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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서

잠언 3 - 4장 주석 및 본문 연구

by 은총가득 2021. 11. 12.

 

 

성 경: [잠3:1]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 여기에 나타난 '법'(*, 토라티)은 모세 오경과 같은 어느 특정한 교훈들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곧 이러한 법을 일반적 의미의 종교적, 도덕적 교훈들로서 집단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적용을 특징으로 한다(Toy).


ꃨ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 여기서 '마음'(*, 레베크)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 사상의 원천이 되는 곳을 뜻하며, '지키라'(*, 이초르)는 '순종하다', '보호하여 지키다'란 뜻을 각각 가지는 바, 본문은 '명령',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인격적인 순종과 적극적인 수호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본절 전체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극적 권고(잊어버리지 말고)와 적극적 권고(지키라)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성 경: [잠3:2]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여 -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장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신앙의 중심을 지킨 인물이 누리게 되는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였다(출20:12;왕상 3:14). 또한 '많은 해'(*, 우쉐노트 하임)는 문자적으로 '그 생명의 날들'이란 뜻이다. 이는 '장수하여'와 동일한 의미로 볼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물질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행복한 삶의 날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곧 '장수하여'가 축복의 양적 측면을 말한다면, '많은 해'는 그 축복의 질적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신 4:40;5:33;6:2;시15:1;23:6;27:4).


ꃨ 평강(*, 솰롬) - 이는 성경에서 주로 육체의 건강(창 29:6), 정치적 동맹상태(삿 4:17), 원만한 인간 관계(시 41:9,10), 국가의 태평성대(렘 6:14;33:6) 등 외적 측면과 모든 위험과 장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마음의 평정상태와 같은 내적 측면에 모두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평강은 외적 충족 상태와 내적 안정의 상태를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Toy).

성 경: [잠3:3]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1절에 언급된 법과 명령의 구체적인 조항들이 열거된다.
ꃨ 인자와 진리 - 이 두 용어의 결합은 구약에 있어서 대신(對神), 대인(對人)관계에대한 가장 완벽한 도덕적 경지의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14:22; 16:6;20:28;창 24:49;출 34:6;신 7:9;시 25:10;85:10, 11). 이 중 '인자'(*, 헤세드)는 대단히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말로 (1) 하나님이 사람에 대하여(창 19:19;시 51:1), (2)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호 6:6), (3)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에 2:17) 갖는 언약적 차원의 사랑으로 신약에서는 '아가페'(*)로 나타난다(Delitzsch). 여기서 (1)의 경우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뜻하며, (2)의 경우는 여호와 경외에 따른 전인격적인 순종과 헌신의 상태를, (3)의 경우는 형제애로 모든 사람에 대하며 하나님의 동일한 피조물이란 입장에서 타인을 대하는 것을 각각 가리킨다(Zockler). 그리고 '진리'(*, 에메트)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진실'(신 13:14,15;왕상 10:6;시 15:2)이라는 뜻과는 약간 다르게 사용되었는 바, 여기서의 '진리'는 '세우다', '확고하게 하다'란 뜻의 어근 '아만'(*)에서 파생된 말로 자신이 말한 바를 끝까지 확실하게 준행하는 성실성을 가리킨다(Wardlaw).


ꃨ 네 목에 메며 - 이는 악과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걸고 다니던 부적보다는(Umbreit),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 사회에서 항상 목에 걸어 지니고 다녔던 장신구용 목걸이(1:9)나 인장(창 38:18;아 8:6)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본문은 그것들을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인자와 진리를 생활화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Delitzsch,Toy). 또한 이는 모세 오경 즉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백성들의 관례적 행동(신 6:8,9)에서 유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ꃨ 네 마음판에 새기라 -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출 31:18;34:28)에서 유추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러한 표현 양식은 이곳과 7:3;렘 17:1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의미의 문장은 신 30:14;렘 31:33 등에서도 보여진다. 여기서 '판'(*, 루아흐)은 금속, 돌, 나무 등으로 된 서판을 말하는 바, 본 문구는 인자와 진리를 지워지지 않게 새겨진 판의 글씨들처럼 마음속에 새겨 항상 기억하라는 뜻이다(Toy). 이렇게 인자와 진리가 생활화되고 그 사람의 내면에 자리잡을 때 진리가 생활화되고 그 사람의 내면에 자리잡을 때 이는 모든 외적 행동 양식에 그대로 표출되기 마련이다(렘31:33, Delitzsch).

성 경: [잠3:4]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귀중한 여김을 받으리라 - 여기서 '귀중히 여김'(*, 세켈 토브)이란 말의 문자적 의미는 '최고의(선한) 이지력, 분별력, 신중함' 등이다. 그러나 본절에 있어서 이 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세켈'을 외모를 뜻하는 아랍어 '사클'에서 파생된 말로 보아 좋은 인상과 판단, 그리고 명성을 얻게하는 '훌륭한 외모'로 보는 견해이다(삼상 25:3, Ewald, Hitzig, Zockler). 물론 이러한 외모는 세속적인 준수함이 아니라 인자와 진리가 충일한 내면으로부터 표출된 것이다(3절). (2) 이말을 문자적 의미 그대로 '총명함', '뛰어난 분별력', '사려깊음'등으로 보는 견해이다(13:15;대하 30:22;시 111:10. Delitzsch, Bertheau). 따라서 인자와 진리를 겸비한 자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능력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게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3) 1절에 대한 보상인 2절이 주로 지상에서의 형통함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 말을 지상적 의미에서의 '최고의 성공, 번영'으로 보는 견해이다(Gesenius, Stuart, McKane, Kidner). 그러나 '세켈'의 용도가 본서에 있어서 이러한 물질적 의미로 나타난 예가 없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타당하지 않은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1) 혹은 (2)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 무난하라라 생각한다. 한편 본절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의 주체를 각각 구분하여 보는 견해(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받으며, 사람 앞에서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도 있다(LXX, Ewald, Hitzig).

성 경: [잠3:5]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여호와를 의로하고 - 이는 하나님께서 참된 지혜와 능력의 원천이 되신다는 사실과 연관된다(1:7). 여기서 '의뢰하고'(*, 베타흐)는 어떤 대상에 전적으로 몸을 의지하여 기댄다는 의미로 완전한 의탁과 신뢰를 가리키는 바(시 37:3), 곧 본문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진정한 신뢰의 대상이 되신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는 뜻이다(Delitzsch). 한편 이러한 자세는 곧 올바른 삶의 행로와 보다 깊고 넓은 인생과 세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이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인지하고 발견하기 위한 신앙의 근본적이고 제일가는 원리가 된다.


ꃨ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 본문의 '명철'(*, 바나)은 이제까지 중요한 지적 덕목의 하나로 언급된 '명철'(1:2, 5;2:3, 11)과는 달리 죄악된 교만의 표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곧 여기서의 '명철'은 여호와 신앙이 배제된, 인간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통한 지식을 가리키며(Toy, McKane,), 이러한 지적 교만은 자기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16:18). 실로 진정한 명철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신적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얻어지는 신앙적 산물인 것이다(McKane).

성 경: [잠3:6]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그를 인정하라(*, 다에후) - 이 말은 '알다'라는 뜻의 어근 '야다'(*)에서 파생된 말인 바, 하나님께 대한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순종과 통찰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실제적이고 체험적인 신지식(神知識)을 가리킨다(대상 28:9,Delitzsch). 또한 이러한 지식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살피는 것이며,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다(Wardlaw).

성 경: [잠3:7]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라 - 자기 교만에 대한 경고가 5절에 이어 반복되고 있다(전 7:16;롬 12:16;갈 6:3). 곧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는 것은 여호와 경외 신앙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모든 상황에 대한 제(諸) 판단 기준을 하나님의 법이 아닌 인간의 시각에 두는 것이다(Toy). 실로 이러한 행위는 그 자체가 이미 죄가 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된다(사 5:21).


ꃨ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점과(1:7), 악을 떠나는 것이 지혜자의 처신이라는 점에서(14:16) 본문은 지혜자가 소유하고 있는 실제적인 경건의 양면적 요소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16:6;욥 28:28;시34:10, 15).

성 경: [잠3:8]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육체의 건강과 원기를 돋우는 약의 효험을 영적 강건함의 원천이 되는 여호와 경외 신앙에 비유한 문학적 표현이다(McKane).
ꃨ 네 몸에 양약이 되어 - 여기서 '몸'(*, 쇼르)은 원어상 힘의 중추 또는 몸의 확실한 중심점으로서의 '배꼽'을 뜻한다(navel, KJV). 그러나 이는 인제의 한 부분을 몸 전체를 대표하여 표현하는 성경의 용례에 비추어 볼 때(8:13;삿 5:30) 개역 성경의 표현 그대로 '몸'으로 이해할 수 있다(body, NIV;flesh, RSV). 70인역(LXX) 또한 이러한 취지에서 이 말을 '몸'(*, 소마티)으로 역했다. 한편 '양약'(*, 리페우트)은 '꿰매어 고치다'란 뜻의 어근 '라파'(*)에서 유래된 말로 '치료'의 의미를 가진다. 이를 추상적으로 해석하여 연약한 중에 얻게 되는 용기와 확신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겠다(4:22;16:24;겔 47:12).


ꃨ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 본문은 내면의 고통으로 '뼈가 쇠하고 진액이 마른다'는 탈진 상태의 표현(시 32:3, 4)과 대조되는 것으로 소생과 원기의 회복을 가리킨다(욥 21:24;사 58:11). 여기서 '골수'(*, 에쳄)는 원어상 단순히 '뼈', '골격'등을 의미하며(bones, KJV, NIV), '윤택하게'(*, 쉬쿠)는 '물을 대다', '물을 축이다'란 뜻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상에서 보여지듯이 상반절이 '치료'의 의미를, 하반절이 '회복'의 의미를 나타내는 바, 본절은 하나님께로부터 치유되고 회복된 완전한 영적 안녕의 상태를 시사한다(Toy).

성 경: [잠3:9]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모세 율법에 명시된 제의상의 헌납 규정이 본서 속에서 유일하게 언급되고 있다(출23:19;민 28:26;신 26:1 이하).
ꃨ 네 재물(*, 메호네카) - 70인역(LXX)은 이를 디카이오스(*)로 역하여 노력한 대가로 정당하게 주어진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유물로 나타낸다. 그러나 혹자는 본절의 성격에 비추어, 구체적인 암시는 없지만, 이 말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의무 규정이었던 십일조를 가리킨다고 보았다(Delitzsch).


ꃨ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 첫 열매 헌납 규례는 모세 율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듯이(출 22:29;34:20;레 23:10), 첫 열매는 모든 소산물에 대한 최고적, 대표적 의미를 가진다(고전 15:22). 따라서 그 소산물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모든 소산물의 궁극적인 소유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 소산물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신앙 고백의 표현이다.

성 경: [잠3:10]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ꃨ 네 창고가 ... 넘치리라 - 신령한 헌신의 표현으로서의 재물의 헌납이 신앙의 판별 기준으로 작용되기도 하는 성경의 일반적인 용례(11:25;말 3:10-12;고후 9:6-8;빌4:15-19)에 비추어, 본절은 재물의 신앙적 선용 여부에 따른 결과를 문학적인 양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성 경: [잠3:11,12]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욥 5:17(11절;히 12:5, 6);신 8:5(12절;렘 31:9;말 2:10)을 인용한 것으로 보여지는 본절은 이제까지 언급된 '여호와 신앙 = 축복과 형통함'이란 순리적인 등식 관계를 '하나님의 부성적 사랑 = 하나님의 징계와 꾸지람'이란 역설적 등식으로 전환시켜 하나님 섭리의 이면을 보여 주고 있다(Delitzsch). 이는 곧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그 안에서 떠나지 말 것을 교훈하는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ꃨ 징계(*, 무사르) - 여기서는 단순한 훈계(1:3)의 의미보다는 물리적인 제재를 가리킨다(13:24;22:15).
ꃨ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 여기서 '꾸지람'은 '견책', '책망'이란 문자적 의미보다는(1:23;5:12;25:12) 위에 설명된 '징계'의 의미로 보아야 한다. 한편 '싫어하다'(*, 타코츠)는 '경히 여기다'(1:25 주석 참조)보다 더욱 강한 의미를 내포한 말로 극히 혐오스러워하는 것을 가리킨다(민 21:5, Delitzsch). 70인역(LXX)은 이를 '에크뤼우'(*), 곧 '낙심하다'로 역했다.ꃨ 여호와께서 ... 아들을 징계함 같이 -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삼하 7:14)를 상기시키는 본문은 하나님의 징계가 징계받는 자의 파멸이 아닌 궁극적인 선과 유익을 위한 사랑의 한 표현임을 보여준다.

성 경: [잠3:13]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여호와를 경외하라]
20절까지는 다양한 비유법을 통해 지혜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있다.
ꃨ 얻은 - 본절에서 전자의 '얻은'(*, 마차)은 완료형으로서 영속적인 소유의 개념을, 후자의 '얻은'(*, 야피크)은 미완료형으로 계속적인 갱신과 획득의 개념을 나타낸다(Lange).
ꃨ 복이 있나니 - 여기서의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육적 측면 및 질적, 양적 측면 모두를 포괄하는 생의 선물(2,4,8,10,16절 등)을 지칭한다(McKane).

성 경: [잠3:14]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지혜를 얻는 것이 ... 낫고 - 여기서 '얻는 것'(*, 사흐라)은 문자적으로 거래를 통해 얻는 이익을 가리킨다(merchandise, KJV). 또한 '은'(*, 카세프)은 고대 근동에서 화폐로서 통용되었다. 따라서 본문은 상행위를 통한 금전상의 이익이라는 비유를 통해 지혜의 유익성을 피력하고 있다.ꃨ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 '이익'(*, 테부아타)은 원어상 땅의 소산물을 가리키며(8:19;사 23:3), '정금' 또한 땅에서 파내어지는 보배란 점에서 본문은 상반절보다 더 강하고 근본적인 측면에서 지혜 획득의 유익을 나타낸다.

성 경: [잠3:15]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진주 - 이에 대해 '진주'(Zockler Bochart), '산호'(Delitzsch, Gesenius), '루비'(KJV, NIV) 등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문맥상 귀중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대표되는 '보석'이란 총칭으로 해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jewels, LB, RSV).
ꃨ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 칼하파체카) - 문자적으로 '네가 바라고 원하며 또 네게 기쁨을 가져다 주는 모든 아름답고 귀한 것'이란 의미로서 점층법적으로 '진주'보다 상질의 보화를 나타내며 이 또한 '진주'와 마찬가지로 지혜의 탁월한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비교 문구로 사용된 것이다.

성 경: [잠3:16,17]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지혜를 얻은 자에게 주어질 복(13절)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다.
ꃨ 그 우편 손에는 ... 그 좌편 손에는 .... - 이처럼 양쪽 손이 모두 쓰여진 것은 지혜를 획득한 자가 얻을 축복의 풍성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관념상 '오른손'은 '능력'(욥 40:14;시 44:3;45:4)과 '축복'(창 48:14;출 29:20;겔21:22), '위험과 영광'(왕상 2:19;시 45:9)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본절은 '장수'가 '부귀'보다 더 탁월한 신적 축복이 됨을 암시한다.
ꃨ 장수 - 2절 주석을 참조하라.
ꃨ 부귀 - 일반적인 물질적 풍요를 포괄하여 일컫는 말이다(8:18).
ꃨ 그 길은 ... 다 평강이니라 - 곧 지혜에 의해 인도되는 삶은 어떠한 외적 장애나 내적 곤고함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이다(Toy).

성 경: [잠3:18]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 여기서 '생명나무'(*, 에츠 하임)는 곧 영생과 참 평안의 원천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이다(11:30;13:12;15:4).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 뜻에 따라 순종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영원한 생명의 의미로 나타나는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와 연관되어질 수 있다(창 2:9;3:22, Delitzsch,Hitzig). 그러나 혹자는 이를 창세기의 '생명나무'와 연관시키지 않고 '생명의 샘'(13:14;14:27)이나 '생명의 우물'(10:11)과 같은 일반적인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Elster). 한편 본절을 신약과 연계시켜 볼 때 본절에 나타난 '지혜'는 영생에 이르게 하는 지혜이며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분의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에 다름 아니다(요 17:3).

성 경: [잠3:19]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지혜의 탁월성을 피력한 후 저자는 이제 지혜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천지 창조와 연관시켜 설명한다.
ꃨ 지혜로 ... 명철로 ... - 여기서 '지혜로'(*, 베호크마)는 문자적으로 '지혜를 통하여'란 뜻인 바, 이는 지혜가 하나님의 부분적인 속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근본적 존재로서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실행자 자체이기도 함을 암시한다(8:22-31;시 33:6;104:24;렘 10:12). 이것은 신약에 있어서 삼위 중 제 2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거룩한 지혜로 나타내셨고(눅 11:49), 또한 그리스도가 창조의 직접적인 실행자가 되셨다는 사실(요 1:3, 10;골 1:6)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땅을 세우셨으며', '하늘을 굳게 펴셨고'는 모두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서 비롯된 표현들이다(욥 서론,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참조). 한편 '지혜'와 같이 쓰여진 '명철'과 '지식'(20절)은 모두 '지혜'와 동격으로 쓰여진 표현이다(Lange, Bertheau).

성 경: [잠3:20]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 여기서 '해양'(*, 테호모트)은 원어상 '깊음', 또는 '지하에 고인 물' 등의 의미로서 육지 내에 있는 샘이나 강들을 가리키며(Delitzshc), '갈라지게'(*, 니베카우)는 완료형으로서 '부수다', '터지게되다'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지각 구조의 변형에 의해 하천이 형성되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혹자는 본문을 창조 당시 하나님께서 천하의 물을 뭍(육지)과 물(바다)로 분리시킨 사실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창 1:9, Munster, Zockler).
ꃨ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 '공중'(*, 쉐하킴)은 본래 세미한 수증기가 떠있는 상층의 대기권을 뜻하는 말이며, 시적 표현으로 하늘의 구름들을 가리킨다(시77:17;clouds, KJV, NIV). 또한 '이슬'(*, 탈)은 일반적으로 구름으로부터 떨어지는 비를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욥 28:25,26;36:28). 따라서 본 문구는 자연적인 우천 현상에 대한 문학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성 경: [잠3:21]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완전한 지혜 - 2:7 주석을 참조하라.
ꃨ 이것들로 - 혹자는 이를 19,20절에서 언급한 '지혜', '명철', '지식'으로 말하기도 하나(Delitzsch, Holden), 여기서는 문맥상 상번절의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Umbreit, Hitzig, Zockler).

성 경: [잠3:22]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 본문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생명'으로 쓰인 원어 '하임'(*)이 히브리 관념상 영적 의미로 쓰여진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를 2,16절과 같은 육적 생명으로 해석하며, 또한 '영혼'(*, 네페쉬)을 단순한 '육적 존재'로 보아 본문은 '그들이 네게 생명이 될 것이다'(they willbe life for you, NIV)로 역한다(Toy). (2) '영혼의 생명'을 '생명력'으로 해석하여 본문을 '그들이 생명력으로 너를 채울 것이다'(for they fill you with livingenergy, LB)로 역한다(McKane, Whybray). (3) 인간의 내적 측면에 강조점을 두어 영혼에 신적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영적 의미로 해석한다(Delitzsch). 여기서는 문맥상 (3)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따라서 '네 목에 장식이 되리니'는 그러한 영적 생명에 기인된 외적 은혜, 곧 타인들에게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 되게 된다는 것이다(1:9 참조).

성 경: [잠3:23]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 여기서 '거치지'(*, 티고프)는 원어상 '때리다', '부딪히다'란 뜻으로 본절은 지혜를 소유한 자의 삶에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을 말하는 바, 이는 시 91:12의 경우와 같게 사용되었다.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 길을 인도하나 여기서는 지혜가 그 사역을 대신한다. 한편 70인역(LXX)은 '거치지'를 '비틀거리지'(*, 프로스코페이)로 역했다(stumble, KJV, NIV).

성 경: [잠3:24]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본문은 야밤에 일어날 수 있는 도적과 암살자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비유하여지 혜를 소유한 자에게 임할 여호와의 완전한 보호와 평안을 피력하고 있다(시 3:5,6;4;8;46;1-3;91:1-5;121:5-8).
ꃨ 누울 때에 ... 누운즉 - 전자(*, 티쉐카브)는 미완료형으로 탈굼역, 시리아역 등에 의하면 수면을 취하기 위해 눕는 상태를 가리키며, 후자(*, 솨카브타)는 완료형으로 전자의 결과, 곧 잠자는 상태를 가리킨다(Zockler). 그러나 70인역(LXX)은 전자를 일상적인 생활을 비유한 신 6:7에 연관시켜 '앉을 때에'(*, 카데이)로 번역하였다.

성 경: [잠3:25]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창졸간의 두려움(*, 미파하드 피테옴) - 이는 문자적으로 '갑작스런 공포'란 뜻이나 여기서는 '갑자기 닥치는 재앙의 공포'(fear of suddendisaster, NVI)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다.
ꃨ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악인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떠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며(Delitzsch, Stuart,Wardlaw), 둘재는 의인들을 파멸시키기 위한 악의적인 음모나 궤계에서 비롯된 악인들의 행동 시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LXX, Vulgate, Hitzig). 그러나 악인들에 대한 심판의 엄중성을 드러낸 1:27의 용례에 비추어 보아 여기서도 전자의 경우가 더 적합한 해석으로 여겨진다.

성 경: [잠3:26]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지혜를 얻는 자의 복]
ꃨ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베키셀레카) - 여기서 '의지할'(*, 케셀)은 문자적으로 '허리'를 뜻하며(레 3:4;10:15;욥 15:27), 히브리적 개념상 '허리'가신체 중 힘의 근원이란 의미에서 일부 학자들은 본 구절을 '너의 허리가 되실 것이다'로 직역하였다(Vulgare, Zockler, Muntingle). 그러나 여기서는 그러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보다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의심없는 신뢰'로 보는 것이 더 낫다(욥8:14;31:24;시 78:7, Zockler). 한편 70인역(LXX)은 이를 후반절과 연관시켜 '너의 모든 길에서'(*, 에피 파손 호돈 수)로 번역하였다.

성 경: [잠3:27]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유지와 그 유익을(1-12, 21-26절) 기술한 데 이어 35절까지는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성을 통해 지혜 추구의 유익을 설명한다.
ꃨ 마땅히 받을 자에게 ... 아끼지 말며 - 혹자는 '마땅히 받을 자'(*, 바알)의 문자적 의미가 '주인', '소유자'란 점에서 이를 채무를 받아야 할 '채권자'로 보기도하며(Don't withhold repayment of your debts, LB), 또는 '가난한 자'(Ben Ezra)라는 특정 부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 여기서는 '주인'의 의미를 '소유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자'로 보아 일반적인 구제의 대상, 곧 '도움이 필요한 자'들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본절은 기회와 능력이 있을 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구제의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해 주는 바, 구제라는 선행도 지혜의 실제적 표현의 일환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탈굼역(Targum)과 페쉬타역(Peshitta)은 본문을 '선을 행하기를 거절하지 말라'는 일반적 교훈의 범주로 해석하였다.

성 경: [잠3:28]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ꃨ 네게 있거든 ...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 본절은 두 가지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 첫째는 이를 구제의 즉각적인 실행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다. 즉 만일 돕기로 약정한 사람이 찾아오면 주저하지 말고 즉시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McKane). 둘째는 이를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에서 마땅히 주어야 할 품삯을 미루지 말고 줄 것을 권고하는 말로 보는 것이다. 이 중에서 27절과의 문맥적 연관성을 고려할 때 본절의 이웃을 27절의 '마땅히 받을 자'와 같은 의미로 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성 경: [잠3:29]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ꃨ 모해하지 말며(*, 알 타하로쉬) - 여기서 '모해하지'에 해당하는 원어 '하라쉬'(*)는 원래 '긁다', '쟁기질하다'(욥 4:8;시 129:3)란 뜻으로서 농부가 파종을 준비하기 위해 밭을 가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조장하는 것을 말한다(7:12;22:8). 한편 '안연히'가 여기서는 '신뢰'의 의미를 함축한다는 점에서 위에 언급된 악한 궤계는 이웃에 대한 범죄일 뿐 아니라 그 신뢰의 관계마저 파괴하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McKane).

성 경: [잠3:30]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ꃨ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 - 이웃과 무고하게 다투지 말 것을 권고하는 본절은 그 초두에 조건을 뜻하는 부정형 '임'(*)이 쓰여졌는 바, 이는 히브리인들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신 19:21). 그러나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는다는 이러한 사상은 신약에 있어서 악을 선으로 갚는 사랑과 희생의 원리로 발전되었다(마 5:38-44).

성 경: [잠3:31]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ꃨ 포악한 자(*, 이쉬 하마스) - 원어상 '압제자'(oppressor, KJV), '폭력자'(a violent man, NIV)란 뜻(삼하 22:49;시 140:1,4)과 함께 함축적으로 '(폭력과 압제를 통해) 불의한 소득을 획득한 자'란 의미도 가지는 단어이다.

성 경: [잠3:32]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35절까지는 대조법을 통하여 27-31절에 언급된 권고들을 지켜야 할 이유를 제시해준다. 한편 본절과 같은 형식은 10-22장에서는 흔히 보여지나 1-9장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ꃨ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 여기서 '미워하심'(*, 토에바)이란 말은흔히 '가증하다'란 표현으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규례를 위반하고 거역한 자들과 관련된 종교적 의미에서 쓰여졌다(창 43:32;왕상 14:24;겔 5:9). 그러나 본서에서는 이러한 종교적 의미보다는 윤리적 의미로 사용되었다(11:1, 20;21:27). 따라서 본 문구는 대인적, 대사회적 관계에 있어서의 도덕적 행위에 대한 경고로 이해하여야 한다.


ꃨ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소도) - 이는 어근 '야사드'(*)는 '상의하기 위해 앉다'란 뜻을 가지는 바, 본 문구는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에서만 성립될 수있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교제와 대화를 가리킨다(욥 29:4;시 25:4;암 3:7, Delitzsch,Toy).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는 그와의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은혜를 받게 된다(요 15:14, 15). 한편 70인역(LXX)은 본문의 주어 역시 상반절과 같은 '패역한 자'로보고 '정직한 자와 함께 앉을 수 없다'로 역했다.

성 경: [잠3:33]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ꃨ 저주가 있거니와(*, 메에라) - 원어상 구약에서 5회밖에 나타나지 않는(28:27;신 28:20;말 2:2;3:9) 이 말은 외적 삶에 대한 저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계속되는 내적 파탄 상태를 포괄하는 말이며,
ꃨ 복이 있느니라(*, 바라크) - 역시 외적 삶의 풍요뿐 아니라 하나님의 지속적인 보호와 인도 및 그 사랑을 확신하는 영적 안녕과 평안까지를 포괄하는 말이다(Delitzshc). 한편 의인의 집에서 '집'으로 쓰인 '나웨'(*)는 '쉬다'라는 뜻의 어근 '나와'(*)에서 유래된 말로 이스라엘인들은 유목 생활 중의 거주 장소인 '목초지'를 뜻하기도 하는 바, 흔히 이 말이 성경에서 포괄적인 평화와 안정을 상징했다는 점에서 문맥상 잘 어울린다(Delitzsch).

성 경: [잠3:34]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이와같이 '겸손'과 '교만'을 대조시켜 설명하는 형식은 11:2;12:9;16:18,19 등에도 나타난다. 한편 본문을 11:2과의 연관하에 35절에 대한 전제절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Stuart, Bertheau), 35절이 3장 전체의 결론절이라는 점에서 이 두 절을 독립적인 병행절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Delitzsch).
ꃨ 겸손한 자(*, 아나임) - 이는 원어상 '가난한 자', '비천한 자', '억압받는 자', '온순한 자', '거룩한 자' 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며, 이들이 모두 성경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의 소유자들이란 점에서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대상을 포괄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편 본절은 눅 18:9-14에서 그 명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약 4:6;벧전 5:5에서도 인용된바 있다.

성 경: [잠3:35]
주제1: [지혜를 얻는 자가 누릴 복]
주제2: [선을 행하는 자의 복]
ꃨ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 이 같은 사상은 11:2; 12:8; 13:5;14:19; 22:29에서도 발견된다. 여기서 '영광'(*, 카보드)은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받게 되는 최고의 인정과 존경을(창 45:13;왕상 3:13, Toy), '기업으로 받거니와'(*, 이네할루)는 '상속으로 유산을 물려받다'란 뜻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문은 참지혜를 소유한 자는 그들의 자의적인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서 자녀의 자격을 얻게 되고 그러한 '영광'을 그 자녀된 특권으로 누릴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ꃨ 미련한 자의 현달(顯達)함은 욕이 되느니라 - 여기서 '현달함'(*, 매림)은 문자적으로 '높이 들다'(왕하 2:3;시 89:20), '제거하다'(사 57:14;호 11:4), '(제물이나 선물을) 드리다'(출 35:24;레 4:3)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본문은 '치욕이 미련한 자를 높인다'(Vulgate), '치욕이 미련한 자를 제거한다' 혹은 '미련한 자는 치욕을 높인다'(LXX)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전반절과의 문맥을 중시하여 '메림'의 파생적 의미를 추출해 볼 수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증가시키다'(increase)란 뜻이며(14:29;전 6:11;10:14;사 40:29) 더 정확하고 쉬운 의미로서 '소유하다'(possess)란 말이 있다. 이에 따라 본 문구는 '미련한 자는 치욕을 소유하고 다닌다'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듯하다(Toy, Delitzsch, Hitzig). 결국 전반절과 비교할때 본문은 지혜로운 자가 영광을 상속의 몫으로 받게 되는 것처럼 미련한 자는 치욕을 자기의 몫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다섯가지 복의 조건

(잠 3:1-10)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성경에 복이란 말은 아세르(אַשְרַי) 마카리오스(μακαριος) 행복되다, 잘되다, 진보되다, 라는 의미가 있다. 한글로 번역된 복(福)이란 말이 구약에 226번 신약에 221번 모두 447번이 기록되었다 성경 66권에서 요한 1,2,3,서와 유다서를 제외하고 모두 기록되어 있다. 

 

복에 적용되는 의미는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영적인 의미는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그 안에서 인도되고 도움을 받는 것을 말하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어 부름을 받아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에 이르며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인도되고 도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복은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복이다.

 

오늘 본문은 세상에서 필요한 복을 의미하는데 신앙의 조건적 복이다. 이렇게 행하면 이것을 주어진다고 말씀한 복이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복은 행한대로 주신다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복을 받으려면 복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땅에서 잘 되는 복을 말한다. 잠언 3장 1절에서 10절은 땅에서 사는 동안에 누리는 복을 말씀하신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아들에게 한 말씀이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애정어린 말씀이다. 단순히 가르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에 소원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꼭 이렇게 하라 그러면 복을 받는다  아들이 복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1. 오래사는  장수(長壽)의 복이다

 

(잠 3 : 1-2)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나의 명령을 지키라.

법은 율법 토라(םִלָה)즉 율법이고 명령 밀라(תּלָה)인데 율법의 선언, 율법의 가르침이다.  

본문의 법과 명령은 1장에서부터 가르친 율법의 지혜의 가르침이다. 

 

법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라는 말이고, 마음으로 명령을 지키라는 말은 그 말씀을 믿고 진실한 마음으로 행하라는 말씀이다.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창 49: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장수(長壽) 란 말은 아라크(שלומ)란 말인데 오래 생존한다는 말이며, 평강이란 말은 샬롬( אָרָף)란 말인데 행복하다 잘되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장수한다는 말은 오래 산다는 말이고 평강을 더하신다는 말은 고난 없이 건강한 장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젊어서 죽는 것은 불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래 살면서도 질병에 시달리고 고난에 시달리며 오래 사는 것은 징정한 복이 아니다. 진정한 복은 평강한 장수이다. 즉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 말한다. 평강 장수는 율법을 지키고 명령을 마음으로 지키는 자에게 주시는 복이다. 

 

성경 역사를 보면 역사가 내려오면서 인간의 수명이 짧아졌다. 아담에서 노아 시대까지는 인간 수명이 350세-969세 였다. 노아 시대에서 아브라함 시대까지의 수명은 200세에서 500세 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에서 여호수아 까지는 110세에서 200세 까지였다. 그리고 그후 인생은 평균 수명이 70년 80년이었다. 

 

(시 90 :10)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위의 역사적인 사실은 인간의 수명이 죄와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가 흘러 오면서 인간은 점점 죄인으로 타락했다. 범죄한 아담에게 죽음을 선언한 하나님은 타락한 죄인들을 오래 살게 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잊지 않고 명령을 마음으로 지키면 건강장수한다는 것을 솔로몬은 잘 알고 있고 또한 성경을 믿기 때문에 아들에게 그렇게 가르친 것이다. 사람들이 제 수명대로 못사는 것은 거의 수가 죄 때문에 생죽음하고도 시달려서 죽게되고 특히 악한 병으로 죽게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 때에 수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건강 장수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2.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중히 여김을 받는 복이다.

    

(잠 3 : 3-4)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인자(仁慈)란 헤세트(אםת) 란 말인데 측은함 긍휼함을 의미한다. 

진리(眞理)란 에메트 (חסד)란 말인데 율법 약속 진실이란 말이다.

 

인자와 진리를 떠나지 않게 목에다 메고 마음 판에 새기라 했다.

이 말씀은 복된 사람이 가지는 인격을 말하는데 진리는 하나님의 계명 약속이며, 사랑은 계명의 정신이다.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이나 목에다 메라는 말이나 마음 판에 새기라는 말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간직하라는 말이다. 

 

복이 하나님의 은혜이면 마음은 은혜를 받는 그릇이다. 그릇이 있어야 복을 받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 복된 그릇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항상 약속을 믿는 믿음과 진실 정직함과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창 41:39-40)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 뿐이니라

 

은총(恩寵)이란 말은 헨(חֵן)이란 뜻인데 은혜와 사랑을 말한다. 귀중(貴中)이란 야카르(יָקַר)란 말인데 귀하고 소중함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여김을 받는 다는 말은 세켈토프(שכל טוב)란 말인데 구별되다 판단되다 란 의이다. 

 

인자와 진리를 지닌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귀하고 중하게 여기시고 사람들에게도 귀하고 수중한 자로 인정받는 다는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인정 받지 못하고 산다면 불행한 사람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존재감이 없는 인생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이다. 특히 사랑 많으신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복된 사람이 아니다. 사람 앞에서 인정 받지 못하면 복된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배우고 선하게 살고 좋은 일 하는 사람들 모두는 자기를 자기 존재를 인정받기 위함이다. 마음에 진리와 사랑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귀하게 소중하게 여겨진다는 말씀이다. 

 

3. 삶에 형통의 복이다.

    

(잠 3 :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했다.

 

의뢰(依賴)란 말은 베타흐(בטה)란 말인데 믿고 맡긴다. 믿고 기댄다란 의미이다. 마음을 다한다는 말은 조금도 의심하거나 불안해 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나의 인생길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말한다.  

명철(明哲)은 벤나(בינָה)란 말인데 밝은 생각 밝히 안다. 란 의미로 자기 자신의 밝은 생각과 자기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의지하지 말하는 말이다.

 

길을 가는 자보다 길을 만든 자가 더 잘 알고 길을 가는 자보다 안내하는 자가 더 잘안다.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앞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내가 알고 았는 지식은 걸어온 과정에서 얻은 지식이다. 그러기에 가야할 길은 과거가 아니고 미래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너무나 자신의 인생길에 자만에 빠지지 말고 인생의 주고나자이시고 내 길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이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했다.

(시 23 :1-3)(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지도(指導)란 말은 나기도(נָגִיד)란 말인데 '손가락으로 가리키다. 가르쳐 주다 안내해주다' 란 의미이다. 

가는 길이 막히고 그 막힌 길을 가지 못하면 실패이다. 어리석게 자신의 찌식과 명철을 의하여 한계에 부디칠 때 낙심하게 되고 고민하게 되고 줄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맡기고 의지하라 했다.

 

맡기고 의지하는 것은 말씀에서 길을 찾고 또 기도하는 것이다. 

(눅 18:1-5)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4. 건강의 복이다.

   

(잠 3 :7-8)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스스로 지혜롭다 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라

 

지혜(知慧)란 말은 호크마(חכֽםָה)란 말인데 '관찰하다 분별하다 헤아린다 '란 의미이다. 스스로 지혜롭다 고 자기 지혜를 의지하여 교만하지 말고 스스로 아는 척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악에서 떠날 지어다 했다. 

악행(惡行) 즉 악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악은 라(רַע)란 말인데 악하다 불길하다 올바르지 않다 양심대로 행하지 않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이 악으로 규정하는 어떤 것에도 머물러 있지 말라는 말씀이다.

'악을 떠나라는 말은 악에서 벗어나 도리어 선을 행하라는 말씀이다.

 

위의 말씀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과 자기 지혜를 따라 악에 편승하지 말고 떠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은 영적 교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동은 윤리적 인격적인 교만이다.

 그 교만은 패망의 패망의 선봉이다. 

 

(잠 16 :17-20)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라 

경외(敬畏)란 말은 야르아(יָרִאָה)란 말인데 높이다 두려워하다 즉 높여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행동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우선권을 두라는 말이고 그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라는 말이다. 성도가 성결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책망과 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므로 거룩한 자가 하나님을 뵐 수 있기 때문이다.

 

(벧전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2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하면 몸의 양약이 되고 네 골수로 윤택케 하리라.

(창 39 :13-15)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양약(良藥) 리페우트(רֽפְאות) '치료하다' 힘을 주다' 좋게 하다' 편안하게 하다

'윤택(潤澤) 쉬피(שׅיוקַׅ  )인데 '기름짐 광택 빛나게 하다' 넉넉한 생활을 의미한다'

몸이 양약이란 말은 몸을 치료하여 외적으로 건강하게 하신다는 말이고 골수를 윤택하게 한다는 말은 내적인 건강을 말한다. 그러므로 몸이나 뼈나 모두 치료하시고 기름지게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건강하게 평안하게 사는 것은 악과 결별하여 사는 것이다.

 

5. 재물의 복이다.

      

(잠 3 :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재물과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재물(財物)은 소유물이며 처음 익은 열매는 소유의 대표성을 말한다.  등을 말한다. 창조주를 믿는 믿음으로 드리라는 말씀이다.  공경(恭敬)이란 말은 키브드(כִבוׁד)란 말인데 공손히 섬기다 높여 섬기다 본성으로 섬기다. 이다 

 

처음 열매를 드리는 것은 창조주로 믿는 믿음의 열매이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소유물은 창조하신 창조자 주인의 것이다. 그러기에 그 창조주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당연히 섬기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몸 재산 등으로 그 모든 것을 있게 하신 창조주를 섬기는 것이고 처음 열매로 공경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드리라는 말이다. 열매의 처음 것은 모든 것의 대표성을 가진다. 아들도 맏 아들은 모든 아들의 대표성을 가지기에 가족을 대표하는 사제로 도는 하나님의 것이라 칭했다. 그러기에 처음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소유물의 대표로 드리는 창조주를 믿는 신앙이다. 

 

그리하면 창고가 차고 즙 틀에 포도즙이 넘치리라. 

(왕상 17 :15-16)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16)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창고(倉庫)는 사밈(אסׇמׅים)이란 말로 곡식의 저장소를 말한다. 포도즙틀은 음료로 먹어야 하는 시대 포도주 짜는 기구이다.  창고가 찬다는 말은 먹을 것이 가득 찬다는 말이다. 먹을 것이 차 있어서 여유가 있다는 말이며 포도즙 틀이 넘친다는 말은 마실 음료가 마시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즉 먹고 마시는 것이 넉넉하여 여유있게 산다는 말이다. 소위 말하면 부자로 산다는 말이다.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산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생존에 필수적인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다. 창조주로 믿고 내게 주어진 슈우로 공경하면 부요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성경에 소유로 하나님을 공경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사르밧 과부는 기근에 처한 시대에 자신이 가진 가루로 하나님의선지자 엘리아를 섬겼다. 그 섬김으로 가르가 끊이지 않고 기근이 다 할 때까지 넉넉하게 살았다. 

 

결 론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복을 다섯가지로 말씀했다.

 장수하는 것이고, 사람들에게 귀함을 받는 것이고, 삶의 길이 형통하는 것이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고, 재물이 넉넉한 것이다. 

율법과 명령을 지키는 자에게 건강 장수의 복을,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사는 자에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 받는 복을, 자신의 지혜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에게 형통의 복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 사는 자에게 건강의 복을, 자신의 소유몰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부유한 복을 주신다고 했다.


'그리하면'의 복(잠 3:1-10)

 

1.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2.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3.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4.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10.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교훈을 주는 형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교훈을 준다면 그 교훈이 얼마나 깊은 교훈이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이 곧 나에게 주시는 아버지의 교훈이라 생각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받아서 마음에 깊이 새기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4번에 걸쳐서 '그리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장수와 평강의 복이요(2), 둘째는 은총과 존귀함을 얻는 복이요(4), 셋째는 하나님의 인도의 복(6), 넷째는 건강과 풍요의 복입니다(10).

 

  ①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성도의 기본입니다(1).
  세상에는 법이 참 많이 있습니다. 법에는 큰 법도 있고 작은 법도 있고 가시적인 법도 있고 그냥 전승되는 법도 있습니다. 모두 지켜야 할 법들입니다. 그렇게 법을 지키면 모두에게 유익이 됩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고 너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그 법을 무시하면 곧바로 해를 입게 됩니다. 내가 해를 입고 또 너도 해를 입습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 교통사고는 질서를 안 지켜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나도 사고를 당하고 너도 피해를 입고 두 사람 다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고 가다 차가 인도로 뛰어들면 길 가던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입습니다. 나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고 남들도 피해를 입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질서를 지키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 안전사고를 생각해 보십시오. 안전사고는 안전수칙을 안 지켜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나도 생명이 위협받고 너도 생명이 위협을 받습니다. 그래서 법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려면 이 법을 지켜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지키고 너를 위해서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도 지켜야 할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법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일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일입니다. 이것이 대원칙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의무이고 신앙인이 지켜야 할 가장 큰 법입니다.


  그리고 작은 법이 있다면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고 예배를 예배답게 드리는 일입니다. 또 섬김의 삶을 살고, 나눔의 삶을 살고, 더불어 살아가고,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활용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삶이고 법입니다.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2)' 여기 평강에는 세 가지 은혜가 들어있는데, 하나는 내적인 평안입니다. 내적인 평안은 마음의 고요를 말합니다. 즉 신앙의 법을 지키고 살면 행복한 날들, 기쁨의 삶, 만족함, 감사함의 삶이 주어집니다.


  또 외적인 평안도 주어집니다. 외적인 평안은 생활의 고요를 말합니다. 신앙인이 질서를 지키며 살면 생활에 안정, 인간관계의 원만함, 삶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이 요소들이 생활의 안정을 주는 요소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적인 평안도 주어집니다. 즉 영적인 고요입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요소 그것이 영적인 고요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이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법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과 삶과 영에 평안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중의 복입니다.


  ②인자와 진리를 따르라!(3)
  여기서 말하는 '인자와 진리'는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이상적인 경지를 의미합니다. 인자는 이 땅에서 제일가는 정신이고, 진리는 하늘에서 제일가는 정신입니다. 이 땅의 제일의 대상은 이웃이고 하늘에서 제일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이 두 가지 대상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로 하나님과 아래로 이웃은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신앙의 대상이고 목표이고 궁극입니다. 그리고 이웃은 신앙의 내용이고 표현이고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 두 대상은 세상에서 가장 존중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 인자와 진리를 잊지 말고 떠나지 않도록 목에 매고 마음 판에 새기라'고 했습니다.
  '위로 하나님, 아래로 이웃' 이 관계를 잘 이루고 살아가면 그 삶은 하나님이 보장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보면 이웃도 없고 하나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의도, 인자도, 진리도 너무 소홀히 하며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엉뚱한 것에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목표가 흐려져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하나님 나라, 천국, 종말, 심판 이것이 신앙인의 최후의 목표입니다. 
  사람이 초점을 잃으면 초점 잃은 소리를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어느 정신병동에서 한사람이 '나는 나폴레옹이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네가 어째서 나폴레옹이냐'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내가 언제 너를 나폴레옹으로 임명했느냐'고 말하더라고 합니다. 이것이 초점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신앙에게 천국을 빼면 무엇이 남습니까? 우리에게 장차 심판이 없고 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방종밖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③네 자신을 의지 말라!(5)
  이 말씀은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거나 잊어버리면 곧 바로 나타나는 마음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교만이고 자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자만이고 교만입니다. 이것은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우리 자신은 전혀 의지할 대상이 못됩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자신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I can do'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때 I can do를 높이 외쳐보기도 했던 솔로몬이 실패를 거듭한 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형식으로 오늘 신앙 인들에게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는 네 자신을 의지하지 말라' 그 말은 '너는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잠언 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 씹는 맛, 감칠맛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잠언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여기 '의뢰하다'는 말은 단순히 '믿는다'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전적으로 내맡김을 의미'합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듯이 우리 자신의 모든 영역을 다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되 마음을 다하여' 의뢰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나누지 않고 요동치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의지할 수 없음을 깨닫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에스더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전심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로 하나님만을 의지했더니 동족을 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제 생각으로 겉보기에 비옥한 소돔 땅에 가서 살면 잘 될 것 같아서 제 판단을 의지하고 갔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수많은 시행착오에 부딪히며 재산을 빼앗기고 아내를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홀몸으로 겨우 목숨만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명철과 잔꾀는 하나님 앞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의지합시다. 삶의 중심을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나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내 중심 속에 오셔서 나의 방향키를 잡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④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6).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사의 모든 일에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좋은 때와 어려운 때나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의 일이 잘 풀렸다고 해서 내가 똑똑하고 수완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시인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내게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내 중심 속에 계셔서 나를 주장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며 모든 것에서 그 분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⑤하나님을 공경해야 합니다(9).
  하나님을 공경하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는 '내게 가장 귀중한 것'을 말합니다.
  창4:4절에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또 출23:19절에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했고, 레27:26절에서는 '오직 생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 새끼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첫 것은 소중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첫 열매나 첫 작품이나 첫 물품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것을 구별하여 드린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는 것이요, 대표적 의미를 가집니다.  


  ⑴첫 것을 드린다는 것은 소유권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첫 월급을 몸 땅 하나님께 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골 교회에 어느 날 할머님 성도께서 호박 한 덩어리를 갖고 와서 첫 열매라고 목사님께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며느리가 첫 열매를 따먹으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따먹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바칩니다.'하며 주었습니다.


  ⑵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결국은 인간의 욕망에서 벗어나 물질을 하나님의 뜻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물질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가장 귀한 것,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길 힘써야 합니다. 선한 일에 사용하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일에 사용한다면 하나님은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하며 새 포도즙 틀에 포도즙이 넘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하는 일이 잘되고 소득이 늘어나 요셉의 창고같이 가득히 차고 포도 농사가 잘되어 소출이 늘어나 새 포도즙이 넘쳐흐르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송수천목사

 

 

 

 

성 경: [잠4:1]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9절까지는 지혜 추구에 대한 원리적 교훈들을 약속이 전제된 조건적 권고의 형식으로 기술한다.
ꃨ 아들들아...들으며 - 1:8과 같은 의미로 다만 여기서는 '내 아들'이 '아들들'(*, 바님)이란 복수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5:7;7:24;8:32).
ꃨ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 1:2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잠4:2]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ꃨ 선한 도리를 너희에게 전하노니 - 저자는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1절의 권고에 대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선한 도리'(*, 레카흐 토브)는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지) 선한 교훈'이란 뜻으로서 '선한 교훈'이 저자 자신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대대로 축적되어 전수받은 것임을 나타낸다(1:5 '학식'에 대한 주석 참조). 또한 '전하노니'(*, 나타티)는 '주다'란 뜻의 어근 '나탄'(*)의 완료형인 바, 본절은 그 선한 교훈의 효력이 과거에서부터 지금 교훈을 듣는 자들에게까지 계속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70인역과 벧게이트역은 '선한 도리'를 좀더 추상적으로 '좋은 선물'로 번역했다.
ꃨ 법 - 3: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잠4:3]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ꃨ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 혈연적, 상징적 관계를 모두 포괄하는 이 말은(1:8 주석 참조) 저자가 지금 권고하는 교훈들은 자신도 그 교훈들을 받았던 것처럼 부성적(父性的)인 권위와 애정이 깃든 것임을 나타낸다(Toy).
ꃨ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 본적에서 '유약한'(*, 라크)은 원어상 '연한', '부드러운'이란 뜻을 가지며 70인역(LXX)은 이를 '유순하게 순종하는'(obedient)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본절이 저자 역시 평범한 인간으로서 부모의 양육과 염려 속에서 자랐다는 겸손의 표현임을 감안할 때, 그러한 번역보다는 단지 양친의 보호와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지시한 것으로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창 33:13). 또한 '외아들'(*, 야히드)은 문자적으로 '독자'를 가리키는 말이나(Vulgate) 역사적으로 볼 때 본서의 저자 솔로몬에게는 다른 형제들도 있었던 바(삼하 5:14;대상 3:5), 여기서의 '외아들'이란 독자처럼 특별히 총애와 사랑을 받는 위치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창22:2,12). 한편 70인역(LXX)은 그러한 의미에서 이 말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onlybelove, KJV)으로 번역했다.

성 경: [잠4:4]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ꃨ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 여기서 저자는 자신이 전수받은 교훈들을 직접 인용함으로써(4-9절), 앞으로 언급될 자신의 교훈들 또한 부권적인 권위와 애정이 깃든 것임을 재삼 확인시키고 있다(왕상 2:2 3;대상 22:12, 13;28:9).
ꃨ 그리하면 살리라 - 이는 곧 위에 언급된 지혜의 교훈을 수용하고 준수하는 것이 행복하고 안전한 장수의 삶을 보장한다는 3:2의 사상과 동일한 의미로 쓰여진 말이다(10절).

성 경: [잠4:5]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ꃨ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 '얻으라'(*, 케네)는 '구매하여 소유하다'라는 상업적 의미를 가지는 바, 여기서 지혜와 명철이 장사의 대상으로 비유되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장사꾼이 자신의 상품을 팔기 위해 간곡하게 권하는 모습에 비유하여지혜와 명철의 획득을 권고한다(23:33, Delitzsch, Umbreit, Zockler).
ꃨ 어기지 말라(*, 알 테트) - 여기서 '어기다'(*, 나타)는 말은 원어상 '구부리다', '벗어나게 하다'(swerve, NIV)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본 문구는 지혜의 교훈들을 왜곡시키거나, 그 교훈이 지시하는 방향에서 이탈하지 말것을 권고한다.

성 경: [잠4:6]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본절은 2:11;3:1,2의 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ꃨ 지혜를 버리지 말라 - 여기서 '버리지 말라'(*, 알 타아즈베하)는 원어상 '거절하지 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문구는 자신이 소유한 지혜를 포기하거나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의미 외에 애초에 지혜의 초청을 거부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ꃨ 그를 사랑하라 - 본 문구는 '사랑하라'(*, 에하베하)란 말은 흔히 이성(異性)간의 사랑을 가리킬 때 쓰이는 표현인 바, 여기서는 의인화된 지혜에 대해 그러한 열정적인 애정을 가지고 대할 것을 비유적으로 권고하는 말이다.

성 경: [잠4:7]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ꃨ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 본구절에서 '제일이니'(*, 레쉬트)는 원어상 '최고'라는 뜻과 '시작'이란 뜻을 함께 내포한다. 따라서 그 의미에 따라 본구절에 대한 견해가 다르게 나타난다. (1) '제일이니'를 '시작'의 뜻으로 볼 때 본구절은 '지혜의 시작은 지혜를 얻는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으나(Luther, Delitzsch,Umbreit), 이는 후반절과의 문맥 연결에 모호한 점이 있으며, 또 이 말이 성경에서 확실하게 '시작'의 의미로 쓰인 것이 사 46:10과 창 1:1 두군데 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소 무리가 따른다(Toy). (2) '제일이니'를 '최고'라는 뜻으로 볼 때 본 구절은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지혜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이니 지혜를 얻으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바(Lange, Zockler), 이는 성경 대부분에서 이 말이 '최고', '최상'의 뜻으로 쓰여졌다는 점과(삼상 2:29;욥 40:19;렘 49:35) 뒷 문구와의 문맥적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무리없는 해석으로 볼 수 있다(Toy). 한편 빅켈(Bickell)은 이러한 문장 구성상의 요소들을 무시한 채, 본구절을 '네 부(富)의 시작은 지혜를 얻음에 있다'란 자의적(自意的)인 해석을 하였는 바, 이는 전혀 타당한 근거를 갖지 못한다.
ꃨ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 '너의 얻은 것'(*, 키네야네카)은 문자적으로 '무엇을 사기위한 자금'이라는 뜻이며 여기서는 사람이 그 평생에 취한 삶의 모든 것이란 의미를 은연 중에 드러내는 바, 이것을 종합해 볼 때 본 문구는 자신이 평생에 걸쳐 취한 모든 것을 다 지불하고서라도 명철, 곧 지혜를 소유하라는 권고로 이해할 수 있다(마 13:44;눅 10:42).

성 경: [잠4:8]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ꃨ 그를 높이라(*, 살르셀레하) - '흙을 쌓아 올려 길이나 둑을 만들다'(15:19;사 57:14)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이 말은 대개 두 가지로 해석된다. (1)후반절의 '품으라'와의 조화를 고려하여 '(보호를 목적으로) 성벽으로 에워싸다'(LXX,Vulgate)로 해석하는 경우 (2) '너를 높이 들리라'(*, 테로메메카)는 말과의 내용상의 연관성을 강조하여 '최고로 존경하다'(Luther),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다'(Bottcher, Delitzsch)로 이해하는 경우. 그러나 여기서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듯하다(삼상 2:30). 한편 수리아역, 탈굼역은 이를 '그를 사랑하라'로 역했다.
ꃨ 그를 품으면(*, 테하브케나) - 이는 애정을 가지고 껴안은 것을 뜻하는바(아 2:6;8:3), 여기서 지혜는 사랑의 대상으로서 인격화되어 나타낸다.

성 경: [잠4:9]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를 얻어라]
지혜를 최상의 것으로 여기고 이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자가 받은 상급이 8절에 이어 계속 언급된다.
ꃨ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여기서 '주리라'는 원어상 '방패가 되다', '보호하다'란 뜻을 함축하는 바,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본 문구를 '영화로운 면류관으로 너를 보호하리라'(*, 후페라스피세)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용례상 '영화로운 면류관'은 항상 신적 상급으로서의 영광과 존엄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딤후 4:8;히 2:9;벧전 5:4;계 2:10) 이러한 해석은 부적합하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주리라'는 말은 '제공하다', '선사하다'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과 그 내용에 잘 부합된다(창 14:20;호 11:8, Delitzsch, Zockler).

성 경: [잠4:10]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직접 인용된 아버지의 교훈(4-9절)에 이어 다시 저자의 일반적인 교훈이 시작된다(Bertheau, Ewlad, Hitzig, Toy).
ꃨ 내 아들아 ... 받으라 - 2:1 주석을 참조하라.
ꃨ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 3:2, 16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잠4:11]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지혜로운 길로(*, 베데레크 호크마) - 혹자는 이를 '지혜로 인도하는 길'로 보기도 하나(Delitzsch), 여기서 전치사 '베'(*)가 ' ...안에'라는 뜻을 가진다는 점에서 '지혜의 길 안으로'로 해석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다. 곧 이는 지혜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외적, 내적 행동 양식을 가리키는 셈이다(Zockler).
ꃨ 정직한 첩경 - 이는 그 내적 사상과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올바르고 성실한 행동 방식을 의미한다(Delitzsch). 한편 '가르쳤으며'와 '인도하였은 즉'은 모두 원어상 완료형으로 쓰여졌는 바, 이는 이러한 가르침과 인도가 과거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작용되고 있음을 뜻한다. 특히 이 '가르침'과 '인도'는 교육 방법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다.

성 경: [잠4:12]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다닐 때에 ... 곤란하지 아니하겠고 - 여기서 '다닐 때에'란 매일의 일상적인 삶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며, '곤란하지'(*, 예체르)는 '좁다', '협착하다'가 그 문자적 의미로서 사상이나 행동에 대한 내적, 외적 속박이나 억압을 가리키는 바(비교, 욥18:7,8), 본 문구는 지혜의 권고를 수용한 자는 범사에 자유롭고 형통하게 될 것임을 지시한다.
ꃨ 달려갈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 '달려갈 때에'란 상반절의 '다닐 때에'와 비교해서 어떤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할 긴박한 상황을 가리키고, '실족하지'(*, 티카쉘)는 '비틀거리다'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니며 상반절의 '곤란하지'와 유사한 의미에서 대구적인 문구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본절 전체는 지혜를 소유한 자는 어떠한 삶의 정황 속에서도 확고한 생의 목표를 지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경로를 통해 지혜의 올바른 인도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친다(16:9).

성 경: [잠4:13]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훈계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 원어상 '훈계'가 원래 남성형 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지혜'의 성과 같은 여성형으로 사용된 사실에 비추어(let her ... , keepher, KJV) '훈계'가 '지혜'와 동의어로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Delitzsch). 또한 본절은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란 동의 반복적인 서술어를 통해 지혜의 획득을 재삼 강조하여 권고하고 있다.

성 경: [잠4:14]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사특한 자의 첩경 ... 악인의 길 - 이는 11절에 나타난 지혜와 정직의 길에 대한 대조적 개념으로 쓰여졌다(1:10-15;2:10-15). 한편 '사특한 자'(*, 레솨임)는 습관적, 고의적으로 악을 계획하고 행하는 자로서, 병행되어 쓰인 '악인'(*, 라임)과 동의어이다(Delitzsch).

성 경: [잠4:15]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그 길을 피하고(*, 페라에후) - 여기서 '피하고'의 원어 '파라'(*)는 '버리다', '무시하다', '거절하다', '혐오하다' 등의 부정적인 의미들을 함축하는바 이는 곧 악에 대한 일말의 타협까지도 철저하게 배격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13:18;15:32).

성 경: [잠4:16]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자지 못하며 ... 잠이 오지 아니하며 - 원문상 미완료형인 이 두 동사는 그 행동의 계속됨이나 습관적 상태를 나타내는 바, 본절은 악인들의 삶의 습관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Toy). 17절과 연관시켜 볼 때, 이는 곧 이미 상습화된 그들의 악행이 마치 음식을 먹어야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일상적인 현상이 되어 있음을 가리킨다(시 59:15).

성 경: [잠4:17]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ꃨ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 '불의의 떡'과 '강포의 술'은 모두 불의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획득한 소득을 가리키는 문자적 표현이며(신 16:3;시127:2;암 2:8), 이는 악인들의 삶의 방편 자체가 악의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혹자는 본절을 16절에 나타난 습관적 행태와의 문맥상 연결 관계와 욥 15:16;34:7의 용례를 들어 '불의를 떡먹듯이, 강포를 술마시듯이 행한다'로 번역하기도 한다(Schultens, Umbreit, Elster). 한편 델리취(Delitzsch)는 전자의 '먹으며'가 완료형으로 , 후자의 '마심이니라'가 미완료형으로 쓰여져 시제의 변화가 있다는 점에서 본절을 '불의의 떡을 먹고 강포의 술로 그것을 소화시킨다'는 순차적인 의미로 해석하였다.

성 경: [잠4:18,19]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지혜로운 길과 악한 길]
11, 14절에 나타난 것처럼 인생의 진로가 빛과 어둠이라는 대조적 개념을 통해 묘사됨으로써(요 11:9, 10) 이에 대한 선택과 결단을 묵시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ꃨ 돋는 햇볕 같아서 ...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 '돋는 햇볕'(*,케오르 노가)은 성경의 용례상 '새벽에 떠오르는 빛' 곧 '여명의 빛'(삼하 23:4;사52:1)을 가리킨다(Delitzsch). 또한 '원만한 광명'(*, 네콘하욤)의 문자적 의미는 '완전한 대낮' 곧 '정오'를 가리킨다. 이는 '네콘'의 원형인 '쿤'(*)의 뜻이 '곧게 서다'란 점에서, 정오의 시계 눈금이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는 모습에서 유추된 말이다(Fleisher). 따라서 본절은 해가 어둠 속에서 떠올라 중천에 이르러 그 빛을 발하듯이 의로운 자의 삶은 점진적으로 성장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모습을 가지게 되며(막 4:28)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나타내게 된다는 비유적 의미이다(엡 4:13).
ꃨ 어둠(*, 아펠라) - 이는 '원만한 광명'과 대치되는 말로서 '(해가 져서) 어두운 상태'를 뜻한다. 한편 이 말은 성경에서 종종 '흑암'이란 말로 많이 나타나며(욥 23:17;30:26;시 91:6;렘 23:12), 불행과 파멸이라는 심판적 성격을 암시한다(출10:21-23).
ꃨ 그가 거쳐 넘어져도 ... 깨닫지 못하느니라 - 곧 악인들은 이미 습성화되고 면역된 악행 때문에 그들에게 파멸이 이를지라도 그 원인과 현재의 상태를 진단할 수 없으며, 그에 따라 영원한 멸망을 면할 수 없게 되리란 뜻이다(1:27;2:18, 22;3:35).

성 경: [잠4:20]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내 말에(*, 리데바라) ... 나의 이르는 것에(*, 라아마라) - 원어상 이들은 모두 그 낱말 속에 '명령하다'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특히 여기서는 그러한 의미가 잘 부합된다. 곧 저자는 지혜 수용에 대한 권고를 명령조의 어투로써 더욱 강력하게 당부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잠4:21]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네 눈에서 떠나게 말며 - 여기서 '떠나게'(*, 얄리주)는 '파하다', '미끄러지다'란 뜻의 어근 '루즈'(*)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지혜의 교훈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피하거나 흘려버리지 말고 항상 예민하게 대처하고 순종하여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한편 70인역(LXX)은 이를 '지나치지 말며'로 해석하여 본 구절의 뜻을 잘 살렸다.
ꃨ 네 마음 속에 지키라 - 2:1 주석을 참조하라.

성 경: [잠4:22]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얻는 자에게 - '얻는'에 해당하는 동사형 '마차'(*)는 '발견하다', '획득하다', '발생하다'란 뜻을 가지는 것으로 흔히 '(애써) 찾는다'는 적극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3:18). 결국 여기서는 단순히 얻는 자가 아니라 '애써 찾고 발견하여 소유한 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Delitzsch).


ꃨ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 '건강'에 해당하는 '마르페'(*)는 원어상 '치료(수단)'를 뜻하는 말로(healing, RSV)3:8의 '양약'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은 여기서 특별히 병에 대한 치유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 대한 계속적인 원기 충전의 수단을 뜻하는 말로 쓰여졌다(Delitzsch). 따라서 본 문구는 피교훈자가 지혜를 소유하며 그 인도와 보호를 따를 때 지혜가 그의 영적, 육적 삶 전체를 새로운 기운으로 계속해서 충족시켜 주며 그에 따라 역동적이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한편 70인역(LXX)은 '온 육체'(*, 칼 베솨로)를 '모든 사람들'(all men)이란 복수의 개념으로 역했으나(창 6:2), 여기서는 '베솨로'가 단수형이란 점에서 개체적 의미로서의 '육체의 모든 부분', 곧 상징적으로 피교훈자 개인의 삶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성 경: [잠4:23]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무릇 ... 네 마음을 지키라 - 본절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여러가지 꼭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도 먼저 네 마음을 지키라(Delitzsch, Mercerus, Zockler). (2) 삼가해야 할 모든 것들로부터 네 마음을 지키라(Aben Ezra, Jarchi). (3)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네 마음을 지키라(LXX,Vulagte). 그러나 여기서는 '지킬 만한 것'의 원어 '미콜 미쉐마르'(*)가 '지켜야 할 모든 것'이란 의미 외에 특별히 다른 뜻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1)의 견해가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으로 보여진다. '마음'이 사람의 인격적 활동의 중심지이며 지.의.정의 근거라는 히브리적 개념에 비추어 본절은 그러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최우선적인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성 경: [잠4:24]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마음을 지키는 것(23절)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 진술된다(24-27). 곧 본절은 마음과 외적 행위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이며, 마음을 지키는 것 또한 생각과 관념의 차원에만 머무르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임을재삼 확인시켜 주고 있다.
ꃨ 궤휼을 ... 사곡을 - 여기서 '궤휼'(이케슈트, )이 '왜곡하다', '굽다'란 뜻의 어근 '이케쉬'(*)에서 파생되었으며, '사곡'(*, 레주트)이'빗나가다', '거역하다'란 뜻의 어근 '루즈'(*)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점에서 병행어로 쓰인 이들은 모두 '선'과 반대되는 '악'의 개념으로서, '진리'와 '의'를 왜곡하고 배격하는 것을 의미한다(2:15 주석 참조, 6:12;19:1). 곧 본절은 인간의 말이 그의 사상이나 의도를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내면의 외적 표출 수단이란 점에서(마12:34), '악은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의미로(살전 5:22) 유추하여 해석할 수 있다(Toy).

성 경: [잠4:25]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네 눈은 바로 보며 - '바로 보며'(*, 레노카흐 야비투)는 '전면을 집중하여 바라보다', '주시하다'란 뜻으로 전면에 있는 대상에 대해 시야가 흔들림 없이 집중적으로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Delitzsch). 한편 70인역(LXX)과 수리아역, 탈굼역은 '바로'를 목적격으로 보아 '네 눈은 바른 것을 보며'로 역하였으나 원전상 부사(바로)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후반절은 시적 병행절로 본 구절과 같은 의미이다. 결국 본절은 지혜의 교훈에 의해 발견한 목적을 향해 집요하게 매진하는 삶을 영위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서(마 6:33), 자신의 삶과 그 행위에 대한 끊임없는 영적.도덕적 성찰의 자세를 제시한다(Delitzsch).

성 경: [잠4:26]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 '평탄케 하고'(*, 팔레스)는 '신중하게 헤아리다'(Ewald), '신중하게 재어보다'(Hitzig, Zockler), '(길을) 예비하다'(Delitzach)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데, 성경에서 '팔레스'가 대부분 어떤 장애로부터 길을 평평하게 하거나 길을 여는것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사 26:7;40:22) 델리취(Delitzsch)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 듯하다. 따라서 본절은 자기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을 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의미이다(히 12:13).

성 경: [잠4:27]
주제1: [지혜의 중요성]
주제2: [마음을 지키라]
ꃨ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 이미 준비된 길(26절)로 흔들림없이 행하라는 권고로서 25절과 유사한 의미이다. 한편 70인역(LXX)은 본절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 우편 길을 아시나니 그 좌편 길은 굽은 길이다. 또한 그가 너의 길을 곧게하시고 평안으로 너를 인도하실 것이다'란 4개의 행을 덧붙여 첨가했으나, 본절에 있어서 좌편이나 우편은 모두 진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여졌으며 26, 27절의 사역 주체는 사람 자신이다. 따라서 이 삽입절은 26, 27절의 메시지를 하나님이 주체가 된신적 사역의 형태로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첨가한 것으로 보여진다(Toy).

 

 

 

마음을 지키자   (잠언 4:23)

 

잠언 4:23"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좋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실제 행동이 그 가치관을 따라주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도 그 가치관은 아무 쓸데가 없다.
고대의 중국사람들은 북쪽의 야만 유목민들이 자주 침략해 와서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과 가축들을 약탈해가기 때문에 큰 고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침략자들이 북에서 공격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그 넓은 땅에 동서를 가로지르는 만리장성을 쌓게 되었다.   그 성벽의 높이는 약 9미터, 폭은 5.5미터, 길이는 2,700 킬로미터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성벽이다.   그렇게 큰 규모로 성벽을 쌓은 것은 너무 높기 때문에 침략자들이 기어오를 수 없게 하기 위함이요, 너무 넓어서 무너뜨리지 못하고, 너무 길어서 돌아 내려오기 힘들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완벽한 성벽임에도 불구하고 수 백년 지내는 동안 세 번이나 보기좋게 침략당하였다.   침략자들은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성벽을 허물거나, 만리길을 돌아서 침략해 내려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성문을 지키는 파수군들에게 큰 뇌물을 주고 정식으로 성문을 통과하여 침략해 내려온 것이다.   만리장성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문지기들이 큰 뇌물을 받고 본래의 마음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챤들이 아무리 신앙이 좋고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 마음문을 지키지 못하면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넘어가 침략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소중한 믿음과 확신과 소망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기 위하여 마음을 지켜야 한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 라고 하면서 마음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육신의 생명이 마음에서 나온다기 보다는 영적인 생명력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1. 영적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

밝은 보름 달은 캄캄한 밤 길을 밝게 비추어준다. 하지만 달 자체가 빛을 발산하는 것이 아니고 태양으로부터 오는 햇빛을 받아서 지구로 반사하는 것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근원이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 영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의 빛을 우리 마음 속에 비추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증거하기를 "어두운 가운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라고 하였다(고후 4: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된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비추시는 신령한 빛 때문에 지각이 열려서 깨닫게 되고 믿게 된 것이다.   그것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되어지기 때문에 다른 말로 표현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다" 라고 하였다(롬5:5).   우리 마음 속에 비추어 주시는 성령의 조명의 빛 때문에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수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려고 하는 마음의 소원이 생긴 것이다.   즉 우리는 신령한 빛을 받은 후에 "새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었다" (엡4:22-24). 거듭나고 새롭게 된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빛을 받아서 마음의 생각으로 생명력을 나타낸다.

 

2.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한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신앙을 지킨다는 뜻이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신앙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면서 마음을 지켜야 한다.

  마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그리스도를 항상 마음에 모시고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저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소서" 라고 하였다(엡3:17).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마음에 영접하였으므로 주님이 항상 내 마음에 계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 안에 있다고 믿는 것이 마음을 지키는 것이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신자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다.   찬송과 기도로 교제하고 말씀을 통해서 그의 음성을 의식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고 명령하시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고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라고 하셨다(잠4:4).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영혼이 살게 된다.

3.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골3:15).   그러므로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찾아올 때 우리는 마음의 평강을 얻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평강 주실 것을 믿고 확신으로 감사히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즉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 이라고 하셨다(빌4:6-7).   하나님의 평강만이 우리에게 참된 위로와 평안을 제공한다.


  마음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
두 마음을 품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이 갈팔질팡하여 하나를 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왜 마음이 갈팡질팡 하는가?   그것은 의심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거한다(약1:6-8).   그러면 의심은 왜 생기는가?   그것은 확실히 믿지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의심이 생기고, 의심이 생기면 갈팡질팡하여 하나님께 대해서도 두 마음을 품을 수 밖에 없다.   항상 눈치만 보다가 유리한 쪽으로 붙는 이중적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평소에는 예수 잘 믿는 것 같이 보이나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이 오면 예수를 배반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속을 다 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약1:7).

2. 마음이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네 마음에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23:17-18).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희망찬 미래를 살기 원한다면 우리는 불신자들이 불의한 방법으로 돈 벌어서 잘사는 것을 부러워하면 안된다.   그런 불신자들을 부러워하면 나도 그처럼 따라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고 하였다(살전5:22).   아삽은 "거의 실족할 뻔" 하였는데 그것은 "악인의 형통을 보고 오만한 자를 부러워하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시73:2-3).   우리도 불신자들의 형통을 마음으로 부러워하면 하나님 앞에서 실족하게 된다.

3.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지 말아야 한다
죄의 유혹은 언제나 매력적이기 때문에 뿌리치기에는 너무나 아쉽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 유혹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하기를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 라고 하였다(시141:4).   죄악을 행하려는 자는 자기 혼자 하기 싫어서 함께 죄지을 동조자를 찾아다니는데 진수성찬 음식을 차려놓고 식사하면서 마음을 사려고 한다.   다윗은 그러한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 같다.   우리 자신의 마음이 유혹이나 뇌물에 미혹되어 악한 일에 참여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할 것이다.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잠언 4:23)

Guard Your Heart (Proverbs 4:23)

 

 

1. 인간의 구성 (The Constitution of Man)

* 뇌: 몸의 통제본부 (The brain is the headquarters of the body)

* 마음: 전인의 통제본부 (The heart is the headquarters of the whole person)

* 인간: 육체와 마음(영, 혼, 정신) (Man is composed of body and soul)

참조: 삼분설(Trichotomy)→ 이분설(Dichotomy)

 

2. 마음의 통제 (The Control of the Heart)

* 마음이 몸을 통제해야 (The heart must control the body)

* 몸이 마음을 통제하면(If your body controls your heart, you will perish)

* 몸을 진압해서 통제하라(Subdue your body and make it your slave)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라” (롬 6:13).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자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 하며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disqualified)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5-27).

 

3. 열매의 비결 (The Secret of Fruitbearing)

 

* 마음이 살아나야 (Your heart must come to life)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 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3-4).

“어두운 데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 마음이 건강해야(Your heart must be healthy)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나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마음부터 바로 잡아야 (잠언 4:23) (주제: 치유)

 

인간이 눈 코 귀 입 등 신체적인 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다 동의합니다. ‘인간에게 마음(혹은 정신 혼 영)이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특별히 뇌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뇌(brain)가 있기 때문에 마음이 없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가령 뇌를 심하게 다치면 말도 못하고 성격도 바뀝니다. 뇌가 상하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지정의도 상한다는 것입니다. 지정의 기능이 뇌에 있다면 마음(정신, 혼, 영)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합니다. 성경은 마음이 있다고 전제하고,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면, 마음이란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할까요? 마음과 뇌는 어떤 관계일까요?

 

뇌는 생각, 인식, 추리, 계획, 감각, 언어, 동작, 방향, 기억 등 몸의 기능 전체를 통제합니다. 몸이 자동차라면, 뇌는 엔진입니다. 엔진이 자동차를 움직이는 것처럼, 뇌가 몸 전체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뇌가 온 몸을 통제한다면, 정말 마음은 없는 것일까요?

뇌는 몸의 한 지체입니다. 로마서 6장 13절에서 바울은 몸의 지체들은 “불의의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의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눈 코 귀 입 신경 뇌 같은 몸의 지체들은 다 무기나 악기와 같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몸이 자동차라면 뇌는 엔진이고, 마음은 운전자입니다. 뇌가 몸을 통제한다면, 마음이 몸을 통제하는 뇌를 통제합니다.

 

뇌는 하나님에게 반응을 보이지 못합니다. 뇌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할 존재라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뇌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뇌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죄라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이 영적 도덕적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뇌의 기능이 아니라, 마음의 기능입니다.

뇌가 온 몸을 통제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자기의 죄를 뇌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정치가가 공금횡령과 마약 사용 혐의로 걸렸지만, 계속 풀려났습니다. 다시 마약 판매 혐의로 걸렸고, 마약판매 증거가 테이프에 다 녹음돼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물었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셨어요? 그 동안 왜 계속 거짓말을 하셨어요?” 정치가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병든 나의 뇌가 그런 짓을 했습니다. 그건 내 책임이 아닙니다.”

 

정치가가 이런 말을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모인 기자들이 다 야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야유하지 않았습니다. ‘기자라면서 뇌도 몰라? 뇌를 모르니까, 환자를 죄인으로 몰지.’라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내 책임’이 아니라 ‘뇌 책임’일까요?

 

횡령과 마약사용과 마약판매의 책임은 그 정치가가 져야 합니다. 그는 자기 뇌에 책임을 돌리면 안 됩니다. 그가 마음의 명령에 따라 마약판매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뇌는 몸에 있어서 지정의를 통제하는 통제본부입니다. 마음은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관계, 옆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대인관계, 아래로 만물을 다스리는 대물관계를 통제하는 전인(全人)의 통제본부입니다. 마음은 몸을 통제하는 뇌를 통제합니다.

 

 

 

성경은 눈 코 귀 입 뇌 등의 몸이 죽은 후에도, 영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창 35:18; 시 31:5; 눅 23:43, 46; 행 7:59; 빌 1:23-24; 고후 5:8; 히 12:23; 계 6:9; 20:4). 몸이 죽어도 영이 살아 있다면, 인간은 본래 몸만이 아니라 몸과 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몸과 혼, 그리고 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3분설(trichotomy)이라고 합니다. 혼은 지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은 무엇을 할까요? 영은 지정의보다 더 높은 기능, 즉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 영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죽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롬 8:10).

 

인간은 몸과 혼과 영, 3부분으로 된 것이 아니라 몸과 영, 2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분설(dichotomy)이 맞습니다.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죽음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인간의 몸을 만드시고, 숨길을 불어넣으셨는데 그 숨길이 영입니다(창 2:7). 인간이 죽을 때는 영은 떠나고 육은 썩습니다(창 35:18; 왕상 17:21; 사 53:12; 눅 12:20; 시 31:5; 눅 23:46; 전 12:7; 요 19:30; 행 7:59). 성경은 인간이 죽을 때 영과 그리고 혼, 두 부분이 떠난다고 하지 않고 영이 떠난다고 합니다.

 

인간이 육과 영으로 되어 있다면, 혼이나 마음은 무엇입니까? 혼, 영, 영혼, 마음, 정신(mind)--이것은 동의어입니다. 성경은 영(히 루아흐, 헬 프뉴마)과 혼(히 네페쉬, 헬 프슈케)을 상호 교체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요 12:27; 13:21; 눅 1:46-47; 히 12:23; 벧전 3:19; 계 6:9; 20:4). 성경은 인간을 ‘몸과 영’이라고 합니다(마 10:28; 롬 8:10; 고전 5:5; 7:34; 고후 7:1; 골 2:5; 약 2:26).

3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영은 중생한 후에는 혼보다 더 정결하여 성령의 감동을 받고,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몸과 영의 모든 오염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고후 7:1, 34). 영이 하나님께 불충의 죄를 지을 수 있고(시 78:8). 영은 교만의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잠 16:18; 전 7:8). 사실 육과 영, 전인이 죄를 짓습니다.

 

성경은 마음 영, 혼, 정신, 속사람(고후 4:16) 등으로 표현합니다. 잠언 4장 23절의 ‘마음’은 영, 혼, 정신으로 표기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죽을 때까지 평생 도덕적인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 것인가, 하나님을 대항해서 살 것인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내가 내 자신의 욕망을 사랑할 것인가?’ 이것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모든 도덕적 행위를 통제하는 주인 혹은 주체(initiator)입니다.

 

마음이 인생을 통제합니다. 마음이 하라고 하는 것을 뇌가 합니다. 뇌는 마음의 머슴입니다. 뇌가 죄의 원천이 아니라, 마음이 죄의 원천입니다. 뇌가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책임이 있습니다. 뇌는 생명의 통로일 뿐입니다. 마음이 생명의 원천입니다.

 

눈 코 귀 입 손 발 뇌 등 몸은 마음의 갈망에 제한을 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원하는데 몸이 약할 수 있습니다(마 26:41). 마음은 성경 전체를 암송하고 싶은데, 몸이 제한을 받습니다. 마음은 밤낮 기도하고 싶은데, 몸이 잠을 자고 싶습니다. 마음은 병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몸이 이렇게 약한 것은 타락의 결과입니다.

 

사탄은 우리 약한 몸속에 있는 죄[성]을 부추깁니다. 마음이 몸을 통제하지 못하게 하고, 몸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가게 합니다. 마음이 몸을 통제하지 않고 몸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몸의 욕망들이 전인을 통제합니다. 마음이 몸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을 다스리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마음은 주인이고, 몸은 종입니다. 마음이 주인으로 종인 몸을 다스려야 하는데, 종인 몸이 주인인 마음을 다스립니다. 몸이 모든 결정을 하고 몸이 모든 명령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몸이 인격의 모든 기능을 파괴합니다. 몸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지성은 둔해지고 감정은 굳어지고 의지는 마비됩니다.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시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화내고 싶은 대로 화내면, 인생은 망합니다.

 

눈 코 귀 입 뇌 등 몸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몸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이 아니라, 약합니다. 죄는 몸의 약점을 이용해서 인생을 파괴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확하게 깨닫고 몸의 욕망을 따라가지 말고 통제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명령합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답게]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라” (롬 6:13).

바울은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몸을 단련하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자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 하며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disqualified)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5-27). 제자훈련이나 사역 훈련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TV를 보고 싶어도 그런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인터넷에 앉아 있고 싶어서 그런 시간도 줄여야 합니다.

우선, 마음이 살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살아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살아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마음이 죽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 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 4:3-4).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은 “이 세상의 신” 즉 마귀가 그들의 마음의 눈을 가리개로 덮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하도록 마음의 눈을 가립니다. 마귀가 마음의 눈을 가려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를 보지 못한 자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길이 무엇입니까? “어두운 데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 4:6).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혼돈하고 공허한 상황에서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셨고, 그 결과 바로 빛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으로 첫 창조를 하신 하나님께서 복음의 말씀으로 공허하고 어두운 마음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아는 빛이 있으라!’고 하시면 어두운 마음이 밝아져서 그리스도를 봅니다. 하나님이 혼란하고 어두운 마음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주시면 그 마음이 밝아지고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어두운 마음에 “빛이 있으라!” 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이 비쳐주시는 빛으로 그리스도를 밝게 보았습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 하나님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우리의 죽었던 마음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십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났습니다. 이제 나는 영적으로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영적으로 병이 듭니까?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몸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면 마음이 병듭니다. 마음이 몸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지 못하도록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몸의 요구대로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면 마음은 둔해집니다(행 28:27). 마음이 몸의 요구대로 따라가도록 내버려두면, 돌처럼 단단해집니다(막 3: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성령의 쟁기로 마음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눈 코 귀 입 뇌 등 몸은 약해져도 성령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공급받으면, 마음을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나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뇌의 병에 걸린 사람도 하나님에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정신지체장애인도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는 노벨상을 탄 과학자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명석한 스티븐 호킹은 하나님을 모르지만, 예수님을 믿는 정신지체장애인은 하나님을 압니다. 정신이 약한 사람도 하나님을 알고 옳고 그름을 압니다. 우리의 뇌나 몸의 다른 조직과 기관이 건강하지 못해도 그리스도의 빛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자기 집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밤에 서너 번 아버지를 살핍니다. 아버지가 어떤 때는 새벽 3시에 밥을 달라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몇 시냐고 계속 물으십니다. 아버지는 아무 이유 없이 앉아서 우시기도 하십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모시면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아버지를 모셔 보니, 아버지는 아이들을 귀찮게 여기십니다. 아버지는 때때로 아이들 앞에서 욕도 하십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양로원에 계시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차라리 돌아가시면 좋겠다고 생각해 놓고 또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내 인생은 실패야. 아버지는 불행하셔. 우리 가정은 엉망이야.’ 그녀는 항상 피곤합니다.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

 

첫째, 그녀는 치매에 대한 전문가의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치매 전문 의사에게 찾아가야 하고, 가족과 함께 치매에 대한 글을 읽어야 합니다.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서로 의논하지 않으면 더 어려워집니다. 잘 모르면 아버지의 행동에 더 좌절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합니다. 치매를 잘 알면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둘째, 신체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구분해야 합니다. 신체적인 문제는 이해하고, 동정하고, 창조적인 교육을 통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도 이해하고 동정하고 창조적인 교육을 하되, 교육의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복음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매순간 믿도록 가르쳐 드려야 합니다.

 

셋째, 무엇보다 마음을 상대해야 합니다. 뇌의 장애는 영적 장애가 아닙니다. 뇌가 쇠약해져도 하나님에게 반응을 보이는 영적인 능력이 남아 있습니다. 뇌가 약해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약한 뇌로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가르치면 됩니다.

 

넷째, 그래도 남아 있는 뇌의 능력을 최대한 강화시켜야 합니다. 아버지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장점과 은사와 재능이 무엇인가 찾아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하시고 싶어 하시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기도를 부탁드리고, 아버지의 충고를 부탁드려야 합니다. 뇌가 약해 치매가 걸린 아버지라도 남아 있는 능력을 사용하실 때에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오늘은 주로 뇌와의 관계 속에서 마음이 인생의 원천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마음이 살아나야 열매를 맺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마음이 건강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마음이 육체의 요구를 그대로 따라가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감동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음이 몸을 따라가지 말고 몸이 마음을 따라오도록 몸을 쳐서 내 속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복종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눈 코 귀 입 뇌 등 몸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할 때에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뇌가 아무리 약해도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여 마음을 바로 잡아야 하고, 항상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권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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