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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묵상

에스겔 20-24장 요약 /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심판과 은총 (20장)

by 은총가득 2021. 3. 1.

 

겔-8,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주어진 예언 중 남유다 멸망 예언(에스겔 20-24장)

 

본 단락은 3:16-32:3의 전기 심판 예언 중에서도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주어진 예언으로 주로 남유다 멸망 예언을 수록한 전반부 3:16-24:27의 종결 부분이다.

이러한 본단락을 계시가 에스겔에게 주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이 중 전반부 제20-23장은 B.C. 591년 5월 10일에 주어진 계시를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후반부 제24장은 B.C. 588년 10월 10일 곧 예루살렘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되던 당일에 주어진 계시를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단락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불시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계속되어 온 악행을 회개치 않고 반복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임을 보여주기 위하여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며 이로 인한 처참한 몰락을 보다 직접적으로 예언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단락을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B.C. 591년 5월 10일에 주어진 계시를 수록하고 있는 전반부 제20-23장은 선민의 과거 타락의 역사와 현재의 타락상 요약 및 칼과 두 여인의 비유 등을 보도한다.

이를 상술하여 보면, 먼저 제20장의 세 문단에서는 패역과 구원이 교차한 선민의 역사 회고와 그에 근거한 선민 심판 예언을 보도한다.

선지자는 먼저 유다에 임할 심판의 불가피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음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패역을 거듭한 유다의 과거의 죄악의 역사를 회고한다(1-32절).

그리고 불붙는 남방 삼림 비유를 통하여 유다에 대한 멸망 심판이 작정되었음을 천명한다(45-49절).

그러나 선지자는 동시에 징벌을 통한 선민의 정화와 신앙 회복 예고를 줌으로써(33-44절),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유다의 멸망을 가져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민을 완전히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을 죄로부터 정화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그들이 징벌을 통하여 정화된 후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던져주고 있다.

다음 21:1-32은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을 보도한다.

여기서 ‘칼’은 타락한 유다를 심판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바벨론을 가리키는데 선지자는 이 칼과 관련하여 세 측면을 부각시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는 칼이 칼집에서 빼어짐을 부각시키고 있다(3-7절). 이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마침내 개시될 것임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음으로는 칼의 날카로움과 빛남을 부각시키고 있다(8-17절). 이는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과 가혹함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끝으로는 칼의 침략 경로를 부각시키고 있다(18-27절). 이는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유다가 치욕을 당하며 몰락하게 될 것임이 강조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선지자는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에 대한 부기로서 바벨론의 칼에 의한 암몬의 멸절 예언을 함께 주고 있다(28-32절). 이는 18-27절의 칼의 침략 경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이처럼 암몬 심판 예언을 언급하는 것은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킨 후에는 곧바로 암몬을 공격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암몬이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회개하기보다는 멸망하는 유다를 조롱하고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몬 심판 예언은 유다에 적대적이었던 열방에 대한 예언을 보도하는 제25-32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에서 첫 주자로 다시 한 번 언급된다(25:1-7).

다음 22:1-31은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에 대한 지적과 그에 따른 심판의 불가피성을 예루살렘 성, 이스라엘 족속, 이스라엘 땅 각각에 대한 범죄와 타락의 지적과 심판 예언이라는 삼중(三重)형식을 취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를 보면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의 죄악으로는 피 흘림, 부모에 대한 멸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학대, 성물과 안식일의 더럽힘, 이간질, 우상 숭배, 음행을 비롯한 각종 성범죄, 뇌물 수수, 고리대금, 사기 등을 들고 있다(1-16절).

그리고 이스라엘 땅의 죄악으로는 선지자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양산하고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고 성물을 더럽히고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치 아니하며 사람들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함, 고관들은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리고 선지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함, 백성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제하고 수탈함 등을 들고 있다(23-29절).

이는 이스라엘이 모든 계충, 모든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악을 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하여 당신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막을 자를 찾았으나 찾지 못함으로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실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심으로써(30,31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신다.

다음 제23장의 세 문단에서는 남북 선민의 동반 심판 비유를 보도한다.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반부 1-21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사마리아 음행 답습을 지적한다. 여기서 선지자는 먼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각각 ‘그녀 자신의 장막’이라는 의미인 오홀라와 ‘내 장막이 그녀 안에 있다’라는 의미인 오홀리바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에 비유하며 그들이 모두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었음을 밝히고(1-4절), 이중 오홀라 곧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과 우상을 추종하는 음행을 저질러 그들이 음행의 대상으로 삼았던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삼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음을 지적한다(5-10절). 그리고 오홀라 곧 사마리아의 전례에도 불구하고 오홀라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할 뿐만 아니라 더욱 심해진 오홀리바 곧 예루살렘의 이방과 그 우상 추종을 지적한다(11-21절).

이어 중반부 22-3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오홀라 곧 사마리아의 음행을 답습한 오홀리바 곧 예루살렘을 오홀라를 심판한 것과 동일한 방법, 즉 사마리아를 그들이 추종하였던 앗수르를 통하여 심판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을 그들이 추종하는 바벨론을 통하여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보도한다.

 

끝으로 후반부 36-49절에서는 동일한 죄를 범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대한 동반 심판 선언을 보도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사마리아는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약 136년 전에 이미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예루살렘과 더불어 심판이 선언된 것은 이미 심판을 받아 멸망한 사마리아와 같이 예루살렘의 멸망도 확정적인 일임을 보여주기 위한 수사학적 표현이다.

다음으로 B.C. 588년 10월 10일 곧 예루살렘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되던 당일에 주어진 계시를 수록하고 있는 후반부 제24장은 각각 한 가지의 비유와 상징 행위를 통한 예루살렘 멸망 예언을 보도한다.

특별히 이러한 제24장은 예루살렘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가 개시 되던 날에 주어진 계시인 바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하여 보다 직접적이고도 매우 긴박하게 예언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14절에서는 녹슨 가마로 양고기 삶는 비유를 통하여 죄로 오염된 예루살렘성이 철저하게 파멸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15-27절에서는 에스겔 처의 사망과 그와 관련한 상징 행위를 통하여 장차 예루살렘의 파멸의 날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화를 입고 슬픔이 보편화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 본 문단에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

구약 선민으로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의 역사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패역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만민 가운데서 이스라엘을 당신의 선민으로 택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에 비하여 탁월하거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여 구약 구속사의 전개 통로로 삼으신 것은 무조건적 은혜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무조건적 은혜로 택하여 당신의 선민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어 살게 하시며 다른 어느 민족도 받지 못한 언약을 주시는 등 실로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서는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그들을 도우시고 보호하심으로 그들의 역사가 단절되지 않게 하시었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의 역사는 분명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패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던 날부터 하나님을 배반하며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거스르기를 거듭하였다. 하나님은 때로는 징계로, 때로는 사랑의 손길로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으나 그들은 패역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속성의 양면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의 양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역사의 흐름에서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실로 사랑과 공의는 우주와 역사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의 속성의 양면으로서만 세대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만인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나 패역한 자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을 베푸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패역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타락한 예루살렘과 유다를 심판하셨다.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과 유다는 처참한 몰락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민에 대한 심판은 절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선민을 향하여 때로는 책망과 경고로, 때로는 간절한 호소로 죄의 길에서 돌이킬 것을 촉구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회개 촉구는 선민에 대한 심판이 임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선민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멸에 이른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부족이나 무자비함 때문이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회개 촉구를 무시한 패역한 선민에게 그 원인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성도들 자신에게 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들의 잘못을 깨우치고 경고하며 죄에서 돌이킬 것을 호소 또는 촉구하신다. 그런데 강팍한 인간이 그러한 하나님의 경고나 호소나 촉구를 멸시함으로 심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와 호소를 듣게 될 때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고 마음을 찢고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오래 참으사 죄인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진노를 거두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회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 2:13).

다음으로 타락한 선민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도 선민의 회복 약속이 함께 주어진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은 타락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여 멸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거듭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사랑의 주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주이시기도 하다. 그러므로 타락하여 범죄한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자연스런 발로이다. 또한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죄악을 징벌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민을 심판하시는 것은 비단 죄악의 징벌에만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이 죄악의 징벌에만 있다면 그들에 대한 회복 약속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타락한 선민을 선심판 후에 다시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약속을 심판 예언 사이사이에 주시고 있다. 이는 선민에 대한 심판의 목적이 징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선민을 심판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죄로 오염되어 더러워진 선민을 다시 정화시켜 구속사의 주역으로서의 임무를 맡기기 위한 것이다(22:17-22). 그리하여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리 풀무불과 같이 맹렬한 것이라고 해도 선민은 완전히 멸절되지 않고 남은 자가 있어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이 범죄하면 공의로 심판하시되 그들을 완전히 버리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며 구속사의 주역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인 성도들은 비록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처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을 정화하는 연단의 기회로 삼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아오며 그로 말미암아 구속사의 주역으로서의 임무를 완수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선민을 심판하는 칼로 바벨론을 사용하신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였다. 따라서 바벨론은 하나님의 선민 유다에 비하여 더 악하면 악하였지 유다만 못지아니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하박국 선지자같은 경우는 하나님 께서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하실 때 악인으로 자기보다 의로운 자들을 삼키게 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였다(합 1:12-17). 그러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살육과 파괴 등 악한 일들이 동반되는 일이다. 그러한 악한 일에 의로운 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민 유다를 심판하시는 일에 그들보다도 더 악한 바벨론을 칼로 삼으신 것이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처하며 이방 민족에 대하여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유다는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하면 악한 자들이 칼이 되어 치게 된다.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로 인하여 환난과 수치를 당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과 그의 사주를 받은 악한 자들의 시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교회와 성도들의 타락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들은 악한 자들로 인하여 환난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경우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칼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악인들의 시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변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신 칼이라면 무엇보다도 통회하는 일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사마리아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한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와 동일한 심판에 이른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의 우상들과 이방 나라 특히 앗수르를 의지하다가 그들이 의지한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의 행위와 그 결과를 직접 보고도 그들 또한 사마리아의 행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예루살렘 역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의 우상들을 섬기고 이방 나라 바벨론을 의지하였던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은 사마리아가 멸망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예루살렘이 사마리아의 행위를 답습하였으니 그 결과 또한 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얼마나 미련하였는지 잘 보여준다. 예루살렘은 사마리아의 결국을 살펴서 경계로 삼아야 마땅하였으나 미련하여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사마리아의 행위를 답습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미련한 것은 예루살렘만이 아니다. 예루살렘과 같이 죄로 멸망하는 자들을 보면서도 그 길을 답습하는 자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미련한 자들이 서는 줄에 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죄로 인하여 멸망하거나 실패를 경험한 자들에 대한 기록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성경이 이를 기록한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경계를 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고전 10:10,11).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자들을 보면서, 그리고 성경에서 죄로 인하여 멸망하거나 실패를 경험한 자들의 기록을 보면서 그들과 같은 길에 선다면 불행하게도 예루살렘의 종국을 따르게 될 것이다.

출처 ; 옥스퍼드 주석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

 

애굽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스겔 20:1-9)

 

[ 성경묵상 ]

20장 요약 ; 20-24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을 지적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최종적인 선포이다. 본장은 출애굽에서부터 예루살렘 멸망 직전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회고함으로 유다의 멸망이 필연적임을 밝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불순종함으로 멸망을 자초했다.

20:1-17 ; 하나님께서는 특별하신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출 3:6-15:21). 그리고 그 언약은 이스라엘 편에서의 순종과 의무를 통하여 수행된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을 멸시하고, 거짓 우상에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백성들은 당연히 멸망당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 때문에 그들을 보존해 나가셨다. 사실 이스라엘의 선택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헌신하는 참 백성을 창조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며, 그분의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제20장의 세 문단에서는 패역과 구원이 교차한 선민의 역사 회고와 그에 근거한 선민 심판 예언을 보도한다.

선지자는 먼저 유다에 임할 심판의 불가피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음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패역을 거듭한 유다의 과거의 죄악의 역사를 회고한다(1-32절).

그리고 불붙는 남방 삼림 비유를 통하여 유다에 대한 멸망 심판이 작정되었음을 천명한다(45-49절).

그러나 선지자는 동시에 징벌을 통한 선민의 정화와 신앙 회복 예고를 줌으로써(33-44절),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유다의 멸망을 가져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민을 완전히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을 죄로부터 정화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그들이 징벌을 통하여 정화된 후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던져주고 있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여호와께 묻기 위해 나아온 장로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시는가?(3절)

[ 질문 2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행한 일들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8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NIV

1. 제 칠년 오월 십일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 내 앞에 앉으니

In the seventh year, in the fifth month on the tenth day, some of the elders of Israel came to inquire of the LORD, and they sat down in front of me.

'이스라엘 장로 여러 사람들'이란 바벨론 포로 공동체에 속해 있던 사람들로, 여기서 장로는 백성의 지도자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Then the word of the LORD came to me:

3. 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Son of man, speak to the elders of Israel and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Have you come to inquire of me? As surely as I live, I will not let you inquire of me, declares the Sovereign LORD.

'나의 목숨을 걸고'는 "내가 살아 있는 한"으로 번역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자신보다 더 큰 이가 없기 때문에 자주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시는 것이다.

4.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너는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Will you judge them? Will you judge them, son of man? Then confront them with the detestable practices of their fathers

5.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

and say to them: `This is what the Sovereign LORD says: On the day I chose Israel, I swore with uplifted hand to the descendants of the house of Jacob and revealed myself to them in Egypt. With uplifted hand I said to them, "I am the LORD your God."

6.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On that day I swore to them that I would bring them out of Egypt into a land I had searched out for them,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the most beautiful of all lands.

7.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And I said to them, "Each of you, get rid of the vile images you have set your eyes on, and do not defile yourselves with the idols of Egypt. I am the LORD your God."

8.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But they rebelled against me and would not listen to me; they did not get rid of the vile images they had set their eyes on, nor did they forsake the idols of Egypt. So I said I would pour out my wrath on them and spend my anger against them in Egypt.

9.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

But for the sake of my name I did what would keep it from being profaned in the eyes of the nations they lived among and in whose sight I had revealed myself to the Israelites by bringing them out of Egypt.

내 이름을 위함이라 ;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그분의 인격적인 모든 속성을 나타내 준다. 특히 언약에 신실하시고 영원 불변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계시해 준다(참조, 출 3:14-15).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과 범죄한 백성들을 끊임없이 용서해 주시며 길이 참으심으로 끝까지 구원으로 인도하신 것은 그 이름으로 맹세하시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구원은 오직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의 능력과 그 이름으로 맹세하신 영원 불변한 약속에 기인하기 때문에 절대로 안전한 것이다(참조, 욜 2:32 ; 롬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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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묵상 ]

20:18-32 ; 이스라엘의 전역사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다른 이방들처럼 되려는 반항의 역사였다. 출애굽한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자손 역시 광야에서 패역한 길을 걸어왔으며,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악한 길에서 돌아설 줄 몰랐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악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반면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세계의 모든 나라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통한 구원 사역과, 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시는 역사였다.

20:33-39 ; 하나님은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킬 계획을 세우셨다(38절). 하나님은 이 새로운 역사를 통해, 자신과 백성 사이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 온 공동체에서 패역과 우상이 완전히 제거된 후에라야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탄생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이 세워질 것이며, 백성들은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될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제20장의 세 문단에서는 패역과 구원이 교차한 선민의 역사 회고와 그에 근거한 선민 심판 예언을 보도한다.
선지자는 먼저 유다에 임할 심판의 불가피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음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패역을 거듭한 유다의 과거의 죄악의 역사를 회고한다(1-32절).
그리고 불붙는 남방 삼림 비유를 통하여 유다에 대한 멸망 심판이 작정되었음을 천명한다(45-49절).
그러나 선지자는 동시에 징벌을 통한 선민의 정화와 신앙 회복 예고를 줌으로써(33-44절),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유다의 멸망을 가져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민을 완전히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을 죄로부터 정화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그들이 징벌을 통하여 정화된 후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던져주고 있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의도는 무엇인가?(11,13,21절)

[ 질문 2 ] 지속적으로 예로 든 율법은 무엇인가?(12,13,16,20,21,24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NIV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Therefore I led them out of Egypt and brought them into the desert.

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I gave them my decrees and made known to them my laws, for the man who obeys them will live by them.

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Also I gave them my Sabbaths as a sign between us, so they would know that I the LORD made them holy.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Yet the people of Israel rebelled against me in the desert. They did not follow my decrees but rejected my laws -- although the man who obeys them will live by them -- and they utterly desecrated my Sabbaths. So I said I would pour out my wrath on them and destroy them in the desert.

안식일을 크게 더렵혔으므로 ; 이스라엘 백성의 타락을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매일 거두는 만나를 통해 안식일 준행을 가르치셨는데(출 16:13-30), 이는 그들이 떡으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백성임을 강조한 것이다.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But for the sake of my name I did what would keep it from being profaned in the eyes of the nations in whose sight I had brought them out.

15.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Also with uplifted hand I swore to them in the desert that I would not bring them into the land I had given them --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most beautiful of all lands --

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because they rejected my laws and did not follow my decrees and desecrated my Sabbaths. For their hearts were devoted to their idols.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Yet I looked on them with pity and did not destroy them or put an end to them in the desert.

18.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조상들의 율례를 따르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I said to their children in the desert, "Do not follow the statutes of your fathers or keep their laws or defile yourselves with their idols.

19.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따르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I am the LORD your God; follow my decrees and be careful to keep my laws.

20.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하였노라
Keep my Sabbaths holy, that they may be a sign between us. Then you will know that I am the LORD your God."

21. 그러나 그들의 자손이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지켜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따르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힌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으며 그들에게 내 진노를 이루리라 하였으나
"`But the children rebelled against me: They did not follow my decrees, they were not careful to keep my laws -- although the man who obeys them will live by them -- and they desecrated my Sabbaths. So I said I would pour out my wrath on them and spend my anger against them in the desert.

22.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막아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여러 나라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But I withheld my hand, and for the sake of my name I did what would keep it from being profaned in the eyes of the nations in whose sight I had brought them out.

23.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여러 민족 가운데에 헤치리라 하였나니
Also with uplifted hand I swore to them in the desert that I would disperse them among the nations and scatter them through the countries,

24.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들의 조상들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because they had not obeyed my laws but had rejected my decrees and desecrated my Sabbaths, and their eyes lusted after their fathers idols.

25. 또 내가 그들에게 선하지 못한 율례와 능히 지키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I also gave them over to statutes that were not good and laws they could not live by;

26.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을 멸망하게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라
I let them become defiled through their gifts -- the sacrifice of every firstborn -- that I might fill them with horror so they would know that I am the LORD.

 

 

이스라엘 장로의 질문 ( 20:1-4 )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여호와께 물으려고 와서(1절). 그들의 질문은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있는 동안 성전도 회당도 없으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있어서 그 나라 백성들이 하듯이 목석을 숭배하는 일과 더불어 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것이 당연함을 알아야 했다. 인자야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 네가 그들을 국문하려느냐(4절). "보라 내가 너를 열방 위에 세웠노라. 너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하라. 그리하여 '그들로 그 열조의 가증한 일을 알게' 하라."


애굽에서의 하나님의 은혜 ( 20:5-9 )

(1)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로 있었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의 은혜로운 목적.

1) 비록 그들의 형편이 좋지 못했고 그들의 성품이 악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특별한 백성으로 선택하셨다. 이는 그들의 형편과 성품 모두를 개선시키사 영광을 취하시기 위해서였다.

2)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셨다(출 6:3). 이것은 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다. 당시 그들은 노예 상태로 있었으므로 그들의 열조에게 알려졌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었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그들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으로 나타내셨다. 내가...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5절).

4)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약속하신 바를 이루셨다.

5)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실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제 2의 에덴 동산에 이르게 하셨다.

(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합당한 명령 :

너희는 눈에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7절).

(3) 이 명령에 대한 부당한 불순종 :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로 한 민족을 만드시자마자 곧 잘라버리고자 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8절). 애굽에 내린 온갖 재앙도, 그들을 '애굽의 우상들'에 대한 애착에서 떠나게 하지 못한 것은 이상스런 일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애굽인들과 함께 죽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구원 :

비록 은혜가 아직 임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이 그 은혜를 빼앗기게 되었으나, '긍휼은 심판을 물리치기를 기뻐하였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9절) 자신이 계획하신 바를 행하셨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만한 아무런 명목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 명목을 공급해 주신다.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은혜 ( 20:10-26 )

이스라엘이 스스로 파멸케 하려고 범했던 죄악과, 그들을 구원하시고 복주시려 한 하나님의 긍휼 사이의 투쟁의 역사가 여기에 계속되고 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구약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신약에서도(고전 10장;히 3장) 언급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 경계심을 주기 때문이다.

(1)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들을 위해 행하신 큰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신다.

이는 그들에게 은총을 베푼 것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배은 망덕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들이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이르긴'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이다(10절). 풍족한 곳에서 노예로 있느니 차라리 광야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더 낫다. 그러나 그들이 사막의 여러 어려움에 직면케 되자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다시 애굽에 들어가기를 원하였다. 내가...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11절). 즉 그들을 위해 율법을 재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 율법의 합당함과 정당함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이라고 하는 옛 제도를 부활시키셨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있는 동안 완전히 잊혀졌었다. 안식일은 표징이다. 즉 그것은 인간이 종교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표징이 되는 것이다. 만일 올바로 지켜진다면 안식일은 우리의 성화의 방편이 된다.

(2) 하나님께 불성실하고도 불순종한 이스라엘의 행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언약에서 내쳐 버리셨어도 당연했을 것이다. 광야에서 내게 패역하여(13절).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그토록 많은 긍휼을 받은 곳, 그리고 가나안으로 가는 중도였던 곳, 그곳에서 그들은 자기들을 인도하시고 또 먹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공개적인 패역을 일삼았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그 세대를 멸절시키고자 결심하셨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도에 대한 그들의 무시의 밑바닥에는, 애굽의 우상들에 대한 은밀한 애착이 깔려 있었다.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4)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들을 아주 없이 하지 아니하셨고', 새 세대가 일어서기까지 멸절시키기를 유예하셨다.

(5) 그 다음 세대 또한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따라서 그들 또한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21절).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처럼 그 자손들도 또한 그들의 열조들처럼 행하였다. 그 자손의 눈이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24절). 그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신들을 소유하고자 한 것이다.

(6) 하나님께서 그들의 패역에 대해서 심판을 내리셨다.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25절).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광야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벌하셨음을 알 수가 있다. 즉 그들에게 임한 재앙이나 불뱀,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들이 그들에 대한 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심판'(한글 개역에는 '규례'라고 되어 있음-역주)이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율례'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구원을 명하셨듯이 황폐를 명하셨기 때문이다. 영적인 심판은 가장 두려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로 그들의 벌이 되게 하셨으며,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하시듯이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다(롬 1:24,26).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죄 자체가 벌이 되게 하신다. 스스로자신을 악한 정욕과 욕망에 내버려 두는 것보다 인간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란 없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호 ]


새로운 광야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스겔 20:27-39)

[ 성경묵상 ]

20장 요약 ; 20-24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을 지적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최종적인 선포이다. 본장은 출애굽에서부터 예루살렘 멸망 직전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회고함으로 유다의 멸망이 필연적임을 밝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불순종함으로 멸망을 자초했다.

20:1-17 ; 하나님께서는 특별하신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다(출 3:6-15:21). 그리고 그 언약은 이스라엘 편에서의 순종과 의무를 통하여 수행된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을 멸시하고, 거짓 우상에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백성들은 당연히 멸망당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 때문에 그들을 보존해 나가셨다. 사실 이스라엘의 선택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선택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헌신하는 참 백성을 창조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며, 그분의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20:18-32 ; 이스라엘의 전역사는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다른 이방들처럼 되려는 반항의 역사였다. 출애굽한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자손 역시 광야에서 패역한 길을 걸어왔으며,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악한 길에서 돌아설 줄 몰랐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죄악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반면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세계의 모든 나라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통한 구원 사역과, 또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드러내시는 역사였다.

20:33-39 ; 하나님은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전개시킬 계획을 세우셨다(38절). 하나님은 이 새로운 역사를 통해, 자신과 백성 사이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 온 공동체에서 패역과 우상이 완전히 제거된 후에라야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가 탄생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목적이 세워질 것이며, 백성들은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게 될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제20장의 세 문단에서는 패역과 구원이 교차한 선민의 역사 회고와 그에 근거한 선민 심판 예언을 보도한다.
선지자는 먼저 유다에 임할 심판의 불가피함을 보여주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음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패역을 거듭한 유다의 과거의 죄악의 역사를 회고한다(1-32절).
그리고 불붙는 남방 삼림 비유를 통하여 유다에 대한 멸망 심판이 작정되었음을 천명한다(45-49절).
그러나 선지자는 동시에 징벌을 통한 선민의 정화와 신앙 회복 예고를 줌으로써(33-44절),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비록 유다의 멸망을 가져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민을 완전히 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선민을 죄로부터 정화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그들이 징벌을 통하여 정화된 후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을 던져주고 있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하나 ] 죄를 지은 이스라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는가?(31절)

출애굽에서 시작해(5-9절), 광야 1세대(10-17절)를 거쳐, 그들의 자녀세대(18-26절), 심지어 가나안에 들어가서까지(28-29) 변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이다.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불살라 제사 지내기까지 하였다.
여호와께서 이제 "내게 묻기를 용납하지 아니하리라(2,31절)"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제 어려움이 찾아와도 하나님께 아뢸 수도 없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절대로 그들의 요구대로 문의를 받아주시지 않고, 답변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이다.
반복적으로 지속하는 죄, 익숙해서 잘못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죄는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눈을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지게 한다.

[ 질문 둘 ]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려고 하시는가?(38절)

당장은 그들을 다른 나라에 팔려가게 버려 두시지만 잠시만 지나면 다시 그들을 불러 '광야'에 불러 모을 것이다(33-34절). 마치 목자가 막대기로 자기 양과 남의 양을 골라내듯 하나님의 백성을 골라내겠다고 하신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27. ○그런즉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 조상들이 또 내게 범죄하여 나를 욕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 조상은 이런 일을 저질러 나를 배반함으로써, 나를 모독하였다.

28.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였더니 그들이 모든 높은 산과 모든 무성한 나무를 보고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노하게 하는 제물을 올리며 거기서 또 분향하고 전제물을 부어 드린지라
내가 일찍이 그들에게 주겠다고 손을 들어서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왔더니, 그들은 모든 높은 언덕과 잎이 무성한 나무를 보고, 그 곳에서 짐승을 잡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고, 거기서 나를 분노하게 하는 제물을 바쳤다. 그들은 거기서 우상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며,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쳤다.

29. 이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다니는 산당이 무엇이냐 하였노라 (그것을 오늘날까지 바마라 일컫느니라)
그래서 내가, 그들이 찾아 다니는 그 산당이 무엇이냐고 그들에게 꾸짖었다. (그런 곳의 이름을 오늘날까지 바마라고 부른다.)

바마 ; 산당은 히브리어로 '바아마'인데, '가다'의 뜻을 지닌 '바아'와 '무엇?'을 뜻하는 의문대명사 '마'를 합한 소리이다.

30.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조상들의 풍속을 따라 너희 자신을 더럽히며 그 모든 가증한 것을 따라 행음하느냐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도 너희 조상들의 행실을 따라 너희 자신을 더럽히고, 그들의 역겨운 우상을 따라 다니며 음행을 하느냐?

31. 너희가 또 너희 아들을 화제로 삼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오늘까지 너희 자신을 우상들로 말미암아 더럽히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겠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또 너희는 온갖 제물을 바치고 너희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제물로 바침으로써, 너희가 오늘날까지 우상들을 섬김으로써, 너희 자신을 더럽히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너희가 나에게 묻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는, 너희가 나에게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32.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인 곧 여러 나라 족속 같이 되어서 목석을 경배하리라 하거니와 너희 마음에 품은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리라
"너희가 스스로 이르기를 우리가 이방 사람, 곧 여러 나라의 여러 백성처럼 나무와 돌을 섬기자 하지만, 너희 마음에 품고 있는 생각대로는 절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1-32절에서는 신탁을 요청하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선민의 패역과 여호와의 인내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그 요청을 거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33-44절에서는 선민의 패역의 역사를 지적한 데 이어 징벌을 통하여 선민을 정화시키고 신앙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고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을 심판하여 이방 가운데 흩으실 것과 더불어 흩어진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다시 모아 들여 회복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한 단락 안에 귀환과 심판의 메시지가 동시에 들어 있다.

3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반드시 다스릴지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반드시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다스리겠다.

'능한 손과 편 팔'이라는 표현은 그 어떤 세력도 막을 수 없는 구원과 심판을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여호와의 권능을 의인법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과거 여호와께서 그 조상들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이끌어 내어 자유를 주신 사건과 관련하여 사용한 표현이다(신 4:34 ; 5:15). 그러나 지금은 구원이 아닌 심판을 행하시는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것이 다른 점이다.

'분노'란 매우 뜨거워지는 현상을 나타내며, 감당키 어려운 뜨거운 열이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나타낸다. 여호와의 심령 가운데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분노는 심판의 대상에게 쏟아 부어지지 않고서는 해소될 수 없으므로 그것을 반드시 쏟아내시는 것이다.

'다스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두 번 다시 그런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무서운 심판을 통해 그들을 통제하여 다스릴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34.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여러 나라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의 흩어진 여러 지방에서 모아내고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여러 나라에서 데리고 나오며, 너희가 흩어져 살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 오겠고,

이방 포로에서 해방되게 하신 후에 심판을 단행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아오게 하신 회복의 은총에 감사하며, 이제까지 저지른 자신들의 죄악을 돌아보고 철저히 돌아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35.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광야에 이르러 거기에서 너희를 대면하여 심판하되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민족의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거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너희를 심판하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후,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들과 대면하시고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출 20:18-22 ; 신 5:4-5).
하나님께서는 귀환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의 여정과 같은 고난의 삶 가운데 두시는데, 그 이유는 첫째 악인들을 걸러내시기 위함이며, 둘째는 자기 백성을 더욱 연단시키기 위함이다.


36. 내가 애굽 땅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을 심판한 것 같이 너희를 심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집트 땅 광야에서 너희 조상을 심판한 것과 똑같이, 너희를 심판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37. 내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며 언약의 줄로 매려니와
내가 너희를 목자의 지팡이 밑으로 지나가게 하여, 너희의 숫자를 세며, 언약의 띠로 맬 것이다.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 목자들은 양떼를 모아 들에서 함께 치다가 숙소에 이르면 서로의 양떼를 나눈다. 막대기를 두고 한 마리씩 지나며 자기 양은 지나가게 하고 다른 목자의 양은 막아서 구별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친히 택하신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 목자와 같은 위치에 계시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어진 곳에서 모아 들여, 그들이 다 모였는지와 더불어 그들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를 일일이 조사하실 것이다. 조사가 끝나면 한 부류는 새로운 언약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반면, 다른 한 부류는 엄중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즉 경건한 자들은 언약의 관계 속으로, 불의한 자들은 심판의 대상으로 각각 분리하실 것이다. 마치 염소와 양의 비유를 연상케 한다(마 25:31-46).

'언약의 줄로 맨다'는 것은 짐승의 주인이 그 짐승을 단단한 줄로 매어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여 자기에게 확실하게 속하게 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의로운 자들을 단단한 언약의 줄로 매어서 자신에게 확실하게 속하게 하실 것을 나타낸다. 복의 근원이신 여호와께 속박 당하는 자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38. 너희 가운데에서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머물러 살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는 너희 가운데서 나에게 반역하고 범죄한 사람들을 없애 버리겠다. 그들이 지금 거주하는 땅에서, 내가 그들을 데리고 나오기는 하겠으나, 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39.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가서 각각 그 우상을 섬기라 그렇게 하려거든 이 후에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각자 너희의 우상들을 섬길테면 섬겨라. 너희가 지금은 내 말을 듣지 않으나, 이 다음에 다시는, 너희의 온갖 예물과 우상숭배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이스라엘 땅에서(에스겔 20:40-49)

[ 성경묵상 ]

[ 질문 1 ]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은 무엇인가?(40-41절)

[ 질문 2 ] 심판을 경고 받은 백성의 반응은 어떠한가?(49절)

 

 

에스겔 20:40-49 스스로 미워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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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4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나의 거룩한 산, 이스라엘의 그 높은 곳에서,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맞아들이며, 거기에서 내가 너희의 제물과 가장 좋은 예물을 온갖 거룩한 제물과 함께 요구할 것이다.

41.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너희를 데리고 나오며, 너희가 흩어져 살던 그 모든 나라에서 너희를 모아 올 때에, 나는 아름다운 향기로 너희를 기쁘게 맞이하겠다. 이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를 통하여 나의 거룩함을 드러낼 것이다.

'내 거룩함' ;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자기 백성에게로 향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나타난다(28:22,25 ; 36:23 ; 38:16 ; 39:27).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로 자기 영광을 보이심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말씀과 의미가 통한다.

42.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내가 이렇게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곧 내가 너희 조상에게 주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43.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

거기에서 너희가 자신을 더럽히며 살아온 길과 모든 행실을 기억하고, 너희가 저질렀던 그 온갖 악행 때문에 너희가 스스로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너희의 악한 길과 타락한 행실에 따라, 그대로 너희에게 갚았어야 했지만, 내 이름에 욕이 될까봐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45-49절에서는 불붙는 남방 삼림 비유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유다를 멸망에 이르게 할 심판을 작정하셨음을 예언한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에는 45-49절이 제2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20장은 44절로 끝나고, 21장은 모두 37절이 된다. 내용상으로도 45-49절은 사실 선민의 정화와 신앙의 회복을 예언하는 33-44절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자연스럽지 않다. 45-49절은 여호와의 맹렬한 심판을 다루고 있으며, 이 심판은 이방 민족 즉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유다에 대한 심판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내용은 바벨론을 통한 유다의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이 제시되는 이어지는 21장의 내용과 더 잘 조화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45-49절의 예언은 히브리어 성경에서의 배열과 그 내용상으로 1-44절과 구별되므로 장로들이 찾아와 여호와의 문의를 구한 때에 에스겔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시기에 주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4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

"사람아, 너는 얼굴을 남쪽으로 돌려라. 남쪽을 규탄하여 외치고, 남쪽 네겝의 숲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남쪽'이란 남쪽 유다 왕국을 뜻한다. 바벨론에서 서쪽에 있는 유다에 가려면 사막을 피해야 하기에, 북쪽으로 돌아서 남쪽을 향할 수밖에 없다.

‘남’(south)이라는 단어가 모두 3회 사용되었다. 그러나 원문상으로는 이 세 번의 경우가 각기 다른 단어로 되어 었다.

첫째는, ‘테마나’이다. 이 단어는 원래 사람이 동쪽을 향해 서 있을 때 오른손의 방향 즉 남쪽을 지칭하는 단어이다(47:19).

 

둘째는, ‘따롬’이다. 이 단어는 어원적으로 빛을 발하는 땅을 의미하는데, 구약 성경에서는 주로 ‘남쪽’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신 33:23 ; 전 1:6).

 

셋째는, ‘네게브'이다. 이 단어는 ‘바싹 마르다’란 뜻을 지닌 단어에서 유래하여 원래 건조한 광야 땅을 의미하는 단어였으나 구약 성경에서 ‘남쪽’을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로 나타난다.

이 단어 자체가 고유 명사로 사용되어, 유다 남방의 건조한 광야인 네게브 지역을 가리키기도 한다(창 12:9). 본문에서 이 표현은 남유다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방향을 나타내는 표현은 한편으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같이 남유다도 반드시 멸망케 됨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심판이 북쪽에서 온다는 것과 관련한 불길한 조짐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Zimmerli).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를 풀어서 번역하면, ‘그리고 너는 남방의 들판에 있는 숲을 향해 예언하라’라는 의미가 된다. 개역 개정판 성경에는 ‘핫사데’라는 단어가 번역에서 빠져 있다. 이 단어는 혼히 ‘들판(field)'을 의미할 때 사용되나(창 2:5 ; 24:65), 본문에서는 국토를 나타낸다. ‘숲’에 해당하는 ‘야아르’는 나무나 다른 물질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많은 나무로 구성된 숲을 의미한다(신 19:5). 남방 네게브 사막에는 숲이 없다. 하지만 그 사막의 윗부분, 즉 북쪽으로는 당시에 오늘날보다 나무가 훨씬 더 많았으므로(Feinberg) 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는 심판의 대상으로서의 남유다를 상징하기 위한 은유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47.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가운데에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너는 네겝의 숲에 말하여라. 너는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숲 속에 불을 지르겠다. 그 불은 숲 속에 있는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태울 것이다. 활활 치솟는 그 불꽃이 꺼지지 않아서, 남쪽에서 북쪽까지 모든 사람의 얼굴이 그 불에 그으를 것이다.

46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향하여 남쪽 숲에 비유된 남 유다를 향하여 예언할 것을 명령하셨다. 이제 본절과 48절에서 여호와께서 남유다를 멸망시킬 심판을 작정하셨다는 사실이 천명하고 있다. ‘불’은 하나님의 두렵고 엄정한 형벌과 심판을 상징한다.

남방 숲 즉 이스라엘 사회를 심판하시는 주체가 ‘여호와’이심이 강조된다. ‘내가’에 해당하는 ‘히느니’는 ‘보라! 내가’라는 의미이다. 이는 듣는 자들로 하여금 불을 붙이는 주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해 보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 여호와께서 불을 붙이실 것이라는 사실이 바로 이 ‘히느니’를 통해 강조된다.

불을 일으 키는 목적은 그 숲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마른 나무와 푸른 나무를 하나같이 다 멸절하는 것이다. 그 나무들은 의인과 악인을 포함한 유다 백성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21:3).

‘그슬릴지라’에 해당하는 ‘웨니츠레부’의 원형 ‘차라브’는 단순히 연기에 그을려 색상이 변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에 타고 그로 말미암아 상해를 입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고 여기서 상해를 입은 곳이 ‘얼굴’이라는 사실은 매우 치명적인 상해를 입음을 나타내고 ‘남에서 북까지’라는 함께 사용된 ‘모든'이라는 표현은 그 상해가 모든 남유다 백성에게 임하는 총체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스라엘에 총체적인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은 21:3-4에서 계속해서 강조된다. 이는 바벨론의 침략 여파가 유다 전역에 미칠 것을 가리키나 종말론적으로는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전면적으로 그리고 맹렬하게 이루어질 것을 상징한다.

48. 혈기 있는 모든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그 때에야 비로소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이, 나 주가 그 불을 질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불은 절대로 꺼지지 않을 것이다."

‘혈기 있는 자'로 번역된 ‘빠사르'는 기질상 분노가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칭하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를 가진 측면을 인간의 영적인 면보다 부각시킨 표현이다. 이는 심판에 불가항력적인 유한한 인간의 면모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9. 내가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내가 아뢰었다. "주 하나님, 그들은 저를 가리켜 말하기를 모호한 비유나 들어서 말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하 주 여호와여"는 에스겔의 예언을 듣는 자들의 반응을 여호와께 아뢰는 내용으로서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하나는, 현재의 이 예언이 비유로 되어 있으니 분명한 해설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그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혹독한 예언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기 불가능한 단지 비유적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의미이다. 만약 후자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시 그들은 에스겔 선지자가 신중히 말하는 예언에 대해 비웃는 태도를 지닌 것이 되며(Block), 전자의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호와의 메시지를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진 것이 된다.

본문에서 ‘아하흐’라는 단어는 말하는 자의 심적 고통을 표현하는 감탄사로서(수 7:7 ; 삿 6:2),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빠졌을 때 본능적으로 목에서 터져나오는 발음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좋다.

에스겔은 유다 멸망의 심판 예언을 이스라엘 포로 공동체에게 하면서 그 예언을 대하는 자들의 태도를 통해 ‘아하흐’라는 발음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감탄사에는 동족의 멸망을 예언하여야 하는 선지자로서의 당혹감과 고뇌까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는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비유로 표현된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알고자 하는 겸손한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에스겔의 예언은 현실 속에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비유에 불과하다고 조롱하는 경멸조의 태도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Block).

그런 점에서 ‘아하’라는 탄식은 단순히 그들의 영적 무지함 때문이 아니라 영적 완악함 때문에 의로운 선지자 에스겔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감탄사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의 메시지가 반드시 실현될 것과 그것을 알고 있는 자로서 이러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완악하고 패역하게 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직면하여 더할 나위 없는 고통에 사로잡혔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심판의 메시지를 조롱하는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서 나아가 여호와께 그 비유의 말씀을 실제로 행해 그들이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하시라는 탄원의 측면도 고려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선지자라는 점에서 탄원보다는 탄식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에스겔 20:40~49절)

휴! 월요일 아침입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어두컴컴한 아침입니다. 무더위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8월 12일 아침입니다. 에스겔을 묵상하다 보면 정말 끈질기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놀라곤 합니다. 예레미야를 묵상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는 성령의 음성으로 들려집니다.

 

그래서 오늘 묵상은 49절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아 보입니다. 이 모든 예언의 말씀을 들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말입니다. “내가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그럽니다. 즉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스겔이 자신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만 한다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들을 귀란 말씀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즉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서 전하시는 말씀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여호와인 것을 아는 두 가지 길을 말씀합니다. 첫째는 심판입니다. 이미 심판을 통해서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되리라는 말씀은 수없이 해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40~44절은 회복을 통해서 내가 여호와인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40~44절입니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높은 산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있었던 시온 산을 의미합니다. 거기서 다 나를 섬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되신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성도들이 영원히 하나님을 기쁘게 섬길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본토로 귀환하게 될 선민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패역한 자들을 제하고 정결하게 남은 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다시금 인정하시고 호의를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성물을 요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첫 열매’는 하나님께서 출애굽시 애굽의 모든 장자 및 짐승의 첫 새끼들을 치실 때 이스라엘에게 속한 것을 보호하셨던 사건(출 11:4~8; 12:29, 30)올 기념하여 모든 초태생을 하나님의 소유로 선언하신 이래(출 13:1, 2) 하나님의 소유가 될 만한 가장 좋은 것, 혹은 귀중한 것등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란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릴 정성을 다한 최선의 예물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를 향기로 받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42절에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와 44절에서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라는 말씀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심판이 아닌 회복을 통해서 내가 여호와인 것을 알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때 43절에서 “스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회복하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때 비로소 죄를 깨닫게 되는 은혜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회복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원하셨습니다.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은혜의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불붙는 남방 삼림(45~49절)

 

하나님은 33~44절에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패역한 유다 왕국에 임할 엄청난 심판을 예언함과 동시에 그 후에 있을 유다의 회복을 선포함으로써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와 더불어 택한 자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붙는 남방 삼림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 경고를 무시하는 유다 백성들에 임할 임박한 진노와 심판의 맹렬함을 다시 한번 선포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에 나오는 불붙는 남방 삼림의 비유는 곧 북방 갈대아 민족인 바벨론의 침공으로 남방 삼림으로 비유된 유다 왕국이 처절하게 패망하고 황폐하게 되리라는 경고를 담은 예언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다 왕국은 B.C.586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군대의 공격으로 예루살렘 성읍이 함락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약탈 되며, 온 국토가 유린 되어 황폐화되는 처참한 지정에까지 이르게 됨으로써 본문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40~44절은 포로 기간이 끝난 후의 일이고 45~48절은 불과 몇 년 후에 있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서가 바뀌어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든 저렇든 20장의 역사를 회고한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비유로 말하는 자라는 비난뿐이었습니다. 말씀에 마음 문을 닫고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저는 내가 그런 사람일까 두렵고 우리 시대가 그런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일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선택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대로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새 언약의 시대를 열어가시며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하고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합니다.

또 한 주간이 시작됩니다. 이 한 주간도 믿음으로, 말씀으로 잘살아 봅시다. 특히 말씀에 귀를 잘 기울여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깨어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은총 ( 20:33-44 )

장로들이 하려는 계획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이 살고 있는 현지의 사람들과 야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계획이 성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신다(32절). 본문에서 그는 그것이 어떻게 무산될 것인가를 보여주신다.

(1) 바벨론이나 그 밖의 다른 어떤 이방 나라도 그들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왕이나 어떤 장소도 그들에게 피난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열국 광야에' 이끌어 내어질 것이다(35절). 즉 '광야'로 불리우는 바벨론으로(19:13) 혹은 또 다른 곳으로 이끌어 내어질 것이다.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대면하고서 애굽 땅 광야에서 그들의 열조를 국문하신 것같이(36절) 그들을 국문하실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시내 광야에서의 두려움과 같은 두려움으로 그 율법을 이행하지 않은 자들에게 보수하실 것이다.

(2) 이스라엘은 바벨론보다도 더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다.

구별하는 날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귀한 사람과 악인을 나누실 것이다. 그는 십일조를 취하실 때 목자가 양에게 하듯이(레 27:32), 그들은 '막대기 아래로 지나게' 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 속한 것을 정하기 위해서이다. 혹은 이 말씀은 회개하고 돌이킨 자들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환난의 막대기 아래로 지나게 하실 것이며 다시 '언약의 줄'로 매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을 찾아낼 것이며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함받는 것이 그들에게 아무런 피난처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방 땅에 있으면서 자신들의 순결을 지키고 우상들을 섬기지 아니하 자들은 영화를 누릴 것이며 본국에서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약속되었다.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실 것이다(43절). 그는 또한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것이다. 즉 그들은 경험으로써 그가 '여호와', 곧 자기 백성에 대해서 자애로우시며 그들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 대한 말씀 ( 20:45-48 )

여기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진노의 예언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본장의 결론이라기보다는 다음 장의 서두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다음 장은 이 예언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백성들이 이 비유를 알지 못하겠다고 불평했기 때문이었다.

(1) 이 비유 속에는 '남방들의 삼림', 곧 유다와 예루살렘을 쳐서 예언하라는 것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바벨론 남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의 얼굴을 남방으로 향하도록 지시받았다(46절).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시고자 하여 자신의 얼굴을 그들에게로 돌리셨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진노의 메시지였지만 그는 온유하게 그것을 전해야 한다. 또한 그는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야' 했는데 그 소리는 '내리는 비'(신 32:2) 같아야 했다. 그 비는 백성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과수가 없었으므로 '삼림'으로 불리었다. 삼림에서는 과실을 맺는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여호와의 동산처럼 여김받던 자들이 '엉겅퀴와 가시'가 무성한 삼림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2) 이 비유 속에는 그 삼림이 불 탈 것이라는 예언이 나타나 있다.

내가 너의 가운데 불을 일으켜(47절). 스스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불이 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것을 소멸하시는 불이 되셨다. '남에서 북까지', 즉 가나안 남방인 브엘세바에서 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 것이다.' 이상의 말씀에 대해 백성들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이스라엘의 반역 ( 20장 )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멸망은 유다가 그의 조상들의 죄악을 따라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본장은 그 범죄를 유다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부터 어느 정도의 죄악을 하나님께 저질렀는가를 아주 소상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범죄가 당시의 유다 백성에게 어떻게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는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시작부터 불순종한 이스라엘

1) 출애굽 이전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함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잘 따르다가 잘 살게 되자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절하고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하기 이전부터, 다시 말하면 애굽에서 노예로 고생할 때부터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 증거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주식 그 당시에도 애굽의 우상들에게 절하였으며 그들이 주는 양식을 의뢰하였습니다(참조, 겔20:5-8). 이 불순종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 때까지도 소급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가뭄 때에 애굽으로 내려가는 범죄를 하였기 때문입니다(참조, 창12:10-20). 결국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a.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출5:21)

b.애굽으로 가는 자에게 화가 있음(사31:1)

c.애굽과의 음행(겔16:26)

2) 모든 인류가 처음부터 범죄함

앞에서 언급한 내용은 인류가 처음부터 범죄한 족속이라는 영적 의미를 가집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도중에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창조가 있은 뒤 아직 다음 세대를 낳기도 전에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참조, 창3:1-24). 인류는 첫 인간 때부터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범죄한 족속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참조, 롬5:12-19)

a.범죄의 싹(창3:6)

b.의인은 없음(롬3:10)

c.죄 없다 하면 거짓된 자(요일1:8)

 

2. 광야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1) 출애굽에서 가나안 입성까지 불순종함

애굽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막 나오면서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뿐만 아니라(참조, 출14:10-14) 광야에서도 수없이 많은 불순종과 불신앙을 하나님께 드러내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그 곳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강한 권력과 힘을 가진 애굽 왕 바로를 권능으로 굴복시키시는 것(참조, 출12:29-33)과 거대한 홍해 바다를 가르는 것(참조, 출14:21-23)과 바로의 군대를 멸하시는 것(참조, 출14:24-25)과 및 광야에서 농사도 짓지 아니求?이스라엘 백성들을 사십 년 간이나 먹여 살리시는 기적을 보고서도 그 마음을 강퍅케 한 것입니다.

a.애굽의 고기 회고(출16:3)

b.송아지 우상(출32:4)

c.불신의 백성(민13:11)

2) 하나님의 인도 가운데서도 불순종함

아담 때로부터, 즉 처음부터 범죄한 인류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 이후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계속해서 베푸셨음에도(참조, 창3:15,21) 그 죄에서 떠나기는커녕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참조, 창4:8,23-24;창6:5). 이 죄악은 지금 살펴보고 있듯이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저질러졌고 출애굽 사건의 본체 되는 사건, 곧 하나님의 독상하신 아들이 인간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죽고 부활한 놀라운 사건이 있은 후인 지금도 저질러지고 있습니다(참조, 롬7:21-24;빌2:5-11). 인간은 이 인생 광야에서도 여전히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a.가인의 살인(창4:8)

b.육체의 죄악(롬7:22-23)

3. 가나안에서 거역한 이스라엘

1) 가나안 정복으로부터 멸망 때까지 거역함

출애굽 이전부터 거역하여 출애굽 후 광야에서도 거역한 이스라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계속해서 거역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르러 그 곳에서 사는 동안 줄곳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몇 의로운 지도자들의 시대 이외에는 거의 예외없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불법을 행했습니다.

a.이방신 숭배(사2:11-12)

b.바알 숭배(왕상16:31)

2) 그리스도 안에서도 인간은 범죄함

참된 출애굽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 곧 성도들도 이 세상에 있는 한 죄와는 완전히 결별하지 못합니다. 그들 역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가나안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것처럼 여전히 범죄합니다. 따라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베드로의 부인(마26:72-75)

3) 심판과 회복

언제나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은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애초에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며 그 작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아시는 예지에서 기인합니다(참조,겔16:60-63;롬5:6-11;롬8:29-30). 이 구원은 글자 그대로 성취되었고(참조, 스1:1-11) 영적으로 지금 성취되고 있으며(참조, 눅17:21;요5:24) 앞으로 영원히 성취될 것입니다(참조, 계21:1-4;계22:1-5).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간과하심(롬3:25-26)

결론

이스라엘이 그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율법의 의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참조, 롬3:23).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것을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시는 하나님은 자기 편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길은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겸손한 가운데 이르러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만을 섬기고 의뢰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