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8장 22‐31절에 나타난
지혜의 성격과 창조에 있어서 그의 역할에 대한 번역적 고찰
1. 들어가는 말
잠언 8장 22‐31절에 나타난 지혜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전에 태어나 창조의 모 든 과정에 증인이 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창조를 기뻐하고 축하하고 있다. 이런 지혜의 모습은 구약의 지혜 문학뿐 아니라 구약성경 전체에서 유일무이하며, 신 약성경에서도 그 유비를 찾기 어렵다. 또한 현 본문에서 의인화된 지혜는 천지창 조의 주요 과정을 모두 목격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제시되고 있는 천지창조의 과정이 다른 본문들(예, 창 1:1‐2:3; 시 104:1‐35; 욥 38:1‐38)에 나타나는 우주관 및 창조의 과정과 어떤 유사성과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진다.1)
또한 해석 사적 관점에서 보면 현 본문에 등장하는 지혜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로고스로서 의 그리스도와 깊은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요 1:3; 골 1:15‐17; 계 3:14),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론 논쟁을 심각하게 불러 일으켜 왔다.2)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여기에 등장하는 지혜의 모습이 이집트 신화와 세 계관에 등장하고 있는 지혜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으므로, 히브리 지혜(호크 마)와 이집트의 지혜(마아트) 사이에 있는 상호 연관성 문제가 심도 있게 다루어 지고 있다.3)
그렇지만, 현재의 히브리어 본문은 너무나 까다롭기 때문에, 한 단어, 한구, 한절을해석해내는것도쉽지않으며, 고대와 현대의 번역본 마다 매우 다른 번역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본고에서 새로운 번역을 시도함으로 써, 여기에 등장하는 지혜의 성격과 창조에 있어서 그의 역할을 찾아내고 히브리 우주관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보고자 한다.
이 단락의 구조에 대하여 많은 제안들이 제시되었다.4) 알레티는 이 시를 크게 두 연으로 나누고 있다(22‐26, 27‐31절). 그가 볼 때, ‘그가 하늘을 세우실 때 내가 거기 있었다’(27절)는 구는 ‘나는 날마다 그의 곁에 있었다’와 연결된다고 본 다.5)
그렇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시를 세 연으로 분석한다(22‐26, 27‐29, 30‐31절).6) 대표적으로 게일 이(Gale Yee)는 이 세 연의 구분점에 수사학적 장치들 이 있음을 확증해 주고 있다. 즉, 제 1연은 ‘야웨께서 나를 낳으셨다’(22절)로 시 작하며, ‘그가 땅과 들도 만들지 않았다’(26절)로 마치고 있으며, 제 2연은 ‘내가 거기 있었다’(27절)로 시작하고 ‘내가 그의 곁에 있었다’로 마치며(30상반), 제 3연은 ‘내가 날마다 기뻐하였다’(30하반)로 시작하여, ‘내가 사람들을 기뻐하였 다’로 마치고 있음을 잘 지적하였다(31절).7)
우리도 이 단락을 아래와 같이 크게 세 연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1) 우주 창조 전에 태어난 지혜(22‐26절)
(2) 우주 창조 과정에서의 지혜(27‐29절)
(3) 우주 창조를 축하하는 지혜(30‐31절)
주어의 인칭 변화의 관점에서 볼 때 제 1연(22‐26절)은 ‘그’(22절)와 ‘나’(23절), ‘나’(24-25절)와 ‘그’(26절)의 교차대구를 이룬다. 제 2연(27‐29절)은 ‘그’가 중심을 이루며, 제 3연(30‐31절)은 ‘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리하여 제 1연 의‘그’와 ‘나’가 제 2연에서는 ‘그’를, 제 3연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 동사도 제 1연의 ‘낳았다’와 ‘태어나다’에서, 2연으로 넘어가면 ‘그곳 에 있었다’로 넘어가며, 3연에서는 ‘기뻐하였다’, ‘즐거워하였다’로 넘어간다. 시 간과 장소의 부사적 관점에서 보면, 제 1연은 ‘~전’(~d,q, ymed>Q;mi)에서 출발하여(22, 23절), ‘아직 ~이 없었을 때’(!yaeB). 로 나아가며, 2연은 ‘그곳에’(~v' 27절), 3연은 ‘곁에’(lc,ae 30절)로 넘어가고 있다. 이리하여 각 연의 구별과 흐름을 만들 고 있다. 지혜는 자신 존재의 ‘고대성’(22‐26절), 자기 지식의 ‘원천성’(27‐29절),그리고 ‘주님 및 사람과의 연합’ (30‐31절)에 근거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 을 받도록 호소하고 있다(32‐36절).
- 1) 이 본문과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전통관계는 여러가지 복잡한 차원을 담고 있으므로 이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문맥은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 전통과도 일맥상통하고 있 기 때문에, 창세기의 전통에 대한 지혜문학적 각색으로 볼 수도 있다. George M, Landes,“Creation Tradition in Proverbs 8:22‐31 and Genesis 1”, H. N. Beam, et al., eds., A Light unto my Path; Gettysburg Theological Studies IV (Philadelphia: Temple Uni. Press, 1974), 279‐293. Roland E. Murphy, “Wisdom and Creation [SBL presidential address, 1984]”, JBL 104 (1985), 3‐11.
- 2) 아리우스는 본문에 나오는 지혜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한 후, 8:22의 동사 (hnq)를 ‘창조하다’로 번역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로서(고전 1:24) ‘창조되었으므로’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종속한다고 보았으며, 이와 반면에 아타나시우스는 ‘창조의 머리로 세우셨다’(constituted me as head of creation)로 번역하여 삼위일체 논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R. B. Y. Scott, Proverbs, Ecclesiastes (Garden City: Doubleday, 1965), 73.
- 3) 이본문은이집트지혜문학과너무나유사성을많이갖고있기때문에, 이집트지혜를이스라엘 의 유일신앙으로 가공하고, 지혜의 근원을 태고 이전으로 끌어 올린 후 현재의 자리에 넣은 것으 로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한 토론으로서 Hans P. Rüger, “'Amôn ‐ Pflegekind: zur Auslegungsgeschichte von Prv 8:30a”, Ubersetzung und Deutung. D. Barthélemy, et al, eds., 1977. Roger Norman Whybray, “Proverbs 8:22‐31 and its Supposed Prototypes”, VT 15 (1965), 504‐514 참조.
- 4) 대표적인 잠언 학자들 가운데 여러 사람들(예, Toy, Oesterley)은 본 단락의 구조에 대해서는 별 로 관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Crawford Howell Toy,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Proverbs (Edinburgh: T. & T. Clark, 1899). W. O. E. Oesterley, The Book of Proverbs (London: Methuen, 1929).
- 5) Jean Noël Aletti, “Proverbes 8:22‐31: Étude de Structure”, Bib 57 (1976), 25‐37. 그는 또한 30절 의 ‘그리고 나는 함께 하였다’가 제 3연의 시작점이라기보다 제 2연과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논 증한다.
- 6) 대표적으로, Patrick W. Skehan, “Structures in Poems on Wisdom: Proverbs 8 and Sirach 24”,CBQ 41(1979), 365‐379을 보라. 그는 자신의 구조 분석의 근거를 어휘적으로 상세히 분석하며 제시하고 있다. Maurice Gilbert, “Le Discours de la Sagesse en Proverbs 8: Structure et Coherence”, M. Gilbert, et al., ed., La Sagesse de l'Ancien Testament (Leuven: University Press, 1979), 202‐218 참조.
- 7) Gale A. Yee, “An Analysis of Pro 8:22‐31 According to Style and Structure”, ZAW 94 (1982), 58‐66.
2. 우주 창조 전에 태어난 지혜(22‐26절)
본 단락은 아래와 같이 두개의 소 단락으로 나누어진다.
2.1. 요약적 진술: 주께서 창조 전에 지혜를 낳으심(22‐23절)
2.2. 창조 직전의 부정적 상황(24‐26절)
첫 단락(22‐23절)에서는 우주의 창조 전에 (1) 주님께서 지혜를 낳으시고(22절), (2) 지혜는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23절). 둘째 단락(24‐26절)에서는 지혜가 목격한 창조 직전의 부정적 상황으로써, (1) 물이 있기 전(24절), (2) 산이 있기 전(25절), (3) 땅이 있기 전(26절)의 상황을 제시해 준다.
2.1. 요약적 진술: 주께서 창조 전에 지혜를 낳으심(22‐23절)
`za'(me wyl'ä['p.mi ~d<q<ß AK+r>D: tyviäarE ynIn"q'â hw"©hy>) 22
평범하게 보이는 이 짧은 한 절은 논쟁이 없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어렵고 복 잡한 문제들을 담고 있다.8) 이 절에서 유일하게 나오는 동사인 ‘가졌다’(개역, hnq)는 히브리어 사전에서 (1) 사다(to buy), (2) 얻다, 획득하다(to acquire), (3)창조하다(to create)는 의미를 기본적으로 가지며(HALOT), 우리말 성경에서 ‘가졌다’(개역), ‘지었다’(공동), ‘데리고 계셨다’(표준)로 달라지고 있다.
연구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1926년 버니(Burney)는 처음으로 이 동사(qana)에 대하여 다섯 가지 의미를 잘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제시하였다.9)
- (1) ‘사다’(to buy, 창 47:22; 잠 20:14 등).
- (2) 구매한 권리에 의하여 ‘소유하다’(to own, 사 1:3, ‘그 주인’).
- (3) 구매한 방법이 아니고 ‘획득하다’(to acquire, 출 15:16; 시 74:2;78:54; 잠 1:5 등).
- (4) ‘낳다’(to beget; 신 32:6; 잠 8:22), ‘얻다’(to get, 낳아서 얻음; 창 4:1).
- (5) ‘창조하다’(to create, 창 14:19, 2; 시 139:13).
위의 다섯 가지 의미 중에서 버니(Burney)는 이 단어가 ‘이전에 소유하지 못했던 것을 얻는다’는 뜻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얻음은 사거나, 만들거나, 낳거나 (아기인 경우), 마음 속에서 계속 생각함으로 (지혜인 경우)이루어진다”.10)
8) Johannes B, Bauer, “Encore une Fois Proverbes 8:22”, VT 8 (1958), 91‐92. Bruce Vawter, “Pro 8:22: Wisdom and Creation”, JBL
99 (1980), 205‐216 참조.
9) C. F. Burney, “Christ as the Arke of Creation”, JTS 27 (1926),160‐177. 버니의 입장은 윤영탁, “잠언 8:22에 나타난 ‘카나니’(나를.
가지셨다)에 관한 고찰’ ꡔ구약신학과 신앙ꡕ(엠마오, 1991), 100에서 잘 소개되고 있다.
10) 윤영탁, ꡔ구약신학과 신앙ꡕ, 100.
위에 제시된 (1) ‘사다’(to buy)와 (2) ‘구매에 의한 소유’(to own)는 하나님에게 적용될 수 없으므로, 번역사를 살펴보면 세 가지 방향으로 번역되 어왔다.
(1) 고대의 그리스 역본들인 아퀼라, 심마쿠스, 데오도션 (e;kesan), 그리고 제롬 과 불가타(possedit)와 근‐현대의 여러 번역본들(Luther, KJV, NASB)은 ‘나를 소유하였다’(possessed me)로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은 잠언에 나오는 ‘카 나’(qana)의 용법과 매우 잘 어울리고 있다. 예로써, 이 동사는 ‘모략을 얻다’(잠1:5), ‘지혜를 얻고, 명철을 얻어라’(4:5, 표준), ‘지식을 얻다’(18:15)라는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를 어떻게 소유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 대답이 선명하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공부하고 생각하여 지혜를 소유하게 되지만, 하나님은 원래부터 지혜로우시므로, 구태여‘지혜를 새롭게 소유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불필요한 사족처럼 들리게 된다. 물론 스콧은 하나님께서 지혜가 최초로 등장하던 시점에‘하나의 속성이나 기능으로(as a function or attribute) 지혜를 가졌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11) 현재 문맥에서 지혜는 독자적 인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 번역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11) Scott, Proverbs, Ecclesiastes, 73.
(2) 고대의 번역 중 70인역(e;ktise,n), 시리아역(brni),12) 탈굼(arb)은 ‘창조하다’로 번역하고, 현대에 와서는 RSV, NEB, Japanese NIT 등이 이 번역을 따르고 있다. 주석가들로서 최근에는 슈미트와 올브라잇과 마인홀드(Meinhold) 등이 이 번역을 옹호하고 있다.13)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의 실제적인 용법을 살펴보면, ‘소유하다’ 보다 ‘창조하다’는 뜻이 문맥에 더 잘 어울리는 경우들이 여러 번 나 타나고 있다. 예로써, ‘너희를 지으신 아버지’(신 32:6), ‘내 장기를 지으시며’ (시 139:13), ‘하늘과 땅을 만드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19, 22), ‘주께서 지으신 것들’(!y"n>qi // hf,[]m;;; 시 104:24)을 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지혜는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시작되기 전 가장 먼저 지음을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 12) The Peshitta Institute, The Old Testament in Syriac according to the Peshi tta version,
- Proverbs-Song of Songs (Leiden : Brill, 1972), 13.
- 13) Hans H. Schmid, Gerechtigkeit als Weltordung, BHT 40 (Tuebingen: J.C.B. Mohr, 1968),150.
- W. F. Albright, “Some Canaanite‐Phoenician Sources of Hebrew Wisdom”, M. Noth and D. W. Thomas, eds., Wisdom in Israel and in the Ancient Near East. SVT 3 (Leiden: E. J. Brill, 1955), 1‐12. Arnst Meinhold, Die Sprüche, Zürcher Bibelkommentare 16 (Zürich: Theologischer Verlag, 1991).
(3) 현대의 번역 중 소수의 역본들은 ‘낳다’라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다(NIV ‘bring force’, TOB ‘engendrée’).14) 이 단어는 우가릿어와15) 구약성서에서 출생과 양육의 맥락에서 등장하고 있다. 예로써, ‘내가 득남하였다’(창 4:1)와 “그는 너를 낳으신 너의 아버지(^n<Q' ^ybia)' 가 아니냐 너를 지으시고(hf[) 세우셨도 다(!wk)”(신 32:6)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낳았다’는 개념은 구약성경에서 너무나 생소해 보인다. 잠언의 세계관에서 하나님이 가나안의 신들 처럼 성적(性的) 관계를 통하여 신적인 존재를 태어나게 하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개념이지만, 출생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본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잠언 8장의 현재의 맥락에서 지혜는 스스로 ‘내가 태어났다’(yTil.l'(Ax)라고 말한다(24, 25절). 만약 이 번역이 옳다면, 하나님은 태초의 천지창조가 이루 어지기 전에 지혜를 독자적인 인격으로 ‘낳아서’ 가지셨다. 여기에서 ‘출산’ 이미지는 은유적이다. 즉, 지혜는 마치 출생처럼 주님으로부터 직접 나왔으므로 하나님과 온전한 통일성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지혜는 주님과 연대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창조 전에 등장한 존재로서 창조 활 동에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고, 주님에게 소유되고 있으나 또한 장차 사람들에게 도 소유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32‐36절).
- 14) W. A. Irwin, “Where Shall Wisdom be Found?”, JBL 80 (1961), 133‐42.
- 15) 라스 샤므라 비문에서 아세라는 ‘신들을 낳은 자’(qnyt ilm, ‘she who gives birth to the gods’),엘은 ‘피조물의 창조자’ 혹은 ‘피조물을 낳은 자’(bny bnwt, begetter of creatures)로 불리고 있다. M. Dahood, “Proverbs 8:22‐31: Translation and Commentary”, CBQ 30 (1968), 513.
정리하자면, 히브리어 동사 카나(hnq)에 대하여 위에 제시된 세 가지 번역에 있어서 첫째 번역인 ‘획득하다’(to acquire) 혹은 ‘소유하다’(to possess)는 원래 하나님에게 없었던 것을 새로 얻게 되었다는 느낌을 제시하므로 본문에 어울리 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따라서 두 번째 번역인 ‘창조하다’(to create)와 세 번째 번역인‘낳다’(to beget)가 가능해지는데, 두 번역 모두 지혜의 피조성과 출산의 개념을 제시하므로 기독교 독자들에게는 모두 낯설 수 있다. 바로 이점에 대하여 민영진은 한 낱말이 갖는 ‘지시적 의미’(referential meaning), ‘함축적 의미’(connotative meaning), ‘비유적 의미’(figurative meaning)로 지혜롭게 해결 하고 있다.
즉, 우리가 ‘창조하다’ 혹은 ‘낳다’로 번역할 때 그것은 사실에 대한 묘사(즉, 지시적 의미)라기보다, 비유적 의미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16)
이 절을 구문론적으로 볼 때, 전통적인 번역들은 대부분 주어(hwhy) + 동사(hnq) + 목적어(ynI)에 이어 두 개의 부사구(AK+r>D: tyviäarE; za'(me wyl'ä['p.mi ~d<q<ß)로 분석 하고있다. 만약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있다면, 두개의 부사구는 지혜가 태어난 시간대를 제시해 주게 된다.17) 그러나 최근의 번역들(NIV, NIB, JPS, NJB)과 학 자들(Savignac, Vawter, Waltke)은 이것을 시간의 부사구 대신에 ‘방식의 대격’(accusative of manner)으로 보고18) 특히 제 1행을 “야웨께서 나를 그의 행적의 ‘으뜸’(chief, best, principle)으로 낳으셨다(혹은 가지셨다)”로 번역한다(잠4:7; 렘 49:35).19)
- 16) 민영진, “잠언 8장 22절의 ‘카나니(QANANI)’ 재론”, ꡔ지혜 전승과 설교: 구덕관박사회갑기념 논문집ꡕ(대한기독교서회, 1991), 85. 그는 최종적으로 ‘나를 데리고 계셨다’로 제안한다(91-92쪽). 한국학자들로서 이 본문에 대하여 다룬 글로는, 노세영, “지혜문학에 나타난 창조신학”,「신학사상(TheTheologicalThought)」 85 (한국신학연구소, 1994), 94-118. 박종수(朴鍾洙), “잠 언서에 나타난 여성의 지혜: 8:22-31장과 31:10-31”, 「강남대학논문집」 25 (강남대학, 1994), 9-31.박철우, “잠언 8-9장 번역상의 주요 난제들”, 「복음과신학」 3 (나사렛신학대학, 1991), 51-61. 천사무엘, “지혜를 사랑하라 잠 8:1-36”, 「성경연구」 43 (한국성경연구원, 1998), 1-13.천사무엘, “구약성서의 지혜문학과 창조신앙”, 「기독교문화연구」 2 (한남대기독교문화연구소, 1997), 305-319, 등을 참조하라.
- 19) “The LORD brought me forth as the first of his works”(NIV), “Yahweh created me, first‐fruits of his fashioning”(NIB), “The LORD made me as the beginning of His way, the first of His works of old”(JPS). “Yahweh created me, first‐fruits of his fashioning”(NJB). 다후드(Dahood)는 두 번째 단어 ~d<q<ß에 대해서도 ‘태고자’(Primeval) 혹은 ‘영원자’(the Eternal)로 번역하고 있 다. Dahood, “Proverbs 8:22‐31”, 513‐514.
그러나 여기의 두 구를 ‘시간의 대격’(accusative of time)으로 보는 것이 어휘들의 용례와 문맥으로 볼 때 더 적절한것으로 판단된다.20) 먼저 문맥을 볼때, 22‐26절과 특히 22‐23절은 시간을 이끄는 구들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영원 전’, ‘땅이 생기기 전’, ‘바다와 샘이 생기기 전’,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 등). 또 한 고대의 역본들도 시간의 부사로 읽고 있으며(LXX, avrch.n), 특히 탈굼에서는 시간을 가리키는 전치사 베(vyrb)를 붙여 읽고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태초 에’(tyviarEB.)를 표현할 때 전치사 베(b)를 함께 붙이지만(창 1:1; 렘 26:1), 전치사 없이도 동일한 ‘태초’를 가리킬 수 있다(창 10:10). 물론 ‘시작’(tyviarE)이란 단어는 (1) 질에 있어서 ‘최고 혹은 가장 중요한 것’(암 6:1; 렘 49:35),21) (2) 시간적으 로 첫째(창 10:10), (3) 장자(창 49:3; 시 105:36), (4) 첫 단계(미 1:13; 잠 4:7; 욥8:7; 42:12), (5) 주요 원리(잠 1:7; 4:7; 렘 49:35)를 뜻할 수 있다.22)
그러나 현재 의 문맥에서는 ‘태초에’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태초에’와속격(genitive)관계를 이루고 있는 단어인‘그의 길’(AKr>D:): 역시번 역에 있어서 매우 까다롭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길’(way)을 가리키지만, 올 브라잇은 우가릿어(drkt, royal dominion)에 근거하여, ‘고귀함(nobility), 주권(dominion)’으로,23) 코흐(Koch)는 ‘힘, 권세’(잠 8:22; 10:29; 욥 40:19)로 제안한 다.24) 이렇게 본다면, 지혜는 하나님 권세의 으뜸으로 태어나게 된다. 이 번역은 히브리어와 우가릿어에서 확증되고 있지만,25) 현재의 문맥에서는 썩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다. 폭스는 “이 의미는 문맥에 따라 결정된다... 데렉(Derek)은 문제시 된 ‘길’ 혹은 ‘행동’이 통치력과 연관될 때 ‘다스림’을 뜻하지만, 이것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잘 말했다.26) 왈키 역시 “현재의 문맥에서 지혜는 하나님의 능력의 우월성보다는 창조계에 있어서 시간적 우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잘 파 악하였다.27)
제 1행에 나오는 ‘행위’(%r,D,)는 제 2행의 ‘행적’(l['p.m)i 과 자연스럽게 평행을 이루고 있다(시 46:8[9]; 66:5). 구약성서에서 ‘행위’(derek)는 ‘행적’(po‘al)과 자 주 대구를 이루는데(신 32:4; 잠 10:29; 21:8; 30:20; 렘 50:29), 오직 여기에서만 그 분사형 명사(남성 복수)와 평행을 이루고 있다. 여기의 ‘행적들’은 이후 24‐29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 행위들을 가리킨다.
제 1행에서 지혜는 ‘태초에 하나님의 작업이 처음 시작할 때’ 등장하였는데,제2행에서는이시점을좀더예리하게초점화시키고있다. 즉, 지혜는‘오래전 그의 행적들이 있기 전”(za'(me wyl'ä['p.mi ~d<q<ß)에 등장하였다. ‘오래 전’(za'(me)은 단 한 번 ‘영원 전’(~l'A[me)과 평행을 이루고 나타나지만(시 93:2), 홀로 나타날 때 현재 로부터의 시간적 거리는 문맥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사 45:21; 48:3, 5; 시93:2).
요약하자면, 이렇다. 지혜는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시작하시던 태초에’(제 1행), 즉 ‘오래 전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있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나오는 두 개의 시간대는 서로 다른 시간대가 아니라 하나의시간대를 두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즉, 지혜는 이세상에 그 어떤 존재들(즉, 땅[23절], 바다[24절], 산 [25절], 들[26절])도 나타나기 전에 등장하였다. 그는 창조의 ‘첫 작품’이 아니라, 주님의 첫 창조가 이루어지기 전에 등장하였다.
`#r<a'(-ymed>Q;mi varoame yTik.S;înI ~l'A[meâ 23
22절의 지혜의 출현 시기는23절에서 다시 한 번 더 세 개의 시간 구를 통하여 삼중적으로 보강되어 제시된다.
(1) ‘만세 전부터’(~l'A[me, 개역)는 직역을 하자면 ‘영원 전부터’(표준)가 되지만, 현재의 본문은 ‘지혜의 영원성’이 아니라, 지혜의 출생 시점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 구를 번역하는 것이 쉽지않다. 이 구는 역사 속의 시간으로서 ‘고대’(개역, 창 6:4), ‘옛적부터’(렘 2:20), ‘옛날부터’(표준, 렘 28:8)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아직 시간을 정할 수 없는 영원 전’을 가리킨다고 보기 어렵다.히브리어에서 ‘영원’은 무한대의 시간이 아니라, ‘지속성’의 개념을 더 부각하고 있으며 ‘가장 먼 과거와 미래’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2) ‘상고부터’(varom,e 개역)는 ‘태초부터’(개역개정), ‘그 옛날’(공동), ‘아득한 그 옛날’(표준) 등으로 번역되고 있으며, 직역하자면 ‘머리(varo)로부 터’이지만 시간을 가리킬 때에는 ‘시작부터’라는 뜻으로 사용된다(사 40:21; 41:4, 26; 48:16). 이 단어는 바로 앞 절에 있는 ‘시작’(tyviare)과 동일한 어근을 갖 고 있으므로, 앞 절의 시간대와 동일한 시간을 설정해 준다.
(3) ‘땅이 생기기 전부터’(개역)는 이 절에서 측정 가능한 시간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여기에서 ‘~전부터’(-ymed>Q;m)i 는 바로 앞 절에 있는 ‘~전에(~d,q,)와 연 결되며, 따라서 22절의 ‘오래 전 그의 행적들이 시작되기 전’과 완벽하게 이어져22‐23절이 4행(quatrain)을 이루게 한다. 의미론적으로 ‘~전부터’(-ymed>Q;m)i 는 ‘이 전부터, 오래 전부터’(사 45:21; 46:10)28)와 ‘영원 전부터’(시 74:12; 77:6, 12; 143:5)라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으나 현재의 문맥에서는 ‘땅이 생기던 가장 오랜 시간 전에’(from the earliest times of the earth)로 볼 수도 있게 된다.
이 절에서 지혜 출현의 시간을 알리는 세 개의 시간 부사는‘내가 세움을 입었다’(yTik.S;n)I 에 연결된다. 이 동사는 우리 말 성경에서는 ‘세움을 입었다’(개역개정, 표준)와 ‘모습을 갖추었다’(공동)로 번역이 갈라지며, 외국어 번역에서 도 ‘세움을 받다’(‘was appointed’, NIV, JPS, KJV, NET; ‘was set up’, RSV; ‘été établie’, BFC, ‘été sacrée’ TOB; ‘bin eingesetzt’, Luther)와 ‘지음 받다’(‘was fashioned’, NEB, NIV 난외주)로 제시된다.
이 동사는 크게 (1) (술, 물)을 ‘붓다’ (nasak I)와 (2) ‘(자리에) 세우다, 앉히다’(nasak II)는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첫번째뜻은현재의문맥에어울리지않으며, 두번째뜻으로본다면, 지혜는‘대 관식’의 배경 속에서 ‘기름 부음을 받고 왕/여왕으로 세움을 받는다는 뜻으로 해 석이 될 수 있다. 마치 시편 2장 6‐7절에서 새로운 왕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세움을 받으며’(nasak)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yalad)과 같이 지혜가 주님에게서 태어나며 왕/여왕으로 세움 받는 영상을 우리는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70인역은 이런 관점에서 이 단어를 번역하였다(evqemeli,wse,n; established).
이렇게 본다면, 지혜는 이후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있어서 능동적 으로 활동하는 것이 명시되지는 않지만,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잠언에서 지혜는 통치의 능력으로써 그로“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므로”(잠 8:16), ‘왕으로 세우다’는 지혜의 성격 및 역할에 어울린다고말할수있다.
그러나 현재의 본문에서 지혜가 대관식의 배경 가운데(여)왕으로 책봉을 받는 것은 문맥에 전혀 어울리지 않으므로, 오히려 ‘(베, 피륙을) 짜다’(to weave), ‘형성하다’(to shape)는 동사($ks의 니팔형 HALOT),29) 혹은 ‘베, 피륙’(hk'Wsn>)이란 명사형(사 25:7)과 동일한 어근의 동사($sn 니팔형)로 볼 수 있다(HALOT).30)
따라서 ‘나는 모습을 갖추었다’(I was fashioned)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 인다.31) 앞 절에서 지혜는 하나님에 의하여‘태어났는데’ 이제 지혜는 마치 온전한 인격체처럼 ‘모습을 갖추고 있다’.
- 19) “The LORD brought me forth as the first of his works”(NIV), “Yahweh created me, first‐fruits of his fashioning”(NIB), “The LORD made me as the beginning of His way, the first of His works of old”(JPS). “Yahweh created me, first‐fruits of his fashioning”(NJB). 다후드(Dahood)는 두 번째 단어 ~d<q<ß에 대해서도 ‘태고자’(Primeval) 혹은 ‘영원자’(the Eternal)로 번역하고 있 다. Dahood, “Proverbs 8:22‐31”, 513‐514.
- 20) Waltke and O'Connor, An Introduction to biblical Hebrew, 171. 그들은 시간의 대격에 대한 예 로써 사무엘상 27:1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 예레미야 28:16 “금 년에 네가 죽을 것이다”, 시편 55:18 “저녁에도 아침에도 한낮에도, 내가 탄식하면서”를 들고 있다.
- 21) Irwin, “Where Shall Wisdom Be Found?” 140.
- 22) 사비냑(Savignac)은 ‘야웨의 창조적 활동의 원리로서 나를 창조하였다’로 본다. Savignac,
- “Note sur le Sens du Verset 8:22”, 429 ‐432.
- 23) W. F. Albright, “The Oracle of Balaam”, JBL 63 (1943), 219.
- 24) K. Koch, TDOT, 3:286 (derekh).
- 25) HALOT는 derek이 ‘힘, 권세, 능력’을 뜻하는 경우로서 몇몇 본문을 제시한다(렘 3:13; 시26) Michael V. Fox, Proverbs 1‐9: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NewYork: Doubleday, 2000), 281.\27) Waltke, The Book of Proverbs, 1, 410.
- 138:5; 잠 31:3; 호 10:13 [‘용사’와 평행을 이룸]). 우리는 시 67:2 [히 2절]도 추가할 수 있을 것 이다. 우가릿어(CTA 2:iv:10, 13; 4:vii:44; 14:22; 16:vi:38)에서 이런 용법으로 나오는 것에 대 해서는 Dahood, “Proverbs 8:22‐31”, 514; J. B. Bauer, “Encor une Fois Proverbes VIII.22”, VT8 (1958), 91‐92; Cleon Louis Rogers, “An Exegetical and Theological Study of Proverbs 8”(Ann Arbor: U.M.I., 1991), 104를 보라.
28) E. Vogt, “Einige hebraeische Wortbedeutungen”, Biblica 48 (1967), 57‐74.
29) 이 동사($ks)는 하나님께서 모태에서 태아의 형질을 만들어가는 데 사용된다(시 139:13하; 욥10:11).\
30) R. N. Whybray, Wisdom in Proverbs: The Concept of Wisdom in Proverbs 1‐9 (London: SCM, 1965), 101. 와이브레이에 따르면,
이 동사는 “은유적으로 임신의 과정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다.”
- 31) D. Barthelemy et al., Preliminary and Interim Report on the Hebrew Old Testament Text Project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Alliance Biblique Universelle, 1977‐1980), 466에 서는 ytiKos;n. (I was hidden/ I was cast / I was fashioned)로 읽도록 제안한다.
2.2. 창조 직전의 부정적 상황(24‐26절)
하나님의 천지 창조 직전에 등장한 지혜(22‐23절)가 이제는 하나님의 창조 활 동과연관하여소개되고있다. 이리하여창조의두축가운데첫축을이루는시 간은 전치사 ‘~전에’(~d,q,ymed>Q;m)i 에서 ‘~이 없을 때’(!yaeB). 로 넘어가고 있으며,둘째축을이루는공간은낮은곳에서높은곳으로이동하고있다. 즉, 이세상에 서 가장 낮은 ‘깊음’(24상반)에서 지면의 샘(24하반)을 거쳐, ‘산’(25상반)과 ‘언 덕’(25하반) 위에서 ‘넓은 땅과 들’(26절)을 바라본 후에, 가장 높은 ‘하늘’로 올 라가고 있다(27절). 이리하여 장차 사람들과 뭇 생물들이 살게 될 공간인 바다,땅, 들이 넓게 그려지고 있다. 이리하여 폭스가 잘 말한 바와 같이 “창조는 현상 의 집합이 아니라 일관성 있는 파노라마”라는 인상을 잘 전하여주고 있다.32)
`~yIm")-yDEB;k.nI tAn©y"[.m;÷ !yaeîB. yTil.l'_Ax tAmïhoT.-!yaeB. 24
이 절에서는 ‘~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yaeîB). 가 두 번 반복되며(24상반, 24하 반), 지혜가 창조 전에 존재하게 되었음을 강조하여 준다. 제 1행에서 지혜는 ‘바 다가 생기기 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의 ‘바다’(ꡔ개역ꡕ)는 원어에 서 ‘깊음’(tAmhoT). 으로서 ‘태고의 심연’(창 1:2; 욥 38:16; 시 33:7; 104:6; 잠 3:20), 혹은 ‘바다의 깊음’(135:6), 혹은 ‘바다 물’(출 15:5, 8; 시 106:9; 107:20)등을 가리킬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태고의 심연’으로써 천지가 자리를 잡기 전 에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물(창 1:2)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 러워보인다. 즉, 지혜는‘태고의물이온세상을뒤덮고있기전’에존재하게되 었다. 현재의 본문을 창세기 1장과 비교해 본다면, 창세기에서 ‘깊음’(혹은 바다)은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빛이 나타나기 전(1:3)에 이미 ‘혼 돈과 공허’와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1:2). 그러나 잠언 8장에서 ‘깊음’은 주님의 창조 과정으로 나타나며, 지혜는 ‘깊음’ 전에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왈키는, “물이 땅을 덮기 전의 상태에 대한 묘사는 구약성경 그 어디에도 찾아볼수없지만, 성경의각권은그자체의소리를낼수있도록허락되어야한 다”고 잘 말했다.33)
제 1행의 ‘심연’과 평행을 이루는 제 2행의 ‘샘들’(tAny"[.m;)은 무엇을 가리키는 지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태고의 심연은 아직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구(對句)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엄격한 대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제 1행의 심연은 현 세상의 ‘바다 물’로 보아야 하며, 2행은 사람들이 마실 수 있는 ‘지하수’로 보아야 한다.34) 그러나‘산과 들’(25‐26절), 그리고 현 세상의 바다와 지하수(27‐28절)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제 1행의 ‘깊음’을 태고의 심연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이 절의 ‘샘들’(tAny"[.m;)은 심연의 원천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문론적으로‘샘들’(tAny"[.m;)은 ‘물의 넘침’(~yIm-" yDEB;k.nI)이란 구와 동격(apposition)을 이루고 있 다. 즉, 샘들에서 물이 끊임 없이 솟구치며 넘치고 있다.35) 여러 학자들은 70인역(phgaj. twn/ ud` at, wn)과 불가타역(fontes aquarum)을 따라서 ‘물의 넘침’을 ‘바 다의 원천’(~y-" ykeb.n)I 으로 읽도록 제안하고 있지만(욥 38:16; BHS), 마소라 사본의 독법도 어렵지만 나쁘지 않다.36) 정리하자면, 제 1행의 ‘혼돈의 물’과 제 2행의‘샘물’은 합성어(merismus)로써 ‘모든 물’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창 7:11에는 노 아 홍수의 맥락에서 hB'r: ~AhT. tnOy>[.m;-lK'[큰 깊음의 샘, 개역]라는 구가 나온 다).
태고의 심연과 연관된 세상의 모습은‘내가 태어났다’(yTil.l'Ax)로 연결된다. 이 동사는 ‘고통 중에 몸부림치다’는 어근(lyx)에서 나왔으며,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산고를 가리키며(사 13:8; 23:4; 45:10; 51:2), 남자에게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그러나 이 동사는 ‘낳다’(dly)라는 동사와 대구를 이루며 하나님에게는 적용된 다. 하나님이 낳으신 ‘이스라엘’ (신 32:18), ‘땅’ (시 90:2), ‘지혜’(잠 8:24)는 모 두 은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지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물(~AhT,. !y"[.m,; ~yIm); 도 존재하기 전에 태어났으며, 물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다 보게 되었다.
`yTil.l'(Ax tA[åb'g> ynEßp.li W[B'_j.h' ~yrIåh' ~r<j,äB. 25
앞 절에서 ‘~이 없었을 때’(!yaeB). 가 이제는 ‘아직 ~전에’(~r<j,B.)로 넘어가면서 지혜의 출현이 피조 세계가 존재하기 전이었음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해 준다.37)또한 앞 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심연’과 ‘샘’이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들’과 ‘언덕들’이 대비를 나타낸다.
제 1행에서 ‘(산이) 세움을 입다’([bj)라는 동사는 ‘발이 진흙에 빠지다’(렘38:22), ‘기초가 서다’(욥 38:6)와 같이 산의 뿌리가 바다 속에 심겨지는 영상(影 像)을 제시해준다. 요나 자신이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었다’고 말하는 바와 같이(욘 2:6),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산의 기초는 바다 위에 세워져 있 었다(‘산들의 터’ [~yrIh' ydEîs.Am], 신 32:22). 달리 말하자면, 산들은 땅의 형성 과정 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시 90:1‐2).
제 2행의 ‘언덕들’(tA[b'g>)은 ‘산’과 함께 자주 대구를 이루며, ‘높음’을 더욱 부 각시켜주고 있다(신 12:2; 33:15; 시 72:3; 114:4, 6; 148:9; 아 2:8; 4:6 등). 즉, 25절에서 ‘산의 뿌리가 깊음 속에 자리를 잡고 세워지는 모습’과 온 세상을 내려다 보는높은언덕들이대비를이루고있다. 지혜는바로이와같은주님의창조사 역이 이루어지기 전(ynEp.l)에 이미 ‘태어났다’(yTil.l'Ax). ‘태어나다’는 동사가 24‐25절에서 두 번 반복됨으로써 이 두 절을 묶어서4행(quatrain)을 이룬다.
`lbe(Te tArïp.[' varoaw÷> tAc+Wxw> #r<a,ä hf'['â al{å-d[; 26
마지막 다섯 번째로 ‘아직’(al-{ d[;)이 문장을 열어주면서, 이제 드디어 사람들 이 터전으로 삼고 거주하고 활동하는 ‘땅’(#r,a), 이 나타나고 있다. ‘땅’은 여기에 서 ‘들’(#Wx)과 ‘세계’(lbeTe)와 함께 나타나고 있으므로, 이 세상 전체를 가리키기 보다 다음 절에 나오는 ‘하늘’(27상반)과 ‘바다’(27하반)와 대비를 이루는 공간으로써, 사람이 거주하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가리킨다.38) 이리하여 앞 절에 나온 비경작지로서 ‘산들’과 ‘언덕들’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땅’과 ‘들’은 자주 평행을 이루며 나타나지만(삼하 22:43; 욥5:10; 18:17; 사 24:11; 51:23; 렘 7:34; 44:9, 21; 51:4; 애 2:21; 겔 26:11), 오직 여 기에서만 접속사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다. ‘들’(#Wx)로 번역된 단어는 ‘길 거 리’(잠 1:20; 삼하 1:20; 미 7:10; 사 10:6; 왕상 20:34)를 가리킬 때 사용되지만,기본적으로 ‘외부’ 혹은 ‘바깥’(outside)을 뜻하며 여기에서는 양들이 풀을 뜯는 곳(시 144:13), 도시 밖의 장소(욥 5:10)로 ‘넓은 벌판’을 가리킨다.39)
제 2행의 ‘세상 진토의 근원’(ꡔ개역ꡕ, lbeTe tArïp.[' varo)은 매우 특이한 구(句)이며, 여기에서 ‘세상’(tebel)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경작지를 기본적으로 가리킨 다. ‘진토의 근원’(varo)에서 ‘근원’(ꡔ개역ꡕ)으로 번역된 단어는 평가적 관점에서‘최고’(겔 27:22)로서 ‘농사에 가장 좋은 땅’으로 볼 수 있지만, 현재의 문맥은 지 혜의 선 존재성을 말하고 있으므로 시간적 관점에서 ‘첫 것’으로 보아야 한다(HALOT, 출 12:2; 민 10:10; 대상 16:7; 사 40:21 참조).40) 즉, 지혜는 이 세상의‘첫 흙덩이’가 만들어지기 전에 탄생하였다.41)
- 29) 이 동사($ks)는 하나님께서 모태에서 태아의 형질을 만들어가는 데 사용된다(시 139:13하; 욥10:11).31) D. Barthelemy et al., Preliminary and Interim Report on the Hebrew Old Testament Text Project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Alliance Biblique Universelle, 1977‐1980), 466에 서는 ytiKos;n. (I was hidden/ I was cast / I was fashioned)로 읽도록 제안한다.33) Waltke, The Book of Proverbs,1, 412.35) 왈키는히브리어카바드(kabad)의니팔형이동명사적(gerundive)인의미를가지며‘물로무거워지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므로, ‘넘치다’(abounding)로 번역한다. 우리 말 새 번역에서는 ‘물이 가득한 샘’ (ꡔ표준ꡕ)과 ‘물이 솟구치는 샘’(ꡔ공동ꡕ)이란 뜻으로 번역되고 있다.
- 36) Landers, BASOR 144 (1956), 31‐33; Dahood, Biblica 49 (1968), 363 참조.
- 34) Rogers, 112‐13.
- 32) Fox, Proverbs, 282.
- 30) R. N. Whybray, Wisdom in Proverbs: The Concept of Wisdom in Proverbs 1‐9 (London: SCM, 1965), 101. 와이브레이에 따르면, 이 동사는 “은유적으로 임신의 과정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다.”
- 38) Waltke,Proverbs,1,413.왈키는여기의땅이‘경작지’와‘경작할수없는땅’을모두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 37) 주옹과 무라오까에 따르면, 접속사 ~r<j, 다음에는 항상 익톨(yiqtol) 형이 ‘과거 동작’을 가리키 는 데 사용되는데(예, 수 3:1), 오직 여기와 시편 90:2에만 카탈(qatal) 형이 나오고 있다. Paul Joüon, T. Muraoka, A Grammar of Biblical Hebrew (Roma: Editrice Pontificio Istituto Biblio, 2006), #113 j.
- 39)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벌판’과 ‘들’로 이해한다. 아람어(bar)는 ‘바깥’과 ‘들’을 뜻한다. 70인역 은 ‘비거주지’로, 시리아역은 ‘강’으로 제시한다.
- 40) ‘the first clods of earth to be formed’(HALOT). THAT 2:708 참조.
- 41) Fox, Proverbs, 284.
3. 우주 창조 과정에서의 지혜(27‐29절)
이 연은 ‘~할 때’(be)가 각 절에서 두 번씩 나타나 모두 여섯 번 반복되면서 통 일성을 이루고 있다. 앞 연(24‐26절)에서 주님의 창조 역사는‘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공간 이동을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정반대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리하여, ‘하늘’(27상반)과 ‘그 (하늘바다) 수평선’(27하반)에서‘궁창과 구름’(28상반)과 ‘깊음의 샘’(28하반)으로 내려온 후에, ‘바다와 해안 선’(29상중)과 ‘땅의 기초’(29하반)로 내려가고 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의 공간 구조를 확정해 나갈 때, 지혜도 ‘거기에 있었으며,’ 창조의 다섯 사역인(1) 하늘 을세움, (2) 궁창의수평선을세움, (3) 구름을견고하게함, (4) 샘을힘있게함, (5) 바다의 경계를 정함에 함께 하였다고 한다. 즉, 27‐30절은 이 세상에 있는 중 심 경계로써 하늘과 바다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하늘을 세우는 작업’ 외에 나머지 네 가지는 모두 물을 정복하며 다스리는 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Ah)t. ynEïP.-l[; gWx÷a AqWxïB. ynIa"+ ~v'ä ~yIm;v'â Anæykih]B; 27
이제 앞 연에서 소개된 지혜의 탄생으로부터, 우주 창조와 세계 질서에서 그의 역할이 제시된다. 또한 앞 연의 부정적인 상황 설정에서 긍정적인 창조 활동으로 넘어가며, 지혜는 더 이상 ‘출생의 과정’을 거쳐 가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온 세상의 질서가 현재의 형태로 이루어져가는 것을 목격한 증인의 역할을 하였 음을 밝히고 있다.
이 절은 ‘주께서 하늘을 견고히 하다’(!wk)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하 늘’은 앞 절에 나온 ‘땅’과 대비되는 실체로써 ‘궁창의 공간’을 말한다. ‘견고히 하다’는 ‘세우다’는 뜻으로 ‘창조하다’의 동의어이며, ‘하늘을 세우다’는 ‘하늘을 창조하다’는 뜻으로 빈번하게 나타난다(시 89:2; 103:19; 잠 3:19). 즉, 하나님께 서 하늘을 견고하게 세우셔서 그 경계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제 1행의 ‘하늘을 세우다’와 대구를 이루는 제 2행의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ꡔ개역ꡕ)라는 구는 번역이 매우 까다롭다. 먼저 ‘궁창’(ꡔ개역ꡕ, ꡔ개역개정ꡕ)으로 번역된 단어(gWx)는 기본적으로 ‘원’(圓) 혹은 ‘환’(環)을 가리키며, ‘해면’과 함께 나타날 때에는 ‘수평선’을 가리킨다(욥 22:14; 26:10; 사 40:22). 따라서 이절은‘바다의수평선을그을때’로볼수있지만그것은29절에나타나고있기 때문에, 태고의 물을 정복하면서 첫 ‘하늘’과 ‘물의 경계’를 만드는 ‘궁창의 수평 선’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42) 또한 ‘두르다’(ꡔ개역ꡕ)로 번역된 동사(qqx)는 기본적으로 ‘새기다’(inscribe, carve)를 뜻하지만, ‘원을 새기다’는 ‘궁 창의 테두리를 만들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지혜가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보면서 ‘묵상하고 기뻐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43) 혹은 ‘증인의 자격’으로 있었다(Whybray)는 뜻으 로 이해된다.44) 폭스는 ‘거기’(sham)가 ‘장소’가 아니라, ‘상황’이나 ‘일련의 사 건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본다(사 48:16하).
`~AhT. tAnðy[i zAz©[]B÷; l[;M'_mi ~yqIåx'v. AcåM.a;B. 28\
27절의 ‘하늘’과 ‘궁창’의 경계에서 이제 하늘에 떠 있는 ‘구름’(28상)과 바다 아래에 있는 ‘지하수’로 넘어가고 있다. 즉, 높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낮은 바다 에 있는 ‘샘들’이 대비를 이룬다.
구름’(~yqIx'v). 의 어근은 ‘문지르다’, ‘가루로 만들다’는 뜻이며, ‘가는 먼지’ (사40:15)나 구름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여기에서 ‘구름’은 대유법으로서 ‘천사들’ (시 89:7)을 가리키지 않으며, 기상학적인 용어로서 ‘비구름’을 뜻한다(잠 3:20;신 33:26; 시 18:12; 77:17 등). 제 1행에서 ‘구름을 하늘 위에 견고히 하였다’는 말은 역설적이다. 어떻게 잡을 수 없이 흐르는 구름을 견고히 할 수 있는가? 여기 에서 ‘견고히 하다’는 ‘강화하다’, ‘확고히 하다’(대하 24:13)라는 뜻을 갖고 있으 므로, 구름이공중에떠있을수있도록하였다는뜻으로이해할수있을것이다.히브리인들은 ‘구름’이 ‘두들겨 편 놋 거울처럼 견고한 것’으로 인식하였다(욥37:18). 이리하여 하늘 위에 있는 궁창의 물이 이 세상에 쏟아져 범람하지 않도록 창조되었다고 이해하였다. 즉, 구름도 하나님의 능력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어 준 다.
제 2행에 나오는 ‘바다의 샘들’(~AhT. tAny[I 24, 27절)에서 ‘바다’(~AhT.)는 더 이상 ‘태고의 심연’이 아니며, 우리가 알고 있는 대양의 바다를 가리킨다. 이 바다에 있는 ‘샘들’에서 물들이 솟아나 모든 생물들의 식수의 근원이 되고 있 다. 그런데 그 깊은 곳에 있는 물을 어떻게 땅에 있는 생물들이 마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힘 있게 함으로써’(zAz[]B); 라고 대답한다. 이 동사는 칼 형에서‘힘이 있다’(to be strong)이지만, 70인역(evti,qei), 페쉬타(!yv[a), 불가타의 독법(librabat)을 따라 피엘형으로 읽으면, ‘강하게 하다’(zAZ[]B;)가 된다(BHS 각주를 보라). 즉, ‘바다의 샘들을 강하게 하다’는 ‘샘물들이 솟구쳐 오르게 한다’는 뜻으 로이해할수있다. 이리하여바다에있는물들이땅을적시는데도움을주게된 다. 지상에 있는 샘들은 바다의 심층수가 솟아오르는 출구가 된다(창 7:11; 8:2).지하깊은곳에있는물들이치솟아오를수있는힘을주님께서주셨다.
`#r<a'( ydEs.Amå AqaWxB÷. wypi_-Wrb.[;y:) al{å ~yIm;Wâ AQaxu Ÿ~Y"“l; AmÜWf«B. 29
이제 하나님의 지혜는 드디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창조 의 사역을 목격하고 있다. 그는 멀고 먼 ‘하늘의 지평선’(27절)과 깊고 깊은 지하 의 ‘샘물’(28절)을 떠나 인간 세상에 내려온다. 이 세상은 먼저 ‘바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바다의 ‘한계’ (qx)o ’라는 용어는 인간사회에 적용될 때 기 본적으로 ‘법’과 ‘칙령’을 뜻하며(창 47:26; 출 18:16), 자연세계에 적용될 때에는‘경계’를 뜻한다(욥 26:10; 38:33; 미 7:11). 하나님께서 바다에 경계를 정하신 이유는 난폭한 바다의 물결이 땅을 덮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시 104:9; 욥38:8, 10). 즉, 바다도 주님의 명령에 꼼짝 없이 순종하게 되었다(욥 38:8‐11). 창 조주 하나님께서는 땅과 바다의 경계를 확실하게 세우셨으며, 이 경계가 불변함 을 말해준다.
제 3행에서 ‘땅의 기초를 세울 때’는 구문론적으로 매우 어색하게 독립절로 존 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리하여 몇몇 번역에서는 이 절을 다음 절로 연결시키기 도 한다(RSV; NET).45) 만약 이 절을 현재의 자리에 둔다면, “바다의 경계를 경 하고, 땅의기초를세워물이그의명을거스르지못하게하였다”로이해할수있 을 것이다. 여기에서 ‘땅의 기초’(#r<a' ydEs.Am)는 ‘산의 뿌리’로서, 이 세상에서 ‘가 장 낮은 곳’을 지시하고 있다(25절; 미 6:2; 시 18:8=삼하 22:8; 사 40:21).
수사학적으로 볼 때 이 절에서 ‘그가 정하실 때’(AqWxB). 는 이 연의 핵심 단어로 서, 27절과 29절의 ‘수미일치’를 만들어주고 있다. 즉, ‘해면의 경계’(gWx)를 ‘그 을 때’ (AqWxB). 로 시작하여, ‘(바다의) 경계’(gWx, 29상)를 두고(AmWfB)와 ‘(땅의 경 계를) 세울 때’(AqWxB). 로 이어지고 있다. 즉,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경계를 확실하 게 세우셨으며, 그 때마다 지혜는 증인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 42) 크라소비치(Krasovec)는 ‘하늘’과 ‘해면’을 합성어로서, ‘온 세상과 그 경계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J. Krasovec, Der Merismus im Biblisch-Hebraeischen und Nordwestsemitischen (Rome: Pontifical Institute for Biblical Studies, 1977), 154.
- 43) Waltke, Proverbs, 1, 415.
- 44) Whybray, Proverbs, 133.
- 45) Yee,“AnAnalysisofPro8:22‐31”,61.그는명백하게앞행과단절을시키고뒤따라나오는절 로 연결하고 있다.
4. 우주 창조를 축하하는 지혜(30‐31절)
긴 조건 절이 끝나고(28‐29절), 이제 지혜가 ‘내가 거기에 있었다’(27절)는 말 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혜는 창조주 하나님의 곁에서 지속적 으로 함께 하였으며, 주님의 창조를 기뻐하였다. 욥은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자신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였지 만’(욥 38:2‐7), 지혜는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우주와 인생에 대한 참된 이치를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t[e(-lk'B. wyn"åp'l. tq,x,Þf;m. ~Ay= Ÿ~AyÝ ~y[ivu[]v;â hy<åh.a,w") !Amïa'ñ Alac.a, hy<ïh.a,w") 30
‘내가 거기에 있었다’(27절)와 ‘내가 그 곁에 있었다’(30상반)는 이 단락을 단 단히 묶어주고 있다. ‘곁에 있다’(hyh+lc,ae)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 리칠 때처럼, ‘곁에 눕다’(창 38:10)처럼 가까운 거리를 말해준다(겔 43:6). 지혜 는창조의모든과정에서목격자로있었을뿐아니라, 이제 창조주 바로 곁에 자리를 잡고 창조의 과정을 음미하고 있다.
이 절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창조자’(ꡔ개역ꡕ)로 번역된 단어(!Ama)' 가 원래 무엇을 의미하였느냐에 있으며, 크게 네 가지의 뜻으로 번역되고 있다.46)
(1) 이 단어(!Ama)' 는 창조 활동과 연관되어, ‘창조자’(ꡔ개역ꡕ), ‘건축자’ (architect, BFC), ‘장인’(NIV;NIB), ‘명공’(master craftsman, NRS, NAS, NJB;maître d'oeuvre, T0B, der Werkmeister, L45), ‘창조의 명공’(ꡔ표준ꡕ) 등으로
번역된다. 대부분의 고대역본들과47) 고대의 문헌과48) 현대의 학자들은 이 입장 을 지지한다.49) 히브리어에서 개인의 이름으로 아몬(!Ama)' 이 등장하며(왕상22:26; 대상 3:14; 렘 1:2; 25:3; 느 7:59), ‘장인’(!M'au)이란 히브리어가 페쉬타(출28:11)에 나타나고 있으므로,50) 이것은 가능한 번역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예레미 야 52장 15절에 나오는 구(!Ama'h' rt,y<)는 여러 번역에서 ‘남은 장인들’(the rest of the artisans /craftsmen; NIV, NRS, NAS, NET, NIB, BFC, L45; ‘살아남은 기술 자들’, ꡔ표준ꡕ, ꡔ공동ꡕ)로 번역된다.
그렇지만, 개인의 이름으로서 아몬이 꼭 ‘장인’이란 뜻을 가진다고 말할 수 없 고, 페쉬타 히브리어는 후대의 히브리어이며, 예레미야 52장 15절의 구는 70인 역에 나타나지 않으며, 이 절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열왕기하 25장11절에서는‘무리’(!Amh'h, rt,y< ‘the multitude’)로 읽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다의 모든‘장인들’(vrx" h' ,-lk')은 주전 586년에 포로로 잡혀갔으며(왕하 24:14, 16), “만약 네레이터가 열왕기하 26장 11절에서 ‘장인들’을 말하고 싶어했다면, 정상적인 히브리어(vrx' )' 를 사용하였을 것이다”.51) 나아가 우리가 만약 현재의 본문에서‘장인’으로 읽고 싶어한다면, 이와 유사하지만 발음이 다른 어휘로써 ‘공교한 장 색’을 뜻하는 단어(!M'a)' 로 제시하였을 것이다(아 7:2 [한 1절]).52) 다른 무엇보다도, 현재 잠언 8장의 맥락에서 지혜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창조 과정에 참여 한 ‘창조자’나 ‘명공’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마지막 절에서 ‘지혜의 창조 사역’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전체적인 문맥에 일치하지 않는다(그러나 잠 3:19, 시 136:5, 렘 10:12, 51:15에는 창조에 있어서 지혜의 역할이 나 온다).
- 46) R. B. Y. Scott, “Wisdom in Creation: the 'Amôn of Proverbs 8:30”, VT 10 (1960), 213‐223 참 조.
- 47) 이 번역은 70인역(ar` moz, ousa, ‘arranger, establisher’ or ‘binding, uniting’)과 시리아역(metaqena')과 벌게이트(artifex), Jerome (cuncta conponens, ‘binding, arranging, fashioning, uniting’)를 따르고 있다.
- 48) 솔로몬의 지혜서 7:21과 8:6도 ‘지혜는 만물을 만든 자’라고 말하며, ‘그녀는 존재하는 모든 것 의 조성자’라고 한다. 필로는 로고스(logos)와 소피아(sophia)의 구별을 없애고, “그로 말미암아 우주가 만들어졌다(di' hou ho kosmos edmiourgeito [de Sacerdot. 5])라고 말하였으며, 이것은 요한복음 1:3이하와 골로새서 1:16의 근거가 되었을 수 있다. 그는 소피아‐로고스가 ‘만물의 띠’(bond of all things)’라고 주장하였으며, 이것은 골로새서 1:17의 근거가 되었을 수 있다.
- 49) Koenig, Gesenius, BDB, Albright, NIV, RSV 등.
- 50) Sept. tecni,thj, Vulg. artifex, 페쉬타 출 28:11.
- 51) Waltke, Proverbs, 1, 417.
- 52) Akk., ummanu; 셈어의 장모음 아(a)는 히브리어에서 규칙적으로 장모음 오(o)로 바뀐다 (예,
- gibbor). W. McKane, Proverbs: A New Approach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70), 357.
(2) 마소라 사본의 이 단어(!Ama)' 는 ‘돌보다’, ‘양육하다’는 동사(!ma II)에서 나 온 명사형으로 보고, ‘유아’(!Wma' Qal 수동분사)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 다.53) 상당히 많은 학자들과54) 고대 번역 가운데 아퀼라역의 ‘어린아 이’(tiqhnoumenv h), 그리고 현대의 여러 번역본들(KJV, JPS, Moffatt)이 이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55) 이 번역은 22절의 ‘나를 낳았다’(ynIn"q)' 와 24절에 있는 ‘내가 이 미 났었다’(yTil.l'Ax)와 어울리며, 이 절 3행에 나오는 (어린아이의) ‘웃음’(tq,x,f;m.)과 ‘즐거움’(y[;vu[]v); 과도 잘 연결되고 있다.56)
그렇지만, 히브리어에서 칼형 수동형 분사가 되려면, 지혜는 여성형이므로 여 성형 분사로 나타나야 하며(tn<m,ao ‘유모’ 삼하 4:4; 룻 4:16), 남성형 ‘길리운 자’(~ynImua/')도 현재 우리 본문의 단어와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애 4:5).57)또한 31절에 나오는 ‘웃음’과 ‘즐거움’을 꼭 어린아이와 연결할 필요는 없으며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현재의 문맥에서 지혜는‘태어났지만’(22, 24‐25절), 그 어디에서도 자라가는 과정이 없었으며, 그는 하나 님의 창조 과정에서 목격자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대미에서 갑자기‘어린아이’로 등장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 53) 칼 능동분사 남성형(!meao)은 ‘유모’(민 11:12; 사 49:23), ‘아이들의 교육자’(왕하 10:1, 5; 에2:7), 여성형(tn<m,a)o 도 유모의 뜻으로 사용된다(삼하 4:4; 룻 4:16). 동일 어근의 남성 복수형(~ynImua/')은 ‘어린아이들’(‘색동 옷을 입고 자라던 이들’, ꡔ표준ꡕ)로 나타난다(애 4:5).
- 54) G‐B, Castell, Toy, Gunkel, Fichtner, Kayatz, B. Lang, Fox 등.
- 55) KJV, ‘one brought up’; JPS, ‘nursling’; Moffatt ‘foster‐child.’
- 56) 카야츠는 현재의 본문과 이집트의 지혜(마아트) 출현 신화와 연결시키고 있다. “아툼은 그
- 의 딸이요 수(Schu)의 여동생인 테프누트(Tefnut)가 마아트(Maat)임을 공식화했다. 그는 태 초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에, 오직 마아트와 슈와 그의 자녀들만이 그와 함께 있었 다”(C. B. Kayatz, Studien zu Proverbien 1-9, Eine form-und motivgeschichtliche Untersuchung unter Einbeziehung aegyptischen Vergleichsmaterial, WMANT 22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1966: 93‐95). 이 본문에서도 마아트의 실제적인 창조 활동에 대한 언급은 없으 며, 단지 태초에 놀고 있는 유아로 그려지고 있다. 마아트와 슈는 선재하고 있었다. 땅이 창조되 기 전에 지혜는 존재하고 있었으며, 신들과 같이 있었다. 그러나 잠언 8:30의 지혜와 이집트의 마아트를 동일한 개념적 범주로 보고 연결하는 데에는 두 종교의 근본적 차이를 지나치게 단순 화 하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 57) 폭스는 이 단어에 대해 아무런 수정 없이 ‘부정사 절대형으로서 부사적 보어’로 보며, ‘그와 함 께 자라고 있었다’로 제시하지만, 이 제안 역시 부정사 능동형은‘기르다’(raising up)는 뜻을 갖 고 있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 M. Fox, “Amon Again”, JBL 115 (1996), 699‐702.
(3) 현재의 구문(!Amïa'ñ Alac.a, hy<ïh.a,w"))에서 ‘아몬’은 바로 앞에 나오는 전치사(lc,ae)의 삼인칭 남성 단수(A)와 동격으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아몬’을‘상태의 대격’(accusative of state)으로 보고,58) “나는 창조자(명공)인 그의 곁에 있었다”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입장은 브나르(B. Bonnard)에 의해 “j'étais près de lui, le maître d'oeuvre”로 처음 제시 되었으며,59) 그는 그 근거로 게세니 우스‐카우치의 문법 설명을 제시하였다.60) 다후드는 보나드의 설명을 받아들이 며, 구약성경(시 69:4b; 86:11; 욥 36:2, 22), 우가릿 문헌(UT, 2060:15‐16)과 페 니키아 문헌을 제시하며, 이 입장을 받아들인다.61)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창조 자로서의 지혜의 역할은 배제되고 주님이 창조자가 되므로 전체의 흐름에 완벽 하게 일치된다.
- 58) ‘상태의 대격’ (accusative of state)이란 “동사의 주어나 목적어가 동작이 일어날 때나 그 동작 과 연관하여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묘사해 주는 것이다”(Waltke & O’Connor, IBHS, 171). 예 로써 창세기 25:25, “먼저 나온 자는 붉었다” (ynAëI mda> ; ‘!AvarhI ' acYÛe wE :)를 들 수 있다.
- 59) 보나르(B. Bonnard)의 입장은 André Barucq, Le livre des Proverbes (Paris: J. Gabalda, 1964), 235에 처음 인용되었다.
- 60) Gesenius‐Kautzsch, Grammatik 131 n. 그는 haBä' ' ‘hy' l,’g>r: lAqÜ (the sound of her feet as she approached, 왕상14:6)을 대표적인 예로 들고 있다.
- 61) 다후드는 상태의 대격(lxey:m). 이 앞서 나오는 전치사의 접미어를 묘사하는 경우로서 시편69:4 (한3절)를들고있다;lxaeym:.÷yny+:[eWlKï는' “내눈이빠지게기다립니다”로번역될수있다. Dahood, “Proverbs 8:22‐31”, 519.
- 62) J. C. K. von Hoffmann, Der Schriftbeweis (Noerdlingen: C. H. Beck, 1857‐1860), 1:98. Waltke, Proverbs, 1, 419에서 인용됨. O. Plöger, Sprüche Salomos: Proverbia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84), 95.
(4) 이 단어(!Ama)' 는 ‘신실한, 성실한’이란 단어(!ma I)의 부정사 절대형으로 볼 수 있으며 고대의 역본(Symmachus, Theodotion, Targum)과 현대의 학자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62) 왈키는 이런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 절을 번역하고 있다.63)
- 나는 성실하게(faithfully)
- 나는 날마다(daily)
- 항상(at all times)
그의 곁에서 있었으며,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혜를 ‘명공’(‘창조자’)이나 ‘유아’로 볼 필요가 없어지게 되며, 단지 그가 하나님 가까이에서 만물의 창조를 세심하게 지 켜보며 기뻐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64)
- 62) J. C. K. von Hoffmann, Der Schriftbeweis (Noerdlingen: C. H. Beck, 1857‐1860), 1:98. Waltke, Proverbs, 1, 419에서 인용됨. O. Plöger, Sprüche Salomos: Proverbia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84), 95.
- 63) Waltke, Proverbs, 1, 420.
- 64) 윤영탁은본문에대한상세한주석적토론을거친후에,다음과같은결론을내린다.“지혜가창조 이전에 존재하였고, 또한 창조자가 되어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인간을 기뻐하였다는 말씀들은 단순한 시적 의인화설이나 인격화설로는 도저히 만족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과 공 존하며 피조물보다 먼저 존재하였고 또한 창조자인 동시에 하나님과 성령과 구별된 존재로서 의 지혜는 여기에서 제 2위이신 성자를 나타내주는 것이 틀림 없다.” 윤영탁, “잠언 8:22에 나타 난 ‘카나니’(나를 가지셨다)에 관한 고찰’, 118.
정리하자면, 우리는 천지창조 전에 태어나, 창조의 모든 과정에서 목격자가 된 지혜가 30절에서 갑자기 ‘창조자’ 혹은 ‘명공’이 되었다는 입장이나, ‘어린아이’가 되어 하나님 곁에서 기뻐하였다는 입장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약을 요청하 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으며, 따라서 아몬을 ‘상태의 대격’으로 보고 창조주 하 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든지, 혹은 부정사 절대형으로 보고 ‘성실하게 그의 곁에 있었다’로 보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65)
본 절의 제 2행을 이루고 있는 ‘나는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다’(개역,개역개정)는 원문을 직역하자면 ‘나는 날마다 기쁨이었다’(~Ay= Ÿ~AyÝ ~y[ivu[]v;â hy<åh.a,w")가 되며, ‘누가 누구를 어떻게 기뻐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히브리어 구문 에서 ‘나는 기도이다’(시 109:4)는 ‘나는 기도할 뿐이다’, ‘나는 평화이다’(시120:7)는 ‘나는 오로지 평화를 추구한다’는 뜻을 가지며, 따라서 ‘나는 기쁨이다’는 ‘내가 기뻐하였다’는 뜻이 된다. 즉, “지혜가 주님의 창조를 보면서 기뻐하였 다”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70인역은 ‘나는 그가 기뻐하는 자였 다’(evgw. h;mhn h-| prose,cairen)로 읽고 있으며, 여러 현대 번역들도 지혜가 하나님 에게 기쁨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KJV, RSV, ꡔ개역ꡕ, ꡔ표준ꡕ, ꡔ공동ꡕ).폭스(Fox)는 이런 관점에서 지혜는 ‘기쁨의 원천이었다’로 해석한다(사 5:7; 렘31:20; 시 119:24). 그러나 이 단어는 ‘지혜가 기뻐하다’는 뜻으로 31절 끝에서 다시한번더나타나므로, 지혜가기뻐하는주체로생각할수있다. 즉,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의 전과정을 보아 왔기 때문에,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 과 영광을 보고 놀라고 기뻐하였다.
마지막 3행에서 ‘그 앞에서 항상 즐거워하였다’(tq,x,Þf;m.)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다’(슥 8:5)와 ‘춤추다’는 뜻을 갖고 있다(삼상 18:7).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시온 성으로 들어올 때 너무나 기뻐 춤을 추었다(대상 15:29; 삼하 6:5, 21). 욥기38:7에 따르면 천사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서, “함께 노래하며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ꡔ개역ꡕ)고 한다.66)
천지창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갑자기 지혜가 천진난만하게 놀고 기뻐하는 모습은 잠언 1‐9장에서 갖는 지혜의 권위에 일치하는 것 같지 않지만, 이 즐거움 과 기쁨과 웃음을 활력의 상징(렘 30:19; 31:4; 시 104:26)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아주 자연스런 반응이 될 것이다. 특히 ‘~앞에서 기뻐한다’는 의식 적인 행동으로서,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보고 경배하는 기쁨을 드러내어 준다. 사 울과 다윗이 블레셋군을 물리치고 돌아올 때, 여인의 무리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기뻐하였다 (삼상 18:7). 회복된 이스라엘은 새로운 하나님의 축복을 기뻐하며(렘 30:19), 춤출 것이다(렘 31:4). 웃음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상징해 주기 때문 에, 웃는 자는 특별한 위치를 부여 받은 자이다(창 21:9참조). 지혜가 하나님 앞에 서뛰노는것이같은맥락을갖고있다.
`~d"(a' ynEïB.-ta, y[;avu[]v;w>÷ Ac=r>a; lbeäteB. tq,x,f;m.â 31
30‐31절은 완벽한 교차대구 구조를 이루고 있다(A:B//B’:A’).
30절 나는 늘 그의 곁에서 있었으며, 날마다 기뻐하였으며(~y[ivu[]v;, A)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다(tq,x,Þf;m., B).
31절 나는 사람이 거처할 땅을 즐거워하며(tq,x,Þf;m., B’ )인자들을 기뻐하였다(y[;vu[]v,; A’)
그렇지만, 이 두 절에 있어서 시상의 발전도 있다. 30절에서 지혜는 하나님 곁 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지만, 이제 사람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제 1행에 서 “그의 땅의 거주지를 기뻐하였다”는 문장의 의미는 모호하며, ‘그의 땅’은 ‘주 님의 땅’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땅은 주님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주님이 지으신 땅 가운데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곳(lbeTe)을 기뻐하였다”는 뜻이 다.67) 여기에서 ‘거주지’는 제유법으로 부분을 통하여 전체를 말하는 기법이다.달리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 세상 가운데서 특히‘사람들이 거주할 곳’을 기뻐하였다는 것은 주님의 창조가 특히 인간들이 살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제 1행에서 ‘사람이 살 세상’을 기뻐한 지혜는 제 2행에서 ‘사람’을 기뻐한다.여기의 ‘사람’은 온 인류를 뜻한다. 지혜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과 함께 놀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러서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 는 하나님 앞에서 늘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으며 또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 나님의 지혜를 그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며, 간절히 주고자 한다.
- 65) 우리는최종적으로상태의대격으로이해하고번역하였다.
- 66) 킬(Keel)이연구한애굽의벽화그림들을보면,마아트는왕의아내로서,성적인자극을제공하67) 히브리어 구문(lbeteB. tq,x,f;m.)은 ‘그의 땅에서 기뻐하다’로 번역할 수 있지만(ꡔ개역ꡕ,ꡔ개역개정ꡕ; ‘땅 위에서’ ꡔ공동ꡕ; NJB, JPS), ‘땅을 기뻐하다’(NIB, ‘rejoicing in the habitable part of his earth’)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NIV, NRS, NAS, NET).
- 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왕도 의식적인 행동으로 신들을 기쁘게 하려고 장난을 치고 있다. “잠 언 8:22‐31에 따르면, 세상의 비밀은 신의 기쁨과 즐거움에 있다. 욥기 28장은 세상의 비밀을 아 는 것이 인간에겐 불가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잠언 8장에 따르면, 우주의 기초는 슬픔과 혼란스 러운 우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랑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이다”. O. Keel, The Symbolism of the Biblical world :ancient Near Eastern Iconography and the Book of Psalms(Winona Lake, Indiana: Eisenbrauns, 1974), 72.
5. 나가는 말
우리는 본고에서 잠언 8:22-31의 지혜는 태초의 우주 창조 전에 하나님에게서 직접 태어났고, 천지창조의 모든 과정에서 ‘목격자’로서 창조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며,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와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을 기뻐하였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본 단락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8:22의 hnq는 ‘낳았다’로, 30절의 !Ama은' ‘창조자’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우리는 최종적으로 본 단락을 다음과 같이 사역해 보았다.
- 22 주님께서 태초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68)
곧 오랜 옛적에 일들을 시작하기 전에 나를 낳으셨다. - 23 영원전, 태고의그옛날, 땅이생기기전에,나는 모습을 갖추었다.
- 24 아직 깊은 심연이 생기기 전에,
솟구쳐 오르는 원천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었다. - 25 아직 산들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언덕이 솟아 오르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었다. - 26 아직 주께서 땅과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였다.
- 27 주께서 하늘을 견고히 세우시며,
궁창 윗물의 수평선을 그으실 때에, 내가 거기에 있었다. - 28 주께서 구름이 떠도는 궁창을 저 위에 견고히 세우시고,
깊은 샘물을 솟구쳐 오르게 하셨을 때에 내가 거기에 있었다.69) - 29 주께서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어,
물이 주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고,땅의 기초를 세우셨을 때에,.
- 30 나는 창조주의 곁에 있었으며,날마다 기뻐하고, 늘 즐거워하였다.
- 31 나는 주께서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주가 지으신 사람들을 기뻐하였다.
68) 주님(hwhy)을문두에둔것은마소라사본을따라강조하기위함이며,‘시작하기전에’에서전치 사를 추가한 것은 제 2행의 ‘전에’(~d,q,)가
이중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69) 여기에서‘내가거기에있었다’는원문에없지만생략된것으로보고27절에서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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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교수
지혜가 부른다(잠 8장)
[1-11절]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페사임)[단순한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네기딤)[고상한 것들, 귀한 것들]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페니님)[산호들(BDB, KB), 홍보석(KJV, NIV), 보석(NASB)]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솔로몬은 지혜를 인격체처럼 표현한다. 지혜는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사람들을 소리 높여 부르며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게 외친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은 지혜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내용은 고상하고 선한 것이며 정직하고 의롭고 진실한 것이다. 지혜의 훈계와 지식은 은이나 정금보다, 진주보다 낫고 사람이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낫다.
[12-13절] 나 지혜는 명철(오르마)[사려깊음, 신중함](KJV, NASB, NIV)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메짐마 )[분별력](NASB, NIV)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지혜는 사려깊음 속에 있다. 또 지혜와 지식과 분별력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인다. 지혜는 사려깊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불의와 악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와 선과 진실을 택하는 것이다.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이 악이다.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교만은 대표적인 악이다. 잠언 6:16-17은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악 중 첫째가 ‘교만한 눈’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뜻과 계명의 내용은 선과 사랑이며, 죄와 악은 그것을 거슬러 행하는 것이다. 또 패역한 입도 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거역하고 의와 선을 거절하며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것이다.
[14-17절] 내게는 도략(에차)[계획]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비나)[이해력]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참 지식’이라는 원어(투쉬야)는 ‘완전한 지혜’라고도 번역된 말로서(잠 2:7; 3:21) ‘건전하고 유능한 지혜’라는 뜻이다. 그것은 어떤 일의 배경과 건전한 진로를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리킨다. 지혜 안에는 도략과 참 지식이 있고, 또 명철이 있다. 지혜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힘이 있다. 왕들은 지혜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며 방백들은 공의를 세우며 재상(宰相)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도 지혜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 특히 지혜는 의와 선을 분별하게 하고 그것을 택할 힘과 용기를 준다.
지혜를 얻는 길은 무엇인가? 지혜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거나 미워하는 자들은 지혜를 알지 못한다. 또 지혜는 그것을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나지만, 그것을 간절히 찾지 않는 자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의(義)와 영생을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만나며 의(義)와 영생을 얻듯이, 우리가 지혜를 간절히 찾으면, 지혜를 만나며 지혜를 얻을 것이다.
[18-21절]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지혜의 유익과 가치는 크다. 첫째로, 지혜는 부요를 준다. 지혜는 물질적 부요를 가져오고, ‘장구한 재물’(KJV, NASB, NIV) 혹은 ‘물려줄 재물’(KB)을 가져온다. 둘째로, 지혜는 영예를 가져온다. ‘부귀’는 부(富)와 영광 혹은 영예라는 말이다. 다니엘은 지혜로웠고(단 1:17, 20) 존귀와 영예를 얻었다(단 2:48; 5:29). 셋째로, 지혜는 의(義)를 가져온다. 지혜는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며(딤후 3:15), 또 의로운 인격으로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천은[순은]과 정금[순금]보다 낫다. 잠언 3:14-15,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22-31절]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었느니라.
솔로몬은 지혜를 인격체처럼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혜를 가지셨고, 창세 전에 지혜가 세움을 입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 같다.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해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말씀하셨다(눅 7:35). 창세 전, 즉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산이 세움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땅도, 들도, 세상의 흙의 근원도 아직 지어지지 않았을 때, 지혜가 이미 났었고 또 하나님께서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으로 해면에 두르실 때 지혜가 거기에 있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식사 후에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었다(요 17:5).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하였다(골 1:15).
솔로몬은 또 하나님께서 구름 하늘을 견고케 하시고 바다의 샘들을 힘있게 하시고 바다의 한계와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 지혜가 하나님 곁에 있어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고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다고 말한다. ‘창조자’라는 원어(아몬 ןוֹמאָ)는 ‘기술자, 장인’이라는 뜻이다.4) 요한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했다(요 1:3).
[32-36절] 아들들아, 이제 내게 들으라. 내 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훈계를 들어서 지혜를 얻으라. 그것을 버리지 말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코트이)[나를 잃는 자(NIV), 내게 범죄하는 자(KJV, NASB)]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솔로몬은 자녀들에게 날마다 지혜를 듣고 지키고 기다리라고 교훈한다. 또 지혜를 얻는 자가 복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지혜를 버린 자는 화가 있다고 말한다. 36절,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 믿기를 거절하면, 그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범죄하는 자요 지혜를 잃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죄사함을 얻지 못한 죄인 그대로이며 지옥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본장은 지혜가 무엇인지 말한다. 지혜는 가장 선한 것이며 정직한 것이며 의이며 진실 혹은 진리이다. 또 지혜는 곧 명철이며 지식이고 근신 곧 분별력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이며 가장 중요한 내용인데, 그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악 중에 첫 번째 악은 교만이다. 그러므로 지혜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며 교만과 패역을 버리는 것이다.
둘째로, 본장은 지혜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지혜는 은이나 정금보다 더 가치 있고 진주나 산호보다 더 가치 있다. 지혜는 왕들과 재상들이 그것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처리할 많은 일들을 처리한다. 또 지혜는 물질적 부요와 존귀와 영광을 가져오고, 우리에게 의를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고 또 구원받은 자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통해 거룩해지고 의로운 인격자가 되게 한다. 실상, 이 지혜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가지고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신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자이셨다. 또 이 지혜는 우리 모두에게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준다.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우리는 물질적 부요를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하며,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하고 정직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한 것을 소유해야 한다. 또 우리는 교만과 악을 버려야 한다. 또 우리가 지혜를 얻으려면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간절히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좋은 것 중에 좋은 것은 바로 지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고 믿고 행함으로써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https://cafe.daum.net/correct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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