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지역을 차지할 지파들과 성소(에스겔 48:1-12)
[ 본문 개요 ]
47:13-23은 새 땅 관련 일련 기사의 전반부로서, 큰 틀에서 새 땅의 경계 및 분배의 범위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48:1-29은 일련 기사의 중반부로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 즉 열두 지파별 땅과 성전과 부속 땅에 대한 규례를 다루고 있다.
그중 1-7절은 새 성전 북부의 일곱 지파가 차지할 땅을 지정하는 내용이다.
/ 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나머지 다섯 지파에게 거룩한 땅의 남쪽 부분을 나누어 주는 내용인 23-28절의 내용과 대구를 이룬다.
/ 그리고 이 두 부분 사이에 있는 여호와께 예물로 드라는 거룩한 중앙 땅의 경계에 대한 설명을 다루는 8-22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족속의 땅 분배 내용을 다루는 본장에서만 아니라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과 약속의 땅 분배를 다루는 제47,48장에서도 핵심 부분에 해당한다.
이런 교차 대구 구조는 본장이 하나님께서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 에브라임, 르우벤, 그리고 유다 지파 등 이스라엘 일곱 지파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들에게 땅을 분배하는 내용인 1-7절로 시작하여 나머지 다섯 지파에게 땅을 분배하는 23-29절로 끝나지만 정작 강조하는 부분은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는 거룩한 땅에 관한 내용인 8-22절임을 보여준다.
그런데 땅 분배를 묘사한 본장의 내용만 교차 대구 구조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북쪽의 일곱 지파와 남쪽의 다섯 지파의 한 중간에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질 거룩한 땅이 위치한 지리적 형세도 교차 대구 구조와 동일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 즉 본장은 문학적 구조로 보나 땅 분배의 지리적 형세로 보나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새 땅의 정중앙에 위치한 하나님께 예물로 바쳐질 땅에 관한 내용인 것이다.
/ 그리고 이 하나님께 예물로 바쳐질 땅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회복될 새 왕국이 성소를 중심한다는 사실, 즉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며 또한 성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중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서의 마지막 장인 본장의 첫 문장은 이스라엘의 지파의 이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본장 의 마지막 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예루살렘성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끝난다.
/ 먼저 이스라엘이 각 지파의 이름이 다 열거된다는 것은 그들 하나하나가 완벽히 회복된다는 사실, 즉 전 이스라엘에 단 하나의 지파도 예외없이 모두 회복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 또한 47:13-20에서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땅에 대한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각각의 열두 지파의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하면서 그들의 땅이 속할 위치를 설명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지대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 또한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존재 전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본장이 ‘여호와 삼마’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회복이 이스라엘의 어떤 공로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소에 임재하심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또한 회복될 새로운 왕국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왕국임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 이는 이스라엘 영토의 분배를 다루는 본장의 메시지가 물질적이거나 공간적 자산으로서의 땅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존재와 그 운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며 주어진 현재의 삶을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으로하여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한 땅 분배와 포로기 이전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 대한 땅 분배는 민 26:56에 기록된 것처럼 모두 제비뽑기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포로기 이후 땅 분배 방식으로서의 제비뽑기는 그 양상이 다르다. 제비뽑기는 47:22나 29절에 분명하게 기록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2-7절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질 땅의 위치나 각 지파가 할당을 받을 기업으로서의 땅의 위치는 모두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음을 알 수 있다.
/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29절 강해에서 설명되는 바와 같이 여기서 언급되는 제비뽑기는 지파별로 이미 결정된 땅을 각 가문이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수행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또한 포로기 이전 땅 분배 방식과 포로기 이후 땅 분배 방식의 차이점은 민 26:52-55의 내용을 보면 포로기 이전에는 각 지파의 크기와 중요도에 따라 분배를 받는 땅의 크기와 위치가 결정되었는데 포로기 이후에는 각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이 모두 동일한 크기였다는 점이다.
/ 사실 본장에서 언급되는 땅의 지정 규례는 포로기 이전의 과거의 이스라엘 각 지파가 본래 소유한 영토들과는 거의 또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각 지파간의 경계선을 동서를 잇는 일직선으로 만들고 각 지파의 땅의 폭을 일정하게 함으로써 특정한 지파에게 좋은 토양이 있는 땅이나 전략적 요충지를 배정하는 지리적 정치적 이해관계는 배제되어 평등하게 분배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 물론 이스라엘의 땅의 핵심 부분인 중앙 성소를 기준으로 하는 신학적 중요도에 있어서는 각 지파에 대한 땅 분배가 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Blenkinsopp).
/ 즉 스 1:5 ; 4:1에 기록된 것 처럼 본서의 일차 독자일 뿐만 아니라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뒤에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 재건에 앞장섰던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께 드려진 땅에서 가장 가까운 북쪽과 남쪽의 땅을 각각 분배 받았다.
/ 또한 장자 지파인 르우벤 지파도 유다 지파에 이어 성전을 기준으로 북쪽으로 두 번째 땅을 분배 받았고 요셉 지파에 속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르우벤에 이어 북쪽의 세 번째 땅을 분배 받아 이 지파들이 갖는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 그리고 북쪽의 제일 변방과 남쪽의 변방에는 라헬의 시종인 빌하와 레아의 시종인 실바가 낳은 단, 아셀, 납달리, 갓 지파가 땅을 얻어 이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음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기사의 일차적인 강조점은 각각의 부족들이 다 새 땅에서 그들에게 부여된 정당한 땅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에스겔이 태어나기 1세기 전에 이 미 망하였던 북왕국의 땅이 회복되고 북왕국의 지파들이 다 땅을 차지하게 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될 것임을 보여준다(Craigie).
출처 ; 옥스퍼드 주석. pp. 536-538.
[ 성경묵상 ] -
이제 각 지파별로 차지할 땅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북쪽부터 시작한 분배는 중앙에 이르고 성소를 거기 둘것을 명령하십니다.
질문 ; 북쪽 지역을 차지할 지파의 땅 분배는 어떤 순서로 진행되고 있습니까? (1-7)
북쪽 지역을 차지할 지파들(1-7)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고 대충 얼버무리며 어물쩍 넘기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 약속의 땅을 아주 구체적으로 지파에 따라 분배해 주십니다. 우선, 북쪽 지역은 단, 아셀, 납달리,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나눠 주시겠다 하십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소 지형과는 상관없이 싹둑 잘라서 주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지파를 동일하게 대해 주시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새롭게 회복될 땅에서는 새 질서로 모두를 동등하게 대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도인 겁니다.
사실, 이것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이 아닐까요? 우리의 한 일과 상관없이 그저 은혜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복 내려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 오늘 하루 신명나게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 ; 북쪽 지역의 아래, 가장 중앙에는 무엇이 위치하고 있습니까? (8)
유다 지파의 땅 분배(8) 이어지는 땅 분배에서는 유다 지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구세주 예수님의 계보가 있는 지파답게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에 인접하도록 땅을 분배 받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관심과 배려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성경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하나님의 관심은 구세주를 통한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이 땅 분배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겁니다.
성경 곳곳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도를 보며 무엇을 느낍니까? 그것이 결국은 나와 우리 성도를 향한 사랑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오늘 하루 어떻게 사시럽니까?
거룩한 땅 지정(9-12) 이렇게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면서 가장 중요한 땅, 중앙의 땅을 구별하여 "거룩한 땅"이라 하시며 떼어 놓도록 하십니다. 당장 보아도 하나님이 가장 관심 있어 하시는 영역이요, 노른자위 땅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성소, 즉 하나님을 예배할 곳을 만들고 사독의 자손 제사장들이 그 성소 주변에 기거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교회 중심, 예배 중심, 하나님과의 교제 중심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가령, 집은 교회와 멀리 이사를 해 놓고선 교회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말로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단이 필요한 오늘이 아닐까요?
[ 복있는사람, 2019년 9,10월호 ]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모든 지파의 이름은 이와 같으니라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을 거쳐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경계선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미치는 땅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단의 몫이요
"지파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가장 북쪽에서부터 시작하여, 헤들론 길을 따라, 르보하맛을 지나서 다마스쿠스와 하맛에 접경한 경계선을 타고 하살에논에까지, 곧 북쪽으로 하맛 경계선에 이르는 땅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의 땅은 단 지파의 몫이다.
단의 몫 (1) ; 단은 전통적으로 아주 북쪽에 있는 땅을 받지만, 나머지 지파들은 여호수아 시절에 할당 받은 지역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넓이도 차이가 난다. 특별히 넓이는 모두가 공평하게 동서를 가로질러 받는 것을 보게 되는데 모든 지파의 권리가 같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보인다.
‘억울함을 푸심’이라는 의미를 갖는 ‘단’에 해당하는 ‘딴’은 라헬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시녀 빌하가 아들을 낳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와 소원을 들으셨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단 지파가 포로기 이전에 분배를 받았던 땅은 수 19:40-48에 기록된 것처럼 딤나, 에그론, 가드, 림몬 등 지중해 연안의 매우 비옥한 토지였다.
/ 단 지파는 레셈과 싸워 그들의 땅을 차지하는 등 처음에는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하여 갔으나(수 19:40-47) 뒤에는 삿 1:34-36에 기록된 것처럼 아모리 족속에 의해 산지로 쫓겨나고 말았다.
/ 그리고 이후 단 지파는 해안 지역을 포기하고 가나안 북쪽 변경 지역으로 이주하였다(수 19:47 ; 삿 18:29).
/ 그리하여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의 경계지역으로 언급되어 남쪽의 브엘세바와 함께 이스라엘 전역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삿 20:1).
/ 본절에서도 이스라엘 지역의 가장 북단에 위치하는 것으로 언급되어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가 되었다.
2. 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아셀의 몫이요
단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아셀 지파의 몫이다.
3. 아셀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납달리의 몫이요
아셀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납달리 지파의 몫이다.
4. 납달리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므낫세의 몫이요
납달리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므낫세 지파의 몫이다.
5. 므낫세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에브라임의 몫이요
므낫세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에브라임 지파의 몫이다.
6. 에브라임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르우벤의 몫이요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르우벤 지파의 몫이다.
7. 르우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요
르우벤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 지파의 몫이다."
8. 유다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너비는 이만 오천 척이요 길이는 다른 몫의 동쪽에서 서쪽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지니
"유다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너희가 거룩하게 바쳐야 할 땅이다. 그 너비는 이만 오천 자이고, 그 길이는 다른 지파들의 몫과 같이 동쪽에서 서쪽까지이고, 그 한가운데 성소를 세워야 한다.
9.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이라
너희가 주께 거룩하게 바쳐야 할 땅은, 길이가 이만 오천 자요, 너비가 만 자이다.
10.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지니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서쪽으로 너비는 만 척이요 동쪽으로 너비가 만 척이요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거룩하게 바친 이 땅은 제사장들에게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줄 땅은, 북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자, 서쪽으로 너비가 만 자, 동쪽으로 너비가 만 자, 남쪽으로 길이가 이만 오천 자이다. 그 한가운데 주의 성소가 있어야 한다.
11. 이 땅을 사독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된 것처럼 그릇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땅은 거룩히 구별된 제사장들, 곧 사독의 자손에게 주어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잘못된 길로 갔을 때에, 레위 지파의 자손이 잘못된 길로 간 것처럼 하지 않고, 내가 맡겨 준 직책을 지킨 사람들이다.
12. 땅의 예물 중에서 그들이 예물을 받을지니 레위인의 접경지에 관한 가장 거룩한 예물이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게 바친 땅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땅을 받아야 하고, 레위 지파의 경계선과 인접해 있어야 한다.
레위 지파와 왕을 위한 땅 분배(에스겔 48:13-22)
[ 성경묵상 ] -
하나님은 성소를 섬기는 레위인을 위해서도 거할 곳을 마련해 주십니다. 아울러 성읍과 그 주변의 경작지, 그리고 왕을 위한 땅도 지정해 주십니다.
질문 ; 레위인들을 위한 땅의 규모와 용도는 어떠합니까? (13-14)
레위인을 위한 땅(13-14) 레위인들은 성소에 봉사하지만 따로 땅을 분배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성소 주변의 땅을 "레위 사람의 몫"으로 주십니다. 따로 떼어 주시며, 그들을 잊지 않고 살피십니다. 한편 레위인들은 그 땅을 팔고 떠나지도 말고, 그렇다고 장소를 바꾸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계 주시는 명령이자 복입니다. 그곳에서 평생을 걸쳐 하나님만 바라고 예배에 시중들어야 하는 그들에게 가혹한 명령일 수 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며 구별되게 살라 명하시는 준엄한 명령이니 그럴 밖에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이 아니면 누구도 대체될 수 없는 자리, 그래서 오히려 영광스런 자리이며 복된 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를 대체할 사람은 누구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보다 감격적이고 영광스런 초대가 또 있을까요? 그래서 어쩌면 이 명령에 감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나에게 예배의 자리,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는 어떠합니까? 그것이 늘 삶의 중심입니까? 그 자리에 초대해 주시고 불러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까?
질문 ; 성읍과 경작지의 규모와 모양은 각각 어떠하며, 경작지의 소산은 누구의 몫입니까? (17-20)
성읍, 경작지 그리고 왕의 땅(15-22) 이제 제사장들의 땅 아래 약 사천 오백 척의 네모반듯한 성읍을 만들라 하십니다. 각 지파에서 뽑혀온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성소와 주변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교류하며 그들과 왕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성읍 주변의 경작지도 하나님이 주시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이 거룩한 땅 주변에서 정상적인 삶과 예배가 진행되도록 모든 준비를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좌우편에 왕의 땅을 지정하십니다. 왕이 함부로 거룩한 땅을 침범하거나 넘보지 못하게 주어진 땅에 만족하며 생활하게 하시려는 의도입니다(46:16-18).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세심하게 성소, 제사장의 땅, 레위인의 땅, 백성과 왕의 땅까지 살피십니다. 이제 모든 백성이 할 일은 그 뜻을 살뜰히 살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뿐입니다.
이제 누구의 자리도 넘보지 말고 지금 선 자리에서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 복있는사람, 2019년 9,10월호 ]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3. ○제사장의 경계선을 따라 레위 사람의 몫을 주되 길이는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는 만 척으로 할지니 이 구역의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가 각기 만 척이라
레위 지파가 차지할 땅도 제사장들의 경계선 옆에 그 길이가 이만 오천 자요, 너비가 만 자이다. 그 전체의 길이는 이만 오천 자요, 너비는 이만 자이다.
14.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라
그들은 이 땅을 팔거나 다른 땅과 바꿀 수가 없고, 또 가장 좋은 이 부분을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 주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주의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15.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너비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구분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 성읍이 그 중앙에 있게 할지니
너비가 오천 자요, 길이가 이만 오천 자인 나머지 땅은 성읍을 세울 속된 땅이다. 그 한가운데 있는 땅은 성읍을 세워서 거주지로 사용하고, 그 나머지는 빈 터로 사용하여라.
거주하는 곳과 전원을 삼되(15) ; 거주지와 빈터로 삼되"(새번역)라는 뜻이다.
16. 그 크기는 북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동쪽도 사천오백 척이요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며
그 성읍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북쪽의 길이도 사천오백 자, 남쪽의 길이도 사천오백 자, 동쪽의 길이도 사천오백 자, 서쪽의 길이도 사천오백 자이다.
17. 그 성읍의 들은 북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남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동쪽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쪽으로 이백오십 척이며
이 성읍 빈 터의 크기는 북쪽의 너비가 이백오십 자, 남쪽의 너비가 이백오십 자, 동쪽의 너비가 이백오십 자, 서쪽의 너비가 이백오십 자이다.
18.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척이요 서쪽으로 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을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거룩하게 바친 땅과 인접한 나머지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자가 되고, 서쪽으로도 만 자이다. 그 땅은 거룩하게 바친 땅과 인접하여야 하며, 그 농산물은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먹을거리가 되어야 한다.
19.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그 성읍에서 일하는 자는 그 땅을 경작할지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뽑혀 와서 성읍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그 땅을 경작할 수가 있다.
20.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합계는 길이도 이만 오천 척이요 너비도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거룩하게 바친 땅 전체는 길이도 이만 오천 자요, 너비도 이만 오천 자이다. 너희는 이렇게, 그 성읍의 소유지를 포함하여 거룩하게 바친 땅을 네모 반듯하게 구별해 놓아야 한다.
21.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군주에게 돌릴지니 곧 거룩하게 구별할 땅의 동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과 서쪽을 향한 그 경계선 앞 이만 오천 척이라 다른 몫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군주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하게 구별할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중앙에 있으리라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친 땅의 양 옆과 성읍에 딸린 소유지의 양 옆에 있는 나머지 땅은 왕에게 돌아갈 몫이다. 거룩하게 바친 땅, 곧 이만 오천 자가 되는 지역에서 동쪽 국경까지와 이만 오천 자가 되는 지역에서 서쪽 국경까지 다른 지파들의 몫과 평행되게 뻗어 있는 나머지 땅이 왕의 몫이다. 거룩하게 구별하여 바친 땅과 성전의 성소가 그 땅의 한가운데 있어야 한다.
22. 그런즉 군주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지니라
그래서 레위 지파의 유산과 성읍에 딸린 소유지는 왕의 소유지의 가운데 있게 된다. 왕의 소유지는 유다 지파의 경계선과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사이에 있다."
여호와 삼마(에스겔 48:23-35)
[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
나머지 지파들의 땅분배에 대해 마지막으로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중앙의 성읍 문에는 각 지파의 이름을 새기고, 그 성은 "여호와 삼마"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질문 ; 나머지 지파들의 땅은 어떻게 분배를 받았습니까? (23-28)
나머지 지파들의 땅(23-29) 이제 회복될 땅의 남쪽 지역을 분배받는 지파들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차례로 베냐민, 시므온, 잇사갈. 스불론, 갓 지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지파들이고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 갈' 그들의 몫'입니다. 누구하나 귀하지 않은 지파 없고, 누구 하나 포기할 수 있는 지파가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에는 모두가 귀하고 모두에게 주어진 몫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복이 나에게도, 우리 가정과 교회에도 있음을 믿습니까? 모두 귀하고 모두에게 역할과 몫이 있음을 알 때 내 주변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질문 ; 성읍의 동서남북에 지파별 이름을 새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29-35)
이름을 새기고(30-34) 에스겔의 마지막 장면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성을 세우십니다. 그런데 그 성문에 각 지파의 이름을 새기게 하십니다.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이름을 기억하고 끝까지 돕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잊지 않겠다"라고 약속하는 것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잊지 않는 이름이 있다면 바로 내 이름이 아닐까요? 오늘도 잊지 않고 기억하시며 마음에 새기시는 이름, 이스라엘 지파와 같이 내 이름도 기억하지 않으실까요?
여호와 삼마(35) 또 다른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겠다 하십니다. 그 뜻이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성에 거하시겠다 약속하시는 겁니다. 에스겔 초두에 이스라엘 백성의 큰 성,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 경고하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에스겔 말미에 그 성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성이 되겠다 말씀하십니다. 우리 인생도 이런 인생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당장은 경고와 절망의 소리만 들리지만 결국은 축복과 소망의 잔치로 마치는 인생, 당장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거기까지 계신 인생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 그 인생길을 오늘도 걸어가는 감격과 기쁨이 회복되어야겠습니다. 여호와 삼마를 기억합시다!
[ 복있는사람, 2019년 9,10월호 ]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23.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냐민의 몫이요
"나머지 지파들이 차지할 땅은 다음과 같다.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베나민 지파의 몫이다.
24. 베냐민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시므온의 몫이요
베냐민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시므온 지파의 몫이다.
25. 시므온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잇사갈의 몫이요
시므온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잇사갈 지파의 몫이다.
26. 잇사갈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스불론의 몫이요
잇사갈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스불론 지파의 몫이다.
27. 스불론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갓의 몫이며
스불론 지파의 경계선 다음으로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갓 지파의 몫이다.
28. 갓 경계선 다음으로 남쪽 경계선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샘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갓 지파의 경계선은, 남쪽의 국경선이 다말에서부터 시작하여 므리바가데스 샘에 이르고, 거기서 이집트 시내를 따라 지중해에 이른다.
29.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몫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이 너희가 제비를 뽑아 유산으로 이스라엘의 지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땅이다. 이 땅들이 바로 그 지파들의 몫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30.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쪽의 너비가 사천오백 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다음과 같다. 북쪽 성벽은 너비가 사천오백 자이다.
31.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쪽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이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에 따라 부른 것이다. 북쪽에 문이 셋 있는데, 하나는 르우벤 문, 하나는 유다 문, 하나는 레위 문이다.
이름을 따를 것인데(31) ; 고대에는 신의 이름을 따서 문의 이룸을 명명하거나 혹은 그 문을 통과해 도착하는 곳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기도 하였다.
32. 동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동쪽 성벽도 너비가 사천오백 자이고, 문이 셋 있는데, 하나는 요셉 문이고, 하나는 베냐민 문이고, 하나는 단 문이다.
33. 남쪽의 너비는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남쪽 성벽도 너비가 사천오백 자이고, 문이 셋 있는데, 하나는 시므온 문이고, 하나는 잇사갈 문이고, 하나는 스불론 문이다.
34. 서쪽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서쪽 성벽도 너비가 사천오백 자이고, 문이 셋 있는데, 하나는 갓 문이고, 하나는 아셀 문이고, 하나는 납달리 문이다.
35.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이렇게 그 둘레가 만 팔천 자이다. 이 성읍의 이름이 이제부터는 여호와샤마라고 불릴 것이다."
여호와 삼마(35) ; '여호와가 거기 계시다'는 뜻이다.
20.여호와 삼마(Jehovah-shammah) / 하나님은 거기 계신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모든 것이 어둡게 느껴지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견딜 수 없이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느껴질 때,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어쩌면 하나님에게조차 잊혀졌다고 느껴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그것에서 어떻게 헤어 나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 삼마”를 앎으로써 가능하게 됩니다.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70년간 있어야 했습니다.(렘 29:10) 만일 하나님이 거기 계셨더라면 그들은 주님의 집에서 기뻐하는 문지기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스겔을 통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서 어떻게 떠났는지를 들었습니다.(겔 10:18-19;11:22-24) 그들은 그것을 믿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70년간의 포로생활은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행음을 인하여 심판하셨습니다.
애굽의 포로 생활로부터 바벨론의 포로생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교훈 중에서 그분에 대한 또 다른 진리가 있었는데 곧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절에 나오는 여호와 삼마는 예루살렘에 대해 사용된 것입니다.
“그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삼마(Shammh)라는 단어는 단순히 ‘There’(거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말과 결합되었고 성령께서 그것을 한 이름으로 부르시기 때문에 독특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성경시대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인격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했다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바로 거기 계시다는 것을 확신 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포로로 사로잡힌 사람들에게는 이 얼마나 격려가 되는 말씀일까요?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해 주고 희망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여호와는 거기 계십니다. 여러분의 장래와 여러분의 소망이 되시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 열중하십시오.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히기 전에, 세상에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에스겔서에 대한 약간의 배경과, 하나님이 여호와 삼마, 즉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라는 것으로 계시되는 주위 환경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시절에 관한 책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향해 쓰여진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이 아직 망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예루살렘이 아직 멸망하기 전에 세 번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첫 번째 침공 때 포로가 되었고 에스겔은 두 번째 침공 때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를 읽을 때, 그가 예언했던 초기에는 예루살렘이 아직 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루살렘이 망하도록 내버려 두실 거라는 사실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을 잊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말해본 적이 없는 이름입니다. 그것은 ‘질투하는’의 뜻을 가진 ‘콴나’(Qanna)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셨을 때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1-6절, 34:12-17절을 읽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때에 질투하십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1-6)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너는 삼가 그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하게 섬기며 그들의 신들에게 제물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제물을 먹을까 함이며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출 34:12-17)
에스겔의 시대 이전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임재를 나타내시면서 그의 백성들과 늘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의 임재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바를 정말로 행하시리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떠나시고 하나님의 시온성인 예루살렘이 믿지 않는 바빌로니아인들에게 포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의 안뜰에 나타나신 여호와 삼마를 보여 주고 있는 구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구절을 읽을 때, 하나님을 슬프게 만든 것에 밑줄을 긋고 그것이 무엇인지 써 보십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십시오. (겔 8:3-6, 17-18. 겔 10:3-4,18,19, 겔 11:22-23)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셨다 할지라도, 그는 여호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므로 돌아오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11:22-24절에서 예루살렘을 떠날 준비를 하실 때, 에스겔은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겔 11:13)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응답을 들어 보십시오.
에스겔 11:16-19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는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 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서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의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을 제거하여 버릴지라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고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것이 얼마만큼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 1:9-10)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다시 오실 것과 예루살렘의 이름이 여호와 삼마, 즉 “주님께서 거기 계십니다.”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가 오시면 에스겔을 통해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그의 말씀이 성취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1과에서 하나님을 묘사해 보라고 요청했던 때를 상기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과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마지막 과제는 여러분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묘사를 한 번 더 써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1장에서 쓴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주께서 그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여러분이 배운 것들을 유지시키고 그대로 실행하기를 원한다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자꾸 자꾸 반복해서 부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은 여러분이 그분께 온전하게 예배드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하나님에 대한 이름들을 공부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누구였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
엄밀하게 말해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칭호라기보다는 성의 이름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모습, 그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으로, 최소한 대중적 용어로 볼 때, 하나님의 이름과 동일하게 여겨진다. 신약 성경에 나온 이 이름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말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임마누엘은 예수님께 붙여진 이름이다. 여호와 삼마, ‘여호와가 거기 계신다’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하고 드러내는 자로 우리를 지으셨음을 기억하게 해준다.
“사방의 합계는 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겔 48:35)
<청지기>
'에스겔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의 이름 / 여호와 삼마 (0) | 2021.03.02 |
---|---|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약속 - 에스겔 36장 (0) | 2021.03.02 |
거짓 목자 vs. 참된 목자(에스겔 34:1-16) 외 (0) | 2021.03.02 |
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죄 (21-27장) (0) | 2021.03.02 |
에스겔 20-24장 요약 /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심판과 은총 (20장) (0) | 2021.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