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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묵상

죄악의 걸릴돌을 제거하라(14장)/ 열매맺지 못하는 포도나무(15장)

by 은총가득 2021. 3. 1.

죄악의 걸림돌을 제하라(에스겔 14:1-11)

 

 

 

[ 성경묵상 ]

14장 요약 ; 유다 장로들의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을 헌신적으로 섬겨야 할 그들이 도리어 앞장서서 우상을 숭배한 것이다. 이 사실은 정치,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극심하게 타락했음을 시사한다.

14:1-11 ; 하나님의 심판은 구속적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상 때문에 자신을 버린 택하신 자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데에 있다(11절). 하나님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도록 인도하셔서, 그들을 헌신적인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려는 신실한 백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죄악된 목적을 위해 이 예언의 말씀을 이용한다면, 그들은 말씀이 그들로부터 돌아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어리석은 예언을 하는 자들과, 이들에게 의탁하려는 자들은 같은 죄악을 나누게 될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4:1-11에서는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와 여호와 신탁 요구를 동시에 행하는 이중 신앙자들을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시되 그들을 직접 응대하며 선민 사회로부터의 축출하실 것이라는 단호한 의지를 천명하셨음을 선포한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11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자신을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기 위함이다. ​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죄악에서 떠나게 하셔서 하나님과 함께 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에스겔 14장의 주 요점이기도 하고 에스겔서의 가장 중심된 내용이며, 하나님의 주요 메시지이다.

 

 

[겔14:1-23] 우상숭배의 근원지 마음과 예루살렘 멸망의 필연성(에스겔14장)

 

▣ 본문: 에스겔 14장 1-23절 ▣ 제목: 우상숭배의 근원지 마음과 예루살렘 멸망의 필연성 ▣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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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2018년)

우상과 죄악을 버리지 않은 채, 선지자를 찾아와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 달라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끝내야 할 것을 끝내라."

[ 질문 1 ] 에스겔을 찾아온 장로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3절)

[ 질문 2 ] 우상과 죄악을 버리지 않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무엇인가?(8절)

두 주인 섬기는 것을 끝내라(1-8) 이스라엘 장로 몇 사람이 에스겔을 찾아와 나라의 미래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묻습니다(1). 나라와 백성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7), 즉 자신들의 처세를 미리 결정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무섭게 질책하십니다. "너희가 우상을 품은 채로, 그리고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려고 너희가 만들어 놓은 죄악의 걸림돌(올가미)을 치우지도 않은 채로 내게 나온 것이 아니냐? 그러고도 내가 너희에게 대답해 줄 것으로 여겼느냐?"(3) "그런 식으로 선지자에게 물으려 나온다면, 나 여호와가 직접 나서서 너희의 우상의 수효만큼, 죄악의 숫자만큼 보응해 주겠노라."(4)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 먹고 나를 배반하고 우상을 섬겼으니, 마음먹은 그대로 계속 우상을 섬기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마침내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한 지를 맛보게 하리라.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잡아보리라" (5) "즉시 우상을 떠나라(6). 다시 말한다. 우상과 죄악을 품은 채로 선지자에게 물으러 오면. 내가 직접 그를 대적하여 내 분노 앞에서 놀라 자빠지게 하고, 징계의 본보기(표징)와 조롱(속담)거리로 만들 것이며, 내 백성 가운데서 끊어버리겠노라."(7, 8)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제 두 주인 섬기는 것을 끝내야 합니다.

혹두 마음을 품은 채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습니까? 끝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끝내라(9-11) 하나님의 경고는 점점 강력해집니다. "만일 선지자가 너희의 유혹에 넘어가 내 허락 없이 어떤 말을 너희에게 해준다면, 내가 그 선지자를 유혹 가운데 내버려 두었다가. 때가 되면 그를 멸해 버릴 것이다. 선지자를 유혹한 너희의 죄도, 유혹 당한 선지자의 죄도 반드시 물을 것이다."(9,10)

 

두 주인을 섬기는 상태로 선지자를 찾아온다면,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을 들으려면 우상을 버리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나아와야 합니다(11).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함을 버리십시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이스라엘의 장로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 내게로 와서, 내 앞에 앉았다.

2.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때에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3.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사람아, 이들은 여러 우상을 마음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며,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올가미를 자기들 앞에 둔 사람들인데, 내가 과연 이런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

'걸림돌'의 원어의 의미로는 '채여 비틀거리게 하는 것, 넘어지게 만드는 수단'이다. '죄악의 걸림돌'이란 '사람을 넘어지게 혹은 죄 짓게 만드는 나쁜 장애물, 올가미'란 의미이다.​

4.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그러므로 네가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일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서 누구든지, 우상들을 마음으로 떠받들고,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올가미를 앞에 두고 예언자에게 오면, 나 주가 직접 그 많은 우상에 관하여 그에게 답변하겠다.

5.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두 우상 때문에 나에게서 떠났으니, 이제는 내가 직접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하여라.

6.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는 회개하여라. 너희의 우상들에게서 돌아서라. 너희의 모든 역겨운 것에서 얼굴을 돌려라.

7.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가는 모든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서나 이스라엘에 머무는 외국 사람들 가운데서 누구든지, 나를 떠나서 우상들을 마음으로 떠받들며, 걸려 넘어져서 죄를 짓게 하는 올가미를 앞에 두고, 예언자를 찾아와 나에게 물어 본다면, 나 주가 직접 그에게 답변하겠다.

8.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을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에서 끊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이 사람을 정면으로 보고, 그를 표징과 속담거리로 만들며, 마침내 나는 그를 내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릴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9.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

그런데 예언자가 만약 꾀임에 들어 어떤 말을 선포하면, 나 주가 친히 그 예언자를 꾀임에 넘어가도록 버려 둘 것이다. 내가 내 손을 그에게 뻗쳐, 그를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멸망시키겠다.

10.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물어 보는 사람의 죄나 예언자의 죄가 같기 때문에, 그들이 저마다 자기의 죄값을 치를 것이다.

11.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나를 떠나서 길을 잃지도 않고, 다시는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지지도 않게 하여,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심판 중 구원의 개별성, 남은 자를 통한 심판의 정당성(에스겔 14:12-23)

 

 

한국 사회 위협하는 네 가지 재앙m.blog.naver.com

 

[ 성경묵상 ]

14:12-23에서는 심판 집행 중의 구원의 개별성과 남은 자를 통한 심판의 정당성 반증 예고를 보도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먼저 대기근, 맹수, 칼, 전염병이라는 각각의 방법을 통하여 불특정의 어떤 나라를 심판하실 경우를 가정하고 그 각각의 경우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인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 자녀도 구원하지 못하고 오직 그들 자신만 구원할 수 있음을 말씀함으로 인간 각자의 믿음 유무에 따른 구원의 개별성을 사중적(四重的)으로 강조하신다. 이는 온전히 타락하여 믿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된 예루살렘의 멸망의 필연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12-20절).

그리고 계속해서 앞서 언급한 네 가지 재앙 모두를 예루살렘에 보내실 것과 그로 말미암아 그 해가 극심할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러한 혹독한 심판 중에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행실을 통해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혹독한 심판이 정당한 것임이 입증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실 네 가지 재앙은 무엇인가?(13,15,17,19절)

하나님은 네 가지 재앙을 준비하고 계신다.
첫 재앙은 '기근'이다(13절). 설사 의인인 노아, 다니엘, 욥이 나타나 백성을 위해 기도해준다고 해도 그 기근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고 하신다.
두 번째 재앙은 '사나운 짐승의 출현'이다. 그 짐승에게 사람들이 찢기고 죽어갈 때 의인이 백성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도, 기도하는 그들 외에는 누구도 봐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셋째, '칼' 곧 전쟁의 재앙이다. 하나님의 단호하심은 변함이 없으시다(17,18절).
네 번째 재앙은 '전염병'이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결심은 바뀌지 않으신다(19,20절).
징계에 대한 하나님의 결연한 의지를 보면서 이스라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였을까?

[ 질문 2 ] 재앙 이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가?(22절)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봐주실 생각이 없으시다. 더 좋은 계획 곧 하나님다우신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는 '남은 자'를 두시는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이 바벨론에서 나와 본토로 돌아오는 날, 본토의 백성은 위로를 보게 될 것이다(22절). 하나님이 왜 그렇게 징계하셨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23절).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을 새롭게 하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좋으신 계획, 그 두 번째는 자기 백성을 위해 노아, 다니엘, 욥보다 훨씬 뛰어난 중보자를 보내주시는 것이다. 그의 아들 예수님이시다. 자기 백성을 포기 못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 안에 있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2.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13.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사람아, 만약 어떤 나라가 가장 불성실하여 나에게 죄를 지으므로, 내가 그 나라 위에 손을 펴서 그들이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버리고, 그 나라에 기근을 보내며, 그 나라에서 사람과 짐승을 사라지게 한다고 하자.

'불법' ; '은밀한 행동' 또는 '모반'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우상숭뱅함으로써 여호와를 대적한 그들의 배신 행위를 가리킨다.
'기근' ; 사나운 짐승(15절), 칼(17절), 전염병(19절) 등과 함께 네 가지 재앙으로서 레위기 26:22,25,26에 약속된, 배반한 백성에 대한 저주의 언약이다.

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비록 그 나라 가운데 노아와 다니엘과 욥, 이 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세 사람은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자신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노아, 다니엘, 욥' ; 세 사람은 당시에 그들의 믿음과 성결함과 의로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히 다니엘은 에스겔 시대에 생존해 있었던 사람이다. 노아는 심판 때에 오직 자기 식구와 자신만을 구원할 수 있었다(창 6:9 ; 7:1). 그리고 다니엘은 단지 그의 친구들만을 구원할 수 있었다(단 2:17,18). 그러나 욥은 그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한 명도 구원할 수 없었다(욥 1:1,19). 그들의 타락은 누구의 중보 기도로도 효험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15.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 다니게 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 하여 사람이 그 짐승 때문에 능히 다니지 못하게 한다 하자
가령 내가 그 나라에 사나운 짐승들이 돌아다니게 하여, 아이들까지 없애 버리고, 또 그 짐승들이 무서워서 그 땅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땅이 황무지가 된다고 하자.

16.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비록 이 세 사람이 그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져 내지 못하고, 그들 자신만 겨우 구출할 것이며, 그 땅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 여기서 '삶'은 원어상 '존재하다, 살아있다'의 뜻을 가진 유명한 '하야(be) 동사'의 명사형이다. 이 동사에서 '여호와'란 이름이 나왔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는 '스스로 존재하고 영원히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인 나의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가 된다. 어마어마한 말이다.

17. 가령 내가 칼이 그 땅에 임하게 하고 명령하기를 칼아 그 땅에 돌아다니라 하고 내가 사람과 짐승을 거기에서 끊는다 하자
가령 내가 그 나라에 전쟁의 칼이 들이닥치게 하고, 명령을 내려 칼아, 이 땅을 돌아다니며 휘둘러라 하여, 내가 그 땅에서 사람과 짐승을 사라지게 한다고 하자.

18.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비록 이 세 사람이 그 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지지 못하고 그들 자신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19. 가령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내려 죽임으로 내 분노를 그 위에 쏟아 사람과 짐승을 거기에서 끊는다 하자
가령 내가 그 땅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내 분노를 그 땅에 쏟아 부어, 거기에서 사람과 짐승이 피투성이가 되어 사라진다고 하자.

20.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비록 노아와 다니엘과 욥이 그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건대, 그들은 아들이나 딸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마저도 자신의 의로 말미암아 그들의 목숨만 겨우 건질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2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나의 네 가지 중한 벌 곧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예루살렘에 함께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중에서 끊으리니 그 해가 더욱 심하지 아니하겠느냐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사람과 짐승이 사라지게 하려고 나의 네 가지 맹렬한 재앙들, 곧 전쟁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전염병을 거기에 보낼 때에, 그 해가 얼마나 크겠느냐!

네 가지 ; 4라는 숫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보편적인 성격, 즉 심판이 땅의 모든 구석 구석까지 미칠 것을 상징한다(참조, 계 6:1-8).

22. 그러나 그 가운데에 피하는 자가 남아 있어 끌려 나오리니 곧 자녀들이라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아오리니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그 내린 모든 일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재앙을 피한 사람들이 있어서 아들딸들을 데리고 나올 것이다. 그들이 너희에게로 나올 때에, 너희가 그들의 그 악한 행실과 행동을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재앙, 곧 내가 그 곳에 내린 모든 것에 대하여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23. 너희가 그 행동과 소행을 볼 때에 그들에 의해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이 이유 없이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그들의 악한 행실과 행동을 보면 너희가 위로를 받고, 내가 예루살렘에서 한 모든 일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하나님께 범죄한 나라에 임할 재앙 ( 14:12-23 )

(1) 국가적인 범죄는 국가적인 심판을 불러 일으킨다.

"어느 나라가 내게 범죄하여 악습과 사악함이 만연하고 심한 불경건과 부도덕이 온통 퍼졌을 때, 그에 대한 형벌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리라"(13절).

(2) 하나님께서는 죄에 물든 나라들을 벌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심판하신다.

본문에는 '네 가지의 중한 벌'이 서술되어 있다.
1) 기근(13절) : 일반 은총을 물리치고 거두는 것은 그 자체가 심판으로 충분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이 이 땅에 해마다 내는 소산 곧 사람과 짐승을 위한 양식을 끊으사 이들을 끊으신다.
2) 사납고 해로운 짐승들 : 내가 사나운 짐승으로 그 땅에 통행하여 적막케 하며 황무케 하여 사람으로 그 짐승을 인하여 능히 통행하지 못하게 한다 하자(15절).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으로부터 돌이켜 반역할 때, 짐승들이 그 힘으로 인간을 대적하여 일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레 26:22).
3) 전쟁 : 하나님께서는 죄로 물든 나라들을 종종 칼로 징책하신다(17절). 칼아 이 땅에 통행하라.
4) 온역(19절) : 이것은 때때로 성읍의 인구를 멸절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다.

(3) 하나님을 신앙하던 사람들이 그를 배반할 때, 그들은 마땅히 그들 위에 내릴 심판을 예기할 수 있어야 한다.

(4) 대개 죄로 인해 파멸이 다가오는 곳에도 극소수의 선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어느 '불법한' 나라에서조차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세 인물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포로로 사로잡혀 갔다(단 1:6). 예루살렘에 거하던 사람들 중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만일 다니엘이 (그들이 바벨론 왕궁에서의 다니엘의 명성에 대해서 많이 들었던) 예루살렘에 거하기만 했더라면 그곳이 다니엘로 인하여 용서받을 수도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니라, 비록 너희가 옛날 노아와 우스 땅의 욥처럼 험악한 세대와 장소에서 뛰어나게 선한 사람이었던 다니엘과 함께 있다 하더라도 형벌이 연기될 수는 없느니라."

(5) 하나님께서는 매우 사악한 곳에 거하는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로 인해서 종종 그곳에 자비를 베푸신다.

예루살렘의 지지자들이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본문에 암시되고 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쟁변하실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악을 범죄의 분량을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가운데 기도로써 민족이 지은 범죄의 분량을 비우는 자들이 없겠는가?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키시느니 악인을 의인과 함께 보존하실 것이라."

(6)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범죄한 백성들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도록 설복할 것이다.

노아는 자신의 신실성을 지켰다. 그러므로 비록 가족들 가운데 하나가 사악한 자(함)였을지라도, 노아로 인하여 그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 구원받았던 것이다. 욥은 자기 자녀들과 친구들을 위하여 강력한 기도를 드린 사람이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기도할 때 그의 속박을 돌이키셨다. 예루살렘 거민들과 동포이며 고난을 함께 나누었던 다니엘은 매우 겸손하고 즉각적이며 계속적인 기도를 한 사람으로서 노아와 욥처럼 하늘 나라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전처럼 위대하고 선한 사람들을 세우사 우대하고 선한 일을 행하시지 않겠는가?

(7) 백성의 죄가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멸망시키고자 하신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의 경건과 기도라해도 쟁변을 그만두도록 설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리라.

(8) 비록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도록 손을 쓸 수는 없지만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신의 생명만 건질 것이다.'

공동의 재난으로 같이 고통을 당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사악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도리어 그들을 성결케 하며 이롭게 한다. 그러므로 설사 그들의 몸은 건질 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구원받게 된다.

(9)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가장 황폐하게 만드실 때조차도 자신의 자비를 기억케 하시기 위해 몇 명을 남겨 두신다(22,23절).

철저히 파괴되도록 운명지워진 예루살렘에도 남은 자들로서 사로잡혀 간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곧 새로운 세대의 씨가 될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승리한 적들에 의해 끌려 나와 포로로 잡힌 너희에게로 나아올 것이라." 그들은 친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들보다 앞서 바벨론으로 갔음을 인하여 그곳으로 더욱 기꺼이 갈 것이다. "그들이 올 때 너희가 그들의 행동과 소위를 볼 것이라. 너희는 그들이 개심할 것을 약속하며 죄를 모조리 참회하고 회개의 겸손한 신앙 고백을 하는 것을 듣게 될 것이라. 또한 그들이 개심한 증거를 보게 될 것이며 그들이 당한 환난이 그들에게 이로왔음을 보게 될 것이라." 그 행동과 소위를 보면...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 "너희가 잘 이해한다면 내가 예루살렘에 내린 모든 재앙에 대하여 오히려 위로를 받을 것이라." 내가...무고히 한 것이 아닌 줄을 알리라. "너희는 내가 정당한 진노를 발하였음을 알게 되리라. 또한 내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모든 일에는 은혜로운 계획이 있었음도 알게 되리라."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에스겔 15:1-8) ☆☆

 

[ 성경묵상 ]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두 차례의 공격을 받아 초토화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극상품 포도나무인줄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멸망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다 남은 포도나무인 자신들에게 생명이 있음을 착각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15장 요약 ; 15-19장에는 유다의 멸망이 필연적임을 시사하는 일련의 비유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예루살렘이 결단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한 유다 백성의 낙관주의를 여지없이 질책하고 있다.

15:1-8 ; 15장은 예루살렘의 무가치함을 수풀 가운데 있는 보잘것없는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즉 포도나무가 주변에 있는 다른 나무보다 결코 더 나은 점이 없듯이, 예루살렘도 주위의 이방 나라들보다 결코 더 낫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심으신 포도원이기 때문에(참조, 사 5:1 ; 렘 2:21), 예루살렘은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도 잠시일 뿐일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에스겔은 유다인들의 이러한 어리석은 신념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망하되 철저하게 망할 것이라는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5:1-8은 무익한 포도나무의 소각에 비유된 무익한 예루살엠 거민에 대한 불가피한 심판 예고를 보도한다. 여기서 무익한 포도나무란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맺어야 할 그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 무익한 포도나무가 타다 남았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의 일환인 앗수르와 애굽 등 주변 강대국들의 침공으로 인하여 국력이 피폐되고 그들의 심장부인 예루살렘마저도 바벨론에 의해 침공을 받아 황폐하여진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와 같이 타다 남은 무익한 포도나무 잔해와 같은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불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언하시고 있다. - 출처 ; 옥스퍼드 주석

[ 질문 1 ] 포도나무를 생각할 때,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 나은 것이 무엇인가?(2-4절)

사람이 포도나무에 기대하는 것은 오직 하나, 열매이다. 그 볼품없이 늘어진 가지를 가지고는 작은 못 하나 만들지 못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멀쩡한 포도나무 가지도 시원찮은데, 이미 반쯤 불타버린 줄기를 애지중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 예루살렘 주민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아끼시고 지키시는 극상품 포도나무이므로 자신들의 전영과 안전은 영원하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열매 없는 포도나무임을 잊고 있다. 주님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찾으시는지 무관심하며, 그저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남았다는 마지막 자존심에만 집착하는 꼴이 추하다 못해 불쌍하기까지 하다.

주님이 찾으시는 열매는 내버리고, 아무리 가꿔도 쓸모없을 겉치레에만 몰두하는 꼴이 그때 그 사람들의 모습이다.

[ 질문 2 ] 결국 예루살렘이 버려지고 황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8절)

주님은 예루살렘 주민들의 망상을 여지없이 깨뜨리신다.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6절) 이미 두 차례 침략(주전 605년, 597년)을 당하면서도 정신 차리지 않는 그들은 반쯤 불타버린 포도나무 가지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면서도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자신들은 "남은 자"라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독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열매를 찾지 못하여 실망을 넘어 분노하시고 계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듭 배신(8절, 범법)하였다. 열매를 맺는 일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들에게 주님께서도 관심을 두실 리 없다.

무서운 심판을 피할 길은 회개와 순종의 열매 뿐이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아, 포도나무, 곧 삼림 가운데 있는 그 덩굴이 다른 모든 나무에 비해 나은 점이 있느냐?

당시 이스라엘의 중요한 생산물 중 하나가 포도주였기 때문에 익숙한 비유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심어 두신 극상품 포도나무에 비유되기도 한다(사 5:1-7 ; 시 80:8-16).

3.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거기에서 무슨 물건을 만들 목재가 나오느냐? 그것으로 나무 못을 만들어서 무슨 물건을 거기에다 걸어 둘 수 있느냐?

4.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은 땔감으로 불 속에나 던져 버릴 것이다. 그 양쪽 끝은 타 없어졌고, 그 가운데 부분도 그을었는데, 그것이 물건을 만드는 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5.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그 포도나무가 온전할 때에도 무슨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없었거늘, 하물며 그것이 불에 타고 그을었으니, 무슨 쓸모가 더 있겠느냐?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삼림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를 내가 불 속에 땔감으로 던져 넣듯이, 예루살렘의 주민을 불 속에 던지겠다.

7. 내가 그들을 대적한즉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르리니 내가 그들을 대적할 때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내가 그들을 대적하겠다. 비록 그들이 불 속에서 피하여 나온다 해도, 불이 다시 그들을 삼킬 것이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면,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8. 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그들이 크게 배신하였기 때문에, 내가 그 땅을 황무지가 되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 ]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예루살렘 멸망의 예고 ( 15:1-8 )

추측컨대 선지자는 예루살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성읍이었으며, 그것이 멸망하는 것이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예루살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심으로써 그들에게 답변하신다. 만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귀중한 나무이다. 예루살렘이 바로 그렇게,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기웠었다(렘 2:21).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만일 거룩한 성읍으로서 그 특성에 알맞는 열매를 맺었더라면, 성읍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모두의 영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그것은 가시나무와 찔레나무처럼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될 것이다.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2절). "만일 포도나무가, 재목으로 쓸 목적으로 심은 삼림의 나무들이 거의 열매를 맺지 못하듯,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과실 나무가 아니지 않는가?" 어떤 과실 나무들은 결실하지 못한다면 그 나무를 목재로 활용할 수 있지만, 포도나무는 그런 종류에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포도나무가 과실 나무로서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면 아무 가치가(목재용 나무로도) 없는 것이다.

(1) 이 비유가 본문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들포도나무 또는 결실이 없는 포도나무는 전혀 무익하다.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3절). 식물 중에 어떤 것은 뿌리가, 어떤 것은 씨나 열매가, 어떤 것은 잎사귀가, 또 어떤 것은 줄기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이처럼, 나무들 가운데는 참나무와 삼나무처럼 열매는 맺지 못하나 단단한 나무가 있다. 또한 어떤 것들은 포도나무처럼 약하지만 결실이 매우 풍성한 것도 있다.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가 무엇을 제조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면 그것은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다(4절). 아무데도 쓸데없는 나무라면 이 방법 외에는 달리 용도가 없는 것이다.

(2) 이 비유가 예루살렘에 적용되고 있다.

그 거룩한 성은 무익하고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그 성은 포도원에 있는 포도나무처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의의 열매가 풍성하였었다. 하나님에 대한 순전한 예배가 지켜질 때에는 즐거운 포도 열매를 많이 거두어 들였었다. 그리고 이러한 예배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셨으며, 그것은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사 5:7)가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물을 주시며 밤낮으로 간수하셨다'(사 27:3). 그러나 그것은 이제 타락한 이방 포도나무, 곧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포도나무'가 되어버려, 메스껍고 해로운 들포도를 맺는(사 5:4) 야생종이 되었다. '그들의 포도는 쓸개 포도니 그 송이는 쓰다'(신 32:32).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니라(8절).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속였던 것이다. 유대 민족은 거룩한 백성으로 알려졌으나, 그들이 사악해지자 그때부터는 무익하게 되어 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유익함을 모두 잃어 버리고 이방인의 발 아래 짓밟혀 태양 아래에서 가장 천하고 멸시받는 백성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은총의 영광에 대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들은 그의 분노의 불을 붙일 땔감이 되고 말 것이다(6절). '예루살렘 거민'은 썩어 버려 귀찮은 포도나무 가지와 같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하실 것이다(7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의 모든 계획을 무산시켰기 때문이다. 내가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그러므로 '그들이 그 불에서 나와도 불이 그들을 사를' 것이다(7절). 그들은 고향에서 재난을 겪다가 바벨론으로까지 가서 재난을 겪게 될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포도나무 비유 ( 15장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법과 강포를 행하는 유다 백성에게 진노의 재앙을 내릴 것을 직접적인 언어를 통해 또는 상징적 행동을 통해 선포하셨습니다. 본장은 포도나무 비유라는 상징적 언어를 통해 하나님께서 범죄하고 패역한 유다를 버리시고 징계하실 것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 포도나무의 특성

1) 재배 식물

포도나무는 자연 상태에서는 열매를 맺기가 힘듭니다. 포도나무는 연약하기 때문에 그것에게 물과 양분을 주고, 뿌리를 파헤치는 여우로부터 지켜 주며, 버팀목을 세워 주고, 바람으로부터 막아 주는 등의 재배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한마디로 포도나무는 스스로 열매 맺지 못하기 때문에 보호의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이 손길이 없을 때 포도나무는 줄기를 제대로 뻗지 못하고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합니다.

?모든 백성 중에서 보호하심(수24:17)

2) 가지 식물

포도나무의 외형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계절은 겨울입니다. 포도나무는 땅 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 뿌리 부분을 제외하고 나면 가늘고 긴 줄기밖에 거의 없는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커다란 잎사귀들로 덮여 있어 무성해 보이나 그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됩니다. 겨울에 드러난 그 모습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같은 줄기 식물인 넝쿨식물처럼 끈으로도 사용할 가치도 없으며 기둥 나무처럼 목재로 사용할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a.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심은 가지(사60:21)

b.예수는 포도나무 성도는 가지(요15:5)

3) 많은 열매

포도나무가 나무 자체로는 아무런 모양도,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자체의 생장력으로는 자라지도 열매를 맺지도 못하여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수고하여 포도를 재배하는 이유는 그 나무가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를 풍성하게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 열매가 향기와 달콤한 음료와 충분한 양분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a.포도 열매를 거두라(레25:3)

b.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음(왕하19:29)

 

2. 이스라엘과 포도나무

1) 연약함

앞에서 우리는 포도나무의 특성을 살펴볼 때 포도나무는 연약한 가지 식물이라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그러한 포도나무에 비유한 것은 유다 백성이 그와 같이 연약한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다 백성의 조상인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민족보다 수효에 있어서도 적었으며(참조, 신7:7) 그 민족의 탄생 때에도 거주할 땅조차 가지지 못한 채 애굽에게 학대받던 연약한 민족이었습니다(참조, 겔16:1-7).

a.가장 적은 이스라엘 민족(신7:7)

b.약한 것을 택하여 강하게 하심(고전1:27)

2) 쓸모 없음

유다의 조상들인 이스라엘 백성의 최초 조상인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던 데라의 아들이었습니다(참조, 수24:2). 그러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민족을 이루었으나 땅도, 군대도, 법률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민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자체로는 이방 민족들처럼 법률을 만들거나 문화를 발달시켜 인류 사회에 공헌할 여력도 없었으며, 더욱이 하나님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은 처음 그 자체의 상태로는 인류와 하나님께 아무런 돋臍?없는 민족이었습니다.

a.피투성이 같은 이스라엘 민족(렘16:6)

b.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롬3:23)

3) 순종과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포도 나무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재배의 손길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음에도 사람이 그것을 재배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에게 유용한 열매를 제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그 민족 자체로는 연약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여 은혜를 베푸신 것은 그들에게서 하나님만을 섬겨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이 세상에 심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유다의 존재 가치는 하나님 섬김과 이웃 泳好?있었습니다.

a.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심(삼상15:22)

b.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함(히11:6)

3. 버려지는 포도나무

1) 이유

전술한 바와 같이 유다의 존재 가치는 그들이 하나님만을 섬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방백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불법을 행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의 의를 짓밟았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열매 없는 포도나무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a.버렸으니 버림(호4:6)

b.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마21:19)

2) 경과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존재 의무를 다하지 아니한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는 방법은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군대를 사용하여 유다를 침공하게 하심으로써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찍어 불에 넣듯이 유다를 칼로 죽게 하고 전화 속에 불타게 만들었습니다(참조, 겔5:2).

a.불에 타는 예루살렘(왕하25:9)

b.살육당한 유다 백성(대하36:17)

3) 결과

언약을 파기하고 교만하며 선민 의식 속에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징계를 받아 멸망하자 유다는 그 교만이 꺾이고 선민 의식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만국의 웃음 거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비참한 종말을 맞게 된 것입니다.

a.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마24:51)

b.말라지고 불에 살라짐(요15:6)

결론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의 말로는 다 비참한 멸망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 없는 나무는 철저하게 버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한 가지 희망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징계는 새로운 시작을 여는 기회라는 것입니다(참조, 겔11:16-20).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심판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며 그것을 달게 받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오늘 묵상은 포도나무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포도나무는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아니라면 나무로서는 정말 볼품이 없는 나무입니다. 곧게 뻗어 기둥으로 쓸 수 있는 나무도 아니며 튼튼해서 어떤 재료로 쓰기에 부적합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화목으로 밖에는 쓸데가 없습니다. 화목으로 쓰기에도 사실은 너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포도나무가 빛을 발하려면 주렁주렁 탐스러운 포도송이를 달고 있을 때입니다. 바로 이 그림을 이스라엘 백성에 비유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에스겔 15장은 바로 이렇게 아무런 쓸모가 없어 불에 던져지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하나님 앞에 무익한 예루살렘 거민도 이처럼 버려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5절은 전혀 쓸모없는, 곧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재질도 좋지 못한 포도나무는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숲속의 여러 나무 가운데에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 그것으로 무슨 그릇을 걸 못을 만들 수 있겠느냐? 불에 던질 땔감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이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 그럽니다.

여기까지는 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에 관한 말씀입니다.

6~8절은 이 비유의 해석입니다. 이스라엘이 원래 포도나무와 같이 모든 나무보다 뛰어난 유용한 나무였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여 불에 던져지는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 묵상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포도나무로서 이스라엘이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란 선민의식(選民意識)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화목으로도 부족한 포도나무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포도나무와 같습니다. 값없이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포도나무 열매처럼 탐스러운 열매입니다. 그 열매는 성령의 열매이매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신의 성품이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 열매가 없다면 우리 또한 아무것에도 쓸데없는 화목같은 존재들인 것입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눅 13:8~9). 아멘.

 

출처 ; 메튜헨리 주석<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