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그 결과 (미가 2:1-5)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살필 수 있다.
Ⅰ. 악한 죄를 꾀하는 인간의 불의를 보게 된다(1,2절).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멸하시려고 그들을 향하여 나오셨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과 싸워야 하는지를 보여 주신다. 그 이유는 종종 말했던 대로 열방과 여러 가족들의 파멸을 재촉하는 죄, 곧 학대의 죄이다. 학대의 여러 단계를 살펴보자.
1.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가 아닌 것들을 열심히 탐한다. 이것은 "고통의 뿌리" 요 모든 악의 뿌리이다(2절). 그들은 "밭들과 집들을 탐하기를"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듯한다. "오, 그 사람의 밭과 집이 내 것이라면! 그 밭이나 집은 내게 편리할 거야. 그리고 나는 그 사람보다 더 잘 관리할 것이고, 그러니 그 사람보다는 내게 더 알맞지."
2. 그들은 꾀를 부려 자기들의 탐욕을 달성할 방도를 짜낸다(4절). 그들은 저주받기에 알맞은 기술과 모략을 많이 써서 불법을 짜낸다. 그들은 그 일에 자신을 감추고, 위험을 피하여, 비방을 안받으려고 효과적인 방도를 모색한다. 이를 일컬어 "악을 경영한다" 고 한다. 그들은 머리 속에서, 가정에서 그 일을 경영하며, 마치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양 즐거이 몰두하고, 확실히 실현된 듯이 그 성공을 확신한다(그들은 계획을 아주 잘 짰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런 생각으로 해를 끼치는 것도 나쁘지만, 계획적으로, 고의적으로 하는 것은 더 나쁘다. 저 옛 뱀의 교활과 간계가 독과 함께 나타날 때는, 완전한 사악이 된다. 그들은 잠을 자야 할 "침상 위에서" 그것을 짜냈고, 악한 궤사를 꾸미려는 그들의 눈을 열심히 뜨게 했다. 하나님을 기억했어야 했을 "침상 위에서," 하나님께 관해 명상하고, "깊이 깊이 성찰하고," 자신을 반성해야 할 곳에서, 그들은 "악을 꾀한다." 바쁜 생활에서 물러나서 고독하게 된 시간은 성실하게 보내며 우리 자신의 향상을 모색해야 한다.
3. 그들은 꾀하고 꾸민 것을 행하는데 자기들의 온 힘을 기울인다.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꾀한 불법을 행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부와 권위와 권세의 도움으로 그 일을 꾸밀 수 있으며, 따라서 아무도 감히 그들을 통제하거나 그 일을 해명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것을 들어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인정해 주며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파괴를 위해 허락된 권력이란 없으며, 모든 것이 계발을 위함인데도, 할 수 있다고 해서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다.
4. 그들은 자기들이 짜낸 불법을 성취하는 데는 부지런하고 매우 빠르다. 그들은 생각에서와 침상 속에서 일을 결정하고 "날이 밝으면" 지체없이 행한다. 그들은 일찍 일어나 간사를 경영하며, "온 힘을 다해" 그들 손에 붙잡힌 악한 일을 행한다. 이는 우리가 선을 행하는 데 게으르며 꾸물거리는 태도를 부끄럽게 한다.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겠다. 하나님과 우리 세대를 섬기는 데 있어서,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자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자.
5. 그들은 궤사를 꾸미는 데 있어서 아무 것도 구애받지 않는다. 그들은 "탐하는" 것을, 할 수만 있으면 "취한다."
(1) 그들은 아무리 대단하고 공공연해도 자기들이 행하는 악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밭을 강제로 빼앗는데, 사기와 비열한 방법과 법의 핑계를 대고 할 뿐더러, 폭력과 횡포로써 한다.
(2) 그들은 잘못을 행하는 대상이나, 그들이 계획한 불법이 미칠 범위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과 그의 집을 확대한다" 고 했다. 그들은 부양할 가족이 많은 사람들을 강탈하여 파멸시키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빌어먹게 하고도 상관하지 않는다. 또 그들은 "사람과 그의 산업(유산)을 확대한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틀림없은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또 잘 유지하였다가 후손들에게 물려 줄 것들을 빼앗는다. 그러나, 저 학대자들은 그들이 궁핍케 한 자가 얼마인지에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들을 부요하게 할 뿐이다. 일단 탐욕이 마음을 지배하면 대개 모든 동정심이 사라져 버린다는 점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나 그의 이웃에 대한 사랑이 "그 사람 안에 거하지 않는다" 는 점을 명심하자.
Ⅱ. 이 죄에 대해 재앙을 내리기를 계획하는 하나님의 정의를 보자(3절). "그러므로, 여호와는 말씀하셨다." 이 여호와는 인간들 사이를 심판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복수하시는 정의로운 하나님이시다.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니라." 즉, 전국에게 곧 "이스라엘의 집에게," 그리고 특히 잔인하고 학대하는 족속에게이니라. 그들은 부당하게 형제에 대하여 악을 꾀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정의롭게 그들에게 재앙을 계획하시는 것이다.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께서 그들의 죄에 대한 징벌을 계획하실 것이니, 그 징벌은 매우 확실하여 피할 수 없으며, 매우 심하여 견딜 수 없으며, 매우 현저하여 죄에 대한 보답임이 널리 알려질 것이다. 그 죄악 속에 사악한 꾀가 많이 들어 있을수록, 그 징벌에 있어서는 거룩한 지혜와 적합성이 들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는 "그가 행하시는 징벌로 인하여 알려지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해 인정받을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그 징벌을 피할 것이라고 확신하여 안심하고 있거나, 그 심판을 막상 당하더라도 곧 물리쳐 없애 버릴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아시고는, 그들에게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벨리알" 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정의로운 계명의 가벼운 멍에도 참지 못하여 "그 멍에를 부수고," "그 고삐를 던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정의로운 심판의 무거운 멍에를 그들에게 메우신다. 이에 따라 그들은 거기에서 목을 뽑지 못할 것이며, 통치받으려 하지 않는 자들도 정복되고 말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이 매우 교만하고 당당해 하는 것을 아시사, "늘 이 목과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므로" (사 3:16), 건방지게 행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지금은 재앙의 때이기 때문이다." 그 되어지는 일들은 매우 보잘 것 없고 기분 상하는 것이어서 아무리 완고한 정신을 가진 자도 꺾을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이 매우 쾌활하고 명랑한 것을 보시고, 그들의 태도를 바꿔 웃음을 통곡으로, 기쁨을 슬픔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신다(4절). "그 때에" 곧 하나님께서 너희의 학대를 인해 징벌하시려고 강림하실 때에, "사람이 너희를 쳐 풍사를 지으며 슬픈 애가" 곧 "애가 중의 애가(문자적 의미는 이것이다)를 부르되," 가장 슬픈 애가를 부르리라. 마치 노래 중의 노래는 가장 즐거운 노래이듯이 하리라. 원수들이 그들을 비방하며, 그들의 비통을 조롱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을 치는 풍사(비유)를 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친구들은 그들의 슬픔을 애곡하며, 그들의 재앙을 기억할 것이며,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고 이구동성으로 외칠 것이다. 가장 건방지고, 번영한다고 안심하고 있던 자들이 곤궁에 빠지면 가장 낙심하고 실망하기 쉬운 것이 상례라는 점을 명심하자.
4. 하나님은 그들이 학대로 취한 집들과 땅들이 매우 많음을 보시고, 그 모두를 빼앗으리라고 말씀하신다.
(1) 그들은, 절망 중에, 그 모두를 포기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분깃을 옮겼으니,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며, 원수들의 소유가 되었도다" 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내게서 떠나게 하셨도다!" 얼마나 갑자기, 얼마나 힘차게 하셨는가! 부당하게 얻은 것은 오래 계속되지 않는 법이다. 정의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뺏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노 중에 우리에게서 "돌이키사," "우리 밭을 분할하여" 낯선 자에게 주셨다. 하나님이 떠난 자들에게는 화있을진저!
난외를 읽어보면, "그는 회복하시는 대신에 우리 밭을 나누셨고 우리 재산을 다시 차지하게 하시는 대신에 우리로부터 취한 자들의 소유로 확정하셨다" 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속임과 강포로써 대한 자들은 역시 속임과 강포로 대접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옳으시다는 점을 명심하자.
(2)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절망 중에 하는 말을 비준해 주실 것이다(5절). 그들 말대로 될 것이다. "여호와의 회중에서 제비를 뽑고 줄을 떨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게 되리라." 아무도 유산을 나눌 자가 없으리니, 이는 나눌 유산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재판장도 토지 소유권에 대한 재판을 하거나, 그들에 대한 논쟁을 판결하거나, 또는 여호수아 때처럼 제비를 뽑지 않으리니, 이는 모든 것이 원수의 손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로부터 빼앗을 이 땅에 대해서는 그들이 확실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잘 향유했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회중에" 있었다. 오히려 여호와의 회중이 그 안에 있었다. 그것은 거룩한 땅이요, 그러므로 그로부터 쫓겨난 자들에게는 더 큰 슬픔이 되었다. 여호와의 회중으로부터 격리되거나 그 특권의 향유를 가로막는 것은 가장 비참한 재앙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예언을 거역한 죄 (미가 2:6-11)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비난받고 있는 두 가지 죄와 그것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진 심판을 본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예언자를 박해하고 하나님의 가난한 자를 학대한 죄에 대한 영락없는 보응이다.
Ⅰ. 하나님의 예언자를 박해하고 억압하고 침묵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매우 분노케 하는 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 대한 그의 권위의 면전에 침을 뱉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한 그의 자비의 마음을 일축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예언자를 보냈다는 것은 그의 선하신 뜻의 확실하고도 가치 있는 증거이다. 이제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 이 백성이 하나님의 예언자에게 무슨 방해와 반대를 했던가? 그들은 "예언자에게 이르기를 예언하지 말라" 고 했다(사 30:10). 그들은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네가 본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여 귀찮게 하지 말며, 그런 두려운 소식을 가져오지 말라" 고 했다. 예언자들은 전혀 예언을 하지 말든지 듣기 좋은 예언을 해야만 했다. 여기서 "예언한다" 는 말로 쓰인 단어는 "떨어진다" 는 뜻인데, 이는 예언자들의 말이 마치 이슬처럼 하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개혁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훈계받기를 싫어하며, 신실한 주의 사자들을 침묵시킬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쓴다는 점을 명심하자(암 7:10 등).
" 그러므로," 박해자들의 입을 멈출 길이 없으므로, 그들의 숨을 멈추게 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살아 있으면, 그들은 외쳐, "두 증인" 이 그랬던 것처럼(계 11:10), 지상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예언하지 말고, 이들로 예언하게 하라" 고 해석하기도 한다. 우리 잘못을 말하는 자들로 예언하지 말게 하고, 우리의 죄에 대해 아첨하고 우리에게 평화를 선언하는 "자들로 예언하게 하라." 그들은 자기들은 전혀 사역자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고 간섭할, 그런 사역자를 원할 것이다.
그들은 이 점에서 책망을 받았다(11절). 즉 참 예언자에게는 눈살을 찌푸리고, 침묵시키면서, 아첨자를 장려하고 격려했다. 또 하나님의 신실한 예언자를 대적하며, 거짓 예언자를 세웠다. "만일 사람이 거짓 영으로 행하고" 라는 말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진 척한다는 말이다. 그런 자는 잘못된 영이요 미혹의 영이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임명이나 가르침을 받지 않았음을 안다. 그러면서도 그는 "포도주와 독주에 취한 너에게 내가 예언하리라" 고 말한다. 그는 포도주와 독주를 충분히 먹었으므로, 절대로 다른 예언자들이 경고한 전쟁과 기근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항상 즐거움이 가득하고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또한 포도주와 독주를 내키는 대로 마시는 것이 합당하며, 주저없이 술취하라고 말한다. 그런 예언자는 그들의 사악한 인생길에 죄도 위험도 없다고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자 그런데 "그가 이 백성의 예언자가 될 것이다" 그와 같은 사람을 그들의 예언자로 삼은 것은 그들의 방탕과 배반에 어울릴 뿐만 아니라, 그의 예언이 그들의 쾌락을 거룩하게 해 주는 양 주장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더욱 방심하고 쾌락을 즐기게 될 것이다. 사악하고 방탕한 백성이 자기들과 꼭 같은 사역자를 탐한다면, 그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도 그렇다고 믿으려고 하기 때문이다(시 50:21)
그러나, 거룩한 것들이 그런 비열한 의도로 남용되고, 예언 자체가 음탕하고 불경한 패거리를 시중드는 데 쓰일 때, 그 거룩한 것은 얼마나 더럽혀질까! 그러나 "나의 여호와께서 그의 강림을 늦추시도다" 라고 말한 저 종은 거짓의 영으로 "그의 동료 종들을 죽였고 술취한 자와 함께 먹어대고 그도 술취하였다."
2. 그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떤 훈계를 받는가?(7절) "오 야곱의 족속아! 네게 이렇게 말하고 행하게 되었는가? 너는 예언하는 자를 침묵시키고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겠느냐?" "야곱의 족속" 이 되는 것은 특권이며 명예임을 명심하자. 너는 "유대인이라고 칭함을 받았다" (롬 2:17). 그러나, 그 명예로운 이름으로 불리워지던 자가 타락할 때는 흔히 가장 악한 인간이 되고, 하나님의 예언자의 가장 악한 원수가 된다. "야곱의 족속" 이라 불리는 유대인들이 복음의 첫 선포자들을 가장 난폭하게 박해했던 자들이다. 여기 예언자는 이에 대해 이 하나님의 말씀의 박해자들과 논쟁한다.
(1) 이렇게 해서 그들은 거룩한 예언자들의 하나님께 큰 모욕을 돌렸다. "여호와의 신이 편급하시냐? 여호와의 예언을 침묵시킴으로써, 너는 그의 신도 침묵시켰다. 그러나 너는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여호와의 신을 너의 죄수와 종으로 만들 수 있는가? 너는 그가 말해야 할 것을 지시하고 너에게 꺼림직한 것은 말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만일 네가 예언자들을 침묵시키면 여호와의 신이 다른 길을 통해 너의 양심에 이르지 못하겠느냐? 너의 불신이 하나님의 충고를 좌절시킬 수 있느냐?"
(2) 그들이 유대인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였던가! "너는 야곱의 족속이며, 그것이 네 명예였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너의 조상 야곱의 행위가 이러하냐? 너는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가? 아니다. 만일 네가 진실로 그의 자녀라면 그의 행위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죽이고, 침묵시키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하지 않았고(요 8:39, 40), 야곱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 또는 "하나님의 행하심이 이러하냐? 이것이 그를 기쁘시게 할 일이냐? 아니다. 너도 그렇지 않은 줄 알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이상하게도 눈이 멀고 완고하여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죽이면서도 그렇게 하여서 그를 섬겼다고 생각한다" (요 16:2).
(3) 그 일 자체가 얼마나 부당하고 불합리한가를 그들로 하여금 살피게 하라. "나의 말이나 행위가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그렇다. 확실히 그렇다. 그것은 "정직한 세대" 의 경험에 호소한다. "지금 만일 너에게 답할 자가 있다면 부르라. 너는 어떤 성도들에게 돌아서겠는가?" "네 마음대로 돌이키라. 그러면 너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행위가 정직한 자에게 유익된다는 데 일치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선한 설교가 끼치는 것과 같은 유익을 주는 것에 반대하겠는가? 이점에서 예언자들의 말을 자기 말씀으로 인정하시며(그들은 내 말이다) 그로 인해 인류에게 선을 행하시기를 목적하시고 계획하시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시 119:68). 또한 너는 큰 은혜를 주시는 분을 선을 행하는 일에서 방해하려는가? 너는 세상의 빛을 가리려고 하는가? 오히려 그러려면 태양에게 비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마치 선견자에게 선견하지 말라고 말하듯이 행하고 있도다. 그러므로 바로 이 점에서 너는 사람들의 영혼을 그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계획한 유익을 그들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원수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 원수이며, 이들은 선한 사역자들을 침묵시키고 지식과 은혜의 통로를 막는다는 점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종교를 장려하는 것은 나라의 공공 이익을 위함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선을 행한다." "정직하게 행하는" (시 15:2) 것이 선한 사람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하며 그들에게 선을 끼친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평안을 누리며, 거기에서 평안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한 사람에게 선한 말씀이며, 그들에게 평안하게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여 예언자를 침묵하게 하는 자들은, 자신을 변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들에게는 부적당하고 무익하며, 복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마치 아합이 미가야에 대하여 불평한 것처럼 말한다. 그것은 그들의 탓이다. 그들은 만일 자기들이 그것을 잘 이용할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것이 그들에게 유익했으리라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정직하게 행하기만 했다면 그리고 평안을 받을 자격이 있도록 처신했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평안을 말했을 것이다. "선을 행하라. 그러면 너도 똑같이 칭송받으리라."
3. 이 죄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경고를 받는가? 하나님은 또한 그들의 망상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1) 그들은 신실한 사역자라는 유익을 빼앗길 것이다. 그들이 "예언하지 말라" 고 말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대로 사역자들을 취하니, "그들이 그들에게 예언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죄가 그들의 벌이 되리라.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침묵시킨다면, 하나님도 에스겔의 경우처럼 사역자들을 침묵시키고, 그들이 "더 이상" "훈계자" 나 충고자가 되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고침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환자를 더 이상 의원에게 데려가지 말라. 왜냐하면 그는 굴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에게 예언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면 수치를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죄를 범했을 때 부끄럽게 해주는 것은 치리자들의 일이요 또한 사역자의 일도 된다(삿 18:7). 그래서 그들은 어리석은 짓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며, 다시는 그것으로 돌아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무례하고 죄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채로 버려둘 때, 실은 그의 예언자들에게 "그들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그들을 내버려두어라" 라고 말씀하신다.
(2) 그들은 신실치 못한 사역자들의 우매한 인도를 받게 될 것이다. 11절을 하나의 경고로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만일 거짓 영에 행하면" (한글 개역과 다름), 즉 아합의 예언자들의 입속에 들어 있었던 것과 같은 거짓 영을 가지면, 그들의 손은 사악한 길에서 강퍅해져서, 결국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라."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와 같이 떠들도록 놓아두실 것이다. 그들이 속을 것이므로 속게 놔두고,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도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실" 것이다(살후 2:10, 11). 그들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예언하는 예언자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직분을 포도주 한 잔이나 맥주 한 병으로 듣는 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예언할 것이다. 만일 죄인들은 그들의 정욕의 만족을 채워 주기만 한다면, 그들의 죄를 덮어 기분을 맞추어 줄 것이다. 그런 예언자를 가지며, 또 그들에게 인도되는 것은 더할 나위없는 비참한 심판이며, 타락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다가오는 파멸의 전조와 같은 불길한 전조다.
Ⅱ. 앞에서처럼(1,2절), 하나님의 가난한 자들을 억압했다는 것이 그들이 비난받는 또 하나의 죄목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이중으로 화나게 만드는 죄이기 때문이다. 이제 다음을 살펴보자.
1. 죄가 어떻게 묘사되었는가?(8,9절) 그들이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정죄하고 적대했을 때, 그들은 역시 모든 다른 악도 저질렀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자들을 무엇이 속박할 수 있을까? 이전에 나라를 지키려고 적에 대해 반항하여 용감하게 행동했던 자들이 이제는 "대적같이 일어나," 나라를 오히려 파괴하고 이방의 원수보다도 더 큰 화를 초래했다(나라의 대적인 독사 같은 자들이 보통 하듯이). 그들은 남녀와 아이들을 삼켰다.
(1) 남자들에 대하여. 그들은 여행 도상에 있었고,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갔고," 나쁜 계획이라곤 조금도 품지 않은 그들은 자기 용무를 보러가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을 마치 위험하고 증오할 사람들처럼 취급하여, "의복 중 옷을 벗기며" (한글 개역과 다름), 즉 겉옷과 속옷을 다 벗겼다. 야만스럽게도, "땅에서 화평한" 그리고 해나 두려움을 주지 않으며 희생되기 쉬운 자들을 착취했던 것이다.
(2) 부녀자들에 대하여. 부녀자들이므로 보호되어야 했다(9절). 그런데 "내 백성의 부녀들을 너희가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냈다." "그들은 과부의 집들을 탈취했고" (마 23:14), 그 집들을 자기들 것으로 한 것은 그 집들을 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녀자들을 야만스럽게 취급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처사였다. 그러나 그것을 더 악화시킨 것은 특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의 부녀자들로서,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3) 어린 자녀에 대하여. 그들의 나이로 보아 따뜻이 보살펴야만 했다. 그런데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아이들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영광이었지만, 그들은 그 자녀들을 노예로 삼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태어나 그 특권을 가졌으나, 저들은 그 특권을 이방인에게 팔고, 그들을 우상 숭배의 나라로 보내어 거기서 그 영광을 영원히 빼앗기게 했다. 적어도 박해자들은 그들의 포로 생활이 영구하도록 계획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과부와 고아, 곧 힘없고 의지할 데 없어 권리를 기대할 수 없는 자들에게 가해진 위해를 중히 여기신다는 점을 명심하자.
2. 그들에게 부여된 말은 무엇인가?(10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 땅을 떠날 준비를 하라. 네가 강제로 쫓겨나, 내 백성의 부녀와 자녀들이 그들의 집에서 쫓겨난 것처럼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나안에서 주려 했던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며, 안식 속에 있지도 않다(시 95:11). 너는 그 속에서 만족이나 계속됨을 못누리리라. 왜냐하면 그 땅은 너의 죄악에 의해 "더럽혀졌기 때문이다." 죄는 땅에 대한 모욕이며, 죄인들은 그들이 더럽힌 땅에서 안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옛 가나안인들이 가증스런 일들로 땅을 더럽혔을 때 그 땅이 그들을 토했던 것처럼, 이들을 토해낼 것이다(레 18:27, 28). "아니다. 너는 이 땅으로부터 나갈 수밖에 없을 뿐더러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너는 그로부터 쫓겨나거나(전혀 같은 일이지만) 그 속에서 멸망하리라." 우리는 이를 오늘의 세계에서 우리 국가에 적용할 수 있다. 나라는 더럽혀졌다. 아주 큰 "타락이 세상의 정욕을 통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는 "일어나서 그를 떠나" 그 안에 있는 타락(부패)으로부터 떨어져서 "우리 자신을 타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의 안식처가" 아니며, 또 결코 그렇게 되려고도 않았다. 우리는 세상을 지나가도록 계획되었지 그곳의 한 부분으로 계획되지 않았으므로, 세상은 여관이지 집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영구히 거주할 성읍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일어나, 떠나자." 붙박이처럼 있지 말고, 그 위에서 살면서, 떠날 생각을 하며 위에 있는 영원한 성읍을 추구하자!
남은 자를 모으시는 여호와 (미가 2:12,13)
진노의 경고가 있은 후 여기서는 본장의 결론이 나온다. 예언자들의 말이 보통 그러듯이, 긍휼의 약속은 유대인이 바벨론에서 돌아 왔을 때 일부 성취되었으며, 메시야의 왕국에서 온전히 다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슬픔은 모두 보상될 것이다.
1. 그들이 흩어졌으나 다시 모아져서, 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로서 받으며, 서로 교제하고 위안하리라(12절).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네게 속한 자 모두, 즉 지금 네 나라로부터 추방된 야곱의 족속(7절) 모두를 모을 것이다(10절). 내가 너를 다시 모으리니 너희 중 하나라도 버려진 자가 없을 것이다.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며 구원을 위해 계획되고 보존된 남은 자, 그들은 한 몸에 연합될 것이다.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리라." 양떼는 온순하고 붙임성있는 동물들이다. 그들은 "초장의 양떼 같게" 되리니, 곧 목자의 살핌 아래에서 안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다" (마치 매애하고 우는 수많은 가축떼의 경우 같다. 그리고 양떼는 예언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사람들을 말한다. 겔 34:31). 그런데, 이 소리는 다투고 싸우기 때문이 아니라 숫자가 많기 때문에 나는 소리이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이 방에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셨을 때 성취되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합하셔서 한 목자 아래 두셨던 것이다. 이 때 불평이라고는 "이 처소가 너무 좁다" 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무리가 많으므로 나는 소리" 였다(사 49:19, 20). 그 때 세계의 모든 곳으로부터 온 사람이 있었으며, 모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힘에 의해 그에게로 나아갈 것이다. 이는 점점 더해져서, 그가 "사방으로부터 그의 택한 자를 모으시려고" 천사들을 보내실 때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고 쫓으시는 듯했으나, 이제는 그들을 품으시고 인도하시며, 그들이 돌아 와 구원될 길에 놓여 있는 모든 어려움들을 지나는데 도와 주실 것이다(13절). "길을 여는 자가 그들에게 앞서 올라간다." 모든 반대를 꺾으시고 그들의 길을 여신다. 그의 인도 아래 "그들은 성문을 부수고 그리로 통해 지나 갈 것이며" (한글 개역과 다름), 이 문을 통해 포로됨으로부터 탈출하여,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인데, 용기와 확신을 품고 전능자를 선두로 삼고 나갈 것이다.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갈 길을 인도하시고 여호와께서(그는 그들의 왕이시다) "선두로" 서서, 마치 이스라엘 군대가 광야에 지날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좇아갔으며, 여호와께서 "만주의 주로서" 여호수와에게 나타나셨던 때에 이스라엘 군대의 앞장을 서셨던 것처럼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왕이시며 주님이시다. 그는 그들 앞에 서서 행하시며, 그들을 사로잡혔던 땅에서 인도해내사 평안한 땅으로 이끄신다. 그는 깨뜨리시는 자시니 곧 흑암의 권세를 깨뜨리셨으며 그것을 통해 가시며, 베일을 찢으셔서 모든 신자에게 하늘 나라를 여셨다.
학식많은 주교 피어슨(Pearson)은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권세를 취하시고 우리 부활의 모형이 되셨던 그의 부활에 적용했다. "길을 여는 자가 우리 앞에 올라가되" 무덤으로부터 나와, 삼손이 가사에서 했듯이 그 문을 들어 기둥과 모든 것들을 옮겨서, 그 부숴진 데로 우리가 나가도록 하셨다. 박학한 포콕(Pocock) 박사는 고대의 유대인의 해석대로 그 길을 여는 자는 엘리야요, 그들의 왕은 메시야 곧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그것을 그리스도와 그의 전령인 "세례 요한" 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한이 길을 여는 자였다. 그는 얼음을 깨고, 회개의 세례에 의하여 주의 길을 예비하였다. 그를 통해 복음이 시작되었으며 그의 때로부터 "하늘 나라는 침략당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소개되고 그 앞에 "왕되신 메시야" 를 선두로 하여 "정복하러" 나가신다.
여호와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
(미2:1)
번호 | 저주 받은 자 | 관련 성구 |
1 | 우상숭배자 | 신 27;15, 삼상 26:19 |
2 | 말씀에 불순종 하는 자 | 신 27:26, 렘 11;3 |
3 | 성도를 핍박하는 자 | 신 30:7 |
4 | 사악한 자 | 욥 10:15, 미 2;1 |
5 | 악을 선하다 하는 자 | 사 5:20 |
6 | 여호와께 자신의 의를 말하는 자 | 사 43-9 |
7 | 여호와께 패역을 행하는 자 | 사 30:1 |
8 | 거짓되고 어리석은 목자 | 렘 23;1 |
9 | 독주(毒酒)를 권하는 자 | 호 7:5, 합 2;15 |
10 |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지 않는 자 | 말 2:2 |
11 |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 하는 자 | 말 3:9 |
12 | 위선자, 외식 자 | 마 23:13,15 |
13 | 부(富)만 탐하는 자 | 눅 6;24 |
14 |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 | 고전 16;22 |
15 |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 | 벧후 2;10, 14 |
- 그랜드종합주석 미가 2장 p673
[1-3절]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히 다니지 못할 것이라. 이는 재앙의 때임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인간 관계의 악들을 동반하였다. 그들은 밤에 쉬는 시간에 침상에서 불의와 악을 꾀하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또 그들은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 계획한 악을 실행하였다. 그들은 이웃의 밭들과 집들과 유산을 탐하며 강탈하였고 그들을 학대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의적 악과 교만에 대해 엄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4-5절] 그때에 너희에게 대하여 풍사(마솰)[잠언]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하리니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제비를 뽑고 줄을 띨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
미가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의 때에 그들을 위해 슬픈 애가를 부르겠다고 말한다. 그 내용은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작정된 징벌은 완전한 멸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주셨던 기업의 땅에서 그들을 옮겨 떠나게 하시며 그들의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며 그 땅은 이방인들에게 분배될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멸망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별하신 백성 중에서 땅을 분배받거나 그 경계선을 측량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 땅은 완전히 이방인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6절]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아마,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고 하는도다. 그들(거짓 선지자들)은 이것들에 대해 예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수치가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의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책망하며 그들의 회개를 명하며 하나님의 재앙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죄의 책망과 하나님의 재앙에 대해 예언하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앞세워 좋은 것만 말하게 하며 듣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지고 말 것이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욕하는 말로 들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앙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 재앙 때문에 그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7절]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신[영]이 편급[조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재앙 선포하심이 그의 조급한 처사라고 비난한다. 또 이것들이 그의 행하시는 일들인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그런 재앙을 내리실 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을 불신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조급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신다. 단지 그가 언제까지 관용하시는 것은 아니다. 그가 징벌하시고 심판하시는 날이 있다. 현세에서도 악인들에 대한 천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한 자에게는 유익하다(신 10:13).
[8-10절]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 중 겉옷을 벗기며 내 백성의 부녀들을 너희가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도다. 이것이 너희의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본문은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의 정당함을 그들의 죄악됨의 예를 들어 증거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악하였다. 그들은 이웃을 향해 대적같이 일어났다. 그들은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피난민들의 의복 중 겉옷을 벗겼다. 겉옷은 밤에 이불과 같이 사용되었던 옷인데(출 22:26-27) 그런 옷을 벗겼으니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었다. 또 그들은 이스라엘의 부녀들을 그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었다. ‘부녀들’은 과부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 쓸쓸한 여인들이 집에서나마 평안하고 즐거이 지내면 좋겠는데, 그들은 그 여인들을 그 집들에서 쫓아내었다. 또 그들은 어린 자녀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았다. 그들은 참 악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멸망을 선언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의 땅 가나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그 땅이 죄로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11절] 사람이 만일 허망히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미가는 거짓 선지자에 대해 말한다. 거짓 선지자는 허망히 행하며 거짓말로 말한다. 원문에는 “바람과 거짓으로 행하며”라고 되어 있다(홀레크 루아크 와쉐케르).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진실한 인격이 아니고 허풍과 거짓의 사람인 것을 보인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한다(왕상 22:14; 렘 23:21). 또 그는 포도주와 독주에 대해 예언한다. ‘포도주와 독주’는 세상적 쾌락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는 죄 문제, 심판 문제, 회개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 거짓 선지자의 설교는 이 세상 중심적이고, 내세 중심적이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세상 행복이고 의와 선이 아니다.
[12절]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들렐](국한문판)(훔)[소란할](BDB, KJV, NASB)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심판도 있지만, 그의 긍휼과 회복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딤전 1:1).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 본절은 ‘정녕히’라는 말을 두 번 말한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말씀하신 것은 정녕히, 반드시, 확실히 다 이루어질 것이다(사 14:24, 27; 겔 17:24; 22:14; 24: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으실 것이다. ‘남은 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선택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참으로 구원받은 자들, 곧 중생하여 죄씻음받고 거룩케 된 자들이다. 그들은 더러운 찌끼가 다 제거되고 겸손과 거룩의 인격으로 새로워진 자들이다. 그들은 영육으로 새로워진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스라 양떼같이, 초장의 양떼같이 한 처소에 두실 것이다. 그 ‘한 처소’는 신약교회이다. 또 그들의 인수(人數)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렐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은 신약교회와 세계복음화로 이어진다. 셀수 없는 큰 무리가 들어올 것이다(계 7:9).
[13절] 길을 여는 자(포레츠)[뚫고 나가는 자](BDB)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파레추)[뚫고 나가며]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본문은 이스라엘의 힘찬 회복의 행진을 증거한다. ‘길을 여는 자’는 포로생활의 속박을 뚫고 나가는 자이다. 참된 구원과 회복은 죄와 죽음의 속박을 뚫고 나가는 것이다. 길을 여는 자, 곧 속박을 뚫고 나가는 자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우리를 앞서 올라가신다. 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이스라엘은 뒤따라 성문으로 들어갈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죄와 죽음의 속박을 뚫고 담대히 나갈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 구원받은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의 인도자, 우리의 왕, 우리의 주님이시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악의 결과는 멸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숭배와 불법과 학대 등의 악을 행했고 또 거짓 선지자들은 그 악을 책망치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을 당했다. 이때의 해결책은 긍휼의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는 것뿐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싫어하지 말고 사모하자. 그것은 성경적 교리와 교훈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정직한 성도에게 구원과 생명이 되며 영육에 있어서 유익이 됨을 알고 그 말씀을 불신하지 말고 겸손히 받고 힘써 지키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우리는 성경의 바른 교훈을 사모하자.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오직 의와 선만 행하자. 그것이 영생과 평안과 형통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셨다(롬 3:22; 10:4). 우리의 구원과 천국 기업을 얻음은 우리의 행위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로임을 알고 항상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의를 굳게 붙들고 그 의 안에서 의를 행하고 그의 거룩 안에서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이웃에게 사랑과 선을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정로이다.
미가 2장 주석
성 경: [미2:1,2]
ꃨ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부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행한 범죄를 나열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두 가지 계층, 곧 부자들과 빈자들로 나뉘었다(McComiskey).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던 당시 부자들은 밤새도록 다음 날 행할 죄악을 꾀하고 날이 밝으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미가는 그들이 밤에 계획하고 실행한 죄악을 2절에서 적나라하게 나열하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발과 집을 빼앗고 사람들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는 부자들이나 권력자들이 앞서 언급된 죄악을 능히 행할 만큼 사회적 조건과 능력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능력만을 믿을 뿐 어느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두려워하지 않고 죄악을 자행했다(Lange). 그들이 빼앗은 토지나 재산은 하나님의 언약과 모세의 율법에 의해서 각 사람과 각 지파에게 보장된 권리였다(출 22:26; 레 25:23ff., Von Orelli, Smith). 그 권리를 빼앗는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가 파기됨을 시사한다. 그때 백성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뿐이다(3-5절).
성 경: [미2:3]
ꃨ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니 - '그러므로'(라켄)는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신 하나님의 결정이 앞서 언급된(1,2절) 죄악으로 인한 것임을 시사한다. 그 죄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어긴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하쉐브...레)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뜻을 의미한다(Lange). 재앙을 내리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믿지 않아도,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할지라도 변개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바꿀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심판 대상인 '이 족속'은 동일한 어구를 사용하는 아모스가 말한 바와 같이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암 3:1,Calvin, Delitzsch).
ꃨ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히 다니지 못할 것이라 - 그들은 자신들의 절대적 권력과 능력만을 의지하고 자신들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보증하신 타인의 안녕이나 행복을 짓밟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하였다. 이들이 저지른 죄악은 자신들의 목을 조이는 멍에와 같아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속박과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교만하게 얼굴을 빳빳이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모든 열방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McComiskey).
성 경: [미2:4]
ꃨ 너희에게 대하여 풍사(諷詞)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 - 본 구절에는 '풍사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이르기를'등과 같은 세 개의 동사가 나타나는데 모두가 비인격 3인칭 단수 동사이다. 그러나 그 주어를 결정하는 데는 문맥을 중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절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풍사를 지으며'의 주어는 열방들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전해 들은 열방들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비유나 속담을 지어 조롱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의 주어를 3인칭으로 생각하면, 본 구절 이후에 언급된 '슬픈 애가'에 해당하는 구절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슬픈 애가'에 대한 주어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이스라엘 자신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ꃨ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 본 구절에 나타난 1인칭 '내'와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본 구절에서 땅을 분재하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분이셨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과의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에게서 주셨던 땅을 빼앗아 '패역자'에 나누어 주신다. '패역자'는 문자적으로 '반역하는 자'를 가리킨다(McComiskey, Von Orelli).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이방인, 곧 앗수르를 의미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패역자'란 말은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비록 이방인인 앗수르가 일시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다 할지라도 미가는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반역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성 경: [미2:5]
ꃨ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제비를 뽑고 줄을 띨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 '회중'은 일반적으로 '무리'나 '군중'을 의미하나 본절에서는 '여호와의'라는 수식어가 첨가되어 한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여호와의 회중'은 오직 여호와만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 곧 언약의 백성을 의미한다(신 23장, McComiskey, Clavin). 한편 제비를 뽑고 줄을 띠는 것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하던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을 상기시킨다(수 14:1-5). 언약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약속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무시하고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여 불법을 행함으로 언약의 축복의 자리에 참예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앗수르의 포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10절, Smith).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던 부자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의 파멸을 전하는 미가의 예언을 듣기 싫어하였다. 그들은 미가의 예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언약된 백성이며 아들이며 장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출 4:22,23). 그들은 이미 완악해져서 미가의 심판 예언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미가의 예언행위를 제한하며 핍박하였다.
성 경: [미2:6]
ꃨ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 '그치지'는 '떠나다'라는 의미로, 본 구절은 치욕이 계속해서 떠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은 미가가 예언하는 모든 내용들이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치욕만큼 안겨줄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성 경: [미2:7]
ꃨ 너희 야곱의 족속이...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 본절은 미가의 예언을 모욕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거부한 이스라엘에 대해 미가가 반문한 내용이다. 미가는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의 진정한 의도가 저주와 파멸에 있지 않고 오히려 회개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사랑에 기인함을 강조하고 있다.
성 경: [미2:8]
ꃨ 근래에 내 백성이 대적같이 일어나서 - '근래에'(이트물)는 '가장 최근에', 혹은 '어제'를 의미한다(Von Orelli). 하나님께서 미가의 예언을 통해서 지적하신 이스라엘의 잘못은 오래 전에 행했던 죄가 아니라 아주 최근에 행했던 죄악이다. 한편 본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구를 향해서 대적하여 일어났는지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본절은 미가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스라엘이 대적한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Calvin).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대적한 행위는 구체적으로 본절 하반절과 다음절에 언급된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을 핍박하고 압제한 행위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행한 것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을 압제한 행위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출 22:21-27; 신 27:19).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저지른 죄악의 대상은 세 부류이다.
ꃨ 전쟁을 피하여...겉옷을 벗기며 -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은 피난민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피난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그들의 옷을 강제로 벗겨서 빼앗았다. 여기서 '벗기며'는 군사적 용어로 '엄습' 혹은 '급습'을 의미하며(삿 9:33;삼상 23:27) 노략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호 7:1). 이스라엘은 무방비 상태에 있었던 피난민을 급습하여 옷을 빼았었다.
성 경: [미2:9]
ꃨ 내 백성의 부녀들을...쫓아내고 - 이스라엘은 여자들이 안식을 누려야하며 보호를 받아야 할 집을 빼앗았다.
ꃨ 그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영히 빼앗는도다 - 이스라엘은 어린 자녀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았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아마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 속에서 어린 자녀들이 누려야 할 언약의 축복을 가리키는 듯하다(Smith). 이스라엘은 어린 자녀가 누려야 할 기회마저도 빼앗았다. 이스라엘이 핍박하고 압제한 이 세 부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이 보호해주고 돌봐주어야 할 대상이었다(출 22:22).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삶의 기반을 빼앗아 버리는 무자비한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며 대적하는 것이며 심판을 자초하는 것이었다.
성 경: [미2:10]
ꃨ 이것이...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라 - 본절은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다. 그것은 가나안 땅으로부터의 추방이다. 본래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서 허락하신 축복의 땅이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이 누리도록 허락하신 안식은 단순히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축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었다(히 3:11,18; 4:1,3,5, Smith).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달리 가나안 땅에 거하여 하나님의 축복에서 비롯된 번영을 누리는 과정에서 교만하여졌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이방 신이 준것으로 착각하고 우상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1:2-7) 자신의 욕심대로 많은 물질을 가질 때 안식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가난한 자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착취하였다(McComiskey). 하나님은 그러한 이스라엘을 축복의 땅 가나안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앗수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다.
성 경: [미2:11]
ꃨ 사람이 만일...선지자가 되리로다 - 본절은 이스라엘의 심령 상태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은 참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하나님의 말씀인 참예언과 인간의 말인 허망한 거짓 예언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들은 미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는 거짓말로 취급하고 핍박하여다. 그러나 만약 어떤 자가 이스라엘에게 포도주와 독주, 즉 부(富)와 번영과 풍요가 있으리라고 거짓 예언을 하면 그를 예언자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처럼 언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바른 말을 하는 사람보다 무조건적인 축복을 말하는 아첨꾼을 더욱 좋아했다.
성 경: [미2:12]
ꃨ 야곱아...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 양떼로 비유된 '남은 자'는 본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 본서에서 '남은 자'에 대한 언급은 모두 다섯 번 등장하는데 그것은 심판과 전쟁과 연결된다(4:7;5:7,8;7:18). 4장에 언급된 '남은 자'는 '저는 자','쫓겨났던 자','환난을 당한 자'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모아서 강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신다(4:7;5:7). 남은 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은 자들이다(7:18-20). 그들은 마치 비옥하고 푸른 초장으로 가득 찬 에돔 족속의 한 도시인 보스라에 모인 양떼와 같아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남은 자의 수는 매우 많다. 마치 양떼들이 우리에 모였을 때 웅성웅성 소리가 나는 것처럼 남은 자들의 수가 매우 많아서 그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이다.
성 경: [미2:13]
ꃨ 길을 여는 자가...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 '여는 자'는 '왕'과 병행을 이루며(Von Orelli) 메시야를 암시한다. 왕은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위임 통치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백성들보다 앞서 나아가는 인도자이다. 그러므로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는 말씀은 백성들 앞에 서서 인도하는 왕의 모든 행위와 통치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그는 백성들의 인도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나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통해서 백성들을 이방의 압제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이 예언은 가깝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의 통치에서 해방됨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전히 구원을 받게 됨을 예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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