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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미가서 1장

by 은총가득 2021. 9. 24.

 심판의 예고 (미가 1:1-7)

 

 여기에서 다음 사실들을 살필 수 있다.

 

Ⅰ. 이 예언자와 그의 예언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보자(1절). 이것은 이 책의 예언을 읽고 듣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앞에 나왔다. 사람들은 저자와 그의 권위를 알게 될 때 책을 더 신임하게 될 것이다.

 

1. 예언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에 씌어진 것과 거기 씌어진 것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자에 의해 선포된 것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멸망할 인간의 말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에 의해 판단받아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여호와의 이 말씀이 그 예언자에게 임했는데, 명백하게, 힘 있게 그리고 이끄시는 방식으로 임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즉 말씀이 그에게 나타내 준 환상을 보았고,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명백하고도 확실하게 예언했다.

 

2. 그 예언자는 모라셋 사람 미가이다. 그의 이름 "미가" 는 몇 세대 전의 한 예언자의 이름인(아합왕 때, 왕상 22:8) 미가야란 이름의 단축형이다. 그의 별명인 "모라셋 사람" 은 14절에 나오는 모레셋이나 15절과 여호수아 15장 44절에 나오는 마레사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살았음을 뜻한다. 그의 거주지가 언급된 것은, 그 당시 만일 누가 그 곳에서 찾았다면 예언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리라는 점을 나타낸다.

 

3. 그의 예언의 시대는 유다의 세 왕, 곧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기간 중이었다. 아하스는 유다의 왕 중에서 악한 축에 끼며, 히스기야는 선한 축에 낀다. 이렇듯 변화있는 시대가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지나갔으니, 곧 그들이 자신들을 적응시키기를 배우고, 그 유혹에 대해 무장해야 할 찡그린 시대와 또 미소짓는 시대였다.

이 책에는 약속과 위협이 서로 섞여있다. 따라서 미가는, 사악한 통치 중에도 평안을 선포했고, "의인들에게는" 사태가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으며, 경건한 왕의 통치 중에는 회개를 선포하며, 악한 자들에게는 사태가 "불길할 것이라고" 말했음이 나타난다. 왜냐하면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여호와의 말씀은 여전히 변함없기 때문이다.

 

4. 이 예언에 관련된 당사자들을 보자. 이 예언은 열방의 영향 아래 있는 이스라엘과 유다 두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었다. 열 지파는 다윗과 아론의 집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꺼이 예언자들을 보내신다.

 

Ⅱ. 뒤따르는 예언에 대한 매우 엄숙한 서론이 나온다(2절). 이 속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필 수 있다.

1. 백성들이 가까이 소집되고, 마치 재판정에서처럼 주의를 집중케 한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들을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함을 명심하자. 우리 모두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말씀되어진 것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성들아, 너희(난외는 "그들 모두" 라 했다)는 들을지어다." 곧, "지금 들을 수 있는 너희 모두와 간접적으로 전해 듣는 다른 모든 사람" 에게 대해서이다. 그것은 비상한 어법이다. 그러나 미가가 그의 예언을 시작할 때 쓴 이 말씀은 미가야가 열왕기 상 22장 28절에서 그의 말을 끝낼 때 쓴 말과 원문으로는 똑 같다.

 

2. 그 예언자는 "땅아 들으라." "거기(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과 함께 들으라고 땅에게 호소한다. 땅은 장차 올 심판의 도래와 그 중압 때문에 떨게 될 것이다. 땅은 이 미련하고 지각 없는 백성보다 더 속히 들을 것이다. 그리고 땅이 호소하면 하나님은 들을 것이다. 교회와 그 속의 사람들은 듣지 않더라도, 땅과 그 속에 있는 것들은 들을 것이며, 이 사실이 그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3. 하나님 자신이 송사된다. 그의 전능, 권세, 정의가 이 백성에 대하여 불리하게 증거된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對)하여 증거하신다……. 이것은 너희는 정당한 경고를 받았으며, 너희의 예언자들은 파수꾼처럼 충실하게 그들의 의무를 다했으나, 너희가 그 경고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예언의 성취가 너희의 멸시와 불신에 대한 증거가 되리라. 또 너희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의 말씀은 어떤 것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임을 깨닫으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심판의 증거를 받으려 하지 않는자들은 그의 손의 심판에 의해 굴복하게 되리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는 예루살렘의 성전으로부터 그들에게 증거한 그의 계시에 대해 닫힌 귀를 돌려대는 자들을 심판하시러(3절) 내려오실 때, 하늘에 있는 "그의 성전으로부터" 증인이 되실 것이다.

 

Ⅲ.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임할, 즉 곧 얼마 후에 이스라엘에서 성취되고, 마침내 유다에서도 성취될 파괴적 심판에 대한 무서운 예언이 나온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치러 나타나실 것이다(3절). 그들은 자신과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랑했다. 그 관계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의 믿음을 결코 속이지는 않지만, 위선자의 추측은 실망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신다." 곧 그들이 하나님을 그 곳에 고정시켰다고 생각했던 그 속죄소(자비의 자리)를 박차시고, 심판의 보좌를 거기에 준비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영광이 떠난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 영광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이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길은 오랫동안 긍휼의 길이었으나, 이제는 그의 길을 바꾸셨다.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실 것이다. 그는 마치 되어지는 일과 무관한 듯이 물러선 것으로 보였었으나, 이제는 자신을 나타내사, 그들이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을, 그들을 편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적대하여 행하시기 위하여 강림하신다. 이전에 가끔 그러셨던 것처럼 놀라운 긍휼에서가 아니라 놀라운 심판을 위해서 하늘을 쪼개고 강림하시리라(사 64:1; 26:21).

 

2. 창조주가 그들을 대적하여 나타나신다면, 어떤 피조물이 그들을 위해 편들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는 멸시와 경멸 속에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며, 앞서 그에게 반대하거나 그와 다투었던 모든 세력들을 밟으실 것이며, 밟아 낮추실 것이다. 우상 숭배나 군사적 요새를 위해 세워진 산당들은 모두 밟혀지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희망을 견지해 주고 불안을 떨어버려주기에 충분하다고 산과 바위들의 높음과 힘을 믿는가? 그것들은 "그(하나님)의 밑에서 불 앞의 밀랍처럼 녹을 것이다" (시 68:2). 그들이 그 골짜기들의 비옥함과 그들의 소산을 믿는가? 그것들은 산들이 녹을 때에 그들로부터 쏟아져 내려올 "불의 개울로 갈라질 것이다." 그것들은 마치 땅이 "가파른 곳을 흘러내리는 물" 에 의해서 갈라지듯 경작되고 씻길 것이다. 하나님은 땅을 강물로 가르신다고 했다(합 3:9). 산들처럼 "높은 지위" 의 사람들도, 계곡처럼 "낮은 지위" 의 사람들도, 모든 것을 황폐하게 하고, "폭우처럼 식량을 남기지 않는" (잠 28:3) 일을 위해 산과 골짜기가 보내질 때, 그들 자신이나 그 땅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건져 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나라를 지켜 주리라고 바랐던 이스라엘의 수도에 특히 적용된다(6절). 나는 지금 부요하고 붐비는 도성인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거기 펼쳐질 기름더미 같게 하며, 운반해야 할 모인 돌들의 무더기 같게 하며, "포도원의 씨뿌림같이" 하며, 포도 심기 위해 돋운 흙더미같이 하리라.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리라(사 25:2). 그들의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 무더기같이" 되었으며(호 12:11), 이제 그들의 집들은 황폐한 무더기처럼 될 것이다. "성읍의 돌들은" 정복자의 분노에 의하여 "골짜기에 퍼부어진다." 그는 이렇게 하여 오랫동안 그에 대해 버티어 왔던 그 벽돌에게 복수할 것이다. 그 벽들이 무너져서 그 담에 의해 가려져 왔던 기초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돌 위에 돌 하나라도 남지 않을 것이다.

 

Ⅳ. 이 무서운 심판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그들의 죄를 책망한다(5절).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라." 만일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진노하시는가, 또는 왜 야곱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서 파멸에 이르렀는가" 하고 묻는다면 대답은 쉽다. 즉 죄가 모든 불행을 초래했다. 죄가 모든 것을 황폐하게 했다. 야곱과 이스라엘의 모든 환난은 그들의 허물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은 이처럼 그들에게 대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외적인 특권이나 고백은 범죄한 인간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해낼 수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만일 "이스라엘의 집" 에서 죄가 발견된다면, 그리고 만일 야곱에게 허물과 반란의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들을 먼저 징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는 다른 누구의 죄보다도 하나님에게 더욱 불쾌한 것이며, 더욱 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 라고 물었다. 우리가 죄의 자책을 느낄 때, 그 느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고통당하는 원인이 되는 죄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하며, 특히 우리에게 적대하여 싸우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함을 명심하자. 그러면 그것은 무엇인가?

 

1. 그것은 우상 숭배이다

. 그것은 "산당" (높은 처소)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크나큰 허물이며, 혼약을 파기했으므로 이혼당할 만한 영적 간음이다. "유다의 산당" 이 야곱의 허물만큼 그렇게 약하지는 않았으나, 역시 하나님께서는 충분한 모욕이며 선한 통치에 흠이 된다. "산당이 제거되지 않았다" 고 했다.

 

2. 그것은 그 두 나라의 왕도인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이다.

이들은 가장 인구가 많은 곳들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장 큰 사악함이 있었고, 그들은 서로를 약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가장 화려한 곳들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부요와 쾌락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이들은 권위와 모범에 의해 전국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곳들이었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우상 숭배와 "독신(瀆神)이 전국에(온 땅에) 퍼졌다" (렘 23:15). 영적인 질병은 가장 이름난 사람들과 장소에 가장 크게 만연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만일 한 나라의 수도나 한 교구의 우두머리 집안이 사악하고 독신적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해로운 길을 따를 것이며," 자기들 앞에 놓여 있는 나쁜 책을 복사해 낼 것이다. 즉 발자취를 답습할 것이다.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의 악덕들은 남들까지 끌어들이는 지도적인 악덕들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저들의 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죄짓게 한" 책임을 참으로 져야 했다. 그들은 사악함의 본보기였으니, 처벌에도 본보기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만일 야곱의 허물이 사마리아에 있다면, "사마리아는 무더기가 될 것이다." 죄에 거하는 장본인들은 이를 듣고 떨지어다.

 

Ⅴ. 몇몇 우상의 훼파를 통해 이 죄에 대해서 보답이 가해졌다(7절).

1. 그들이 예배하던 신들이 멸망할 것이다.

"그 새긴 우상은" 앗수르의 군대에 의해 "파쇄될 것이며," "모든 우상들이 훼파될 것이다." "사마리아와 그 신상" 은 산헤립에 의해 황폐케 되었으며(사 7:11), "그들의 신들은 불에 던져졌으니, 그들은 신(神)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 37:19). 이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내가 우상들을 황폐케 하리라" 고 하셨다.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권세잡은 자들로 하여금 우상을 파괴하게 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손으로 그 일을 맡아 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2. 그들이 신들에게 바친 예물들은 파괴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들이 제단을 채우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신상의 사당을 꾸미기 위해서 우상에게 드린 예물을 말하거나(이것들은 개인의 집뿐만 아니라 신들의 집들도 약탈하는 군대의 밥이 될 것이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 으로서, 그들이 "우상, 곧 연애하는 자들이 우상에게 준 값" 이라고 부른 그것을 말할 것이다(호 2:12). 그들이 아끼는 우상들에게 돌렸던 것은 결국 마땅히 드렸어야 했을 그분에 의해 빼앗기고 말 것이다. 사람들이 죄의 값으로 하거나 죄를 짓고 한 일은 번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 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은 자기들의 비위를 맞춰 우상을 받들게 하려고 이익을 제공하면 우상 숭배하는 나라들과 동맹을 맺어 부요해졌으며, 우상을 섬기는 그들의 사당은 그들을 좇아 음행하는 자들의 예물로 부요해졌다. 그러나 이 모든 부는 우상 숭배국의 밥이 될 것이며, 다시 기생의 값이 되어, 자기들의 신들이 준 보상으로 생각하여 다시금 우상 숭배자들의 군대가 취할 것이다. "그것은 야렙 왕에게 드릴 예물이 될 것이다" (호 10:6). 우상들에게 준 것과 그 우상들에게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생의 삯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의 저주가 그 위에 있을 것이며, 그것은 번성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못 줄 것이다. 한 정욕에 의해 강탈한 것은 다른 한 정욕에 의해 낭비되는 것이 보통이다.

 

 

 미가의 애가 (미가 1:8-16)

 

 

우리는 여기서 파멸된 왕국의 장례식에 참여한 긴 행렬의 애도객들을 볼 것이다.

Ⅰ. 그 예언자 자신이 상주(喪主)이다.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비통하며 미칠 듯 하여, "벌거벗은 몸으로 행할 것이다" (8,9절). 예언자들은 보통 그들 자신의 슬픔을 공적인 슬픔으로 나타냈다. 이는 부분적으로 저들의 예언을 완화하여, 저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것이 악의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보이려는 것이며(그들은 절대로 불행의 날을 바라지 않았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그 환란이 얼마나 두렵고 슬픈 것인가를 보여 주어, 백성들에게 거룩한 공포심을 일으켜 회개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려는 것이다. 눈물의 예언자가 그랬고(렘 9:1), 이 예언자가 그랬듯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도들의 고난뿐만 아니라 죄인들의 징벌에도 슬퍼해야만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미가는 그 땅에서 밤에 나타나 몸서리치는 소리로 울어대는 "들개같이 애곡하며," "부엉이나 올빼미, 또는 타조같이" 애통한다.

여기서 예언자는 두 가지에 대해 슬프게 애곡한다.

 

1. 이스라엘의 사태가 절망적이라는 점이다.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치료 불가능의 파멸이다. 인간은 이스라엘을 도울 수 없고, 그가 회개와 개혁으로써 스스로를 도우려 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도 돕지 않을 것이다. 실상 길르앗에는 유향과 의원이 있지만, 그들은 그 의원에게 자기 상처를 보이지 않으며, 유향을 바르지 않으므로, "그 상처는 고칠 수가 없다."

 

2. 유다도 위험하다는 점이다. 잔이 돌아와 이제 유다의 손에 놓였다.

"그 적이 예루살렘의 성문에 미쳤다" 고 했다. 사마리아와 열 지파(이스라엘)의 멸망 후 곧 산헤립의 지휘 아래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문에 이르렀으나, 더 이상 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예언자는 큰 관심과 걱정을 지니고 그 두려움을 예견하여, 예루살렘의 평화를 간절히 바랐다.

 

Ⅱ. 여기에 여러 장소가 애곡으로 초대되고 있다. 그러나 블레셋이 이 애곡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나와 있다. "그것을 가드에 고하지 말라" (10절). 이것은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애곡하여 한 말, "가드에는 고하지 말라. 왜냐하면 무할례자가 이스라엘의 슬픔에 개가를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에서 따온 것이다. 가능하면 하나님의 백성 자신들과 그 동료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죄나 슬픔을 기뻐하는 자들을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다윗은 "악인이 자기 앞에 있을 때" 잠잠했고, 자기의 슬픔을 억눌렀다(시 39:1)

소리 내어 슬퍼하는 것을 막지 않는 것이 현명하기는 하겠지만 하나님의 교회가 슬픔 중에 있을 때에 침묵하는 자도 용납하는 것이 당연하다. 크게 애곡하는 자들처럼 "티끌에서 구를지어다." 그리고 "유다의 집과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집들이 티끌로 덮히어, 티끌 속에 부숴진 아브라의 집, 곧 티끌의 집이 되게 하라." 하나님께서 집을 티끌로 만드실 때는, 겸손히 그의 강한 손 아래 자신들을 굽히고, 입을 티끌에 묻혀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섭리에 자신을 맡겨야 된다. 우리는 티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티끌로 부르셔서,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게 만든다.

 

이 편만한 애곡에 참여할 여러 다른 장소들의 이름이 여기에 나온다. 그 이름 중 몇몇은 우리가 다른 데서 찾을 수 없다. 추측컨대, 그 이름들은 그 예언자가 붙인 이름들로서, 닥쳐 오는 불행을 표시해 주거나 그것을 부각시켜 줌으로써 이 안일하고 우매한 백성들을 일깨워 하나님의 분노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주게 하려던 것이리라. 산헤립의 침략을 예언한 곳에서 이 같은 묘사를 볼 수 있다. 즉 그의 침략을 받은 여러 도성들이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을 본다(사 10:28 이하).

그러면 그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자.

 

1. "사빌의 거민," 즉 "단아하고 아름다움" 을 뜻하는(난외에 의하면 "아름답게 거하는 그대") 거민이 포로가 될 것이며, 도주하게 되어, 그들의 장식물을 빼앗기고, "벗은 몸에 수치를 당할 것이다." 우아하고 고상한 것처럼 보이는 자들은 자기들이 당할 모욕을 모른다. 그러나 사빌의 거민이었던 자들에게는 더 큰 수치가 임한 것임을 명심하자.

 

2. "사아난의 거민들" 이 있다. 말뜻은 "떼들의 지방" 을 의미한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양떼처럼 많았지만, 그들 자신의 환난(재앙)에 빠져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까운 곳" 이란 이름을 지닌 "벧에셀의 애곡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한글 개역과는 다름). 그 곳은 슬픔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 위로와 구제를 주지 못할 것이다. "그가 너를 자기 발편으로 삼으리라" (역시 개역 성서와 다름). 즉, 오! 사아난의 거민들이여, 적이 너희 중에다 진을 치고, 그 곳을 차지하며, 너희에게다 거처를 정하리라는 말이다! 자기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고 믿는 자들은 자기 이웃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당연히 할 것이다.

 

3. "마롯의 거민" 에 대해서 말하면(어떤 이는 "라못" 을, 어떤 이는 "거친 곳" 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복(선)을 기다렸으나," 복을 못받아 슬퍼했으며 실망했다. 왜냐하면 앗수르 군대가 포위했을 때,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서 예루살렘 성문에 임했기 때문이다" (12절). 마롯 거민이 거룩한 성읍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았을 때는 자신들의 특수한 슬픔은 능히 간과할 수 있었을 것이며,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앗수르인은 간과할 수 있었을 것이 뻔하다.

 

4. 라기스는 산헤립이 포위했던 유다의 한 성읍이었다(사 36:1, 2). 그 성읍의 거민은 빨리 도망가기 위해 "준마에 붙인 병거" 라 했다. 이것은 그들 자신과 가족들을 구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는 이렇게 반어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너희는 병거와 준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라기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은, 그가 "시온의 죄의 근본이라" 는 점이다(13절)(아마 우상 숭배의 죄인 듯하다). 그들은 가까운 이웃인 열 지파로부터 우상 숭배를 배워, 나머지 두 지파에게 전염시켰다. 한 나라에 죄를 끌어들이는 자들은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을 그 나라에서 스스로 추방시키는 일을 예비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저들은 죄의 장본인들 중에서도 먼저 징벌받게 되리라.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그것들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그것들은 그 성읍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의 문 앞에서 이스라엘의 허물을 문책할 것과 누구에게서 범죄를 찾아 낼지를 알고 계신다. 이스라엘 죄에 공모했던 라기스는 확실히 심판받아야 할 것이다. "너는 가드모레셋에게 예물을 줄지어다." 블레셋의 한 도성인 이 도성은 유명한 블레셋의 도성 갓에 의존하고 있었다. 너희는 그 성읍의 주민의 환심을 사서 너희를 돕게 하려고 했지만, "악십의 집들(14절)이" (마레사 또는 모레셋으로서, 그와 함께 언급된 성읍이다. 수 15:44) "이스라엘 열왕을 속일" 것이기 때문에 헛될 것이다. 비록 그들의 힘에 의지해도 그들이 속으리라. 여기에 그 이름에 대한 암시가 있다. "악십" 은 "거짓말" 을 뜻하며,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5. 이스라엘을 도울 수도 없고, 도우려 하지도 않는 마레사 자신도 밥이 될 것이다(15절). "마치 법적으로 상속자인 것처럼 확실히 너의 땅을 차지할 상속자(즉 원수)를 데려오겠다. 그리고 그가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며, 수도 예루살렘까지 즉 이스라엘의 영광에까지 이르리라." 또는 "이스라엘의 영광이 빈곤하고 비열한 곳인 아둘람처럼 될 것이다." 또는 "앗수르의 왕, 곧 이스라엘이 영광을 돌린 그 왕이 아둘람에 이르러, 그 땅을 황폐케 할 것이다."

 

6. 유다의 전 국토에 대해 하는 말인 듯하다(16절). 슬픈 애곡을 청하고 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네 머리를 밀어서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부드럽게 잘 양육된 네 자녀를 위해 머리털을 자르라. 네 머리를 크게 대머리지게 하여 깃털을 날리고 완전히 대머리가 된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며 돌아오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귀엽게 양육되어 어려움에 길들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사로잡힌 것은 더 비통하게 될 것이다."

또는 이것은 15절처럼 특히 마레사 거민에게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은 미가 예언자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그런 예언자를 가지고도 임박한 심판의 날을 모른 것이 그들의 죄를 가중시키므로 그는 마레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고한다. 그 곳이 자기의 특권을 활용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이나 그 곳의 예언자에게서 아무런 총애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왜 미가는 맨발과 벗은 몸으로 행하였는가?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리니"     (미 1:8)

미가서 1:2-7에서 미가는 하나님께서 앗수르 인들을 통해서 그의 백성에게 심판하신다고 경고한다.  결국 사마리아는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했고 예루살렘은 주전 701년에 포위되었다.  이 사건은 역사적으로 주전 701년에 산헤립의 침공으로 열왕기하 18:13과 산헤립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앗수르 왕이 그 제국을 반역한 지도자들 중에 하나였던 두로를 공격하기 위해 팔레스틴으로 들어 왔다. 곧이어 산헤립은 그들의 저항을 진압하려고 아스글론과 에글론을 공격하였다.  그는 에그론 곁 엘테카에서 애굽 군대를 만나 쳐부수고 곧바로 유다를 향하였다. 그는 그가 유다의 46개 성읍을 진압했으며 그 곳 주민들을 추방시켰다고 보고했다.  그는 유다 왕 히스기야를 감금하고 예루살렘에서 그의 군대의 남은 자들을 새장 안에 새처럼 만들었다고 하였다(Bright).1)
  
미가 선지는 이 심판을 내다보면서 그의 슬픔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들개와 같이 애곡하고 타조와 같이 애통하리라” 이 동물들은 울부짖고 날카롭게 째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주 함께 나오고 있다(사 34:13; 43:20; 렘 50:39; 욥 30:29).
  
그러면 맨 발과 벗은 몸은 무엇을 가리켰는가?
맨 발과 벗은 몸은 애통하는 자의 모습을 설명하거나 죄수의 모습을 드러낸다.  노예나 포로는 보통 신을 신지 않고 단지 허리에 두르는 간단한 속옷만을 걸쳤다.  선지자에 의한 이 행위는 그의 애통을 상징할 뿐 아니라 그의 고향의 동료들 다수의 운명을 가리키기도 하였다.2)
  
다윗도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날 때 감람산에서 맨발로 행했다(삼하 15:30). 따라서 여기서 미가는 멸망하게 될 민족에 대한 그의 동정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앗수르의 손에서 맞게 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운명이 노예와 같을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선지자 자신이 벗은 몸으로 행하였다.3)

     주
     1. Ralph L. Smith, Micah-Malachi(Waco: Word, 1984), p.20
     2. Ibid., pp. 20-21
     3.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165


하나님께서 심판하러 오심(미가 1장)

 

[1-2절]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아쉐르 카자)[그가 본 내용이라].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여호와’는 영원자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이며(출 3:14) ‘주’(아도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신 주권적 섭리자이심을 나타낸다. 미가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다. 미가는 이 말씀이 성전에서 증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구약의 성전은 신약교회를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성경적 교회들에서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것을 자세히 들어야 한다.

 

[3-4절]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으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시지만(렘 23:24), 천국에서 그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의인의 영들이 있다. 에녹과 엘리야가 그곳으로 올라갔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곳으로 올라가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 거기에서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그는 오셔서 우상숭배의 산당들을 밟으실 것이다. 그때 산들이 밀초같이 녹을 것이며 골짜기들이 비탈 위에 쏟아지는 물같이 갈라질 것이다. 온 땅이 심판자 하나님 앞에 부서질 것이다. 심판의 결과로 온 땅은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5-6절]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인함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 사마리아가 아니뇨?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뇨? 예루살렘이 아니뇨?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로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 그 지대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었다. 모든 불행의 근본 문제는 죄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는 우상숭배의 죄이었다. 현대인들의 우상은 인간의 지식 혹은 과학, 돈, 육신의 쾌락 등이다(딤후 3: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을 갈아엎듯이, 쏟아 내리듯이 황폐케 만들겠다, 그 기초를 드러내겠다고 말씀하신다. 

 

[7절]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우상숭배를 다 멸하실 것이다. 그는 그 새긴 우상들과 목상들을 다 부수실 것이다. 새긴 우상들과 목상들은 참 신이 아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 돌이나 나무로 새기거나 깎아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고 우상일 뿐이다. 현대인의 신(神)인 돈도 그렇다. 돈은 인생의 문제 해결자가 아니다. 돈은 인생을 죽음에서 살리거나 영생을 주지 못한다. 돈은 인간의 죄 문제의 해결을 주지 못한다. 돈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지 못한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영적 음행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음행의 값을 불사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그 음행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벌어 모은 그 모든 재물을 다 불사르실 것이다.

 

[8-9절]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이스라엘과 유다가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므로 선지자는 애통하며 애곡한다고 말한다. 미가는 “[내가]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애통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 “[내가]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리라”고 말한다. ‘들개’라는 원어()는 ‘재칼’(jackal, 여우와 늑대의 중간) 이라는 뜻이다(BDB, KB). 선지자는 재칼이나 타조 같은 들짐승이 외로이 혹은 고통스레 우는 것처럼 울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가가 애곡하는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칠 수 없는 상처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10-12절] 가드에 고하지 말며 도무지 호곡하지 말지어다.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지어다. 사빌 거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사아난 거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마롯 거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미가는 이스라엘 성읍들에 임할 재앙을 말한다. 그는 “가드에 고하지 말며 도무지 호곡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한다. 가드는 블레셋 성이다. 가드에 고하지 말라는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기뻐하지 못하도록 알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또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지어다”라고 말한다. ‘베들레아브라’(베슬레아프라)는 ‘티끌의 집’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그 성의 이름대로 티끌에 굴게 될 것이다. 미가는 또 “사빌 거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라고 말한다. ‘사빌’(솨피르)은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는 또 “사아난 거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고 말한다.

 

이 본문은 “사아난 거민은 벧에셀의 애곡함 때문에 나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희에게서 그 설 땅을 취하리라”일 것이다(KJV). 여기에 ‘그’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해 침략하는 앗수르 왕을 가리킬 것이다(Poole). 미가는 또 “마롯 거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고 말한다. ‘마롯’(마로스)은 ‘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재앙이 이미 예루살렘의 문앞에 임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통 중에 복을 바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스라엘과 유다 성들에 임할 것이다. 재앙이 각 성의 이름대로 혹은 그 이름과 반대로 임할 것이다. 

 

[13-15절]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열왕을 속이리라.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미가는 또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고 말한다. ‘준마’라는 단어(레케쉬)는 ‘라기스’(라키쉬 )라는 성 이름과 비슷하다. ‘병거를 메우라’는 말은 도망칠 준비를 하라는 뜻일 것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시작이었다. 그 성이 북방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의 죄를 처음 받아들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또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전쟁 포로로 잡혀감으로 서로 헤어질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는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열왕을 속이리라”고 말한다. ‘악십’이라는 성 이름(악지브)은 ‘속인다’는 말(악자브 )과 발음이 비슷하다. 

 

미가는 또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라”고 말한다. ‘마레사’라는 성(마레솨)은 ‘너를 얻을 자’라는 말(요레쉬)과 발음이 비슷하다. 그는 또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NASB, NIV). ‘이스라엘의 영광’은 하나님을 가리킨 것 같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른다’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곳에 임한다는 뜻이며 하나님께서는 침략자 앗수르 왕을 사용하여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라기스, 마레사 등은 다 유다와 베냐민 땅에 있는 견고한 성읍이었다(대하 11:5-10). 그런데 그 견고한 성들은 그들의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다 멸망할 것이다. 침략자들은 북쪽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와 북동쪽으로 정복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16절]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로 크게 무여지게[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니라.

 

미가가 머리를 밀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들이 기뻐하는 자식들이 사로잡혀 그들을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과 재앙이다. 불순종과 죄는 가정과 나라를 파괴시키고, 순종과 의는 가정과 나라를 행복하게 만든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아무리 훌륭한 도시라 하더라도 범죄하는 도시는 망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많은 도시들은 우상숭배와 부도덕 때문에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범죄하는 개인이나 도시나 국가나 세계나 결국 다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 나라의 영광을 자랑할 것이 없다. 그것은 심판 날 다 불탈 것이다. 

둘째로, 죄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회개할 것밖에 없다. 우리는 온갖 우상숭배와 부도덕을 회개하며 특히 돈 사랑을 회개해야 한다. 고칠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한다. 강퍅한 마음으로 고집을 피우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또 우리는 멸망하는 가족과 이웃을 위해 애통하고 전도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굳게 붙들고 성령 안에서 의롭고 선하게만 살자. 그것이 평안과 영생의 길이다. 우리는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며 죄를 멀리하고 말씀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바로 하자. 또 자녀들을 신앙으로 바르게 키우자.

 


성 경: [미1:1]

ꃨ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 미가의 예언 활동 기간을 나타내는 세왕의 재위 기간은 약 63년이다(B.C.750-687). 미가가 63년에 걸쳐 예언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할지라도 세 왕의 시대에 걸쳐 예언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2-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본서가 사마리아의 멸망 시기인 B.C.722년 이전의 예언임을 나타내며, 렘 26:18,19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 시대에 미가가 신탁을 전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Smith).
ꃨ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한 묵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여호와의 권위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것을 전한 미가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말씀 선포의 권위를 갖고 있다(Calvin).

성 경: [미1:2]

ꃨ 백성들아...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백성들아'와 대구를 이루는 표현이다. 혹자는 이것이 백성들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주장하나(Hitzig, Steiner), 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Von Orelli, Delitzsch). 또한 '들을지어다'(쉐마)는 법정에서 고소할 때 사용된 용어로 B.C.8세기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을 고소하시는 것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열방이 당할 멸망의 전조임을 시사한다(McComiskey). 열방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라도 범죄할 경우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ꃨ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 멸망과 그 이유를 증거하시는 장소인 '성전'은 '그 처소'(3절)와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늘을 의미한다(시 11:4; 사 63:15, Von Orelli,Smith,Calvin).

성 경: [미1:3]

ꃨ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 '높은 곳'(*, 바모트)은 '군사 요충지'(신 33:29;겔 36:2), '산의 정상', '이방신전'(렘 7:31;겔 20:29)등을 의미한다. 문맥상 '산'(4절)과 '우상 숭배'(5-7절)가 어급되는 것으로 보아 '높은 곳'은 '이방 신전'을 의미하는 듯하다(McComiskey, Smith).

성 경: [미1:4]

ꃨ 산들이 녹고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 하나님께서는 하늘 처소에서 나와 땅에 임재하여 심판하신다. 세상은 마치 양초가 불에 녹듯이 녹을 것이고 밀이 불에 타듯이 타버릴 것이다. 또한 물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진흙 땅에 내린 비가 홍수를 이루어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과 같이 심판당할 것이다.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세상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당할 파괴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를 강조한다.

성 경: [미1:5]

ꃨ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인함이라 - 본 구절의 '야곱'과 '이스라엘'은 병행구를 이루는 다음 행위 '야곱과 사마리아', '유다와 예루살렘'처럼 대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어로 사용되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한다(Delitzsch, Von Orelli). 한편 '허물'(페솨)은 이스라엘의 반란(왕상 12:19)이나 모압의 반란(왕하 3:7)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로 윤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며, '죄'(하타트)는 '어긋나다'(to miss)에서 유래된 단어로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페솨'와 '하타트'는 각각 죄의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을 나타낸다(McComiskey).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 때문이다.


ꃨ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예루살렘이 아니뇨 - 본 구절은 두 개의 수사 의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사 의문문에 해당하는 '무엇이뇨'(미)는 문자적으로 '누구냐'라는 의미로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을 의인화한 것이다. '미'는 인격을 가진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된 것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7절에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창기로 표현한 데서 보다 더 분명해진다. 한편 '산당'은 '높은 곳'(바모트,3절)과 동일한 단어로 우상숭배지를 가리킨다(Von Orelli). 뿐만 아니라 '산당'은 '죄'를 의미하는 '하타트'와 동격으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호 10:8) 여기서 '야곱의 허물'과 동일한 의미의 '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McComiskey).

성 경: [미1:6]

ꃨ 이러므로...그 지대를 드러내며 - 우상숭배로 영적 행음의 죄를 범한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임재로 완전히 파멸될 것이다. 사마리아는 마치 농부가 밭을 경작할 때 나오는 돌들을 한쪽 구석에 모아놓은 돌무더기처럼 폐허가 될 것이며, 들판에 돌이 쏟아져 있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소로 변할 것이다. 한편, '그 지대를 드러내며'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사마리아 성의 기초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Delitzsch). 그리고 이 표현은 '하체를 범한다'는 뜻을 상기시키기도 한다(레 20;11,17,18,20,21,McCom-iskey).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행음이나 음행을 가리킬 때 사용된 것으로(삼하 6:20; 겔 16:36; 23:18;호 2:10) 7절에서 언급되는 사마리아의 우상 숭배를 암시한다.

성 경: [미1:7]

ꃨ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이 값을 다 불사르며 - 본 구절은 사라리아의 죄가 우상 숭배임을 구체적으로 밝혀준다. '음행의 값'은 '형상'을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우상'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음행의 대가, 곧 화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맥상 하반절에 '기생의 값'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화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McComiskey). '음행의 값'은 사마리아가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나(lange) 우상들이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재산을 가리킬 수 있다(Smith).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사마리아인들이 섬겼던 목상들을 비롯한 모든 우상들은 훼파를 당할 것이며 그들이 드렸던 제물이든 우상이 준 재산이든 모두 파괴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한 사마리아의 함락(B.C.722-721)에서 성취된다.

성 경: [미1:8]

ꃨ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 이는 미가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앞에 놓인 운명을 바라보고 애통해 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죄인이나 노예는 허리에 동여매는 옷만을 입었을 뿐 신발은 신지 못했다. 미가는 벌거벗은 몸으로 상징적인 행동을 취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앞으로 당할 운명, 곧 앗수르의 포로생활을 암시하였다(Smith).

성 경: [미1:9]

ꃨ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 본절은 미가가 그토록 애곡하며 애통해 했던 이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사마리아의 죄가 더 이상 치유될 가능성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그것이 사마리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다, 곧 예루살렘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 경: [미1:10]

ꃨ 가드에 고하지 말며 도무지 호곡하지 말지어다 - '가드에 고하지 말며'는 다윗이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과 연관된다(삼하 1:20). 다윗은 백성들에게 블레셋 성읍인 가드 사람들이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알아서 기뻐하지 않도록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다. 미가는 이 사실을 처음에 기술하여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암시하고 있다. (1)다윗이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미가도 패망을 암시한다. (2)유다를 함락하기 위해서 쳐들어오는 앗수르의 침략이 가드에서 시작되며 가드도 멸망됨을 시사한다(Smith). 미가는 다윗의 조가를 인용하여 가드 거민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멸망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도록 호곡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McComiskey). 한편, 70인역(LXX)은 '호곡하지 말지어다'를 '악고에서 울지 말지어다'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악고'는 지리학상으로 본장에 나타난 성읍들과는 달리 너무 북쪽에 있어서 본장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Smith, Delitzsch).


ꃨ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지어다 - '베들레아브라'의 뜻은 '먼지의 집'이다. 티끌에 굴지어다'는 애곡과 슬픔의 표시로서(Von Orelli)베들레아브라 사람들이 재난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성읍 이름의 뜻과 같이 먼지 속에서 구르게 될 것을 의미한다.

성 경: [미1:11]

ꃨ 사빌 거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 '사빌'은 '아름다운' 혹은 '순결한'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정반대이다. 그곳 거민들은 재난을 당하여 벗은 몸, 곧 포로된 자들이 당하는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사 20:4, Von Orelli, Lange).


ꃨ 사아난 거민은 나오지 못하고 - '사아난'은 유다의 아래 지역에 위치한 성읍으로 그 의미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다'이다. 성읍이름의 뜻과 같이 용감한 사나난 거민들은 적들이 침략할 때 겁에 질려서 성읍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읍 안에서 갇혀 살게 될 것이다(Smith).


ꃨ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 '벧에셀'은 본절에만 나타나는데, 아마도 예루살렘 근처에 위치한 지명으로 '근처의 집'이란 의미를 지니는 도피처를 가리키는 듯하다(McComiskey). 본 구절은 벧에셀 거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성읍이 주변에 없을 정도로 앗수르의 침략으로 황폐해지며 결국 벧에셀도 파멸될 것을 시사한다.

성 경: [미1:12]

ꃨ 마룻 거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 '마롯'은 '고통' 혹은 '수고'등의 의미이다. 마롯 거민들은 성읍의 이름이 갖는 뜻과는 달리 평안과 축복을 기대하나 여지없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ꃨ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 '예루살렘 성문'은 재난과 슬픔의 시작을 알리는 9절을 상기시킨다. 예루살렘도 재난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루살렘 역시 파멸하실 것이다.

성 경: [미1:13]

ꃨ 라기스 거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 '라기스'(라키쉬)는 '준마'(라레케쉬)와 운율을 이룬다. 라기스는 병거로 무장한 성읍이며, 그곳 거민들은 전쟁에 능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략소식을 듣고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파멸이다. 그들은 준비를 타고 도망을 치게 될 것이다.


ꃨ 라기스는...네게서 보였음이니라 - 본 구절은 라기스가 멸망당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딸 시온, 곧 이스라엘이 범한 죄의 근원이 라기스에서 왔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 죄악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과 병거를 의지한 것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라기스를 통해서 우상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5-9절, Lange,Smith).

성 경: [미1:14]

ꃨ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 '모레셋'은 '모레쉐트'(결혼지참금, 송별금)와 유사하다. 미가는 발음상의 유사함을 이용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가드모레셋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결혼 지참금과 연결짓도록 유도하는 듯하다. 신부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신랑의 집으로 떠나듯이 미가 선지자의 고향인 가드모레셋은 유다에서 떨어져 나가 포로가 될 것이다(Smith, McComiskey).


ꃨ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열왕을 속이리라 - '악십'은 메마른 시냇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로(렘 15:18) '기만'을 뜻한다. 갈증에 허덕이는 자가 메마른 시냇물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배신감처럼 유다 열왕들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도움을 청하나 악십 사람들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성 경: [미1:15]

ꃨ 마레사 거민아 내가 장차 너를 얻을 자로 네게 임하게 하리니 - '마레사'는 '정복자' 혹은 '얻을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모라쉬'와 비슷하다. 그들은 '정복자'라는 뜻의 이름의 성읍이었으나 또 다른 정복자인 앗수르에 의해서 정복될 것이다.
ꃨ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 - '아둘람'은 다윗이 사울의 핍박과 추적을 피하여 숨었던 동굴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렸던 부귀와 영광은 마치 다윗이 동굴로 피한 것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성 경: [미1:16]

ꃨ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너를 떠났음이니라 - 미가는 이제까지 열두 성읍의 파멸을 예언한 후에 재난의 시작을 예언할 때와 같이 유다의 파멸을 애통해 한다. 유다의 종말은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배당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머리털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자들은 머리털을 깎지 않았다(민 6:1-21). 그러나 유다는 머리털이 없는 독수리처럼 머리털을 깎이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배당하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머리털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구별된 자들은 머리털을 깎지 않았다(민 6:1-21). 그러나 유다는 머리털이 없는 독수리처럼 머리털을 깍이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베론의 침략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게 되며 파멸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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