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스겔 묵상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겔16-17장)

by 은총가득 2021. 3. 1.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스겔 16:53-63)

 

[ 성경묵상 ]

제16장의 세 문단은 타락한 선민의 징계와 회복의 전과정을 조망하는 일련의 ‘음란한 부녀의 비유’ 기사를 보도한다. 제15장의 무익한 포도나무의 소각 비유가 ‘하나님께서 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가?’라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보여주기 위한 첫번째 비유라면, 제16장의 일련의 음란한 부녀의 비유는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을 보여주기 위한 두 번째 비유이다. 이를 보면 먼저 가나안 땅에 버려진 신생아와 같았던 예루살렘을 구하시고 키워 단장하여 왕후로 삼으셨던 여호와의 은혜를 회상하고(1-14절) 이어 화려함과 명성에 취한 예루살렘의 이방 및 우상과의 가증한 음행 행각을 폭로하고 이들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을 천명한다(15-52절).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예루살렘을 심판한 후에 다시 회복시켜 새 언약을 체결할 것임을 약속하신 사실을 보도한다(53-63절).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16:60-63 ; 언약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이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 관계에서 발생된 법적 요구를 궁극적으로 실현하도록 해준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사랑의 성취는 신적 용서가 있은 후에라야 이루어질 수 있으며(63절), 이 용서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시켜 줌으로 그 정점을 이룬다.

비록 인간이 죄를 범하여 언약을 파기하였을지라도, 언약의 주체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언약 자체는 영원한 것이다. 따라서 유대 백성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언약은 종결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계속 지속되었던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 질문 1 ]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혜택은 어디까지 확장되는가?(53절)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 숭배와 부도덕에 빠진 예루살렘을 향해 준엄한 심판을 선언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그 백성을 온전히 회복시키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소돔 그리고 그 딸들까지도 회복시키실 것이다(55절).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로 말미암아 사로잡힘으로부터 회복된 예루살렘은 마땅히 자랑할 것이 없으며, 여타 다른 민족과 이웃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죄인 중에 괴수와 같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 질문 2 ]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신 가운데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60절)

회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진노 중에서도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시고, 백성이 파기해 버렸던 그 언약을 다시 새롭게 세우신다(60절). 이 언약은 새롭게 맺으시는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였던 그 영원하고도 무조건적인 언약을 재확인하시는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은 그 언약을 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파기되지 않는다. 그 약속은 우리의 믿음과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하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교만하여 목을 곧게 했던 모든 순간들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오직 우리 삶에서 살아계신 참 하나님 한 분 만을 인정해야 한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 모형도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53절 이하 63절은 1절 이후부터 계속되어온 타락한 선민의 징계와 회복의 전과정을 조망하는 일련 비유 기사의 후반부이다.

앞선 전반부에서는 먼저 버려진 신생아였던 예루살렘을 구하시고 키워 단장하신 후 왕후로 삼으셨던 여호와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1-14절), 중반부에서는 여호와의 은혜를 망각하고 이방 및 우상과 더불어 음행을 일삼는 예루살렘의 범죄를 고발하고 심판을 예언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였다(15-52절).

이제 후반부에서는 물론 예루살렘이 징벌을 받을 것이지만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에 의하여 회복된다는 예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53-5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와 소돔과 더불어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해 예언하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회복의 약속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하여 그 죄값을 철저히 치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약속이다(56-59절).

53. ○내가 그들의 사로잡힘 곧 소돔과 그의 딸들의 사로잡힘과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의 사로잡힘과 그들 중에 너의 사로잡힌 자의 사로잡힘을 풀어 주어

"내가 그들을 다시 잘 살게 해주겠다. 소돔과 그 딸들을 다시 잘 살게 해주고, 사마리아와 그 딸들을 다시 잘 살게 해주겠다. 또 내가 그들과 함께 너도 다시 잘 살게 해주겠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이해가 가지만(37:15-22), 소돔과 그 딸들의 회복에 대해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옛날 멸망해 버린 그 성읍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구약 성경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며, 그들은 사마리아나 예루살렘과 달리 여호와의 언약의 자손들로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제시되는 소돔과 그 딸들을 문자적으로 보지 않고 악으로 가득 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을 지칭하는 상징적 표현으로 본다면 이 예언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과거 언약 백성에 속하지 않던 모든 이방 민족들을 회복하시며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해도, 그들이 제아무리 커다란 죄악에 물들어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에도 당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본문의 예언을 본서 47장의 예언, 즉 예루살렘 제단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 계속 동쪽으로 흘러 사해를 다 덮어 그곳의 죽은 모든 생명들이 살아난다는 예언과 관련시켜 볼 때, 본문은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 땅에 과거 소돔이 있었던 영역까지도 포함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제47장의 그 예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성취에 더 큰 초점이 맞추어진 예언이기 때문에 그곳과 관련해서 볼 때에도 본문에서 언급되는 소돔은 죄악으로 죽어 있는 그리스도 밖의 모든 죄인들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로잡힘을 풀어주어' ; 히브리어로 '사로잡힘'과 '풀어줌'은 유사한 단어로, 53절에서만 유사한 발음이 무려 6번이나 반복된다. 극심한 진노 중에 회복케 하시는 은혜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문학적 표현방식이다.

54. 네가 네 수욕을 담당하고 네가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부끄럽게 하리니 이는 네가 그들에게 위로가 됨이라

그제야 너는 네 치욕을 감당하고, 네가 저지른 모든 죄를 부끄러운 줄 알게 될 것이다. 네 언니와 아우는 네가 당하는 수치를 보고, 자신들이 얼마나 유복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램을 회복시키신 후에 과거 자신들이 사마리아와 소돔의 죄악을 동정하면서 그들의 죄악됨을 정당화함으로 자신들의 죄까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가운데 저질러진 모든 행위들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으로 회개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55. 네 아우 소돔과 그의 딸들이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요 사마리아와 그의 딸들도 그의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며 너와 네 딸들도 너희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니라

네 아우 소돔과 그 딸들이 예전 상태로 회복되고, 네 언니 사마리아와 그 딸들이 예전 상태로 회복될 때에, 너와 네 딸들도 예전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포로 상태로부터 돌이키신(53절) 결과 예루살렘은 그 옛 지위를 회복하게 될 것인데, 이와 더불어 소돔과 사마리아도 동일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옛 지위를 회복한다는 예언은 단순히 땅을 되찾아 고토로 돌아온다는 의미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만약 소돔이 그런 의미로 그 옛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면, 그 성읍은 또다시 동성애가 들끓고, 억압 당하는 자들의 고통스런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는 성읍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절에 예언되고 있는 회복은 외면적 회복 뿐 아니라, 영적 · 도덕적 회복까지 포함하는 근본적 회복이 될 것이다.

이는 구속사적 맥락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을 기초로 하여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베풀어질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56. 네가 교만하던 때에 네 아우 소돔을 네 입으로 말하지도 아니하였나니

네가 교만하던 시절에는, 네가 네 아우 소돔의 추문을 들을 때에 그를 비웃었다.

57. 곧 네 악이 드러나기 전이며 아람의 딸들이 너를 능욕하기 전이며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블레셋의 딸들이 너를 멸시하기 전이니라

그러나 그것은 네 죄악이 드러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오히려 이제는 네가 그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사방에서 너를 멸시하는 사람들, 곧 에돔의 딸들과 그 모든 이웃이 너를 비웃고, 블레셋 딸들이 너를 조롱한다.

구속사적으로 아람의 딸들과 블레셋의 딸들은 불신 세상 사람들을 포함한 마귀의 세력들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죄악을 범해 비천한 상태에 떨어져 있을 때, 마귀는 불신 세상 사람들의 입을 이용하여 그들을 멸시하고 조롱함으로써 그들이 더욱 더 좌절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러한 이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거룩한 행실을 견지함으로써 기회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

58. 네 음란과 네 가증한 일을 네가 담당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가 음행을 저지르고, 또 그처럼 역겨운 일들을 저질렀으니, 그 벌을 면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라. 나 주의 말이다."

59. 나 주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는, 네가 한 맹세를 하찮게 여겨, 그 언약을 깼으니, 나도 네가 한 것과 똑같이 너에게 하겠다.

56-59절에서는 맹세를 멸시하고 언약을 배반한 예루살램을 징벌하며 그들로 하여금 수욕을 당하게 하실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어지는 60절 이하 63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과 영원한 언약을 세울 것을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은 과거 어렸을 때 여호와와 맺었던 언약을 잊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이를 철저히 배반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과 어렸을 때 맺으셨던 언약을 기억하고, 또한 당신의 은혜를 근거로 하여 그들과 전혀 새로운 영원한 언약을 맺어 그들을 새로운 백성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그러나 나는 네 젊은 시절에 내가 너와 맺은 언약을 기억해서,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겠다.

하나님의 언약 기억하심은 놀라운 구원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단어이다(창 8:1 ; 출 2:23-25 등).

'세우리라'라는 표현은 기존에 있었던 것을 다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어렸을 때에 맺으셨던 언약은 사실상 8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혼인 언약이며 이는 역사적 시각으로 볼 때 시내산 언약(출 19:5,6)이라 할 수 있다. 이 언약이 구속사적 발전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과 하나님께서 새롭게 맺으시는 언약으로 발전된다(벧전 2:9). 이처럼 여호와의 언약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하지만 그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37:26에 또다시 나타나는 "영원한 언약"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무덤에서 나오게 한 후 그들에게 새 영을 주어 살게 하신 다음 그들에게 다윗이라는 이름의 왕을 세워 그들의 목자가 되게 하고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게 할 것이며, 그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세우는 이 영원한 언약은 곧 ‘평화의 언약’으로 설명된다.

그 문맥에서 다윗은 두 말할 나위도 없이 다윗의 계보에서 태어나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어놓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가져오시고(롬 5:1,10), 그들과 자기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맺어(마 26:28) 영원히 그들을 통치하는 왕이 되실 것이다(빌 2:9-11).

예레미야 선지자 역시 이 영원한 언약에 대해 예언한 바 있는데, 그 언약은 여호와께서 과거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맺은 언약, 곧 돌판에 새겨져 언약궤 함에 넣어 두지 않고 그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언약으로 제시된다(렘 31:31-33 ; 33:38-40).

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비록 이것은 너와 나 사이에 세운 언약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너보다 더 큰 네 언니와 너보다 작은 네 아우를 모두 네 딸로 삼아 주면, 너는 네가 저지른 악한 행실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다.

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이렇게 내가 직접 너와 언약을 세우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렇게 하는 까닭은, 네가 저지른 모든 악한 일을 용서받은 다음에, 네가 지난 일들을 기억하고, 놀라고, 그리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도 열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앞서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표현된 선민과 새롭고도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심으로 그들이 당신 자신을 알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는 또 다른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당신 자신의 희생적 개입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체결하여 그들에게 영원한 복을 주실 때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여호와 앞에서 행했던 모든 가증한 죄악들(16장)을 낱낱이 기억해 내고 그것에 대해 치욕을 느끼며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고 느끼며 떠벌이던 과거의 그러한 행위를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죄를 용서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과거 인간의 죄악을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것처럼 다 잊어버리신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항상 자신의 연약한 과거를 되새김으로써 교만해지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된다(Taylor).

이로 볼 때, 여호와의 속죄하심은 단순히 과거의 죄를 정결케 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죄사함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진실로 겸손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할 수 있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참회하는 남은 자에 대한 자비로운 약속 ( 16:60-63 )

죄에 대해 가장 수치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자각과 가장 무서운 심판이 언급된 후에, 본장의 종결 부분에서는 후세대들을 위한 자비가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나온 자들에 대해 분노를 발하사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맹세하셨을 때, "그러나 너희 자녀들은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다. 어떤 이들은 소돔과 사마리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이 회복되리라는 말씀을 하나의 약속으로 생각하고 있다(53,55절). 그러한 생각은 한때 소돔에 거했던 롯의 후예인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을 소돔으로 이해한다면 가능하다(렘 48:47;49:6). 그러나 이 종결 부분의 말씀은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의 귀중한 약속이다. 비록 이 약속은 참회하고 개심한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옴으로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지만, 복음 시대에는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그 시대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온 열방에 이르기까지 죄를 회개하여 용서받으라고 전파될 것이다.

(1) 이 자비는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께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신 것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60절).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내가 그 언약을 다시 회복하리라. 비록 네가 언약을 배반하였을지라도(59절) 나는 그것을 기억하리니, 그것이 다시 살아나리라."

(2) 그들은 이 자비를 받기 위해 예비해야 하며, 합당하게 되어야 한다(61절).

"네가 네 행위 곧 악한 행위를 기억할지라. 내가 네 마음 속에 그 행위들을 생각나게 하고 네 앞에 나열할 것이니 네가 그것들로 부끄러워할 것이라."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자비를 남겨 두셨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을 맺으려 하신다(60절).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이 말씀은 62절에서도 다시 언급되어 있다.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내가 언약을 다시 세우되, 이전보다 더 확고히 세우리라."

2)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에 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끌어들이려 하신다(61절). "네가 네 자매들 곧 너의 사방에 둘러 있는 이방 민족들과 네 형과 아우 곧 고대와 현대의 민족들을 접대하리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저희가 시온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복음으로 양육되고 교육받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이웃들이 예루살렘을 '어미'라고 부르리라. 저희가 네 딸들이 되겠지만 네 언약으로 말미암거나 유대 종교로 개종할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신앙으로 귀의함으로 말미암으리라."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네가 그들을 네 멋대로 할 수 있는 피정복민들로 여겨서는 안될지니라. 그들은 내 언약 곧 너의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언약을 통해 네 딸들이 되리라. 내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성부가 되리니 저희가 서로 자매가 되리라."

(4) 이 일은 다음과 같은 결과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1) 하나님께서 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62절). 내가...너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니. "이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시며 자기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리라. 그 사실이 너에게 위로가 될 것임을 네가 알리라."

2) 이를 통해, 그들은 범죄한 사실에 대해서 더욱 겸손해질 것이다(63절). "이는 네가 행한 모든 범과들을 기억하여 더욱 놀라게 하여, 다시는 하나님께 반대하여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는 오로지 너로 하여금 부끄러움으로 인해 영원히 순종케 하려 함이니라."

출처 ; 메튜헨리 주석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에스겔 17:1-10)

 

[ 성경묵상 ]

17장 요약 ; 하나님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경고했지만(렘 27:1) 시드기야는 그 경고를 거슬러 멸망을 자초했다. 백향목 비유는 1차적으로 유다의 회복, 궁극적으로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관한 예언이다.

17:1-21 ; 본문은 하나님을 배반하면서도 자신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다 백성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의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애굽을 의지하였던 마지막 유다 왕 시드기야를 고발하고 있는데, 본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느부갓네살은 여고냐(여호야긴)를 사로잡아 간 후, 유다 왕으로 시드기야를 세워 조공을 바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를 뒤에서 조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애굽 왕과 조약을 맺어 느부갓네살에게 대항하려 하였다. 결국 시드기야는 립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가 고통스런 포로 생활을 하였다(왕하 25:1-7).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7:1-24은 두 독수리 및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유다 멸망 전후 사건과 회복 예언을 보도한다.

이를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1-21절에서는 두 독수리와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와 그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바벨론 왕에 의해 폐위되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제19대 왕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임명된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대적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 애굽을 의지하여 자신을 유다 왕으로 임명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나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될 때 애굽 왕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결국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체포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거기서 죽게 되며 유다 백성들은 살육과 흩어짐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22-24절에서는 앞서 언급한 백향목 비유와는 다른 백향목 비유를 통하여 선민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이 백향목 비유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 겨자씨 비유(마 13:31.32)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서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구약 선민의 회복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좌를 차지하시고 그 나라를 번성케 하시며 뭇 영혼으로 그 안에서 영적 평강을 누리게 하실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포도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9-10절)

[ 질문 2 ] 유다가 백향목과 같은 아름다움과 영화를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비유를 들어 말하여라.

수수께끼와 비유 ; 당시 역사적 상황을 암호 같은 상징으로 표현했다. 두 독수리는 각각 바벨론과 애굽을, 백향목 높은 가지는 여호야긴, 포도나무는 시드기야를 의미한다.

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레바논으로 갔다. 큰 날개, 긴 깃, 알록달록한 깃털을 가진 그 독수리는 백향목 끝에 돋은 순을 땄다.

레바논 지역의 백향목은 침엽수로서 재질이 단단하고 향이 있어서 고대로부터 최고의 건축 자재로 손꼽혔다. 솔로몬이 성전과 궁전 건축에 이 재목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고대 앗시리아의 왕들도 레바논의 백향목을 운반해 가서 성을 건축했다.

4.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독수리는 그 연한 햇순을 잘라서, 상인들의 땅으로 물고 가서, 상인들의 성읍에 놓아 두었다.

연한 가지 긑 ; 여호야긴 왕을 가리킨다.

5. 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그리고 그 땅에서 난 씨앗을 가져다가, 옥토에 심었다. 시냇가에다가 버드나무를 심듯, 물이 많은 시냇가에 그 씨앗을 심었다.

6. 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그 씨앗은 싹이 나고, 낮게 퍼지며 자라서, 무성한 포도나무가 되었다. 그 가지들은 독수리에게로 뻗어 올라갔고, 그 뿌리는 땅에 박고 있었다. 그 씨가 포도나무가 되어, 가지를 내뻗고, 덩굴손을 뻗쳤다.

7. ○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다른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날개가 크고 깃이 많은 독수리다. 그런데 보아라, 이 포도나무가 뿌리를 그 독수리에게로 뻗고, 가지도 그 독수리에게로 뻗는 것이 아닌가! 이 포도나무는 새로 나타난 그 독수리를 보고 옥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물을 대달라고 하였다.

8. 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

그 포도나무를 옥토, 곧 물이 많은 곳에 심은 것은, 가지를 뻗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도록 한 것인데, 이 모양이 되고 말았다.

9.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그 포도나무가 무성해질 수 있겠느냐? 그 뿌리가 뽑히지 않겠느냐? 그 열매가 떨어지거나, 그 새싹이 말라 죽지 않겠느냐? 그 뿌리를 뽑아 버리는 데는, 큰 힘이나 많은 군대를 동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0. 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

그러므로 그것을 심어 놓았지만 무성해질 수가 있겠느냐? 동쪽 열풍이 불어 오면 곧 마르지 않겠느냐? 자라던 그 밭에서 말라 버리지 않겠느냐?"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독수리와 포도나무(겔 17:1~10절)

오늘부터는 유다 멸망 직전의 국제 정세를 예언하는 말씀들입니다. 특히 시드기야의 친 바벨론 정책에서 반 바벨론으로의 선회, 그리고 친 애굽 정책을 펼침으로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게 되는 상황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17장은 1~10절에는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독수리로 비유된 강력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점령하고 그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이주 시킬 것을 예언함과(1~6절) 더불어 둘째 독수리로 비유된 애굽의 왕을 의지하는 유다가 오히려 이러한 일로 인하여 멸망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비유로써 예언하고 있습니다(7~10절). 이러한 예언은 불과 몇 년 후에 역사적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 되심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즉 B.C.59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 왕 여호야긴과 1만 명의 포로를 바벨론 포로로 잡아갔습니다(왕하 24:10~20). 우리는 이때 에스겔도 함께 잡혀갔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후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는 역설적이게도 느부갓네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굽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은 분노하여 유다를 침공하게 되고 결국 유다의 멸망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결정은 사람이 하지만 그 역사의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역사를 보여주는 말씀들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이 불과 몇 년 후에 그대로 임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도 분명한 음성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11~21절은 앞선 1~10절의 비유에 대한 해석입니다. 오늘 묵상 본문이 10절까지이지만 간략하게 정리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17장 전체에 대한 조망을 가지고 묵상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멸망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그들이 멸망하여 벗어날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그들이 인간적인 판단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바벨론을 의지했다면 멸망이란 최악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드기야의 잘못된 판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자신의 판단에 충실한 교만한 인간의 최후를 말씀하고 있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22~24절은 유다의 처참한 멸망을 예언하는 앞부분과는 완전히 분위기를 달리하여 장차 심판 후에 있을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꼭 내가 회복하시겠다고 다짐이라도 하시는 것처럼 매 심판의 메시지 다음에 회복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70년 생활을 마치고 귀환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의 근본적인 성취는 인간이 범죄함으로 죄악의 세력에 포로 된 자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스스로를 대속 제물로 삼아 인간의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심으로 영광스러운 메시아 왕국(The Kingdom of Messiah)이 도래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 예언서에 일관되게 보여지고 있는 궁극적인 메시아 왕국의 도래가 이 부분에서도 약속되어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다시 1~10절을 보겠습니다.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유다의 필연적 멸망 선포입니다. 16장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혼인 비유를 통해 과거 유다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속 은총(16:1~l4)을, 또한 행음으로 비유되는 유다 백성의 우상 숭배(16:15-34)를, 그리고 이러한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16:35~52)과 그런데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유다의 회복(16:53~63)을 선포했습니다. 17장에서는 두 마리의 독수리와 백향목, 포도나무의 두 나무 비유를 통해 당시 유다 왕국이 처해 있는 국제 정세를 밝히며 유다 왕국의 필연적인 멸망을 선포합니다.

1~10절에서 에스겔이 선포한 비유를 살펴보면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독수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B.C.605~562년)을, 또한 레바논은 유다의 예루살렘을, 백향목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장사하는 땅이란 바벨론을, 포도나무가 된 종자란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3~6절에 나오는 한 독수리 비유는 일차적으로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B.C.597년) 유다 왕 여호야긴이 바벨론 땅에 포로로 팔려가고 시드기야가 유다의 왕이 된 사건을 말합니다(왕하 24:15). 그리고 7절에 언급되는 또 다른 독수리는 유다 왕국 남방에 위치한 애굽 왕 바로 호브라(B.C.589~570년)를 가리킵니다. 그는 당시 유다 멸망 직전부터 유다 멸망 이후까지 애굽을 다스리던 왕으로서 한때 바벨론으로부터 유다를 구출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러한 다가올 역사를 반영하는 이 비유는 결국 유다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바벨론의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얘굽을 의지하게 되는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비유라고 하겠습니다(렘 44:30).

이처럼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임금의 통치 행위와 당시의 주변 정세를 집중적으로 말하면서 유다 왕국의 최후를 소상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예언대로 시드기야는 집권 초기 4년 동안 친 바벨론 정책을 추진했으나 이후 집권한지 11년 되던 마지막 순간까지 친 애굽 정책을 추진하며 애굽의 도움을 갈망하다 패망하게 되었습니다(왕하 25:1~7). 실제로 애굽은 유다 왕국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다가 바벨론에게 패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몇 년 후의 유다와 애굽, 바벨론 등 근동 3국의 긴박한 움직임과 국제 정세를 밝히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유다가 하나님께서 심판 도구로 들어 쓰시는 바벨론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생명을 건지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역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는 그런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친 애굽 정책을 열심히 수행하다가 바벨론 침공으로 자식들 다 죽이고 자신은 눈이 뽑혀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이 사실을 에스겔을 통해 미리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다시 오실 주님에 관한 예언의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아멘하는 것입니다.


낮추고 높이며, 말리고 무성하게 하는 여호와(에스겔 17:11-24)

 

[ 성경묵상 ]

17장 요약 ; 하나님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경고했지만(렘 27:1) 시드기야는 그 경고를 거슬러 멸망을 자초했다. 백향목 비유는 1차적으로 유다의 회복, 궁극적으로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관한 예언이다.

17:1-21 ; 본문은 하나님을 배반하면서도 자신들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다 백성의 어리석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의적인 방법을 사용하셔서 애굽을 의지하였던 마지막 유다 왕 시드기야를 고발하고 있는데, 본문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느부갓네살은 여고냐(여호야긴)를 사로잡아 간 후, 유다 왕으로 시드기야를 세워 조공을 바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를 뒤에서 조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애굽 왕과 조약을 맺어 느부갓네살에게 대항하려 하였다. 결국 시드기야는 립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가 고통스런 포로 생활을 하였다(왕하 25:1-7).

17:22-24 ; 본문은 앞에 나온 비유를 다시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실 메시아 왕국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의 높은 가지를 취하여 바벨론이 이식시켰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유다의 높은 가지를 취하여 당신의 산 시온, 곧 하나님의 왕국에 심으실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7:1-24은 두 독수리 및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유다 멸망 전후 사건과 회복 예언을 보도한다.

이를 좀더 상세히 살펴보면, 1-21절에서는 두 독수리와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와 그에 대한 해석을 통하여 바벨론 왕에 의해 폐위되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다 제19대 왕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임명된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대적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 애굽을 의지하여 자신을 유다 왕으로 임명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나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될 때 애굽 왕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결국 바벨론 군대에 의해 체포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거기서 죽게 되며 유다 백성들은 살육과 흩어짐을 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그리고 22-24절에서는 앞서 언급한 백향목 비유와는 다른 백향목 비유를 통하여 선민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다.

이 백향목 비유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 겨자씨 비유(마 13:31.32)를 연상케 하는 것으로서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구약 선민의 회복을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좌를 차지하시고 그 나라를 번성케 하시며 뭇 영혼으로 그 안에서 영적 평강을 누리게 하실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두 독수리는 어느 나라를 상징하는가?(12,15절)

비유에 언급된 첫 번째 큰 독수리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고, 레바논 백향목은 다윗 왕조, 꺾인 연한 가지는 유다 왕 여호야긴, 그 땅의 종자는 시드기야, 또 다른 큰 독수리는 애굽 왕을 뜻한다.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여호야긴을 붙잡아 바벨론으로 옮겼고, 기드기야를 새 왕으로 세웠다. 그가 바벨론 왕에게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었으나, 오히려 애굽을 더 의지하면서 바벨론을 배신하였다. 그 때문에 유다 왕국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결국 이 비유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유다 왕국의 멸망을 예고하는 비유인 셈이다.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애굽의 힘을 의지하려 했던 시드기야의 모든 계획은 꺾어질 것이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에 복종해야 한다. 그 하나님의 편에 있을 때에 참된 소망도 이루어질 것이다.

[ 질문 2 ] 포도나무로 시들어 버린 백향목을 다시 살리고 열매 맺게 할 이는 누구신가?(22,23절)

잃어버렸던 백향목의 영화는 유다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회복될 것이다. 심판의 도구였던 독수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바뀌어 있다(22절).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영원한 왕국에 대한 말씀을 잊지 않으시고 성취시키실 것이다(삼하 7:19). 그 왕국은 이제 땅의 모든 족속에게로 그 영광을 나눠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이 유다 왕국의 재건을 뜻하지 않는다. 이새의 뿌리에서 나올 새로운 가지가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사 11:1-10). 다윗의 자손이신 그는 우주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류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아 마실 수 있게 될 것이요(계 22:16-17). 온 세상은 그 분의 발 앞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히 2:8).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온전히 복종하며 겸손히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는 높은 자를 낮추시며, 낮은 자를높이시고,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12. 너는 반역하는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

"너는 저 반역하는 족속에게, 이 비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겠느냐고 물어 보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바빌로니아 왕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왕과 지도자들을 붙잡아 바빌로니아로 끌어 갔고,

13. 그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이 나라의 왕족 가운데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맹세를 시킨 다음에, 이 나라의 유능한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거늘

이것은 바빌로니아가 이 나라를 굴복시켜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만 명맥을 유지해 나가도록 하려 한 것이다.

15.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그런데도 그는 바빌로니아 왕에게 반역하여,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서, 자기에게 많은 군마와 군인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을 한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언약을 어긴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겠느냐?

16.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분명히 죽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워 주었는데, 그 왕에게 한 맹세를 무시하고, 그와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니, 왕의 땅인 바빌로니아에서 그와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다.

17.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바빌로니아 군대가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그의 성읍 옆에 흙 언덕을 쌓고 높은 사다리를 세울 때에는, 이집트의 바로가 강력한 군사력과 많은 군사로도 전쟁에서 그를 도울 수가 없을 것이다.

18.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그가 맹세를 무시하고 언약을 깨뜨렸다. 그가 언약을 어기고 이런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그는 나의 이름을 두고 한 맹세를 업신여겼으며, 나의 이름을 걸고 맺은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내가 벌을 주어서, 그 죄를 그의 머리로 돌리겠다.

20.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내가 그물을 쳐서 그를 망으로 옭아 바빌로니아로 끌고 가서, 거기에서 내가 나를 반역한 그의 반역을 심판하겠다.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의 모든 군대 가운데서 도망한 사람들은 모두 칼에 쓰러질 것이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모두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이렇게 말한 것이 나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본장의 결론부인 22-24절은 지금까지 주어진 비유의 연장으로서 여호와 주권에 의하여 선민 회복 예언 약속이 성취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내용은 앞서 제시된 어두운 분위기를 완전히 반전시키고도 남을 만큼 밝고 희망에 찬 예언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이는 앞의 예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먼미래에 있을 일을 말하는 예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앞선 1-10절 비유에서는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는다는 표현이 제시된 이후 그것을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었고 그것이 키가 낮은 포도나무처럼 되었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본단락에서는 백향목이 또 다시 언급되지만 수양버들 나무나 포도나무로 바뀌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혹자는 이 단락의 주제를 ‘메시야 안에서 이루어지는 축복의 약속’으로 정하고 이 모든 예언이 미래에 구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Feinberg).

그렇다면, 여기 언급된 백향목 꼭대기는 다윗 계열의 후손을 상징하고, 높은 가지 는 영원한 왕좌를 차지하실 메시야를 상징한다. 겸손의 모습으로 오신 메시야를 상징하는 연한 가지는 무성하게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 크고 아름다운 백향목으로 자랄 때 각종 새가 그 아래 깃들고 그 그늘에서 산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속주로 오셔서 모든 죄인들을 대신해 희생 죽음을 당하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축복을 누리도록 길을 여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믿음으로써 영적 혜택을 받을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는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자신의 비천한 출생과 죽음 및 영광스러운 부활의 생애를 통해 분명히 알리실 것이다. 이러한 예언으로 본장이 끝마쳐지는 것은 시드기야가 비록 애굽을 통해 복을 얻으려고 했지만, 진정한 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제시하시는 통로를 통해 온다는 사실을 교훈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2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백향목 끝에 돋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겠다. 내가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내가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

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내가 그 가지를 심어 놓으면,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이스라엘 높은 산'은 일차적으로는 성전이 있던 시온을 뜻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성소라는 개념이 더 강하다.

24.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그 때에야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주가,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고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그대로 이루겠다."

들의 모든 나무 ; 세상 나라의 왕들과 그 왕실들을 가리킨다.

메시야에 대한 약속 ( 17:22-24 )

인간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약속을 무효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성취할 또다른 '다윗의 씨'를 찾으실 것이다.

(1) 다윗의 집은 다시 칭송을 받을 것이다.

즉 재 가운데서 또다른 불사조가 일어날 것이다. 경고하는 데 사용된 나무의 비유가 여기서는 약속으로 나타나고 있다(22,23절). 이 약속은 다윗의 집안의 한 가지인 스룹바벨이 포로 상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머리가 되어 성읍과 성전을 재건하며 교회와 나라를 재건하게 되었을 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메시야의 왕국에서 완전히 성취될 것이었다(눅 1:32).

1)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의 집안을 회복시키는 일을 행하신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에게 의지하고 있는 다윗은 집안을 재건하려고 했었다(5절). 그러나 그가 심은 나무는 말라 버렸고 뽑혀졌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자, 다음에는 내가 심으리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2) 다윗의 집안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꺾은 한 연한 가지 가운데서 소생된다. 스룹바벨이 그러하였다. 그에게 기대할 만한 것은 단지 '작은 일의 날'(슥 4:10)이었으나 그 앞에서 큰 산들이 평지가 되었다. 우리 주 예수는 '백향목 꼭대기의 높은 가지'이다. 즉 뿌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며 하늘에 가장 가까우시다. 이는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새 가지 끝에서' 취한 바 되셨으며 '연한' 나무이시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사 53:2, 한글 개역에는 '줄기'로 되어 있음-역주)이자 여호와께서 심으신 의의 가지이시다.

3) 이 가지는 빼어난 산에(22절), 즉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23절) 심어진다. 그는 스룹바벨을 그곳으로 인도하여 개가를 부르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산 중에 흩어진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들을 모으게 하시며 그를 거룩한 산 시온에서 왕으로 세우시고 시온산에서부터 복음을, 즉 예루살렘에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전파하게 하셨다. 그때에 최초로 기독 교회가 선 것이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유대의 교회들이 있었다.

4) 거기서부터 그것은 멀리 또 널리 퍼지게 된다. 유대 나라는 스룹바벨의 시대에 매우 미미하게 시작하였다. 즉 쉽게 뽑힐 것 같은 연한 가지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뿌리를 박고 퍼져서 얼마 후에는 많은 나라들, 즉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게 되었다. 이방인들이 교회로 모이게 된 사실이 곧 '각양 새'가 와서 '그 가지 그늘 아래 거한다'로 표현된 것이다(참조. 단 4:21).

(2)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24절).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신 것과 사람들 가운데 그의 나라를 세우신 것은, 만물이 무한한 지혜와 전능한 섭리에 의해 다스려진다는 진리를 가장 확실히 설명해 준다. '들의 모든 나무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하나님께서 낮추고 말리시고자 하시는 나무는 그렇게 될 것이다.

2) 하나님께서 높이고 무성케 하시고자 하는 나무는, 그것이 현재 아무리 낮고 말라 있다 할지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처럼 거대하게 보이는 느부갓네살의 집은 멸절되고, 지금은 그처럼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다윗의 집은 다시 흥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대 민족은 지금은 연약하게 보이나 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사단의 나라는 오랫 동안 세상을 지배하나 결국 무너질 것이며 그리스도의 나라는 업신여김을 받으나 다시 서게 될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에페소

독수리 비유 ( 17장 )

겔15-18장은 세 개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 범죄로 인한 멸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비유란 포도나무 비유, 결혼 비유, 독수리 비유입니다. 본장은 그 세 가지 비유 가운데 마지막 세번째 비유인 독수리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을 순종치 않은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과 그 뒤에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두 독수리와 포도나무

1) 처음 큰 독수리와 포도나무

에스겔은 겔17:3-6에서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취하여 장사하는 땅으로 가져 가고 그 땅의 종자를 옥토에 심음으로 그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그 큰 독수리에게 향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이 예언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공격하여 점령한 뒤 여호야긴을 포로로 끌고 갈 것(참조, 왕하24:8-16)과 그 뒤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유다가 풍요와 안정을 누리면서 바벨론을 섬길 것을 의미합니다.

a.시드기야의 등극(왕하24:17)

b.여호야긴이 사로잡힘(대하36:10)

2) 두번째 큰 독수리와 포도나무의 배반

처음 큰 독수리 이외에 또 다른 큰 독수리가 예언에서 언급되는데 처음 큰 독수리를 향하던 포도나무가 나중 큰 독수리에게 뿌리를 향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을 섬기던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섬길 것을 에언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는 그를 왕으로 세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애굽 왕 바로와 화친하였습니다 (참조, 왕하24:20).

a.시드기야의 배반(왕하24:20)

b.애굽의 원군(렘37:5)

3) 배반한 포도나무의 쇠망

처음의 큰 독수리를 배반하고 나중의 큰 독수리에게 돌아서는 포도나무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배반한 그 포도나무가 배반으로 인해 시들어 버리고 급기야 뽑히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애굽과 화친한 유다의 국력이 쇠할 뿐 아니라 급기야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유다 나라다 지구상에서 사라져 없어질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시드기야를 끝으로 유다는 멸망하였습니다.

a.양식이 진함(왕하25:3)

b.백성의 죽음(대하36:17)

2. 언약의 중요성

1) 유다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 바벨론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가운데 유다가 애굽을 의뢰하면 쇠퇴하고 바벨론을 의뢰하면 홍왕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을 의뢰하면 살고 애굽을 의뢰하면 죽는 이유는 패악한 애굽보다 의로운 바벨론을 하나님께서 악을 징벌하시고 유다를 구할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겔29:18-20).

a.하나님의 종 느부갓네살(렘27:6)

b.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느부갓네살(겔29:20)

2) 바벨른과의 언약 파기는 하나님과의 언약 파기

바벨론은 하나님의 도구였으므로 유다가 바벨론과 맺은 언약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드기야가 유다의 왕으로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를 섬길 것을 약속하고도 그 약속을 어긴 것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어긴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시드기야와 유다 백성이 그들의 바벨론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애굽으로 돌이킨 것은 중대한 죄악이었습니다.

a.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약속(대하36:13)

b.백성의 언약 멸시(대하36:16)

3) 배반의 종말은 멸망

바벨론과의 약속 파기 이전에도 유다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것은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의 파기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끝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편 이처럼 인간과 인간이 맺은 언약도 하나님과 직접 맺은 언약만큼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속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a.백성의 멸절(대하36:17)

b.나라를 잃음(대하36:20)

3. 약속된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

1) 백향목 높은 가지를 얻음

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이 있은 뒤 하나님은 다시 유다의 회복을 예언하십니다. 그 예언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끊어진 높은 가지(참조, 겔19:14)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통치를 할 다윗의 후손이 일어나(참조, 겔34:23)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 그것입니다.

a.다윗의 후손(마1:1)

b.만왕의 왕(계19:16)

2) 이스라엘 높은 산에 이름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의 높은 산은 시온 산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 산은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성전이 세워질 하나님의 성산을 지칭합니다(참조, 계14:1). 따라서 포로 됨에서 회복될 것이라는 이 에언의 말씀은 메시야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세워지는 날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할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유다와 및 모든 성도는 그 나라 백성이 될 것입니다.

a.다윗의 성 시온(왕상8:1)

b.왕을 시온에 세움(시2:6)

3)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음

앞에서 유다라는 포도나무는 가지가 마르고 뽑힐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그런데 회복의 날 그 가지가 다시 무성하여 열매를 맺고 각양 새가 그 아래 거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민족들에 의해 채워지며(참조, 계7:9) 그들이 참된 풍요와 평강을 누리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고(참조, 스1:1-11;눅17:21) 또 성취될 것입니다(참조, 계21:1-5).

a.끊치지 않은 실과(겔47:12)

b.풍성한 열매(계22:1-2)

결론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자기 백성일지라도 그들이 범죄하면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징계 뒤에 살길을 허락하십니다. 살길은 통상 신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제시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밀을 깨달지 못할 때 더 큰 진노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밀을 깨달아 하나님이 우리 죄인에게 주시는 생명의 길이 현실적으로 무엇인지 깨달아 그 길을 걸어 생명에 이르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