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스겔 21:1-17)
[ 성경묵상 ]
21장 요약 ; 본장은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 왕의 비참한 최후를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선포하고 있다. 본문 후반부에는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할 때에 암몬도 아울러 멸망 당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21:1-7 ;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사실을 큰 자랑거리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소를 더럽혔으며 선지자들의 예언을 멸시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대적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21:8-23 ; 칼은 21장 전체의 주제가 된다. 그런데 이 칼은 심판이라기보다는 심판의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 죽이는 자 곧 바벨론 왕은 유다뿐만 아니라 암몬도 공격할 것이다. 먼저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며,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암몬도 역시 함락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원수들까지도 이스라엘의 멸망이 여호와께서 무능하셔서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의 크신 권능으로 인하여 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암몬에 대한 심판은 이방에 대한 심판 메시지의 서론에 해당한다(25-32장). 이방에 대한 심판의 예언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 세상과 우주의 통치자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명백하게 가르쳐 준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21:1-32은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을 보도한다. 여기서 ‘칼’은 타락한 유다를 심판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바벨론을 가리키는데 선지자는 이 칼과 관련하여 세 측면을 부각시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는 칼이 칼집에서 빼어짐을 부각시키고 있다(3-7절). 이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마침내 개시될 것임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음으로는 칼의 날카로움과 빛남을 부각시키고 있다(8-17절). 이는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과 가혹함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끝으로는 칼의 침략 경로를 부각시키고 있다(18-27절). 이는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유다가 치욕을 당하며 몰락하게 될 것임이 강조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선지자는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에 대한 부기로서 바벨론의 칼에 의한 암몬의 멸절 예언을 함께 주고 있다(28-32절). 이는 18-27절의 칼의 침략 경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이처럼 암몬 심판 예언을 언급하는 것은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킨 후에는 곧바로 암몬을 공격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암몬이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회개하기보다는 멸망하는 유다를 조롱하고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몬 심판 예언은 유다에 적대적이었던 열방에 대한 예언을 보도하는 제25-32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에서 첫 주자로 다시 한 번 언급된다(25:1-7).
본문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선전포고이다. 적이 아닌 자신의 백성을 향해 엄청난 선지자의 통곡 소리와 하나님의 손뼉 소리와 함께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 질문 1 ] 하나님께서 심판 앞에서 선지자에게 시키신 행동은 무엇인가?(6-7,12절)
적을 향해 할 선전포고를 자기 백성을 향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 있는 예루살렘과 성소, 그리고 이스라엘 전체를 향하고 있다(2절). 하나님의 성이 공격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집이 철거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땅, 평화의 장소가 전쟁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선지자에게 울라고 명하신다. 답답하여 울고, 관심을 끌기 위하여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혹여 "도대체 왜 울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전쟁이 곧 임할 것이라 말하기 위해서라도 울라고 하신다(7절).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선전포고를 전해야 할 선지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의 마음은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고,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졌다고 한다. 울지 말라 해도 이제 선지자는 절박하게 울어야 한다. 통곡 소리가 하늘에 닿도록 쉬지 않고 울어야 한다. 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
[ 질문 2 ] 하나님께서 심판 앞에서 선지자에게 시키신 또 다른 행동은 무엇인가?(14절)
통곡소리와 함께 엄청난 손뼉 소리가 들린다(14절). 박장대소하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배신감에 치를 떨며 내는 소리, 분노와 저주의 손뼉 소리이다. 칼이 여기저기를 베고 찔러 피가 튀는 처절한 장면을 보며 내는 슬픔의 소리, 탄식의 소리이다. "이를 어찌할꼬"하며 안타까움에 내는 선지자의 손뼉 소리이다.
우리는 손뼉 소리를 듣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소리와 함께 죽음이, 멸망이, 모든 것의 끝이 오게 될 것이다.
선지자의 손뼉 소리, 하나님께서 치시는 분노의 손뼉 소리가 가까이 왔는데도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사람아,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 쪽으로 돌리고, 그 곳의 성전을 규탄하여 외치고, 이스라엘 땅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너는 이스라엘 땅에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를 대적한다. 칼집에서 칼을 뽑아, 너희 가운데 있는 의인과 악인을 다 쳐죽이겠다.
의인과 악인이란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20:47)"라는 표현과 같이 '모든 사람들'을 표현하는 관용어이다.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내가 너희 가운데서 의인과 악인을 다 쳐죽일 것이므로, 칼을 칼집에서 빼어서, 무릇 육체를 가진 모든 사람을 남쪽에서 북쪽에까지 칠 것이니,
5.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그 때에야 비로소, 육체를 지닌 모든 사람이 내가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든 줄을 알 것이다. 그 칼은 절대로 칼집에 다시 꽂히지 않을 것이다.
6.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너 사람아, 탄식하여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면서, 슬피 탄식하여라.
7.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탄식하느냐고 물으면, 너는 그들에게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다. 사람마다 간담이 녹으며, 두 손에 맥이 빠지며, 모두들 넋을 잃으며, 모든 무릎이 떨 것이다. 재앙이 닥쳐 오고 있다. 반드시 이룰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하고 말하여라."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9. 인자야 너는 예언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이같이 말하라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빛나도다
"사람아, 예언을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칼이다! 칼에 날을 세웠다. 칼이 번쩍거린다.
10.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사정없이 죽이려고 칼에 날을 세웠으며, 번개처럼 휘두르려고 칼에 광을 냈다. 내 백성이 모든 경고와 심판을 무시하였으니,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 아들의 규(10절)'와 '업신여기는 규(13절)'는 만국 위에 뛰어나도록 세워진 다윗 왕가를 말한다. 여기서는 심판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내 아들의 규'란 유다의 왕권을 가리킨다. 유다 지파로부터 오실 그리스도의 왕권을 예표하기도 한다.
11. 그 칼을 손에 잡아 쓸 만하도록 빛나게 하되 죽이는 자의 손에 넘기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빛나게 하였도다 하셨다 하라
그 사람의 손에 쥐어 주려고 칼에 광을 내었다. 살육자의 손에 넘겨 주려고 그렇게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광을 냈다.
12.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지어다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고관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넘긴 바 되었으니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지어다
사람아, 너는 부르짖으며 통곡하여라. 그 칼이 내 백성을 치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를 칠 것이다. 지도자들과 나의 백성이 함께 칼에 찔려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여라.
13.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규가 없어지면 어찌할까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내 백성을 시험하겠다. 내 백성이 회개하기를 거절하면, 이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4.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두세 번 거듭 쓰이게 하라 이 칼은 죽이는 칼이라 사람들을 둘러싸고 죽이는 큰 칼이로다
너 사람아, 예언을 전하여라. 손뼉을 쳐라. 그 칼이 두세 번 휘둘릴 것이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요, 큰 무리를 학살하는 칼이다. 사람들 주위를 빙빙 도는 칼이다.
여호와께서는 또다시 에스겔에게 상징적 행위를 하라고 명하신다. 이 가운데서 손빽을 치라는 명령은 17절에 다시 반복된다. 이 상징적 행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즉 이 행위는 칼의 노래에 수반되는 열정의 표현, 칼춤과 관련된 몸짓, 승리의 몸짓, 칼의 효력을 강화하기 위한 마술적 동작, 경멸에 찬 비웃음의 표현, 칼을 휘두를 때 나는 소리를 상징하는 것 등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 행위는 에스겔 선지자가 발하는 분노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좋다(Block). 이는 이어지는 17절에 그 행위가 분노를 다 풀 것이라는 선언과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입증된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포로 공동체가 보는 앞에서 손빽을 침으로써 이스라엘 땅에 대한 여호와의 분노가 너무나도 커 하늘을 찌를 듯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나타내야 했던 것이다.
칼을 두세 번 겹쳐 지게 하라는 표현은 에스겔이 그 손으로 칼을 잡고 두세 번 반복하여 힘차게 휘두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Feinberg, Block). 즉 휘두르는 행위를 빨리 할 경우 보는 사람에 따라 하나의 칼이 두세 개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칼을 세차게 휘두르는 목적은 사람을 베기 위함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심판의 칼이 될 느부갓네살 왕이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 사람들을 무참히 살육할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각인시키기 위해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칼을 힘차게 휘두르는 상징적 행위를 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15. 내가 그들이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았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죽이기 위하여 날카로웠도다
사람들의 간담이 녹고, 많은 사람이 쓰러져 죽을 것이다. 내가 성문마다 살육하는 칼을 세워 놓았다. 번개처럼 번쩍이는 칼, 사람을 죽이려고 날카롭게 간 칼이다.
16.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칼아, 날을 세워 오른쪽을 치며 방향을 잡아 왼쪽을 쳐라. 어느 쪽이든지 너의 날로 쳐라.
17.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나도 손뼉을 치겠다. 나의 분노도 풀릴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앞에 나온 예언의 설명 ( 21:1-7 )
에스겔 선지자는 신실하게 자신이 받은 대로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이 그 비유의 예언으로 인하여 불평하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그에게 임하여 그 비유적인 말씀을 깨닫게 해 주었다.
(1) 선지자는 여기서 이 예언의 화살을 겨누었던 자들을 치도록 지시받고 있다.
그는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야' 했다(2절). 즉 거룩한 땅 가나안, 거룩한 성읍 예루살렘, 거룩한 처소인 선전을 향하여 소리내어야 했다.
(2) 남방의 삼림을 태우는 불은 땅을 황무케 하는 전쟁의 칼을 뜻한다(3절).
불이 '모든 푸른 나무와 마른 나무'를 삼켰다면 같은 방식으로 칼이 '의인과 악인'을 끊을 것이다. 의인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감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끊겼다. 초기에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그리고 에스겔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그 땅에서 끊겼으며 바벨론으로 잡혀갔다. 그렇다고 의인이 악인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는 악인과 의인에게 있어서 크게 다르다. '좋은 무화과'는 더 좋게 되기 위하여 바벨론에 보내졌던 것이다(렘24:5,6).
(3) 에스겔 선지자는 다가오는 이들 재앙에 대해 슬퍼하고 근심하도록 명령받았다.
이는 백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탄식하되 마치 그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즉 '슬피 탄식해야' 했다.
칼에 의해 황폐케 될 것이 예언됨 ( 21:8-17 )
여기에 칼에 대한 또다른 예언이 나타나 있다. 칼이 뽑힌 것이 이미 앞에서 나왔었다. 본문에서는 벨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나타나 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것을 슬퍼하라고 명령받은 것이다.
(1) 칼이 '날카롭게' 갈아졌다.
또한 그것은 '마광되었다.' 즉 그 칼에 의해 베임을 당할 자들에게 두려움을 주고자 번득였다. 이 칼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며' 또 압도할 만한 철로 만들어졌다. 혹은 이 칼은 '내 아들의 홀', 즉 징계하는 막대기로, 하나님의 백성의 허물을 징치하는 것이지(삼하 7:14) 그들로 백성이 되지 못하도록 끊어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칼이지만 아들에게는 막대기다.
(2) 여기서 그 칼은 살육하는 자의 손에 주어졌다.
즉 그것은 검술가의 손이 아닌 살육하는 자의 손에 주어졌다.
(3) 그 칼이 향할 대상은 누구인가.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12절). 즉 그들은 이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다. 이방인의 칼이 하나님의 백성 위에 임할 것이다. 그러나 그 칼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모든 두려움을 충분히 막아줄 만한 평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행하는 한 그러한 평안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칼로 인한 두려움이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이 칼은 특별히 '대인'을 향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가장 큰 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칼은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베풀어졌다'(15절). 즉 이 칼끝이,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을 향하고 있다. 이 칼은 급한 사명을 띠고 보냄을 받았다(16절).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좌향하라. 즉 "칼아 네가 어디를 향하든 너는 악한 자들을 볼 것이니 이는 죄없는 자가 없음이라."
(4) 이 칼의 특성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 칼의 한계가 주어진다(13절).
즉 그것은 바르게 하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칼이나 그들에게는 막대이다. 이것은 이 두려운 말 가운데 들어 있는 일종의 위로이다. 그 칼이 본래의 목적을 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 두려움은 잠잠케 된다. 이것이 시험이라. 이것은 단지 시험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심판이 온 세상에 임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위로가 된다. 이는 그것이 그들에게는 연단이 됨으로써 그들은 금과 같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시험은 곧 믿음의 진보가 될 것이다.
(5) 여기서 이러한 심판을 경고받음으로써 에스겔 선지자와 백성들은 찔림을 받았음을 나타내야 했다.
선지자는 굳이 세련된 표현을 생각해낼 필요가 없었다. 칼이여 칼이여(9절).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14절). 즉 "그 황폐를 애곡하듯 네 손을 쥐어 틀라." 칼로 세 번 거듭 씌우게 하라.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암몬이냐 예루살렘이냐(에스겔 21:18-32)
[ 성경묵상 ]
21장 요약 ; 본장은 유다의 멸망과 시드기야 왕의 비판한 최후를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선포하고 있다. 본문 후반부에는 바벨론이 유다를 침략할 때에 암몬도 아울러 멸망 당할 것이 예언되어 있다.
21:1-7 ;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다는 사실을 큰 자랑거리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소를 더럽혔으며 선지자들의 예언을 멸시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대적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확실하기 때문에, 이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21:8-23 ; 칼은 21장 전체의 주제가 된다. 그런데 이 칼은 심판이라기보다는 심판의 도구로서 사용되고 있다. 죽이는 자 곧 바벨론 왕은 유다뿐만 아니라 암몬도 공격할 것이다. 머너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며, 다음에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암몬도 역시 함락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원수들까지도 이스라엘의 멸망이 여호와께서 무능하셔서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호와의 크신 권능으로 인하여 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암몬에 대한 심판은 이방에 대한 심판 메시지의 서론에 해당한다(25-32장). 이방에 대한 심판의 예언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 세상과 우주의 통치자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명백하게 가르쳐 준다.
21:24-27 ; 메시야가 올 때까지 유다의 왕권이 끊겨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렇게 하여 다윗의 세속 왕권은 바벨론 포로 이후 지상에서 영원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21:28-32 ;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 이스라엘의 원수인 암몬은 흔적도 없이, 그리고 회복에 대한 소망도 전혀 없이 철저하게 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유다에게는 회복의 소망이 있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21:1-32은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을 보도한다. 여기서 ‘칼’은 타락한 유다를 심판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바벨론을 가리키는데 선지자는 이 칼과 관련하여 세 측면을 부각시켜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는 칼이 칼집에서 빼어짐을 부각시키고 있다(3-7절). 이는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마침내 개시될 것임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다음으로는 칼의 날카로움과 빛남을 부각시키고 있다(8-17절). 이는 유다에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함과 가혹함을 강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끝으로는 칼의 침략 경로를 부각시키고 있다(18-27절). 이는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유다가 치욕을 당하며 몰락하게 될 것임이 강조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선지자는 바벨론을 통한 유다 심판을 예언하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에 대한 부기로서 바벨론의 칼에 의한 암몬의 멸절 예언을 함께 주고 있다(28-32절). 이는 18-27절의 칼의 침략 경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유다에 대한 심판 예언 중에 이처럼 암몬 심판 예언을 언급하는 것은 바벨론이 유다를 멸망시킨 후에는 곧바로 암몬을 공격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암몬이 유다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회개하기보다는 멸망하는 유다를 조롱하고 기뻐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몬 심판 예언은 유다에 적대적이었던 열방에 대한 예언을 보도하는 제25-32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에서 첫 주자로 다시 한 번 언급된다(25:1-7).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바벨론 왕은 암몬과 예루살렘 중 어느 나라를 칠 것인가를 어떻게 선택하는가?(21절)
하나님께서는 장차 바벨론 왕이 군사를 이끌고 자신을 거역한 두 나라 이스라엘과 암몬을 벌하러 올 것을 예언하셨다. 이 때 암몬과 이스라엘 둘 중 먼저 공격할 나라를 점괘를 보고 결정할 것인데 세 가지 방법 모두 예루살렘을 향하도록 결론이 날 것을 미리 알려 주신다(22, 왕하 25:1).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이런 어리석은 방법까지 동원하셔서 자기 뜻을 이루시고자 결정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대상은 하나님을 저버리고 약자를 괴롭히는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과 지도자들이다(25절). 아무리 숨겨도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만천하에 드러내실 것이다(24절). 그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27절).
[ 질문 2 ]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암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인가?(31절)
심판을 피한 줄 알았던 암몬의 운명도 다르지 않았다. 유다를 괴롭히던 암몬도 심판하신다고 하신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심판을 보고 회개하기는 커녕 유다의 멸망을 보고 조롱하고 기뻐했기 때문이다. 유다는 회복될 것이나, 암몬은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30-32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19.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너 사람아, 바빌로니아 왕이 칼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두 길을 그려라. 그 두 길은 같은 나라에서 시작되도록 그려라. 길이 나뉘는 곳에는 안내판을 세워라.
두 길 ; 바벨론이 애굽을 공격하는 방향은 남쪽을 향하며, 요단 서편의 예루살렘과 동편의 랍바 중 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20.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의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칼이 암몬 자손의 랍바로 갈 수 있는 길과, 유다의 견고한 성읍인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그려라.
21.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어귀에 서서 점을 치되 화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서
바빌로니아 왕이 그 두 길이 시작되는 갈림길에 이르러서는,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아보려고 점을 칠 것이다. 화살들을 흔들거나, 드라빔 우상에게 묻거나,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보고, 점을 칠 것이다.
점을 치되 ; 점술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이 될 수 없으나, 하나님은 이방을 동원하시기 위해 이런 점술의 점괘도 개입하신다.
22.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설치하며 입을 벌리고 죽이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설치하고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게 되었나니
점괘는 오른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벽을 허무는 쇠망치를 설치하고, 입을 열어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며, 전투의 함성을 드높이고, 성문마다 성벽을 허무는 쇠망치를 설치하고, 흙 언덕을 쌓고, 높은 사다리를 세우라고 나올 것이다.
공성퇴(攻城槌) ; 성을 포위한 군사들이 성벽을 부술 때 사용했던 무기
23.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거짓 점괘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이것이 헛된 점괘로 보이겠지만, 이 점괘는 예루살렘 주민에게 자신들의 죄를 상기시킬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이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잡혀 갈 것임을 경고할 것이다.
2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되살리며 너희의 허물이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죄가 폭로되었다. 너희가 얼마나 범죄하였는지, 이제 모두 알고 있다. 너희의 행실에서 너희의 온갖 죄가 드러났으니, 너는 벌을 면할 수 없다. 나는 너를 너의 적의 손에 넘겨 주겠다.
25.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마지막 때이니라
너, 극악무도한 이스라엘 왕아, 네가 최후의 형벌을 받을 그 날이 왔고, 그 시각이 되었다.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은 시드기야 왕을 말한다.
2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왕관을 벗기고, 면류관을 제거하여라.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낮은 사람은 높이고, 높은 사람은 낮추어라!
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또 엎드러뜨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도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 다스릴 권리가 있는 그 사람이 오면, 나는 그것을 그에게 넘겨 주겠다."
마땅히 얻을 자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그에게 주리라 ; 문맥상 느부갓네살을 가리친다는 주장과 교회 전통적 해석처럼 여호야긴이나 그 너머 예수님을 뜻한다는 주장이 있다.
28. ○인자야 너는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의 능욕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다고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죽이며 멸절하며 번개 같이 되기 위하여 빛났도다
"너 사람아, 나 주 하나님이 암몬 자손과 그들이 받을 질책을 말하니, 너는 이 예언을 전하여라. 이것을 너는 암몬 자손에게 전하여라. 칼이다. 칼이 뽑혔다. 무찔러 죽이려고 뽑혔다. 다 없애 버리고, 번개처럼 휘두르려고 광을 냈다.
1-27절에서는 일련의 칼의 비유들을 통하여 바벨론을 통한 유다의 심판이 예언 되었다. 이제 28-32절에서는 암몬 족속의 패망에 대해 예언하는데, 이는 본장 예언의 부기(付記)로서 앞선 21절에 언급된 바 느부갓네살이 우상의 신탁에 의하여 예루살렘을 먼저 공격하고 암몬의 공격을 미루었으나 암몬 역시 결국 멸망하고 말았음을 밝힌다.
암몬은 예루살렘 패망시 멸망하지 않고 존속하였지만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후에 패망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에돔 족속이 그랬던 것처럼,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할 때 이를 즐거워하였다(25:3 ; 옵 1장). 이에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비정함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그들 역시 자신들이 조롱했던 유다와 동일한 운명에 떨어지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29.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마지막 때가 이름이로다
점쟁이들이 너에게 보여 주는 점괘는 헛된 것이요, 너에게 전하여 주는 예언도 거짓말이다. 네가 죄를 지었으니, 네가 악하니, 그 날이 온다. 최후의 심판을 받을 날이 온다. 칼이 네 목 위에 떨어질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묵시를 보는 일은 선지자들 내지는 전문적으로 점술을 주도적으로 행하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들이 보는 것은 진실된 것이 아닌 ‘허무한 것’이었다. 여기서 ‘허무한 것’이란 실체가 없는 거짓된 것을 의미한다. 암몬의 거짓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하여 거짓된 환영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여 거짓된 점을 쳤던 것이다.
30. 그러나 칼을 그 칼집에 꽂을지어다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칼은 다시 칼집으로 돌아가거라. 암몬 자손아, 네가 지음을 받은 곳, 네가 자라난 곳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
칼을 그 칼집에 꽂을지어다 ; 암몬 족속의 칼을 가리킴. 즉 바벨론에 대적할 생각을 말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멸망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저항은 아무 소용이 없다.
31.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내뿜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넘기리로다
나의 분노를 너에게 쏟아 붓고, 타오르는 진노의 불길을 너에게 내뿜고, 사람 죽이는 데 능숙한 짐승 같은 사람들의 손에 너를 넘겨 주겠다.
32.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라 하라
너는 불의 땔감이 될 것이며, 너는 네 나라의 한복판에 피를 쏟을 것이다. 너는 더 이상 기억에 남지 않을 것이다. 나 주가 말한다."
암몬의 최후 멸망의 양상이 세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첫 번째 양상으로 그들이 불에 완전히 삼켜지는 지푸라기처럼 여호와의 진노의 불에 삼켜질 것임을 예언한다. 여기서 ‘섶’에 해당하는 ‘레아켈라’의 원형 ‘아켈라’는 ‘먹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칼’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킴을 당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불(fire)과 상관적으로 쓰여 불에 의해 순식간에 타버리는 짚단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두 번째 양상으로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암몬 백성들이 대량으로 살육되어 그 피가 땅의 곳곳에 뿌려질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나라’에 해당하는 ‘하아레츠’는 ‘그 땅(the land)'이라는 뜻으로, 암몬의 전 영토를 포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사용된 소멸을 나타내는 불의 이미지와 멸망과 죽음을 나타내는 피의 이미지는 암몬에 임하는 여호와의 심판이 매우 맹렬하며 철저할 뿐 아니라 잔혹스러울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사실 유다에 임하는 심판은 포로됨에 초점이 맞추어지며 회복이 전제된 심판이지만 암몬에게는 소멸과 멸망만이 선언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양상은 그들이 역사에서 종적을 감추어 다시는 기억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본문은 히브리어에서 가장 강한 부정의 의미를 지닌 ‘로’가 사용되어 암몬이 결코 다시는 기억되지 못할 것임을 강조한다.
한편 이러한 암몬의 영원한 멸망의 예언이 필연적으로 성취될 것은 이 예언을 다름 아닌 주권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라’의 문자적 의미는 ‘왜냐하면 나 여호와께서 (공식적으로) 말씀하였기 때문이다’이다. 이유 접속사 ‘키’는 그가 말씀하셨으므로 암몬의 멸절 예언이 펼연적 으로 성취되고야만다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또한 여기서 ‘나’에 해당하는 ‘아니’는 여호와 하나님이 스스로를 지칭해 자신을 강조하시는 표현으로 그 예언의 말씀이 에스겔 선지자 개인의 예견이 아닌, 역사의 주권자 여호와의 계시임을 확실히 보증한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간 예언이므로, 그것은 반드시 선언한 그대로 이루어지며 결코 헛되이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사 55:10,11).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바벨론 왕의 진격 ( 21:18-27 )
앞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그들에게 칼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였었다.
(1) 선지자는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그 선지자는 '두 길' 곧 바벨론 왕의 군대가 들어오게 될 두 길로 갈라지는 길목을 그려야 했다(19절). 거기서 그들은 멈춰 설 것이다. 한 길은 암몬 족속의 도성인 랍바로 가는 길이고 나머지 한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다. 그는 둘 모두를 멸망시킬 것을 결심했으나 어디를 먼저 공격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았다. 유다의 거민 대다수가 이제 예루살렘에 피난처를 잡았고 따라서 그곳은 '유다 견고한 성 예루살렘'으로 불리고 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 난관을 묘사해야 했다. 바벨론 왕이 갈랫 길 곧 두 길 머리에 서서(21절). 바벨론 왕은 그 자신이 어디에 더 큰 관심이 있는지 또는 어디를 더 원하는지를 몰랐던 것 같다. 그는 결정을 하기 위해서 '점을 쳤다.' 그는 제비를 뽑기 위해서 '살들을 흔들었다.' 아마도 한 화살에는 '예루살렘'이 다른 화살에는 '랍바'가 쓰여 있었을 것이며 그 전통에서 먼저 뽑힌 곳을 먼저 공격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는 점장이가 희생 제물의 내장을 살펴서 말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가 나오자(22장) 진격이 개시되었다.
(2) 선지자는 백성과 방백들에게 이 멸망이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 자초된 것임을 보여주어야 했다.
1) 백성들의 경우(23,24절) :
그들은 자신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으나 그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즉 그들은 에스겔의 예언을 잘못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2) 방백들의 경우 :
시드기야는 악한 자로서 백성들 가운데서 죄를 조장하였다. 그는 자신이 범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 그는 왕관을 빼앗길 것이며 다시는 그것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불경으로 자신의 왕관을 더럽혔다. 그것은 땅에 내어 던져지게 될 것이다(26절). 관을 제하며. 관과 면류관은 잃어 버리기 쉬운 것들이다.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은 저 세상에 있다. 정권을 다시 일으키려는 시도는 백지화 되고 말 것이다. 이 제국은 메시야의 손에 의해 영원히 확정되기까지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암몬 족속의 멸망 ( 21:28-32 )
예루살렘이 멸망한 지 5년쯤 후에 느부갓네살에 의한 암몬 족속이 멸망하리라는 것이 예언된다.
(1) 암몬 족속의 죄가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28절).
그들이 이스라엘의 환난 당함을 보고 기뻐한 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능욕으로서 이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것이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우월한 백성이라고 하는 그들의 자만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자 더욱더 기고 만장하게 되어 살육당한 이스라엘 백성의 목을 짓밟기까지 하였다.
(2) 암몬 족속의 비참한 멸망이 경고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 대해 행해진 모욕과 상해를 자신에 대해 행한 것으로 여기신다(31절).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너의 생장한 땅에서 내가 너를 국문하리로다. 즉 "네가 처음 한 백성을 이루고 그 이후 내내 정주해 온 곳, 곧 네가 뿌리를 내리고 '생장한 땅'에서 멸망하리라."
출처 ; 메튜헨리 주석
하나님의 심판의 칼 ( 21장 )
겔20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상을 언급한 뒤 심판과 회복이 있을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 부분에서 남방, 곧 유다에 맹렬한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질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본장은 남방에 내려질 그 진노의 심판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본장은 바벨론의 칼에 의해 유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칼의 심판이 미치는 대상
1) 악인과 의인
겔 21:4절에 의하면 유다의 악인 뿐만 아니라 의인들도 함께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것으로 예언되고 있습니다. 악인이 심판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의인이 악인과 함께 심판을 받는 것은 의아한 일입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심판의 날에 의인이 악인과 함께 진노를 받는 것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의인들은 악인들의 죄악을 지적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이 그 의무를 소홀히 했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참조, 겔 3:18).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인 것입니다.
a. 의인의 사명(겔3:18)
b. 의인 다니엘의 민족적 회개(단9:5)
2) 모든 방백들
유다의 방백들은 유다 백성을 의의 길도 인도하고 그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 지도자로 세움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직무를 유기한 채 백성을 악의 길로 인도하고 그들을 착취하였습니다(참조, 겔34:1-16). 따라서 그러한 악하고 탐욕스럽고 포악한 유다 방백들이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은 마땅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a.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상21:16)
b.강포로 다스린 방백들(겔34:4)
3) 모든 백성
유다 백성들은 유다 방백들을 따라 너무도 노골적으로 우상을 숭배하였고 양식을 의뢰하였습니다(참조, 겔4:16;겔8:14). 그들은 그들이 소시민이라는 것을 앞세워 생존을 위해 짓는 죄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풍년을 준다는 신은 닥치는 대로 섬기고 그들의 육신을 평안케 해주는 곡식과 돈을 탐욕스럽게 숭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하찮은 자의 실존적이고 가장 영향력 없는 죄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용서받을 수 없는 동일한 죄입니다. 따라서 그들 역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a.송아지 숭배(출32:4)
b.여인들의 담무스 숭배(겔8:14)
2. 칼의 심판이 가져오는 재앙
1) 육신의 고통
유다 방백들과 백성들은 그들의 육신의 안위와 쾌락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섬기고 물질을 더 원하며 이웃 나라의 힘을 의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에 의해 육신의 고통을 역으로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바라던 양식과 물질의 끊김을 당하고(참조, 겔5:16;겔7:21), 그들이 의뢰하던 자들에 의해 학대와 살육을 당하는 것입니다(참조, 겔23:22-26).
a.굶주림(겔4:17)
b.피곤함(겔7:17)
2) 슬픔과 수치
자기가 의뢰하던 자들에게 학대와 살육을 당하고 보다 부강해지기 위해 수많은 우상을 섬기고 누구보다도 먹을 것과 재물에 집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굶주리고 파탄에 빠졌다면, 그것은 참으로 수치가 아닐 수 없으며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슬픔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 상황에 그대로 빠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깊은 슬픔과 수치를 한없이 느낄 것입니다(참조, 겔7:16-19).
a.슬픔(겔7:16)
b.수치와 조롱(겔22:4)
3) 멸망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의 마지막은 유다의 멸망입니다. 배고픔과 수치와 학대 따위는 나라만 있다면 극복하고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없어진다면 그 모든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한마디로 절망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절망의 재앙을 유다 백성들에게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유다의 죄악이 심각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a.무차별한 살육(대하36:17)
b.멸망(렘1:15)
3. 암몬에게 미치는 칼
1)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
암몬은 롯과 그의 작은 딸 사이에서 태어난 벤암미라 하는 자의 후손들입니다(참조, 창19:38). 이 후예들은 이스라엘 민족 옆에 살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족속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고자 작정하셨습니다.
a.타락한 딸(렘49:4)
b.경외치 않는 자에게 보응하심(시55:19)
2)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함
암몬이 롯의 후예라면 이스라엘 백성과 암몬 백성은 형제지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할 때 그들은 기뻐하였습니다(참조, 겔25:6) 암몬은 형제애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하나님의 백성을 미워하는 파렴치하고 사악한 백성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또한 그들을 징벌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a.아하 좋다(겔25:3)
b.즐거워함(겔25:6)
3) 진노의 불과 칼이 임함
하나님의 백성인 북이스라엘과 유다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멸망을 당할 정도라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들이 받을 심판의 무서움은 상상하기조차 엄청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암몬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유다에게 내려지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잔혹하고 철저한 것이었습니다(참조, 겔25:7). 그들은 회복 없는 멸망에 이를 것입니다.
a.파멸(렘49:5)
b.만민 중에 끊음(겔25:7)
결론
범죄한 자들은 그들이 누구이든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한편 의인이 죄인들 가운데서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그도 고난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죄인의 대열에 서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의인의 자리에 설지라도 자기만을 생각하지 말고 공동체를 생각하여 죄인을 깨우치도록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
예루살렘은 어떤 죄를 범하였는가(에스겔 22:1-16)
2018. 12. 1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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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묵상 ]
22장 요약 ;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한 것은 유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 때문이었다. 이러한 유다가 풀무 속에 든 찌꺼기로 비유되었음은 범죄하고도 도무지 돌이킬 줄 모르는 그들이 하나님께 있어 아무 쓸모 없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22:1-5 ; 예루살렘의 가장 가증한 죄는 무자비한 살인과 우상 숭배였다. 이는 곧 사회적 불법과 도덕적인 죄와 종교적인 죄로, 모든 타락의 원인이 되는 영적 무지의 죄를 가리킨다
22:6-12 ; 본문에 나오는 구체적인 모든 죄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던 도덕법, 시민법, 제사법 등의 모든 율례를 더럽힌 죄악들로,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욕되게 한 신성 모독의 참람한 죄악들이다.
22:13-22 ;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여러 나라에 흩어버림으로 그들의 죄악을 보응하시고, 부정하고 불결한 것들을 제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정결케 하실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22:1-31은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에 대한 지적과 그에 따른 심판의 불가피성을 예루살렘 성, 이스라엘 족속, 이스라엘 땅 각각에 대한 범죄와 타락의 지적과 심판 예언이라는 삼중(三重)형식을 취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를 보면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의 죄악으로는 피 흘림, 부모에 대한 멸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학대, 성물과 안식일의 더럽힘, 이간질, 우상 숭배, 음행을 비롯한 각종 성범죄, 뇌물 수수, 고리대금, 사기 등을 들고 있다(1-16절).
그리고 이스라엘 땅의 죄악으로는 선지자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양산하고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고 성물을 더럽히고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치 아니하며 사람들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함, 고관들은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리고 선지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함, 백성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제하고 수탈함 등을 들고 있다(23-29절).
이는 이스라엘이 모든 계층, 모든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악을 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하여 당신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막을 자를 찾았으나 찾지 못함으로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실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심으로써(30,31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신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예루살렘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각각 어떤 죄를 지었는가?(4-5절)
[ 질문 2 ] 예루살렘 사람들의 죄는 십계명의 어떤 명령들을 어기는 것인가?(6-12절)
[다번역성경찬송]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인자야 네가 심판하려느냐 이 피흘린 성읍을 심판하려느냐 그리하려거든 자기의 모든 가증한 일을 그들이 알게 하라
"너 사람아, 심판할 준비가 되었느냐? 저 피 흘린 성읍을 심판할 준비가 되었느냐? 너는 먼저, 그 성읍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역겨운 일을, 그들이 깨닫게 하여라.
피흘린 성읍 ; '피의 성읍'이라는 의미이다. 피가 7번 반복되며 예루살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인역과 생명을 얼마나 함부로 다뤘는지를 보여준다.
3. 너는 말하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자기 가운데에 피를 흘려 벌 받을 때가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그들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많은 백성을 죽이고 우상들을 만들어 스스로를 더럽힌 성읍아, 네가 심판 받을 때가 다가온다.
4. 네가 흘린 피로 말미암아 죄가 있고 네가 만든 우상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혔으니 네 날이 가까웠고 네 연한이 찼도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이방의 능욕을 받으며 만국의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노라
너는 살인죄를 저질렀고,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였으므로, 너 자신을 더럽혔다. 그러므로 네가 심판받을 날이 다가온다. 너의 때가 다 되었다. 내가 너를, 이방 사람들의 치욕거리가 되게 하고 모든 나라의 조롱거리가 되게 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5.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
이미 이름을 더럽히고, 소란스러운 일로 가득 찬 성읍아, 너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나, 너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두 너를 조롱할 것이다.
6. ○이스라엘 모든 고관은 각기 권세대로 피를 흘리려고 네 가운데에 있었도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제각기 자신의 권력을 믿고, 네 안에서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
7.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성읍아, 네 안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며, 네 한복판에서 나그네를 학대하고, 네 안에서 고아와 과부를 구박하였다.
8.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너는 내 거룩한 물건들을 업신여겼으며 내 안식일을 더럽혔다.
9.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이간을 붙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산 위에서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음행하는 자도 있었으며
네 안에는 살인을 하려고 남을 헐뜯는 사람들이 있으며, 네 안에는 산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들이 있으며, 네 한복판에서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10. 네 가운데에 자기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 네 가운데에 월경하는 부정한 여인과 관계하는 자도 있었으며
네 안에는 아버지의 아내인 계모와 관계하는 자식이 있고, 네 안에는 월경을 하고 있는 부정한 여자와 관계하는 남편이 있다.
11. 어떤 사람은 그 이웃의 아내와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그의 며느리를 더럽혀 음행하였으며 네 가운데에 어떤 사람은 그 자매 곧 아버지의 딸과 관계하였으며
또 이웃 사람의 아내와 더러운 죄를 짓는 남자가 있으며, 음행으로 자기의 며느리를 욕보이는 시아버지가 있으며, 아버지의 딸인 자기 자매를 욕보이는 아들도 네 안에 있다.
12. 네 가운데에 피를 흘리려고 뇌물을 받는 자도 있었으며 네가 변돈과 이자를 받았으며 이익을 탐하여 이웃을 속여 빼앗았으며 나를 잊어버렸도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돈을 받고 살인을 하는 자도 있고, 고리대금업을 하는 자, 모든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도, 네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너는 나를 잊고 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금지되었던 고리대금업이 성행했으며, 동포들에게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일도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말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로 받는 돈’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변돈’에 해당하는 ‘네쉐크’의 어원은 뱀이 날카로운 이빨로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을 무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본문에서 이러한 의미를 지닌 표현을 사용한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이 돈을 빌려주고 난 뒤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요구하는 변리가 터무니없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맹독을 지닌 뱀에게 물린 동물이 그 독을 감당치 못하여 죽어가는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고리대금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파산하여 부한 자의 희생물이 됨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율법에서는 이처럼 과도한 변리를 받는 행위가 엄격히 금지되었다(출 22:24).
물론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타국인에 대해서는 적정한 이자를 받는 것올 허용했지만, 동일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해서는 아예 이자받는 것 그 자체를 금지하기까지 하였다(레 25:36). 이는 자신의 탐욕을 따라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것보다 형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 그들에게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와 평안을 맛보게 하는 것, 그들의 삶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거부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무 대가없이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무상으로,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였거나 멸시하는 자라고 밖에 할 수 없다.
13. ○네가 불의를 행하여 이익을 얻은 일과 네 가운데에 피 흘린 일로 말미암아 내가 손뼉을 쳤나니
네가 착취한 불의한 이익과 네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 때문에, 내가 분노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벼르고 있다.
"내가 손빽을 쳤나니"란 표현은 21:14,17에서 이미 반복 사용되었고 그것이 지닌 의미는 극도로 차오른 분노를 겉으로 표현하는 몸짓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행동의 주체는 다른 누가 아니요,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이를 감안하면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 스스로 예루살랭 사회에 만연한 각종 부정과 부패, 우상 숭배와 윤리적 죄악 등으로 인해 분노하셨으며 그 분노가 폭발할 정도에 이르렀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14.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내가 너를 해치우는 날에, 너의 심장이 배겨 나겠느냐? 네 두 손에 계속 힘이 있겠느냐? 나 주가 말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루겠다.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란 표현은 의문문 형식이지만 수사 의문문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반드시 맥이 완전히 풀려 손에 아무런 힘도 없이 축 늘어지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21:7).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읍은 여호와의 심판 날에 아무런 대책도 강구할 수 없게 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15. 내가 너를 뭇 나라 가운데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고 너의 더러운 것을 네 가운데에서 멸하리라
내가 너의 주민을 이방 사람들 속에 흩으며, 여러 나라로 흩뿌려서, 네게서 더러운 것을 소멸시키겠다.
16. 네가 자신 때문에 나라들의 목전에서 수치를 당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너는 이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스스로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유다와 예루살렘의 죄를 열거함 ( 22:1-16 )
에스겔 선지자는 '피 흘린 성읍', 즉 피의 성읍을 '국문'할 권세를 부여받았다. 예루살렘이 그와 같이 불리우는 것은 그 죄가 대체적으로 피흘리는 죄였기 때문이다(겔 7:23). 즉 예루살렘은 그 피로 더럽혀진 것이다.
(1) 그는 많은 극악 무도한 범죄들에 대하여 예루살렘을 정죄해야 한다.
분명히 치리자들이 있었음직한 그 성읍 한 가운데서도 피흘림이 있었다.
또한 그 성읍은 우상을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시켰다(3절).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7절). 즉 부모를 조롱하고 멸시하였다.
또한 자신들을 부하게 하려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였다(7절).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8절). 즉 "너는 나의 거룩한 계시와 거룩한 규례들을 업신여겼도다."
예루살렘은 순결로 유명했으나 이제 '그 가운데에는 음란하는 자도 있었다'(9절).
이 모든 사악함의 밑바닥에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 있었다(12절). 네가...나를 잊어버렸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이같이 행하지 않았을 것이라."
(2) 그는 이들 범죄로 인해 예루살렘에 심판을 선포해야 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이제 그 성읍에 죄악의 분량이 가득찼으며 그 죄가 그 성읍의 멸망을 재촉하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그 성읍은 '벌받을 때'가 이르렀으며(3절), 형벌의 '날이 가까웠다'(4절).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모든 주변 나라의 멸시와 조롱 가운데 드러내신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4절). 그 성읍이 이방의 길을 걷고 또 이방의 행위를 배웠으므로 그에 상당한 보응을 받을 것이다(15절). "내가 너를 본토에서 쫓아서 이방 가운데 보낼 뿐만 아니라 너를 열국 중에 흩으며 각 나라에 헤치리라."
출처 ; 메튜헨리 주석석
풀무불 속의 찌꺼기가 된 이스라엘(에스겔 22:17-31
[ 성경묵상 ]
22장 요약 ;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당한 것은 유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도덕적 타락 때문이었다. 이러한 유다가 풀무 속에 든 찌꺼기로 비유되었음은 범죄하고도 도무지 돌이킬 줄 모르는 그들이 하나님께 있어 아무 쓸모 없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22:1-5 ; 예루살렘의 가장 가증한 죄는 무자비한 살인과 우상 숭배였다. 이는 곧 사회적 불법과 도덕적인 죄와 종교적인 죄로, 모든 타락의 원인이 되는 영적 무지의 죄를 가리킨다
22:6-12 ; 본문에 나오는 구체적인 모든 죄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셨던 도덕법, 시민법, 제사법 등의 모든 율례를 더럽힌 죄악들로, 결국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욕되게 한 신성 모독의 참람한 죄악들이다.
22:13-22 ; 여호와께서는 유다를 여러 나라에 흩어버림으로 그들의 죄악을 보응하시고, 부정하고 불결한 것들을 제거하심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정결케 하실 것이다.
22:23-31 ; 본문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선지자들은 거짓 평강을 전하여 백성들을 기만하였고, 탐욕으로 가득차서 성직을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시켜 버렸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스스로 범죄하여 하나님을 모독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게 만들었다.
유다의 고위 관리들 역시 부패의 극치에 도달했었다. 그들은 부정과 불의로 백성들의 피를 팔아 부당한 이익을 취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한편,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의지할 곳을 잃고 감화를 받지 못하게 된 백성들은 육신의 탐욕과 정욕대로 살게 되었고, 자기 만족을 채우기에 위하여 지도자들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모든 율법과 사회 질서는 파괴되었고 죄악은 넘쳐 흘렀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22:1-31은 이스라엘의 타락과 범죄에 대한 지적과 그에 따른 심판의 불가피성을 예루살렘 성, 이스라엘 족속, 이스라엘 땅 각각에 대한 범죄와 타락의 지적과 심판 예언이라는 삼중(三重)형식을 취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를 보면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의 죄악으로는 피 흘림, 부모에 대한 멸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학대, 성물과 안식일의 더럽힘, 이간질, 우상 숭배, 음행을 비롯한 각종 성범죄, 뇌물 수수, 고리대금, 사기 등을 들고 있다(1-16절).
그리고 이스라엘 땅의 죄악으로는 선지자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양산하고 제사장들은 율법을 범하고 성물을 더럽히고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치 아니하며 사람들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함, 고관들은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리고 선지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함, 백성들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제하고 수탈함 등을 들고 있다(23-29절).
이는 이스라엘이 모든 계층, 모든 부분에서 총체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악을 행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하여 당신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막을 자를 찾았으나 찾지 못함으로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하실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심으로써(30,31절)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의 필연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신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하나 ] 이스라엘은 무엇처럼 되고 말았는가?(18,24절)
[ 질문 둘 ]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의 죄악들은 어떤 것들인가?(25-29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7.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18.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는 쓸모도 없는 쇠찌꺼기이다. 그들은 모두가 은을 정련하고, 용광로 속에 남아 있는 구리와 주석과 쇠와 납의 찌꺼기이다.
불로 연단하여 찌꺼기를 제거하레여 순전한 백성을 만드는 연단의 비유로도 쓰이나(사 1:25 ; 말 3:3 ; 욥 23:10), 여기서는 귀금속을 기대하지 않고 전부 태워버리는 심판을 의미한다(렘 6:25-30).
본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의 타락을 찌꺼기 광물에 비유하였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족속’에 해당하는 ‘베트 이스라엘’은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집(KJV, the house of Israel)으로서 여호와의 언약의 대상인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즉, 이미 멸망해버린 북이스라엘 출신이나 이 예언이 주어질 당시까지는 존속하였던 남유다 출신을 불문하고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라 자처하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바로 이 ‘베트 이스라엘’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런데 본문은 이러한 그들이 여호와에 대해 ‘찌꺼기’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찌꺼기’에 해당하는 ‘레쑤그’의 어근 ‘씨그’는 ‘거절하다’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사람들의 시각에 아무런 가치도 없어 버림받는 더러운 찌꺼기를 의미한다. 구약 성경에서 모두 7회 사용되었으며, 특히 은(silver) 속에 섞여 있는 무가치한 찌꺼기를 지칭하는데 종종 사용되었다(잠 25:4 ; 26:23 ; 사 1:22).
은을 광산에서 맨 처음 캐낼 때에는 돌 속에 은의 성분이 섞여 있으며, 또한 그 은 성분 가운데에는 여러 이물질들이 복잡하게 섞여 있다. 그래서 그 광석을 잘게 부수어 납과 함께 용광로 속에 집어 넣고 밖에서 높은 열을 가열함으로써, 순은이 분리되어 나오고, 납이 찌꺼기와 결합하여 따로 분리되어 나온다.
그런데 유다 왕국 말기의 이스라엘 족속은 은이 아니라 용광로 속에서 나와 버려져야 할 찌꺼기처럼 여호와 앞에서 무가치한 존재였던 것이다.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를 원문의 뉘앙스를 고려하여 다시 번역하면 ‘그들 모두가 풀무 가운데 있는 놋과 주석과 쇠와 납이며, 그것들은 은의 찌꺼기이다(KJV, all of them are bronze and tin and iron and lead in the furance ; they are the dross of silver)'가 된다. 즉 본문에서는 놋과 주석과 쇠와 납을 순수한 은과 구별되는 은의 찌꺼기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본문 표현은 다소 어색하게 들린다. 왜냐 하면 여기서 제시되는 금속들은 다 유용한 것들이며, 은을 제련하고 남은 찌꺼기에는 이와 같은 성분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다른 불순물들과 섞여 있기 때문에 이처럼 따로 구분하여 묘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은의 찌꺼기를 이처럼 표현한 것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은의 찌꺼기처럼 버림받아야 할 이스라엘 자손들의 특징이 여기서 제 시되는 네 금속으로 상징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성경에서 ‘놋’은 강함을 상징한다(레 1:18). 그러나 본문에서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스스로 강하다고 여기는 교만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주석’은 아름다운 은백색의 금속으로서 겉만 번듯한 위선이나 외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13:10).
그리고 ‘철’은 병기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폭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22:7,12).
마지막으로 ‘납’은 잘 녹고 유연하며 무겁다는 점에서 마음이 쉽게 변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완악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16:15-34).
즉 본절에 나오는 순전한 은과는 구별 되는 이러한 금속들은 당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자손의 타락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다 찌꺼기가 되었은즉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고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가 모두 쇠찌꺼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예루살렘의 한가운데 모으고,
여호와께서 찌꺼기와 같은 이스라엘을 예루살렘 가운데로 모으실 것을 선언하신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자손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그들을 제련하며 그 죄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용광로가 될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다시 말해 B.C. 586년 여호와의 심판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며, 바벨론 공격의 분위기가 무르익던 당시 유다 곳곳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바로 그 예루살렘에서 대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란 예언인 것이다.
이 일을 하시는 주체는 다름 아닌 여호와 자신이시다. 본문에서 ‘내가’에 해당하는 ‘히느니’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라는 의미이다. 이는 이 예언을 듣고 있는 자들에게 상당히 뜻밖의 사실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며, 그 뜻밖의 사실이란 것은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라 생각하였던 여호와께서 직접 심판의 중심지 예루살렘으로 모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호하는 성이 아니라 범죄한 그들을 환난과 멸망으로 몰아넣을 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남유다 백성들올 징계하시되 징계 가운데서 남은 자들을 연단시켜 새롭게 하시기 위해 이러한 방법도 택하셨다(12:14-16).
20. 사람이 은이나 놋이나 쇠나 납이나 주석이나 모아서 풀무 불 속에 넣고 불을 불어 녹이는 것 같이 내가 노여움과 분으로 너희를 모아 거기에 두고 녹이리라
사람이 은과 구리와 쇠와 납과 주석을 모두 용광로에 집어 넣고 거기에 풀무질을 하듯이, 나도 내 분노와 노여움으로 너희를 모두 모아다가, 용광로에 집어 넣고 녹여 버리겠다.
21. 내가 너희를 모으고 내 분노의 불을 너희에게 불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되
내가 너희를 모아 놓고, 내 격노의 불을 너희에게 뿜어 대면, 너희가 그 속에서 녹을 것이다.
22.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은이 용광로 속에서 녹듯이, 너희도 그 속에서 녹을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나 주가 너희에게 분노를 쏟아 부은 줄 알 것이다."
23-31절에서는 가나안 땅을 대상으로 하여 타락을 지적하고 심판을 예언한다. 특별히 여기서는 이스라엘 사회의 총체적인 범죄상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25-29절), 중보자나 의인이 없는 가나안 땅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30,31절)을 부각시킨다.
이 단락에서는 구체적으로 네 계층의 극악한 죄악이 진술되고 있다.
첫째는 선지자들의 죄악(25.28절), 둘째는 제사장들의 죄악(26절), 셋째는 고관들의 죄악(27절), 넷째는 그 땅 백성의 죄악(29절)이다.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사명을 가진 자들인데, 당시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거짓 예언을 하고 사람의 영혼을 삼키며, 그 땅의 고관들의 죄를 정당화시켜주기 위해 거짓 이상을 말하고, 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스스로 지어내어 전하면서 자신들의 말이 여호와로부터 온 계시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제사장들은 사람들에게 거룩한 것파 부정한 것을 구별시켜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도록 돕는 사명을 부여받은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앞장서서 하나님의 계명에서 멸어진 삶을 살았다. 이처럼 제사장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삶을 살았기에 백성들 또한 율법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또한 그 땅의 고관들은 백성들을 의롭게 통치하고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며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이 불의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공의와 자비에 입각해 보호하는 사명을 지닌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권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착취하고 부정한 소득을 취하는 추악한 삶을 살았다.
또한 그 땅의 중산층에 속한 백성들 역시 권력에 편승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총체적 부패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사회는 여호와로부터 진노를 피할 수가 없었다(31절). 본절에서는 이러한 본단락의 선언이 선지자 에스겔 자신이 임의로 말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임을 밝힘으로써 이를 유의하여 들어야 하며 이 심판 예언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2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4. 인자야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진노의 날에 비를 얻지 못한 땅이로다 하라
"사람아, 너는 유다 땅에 이렇게 말하여라. 유다 땅아, 너는 진노의 날에, 더러움을 벗지 못한 땅이요, 비를 얻지 못한 땅이다.
25.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의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
그 가운데 있는 예언자들은 음모를 꾸미며, 마치 먹이를 뜯는 사자처럼 으르렁댄다. 그들이 생명을 죽이며, 재산과 보화를 탈취하며, 그 안에 과부들이 많아지게 하였다.
본구절에서 ‘선지자들'이 본래 ‘왕들'이었을 것으로 보려하는 견해가 많은 학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Keil. Hitzig. Cooke. May). 이에 반대하여 본래대로 ‘선지자들‘로 읽으려하는 학자들도 다수 나타나지만(Plumptre. Ryrie. Leale) 70인역에서 이 부분올 ‘방백 혹은 ‘왕들을 뜻하는 헬라어 아페구메노이’로 기록하고 있으며, 또 본절에 기록된 죄악들이 선지자들보다는 왕들의 죄악으로 보기에 보다 적합하다는 점, 그리고 28절에서 선지자들의 죄악상이 다시 한번 나타나고 있다는 점 둥은 본구절을 왕들로 읽는 것이 보다 바람직함올 깨우쳐 준다.
25절의 '선지자'를 70인역에서는 '왕'으로 번역하였다. 문맥상 높은 계층에섵 낮은 계층의 지도자들, 즉 왕, 제사장, 고관들, 선지자로 이어지는 것이다.
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이 구별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의 눈을 가리어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이 땅의 제사장들은 나의 율법을 위반하고, 나의 거룩한 물건들을 더럽혔다. 그들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않으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도록 깨우쳐 주지도 않으며, 나의 안식일에 대하여서는 아주 눈을 감아 버렸으므로, 나는 그들 가운데서 모독을 당하였다.
27. 그 가운데에 그 고관들은 음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그 가운데 있는 지도자들도 먹이를 뜯는 이리 떼와 같아서, 불의한 이득을 얻으려고 사람을 죽이고, 생명을 파멸시켰다.
28.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
그런데도 그 땅의 예언자들은 그들의 죄악을 회칠하여 덮어 주며, 속임수로 환상을 보았다고 하며, 그들에게 거짓으로 점을 쳐 주며,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나 주 하나님이 한 말이라고 하면서 전한다.
29. 이 땅 백성은 포악하고 강탈을 일삼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고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으므로
이 땅의 백성은, 폭력을 휘두르고 강탈을 일삼는다. 그들은 가난하고 못 사는 사람들을 압제하며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하였다.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나는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내가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 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라는 말은 무너진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우고 죄악으로 관영한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법이다. 특히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라는 말은 전쟁으로 인해 금이 갈라지고 부분적으로 무너져 내린 성벽을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막는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이는 어떤 개인이 자신의 의로운 삶을 통해 무너진 사회의 정의를 회복시키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내 분노를 쏟아 부었고, 내 격노의 불길로 그들을 멸절시켰다. 나는 그들의 행실을 따라 그들의 머리 위에 갚아 주었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예루살렘이 찌끼같이 여겨짐 ( 22:17-22 )
(1) 이스라엘 족속이 비참하게 쇠하리라는 예언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은 황금 머리였었으나 나라가 둘로 분열되었을 때 그것은 은으로 된 팔과 같았다. 그 이후 그 나라는 점점 더 저급한 금속으로 쇠락하여 갔다. 즉 '놋, 상납, 철, 납'으로 쇠락하여 갔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그들 가운데 갖가지 부류의 죄인들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끼가 되었나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그와 같이 여겨졌다. 그들은 은이었으나 이제는 '은의 찌끼'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은의 찌끼란 은을 씻어내고 녹이고 정련할 때 은에서 떨어져 나오는 불순물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은의 찌끼가 되었다는 말은 그들이 이제는 쓸데없고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의미이다.
(2) 이렇게 쇠한 이스라엘 족속의 비참한 파멸이 여기에 예언되고 있다.
백성들은 모두 예루살렘에 모였다. 즉 그들은 나라 곳곳에서 예루살렘을 도피처로 여기고 그곳을 피난해 왔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마치 여러 종류의 금속들을 녹여서 찌끼를 분리해 내기 위해 풀무불에 그 금속들을 모으는 것 같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선지자들에 대한 책망 ( 22:23-31 )
(1) 본문에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즉 그 땅은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기에 지극히 마땅한 땅이며 또한 그 땅을 정련시키기 위해서는 이 심판이 매우 필요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는 그 땅을 향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여야 했다. 너는 정결함을 얻지 못한 땅이요. 즉 "마치 정련되지 못한 금속과 같아서 다시 풀무불 가운데 던져질 필요가 있다"라는 의미이다.
(2) 그들 모두가 그 민족의 죄의 분량을 채우는데 협력하였다.
아무도 그것을 비우기 위해 힘쓰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양 가장하여 백성들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삼키기도' 하였다(25절). 그들은 거짓된 화평 가운데로 빠지도록 죄인들을 부추김으로써 그 영혼들을 삼켰다.
제사장들은 본시 가르치는 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이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는 하나님의 율법을 스스로 범하였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변치' 않았다. 그들은 눈을 가리고 하나님의 안식일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 안식일에 백성들의 행위를 돌아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렸다. 방백들 역시 누구못지 않게 율법을 범하였다.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27절). 그들은 공의와 선이 없이 다스리는 권력자들이다.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즉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그들이 행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였다. 회를 칠하는 선지자들은 노략질 하는 방백들을 크게 후원해 주는 자들이다. 권력을 손에 얻게 된 백성은 그것을 남용하는 법을 그들의 방백들에게서 배웠다(29절).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을 중재하기 위해 나서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30절). 죄란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르고 있는 성벽에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그곳으로 선한 일들이 흘러나가며 악한 일들이 들어오게 된다. 그 틈새를 막아서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와 기도와 돌이킴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노'를 돌이키게 하고자 이스라엘을 위해 중재를 하였던 것이 그 틈새를 막아섰던 것이라 할 수 있다(시 106:23).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예루살렘의 죄상 ( 22장 )
예루살렘은 유다의 수도입니다. 그 곳에는 유다의 지도자들이 있고 최고 종교 지도자들이 있으며 유다의 모든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마디로 예루살렘은 유다의 중심지이며 유다의 핵심지였습니다. 이에 본장은 유다에서 이처럼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죄상을 지적함으로써, 예루살렘과 유다가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 우상 숭배
1) 이방신 숭배
유다 거민들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거민들도 이방의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오히려 이방 신 숭배에 앞장서서 유다 모든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으며(참조, 왕상16:30-33) 심지어 자식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몰렉을 숭배했고(참조, 겔20:26) 더 나아가서는 성전 안에서까지도 애굽에서부터 바벨론에 이르러 섬김받는 모든 이방신 들에게 절을 하였습니다(참조, 겔8:1-16)
a.투기의 우상(겔8:5)
b.태양 숭배(겔8:16)
2) 주변 열강 의뢰
예루살렘 거민들은 우상을 섬기는 것만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우상은 우상일 뿐 확실한 것을 보장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좀더 확실한 안전을 보장해 줄 것 같은 주변 열강의 힘을 의뢰했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가장 확실하게 책임질 것처럼 보이는 힘센 나라에 의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쳐 가며 하나님 대신 그들을 의뢰하였던 것입니다(참조, 겔16:23-29).
a.앗수르를 사모함(겔23:5)
b.바벨론 연모(겔23:14-16)
3) 물질 숭배
외국의 강대국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자기 손 밖에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거민들은 보다 확실한 것은 그들 손안에 있는 양식과 재물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하나님보다 물질을 숭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지 아니하고 성물을 더럽힌 행동들은 바로 이러한 물질 숭배의 한 단면입니다.
a.재물을 섬김(마6:24)
b.재산 걱정(마19:22)
2. 불법
1) 부모를 업신여김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하나님께 대한 범죄였다면 이제부터는 사람을 향한 범죄를 다루고자 합니다. 십계명에 의하면 인간은 그 부모를 존경할 의무를 지닙니다(참조, 출20:12). 그러나 예루살렘 거민들은 돈 없는 부모나 늙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게 된 부모들을 멸시하고 그들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들은 패륜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a.부모를 경홀히 여기면 저주를 받음(신27:16)
b.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2)
2) 음란
음행은 하나님께서 매우 경계시키시는 죄악의 하나입니다(참조, 출20:14,17). 음행의 죄악은 단순한 죄악이 아니라 인격 자체를 파괴시키는 흉악한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거민들은 이웃의 아내는 물론 부정한 여인, 심지어 아비와 결혼한 여자와도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들의 성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벽을 넘어 버린 것입니다.
a.음행을 피하라(고전6:18)
b.음행은 육체의 일(갈5:19)
3) 약자 착취
고아와 과부 및 나그네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반드시 행하도록 요구한 준칙입니다(참조, 신24:6-22). 그러나 물질을 숭배한 예루살렘 거민들은 물질을 채우기 위한 그들의 탐욕을 위해 그 준칙을 무시하고, 없는 자의 것을 착취하였으며 그들을 학대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약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은 비인간적인 무리들이었던 것입니다. a.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않음(사9:17)
b.가난한 자에 대한 괄시(약2:6)
3. 불법과 심판
1) 불의한 재판
예루살렘 거민들이 행한 불법 가운데 네번째로 언급되는 것은 그들이 그들의 이해관계를 따라 재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실의 시시비비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만 재판권을 행사하고 공권력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와 부정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로서 예루살렘 거민들의 양심이 매우 부패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증거입니다.
a.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않음(사1:23)
b.자기 이익을 위해 불공정한 재판을 함(렘5:28)
2) 무죄한 살인
살인은 인간에 대한 죄악 중 가장 무거운 죄악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데, 그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죽일 이유가 전혀 없는 데에도 살인한다면 그 죄악은 매우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자기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그 무서운 죄악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죄한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 것입니다(참조, 겔11:6).
a.무죄한 예레미야에 대한 살의(렘26:8-9)
b.무죄한 살육(겔11:6)
3) 심판
이상의 모든 죄악들을 살펴볼 때 예루살렘 거민들의 죄악은 에스겔 선지자가 말하는 대로 소돔 사람들이 보기에도 끔찍한 것이었습니다(참조, 겔16:46-52). 따라서 그러한 예루살렘 거민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살육당하고 그 성읍은 훼파될 것입니다.
a.쇠사슬(겔7:23)
b.행위대로 심판하심(겔9:10)
결론
사람의 행위 가운데 가장 악한 것은 은혜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거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차고 우상을 숭배하며 이방인들보다 더 악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그 공의를 격발시켰습니다.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은 것입니다. 따라서 그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인이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저버리는 것은 멸망을 자초하는 일임을(참조, 히6:4-8;벧후2:9-22) 알고 은혜를 따라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말씀대로 사는 순종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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