 위한 준비 없이 즉시 다메섹에서, 그리고 아라비아(나바티아 왕국)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에도 복음 사역을 위해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고 주장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그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전통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메섹 도상의 체험을 통해 구약의 가르침과 유대교의 전통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의미를 극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하나님께서 벗겨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빛을 그의 마음에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바울은 이미 준비된 그릇이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3년 동안 체류한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응답한 점입니다. 그가 상황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방지역에 들어가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지경까지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종교적 관용을 미덕으로 예찬하고 기독교 복음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시대에 모든 기독교 사역자들이 따라야 할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동역자와대적자(딤후4:9-22)

*동역자(.쉬네르고스)란말은"협력자"라는뜻이다.

바울은주님의일을하는자기를도와협력하는사람을나의동역자(同役者)라고불렀다(16:3).

*동역자는고난의짐도같이지고수고도같이하고눈물도같이흘리고기쁨도상급도같이받는자이다.

*본문(딤후4:9-22)은바울사도가순교직전에기록되었다.이때바울사도곁에는"누가"라고하는사람한사람만있었다.

11/"누가만나와함께있느니라네가올때에마가를데리고오라저가나의일에유익하니라"

처음에열심히동행하던사람들이이런저런이유로다떠나고없었다.

*사도바울로서는이번겨울이더없이쓸쓸하였다.동행자가있는것과없는것과는많은차이가있다.동행자가있으면덜외롭다.옛날애굽의왕들이커다란"피라밋"을만들어놓고죽어거기에묻혔다.그리고왕들이거기피라밋에묻힐때에신하와가축을함께순장시켜왕의죽음에동행자를삼은것도그런이유에서였다.혼자라는고통외로음이라는고통은참으로견디기어렵다.

10/"데마는이세상을사랑하여나를버리고데살로니가로갔고그레스게는갈라디아로,디도는달마디아로갔고"

바울사도는"데마"가떠난것을몹시마음아파하며괴로워하고있었다.데마의이름은성경에3번나온다.

<1:24>에서는사도바울이그를동역자라고부르고있다.

<4:14>에서는아무설명도없이그냥데마라고만기록하고있다.

그리고오늘본문여기<딤후4:10>에서는"데마는이세상을사랑하여나를버리고데살로니가로갔다"고하였다.

이상에서본대로한때그는바울의동역자였으나다시세상으로가버리고말았다.데마는동역자였다가배신자가된사람이다.

10<하반절>/"그레스게는갈라디아로,디도는달마디아고갔고"그레스게""디도"는하나님의일을위해다른곳으로보냈다"고하였다.그레스게갈라디아로디도달마디아로보냈다고하였다.

20/"브리스가와아굴라와및오네시보로의집에문안하라"

"에라스도"는고린도에머물렀고"드로비모"는병듦으로밀로도에있게하였다.

@디모데는지금에베소교회에서목회하고있었다.브리스길라와아룰라부부도그곳에베소에있었다.

오직한사람"누가"만바울곁에남아있었다.

11<상반절>/"누가만나와함께있느니라"

누가는누가복음과사도행전을기록한성경기자이면서"의사"이다.

디모데와누가는바울사도의세계전도여행에줄곧동행한사람들이다.그중디모데는"교회"를지켜야하기때문에바울을대신해서그동안세운교회들을돌아보며목회하였다.그러나"누가"는달랐다-그는"의사"였기때문에늙고병든바울곁에있어야만했다.누가는바울을따라로마에가서감옥곁에있으면서바울을도왔다.따라서"디모데""누가"는바울의신실한동역자였다.<19>에나오는브리스길라와아룰라부부도바울의신실한동역자이다.

이와같이바울의신실한동역자4사람을꼽으라면

디모데(딤후1:2.4:9)

"사랑하는아들디모데에게편지하노니하나님아버지와그리스도예수우리주께로부터은혜와긍휼과평강이네게있을지어다"(딤후1:2)"너는어서속히내게로오라"(딤후4:9)

누가(딤후4:11)"누가만나와함께있느니라네가올때에마가를데리고오라저가나의일에유익하니라"

브리스길라와아굴라(딤후4:1916:3-5)

"브리스가와아굴라와및노네시보로의집에문안하라(딤후4:19)

너희가그리스도예수안에서나의동역자들인브리스가와아굴라에게문안하라저희는내목숨을위하여자기의목이라도내어놓았나니나뿐아니라이방인의모든교회도저희에게감사하느니라또저의교회에게도문안하라나의사랑하는에배네도에게문안하라저는아시아에서그리스도께처음익은열매니라"(16:3-5)

한사람더들라고하면"에바브로디도"를꼽을수있다(2:25-30)*이외에도바나바,빌레몬마가등수없이많다.

본문에바울의대적자가한사람지목되어있다

14절에나오는구리장색"알렉산더"이다

<14>"알렉산더가내게해를많이입혔다"고하였고

<15>"저가우리말을심히대적하였다"고하였다.그러면서"너희도저를주의하라"고하였다(15)

바울사도가이"알렉산더"때문에많은고통을겪었고또알렉산더가교회에해를많이끼쳤음을알수있다.

그렇지만"너희도저를주의하라"고만부탁하고있다.원수를갚으라고하지않았다.

"주께서그행한대로갚으시리라"고말하면서(14)원수갚는일을하나님께맡기고있다."알렉산더"

바울에게하나님의교회에원수와같은사람이었지만-주께서저를심판하실것이기때문에그의문제를주님께맡겼다.

고담이나역사를보면옛날우리조상들은자식들에게자기원수갚아달라고유언을하고죽었다.그래서그자식들이부모원수갚느라고일생을허비하는것을보게된다.그러나사도바울은그렇게하지않았다.원수갚는일을하나님께맡겼다.

한편,바울사도는데마가떠나고(10)처음에매우열심히있었던사람들이떠나고(16)한것에대한책임이그들에게만있는것이아니라그책임이자기에게도있다고보고회개하였다.<16절하반절>"저희에게허물을돌리지않기를원하노라"

이처럼우리가비록예수님처럼자기를십자가에못박는원수를위해서기도는못한다하더라도"허물"만이라도내가떠맡아야되지않겠는가?교회에대한훼방자는곧하나님에대한훼방자이다.성경은이런사람의"정죄"까지도하나님께맡기라고말씀하고있다.<12:19>"내사랑하는자들아너희가친히원수를갚지말고진노하심에맡기라"고하였다.

성경에나오는대표적인대적자넷

"알렉산더"신약성경(딤후4:14)

바울사도에게해를많이입혔다.교회를훼방하였다.

"아론.미리암"구약성경(12:116)

모세가구스여자취한것비방하였다.

하나님이너하고만말씀하시냐?고하였다.

아론:회개하고다시쓰임받았다.

"고라일당"구약성경(16:1)

레위지파사람(16:21)

고라가다단과아비람과온과함께당을짓고250인을규합하여일어나서모세를거스렸다.

고라일당의주장:"네가분수에지나도다"(16:3)였다.

*하나님의책망의말씀:"그일이작은일인줄아느냐"

*대적의결과:땅이갈라지면서그들을삼켜버렸다(16:31)

"요압"구약성경(삼하3:2720:7-13)

다윗의군장군권을쥐고-다윗의뜻과상관없이아브넬과아마사를죽였다.다윗을은근히위협했다(왕상2:5)

하나님의뜻은솔로몬에가있는데(다윗도마찬가지)요압은아도니아를왕으로세우려하였다.그랬다가결국죽임을당했다(왕상2:6)(이외에도성전건축을방해한산발랏과도비야그리고변절한제사장엘아아심등많이있다)

[정리]바울의동역자

디모데

:무슨일이든믿고맡길수있는신실한사람이었다.무슨말이든지할수있었다.이런동역자를가진사람은행복한사람이다.

누가

:바울사도를돕는것이하나님의일하는것이라고믿고의사로서늘바울곁에있으면서끝까지그를도왔다.

누가복음과사도행전을기록하였다.

브리스길라와아굴라

<16:1-5>"그리스도예수안에서나의동역자들인브리스길라와아굴라에게문안하라저희는내목숨을위하여자기의목이라도내어놓았나니나뿐아니라이방인의모든교회도저희에게감사하느니라

또저희교회에도문안하라"

여기<4>"자기의목이라도내어놓았나니"라고하는말의문자적의미는"사형집행자의도끼밑에대신자기목을내어놓다"이다.따라서브리스길라와아굴라는바울이위험한일을당했을때는자신들이대신죽을각오까지하엿다.그들은목숨을건동역자들이었다.생명은똑같다.누구의생명은더귀하고누구의생명은덜귀한것이아니다.그럼에도불구하고브리스길라와아굴라가이렇게한것은하나님께서바울을통해수많은영혼을구원하고계셨기때문이었다.

브리스길라와아굴라는행복한부부동역자였다.

그들은언제어디서나하나였다.로마에서도.고린도에서도.에베소에서도.하나였고집에서도하나였고교회에서도하나였다.그리고집에서도하나였고밖에서도(일터)하나였다.그들은마음이하나였고신앙이하나였고부부로서한몸을이루로살았다.성경에보면항상이두사람의이름이나란히나오는것을볼수있다.

에바브로디도

데마는본래바울의동역자였다(1:24).그러나본문을통해볼때데마는바울이고난가운데처했을때에그를등진사람이다이세상을사랑했다는것은전도자로서의사명을감당함으로써받게되는고난들을이기지못하고개인의편안함을좇아전도자의길을포기한것이라고볼수있다.

(2:25-30)그러나에바브로디도를너희에게보내는것이필요한줄로생각하노니그는나의형제요함께수고하고함께군사된자요너희사자로나의쓸것을돕는자라그가너희무리를간절히사모하고자기병든것을너희가들은줄을알고심히근심한지라저가병들어죽게되었으나하나님이저를긍휼히여기셨고저뿐아니라또나를긍휼히여기사내근심위에근심을면하게하셨느니라그러므로내가더욱급히저를보낸것은너희로저를다시보고기뻐하게하며내근심도덜려함이니이러므로너희가주안에서모든기쁨으로저를영접하고또이와같은자들을존귀히여기라저가그리스도의일을위하여죽기에이르러도자기목숨을돌아보지아니한것은나를섬기는너희의일에부족함을채우려함이니라

빌립보교회성도들이에바브로디도편에바울의쓸것을공급하였다그런도중에큰병을얻게되었다.이러다가죽는것아닌가싶을정도로병으로큰고생을하게되었다(27)그렇지만그는자기의병든것을빌립보교회성도들이알고걱정할가봐그점을더염려하였다(26)

<30>"제가그리스도의일을위하여죽기에이르러도자기목숨을돌아보지아니한것은나를섬기는너희의일에부족함을채우려함이니라"고하였다.빌립보교회성도들은바울사도를섬김으로그리스도를섬겼다.에바브로디도역시바울을섬겼다.주의종섬기는것도직분자들이할일이다.

교인들이나를중직자로뽑아줬으니이런때나라도나서서목사님에게쓴소리좀하고바른말좀해야되지않겠는가?라고하는사명감(?)을가질려고하지말라.우리옛말에시집가서3년동안귀머거리노릇하고3년은벙어리노릇하고3년은또어떻게하고하라는말이있다.시집가는사람이시아버지한테대들라고가는것아니다.시집가는사람이집안어른견제하러가는것아니다.

요즘목사견제하는것을-무슨중요한사명처럼생각하는중직자들이더러있다.잘못되어도한참잘못되어있다.

목사에게잘못이있다면그목사의잘못에대해서는그를세우신하나님에게맡기면된다.

데마주의일을버리고세상의안일을택한자

1.인적사항

데마는통솔적인자라는뜻.

데살로니가출신으로추측됨(딤후4:10).

바울의동역자였으나결국그를버린자(4:14;딤후4:10;1:24).

2.시대적배경

A.D.30-70년경예수그리스도의승천과오순절성령강림후예루살렘에서태동한초대교회가로마제국전역으로확장되던초대교회의확장기에주로활동,데마는이시기에소아시아와마게도냐지역을중심으로전도활동을하고있던바울로부터복음을듣고회심한인물중의하나였다(데살로니가에서였을것으로추정).그는회심후곧바로바울의사역에동참하는열정과헌신을보였다.

3차에걸친전도여행후(A.D.57년경)바울이예루살렘에서체포되고또벨릭스와베스도,그리고아그립바앞에서2년간의재판을마치고가이사에게심문을받기위해로마로호송되어투옥된바울의1차로마투옥(A.D.61-63년경)때에데마는바울과함께있었던것으로보인다(4:14;1:24).그러나A.D.66-67년경인바울의2차로마투옥시기에데마는바울을버리고데살로니가로돌아가버리고만다.

3. 주요 생애

바울과의 결별 이전
출생
바울의 복음을 듣고 회심함
바울의 동역자로 복음 사역에 헌신함 1:24
바울의 1차 로마 투옥 때 그와 함께 있음 A.D.61-63년경 4:14
바울과의 결별 이후
바울의 2차 로마 투옥 때 바울과 결별함 A.D.66-67년경 딤후 4:10
데살로니가로 귀환함 딤후 4:10
신앙을 버린 것으로 추정됨
죽음

4.성품

바울로부터복음을들었을때는순간적인열정으로그의사역에동참하였다가나중에고난을당하게되자이를견디지못해바울과결별한것으로보아즉흥적이고감정적인다혈질의소유자.

고난과어려움을당할때끝까지견디지못하고뒤로물러나버린점에서인내심이없고복음에대한소망이견고치못한자.

바울이형통할때는그와함께하다가그를버리고세상의안일을찾아떠난것으로보아동료애가없고이기적인자.

5.구속사적지위

주를위한고난보다세상을더사랑함으로써순교의면류관을거부한자.

하나님과세상을겸하여섬길수없음을단적으로증거한자(요일2:15-17).

6.주요공적

초기에바울의사역에동참하여복음을전파함.

7.주요실수

세상을사랑하여옥중에서고생하는바울을버리고데살로니가로가버림.

8.평가및교훈

데마는그리스도인이될때축복과영광과함께희생과고난도받게된다는사실을알지못하였기에일시적인열정으로바울을도와복음사업에주력하다가불가피한희생과고독,그리고투옥등의고난이일어났을때그고난을회피하고자결국바울을고난속에버려두고자신은세상의안일을찾아떠나는어리석음을범하고말았다.이는우리성도들이주와함께영광을누리기위해서는고난도함께받아야한다는사실(8:17)을깊이명심하고평소에도고난에대비하여신앙무장을견고히하지않으면안됨을교훈한다하겠다.

바울은데마가이세상을사랑하여자기를버렸다’(딤후4:10)고말하였다.이에서우리는아무든지나를따라오려거든자기를부인하고날마다제십자가를지고나를좇을것이니라”(9:23)고하셨던주님의말씀을다시한번되새겨보게된다.그리고여기서우리는신앙인들은결코하나님과세상을겸하여섬길수없다는분명한진리를재차깨닫게된다.

9.핵심성구

데마는이세상을사랑하여나를버리고데살로니가로갔고”(딤후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