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니 아들의 이가 시다(에스겔 18:1-18)
[ 성경묵상 ]
18장 요약 ; 본장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부당한 것이라고 불평한 자들의 잘못을 논박한 내용이다. 이에 하나님은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릴 수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저들의 무지와 완악함을 경책하셨다.
18:1-20 ; 구약에서는 죄에 대한 연대적인 책임도 강조하고 있지만(수 7:1-26), 개인적인 책임에 더욱 강조점을 두고 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자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을 조상들의 죄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해하였다. 에스겔은 이런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각자의 죄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원칙은 성경 전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야기된 좋지 못한 환경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불평할 수 있을지 몰라도, 비난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마찬가지로 포로로 잡혀 온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는 모두 망각하고 조상들이 지은 죄만을 탓하면서, 자신들은 무고한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에스겔은 백성들 각자의 책임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백성들은 조상들의 잘못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된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충성심과 부부 사이의 신실함,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 대한 자비, 공정한 재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8:1-20은 아비와 아들 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의 반복 강조를 통하여 심판의 개별성(個別性)을 천명한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아비와 아들의 책임 연계를 말하는 속담이 회자되고 있었다. 곧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것이었다(2절 ; 렘 31:29, 30). 이는 조상들의 죄의 책임을 당시 유다 백성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의 속담이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그 조상들의 죄에 있다고 전가함으로 자신들의 무죄함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먼저 그러한 속담의 진실성을 부정하시고 영혼의 독립성에 근거하여 심판의 개별성을 천명하신다(1-4절).
또한 부자 관계에서의 의인과 악인의 여러 사례를 들어 심판의 개별성 원칙을 명확하게 설명하신다(5-18절).
그리고 각자의 행위 에 따른 심판 구분의 사례의 최종 요약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심판의 개별성을 천명하신다(19,20절).
다음 18:21-32은 일시적 선악을 불문한 궁극적 선악에 따른 심판의 반복 강조와 회개 촉구를 보도한다.
즉 과거에 의인이었든지 악인이었든지 상관없이 심판 날을 기준으로 한 행위에 따른 심판의 원칙과 그러한 심판 원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그에 근거하여 선민 만인을 향하여 회개와 영적 갱신을 촉구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밝히심으로써(23절) 선민들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간절한 소망과 당신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함으로 파멸로 달음질하고 있는 패역한 선민을 향한 당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하시고 있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포로로 잡혀간 백성이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어디서 찾았는가?(2절)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고달픈 처지를 생각하며 그 원인을 찾고 있다. 당시 잘 알려져 있던 속담을 통해 자신들의 마음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리다"라는 속담이다.
자신들은 심판 받을 만큼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조상들의 잘못으로 인해 가혹한 고난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조상들의 잘못이라고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공의롭지 못하게 심판을 행하신다는 하나님을 향한 불평이 그들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인생은 어떤 문제에 대해 항상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함으로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러한 타락한 본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인정하고 겸손히 회개해야 한다.
[ 질문 2 ]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시는 기본 원리는 무엇인가?(9,13,18절)
속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선지자는 세 사람의 예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된 생각을 더 분명하게 폭로하고 있다.
의로운 아버지가 있어 하나님 앞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진실하게 행하였는데, 그 아들이 아버지의 선을 본받지 않고 모든 죄악을 행하고 다녔을 경우, 그 아들은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벌을 받는다.
아버지의 죄악을 본받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는 복을 받는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이에게서 핑계거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과 영성에 대해 스스로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제8처소 프로필 꿈꾸는자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7장에서는 두 독수리 및 백향목과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유다 멸망 전후에 있을 일련의 사건들과 그 이후에 주어질 회복을 예언하였다. 여기에서는 국제적 시각에서 유다 멸망이 필연적임과 더불어 여호와 주권에 의해 회복될 것임을 내용으로 하였다.
이어지는 본장에서는 또다시 유다에 대한 심판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 심판이 당시 유다 백성들이 생각한 것과 달리 각 개인의 행위에 따른 공정하고 정당한 것이 될 것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여호와께서 죄악과 의에 대해 다루시는 원리를 상세하고도 논리정연하게 진술해 놓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모두 서른두 구절로 구성된 본장은 죄악에 대한 개인적 책임성을 반복하여 진술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소중한 진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아버지의 의로운 행위가 자녀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악한 행위가 자녀에게 전가 되지 않는다는 진리이다(13,17절). 아버지가 의로운 인물일지라도 자녀가 악을 행하면 그 자녀는 자신의 악으로 인해 심판을 당한다. 반면 아버지가 악한 인물일지라도 자녀가 그 악한 본을 따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면 그 자녀는 자신의 의로운 행실로 인해 심판을 모면한다.
둘째, 과거에 의를 행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의로운 길에서 떠나 악을 행하는 사람으로 변할 경우 여호와께서는 과거의 의를 보지 않고 새로운 악을 보시고 그 사람올 심판하신다는 진리이다(26절). 또한 과거에 악을 행했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의로운 일을 할 경우,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를 보지 않고 현재의 의로운 모습을 보시면서 그 사람을 심판하지 않고 살리신다(27절). 여호와께서는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람의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30절). 그러므로 이스라옐 자손은 여호와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비난해서도 안 되고(25절),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아들의 이도 시다고 하는 속담을 더 이상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2절). 본장에서 이러한 진리를 역셜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족속이 자신들이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의 악한 행위 때문에 억울하게 고난을 당한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었을 수는 있지만, 새롭게 회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막는 잘못된 것이다. 즉 그들의 속담은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죄악을 내어놓는 회개를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악한 길을 떠나 의로운 길로 들어서는 것이 무의미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이러한 교훈을 따라 자신들의 삶을 보다 냉정하게 살펴 본 이후에 다시는 그러한 속담과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3절).
셋째, 여호와께서는 결코 죄인이 그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진리이다(23절). 여호와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심판 자체를 즐겨하는 가혹한 신이라는 오해하는 잘못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즐기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이 그 죄로부터 돌이켜 의인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넷째,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본장을 통해 가장 강조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족속이 각 개인의 죄악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여 심판을 당하지 않고 생명을 얻으라는 것이다(32절). 여호와께서 만약 악한 그들을 무조건 심판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면, 선지자를 통해 그들에게 회개하여 의로운 길 가운데 행하라고 적극적으로 호소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심판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들의 죄악의 목록을 나열하고 그들이 마땅히 형벌 당할 자들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으로 그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목소리는 돌이켜 회개하고 살라는 호소에서 가장 커진다(30,32절).
한편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죄악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시는 것은 신 24:16에서 밝힌 여호와의 심판의 원리와 같으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서도 이 원리를 따라 아비를 죽이는 와중에 자녀를 죽이지 않았던 사례도 있다(왕하 14:6). 그런데 이러한 개인의 행위에 따른 개별적 심판의 원리는 출 20:5 ; 34:7에 나타난 아비의 죄악을 자녀손 삼사 대까지 갚으신다는 여호와의 선언과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죄의 징벌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죄의 악한 영향력에 대한 교훈임을 알 수 있다. 즉 이는 현상적 측면에서 자녀들이 부모들의 죄악의 모습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반성하지 않아 동일한 죄악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한 것이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본문 1절은 1절 이하에 나오는 교훈들이 비록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의 생각과 다르며 설혹 의심과 의혹이 생길지라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여호와의 말씀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주어진 말씀이다. 즉 이는 본장 내용이 신적 권위를 지니는 여호와의 말씀임을 사전에 밝히는 선언이다.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땅에서 아직도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다 하는 속담을 입에 담고 있느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나 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너희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속담을 입에 담지 못할 것이다.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모든 영혼은 나의 것이다. 아버지의 영혼이나 아들의 영혼이 똑같이 나의 것이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 것이다.
영혼 ; 살아 있는 사람의 전체적 인격성, 생명.
5.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어떤 사람이 의로워서 법과 의를 실천한다고 하자.
6.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그가 산 위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않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들에게 눈을 팔지 않으며, 이웃의 아내를 범하지 않으며, 월경을 하고 있는 아내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사람을 학대하지 않으며, 빚진 사람의 전당물을 돌려 주며, 아무것도 강제로 빼앗지 않으며,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주며,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며,
8.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돈놀이를 하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않으며, 흉악한 일에서 손을 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공정한 판결을 내리며,
9.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모든 율례대로 살아 가며, 나의 모든 규례를 지켜서 진실하게 행동하면, 그는 의로운 사람이니, 반드시 살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0.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하지 아니하고 이 죄악 중 하나를 범하여 강포하거나 살인하거나
그런데 그가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 하자. 그 아들이 이 모든 선은 하나도 행하지 않고, 이들 악 가운데서 하나를 범하여 폭력을 휘두르거나,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게 하거나,
11. 산 위에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거나
아버지와는 반대로 산 위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거나, 이웃의 아내를 범하거나,
12.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거나 강탈하거나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학대하거나, 강제로 빼앗거나, 전당물을 돌려 주지 않거나, 온갖 우상들에게 눈을 팔거나, 역겨운 일을 하거나,
13.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돈놀이를 하거나, 이자를 받거나 하면, 그가 살 수 있겠느냐? 그는 절대로 살지 못할 것이니, 이 모든 역겨운 일을 하였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다.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 고대인들은 말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자기보다 높은 존재를 들어 맹세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높으신 존재가 없기에 당신의 이름으로 맹세하심으로 말씀의 엄숙함을 강조한다. 구약에서 18번 사용되었는데 에스겔에서만 16번 나온다.
14. ○또 가령 그가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아들이 그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런데 이 의롭지 못한 그가 아들을 하나 낳았다고 하자. 그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지은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서, 그대로 따라 하지 않고,
15.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도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도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도 아니하며
산 위에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도 않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들에게 눈을 팔지도 않으며, 이웃의 아내를 범하지도 않으며,
16. 사람을 학대하지도 아니하며 저당을 잡지도 아니하며 강탈하지도 아니하고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아무도 학대하지도 않으며, 전당물을 잡아 두지도 않으며, 강제로 빼앗지도 않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거리를 주며, 벗은 사람에게 옷을 입혀 주며,
17.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리나 이자를 받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진대 이 사람은 그의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살겠고
흉악한 일에서 손을 떼고,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않으며, 돈놀이를 하지 않으며, 이자를 받지 않으며, 나의 규례를 실천하고, 나의 율례대로 살아가면,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의 죄악 때문에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18. 그의 아버지는 심히 포학하여 그 동족을 강탈하고 백성들 중에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는 그의 죄악으로 죽으리라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는 심히 난폭하여 동족을 학대하고, 친척의 것을 강제로 빼앗고, 자기 민족 가운데서 좋지 않은 일을 하였으므로, 그는 자신의 죄악 때문에 죽을 것이다.
포학이란 단어는 원래 권리와 권위를 남용하여 계급이 낮은 사람들을 짓밟고 학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강탈'과 함께 하나님꼐서 엄중히 금하신 죄이다(레 19:13에는 '억압'과 '착취'로 번역되었다. ; 참조, 신 24:14).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신 포도의 속담 ( 18:1-9 )
때때로 악한 속담이 선한 예언을 낳는다.
(1) 이 악한 속담은 포로로 사로잡혀 있던 유대인들 사이에 주로 쓰였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황무해진 현재 '이스라엘 땅'에 대해 이 속담을 사용하는구나."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리다고 함은 어찜이뇨(2절). "우리가 조상들의 죄 때문에 벌을 받는다면 그것은 마치 아비가 신 포도를 먹은 것으로 인해 아들의 이가 시린 것만큼이나 불합리하나이다. 만일 사람이 어떤 것을 잘못 먹거나 잘못 마신다면 단지 그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하지 않겠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종종 아비의 죄를 아들에게 돌리실 것을 말씀하셨었다. 특별히 우상 숭배의 죄가 그러했는데 이는 그렇게 함으로 그 죄의 악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현재와 같은 파멸이 있게 된 것은 므낫세와 그 이전의 다른 여러 왕들의 죄를 주목하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셨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것을 하나님을 비난하는 자료로 삼았다.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는 자들은 신 포도를 먹은 것이다. 그것은 죄인들의 이를 시게 한다. 즉 양심이 깨어나면 그것은 입맛을 형편없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이들이 아비의 어리석음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자기들이 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항의하였다.
(2) 이 속담에 대하여 정당한 답변이 주어진다.
"네 아비가 너보다 앞서 먹었던 그 신 포도를 너도 먹었음을 네 자신의 양심이 너에게 증거하리라. 그렇지 않다면 네 이가 시지 않았으리라." 만일 그들이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고 죄악의 양을 채우지 않는다면(마 23:32)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죄 때문에 아들을 벌하시지 않을 것이다. 아들이 아비의 악행 때문에 재난을 당하는 것은 단지 현세에서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당하는 자들에게 그 환난이 선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아들은 결코 아비의 죄 때문에 영적이며 영원한 고통(본문에는 죽음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절대적인 주권을 주장하신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4절). 만물을 조성하신 하나님은 특별한 의미에서 영혼의 아버지이시다. 이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는 그의 세상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처음 창조하실 때도 형상을 찍으셨으며 그들이 거듭날 때도 그러하셨다. 그는 사람의 속에 영혼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비와 아들 모두에게 호의를 품고 계시며 아무에게도 고통을 주시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모든 영혼에 자비를 베푸사 아무도 자신의 태만에 의하지 않고는 죽지 않도록 해주셨다. 죄는 곧 영혼의 행위이므로 죄에 대한 형벌은 '영의 환난과 곤고'이다(롬 2:9). 사람이 만일 의로와서 법과 의를 따라...행할진대 그는...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5,9절).
1) 의인은 제 2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는 '산에서 제물을 먹는'것조차 하지 않았다. 즉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음으로 우상 숭배자들과 교제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전 10:20).
2) 의인은 제 7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그는 항상 육체의 욕망을 이성과 덕성으로 극복할 것이다.
3) 의인은 제 8계명을 범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자신을 주의깊게 지킨다. 그는 거짓으로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억탈하지 아니한다'(7절). 의인은 이웃의 궁핍을 자기가 이익을 얻을 기회로 삼지 않으며 오히려 기꺼이 이웃들의 이익 뿐 아니라 손해에도 동참할 것이다. 이것이 이웃에 대하여 의인이 취할 태도이다. 그리고 이같은 성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님께도 마찬가지로 행하여야 한다(9절). 이러한 자가 의인이며 그는 정녕 살 것이다.
악인의 재앙과 선인의 형통함 ( 18:10-20 )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사람의 혈통이 상황을 변경시키지 못한다고 하는 심판의 일반적인 법칙을 보여주고 계시다.
(1) 경건한 부모가 악한 자녀를 갖는 경우와 악한 부모가 경건한 자녀를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1) 악한 사람은 경건한 아비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그의 선한 아비가 두려워하였던 온갖 죄에 빠진 것으로 가정되어 있다. 이러한 사람은 그가 비록 선한 아비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멸망하게 될 것이다.
2) 의인은 악한 아비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비록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다 할지라도 자식이 그 포도와 관계하지 않는다면 그는 아비 때문에 결코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를 받지 못한 아비만이 그의 죄로 인해 죽을 것이며 은혜를 받은 아들은 결코 그 아비로 인한 화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2) 선지자는 그들에게 "너희는 하나님께 큰 과오를 범한 것이 아니냐"고 힐문한다.
"이처럼 진상이 명백하도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천만에, 그렇지 않도다. 만일 누구든지 '법과 의를 행한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19절). 그러나 이 백성이 이 아비의 죄 가운데로 나아가 법과 의를 행치 않았으므로 마땅히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한 고통을 받은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조상들이 자기들에게 남겨준 악한 것들에 대해서는 불평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심판에 대해서는 결코 부당한 것으로 불평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우리의 열조는 범죄하고 없어졌고 우리는 그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애 5:7). 악한 가문에 저주가 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면 임하였던 저주가 그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이 멸망 가운데 처하게 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따라서 심판의 확실한 법칙이 반복된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20절). 죽음 이외의 다른 결론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재판관들에게 내리셨던 지시대로(신 24:16) 친히 행하실 것이다. 아들이 만일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면 아비의 죄로 인해서 죽지 않으리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비 역시 자기의 의무를 행하려 힘쓰며 죄를 방지한다면 아들의 죄로 인해서 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구름이 덮여 어두운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의의 심판이 드러나는 날에 '의인의 의'는 온 세상 앞에서 '자기에게로 돌아 갈' 것이다. 즉 영원한 위로와 영광으로 옷입고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되,' 사슬처럼, 짐처럼, 그리고 끝없는 웅덩이로 침전하는 납으로 만든 산처럼, 영원한 혼돈 가운데로 돌아갈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에스겔 18:19-32)
[ 성경묵상 ]
18:1-20은 아비와 아들 각자의 행위에 따른 심판의 반복 강조를 통하여 심판의 개별성(個別性)을 천명한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아비와 아들의 책임 연계를 말하는 속담이 회자되고 있었다. 곧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것이었다(2절 ; 렘 31:29, 30). 이는 조상들의 죄의 책임을 당시 유다 백성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의 속담이었다. 즉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이 그 조상들의 죄에 있다고 전가함으로 자신들의 무죄함을 주장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먼저 그러한 속담의 진실성을 부정하시고 영혼의 독립성에 근거하여 심판의 개별성을 천명하신다(1-4절). 또한 부자 관계에서의 의인과 악인의 여러 사례를 들어 심판의 개별성 원칙을 명확하게 설명하신다(5-18절). 그리고 각자의 행위 에 따른 심판 구분의 사례의 최종 요약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심판의 개별성을 천명하신다(19,20절).
다음 18:21-32은 일시적 선악을 불문한 궁극적 선악에 따른 심판의 반복 강조와 회개 촉구를 보도한다. 즉 과거에 의인이었든지 악인이었든지 상관없이 심판 날을 기준으로 한 행위에 따른 심판의 원칙과 그러한 심판 원칙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그에 근거하여 선민 만인을 향하여 회개와 영적 갱신을 촉구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밝히심으로써(23절) 선민들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당신의 간절한 소망과 당신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죄에서 돌이키지 아니함으로 파멸로 달음질하고 있는 패역한 선민을 향한 당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하시고 있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18장 요약 ; 본장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부당한 것이라고 불평한 자들의 잘못을 논박한 내용이다. 이에 하나님은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릴 수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저들의 무지와 완악함을 경책하셨다.
18:1-20 ; 구약에서는 죄에 대한 연대적인 책임도 강조하고 있지만(수 7:1-26), 개인적인 책임에 더욱 강조점을 두고 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자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통을 조상들의 죄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해하였다. 에스겔은 이런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각자의 죄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저여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원칙은 성경 전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야기된 좋지 못한 환경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불평할 수 있을지 몰라도, 비난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마찬가지로 포로로 잡혀 온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는 모두 망각하고 조상들이 지은 죄만을 탓하면서, 자신들은 무고한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에스겔은 백성들 각자의 책임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백성들은 조상들의 잘못에 초점을 두어서는 안된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충성심과 부부 사이의 신실함,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 대한 자비, 공정한 재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18:21-32 ;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두 가지의 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살기를 원하시며, 죄 때문에 죽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회개는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새 마음과 새 심령을 얻는 길은 각자가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일이다. 구원의 교리는, 인간이 현재의 회개를 통하여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 질문 1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항론했던 두 가지 주제는 무엇인가?(19,25절)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기한 두 가지 주장(19,25절)을 반박하며 백성이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다시 살아나도록 촉구하고 있다.
첫 번째 주장은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않겠느냐?'라는 것이고(19절), 두 번째 주장은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 것이다(25절).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않듯, 아버지도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과 경고로 다가온다. 현재는 과거에 매여 있지 않으며, 현재가 미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죄인이 현재에 다시 살기 위해서는 그 삶에서 돌이켜 회개해야 한다. 반대로 과거의 의인도 자칫 그 길에서 돌이켜 악인의 길로 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죄인에게는 회개를 통한 소망을, 의인에게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도록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다.
[ 질문 2 ]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으신가?(25-29절)
이스라엘의 두 번째 변론은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으시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말이 곧 하나님께서 변덕스러운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이에 선지자는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신데, 백성이 오히려 변덕스럽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맺으신 언약에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이에게 생명을, 언약을 파기하고 떠나가 이에게 심판을 행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변덕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신 일관된 하나님, 즉 공평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 질문 3 ] 참된 회개란 무엇인가?(21,30-31절)
선지자의 결론적 부르짖음은 이스라엘이 신실하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회개하고 다시 살라는 데 있다.
회개는
첫째,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31절).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내 삶의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둘째, 참된 회개는 돌이킴 즉 이전의 모든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경은 회개를 마음의 애통으로만 간주한 적은 없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이전에 즐기던 죄를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삶으로의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그런데 너희는, 왜 그 아들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 아들은 법과 의를 실천하며,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그것들을 실천하였으므로, 그는 반드시 살 것이다.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죄를 지은 영혼, 바로 그 사람이 죽을 것이며, 아들은 아버지의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을 것이며, 아버지가 아들의 죄에 대한 벌도 받지 않을 것이다. 의인의 의도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신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에서 떠나 돌이켜서, 나의 율례를 다 지키고 법과 의를 실천하면, 그는 반드시 살고, 죽지 않을 것이다.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그가 지은 모든 죄악을, 내가 다시는 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지킨 의 때문에 살 것이다.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악인이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오히려 악인이 자신의 모든 길에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내가 참으로 기뻐하지 않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러나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범하고, 악인이 저지르는 모든 역겨운 일을 똑같이 하면, 그가 살 수가 있겠느냐? 그가 지킨 모든 의는 전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성실과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을 것이다.
25.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는 잘 들어라.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공평은 무게를 달다, 측량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일관성을 더 강조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26. 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27.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대로 살며, 의를 행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28.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가 스스로 깨닫고, 자신이 지은 모든 죄에서 떠나 돌이켰으니, 그는 반드시 살 것이요, 죽지 않을 것이다.
29.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아니하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하지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아니한 것 아니냐
그런데도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일하는 방법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구나.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일하는 방법이 어찌 공평하지 않으냐? 너희가 하는 행실이 오히려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3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아, 나는 너희 각 사람이 한 일에 따라서 너희를 심판하겠다. 너희는 회개하고,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 돌이켜라. 그렇게 하면, 죄가 장애물이 되어 너희를 넘어뜨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돌이켜 회개하고'에서 같은 의미의 두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 회개를 강력하게 요청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돌이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31.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 사실상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11:19).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 곧 진정한 회개인 것이다.
3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회개할 것을 권고함 ( 18:21-29 )
여기에 하나님의 통치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심판의 법칙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일어나는 변화에 따라서 상급을 주시기도 하고 형벌을 주시기도 하는 것을 보여주신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는 항상 시험을 받는다. 그 시험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1) 심판의 법칙은 여기서도 이전에 기록되었던 것 만큼이나 확실히 설명되어 있다.
이 내용이 전에 이어서(참조. 겔 3:18이하) 여기서도 두 번에 걸쳐(21-24절, 26-28절) 재차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생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1) 악한 사람들에게 악에서 돌이키라고 하는 분명한 권고가 주어졌다.
21절, 27절에는 만일 악인이 돌이키면 정녕 살 것이라는 보증이 주어져 있다. 회개의 첫단계는 '헤아리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28절). 이러한 헤아림은 반드시 죄에 대한 혐오를 낳는다. 그렇다면 그는 들릴라나 림몬의 당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모든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과 그에 대한 의무로 돌이켜야 한다. 이와 같이 죄에서부터 하나님께 돌이킨 자들은 '그 영혼을 보전할 것이다'(27절). 회개하고 돌이킨 죄인들은 장래의 순종이 결코 과거의 불순종을 보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자비를 베풀고 용서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며 그의 기뻐하시는 뜻인 것이다(23절).
2) 의로운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로움에서 떠나지 말라고 하는 분명한 경고가 주어졌다(24-26절).
(2)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이스라엘 족속의 타락한 양심에 호소하신다.
그들이 하나님께 던진 비난은 참람한 것이었다(25,29절). 하나님께서 그들과 가지신 쟁론은 매우 은혜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참람한 자들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정죄하시기 보다 오히려 깨닫게 하고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회개할 것을 촉구함 ( 18:30-32 )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를 보라. 은혜의 날과 하나님의 인내의 날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께서는 결국 '각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은혜를 베풀기 위하여 기다리시고 회개를 촉구하시며 회개할 경우 용서하시리라는 약속을 해주신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죄인에 대한 개별적 심판 ( 18장 )
유다 백성들은 그들이 열조의 죄악을 따라 열조들과 동일하게, 아니 그보다 더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습니다(참조, 겔2:3-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은 죄가 없는데 조상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불공평한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본장에서 그 생각의 부당성을 설명하십니다.
1. 인간들의 편견과 오만
1) 죄는 전가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다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가 부당하게 그들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부당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는 그 죄가 삼사 대까지 이른다는 말씀(참조, 출20:5)에 근거한 것 같습니다. 한편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같이 다른 사람의 죄와 의는 전가되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과 관련된 자는 그 죄값을 물려받고 의로운 사람과 관련된 사람은 그 의의 덕택을 본다고 믿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a.아내의 악을 자손에게 보응하심(신34:7)
b.열조의 죄로 쇠잔함(레26:39)
2) 나는 무죄하다
다른 사람의 죄가 전가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죄값을 넘겨받음으로 심판의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의 배후에는 인간이 버릴 수 없는 깊은 병, 곧 교만의 병이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은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는 이런 본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a.죄책의 전가(창3:12)
b.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요일1:8)
3) 나의 고난은 억울하다
자신은 무죄한데 다른 사람의 죄값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자신이 받는 고통은 부당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유다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했거니와 그와 같은 선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동일하게 자신들이 받는 고통은 부당하다고 내심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무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의 고통을 달게 받지 않고 불평합니다.
a.스스로 의롭게 여김(욥40:8)
b.죽기를 간구한 요나(욘4:3)
2. 하나님의 답변
1) 죄는 개인적이다
유다 백성들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여 죄는 전가된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비는 그 자식을 위해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며 자식들은 그 아비로 인하여 죽지 않고 오직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음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신24:16). 아비의 죄로 인해 삼사 대가 벌을 받는다는 출20:5의 말씀은 본래 아비의 죄에서 그 자녀들이 떠나지 않으면 그 자식들도 같은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a.각 사람은 자기 죄로 심판을 받음(신24:16)
b.아들의 이는 결코 시리지 않음(렘31:29)
2)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범죄한 자만 심판하신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인하여서가 아니라 오직 그 사람의 죄를 인하여 그만을 심판하십니다. 이 심판의 법칙은 도중에 변경된 것이 아니며 변경될 것도 아닙니다. 이 법은 영원한 것입니다. 각인은 오직 그가 지은 죄값을 따라 심판받습니다(참조, 계20:11-15).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a.행한 대로 보응을 받음(사3:11)
b.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받음(계20:12)
3) 범죄한 자라도 돌이켜 의를 행하면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각인을 개별적으로 심판하신다고 해서 범죄한 모든 사람이 반드시 심판받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한지라 범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을 아시사 용서의 기회를 주십니다. 용서의 기회란 회개할 때 허용됩니다. 죄인인 그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 다시 의를 행할 때 용서가 주어진다는 의미입니다.
a.놀라운 용서(사1:18)
b.본래 범한 죄가 기억되지 않음(겔33:16)
3. 신약적 접근
1)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유다 백성들만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나님께 범죄한 죄인들입니다(참조, 롬3:10-18).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 죄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는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부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죄 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심화되어 하나님은 없다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죄를 덮어 버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죄가 없어지고 그렇게 되면 자기가 자기의 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선을 행하는 자가 없음(시14:3)
b.의인은 없음(롬3:10)
2) 모든 인간은 심판 아래 있다
인간이 아무리 자기 죄를 부정해도 인간의 죄는 실제적인 것이요 시체이기 때문에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없어지지 않는 죄는 범죄한 인간에게 죄값을 물립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참조, 롬6:23). 사망은 육체의 사망에서 멈추지 않고 영혼마저 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의 장소로 가는 둘째 사망까지를 포함합니다(참조, 계20:11-15).
a.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
b.반드시 있는 심판(히9:27)
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구원하신다
앞에서 하나님은 범죄한 자가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심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 그것이 실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정적인 용서였지 죄의 본질에 대한 용서는 아니었습니다. 죄 본질의 용서, 곧 속죄는 인간의 회개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속죄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본질의 해결이 가능합니다(참조, 히9:1-26).
a.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에 이름(요3:16)
b.다른 이름이 없음(히9:27)
결론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모든 인간은 저주 아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신 저주를 받아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과 구원 사역을 믿고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의롭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각 사람이 행한 대로(에스겔 18:19~32절)
오늘 묵상은 21~24절에서 돌이키는 사람에 관한 말씀이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19~20절은 원리의 확인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죄를 담당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아버지가 아무리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범죄하는 그 영혼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만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까?
악인이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향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회개하면 사는 것입니다. 돌이키면 악인이라고 해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오히려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훨씬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패역한 유다에 관한 아버지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남은 자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에스겔을 통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전하시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회개한다면 그 사람은 남은 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혈통도 아닙니다.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말씀을 듣고 회개한 사람만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면 그가 행한 공의는 하나도 기억함이 없을 것이며 그가 행한 범죄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개인의 회개와 믿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버지의 죄 때문에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한다고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기막힌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만익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는 것이 공평이라는 것입니다. 핵심은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기 때문에 반드시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뭐라고 합니까? 주의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 길이 공평하지 않다고 책망하시면서 말씀합니다. “내가 각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돌이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것은 아버지의 죄악 때문이라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악을 인정하고 돌이켜 회개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31~32절입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아멘. 아멘.
하나님은 죽을 자, 즉 악인이 죽는 것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이 철저하게 개인의 회개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타락한 이래도 탓하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안 되면 모두 조상 탓을 하는 것입니다. 이 탓하는 인간들에게 아버지의 죄가 너희가 심판당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너희는 너희 죄 때문에 심판당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철저하게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얼마나 잘 믿었고 과거에 얼마나 선행을 했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선행이나 죄악을 묻는 분이 아닙니다. 과거에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회개하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생활의 주관성과 현재성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내야 할 내 인생입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원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삶은 늘 현재형이어야 합니다. 과거에 얼마나 잘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지금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돌이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에스겔 19:1-14)
[ 성경묵상 ]
19장 요약 ; 17장의 비유에 이은 사자와 포도나무 비유이다. 사자 비유는 유다의 두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의 비극적 종말을, 포도나무 비유는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의 멸망을 경고한 것이다.
19:1-9 ; 에스겔 선지자는 사자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죄악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19:10-14 ; 에스겔은 물가의 무성하였던 포도나무가 부러지고 시들어졌다는 비유를 통해, 백성들이 지금 그토록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체험하고 있는데도 과거의 번창했던 때와 똑같이 방종하면서 악행을 예사로 자행하고 있는, 그들의 양심을 날카롭게 찔러 마침내 그들의 처지를 알도록 촉구하고 있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9:1-14은 유다 말기 세 왕의 몰락을 나타내는 한 어미 암사자에게서 난 젊은 두 사자의 비유와 한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를 보도한다. 여기서 선지자는 먼저 한 어미 암사자에게서 난 두 사자의 비유를 애가 형식으로 언급하여 유다 말기의 두 왕의 몰락을 나타내고 있다(1-9절) . 여기서 한 어미 암사자는 유다 왕국 혹은 유다 제16대 왕인 요시야 왕을 가리키며, 두 젊은 사자 중 전자는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서 B.C. 609년 애굽 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끌려간 유다 제17대 왕인 여호아하스를, 후자는 요시야의 둘째 아들로서 여호아하스를 이어 유다 제18대 왕으로 즉위한 여호야김의 아들로서 B.C. 59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폐위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제19대 왕인 여호야긴을 각각 가리킨다.
이어 선지자는 한 포도 나무 가지 비유를 애가 형식으로 언급하여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몰락을 예언하고 있다 (10-14절). 이 포도나무 비유는 17:3-10의 포도나무 비유와 아주 유사한데, 포도나무는 남유다 왕국을, 무성한 가지들은 남유다의 열왕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가지들 중 하나로서 높고 뛰어나 보인 가지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여호야긴을 대신하여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으로 인하여 바벨론 왕을 배신함으로써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포로로 잡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게 될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가리킨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하나 ] 젊은 사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3,6-7절)
[ 질문 둘 ] 하나님의 약속은 그 후손들에게 무조건적인 축복을 보장하는 것인가?(10-12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NIV
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Take up a lament concerning the princes of Israel
고관들은 일반적으로 높은 사람을 뜻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왕족들이라고 볼 수 있다. 선지자가 "고관들"이라고 표현함으로 왕들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애가란 특별히 장송곡을 지칭하는 말(기나)이다. 한 개인의 죽음이나 민족의 멸망에 직면했을 때 주로 부르는 노래로 보통 3:2 운율로 이루어져 의도적으로 균형을 맞추지 않아서 슬픔을 한층 강화한다.
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and say: "`What a lioness was your mother among the lions! She lay down among the young lions and reared her cubs.
암사자 ;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She brought up one of her cubs, and he became a strong lion. He learned to tear the prey and he devoured men.
새끼 하나 ;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 왕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The nations heard about him, and he was trapped in their pit. They led him with hooks to the land of Egypt.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When she saw her hope unfulfilled, her expectation gone, she took another of her cubs and made him a strong lion.
19:5-9 ; 여호야김 왕의 아들 여호야긴 왕에 대한 언급이다.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He prowled among the lions, for he was now a strong lion. He learned to tear the prey and he devoured men.
7.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He broke down their strongholds and devastated their towns. The land and all who were in it were terrified by his roaring.
8.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Then the nations came against him, those from regions round about. They spread their net for him, and he was trapped in their pit.
9.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With hooks they pulled him into a cage and brought him to the king of Babylon. They put him in prison, so his roar was heard no longer on the mountains of Israel.
10. ○네 피의 어머니는 물 가에 심겨진 포도나무 같아서 물이 많으므로 열매가 많고 가지가 무성하며
"`Your mother was like a vine in your vineyard planted by the water; it was fruitful and full of branches because of abundant water.
11.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Its branches were strong, fit for a rulers scepter. It towered high above the thick foliage, conspicuous for its height and for its many branches.
12. 분노 중에 뽑혀서 땅에 던짐을 당하매 그 열매는 동풍에 마르고 그 강한 가지들은 꺾이고 말라 불에 탔더니
But it was uprooted in fury and thrown to the ground. The east wind made it shrivel, it was stripped of its fruit; its strong branches withered and fire consumed them.
13. 이제는 광야, 메마르고 가물이 든 땅에 심어진 바 되고
Now it is planted in the desert, in a dry and thirsty land.
14.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
Fire spread from one of its main branches and consumed its fruit. No strong branch is left on it fit for a rulers scepter. This is a lament and is to be used as a lament."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유다 왕국의 몰락에 대한 비유〔1〕 ( 19:1-9 )
(1) 왕가의 몰락에 대해 애통해 하라는 명령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어졌다.
여기서 유다 왕들이 '이스라엘 방백들'로 불리고 있다. 이는 그들의 영광이 감해졌기 때문이다.
(2)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 왕국을 '암사자'에 비유해야 했다(2절).
왕가는 왕국의 어미와 같다. 곧 사납고 잔인하며 굶주린 '암사자'와 같다. 그가...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즉 젊은 방백들에게 폭군의 도를 가르쳤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약속을 좇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자의 능력과 위엄을 보존시켜 주셨을 것이다. 그것은 '유다 지파의 사자 새끼'인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사자 새끼들은 잔인했으며 가혹하였다. 이 새끼들 중 하나인 여호아하스는 '젊은 사자가 되었다'(3절). 즉 그는 왕이 되었으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왕이 된 것으로 착각하였다. 그의 폭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4절). 여호야김은 그의 형제의 운명을 보고서 경계하기는 커녕 똑같은 전철을 밟았다. 젊은 사자가 되며 여러 사람 가운데 왕래하며(6절). 그리고는 그는 곧 '식물 움키기를 배워 사람을 삼켰다.' 즉 그는 신하들의 재산을 강탈했으며 자기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그는 사람들이 쌓아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낼 줄 아는 기술이 있었다. 그는 압제함으로써 '그의 궁실들을 헐고 성읍들을 훼파하였다'(7절).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신의 파멸을 재촉할 뿐이었다(8절).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을 대적하여 아람인, 모압인, 암몬인, 갈대아인의 군대를 보내셨다(왕하 24:2). 그리하여 그는 저들의 '함정'에 잡혔다. 느부갓네살이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다(대하 36:6). 그의 폭정은 끝났다. 즉 그는 나귀같이 매장되었던 것이다(렘 22:19).
유다 왕국의 몰락에 대한 비유〔2〕 ( 19:10-14 )
유다의 모체가 되는 성읍인 예루살렘이 본문에서 다른 비유로 나타나고 있다. 즉 예루살렘은 포도나무로 그리고 방백들은 가지로 나타나 있다. 우리는 앞에서도 이러한 비유를 보았었다(15장). 예루살렘은 '포도나무'와 같다. 유대 민족도 마찬가지다. 네 피의 어미는...포도나무 같아서(10절). 크게 사악한 곳이라도 잠시 동안 번영하는 수가 있다. 그리고 피에 감긴 포도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가지는 수가 있다. 예루살렘은 '견강한 가지', 즉 유능한 치리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견강한 가지'란 매우 단단한 가지를 말하는 것이나 포도나무를 지탱해 주는 막대를 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치리자들의 역할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지들은 '권세 잡은 자의 홀'로 사용하는 흰지팡이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게 자랐다(11절). 유다 왕실 가족의 수효가 중다하고 재판정이 양심적이고 청렴한 사람들로 가득찼을 때에는 예루살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서 가장 높았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멍에 아래서 잠잠히 있었을 때 유다 왕국은 이와 같이 번성하였었다. 그러나 지금 이 포도나무는 파멸되었다. 시드기야의 배반에 진노한 느부갓네살이 '분노 중에' 예루살렘을 '뽑아버렸다'(12절). 즉 그 성읍을 파멸시키고 모든 왕가의 가지들을 잘라버렸다. 포도나무는 이제 광야에 심긴 바되었다(13절). 바벨론은, 그곳으로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있어서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유다 땅 역시 예루살렘에게는 광야와 같은 곳이었다. 저 견강한 가지들은 압제의 도구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왕과 함께 멸망하였다. 폭정은 무정부 상태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통치의 막대기가 압제의 독사로 변할 때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통치의 홀이 될 만한 견강한 가지를 없애리라. 그리고 인간으로 하여금 큰 것이 작은 것을 삼키는 바다의 고기들처럼 만들리라."
출처 ; 메튜헨리 주석
방백들을 위한 애가 ( 19장 )
다윗 왕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큰 번영과 영광을 누렸습니다. 다윗의 바른 통치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다윗의 길에서 떠나 악을 행함으로 그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본장은 그러한 악한 왕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는 동시에 왕위에서 뽑혀 다시는 그 위에 앉지 못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사자 비유
1) 암사자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의 왕을 젊은 사자에 비유하고 그 젊은 사자인 유다 왕의 조상들과 그 조국을 암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백수의 왕입니다. 따라서 유다의 열조 왕들과 그 후예들을 사자에 비유하는 것은 적절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유다의 열조 왕들과 그 후예들을 사사에 비유한 것은 또한 유다 자체가 선택받음으로 열국 중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였다는 것을 아울러 나타내 줍니다. 한편 유다의 열조 왕과 유다 나라가 암사자로 비유된 것은 그들이 유다의 후예들을 배출하였기 때문입니다.
a.강한 사자(삼하1:23)
b.사자의 얼굴(겔1:10)
2) 그 새끼 하나
여기서 말하는 새끼 하나는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지칭합니다 그는 유다의 왕이 되었으나 왕위에 오르자마자 동족을 살해하고 강포와 약탈을 일삼았습니다(참조, 왕하23:2). 이에 그는 징벌을 받아 애굽 왕에 의해 즉위 3개월 만에 폐위당한 채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참조, 왕하23:33-34;대하36:4).
a.강포한 유다 목자들(겔34:4)
b.젊은 사자(암3:4)
3) 또 다른 새끼 하나
본문이 언급하는 내용으로 볼 때 여기서 언급되는 또 다른 새끼 하나는 여호아하스 다음 왕인 여호야김을 가리킵니다. 물론 그 다음 다음 왕인 여호야긴도 본문의 정책과 일치하기 때문에 여호야김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 역시 선왕들처럼 강포를 행하다 느부갓네살 제일차 침공 때 패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참조, 대하36:6-7).
a.여호야김의 악행(렘22:16-17)
b.여호야김에게 내린 저주(렘36:30)
2. 포도나무 비유
1) 네 피의 어미
여기서 '네 피의 어미'란 '네 혈통의 어미'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것은 유다 왕들을 배출한 유다 열조 왕들과 유다 나라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렇게 보면 이 표현은 앞에 '암사자'와 같은 의미의 말입니다. 한편 본문의 묘사대로 유다는 한때 주변 모든 나라보다 부강하였었습니다. 그 나라의 부는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풍성하였고 그 힘은 주위 나라가 두려워할 정도로 강했습니다.
a.솔로몬 시대의 부(왕상10:21-22)
b.열방이 다윗에게 복종함(대상22:18)
2) 뛰어난 한 가지
이 상징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를 지칭합니다. 시드기야는 즉위 초기에 바벨론에 의지함으로 나라가 부강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왕들보다 뛰어난 왕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가지 않아 바벨론을 배반했습니다(참조, 왕하24:20). 그리하여 그가 다스리는 유다 나라는 다시 쇠약해져 버렸고 그는 그가 배반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 왕위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두 눈이 뽑힌 채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참조, 왕하25:7).
a.시드기야의 배반(왕하24:20)
b.시드기야 때의 번영(겔17:6)
3) 홀이 될 만한 가지가 없도다
이 예언의 말씀은 시드기야 이후로 더 이상 유다 나라에 왕이 없을 것을 의미합니다. 시드기야에게 배반당한 경험이 있는 느부갓네살은 더 이상 유다 사람을 왕위에 앉히지 않고 유다를 속국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언의 말씀대로 시드기야 이후로는 다시는 다윗의 후손이 왕위에 앉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a.그달리야의 대리 관할(왕하25:22)
b.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노예가 됨(대하36:20)
3. 애가가 주는 교훈
1) 약한 방백은 반드시 심판을 받음
본문의 애가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백성을 바로 인도하고 백성을 평안케 한 왕은 영광을 그 만대에 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가운데 백성을 악으로 인도하고 강포를 행하여 나라를 멸망으로 가게 하고 백성을 피폐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 위에서 쫓김을 당하며 욕된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본문의 애가는 악한 방백은 반드시 그 죄행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a.시드기야의 고통(왕하25:7)
b.악한 목자를 대적하심(겔34:10)
2) 악한 방백은 그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림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악한 지도자는 악을 행함으로 자신만 심판에 이를 뿐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백성들도 피폐하게 만들며 그 나라를 쇠악과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지도자는 한 나라의 머리이기 때문에 그가 악의 길을 걸으면 그 몸 된 백성들도 악한 길을 걷게 되기 때문입니다.
a.들짐승의 밥이 된 백성들(겔34:5)
b.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할 상전들(골4:1)
3) 적용
한 나라나 사외 또는 단체의 지도자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지도자 된 자는 자신의 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그 밑의 사람들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하나님의 은혜와 뜻이 있어 머리 된 자들은 이 사실을 기억하여 바른길을 걸어야 할 것입니다.
a.하나님의 백성을 먹이는 목자(겔34:23)
b.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요10:11)
결론
유다의 왕들 중 대부분은, 특히 후기 왕들은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함으로 심판을 받아 개인적으로 파멸에 이르고 나라는 멸망케 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메카니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자 되었을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도자의 길을 걸아야할 것입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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