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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바울의 복음과 상황화

by 은총가득 2022. 4. 6.

바울의 복음과 상황화

 

이원옥 교수 한국성서대학교

논 평 김학유 교수(합동 신학대학원 대학교)

 

 

들어가는 말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22-24)고 말함으로 복음에 대한 분명한 선포와 유대인이나 헬라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상황화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에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조상들의 엄한 교훈을 받아(22:3) 유대교와 성경에 정통한 자일 뿐 아니라 다소에서 태어나 헬라철학에도 능했고,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로부터 보호 받으며 선교할 수 있는 상황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셨다.

 

Harry R. Bore의 지적처럼 회심 이전의 바울은 유대교에 열심 있는 자로 헬라 사상이 유대교에 들어와서 성경을 왜곡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알았기 때문에 헬라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었던 헬라파 유대인을 박해했다.1) 헬라파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전통을 따르고 있던 히브리파그리스도인들보다 성전의 제의와 율법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핍박을 직접으로 더 많이 받았지만2) 히브리파그리스도인들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의 핍박을 피해가지 못했다. 바울은 율법에 열심 있는 자였기 때문에3) 이와 같은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과 인근 지역으로 흩어진 자들까지도 찾아가 핍박하기 위해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향했다.

 

이렇게 회심 이전의 바울은 율법에 집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헬라파 그리스도인을 더 핍박했지만 그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된 후부터는 율법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증거 한다고 믿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바울을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이 되게 하였고, 헬라 문화로 준비하게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시민권도 가질 수 있도록 하 어떤 상황에서도 선교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셨다. 이렇게 준비된 바울이 자신은 사도라 불릴 자격도 없고(고전 15:8ff; 9:1), 죄인 중에 괴수로 만삭되지 못한 자인데,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주셨다고 하면서 자랑할 것이 십자가 밖에 없다고 하였다.

 

1. 바울의 복음

 

바울은 스스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3:6)고 할 정도로 철저하게 율법 의존적인 사람이었지만 이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면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율법의 의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8:8),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예수를 보내어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는데, 이를 뜻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12:31; 3:29).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하여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고 말함으로 구약성경에서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즉 바울의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만이 유일한 그리스도라고 믿으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8:15; 4:6)는 것이다.

 

바울의 복음은 이렇게 천국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직 찾지 못한 다른 형제들을 찾기 원하신다는 뜻을 이해하고 곧 그들을 찾기 위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이다. 이것이 참 유대인이 되는 길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4)

 

1) 바울 복음의 정의

 

누가는 바울의 설교를 사도행전에 16번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여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셨고, 약속한데로 성령을 보내어 증거 하게 했다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5)

 

누가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도 같은 내용을 전함으로 누가의 증언을 확증시켜 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에 대하여 첫째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둘째는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셋째는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사도들과 많은 성도들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James D. G. Dunn은 개인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고 하였다.6)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2:16)고 하였다. 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의 복음은 이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차이가 없고(3:28, 30), 율법으로 말미암는(10:5; 3:21; 3:9) 또는 율법을 통하여(ἐν νομ3:6) 또는 율법을 수단으로 하여(δινομου 2:21) 의를 얻는다는 유대적인 신앙과 분명하게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7)

 

2) Diaspora와 공유하는 바울의 복음

 

바울은 오직 하나의 구원 메시지만 전하고 있다. 베드로와 함께 한 사도들이 할례자들에게 전한 복음이나 바울이 무할례자들에게 전한 복음(2:7)이 전혀 다르지 않고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청중에 따라 상황화 하는 것은 달라도 복음의 내용은 하나라는 것이다.

 

바울은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전 15:11)고 말함으로 같은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고 있다. 더욱 이들이 전한 복음 요소는

 

첫째,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예언이 성취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집에 태어났다.

셋째, 그가 자기 백성을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성경대로 죽으셨다.

넷째, 그가 장사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다섯째,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산자와 죽은 자의 주로서 하나님 우편으로 높이 올리심을 받았다.

여섯째, 그가 세상을 심판하고 그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러 다시 오실 것이다.8)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왔던 Diaspora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과 성전청결과 가야바, 안나스, 빌라도 그리고 헤롯에게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여 계시다가 승천하신 것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까지도 목격하였다.

 

이 모든 사실을 목격한 Diaspora에게 베드로는 이 큰일에 대하여 말해주겠다고 하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전한 것은 Diaspora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쉽게 믿을 수 있었다(2:14-41).

 

바울도 사도행전 2장의 Diaspora처럼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한 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하여 성령의 인도로 쉽게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하였다.

 

갈라디아 교회에게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고 하였다.9)

 

바울은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현(顯現)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대하여 알고 믿게 되면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기 때문에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이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10)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은 믿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바울과 Diaspora가 전하는 복음은 직접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것에 대하여 직접 목격한 것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증거가 필요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Diaspora가 전하고 있는 복음에 대하여 확증시켜 주기 위해 그들이 모여 있는 회당을 방문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회당 중심적인 선교 사역을 했다.

 

3) 하나님의 선교 원리로써의 바울의 복음

 

오순절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 Diaspora는 유대인의 핍박으로 흩어졌지만 이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각국으로 흩어지게 한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렇게 각국에 흩어졌던 Diaspora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한 것과 오순절 성령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된 자들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직접 목격한 Diaspora는 각국으로 흩어져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직접 선교하시는 것을 보여주었다.11) 그러므로 바울의 다메섹 경험은 바울의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되면서 증인의 삶을 살게 만드셨다(고전 15:8; 9:1).12)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첫째, 기독교는 말씀에 의한 계시가 없는 신의 현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현현을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의 말씀과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을 확증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1:16)라고 말하는 것은 바울 자신이 이방 선교를 위해 불러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말하기 위함이다.13)

바울은 로마서 10장에서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4-15)

 

라고 함으로 복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가서 전하는 것이라14)고 역설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의 부름이 선교적인 것과 같이 그의 복음도 선교적이다. 이러한 바울의 복음에 대하여 누가는 한 걸음 더 나가서 바울의 회심 사건을 거론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을 지적함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선교하고 계심을 말하고 있다.

 

2. 회당을 통한 바울 선교의 상황화

 

Diaspora(διασπορά=흩어진 유대인)란 팔레스틴 국경 밖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Diaspora를 히브리어로는 골라”(Golah)라고 하는데, 이는 첫째,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보다 다른 나라를 택하여 스스로 이동한 것을 강조하는 말이고, 둘째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그 결과로 강제 이주되거나 추방된 것을 의미한다.

 

어느 때는 투옥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는 자의든 강제든 팔레스틴 국경 밖으로 흩어져 사는 모든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쓰여 졌다. 오늘날에는 특히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이스라엘 국경 밖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유대인 정착지를 가리켜 사용하고 있다.15)

 

1) Diaspora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요인

 

시빌 신탁(The Sibylline Oracles, B.C. 250)은 유대인들의 흩어짐에 대하여 모든 땅과 모든 바다가 너희들로 가득 찼다고 하면서 신약시대에는 팔레스틴에서 사는 자들보다 밖에서 사는 자들이 더 많았다고 하였다. 이렇게 Diaspora가 세계 각처에 들어가지 않은 곳이나 소유하지 못한 지역은 한군데도 없을 정도로 흩어졌다.16)

 

유대인들이 Diaspora가 된 사회적인 원인은 첫째, 그들이 유목민으로 떠돌아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왕정시대 이후부터 상업적 목적으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전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17). 이렇게 사회적인 요인으로 Diaspora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흩어진 유대인들을 통하여 잃어버린 탕자를 위해 자신을 계시하는데 계획을 가지고 흩어지게 하셨다.18)

 

유대인들이 흩어진 이유는 바벨탑 사건으로 분산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계시를 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을 먼저 선택하여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이다. 이 일을 위해 먼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복의 근원으로 삼아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하여 남방으로 이동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보여 주는 원심적 선교와 함께 아브라함의 무리에 들어오게 하는 구심적 선교를 병행하셨다.19) 애굽에 내려가서는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는 실수를 했지만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에게 자기 계시를 하셨다.20)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계시할 때 주로 전쟁이나 기사를 통하여 가시적(可視的)인 방법으로 계시했다.21)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리운 삼백 십 팔인을 거느리고 롯을 포로로 잡아간 그돌라오멜과 동맹한 자들과 싸워 대승을 거둔 후 노략물 중에 십일조는 멜기세댁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소돔성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현현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했다.22)

 

요셉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로 인정되어 애굽의 총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직접 선교를 감당 했다. 모세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애굽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줌으로 이방인들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선교를 감당했다.23)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부터 세상에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해 Diaspora로 살면서 그 사명을 감당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계획과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아 만민으로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게 만든 것이 하나님께서 만든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상황화이다.24)

 

이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Diaspora가 되게 하여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형제가 되는 상황화를 통하여 선교 역사를 이루어 갔다. 스데반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하여 사도행전 7장을 통하여 소개하고 있다. 바울도 Diaspora에게 먼저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상황화에 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2) Diaspora가 발생한 정치적 요인

 

Diaspora가 발생한 정치적 원인은 BC 722년에 앗시리아 사람들이 북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함으로 유대인들을 사마리아에서 동방으로 잡아갔고, 유다도 바벨론에게 BC 587년에 망함으로 예루살렘에서 약간의 유대인들을 잡아가면서 Diaspora가 실제적으로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포로생활 속에서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절기 그리고 율법을 지키면서 회당 중심으로 Diaspora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BC 539년 바사와 고레스가 바벨론을 무너트리고 새 제국을 건설하면서 유대인들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1:1).

 

그 후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사와 다리오 3세를 격파함으로 팔레스틴은 헬라문명에 휩싸이게 됐다. 이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헬라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됐다.25)

 

알렉산더 대왕이 BC 323년에 갑자기 죽은 후 팔레스틴은 이집트의 톨레메우스가 장악했지만 여러 차례 쟁탈전이 있은 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에게로 넘어갔다. BC 175년에 시리아의 통치권을 계승한 안티오쿠스 4세는 인간의 영광을 드높이려는 열렬한 헬라주의자였는데, 이에 대한 저항세력이 유대교였기 때문에 박해하게 되었다.26)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에 따라 유대공동체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 그리고 열심당이 나오게 되었다. 여러 차례 시리아의 반격이 있었지만 BC 143년에 유다의 시몬이 시리아군을 축출함으로써 완전한 독립을 얻게 됐다. BC 134년에 시몬이 살해되고 권력 투쟁이 계속되자 로마의 품페이우스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팔레스틴을 로마의 지배 아래 두게 됐다.

 

이런 상황 아래서 유대인 중에 비교적 현실 타협적인 사두개인들은 친로마적인 성향을 가졌고, 바리새인들은 유대교 전통에 보수적인 자세로 백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열심당은 로마에 대하여 정치적 투쟁을 하며 무력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엣세네파는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으로부터 은둔과 도피를 통해 고립된 생활을 했다. 이에 대한 로마의 정책은 백성들의 독특한 생활과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다.27) 그러나 정치적 지배권과 사형선고만은 로마의 총독이나 헤롯 왕조가 가지고 있었다(18:31). 율법의 실행과 재판을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산헤드린에게 주었는데, 이 사법권은 유대지역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Diaspora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9:2)28)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구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전략은 포로가 되어 구하는 포로시대의 선교가 가장 효과적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종이 되어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과 같이 포로가 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선교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이미 파송한 것이다. 이사야와 미가는 동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3년이나 옷을 벗고 서서 구스와 애굽 사람들을 위해 선교 하였다.29) 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Diaspora가 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인 그들의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 그들의 종이 되는 상황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이루게 되었다.

 

3) 바울 선교의 배경이 된 Diaspora의 생활

 

실제적인 Diaspora의 역사는 주전 6세기 초에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정착촌을 구성했는데,30) 리디아(Lydia) 왕국 수도 사르디스(Sardis)를 비롯하여 소아시아에도 정착촌이 생겼다(오바댜의 목자 20). 그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던 사람 중에 상당수가 유대로 돌아가라는 칙령이 있었어도 돌아가지 않고 고향으로 삼고 정착하여 살았다.

 

바사제국의 통치아래에서는 바사 제국의 전역에 걸쳐 살면서 카스피해의 해변 지역에도 정착하여 살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으로 그들은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주전 331년 알렉산드리아가 건설되면서 그곳에 유대인들이 살게 됐다. 주후 1세시 경에는 알렉산드리아의 네 개구역 가운데 두 구역은 다수의 유대인들이 살았다.

 

주전 300년 경 프톨레미우스 1세는 속주인 키레나이카(Cyrenaica)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일단 유대인을 먼저 정착시켰다. 1세기 후 셀류키드의 안티오쿠스 3세도 이와 비슷한 목적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브리기아(Phrygia)와 리비아(Lydia)로 이주시켰으며, 프톨레미 왕조로부터 유대와 코일레시리아(Coelesyria)를 강제로 뺏은 후 수도인 안디옥과 다른 성읍들에 유대인들의 이주를 장려했다.31)

 

주전 63년 유대가 제국에 병합되기 이전에도 로마에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있었고 해를 거듭할수록 엄청나게 불어났다. 주후 1세기에는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수와 맞먹는 수(사만에서 육만 정도)가 로마에 거주했다.

 

사도시대에는 Diaspora들이 살았던 지역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가에 대해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주후 30년 오순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모여든 경건한 유대인을 열거하면서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포타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여러 비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안과 아라비아인들이(2:5-11)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Diaspora는 로마제국 초창기에 팔레스틴에는 250만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애굽과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에는 100만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그 외에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에 10만 정도가 살았다32). 점점 더 Diaspora가 많아지면서 후에는 팔레스틴에 사는 유대인들보다 더 많아졌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선교의 외적 요인으로 첫째는 로마의 평화이고, 둘째는 로마가 닦아 놓은 큰 도로이고, 셋째는 언어였다고 지적하고 있다.33)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오히려 복음이 땅 끝까지 이르러 증거 될 수 있는 디딤돌이 됐다.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고, 회당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유일신을 섬기며, 거룩한 생활을 하며, 안식일을 지키며, 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것은 이방인들로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는 선교의 장이 됐다34).

 

4) Diaspora의 회당 생활

 

Diaspora의 종교적인 생활에 있어서 회당의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회당 중심적 생활을 했던 Diaspora는 사회와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 요소에서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보여 주었다35). 당시 이교세계에서 가장 큰 죄악은 부도덕과 우상숭배였다. 이렇게 죄의 웅덩이에 빠져 있었던 자들에게는 이혼이 만연되었고, 유아 살해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됐다36). 바울은 이들이 범하고 있었던 죄에 대하여 로마서 1장에서 자세히 지적하고 있다37).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테니(Merrill C. Tenney)

 

이교주의는 그 자체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자체의 무능력이 점차로 인식됨에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염세주의와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 정치적인 부패, 쾌락추구와 방탕함, 사기행위, 종교적인 기만과 미신 등이 로마에서의 삶을 우울하고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38).

 

고 지적했다. 그러나 Diaspora의 건전한 가정생활은 이런 부패상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며 성스런 가정생활을 했다. 가장은 가족들에게 율법을 가르침으로 남자 아이들은 13세에 율법의 아들이 되게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생업에 필요한 기술도 가르쳤지만 부도덕에 대하여는 이맛살을 찌푸렸고, 간음죄는 죽음으로 다스렸다.

 

Diaspora 뿐만 아니라 이교도들도 도덕적 부패를 혐오했기 때문에 유대교의 수준 높은 도덕 생활은 이방인들로 유대교에 돌아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39).

 

이교 문화권 속에서 회당예배는 이스라엘 민족의 높은 유일신 신앙과 수준 높은 도덕 생활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공개하는 계기가 되어 그들이 하나님의 빛 아래로 들어와 신앙으로 인도하는 교량(Bridge) 역할을 하게 되었다40).

 

원래 이방인들은 성전에 출입할 수 없었지만(21:29) 회당에는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회당에 들어와 유대교 신앙에 관한 교훈을 들을 수 있었고 개종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대교는 개종 운동이었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교 활동은 아니었다. 유대교에는 선전은 있었어도 선교는 없었다. 예수께서도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진리를 선포하였을 뿐 아니라 제자들과 바울도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 전호진은 하나님께서 Diaspora와 회당을 세운 것은 초대 교회의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준비였다고 지적했다41).

 

허버트 케인(J. Herbert Kane)은 포로시대의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에 대하여 구심력 선교에서 원심력 선교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열방이 하나님의 법을 배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쇄도하던 것이 Diaspora가 문자 그대로 땅 끝까지 이르러 전달하기 위하여 나가게 된 것이라고 했다.

 

Diaspora의 유대인 종교 생활은 첫째는 회당제도였고, 둘째는 안식일 성수였고, 셋째는 성경의 헬라어 번역이었고, 넷째는 유일교의 개념이었고, 다섯째는 건전한 도덕 생활이고, 여섯째는 대망의 구원자에 대한 약속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활은 이방 세계에 살고 있는 자들이 귀 기울여 듣게 만들었고, 기독교 선교로 가는 교량이 됐다42).

 

이한수는 사도행전의 보도에 따르면 바울은 아마도 주후 55년경에 있었던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에서 여전히 성전 예배에 참석했다.(21:17) 뿐만 아니라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그리이스의 유대인 회당들을 발판으로 삼아 그의 선교 사역을 펼쳤다(9:19-22;14:1; 17:1-4 )고 하였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의 독립된 교회를 설립하기 전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인들에서 계속 예배를 드렸다43).

 

이순한은 오순절 때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로마에 돌아간 그리스도인들이 당시에 로마에 있었을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 때문에 로마서를 쓴 것이라44)고 하였다.

 

나가는 말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나사렛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고, 그는 아들 자격으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해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포함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직도 찾지 못한 많은 잃어버린 탕자를 찾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잃어버린 형제를 찾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모습으로,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의 모습으로, 로마인에게는 로마 사람이 되어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상황화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전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된다는 것을 바울이 삶을 통하여 보여 주는 상황화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바울의 상황화도 바울이 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바울을 Diaspora가 되게 하여 다소에서 태어나 헬라 문화를 가질 수 있게 하셨고, 유대인으로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 되어 가말리엘 문하생이 됨으로 유대교와 성경에 정통하게 함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율법 안에서 자유롭게 전할 수 있도록 하셨고, 로마 시민권자로 로마의 보호를 받으면서 선교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 놓으신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복음을 들고 상황화 하는데 바울은 능한 자가 되었다.

 

각 주

 

1) Harry R. Bore, A Short History of Early Church, (Grand Rapids, Michigan: Will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9), 19.

 

2) 김세윤, 예수와 바울(서울: 두란노 서원, 2008), 83.

3) James D. G. Dunn 바울신학박문제 역 (경기: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3), 480-81.

 

4) 이원옥 마태의 아버지 복음 -천국헌장과 표적을 중심으로일립논총(서울: 한국성서대학교 교수논문집, 2001), 97-100.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외적 증거로 족보와 낳아준 부모와 동방박사, 세례 요한, 하나님의 음성, 사단의 시험 등을 통하여 증거하고, 내적 증거로 천국헌장과 표적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증거하셨다. 이렇게 증거 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셔서 하나님께로 인도한다는 것이 바울의 복음이다(고전 15:1-8).

 

5) 9:19-22(다메섹); 13:16-41(비시디아 안디옥); 14:1(이고니온); 7-18(루스드라); 16:31-32(빌립보 감옥); 17:2-9(데살로니가); 11-15(베뢰아); 22-31(아덴의 아레오바고); 19:10-19(에베소); 20:17-35(에베소 장로); 21:37-22:29(영문에서); 23:1-9(공회 앞에서); 24:1-27(벨릭스 앞에서); 25:1-12(베스도 앞에서); 26:2-32 (아그립바 앞에서); 27:21-25(선상에서).

 

6) James D. G. Dunn, 514.

7) Herman Ridderbos, Paul; An Outline of His Theology,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1975) 170.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하였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고 하였고(1:12),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20:31).

 

8)아가페 신학사전(서울: 아가페 출판사, 2001), 398-400.

9) David Wenhan, Paul; Follower of Jesus or Founder of Christianity,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 1995), 50-51.

 

10) Herman Ridderbos 바울과 예수이한수 역 (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3), 73.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에 대하여 나에게”(to me, 딤전 1:16)라고 함으로 자신이 본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게 할 뿐 아니라 이 사실 즉 그 아들을 이방인에게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신”(1:16)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첫째,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피조물에 있다고 하였고(1:19-20), 둘째는 특별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이는 이 특별계시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계시된 하나님 자녀들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8:19)고 말하고 있다.

 

11)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먀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12) 김세윤, 96.

13) Ibid., 96-97. 바울은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다”(살전 2:4), “무할레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았다”(2:7),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1:1),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한다”(1:5),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이방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되었다”(15:15)

 

14) Roger E. Hedlund 성경적 선교신학송영조 역 (서울: 서울 성경학교 출판부, 1991), 355.

 

15)성서대백과사전, -ㅁ』 (서울: 기독지혜사, 1987), 179.

16) Herbert Kane J. 기독교세계선교사박광철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1), 219.

17) 대하 9:21; 20:36-37.

18) Herry R. Boer, 단편초대교회사백성호 역 (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9), 22.

19)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12:3). Gordon J. Wenham, Word Biblical Commentary, Genesis 1-15, (Texas: Word Books, Publisher Waco, 1987), 276-78. Jack B. Scott는 본문을 선교의 약속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한 축복을 받게 될만한 백성을 세상에서 불러내시려는 계획을 가지기 시작하실 때부터 줄곧 나타내 보여주신 것이라고 하였다(Jack B. Scott, God's plan unfolded,

하나님의 구원계획(서울: 크리스챤 서적, 1996), 59. M. R. Spindler, "구약성경의 선교성경의 선교신학(서울: 이레서원, 2001), 33. Spindler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교를 4가지로 구별하면서 첫째, 자발적으로 가는 원심적 선교(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가는 것, 소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부근 나라로 가는 것), 둘째, 강제적으로 나가는 원심적 선교(애굽의 종으로 팔린 요셉, 엘리멜렉 가족이 기근으로 모압에 내여가 룻에게 증거한 것, 요나가 니느웨로 내려 간 것, 히브리 소녀가 나아만 집에 간 것, 바벨론 포로가 된 이스라엘), 셋째, 자발적으로 이스라엘로 들어 온 구심적 선교(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온 것,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궁정으로 찾아옴, 룻이 모압에서 유다로 온 것, 넷째, 강제적으로 이스라엘로 들어 온 구심적 선교(이방인들이 구레스 대제에 의해 이스라엘에 정착함(왕하17)으로 설명했다.

 

20) 김의원 하늘과 땅, 그리고 족장들의 톨레돗(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2004), 269-70. 김의원은 누이로서 아내인 세 기사들을(12:10-20; 20; 26:1-11) 비교 대조하면서 족장들이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속임수를 쓰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지 않고 직접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바로를 통하여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다. 이는 약속의 땅을 벗어난 실수라고 해석하는 자들도 있지만 분명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애굽에 알리는 선교의 현장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21) 이원옥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71.

22) 창세기 22장에서는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너와 함께 계시도다”(22:22)고 고백할 정도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계시하게 되었다. 사라가 죽었을 때도 헷 족속에게 사라를 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자 헷 족속은 굴 뿐만 아니라 밭도 함께 거져 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된다(23:1-20).

 

23) 12:38

24) Roger E. Hedlund, 109. 이스라엘을 선택함이 만민을 배제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복이 적국인 애굽과 앗수르에게도 포함되어 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19:24-25)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4:5-7), 포로 생활 중에 이스라엘은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29:7; 33:7-9; 5:5; 20:22; 2:27-30).

 

25) Eduard Lohse 신약성서 배경사박창건 역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5), 13-22.

 

26) James Kallas 요한계시록박창건 역 (서울: 컨쿨디아사, 1996), 49-50.

27) Wermer Forster 신구약 중간사문희석 역 (서울: 컨콜디아사, 1996), 167-71.

28) David Seccombe,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복음의 증거-사도행전신학류근상 역, (서울: 크리스챤 출판사, 2004), 433-35.

 

29) 이사야 20:2; 미가 1:8. 성경에 나타난 선교 패러다임 1. 하나님의 직접 선교(1: -11: ), 2. 족장선교(12: -50: ), 3. 왕을 통한 선교(출애굽기 이후), 4. 선지자를 통한 선교(사무엘 이후), 5. 포로시대 선교, 6. 예수님의 선교(사복음서), 7. 제자들의 선교(사도행전 이후)

 

30) 예레미야 44:1 참조, 남쪽 변경을 지키기 위하여 프사메티쿠스(Psammetichus) 2세에 의해 시에네(아스완)와 엘레판티네(Elephantine)에 이주하게 된 유대인 공동체는 주전 400년 경까지 거기에 살면서 아람어 문헌들을 풍부하게 남겼다.

 

31) F. F. Bruce바울박문제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43. 유세비우스의 연대기의 제롬판에는 바사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Artaxerxes) 3(주전 359-338))가 히르카니아(Hyrcania)에 유대인들을 정착시켰다는 전승이 보전되어 있다.

 

32) Herry R. Boer, 22.

33) James Stewart S.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김득중 역, (서울: 컨콜디아사, 19

93), 9-21.

34) J. Herbert Kane 선교신학의 성서적 기초이재범 역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4), 38-43.

 

35) James C. Walters, Ethnic Issues in Paul's Letter to the Romans,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3), 19.

 

36) J. Herbert Kane, 42.

37) 1:18-32.

38) Merrill C. Tenney, New Testament Survey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61), 59.

 

39) J. Herbert Kane, 42-43.

40) 장훈태 초대교회 선교(서울: 솔로몬, 1996), 26.

41) 전호진 선교학(서울: 개혁주의 신행협회, 1985), 54-55.

42) J. Herbert Kane 선교의 성서적 기초김명혁 편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7), 63-68.

 

43) 이한수 바울신학연구(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4), 191. 성전예배에 대해서는 행 2:46; 3;1, 11; 4;1-4; 5:12-14, 42, 그리고 유대 회당들의 예배에 대해서는 행 6:8-14; 9:1-2; 19-22 등의 구절 참조

 

44) 이순한, 477

바울의 복음과 상황화에 대한 논평

논 평 김학유 교수(합동 신학대학원 대학교)

 

 

1. 논문 주제와 내용

 

이 원옥 교수가 쓴 바울의 복음과 상황화는 바울이 이해하고 있던 복음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고 있을 뿐 아니라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복음이 어떻게 상황에 걸맞게 전개되어 나갔는가를 기술해주고 있다.

 

저자는 바울의 출생과 그가 지닌 신학적 내용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 되었는가를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본 논문의 전반부에는 바울이 회심 이전에 지녔던 복음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회심 후에 변화된 복음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차이점들을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논문의 중반 이후에서부터 유대인 회당(synagogue)과 유대인 디아스포라(Diaspora)에 관한 내용들을 다루면서 바울의 상황화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전개해 나간다.

 

이 교수는 바울의 복음이 유대인 디아스포라를 통해 근동지방에 퍼져나간 사실을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면서 바울이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 선교를 위한 전략적 접근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교수는 바울의 이러한 접근 방법을 상황화라고 부르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초반부에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이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바울 복음의 핵심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고 한다. 그리고 인간이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이 복음을 믿음으로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또한 바울의 복음이 할례자나 무할례자 모두에게 동일한 효력을 지니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복음의 내용은

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교수는 바울이 전하던 복음의 내용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었는가를 설명함과 동시에 바울이 지니고 있던 복음의 내용이 어떠한 경로와 영향을 거쳐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바울이 전하던 복음은 바울이 스스로 만들거나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현(Christophany)을 통해 알게 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바울 선교의 상황화가 회당을 통하여 진행되었음을 언급하면서 회당 발생의 기원과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관하여 비교적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남북 이스라엘의 멸망과 더불어 시작된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관한 역사적 기술과 더불어 디아스포라의 문화적 종교적 특징들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특별히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회당 생활을 기술하면서 당시에 회당을 통한 유대인들의 종교적 생활이 이방인들에게 어떠한 종교적 영향을 끼쳤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당시 유대인들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었던 거룩한 종교적 삶이 이방인들에게 끼친 사회적, 정신적, 종교적 영향이 매우 컸음을 지적하면서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삶이 이방인들에게 간접적인 선교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비록 이방인들을 향해 직접적인 선교활동을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자신의 삶을 통하여 직간접적인 종교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끝으로 저자는 바울이 탁월한 상황화 선교 전략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로 바울의 출생을 꼽고 있다. 바울이 탄생하여 성장한 지역의 문화적, 종교적 특성들이 초기 바울의 종교의식과 사상에 영향을 끼쳤던 것처럼 바울의 출생 역시 자신의 선교적 전략, 즉 상황화 원리를 발전시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방인들의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경험들은 바울로 하여금 상황화 원리를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2. 논문 평가

 

본 논문이 바울이 지니고 있던 복음의 역사적인 기원과 바울의 상황화 원리를 다루려고 한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복음이 일정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려면 상황화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성경이 기록되었던 시대의 상황에서뿐 만 아니라 현대적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의미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상황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상황화를 통해 전달되지 않은 복음은 그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와 종교가 다른 선교지에서나 전달자의 문화와 거리가 먼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의미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황화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 이 원옥 교수가 다루고 있는 상황화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하고 시의 적절한 것이었다고 본다. 선교사역의 모범과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의 상황화 전략과 방법에 관한 연구를 시도한 저자의 의도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본다.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논문의 서론 부분에서 논문 연구의 목적,주제, 범위, 한계 등 논문의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논문 저자들이 서론을 통하여 저자가 논문을 쓰는 목적과 의도를 밝혀주는 것이 필요하다.

 

본 논문은 서론 부분에 저자가 다루려는 주제나 목적이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이 저자의 목적과 의도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 연구 주제에 관한 불분명한 기술은 독자들로 하여금 논문의 주제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할 뿐 아니라 논문 전체를 통하여 어떤 주제에 관심을 기우리며 글을 읽어야 하는지를 모르게 한다. 서론 부분에서 이러한 중요한 내용들이 생략된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본 논문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아쉬움은 상황화에 관한 저자의 이해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상황화의 개념을 상황을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의미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상황화(contextualization)의 문화 인류학적 의미는 복음 전파자가 내부자 관점’(emic view)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복음을 왜곡시키지 않고 현지인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지칭한다.

 

상황화란 단순히 문화적, 인종적 동질성을 이용하여 현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피상적인 전술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세계관과 우주관을 바꾸기 위해 매우 정밀하고 치밀한 문화 해석’(cultural hermeneutics)의 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작업을 일컫는다.

 

현지인들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출생과 문화적 경험을 이용하여 접촉점’(contact point)을 만드는 과정을 상황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피상적이고 단순한 적응(adaptation)을 상황화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저자는 마치 상황화라는 개념을 복음전파자가 자기의 문화적 경험과 신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현지인들에게 다가가는 과정정도로 이해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상황화의 의미는 WCC에서 자주 언급하는 현장의 요구에 따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화도 아니고, 문화인류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문화적 상황화의 개념도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상황화를 의미하는 것같이 보인다.

 

세 번째로 아쉬운 점은 저자가 논문의 주제로 선정한 상황화라는 주제가 본 논문에서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문의 핵심적인 주제인 상황화에 관한 내용이 매우 제한적으로 언급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의미도 매우 모호하게 언급되어있다. 바울이 이해하고 있던 복음이 당대의 역사적 상황속에서 어떻게 상황화 되었는가에 관한 연구나 고민이 생략된 채 유대인 디아스포라에 관한 연구가 논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화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과 개념들이 생략된 채모호한 상황화의 개념을 전제로 바울 복음의 상황화를 다루었다는 점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이미 많은 신학자들이나 선교학자들이 오랜 연구를 통하여 잘 정리한 내용들이다. 아쉬운 점은 본 논문에서 저자만의 새로운 통찰들(insights)이나 발견들(findings)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논문을 읽으면서 논문 저자만의 독특한 새로운 통찰이나 발견을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본 논문에 새로운 통찰들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점이다.

 

이 원옥 교수가 바울의 상황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도한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황화의 의미가 진보적인 선교학자들에 의해 지나치게 왜곡되어 비성경적인(non-biblical) 내용으로 채색되어 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저자의 시도는 매우 시의 적절했다고 본다.

 

WCC를 중심으로 상황화의 개념을 정치화하려는 시도를 배격하고 성경적인 상황화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해 보려는 저자의 시도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성경적 상황화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상황화를 정치 경제적(politico-economic) 차원으로만 이해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선지자적 소리’(prophetic voice)를 내는 것만이 참다운 상황화라고 여기며 그릇된 상황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성경적 상황화의 참 의미를 드러

내려고 펜을 든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