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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묵상

예루살렘 성전 환상(에스겔 8-11장)/ 예루살렘의 우상숭배 현장 (8장)

by 은총가득 2021. 3. 1.

예루살렘 성전 환상(에스겔 8-11장)

 

 

 

본 단락은 3:16-32:32의 전기 심판 예언 중에서도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주어진 예언들로서 주로 남유다 멸망 예언을 수록한 전반부 3:16-24:12의 연속 부분이다. 이러한 본단락은 3:16-7:27의 계시가 주어진지 약 1년 2개월 정도가 지난 B.C. 592년 6월 5일에 받은 것으로 보이는 계시를 수록한 제 8-13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의 전반부이기도 하다.

또한 본단락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우상 숭배를 보여주는 환상과 그에 따른 심판 집행 예언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소위 ‘성전 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성전 환상’은 예루살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 하나님의 성전까지 우상 숭배로 더럽힌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있음을 보여주는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본단락을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전 환상의 개시 부분인 8:1-18은 에스겔의 영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전 경내에서 행하여지던 가증하고도 광범위한 우상 숭배의 실상을 목격한 사실을 보도한다. 에스겔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문 어귀 북쪽에는 ‘질투의 우상이 있었고(5절), 성전 뜰 문과 연결된 담 안의 비밀 공간에서는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를 비롯한 칠십 인의 장로들이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의 형상을 사방 벽에 그려 놓고 숭배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으며(7-13절), 성전 뜰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페니키아 지역의 우상인 담무스를 위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14,15절). 또 성전 안뜰의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는 25인의 제사장들 곧 대제사장과 24반열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여 태양신 숭배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16절).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위한 만신전(萬神殿, Pantheon)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다음 9:1-11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까지 우상 숭배로 더럽힌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심판 집행자에 의한 선민의 구분과 살육 환상을 보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로 성전까지 더럽힌 예루살렘을 심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천사들을 호출하시는데 그들은 모두 일곱이었다(1,2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심판을 집행하게 하시기에 앞서 이들 중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 복장을 한 한 천사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시고 손에 살상 무기를 들고 있던 여섯으로는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 곧 우상을 숭배한 예루살렘 거민들을 살육하게 하셨다(3-7절). 여기서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는 다른 여섯 천사에 앞서 구원받을 의인에게 인친 행위는 최후 심판 때에 네 천사가 세상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앞서 한 천사가 구원받을 의인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행위를 연상케 하여 주는데(계 7:3,4),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하고도 깊은 사랑을 잘 반영하고 있다.

다음 10:1-8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거민 중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위하여 의인의 이마에 표를 하였던 서기관 복장의 천사를 향하여 예루살렘 성읍 위에 숯불을 살포하도록 명하신 사실과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천사의 일련의 행위들을 보도한다(1,2,6-8절). 특별히 여기서는 지성소의 그룹 위에 머물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3-5절), 하나님께서 이처럼 지성소 그룹으로부터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것은 우상으로 더럽혀진 성전과 예루살렘성으로부터 떠나가시기 위한 일단계 행동으로써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에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임박하였음을 나타내준다.

다음 10:9-22은 성전 지성소로부터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성전을 나와 그룹을 타고 성전 바깥뜰의 동문으로 이동하신 사실을 보도한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동 수단으로 삼으신 네 그룹의 면모를 밝히며 그 네 그룹이 에스겔의 소명 당시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네 생물임을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에스겔이 네 그룹의 면모를 밝히며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네 생물과의 동일성을 거듭하여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일전에 본 네 생물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였다가 여기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은 비록 지상 성전을 떠나가시고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은 파괴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지상 성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우주 만물과 역사와 인생 각자를 섭리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다음 11:1-13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성전 동문에서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 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는 말로써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짓 안전을 유포하는 이십 오인의 고관들을 대항하여 고관들이 주장한 가마와 고기의 비유의 역설적 인용을 통하여 무죄한 사람들을 죽인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선포한 사실(1-12절)과 에스겔의 예언을 확증하는 증거로 에스겔이 심판 예언을 선포하는 중에 이십 오인의 고관 중의 하나인 블라다가 죽은 사실과 남은 자를 위한 에스겔의 호소(13절)를 보도한다.

끝으로 11:14-25은 ‘성전 환상’ 기사의 종결 부분으로서 11:13 후반부의 에스겔의 남은 자를 위한 호소에 대한 답변으로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이방 포수로부터의 회복 약속을 보도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remnant)’의 개념을 에스겔과는 달리 말씀하신다. 즉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던 자들을 남은 자로 부르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열방에 흩어진 자들의 신앙 회복과 그에 따른 그들의 귀환을 말씀하심으로 진정으로 남은 자는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 포수되어 있는 자들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21절)고 말씀하심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남은 자는 지역과 같은 외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결정됨을 강조하시고 있다.

한편 본문은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떠나 성 밖 감람산으로 이동하신 사실과 에스겔의 영이 다시 바벨론으로 복귀한 사실도 함께 보도하고 있는데(22-25절), 여기서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랩성 밖으로 이동하신 사실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임박성을 동시에 시사하여 준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택한 선민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의 지상 임재 처소로 삼으신 거룩한 성전에서 갖가지 우상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숭배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을 행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우상 숭배가 가장 가증하고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라도 쉽게 범할 수 있는 범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선민으로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도리를 알고 있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을 숭배하되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서까지 우상 숭배에 몰두하였다. 이는 우리 성도들 역시도 인간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우상 숭배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비록 유형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 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형의 우상들을 두고 숭배할 수 있다. 특히 무형의 우상에 대한 숭배는 성도들도 너무도 쉽게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그리고 우상 숭배는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든지 우상 숭배자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아무리 주의하고 경계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성도들은 무형의 우상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의 처소로 삼으시는 우리의 마음속에 두고 숭배하지 않도록 각성하며 자신을 늘 살펴야 할 것이다(고전 3:16,17).

둘째,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앞서 먼저 의인들의 이마에 인(印)을 쳐 그들을 보존하신 사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때문에 악인에 대하여는 절대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해도 의인은 반드시 구별하여 보존하신다. 이는 죄악이 관영한 소돔을 멸하시는 와중에서도 먼저 의인 롯을 구원하신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돔에 대한 심판 작정을 듣고서 롯을 염두에 두고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는 것이 불가함을 피력하였다(창 18: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멸하기에 앞서 천사를 보내어 롯을 소돔으로부터 이끌어 내셨다. 이는 아브라함의 주장을 하나님께서 수용하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 때에도 세상을 심판하여 악인들을 모두 멸하기에 앞서 먼저 이마에 인쳐진 의인들을 하늘로 들어 올려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보존하실 것이다(살전 4:17).

셋째, 하나님의 영팡이 성전과 예루살렘 성읍으로부터 떠나가심과 동시에 예루살렘이 재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끝내 멸망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고자 택하신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그곳 성전의 지성소에 임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성전에 임재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안전의 보장이었다. 히스기야 시대인 B.C. 701년 앗수르의 수십만 대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함으로써 예루살렘은 멸망의 위기에 처하였다. 누가 보아도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한 것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앗수르의 대군이었다(사 37:36-38). 이는 예루살렘 성이 견고해서가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셔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신 까닭이다. 그에 반해 유다 말기에 하나님께서는 성전까지도 온갖 우상으로 더럽힌 예루살렘 거민들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성전은 물론 아예 예루살렘 성읍으로부터 떠나가시고 말았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의 함께하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은 평강과 안전과 승리와 축복의 보장이 된다. 반면 하나님의 떠나섬은 파멸과 패배와 실패의 단초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절대 자기에게서 떠나시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도들은 우상 숭배를 비롯한 모든 죄악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함께하시지 않 으며 죄가 있는 곳에 머물지 않으신다.

넷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던 자들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 포수된 자들을 ‘남은 자’로 규정하시고 그들이 신앙의 회복을 통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겉으로 나타난 양상만 보면 남은 자는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 남아 었던 자들이며 바벨론 땅에 포수된 자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들이다.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은 자신들을 의로운 자요 남은 자라고 여기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악인들이라고 멸시하였다.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남기신 남은 자로 여긴 것은 에스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이 남은 자가 아니라 바벨론 땅에 포수된 자들이 남은 자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신앙 회복을 통하여 회복될 것임과 그들 중에서도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따르는 자들 곧 우상 숭배자들은 회복되지 못하고 행위대로 심판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심으로 진정한 의미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는 자들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렇다. 남은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은 자를 남겨두시어 당신의 구속사를 종말까지 이어가시며 마침내 남은 자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단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성결하게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심판 날에 영원한 파멸 가운데 버려 자신들의 위선과 교만의 결국이 무엇인지 알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남은 자들이 되라. 아합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의 남은 자와 같이 온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어가고 신앙이 변질되어 가는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성결하게 지키자.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 현장(에스겔 8:1-18)

 

[ 성경묵상 ]

성전 환상의 개시 부분인 8:1-18은 에스겔의 영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전 경내에서 행하여지던 가증하고도 광범위한 우상 숭배의 실상을 목격한 사실을 보도한다.

에스겔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문 어귀 북쪽에는 ‘질투의 우상이 있었고(5절), 성전 뜰 문과 연결된 담 안의 비밀 공간에서는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를 비롯한 칠십 인의 장로들이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의 형상을 사방 벽에 그려 놓고 숭배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으며(7-13절), 성전 뜰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페니키아 지역의 우상인 담무스를 위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14,15절). 또 성전 안뜰의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는 25인의 제사장들 곧 대제사장과 24반열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여 태양신 숭배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16절).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위한 만신전(萬神殿, Pantheon)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질문 하나 ]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이 어떠한가?(3-6절)

[ 질문 둘 ] 우상 숭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소개되고 있는데, 누가 보이는가?(11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에스겔서는 에스겔이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은 시점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지고 었으며 본서 전체가 대체적으로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은 시간 순으로 배열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1:1에서 그 시점이 제시되며, 두 번째는 8:1에 제시되고, 세 번째로는 12:1에 제시된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로 시점이 제시되는 제8-11장은 하나로 묶어질 수 있다. 이처럼 한 단락으로 묶여지는 제8-11장에서는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관한 환상을 본 것과 그 환상 가운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를 격발시키는 가증스런 우상 숭배에 탐닉하여 있는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 심판을 준비하시는 모습과 관련된 일련의 예언이 주어진다.

이러한 예언은 앞선 7:20-22절에 예언된 예루살렘 멸망이 유다의 범죄 행위로 말미암은 정당한 하나님의 심판이란 사실을 확증해 준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유다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 등이 예언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어지는 예루살렘 멸망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시드기야 왕은 그런 사실을 예언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는 등 노골적으로 극심한 핍박을 가했다(렘 32:1-5).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본장에서 제시되는 예루살렘의 만연하고 패역한 우상 숭배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과 심판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먼저 1-4절은 성전 환상에 대한 서언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에스겔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동하는 환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다음 5,6절은 성전 북문 입구에 세워진 질투의 우상에 대해 기록한다.

다음으로 7-13절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던 은밀한 우상 숭배에 대해 기록하며,

14-15절은 담무스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16-18절은 태양신 숭배와 더불어 이처럼 가증한 우상 숭배로 인해 여호와께서 조금의 긍휼하심도 없이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임을 선언하신 사실을 기록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이상의 네 가지 우상 숭배가 모두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참으로 경악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고, 여호와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그곳이 가증한 우상 숭배의 온상으로 변해 버린 사실은 여호와께서 더 이상 그곳에 임재해 계실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더군다나 이러한 각종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정치적 · 종교적 지도자들과 더불어 여자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이라는 사실은 유다 백성 전체가 다 우상 숭배에 골몰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9장에서 11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성전으로부터 시작됨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이 성전으로부터 떠나가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떠나심이 유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저지른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패역한 범죄 행위 즉 우상 숭배로 말미암은 것임을 부각시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즉 심판은 유다 백성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성전에서 떠나시도록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1.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제 육년 여섯째 달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아 있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주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서 나를 사로잡으셨다.

2.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내가 바라보니, 사람의 형상이 보였는데, 허리 밑으로는 모양이 불처럼 보이고, 허리 위로는 환하게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처럼 보였다.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그 때에 그 형상이 손처럼 생긴 것을 뻗쳐서, 내 머리채를 잡았다. 하나님이 보이신 환상 속에서, 주의 영이 나를 들어서 하늘과 땅 사이로 올리셔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안뜰로 들어가는 북쪽 문 어귀에 내려 놓으셨다. 그 곳은 질투를 자극시키는 질투의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전에 들에서 본 환상과 같았다.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어서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아라."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문의 북쪽에 제단이 있고, 문 어귀에 바로 그 질투의 우상이 있었다.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이느냐? 그들은 여기서 가장 역겨운 일을 하여, 나의 성소에서 나를 멀리 떠나가게 하고 있다. 그러나 너는 더 역겨운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그는 나를 이끌고, 뜰로 들어가는 어귀로 데리고 가셨다. 내가 거기에서 바라보니, 담벽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어서 그 담벽을 헐어라." 내가 그 담벽을 헐었더니, 거기에 문이 하나 있었다.

9.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하고 있는 그 흉악하고 역겨운 일들을 보아라."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내가 들어가서 보니, 놀랍게도, 온갖 벌레와 불결한 짐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담벽 사면으로 돌아가며 그려져 있었다.

11.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명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이 그 우상들 앞에 서 있고,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는 그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들은 각각 손에 향로를 들고 있었는데, 그 향의 연기가 구름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자기가 섬기는 우상의 방에서, 그 컴컴한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았느냐? 그들은 주께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으시며, 주께서 이 나라를 버리셨다고 말하고 있다."

13.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이 하고 있는 더 역겨운 일을 보게 될 것이다."

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는 나를 주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북문 어귀로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 곳에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 신을 애도하고 있지 않은가!

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잘 보았느냐? 이것들보다 더 역겨운 일을 또 보게 될 것이다."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그가 나를 주의 성전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의 성전 어귀에, 바로 그 현관과 제단 사이에 사람이 스물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주의 성전을 등지고, 얼굴을 동쪽으로 하고 서서, 동쪽 태양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네가 잘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하고 있는, 저렇게 역겨운 일을 작은 일이라고 하겠느냐? 그런데도 그들은 온 나라를 폭력으로 가득 채워 놓으며, 나의 분노를 터뜨리는 일을 더 하였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자기들의 코에 갖다 대는 이교 의식까지 서슴지 않고 하였다.

나뭇가지를 코에 두는 것을 단순히 불쾌하게 모욕하는 행위로 보는 이도 있고, 이교 의식의 일부로 보는 이도 있다. 문맥상 이교 의식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나도 이제는 내 분노를 쏟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조금도 가엾게 여기지도 않겠다. 그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부르짖어도,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겠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Ⅰ. 투기의 우상 8:1-6

에스겔은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전장들에서 전했던 진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과 관계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일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되며 이 환상은 11장 끝까지 계속된다.

(1) 에스겔이 보았던 첫 번째 환상은 포로된 지 제 5년 4개월 5일째 되는 날에 있었다(겔 1:1,2).

이 환상은 그 후로부터 정확히 14개월 후의 일이었다. 이는 아마도 그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짊어지기 위하여 좌편으로 390일 동안 누워 있었던 후요, 그가 유다의 죄악을 짊어지기 위하여 우편으로 40일 동안 눕기 시작하기 전이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그가 당시에 누워 있지 않고 집 안에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2) 선지자는 아마도 깊은 명상에 잠겨 그의 집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포로로 잡혀왔던 유다의 장로들이 선지자 앞에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어떤 비상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곧 그 장로들이 여호와께 묻기 위하여 그에게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자 선지자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유다의 장로들은 포로가 된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더욱 존경하였으며 그의 말을 자신들의 입에 두었다. 사역자의 집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이웃들을 위하여 일종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은 자신이 세를 낸 집에서 설교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그를 두셨으므로 아무도 그를 금하지 못했다.

(3) 선지자는 당시 하나님의 감화 아래 있었다.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1절).

(4) 선지자가 본 환상은 다음과 같다(2절).

그는 한 현상, 즉 그 허리 이하의 모양을 불 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는 형상을 보았다. 이 형상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묘사와 동일하다(겔 1:27).

(5)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그는 '천지 사이로'들려 올라갔다. 그때 아마도 황홀경 또는 무아 지경 속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던 듯하다. 생각컨데 바울의 경우와 같이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땅 위에 올려지며 또 땅의 것들에서 올리움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통과 그 광채가 접하기에 최상으로 예비된 사람들이다. 선지자는 환상 중에 예루살렘에 옮기워져 그 곳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로 안내되었다.

(6)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보았다.

1) 그는 전에 보았던 것과 동일한 모습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참조. 1장).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영광의 환상이 여기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영광스럽게 보이면 보일수록, 죄 특히 우상 숭배의 죄는 더욱 추악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2) 그 곳에서 이스라엘의 치욕거리 곧 '제단 북향 문에 있는 투기의 우상들'을 보았다(3,5절).

이 우상은 아마도 므낫세가 만들어 성전 안에 세워둔 바알의 상이었던 듯하다(왕하 21:7;대하 33:3).

이 상들은 요시아가 제거해 버렸으나 그의 후계자들이 되돌려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요시아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는 곳에서 발견했던 태양 수레들을 그들이 다시 되돌려 놓았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그것들이 문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우리로 하여금 그 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우상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극도로 대적하는 것이요, 투기를 자극하는 것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그 우상을 '투기의 우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이것이 이 백성들을 내어쫓을 근거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자기의 성소를 존귀케 하지 아니하시고 성소를 보호하지도 아니하시며 오히려 수치를 당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한 가지 가증스런 것이 있는 곳에는 다른 가증한 것들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죄를 한 번 짓게 되면 계속 짓게 된다.

장로들의 타락상 ( 8:7-12 )

 

예루살렘의 성전 경내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가증한 일에 대한 설명이 여기에 나타난다.

(1) 어떻게 이러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는가.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뜰 문' 곧 성전의 바깥 뜰로 데리고 갔다. 그 뜰의 좌우에는 제사장들의 숙소가 있었다. 그런데 '담에 구멍이' 있었다(7절). 즉 첩자가 염탐할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에스겔이 그 구멍이 있는 '담을 허니 문이 하나' 나타났다(8절;흠정역에는 '그 구멍을 넓히니'라고 되어 있다-역주). 에스겔은 이 문 안으로 들어가 창고 또는 제사장들이 기거하는 방 중 하나를 택하여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목격한다(9절).

(2) 그 내용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우상의 그림으로 사면이 그려진 방을 보게 된다(10절). 이는 판테온 곧 온간 우상을 다 모아놓은 일종의 수집소같은 것이었다. 제 2계명이 금하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새긴 우상'이었지만 그려진 우상 역시 사악하고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다. 선지자는 이 방에 우상 숭배자들이 꽉 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곳에는 이 그려진 우상들에게 분향하고 있는 칠십인의 '이스라엘 장로'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각자 손에 향로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자칭 모두 제사장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눈 밖에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12절).

태양과 담무스 숭배 ( 8:13-18 )

(1) 선지자는 더욱 가증스런 일들을 목도하게 된다(13-15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14절). 혹자는 이 여인들이 애곡한 우상은 헬라인들의 우상 가운데 하나인 아도니스(Adonis)였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애굽인들의 우상인 오시리스(Osiris)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우상의 형상은 우는 모습이었고 따라서 숭배자들도 그 우성과 더불어 울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여인들은 이 담무스의 죽음을 슬퍼했으나 얼마 안되어 담무스가 다시 소생하였기 때문에 기뻐했다. 이 애곡하는 여인들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복문'에 앉아서 우상 숭배의 가증한 눈물을 뿌렸다. 어떤 이들은 이 여인들이 육체적인 간음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태양을 숭배하였다(16절). 여호와의 전 안뜰에...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오 동방 태양(떠오르는 태양)에 경배하더라.

(2) 이러한 광경들에서 이끌어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17절).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너는 여호와의 전에서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을 전에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기소를 하신다. "하나님의 계시와 규례들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수난을 당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이...또 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계속해서 자극하고 또 자극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이 구절을 마소라 사본처럼 "그들이 나무가지를 자기들의 분노, 또는 그의 진노에 두었느니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이미 불붙여 놓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그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땔감을 가져오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자비를 구하는 그들의 기도소리보다는, 복수를 부르는 죄악의 소리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 본문: 에스겔 8장 1-18절

 

▣ 제목: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성전의 우상숭배 환상과 다원주의

 

 

 

▣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당연시 되는 다원주의

 

현대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방식도 다르고 삶의 모습도 다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도 다르다. 특히 자신의 개성이 존중받고, 다른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어하는 현대인의 특징은 자기만이 옳다는 신념에 가득 차 있으며, 이로 인해 정말로 무엇이 진리인지를 따지기보다는 지신이 원하고 바라는 것이 곧 진리가 되는 시대를 만들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 가장 환영 받는 것이 다원주의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다원주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도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편하고 좋고 유익하면 그것이 곧 진리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곧 커다란 재앙을 양산한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무질서를 만들고, 그렇게 생성된 무질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성을 파괴한다. 그리고 결국 인간의 파멸로 몰락한다. 바로 2,600년 전, 에스겔이 본 환상이 그것을 증거한다.

 

Ezekiel 8:2 The Man of Fire

 

▣ 유다의 장로들과 함께 본 에스겔의 환상

 

오늘 본문 1절은 에스겔이 이 환상을 언제 보았는지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그 환상이 얼마나 사실적이며 실제적인 것인가를 드러내는 증거이다. 본문은 그 날을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라고 기록한다. 이것을 성경의 연대기로 보면, 여호야김의 바벨론 포로기에서 6년이 되는 해의 여섯째 달 5일이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주전 592년 9월 17일 혹은 18일 정도이다. 이것은 에스겔이 첫 번째 소명환상으로부터 약 14개월이 지난 시점을 의미한다. 에스겔은 그 14개월 동안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 성읍이 파괴되는 상징적인 행위들을 수행했다. 일종의 비유행동인 셈이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 에스겔이 본 환상은 무엇인가? 먼저 본문은 에스겔이 환상을 본 장소적 배경을 설명한다.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1절) 그리고 그는 유다의 장로들에게 환상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내용은 유다의 장로들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유다의 장로들은 무엇 때문에 에스겔을 찾아갔을까? 본문에는 정확히 그 의도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들은 아마도 어지러운 세상 가운데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호의적이고 반가운 소식을 기대하면서 에스겔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성경에는 언급되어 있는데, 열왕기하 6장 32절에는 사마리아 장로들이 엘리사 앞에 앉아 하나님의 격려의 메시지를 들었으며, 에스겔 14장 1절과 20장 1절도 그와 비슷하게 장로들이 에스겔을 방문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호의적인 소식을 기대하던 그들에게 쏟아진 예언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되고 말았다.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것이 아니라, 왜 예루살렘이 그렇게 무너져야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내용에는 이스라엘의 종교/사회의 지도층인 장로들의 부적절한 행동들이 묘사되어 있었다. 무척 안타깝고 가슴 아픈 순간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비록 우리는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단순히 입발림의 메시지보다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말씀들을 선포한다. 사실 대부분의 구약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들은 회개와 돌이킴을 촉구한 것이었다. 즉,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그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망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메시지였다. 물론 이것에는 그들의 죄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깨닫게 하는 것을 통해, 이제는 그 악한 것에서 돌이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다.

 

Ezekiel 8:1 With the Elders of Judah

 

▣ 에스겔의 환상 4가지

 

그렇다면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본 환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본문에는 4가지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3-6절까지는 ‘질투의 우상’이 보이며, 7-13절까지는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각양 곤충과 짐승과 모든 우상을 섬기는 장면을 보여주며, 14-15절은 ‘여인들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장면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16절은 25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태양신’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근처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각 환상이 진행될수록 그 강도와 농도가 진해지고 있다. 또한 예루살렘 성읍에서 예루살렘 성전 안까지 점점 성전 중심 쪽으로 우상숭배가 자행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제시하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의 우상숭배에 있는데, 그것도 단순히 이스라엘 변방에서 한두 명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우상을 섬겼으며, 그것도 가장 하나님이 귀중하게 여기시는 성전에서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잘 알다시피, 성전은 하나님을 높이고 제사하는 가장 소중한 장소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 한분만을 섬겨야 하는 그 성전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섬김의 대상도 어느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척 다양하고 포괄적인 우상들이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모습에 분노하셨고, 이는 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근거가 되었다.

 

Ezekiel 8:7 Digging the Wall

 

▣ 에스겔의 환상 - ① 질투(투기)의 우상(가나안 제의)

좀 더 자세히 보자. 예루살렘 성읍의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는 ‘질투의 우상’이 있었다. 정확히는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이 있었다(3절). 학자들은 그 우상을 가나안 지방에서 섬기던 아세라 상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북쪽은 이스라엘이 외세로부터 침략을 받는 방향이다. 그런데 그곳에 질투의 우상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 우상을 통해 자신들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 우상이 이름이 ‘질투의 우상’이라는 점이다. 누구에게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신명기 32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질투를 유발하는 다른 우상을 섬기지 말 것을 모세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질투를 유발하는 우상, 특히 다산을 상징하고 성적 부도덕을 상징하는 아세라 상을 그곳에 세우고 숭배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무척 상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도 하나님을 대신하기 원치 않으신다. 특히 그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서 거행된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상상하기조차 싫은 가증스런 장면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유발된 하나님의 질투는 이어지는 9장에서 결국 모든 우상 숭배자들이 처참하게 살육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질투의 하나님이 그 분노를 이스라엘에게 쏟아 놓은 것이다.

 

Ezekiel 8:5 The Image of Jealousy

 

▣ 에스겔의 환상 - ② 각종 곤충과 짐승 모양의 우상(이집트 제의)

번째 환상은 무엇인가? 이어지는 7-13절을 보면, 뜰 문에서는 각양 곤충과 짐승 모양의 우상들을 섬기는 장면이 나온다. 곤충과 짐승모양의 우상들은 악어, 뱀, 곤충들과 동물들의 형상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던 애굽의 모습들을 연상시킨다. 동물 형상의 우상에게 향을 피우는 제의는 이집트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 동기는 아마도 귀신의 세력에서 위험을 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즉 이곳에서는 애굽의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우상들을 섬기고 있던 자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11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요시야 개혁당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에 속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스라엘의 가장 지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부류들이 우상숭배의 최 일선에 나가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지도자들이 오히려 엉뚱한 주술적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이 장면을 보면서 또 다른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바로 출애굽기 24장에서 하나님 앞에 서서 언약의 말씀을 들었던 모세, 아론, 나답, 아비후와 더불어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시내산에 모인 그들은, 소집명령을 받고 모세와 더불어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말씀과 언약을 감동적으로 들었다. 바로 그 이스라엘 70인 장로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애굽의 우상들을 섬기며 분향하는 70인의 장로들이 등장한다. 무척 인상적인 시각묘사이다. 이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얼마나 분노하셨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여기서 한 가지 변명을 늘어놓는다. 12절에 의하면, 그들이 이같이 행하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고 이 땅을 버리셨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하나님이 돌보지 않으셨음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들을 지켜보고 계신다. 그들의 그와 같은 행위도 현재 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에스겔을 통해 정확히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계신지 짚어내고 있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꾸준히 살펴보고 계신다.

 

문제는 하나님이 그 땅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쫓아버린 데 있다. 6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들이 여기 성소에서 가증한 일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 성소를 멀리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6절). 즉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원인이 그들의 잘못에 있음을 분명히 하신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원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우리가 쫓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zekiel 8:9-12 Elders Abomination

 

▣ 에스겔의 환상 - ③ 담무스에 대한 애곡과 태양신 숭배(바벨론 제의)

이스라엘의 가증스런 행위는 가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환상은 바벨론의 우상들인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는 것이나, 태양신을 섬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도 이제는 직접적으로 성전 안으로 들어오면서 말이다. 먼저 성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서 담무스(Tammuz)를 위해 애곡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것은 바벨론은 제의이다. ‘담무스’는 ‘두무지’(Dumu-zi)와 동일인물로 학자들은 추정하는데, 수메르 왕 목록에 등장한다. 그는 홍수 이전에 36,000년간 다스렸다는 목자 왕의 이름이다. 그 이야기에서 두무지는 그의 아내인 여신 이난나에게 쫓겨 와 지하 세계로 가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어머니와 여동생이 애곡한데서 연유한다. 이것을 본 따 바벨론의 여인들 사이에 널리 퍼졌던 제의이다.

 

Ezekiel 8:14 Women Weeping for Tammuz

 

태양신을 섬기는 것도 악한 제의인데, 태양은 바벨론 제국의 가장 힘 있는 신들 중 하나로 간주되었다. 사실, 태양과 같은 천체(天體)에 대한 제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널리 퍼져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물에 불과한 태양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25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등을 돌이며 동쪽을 향해 태양신을 섬기는 모습(16절)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가장 악한 범죄행위임에 틀림없었다. 게다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들의 형상을 섬기고 있지 않은가!

 

Ezekiel 8:16 Sun Worshippers

 

▣ 오늘 우리시대는 어떤가?

그렇다면 그들이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들이 믿기 편하고 원하는 것으로의 우상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이다. 내가 좋은 것, 편한 것, 내게만 유익된 것을 찾아 섬기는 것이 바로 그들의 마음이었다. 순수와 절대적 순종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율법준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것으로 다가왔고, 대신 그 지역에서 쉽게 세상 문화와 타협이 가능한 각종 이방신들에 대한 우상숭배는 인간적인 이익과 맞물려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모습들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우상들을 섬기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우리 모습과 무척 유사하다.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며 내 마음대로 정의하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의 모습은, 비록 시기는 2,6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의 장면들과 맥을 같이 한다. 사실, 우리들은 편리와 이익을 위해 얼마나 많은 보이는 보이지 않는 우상들을 섬기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권력과 명예, 건강, 자녀, 인기, 스타, 그리고 지식이나 재능이 또 다른 우상으로 자리 잡기도 하지 않는가!

 

때문에 우리는 그런 다원화된 사회에서 교묘하게 우리를 유혹하는 우상들을 과감히 뿌리 뽑을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잘못 된 행동에 대한 질책이 있으면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회개와 돌이킴을 통해 신앙의 정통성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우리를 항상 지키시며 살펴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신앙 고백이 필수적일 것이다. 바로 그런 자세와 모습을 통해 포스트모던의 다원사회에서도 신앙을 굳게 지켜나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다.

 


 

예루살렘 심판을 위한 선민 구분과 살육 환상(에스겔 9:1-11)

 

[ 성경묵상 ]

9:1-11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까지 우상 숭배로 더럽힌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심판 집행자에 의한 선민의 구분과 살육 환상을 보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로 성전까지 더럽힌 예루살렘을 심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천사들을 호출하시는데 그들은 모두 일곱이었다(1,2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심판을 집행하게 하시기에 앞서 이들 중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 복장을 한 한 천사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시고 손에 살상 무기를 들고 있던 여섯으로는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 곧 우상을 숭배한 예루살렘 거민들을 살육하게 하셨다(3-7절).

여기서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는 다른 여섯 천사에 앞서 구원받을 의인에게 인친 행위는 최후 심판 때에 네 천사가 세상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앞서 한 천사가 구원받을 의인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행위를 연상케 하여 주는데(계 7:3,4),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하고도 깊은 사랑을 잘 반영하고 있다.

[ 질문 하나 ] 무기를 들고 예루살렘 성읍을 심판하기 위해 나온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가?(1-2절)

[ 질문 둘 ] 심판 중에도 주께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마에 표를 그려 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4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또 그가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이르시되 이 성읍을 관할하는 자들이 각기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또 그가 큰소리로 외치시는데 그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이 성읍을 벌할 사람들아, 각자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손에 들고, 가까이 나오너라."

2.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
그러자 여섯 사람이 북쪽으로 향한 윗문 길에서 오는데, 각자가 부수는 연장을 손에 들고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의 먹통을 차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와서 놋으로 만든 제단 곁에 섰다.

서기관은 가죽 허리띠에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먹 그릇을 지니고 다녔다. 먹은 주로 숯가루나 검댕을 물과 송진에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3.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 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까지 머물러 있던 그룹에서 떠올라 성전 문지방으로 옮겨갔다. 그는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통을 찬 그 사람을 부르셨다.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성읍 가운데로, 곧 예루살렘으로 두루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역겨운 일 때문에 슬퍼하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그려 놓아라."

5.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또 그는,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성읍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쳐서 죽여라.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가엾게 여기지도 말아라.

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노인과 젊은이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들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말아라. 너희는 이제 내 성소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성전 앞에 서 있던 장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그가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라. 모든 뜰에 시체로 가득 채워라. 이제 나가 보아라." 그러자 그들이 성읍 가운데로 나가서, 사람들을 죽였다.

8.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었는지라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분노를 쏟으시오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려 하시나이까
살육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혼자 거기에 있었다. 나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부르짖으며 아뢰었다. "주 하나님, 예루살렘에다가 이렇듯 주의 진노를 쏟으시다니,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을 주께서 친히 다 멸하실 작정입니까?"

9.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심히 중하여 그 땅에 피가 가득하며 그 성읍에 불법이 찼나니 이는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여호와께서 보지 아니하신다 함이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의 죄악이 너무나 크고, 땅은 피로 가득 차 있고, 이 성읍은 불법으로 꽉 차 있다. 그들은 내가 이 땅을 버렸으며,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 하시더라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며, 가엾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행실을 따라서, 그들의 머리 위에 그대로 갚아 줄 뿐이다."

11. 보라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복명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하더라
그런데 모시 옷을 입고 허리에 먹통을 찬 사람이 와서 보고하였다. "주께서 저에게 명하신 대로, 제가 다 수행하였습니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멸망시키는 준비 ( 9:1-4 )

(1)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자들에게 대령하라는 소환령이 떨어진다.


오랫 동안 지키고 보호하라는 명을 받아 왔던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제는 그 성읍을 황폐하게 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 천사들은 파괴하는 천사로서, 진노의 대행자들로서 아주 가까이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화염검을 들고 생명 나무가 있는 길목을 지키는 천사처럼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있기 때문이다.

(2) 이 소환령에 따라 그들이 등장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즉시 '여섯 사람'이 나왔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예루살렘 성에 있는 주요한 성문 하나 하나에 해당한다(2절). 바벨론 왕의 군대를 구성하고 있던 여러 민족들(어떤 이들은 이 민족들이 여섯 민족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군대의 사령관들은 천사들의 손에 있는 '살륙하는'기계라고 불리울 만하다. 이 살인 무기를 든 천사들은 '북향한 윗문 길에서 쫓아 나왔다'(2절). 이는 갈대아인들이북쪽에서 오기 때문이다(렘 1:14). 혹은, 투기의 우상이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참조. 겔 8:3,5).

(3) 파괴를 담당한 천사들 가운데 특별히 한 명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심판에 자비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천사는 그들 여섯 명의 천사에 속하지 않았으나 그 여섯 명과 어울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절). 이 천사는 제사장들이 입던 '가는 베옷'을 입고 있었으며 고대의 변호사나 법률가들의 서기관들이 소지하고 있었던 '서기관의 먹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리고 이 천사는 다른 여섯 명의 천사들이 살육하는 무기를 사용하듯이 자기의 먹그릇을 사용하였다. 여기에서 펜의 존귀함이 칼의 존귀함보다 뛰어난 점이 나타나 있다. 이 천사는 하나님의 정의의 화염검에서 자신의 백성들을 건지시는 중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사실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 천사는 대제사장처럼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계 29:8) 선지자처럼 서기관의 먹을 지니고 있다. 생명책은 어린 양의 책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해 두신 율법과 복음의 큰 일들이 어린 양의 기록이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의 계시인 것이다. 온 땅을 휩쓰는 파괴자들과 파멸의 한 가운데에 우리의 중보자이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4)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들 위에 계시지 않고 떠난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은 선지자가 환상 중에 그룹 위에 있는 것으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에스겔은 '그룹 위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즉시 올라'가 버리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떠나 가시면 천사들에 관한 환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5) '가는 베옷을 입은'자에게 내려진 분부는 전체적인 파멸에서 남은 경건한 자들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이 구원자는 파괴하는 자들처럼, 소집 명령을 받고 파견된 자가 아니었다. 이 구원자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면전에 대령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자였다. 살아 남아 구원받을 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구원을 받게 될 이 남은 자들은 곤경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로 부르짖는 사람들로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이었고 마음 속에 탄식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이들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은 이 가증스런 것들의 악함을 증거하고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행하였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경건하고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내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이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4절). 사람의 영혼 가운데 작용하는 은혜의 역사는 이마 위에 있는 표시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표를 자기가 찍은 것으로 인정하시고 그 표로써 자기 백성들을 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들의 이마 위에 표를 새기실 것이며 그들의 한숨을 기록하시며 그들의 눈물을 병에 담아두실 것이다.


형 집행의 시작 ( 9:5-11 )

(1) 파괴를 담당한 자들에게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실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1)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명령은 기근과 질병으로 특히 갈대아 군대가 가는 곳마다 그 칼에 의해 수만의 생명이 살육됨으로써 성취되었다. 무한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그렇게 엄격하도록 만들다니, 죄는 얼마나 악한 것인가. 너희는 그 뒤를 쫓아...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5절). 죄 가운데 살면서 개심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죄 가운데에서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쉽게 멸망을 피하려고 하나 피하지 못할 것이다.

2) 파괴를 담당한 자들은 구원하기로 표시된 자들에게 털끝 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말라는 주의를 듣는다. 이마에 표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그런 자들을 위협하거나 무섭게 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강하게 하고 복을 얻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었다(렘 15:11). 따라서 애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울부짖었던 자들은 어느 누구도 갈대아 사람들의 칼날 아래 쓰러진 자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로마 사람들에 의하여 당한 예루살렘 최후의 멸망시 그리스도인들은 펠라(Pella)라고 불리웠던 한 마을에서 모두 보호를 받았으며 어느 누구도 죽지 않았다.

3) 파괴를 담당한 자들은 '성소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는다(6절).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러한 심판을 내리시도록 하나님을 자극했던 사악한 것들이 그 곳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천사들은 그 곳에서부터 파괴하기 시작해야만 했다. 하나님의 성전은 회개한 죄인들을 위한 성소요 도피처이며 보호성이지, 여전히 죄 가운데에서 행하고 있는 자들을 위한 은신처가 아니다.

4) 그 천사들은 성읍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는다(6,7절).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곳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2) 천사들은 분부받은 대로 준행하였다.


이들은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 곧 장로들로부터 일을 시작하였다. 이는 자기들의 방 안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던 칠십 명의 노인들이었거나(참조. 겔 8:12), 성문과 제단 사이에서 태양에게 절을 올렸던 스물 다섯 명의 노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하던 사람들이었다.

(3) 여기에 심판을 가볍게 해달라는 선지자의 중보 기도가 나온다(8절).


그들이 칠 때에 내가 홀로 있는지라 엎드리어 부르짖어 가로되. 에스겔은 간신히 자기가 멸망을 피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 덕택이요 자기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는 태도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생명을 부지하고 이 세상에서 삶을 누리고 존속하고 있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각자 있는 처소에서 선을 행하도록, 즉 기도로써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함인 줄 우리도 알아야 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약하게 해달라는 선지자의 청을 거절하신다(9,10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가 원하는 것쯤은 언제나 기꺼이 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허락할 수 없었다. 이는 자신의 공의를 그르침이 없이는 들어줄 수 없는 성격의 요청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죄인들은 우상 숭배할 때에 합리화하였던 것처럼 불경건한 무신론적 원칙으로 또 합리화하고 있었다(참조 겔 8:12).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으며. "우리를 버리사 마음대로 하도록 두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문제에 더 이상 상관치 아니하실 것이라. 우리가 어떤 나쁜 짓을 하여도 그는 보지 아니하실 것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정의를 무시하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5) 시온에서 애통하고 있던 자들을 구하기 위한 보호령이 나온다(11절).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 그릇을 찬 사람'이 자기가 하고 온 일에 대하여 보고를 드렸다. 이 사람은 그 땅의 죄악을 인하여 은밀히 슬퍼하며 애곡했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 이마 위에 표시를 해놓았다. 주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준행하였나이다.


예루살렘 심판 예언 ( 9장 )

8장에서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 유다 백성들이 우상의 종류나 장소,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전민족적으로 우상을 대대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장은 이제 그와 같이 모든 유다 백성들이 어디서나 닥치는 대로 온갖 우상들을 숭배하자 하나님께서 심판의 사자들을 보내 의로운 자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심판하시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심판의 준비

1) 영광의 출현
하나님의 심판은 거룩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한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심판은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유다를 향한 심판이 집행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을 친히 드러내시어 엄중하고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마치 마지막 때에 모든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와 같이(참조, 계20:11) 영광 되고 공의로운 심판의 격식을 갖추신 가운데 유다를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하나님은 그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참조, 겔9:3).
a.북방에서 오는 심판의 빛(겔1:4)
b.심판의 보좌(계20:11)

2) 집행자를 부르심
하나님은 심판의 주관자이십니다. 심판의 집행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좌하는 천사에 의해 행해집니다(참조, 계14:14-20). 이러한 심판의 형식이 갖추어지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한 심판의 장에서도 그 심판을 집행할 집행자를 부르십니다(참조, 겔9:1). 그리고 심판이 어김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완벽하게 집행될 수 있는 준비를 시행하신 것입니다.
a.집행자 표출(계6:5)
b.집행의 명령(계14:18)

3) 의인을 인 치심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불공정한 심판을 하지 아니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 가운데 하나님을 의뢰하는 소수를 악인들과 함께 멸하지 아니하십니다. 또 하실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중에서 악인의 악행을 탄식하며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의인들이 이마에 인을 쳐서 그들이 억울한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참조, 겔9:4).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은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a.양피의 표징(출12:7)
b.인 침(계7:3)

2. 심판의 집행

1) 긍휼이 없음
심판 집행의 준비가 완료되자 집행자가 집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심판이 집행될 때 어떠한 긍휼도 베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진노를 쏟아 부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집행될 때에는 인간의 모든 사정은 고려되지 않습니다. 오직 고려되는 것은 심판이 집행되기 전까지 심판을 받을 대상이 악의 편에 섰느냐 의의 편에 섰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전자일 경우에는 가차없는 진노가 내려집니다.

a.위로하지 않음(렘16:7)
b.긍휼을 베풀지 않는 심판(겔5:11)

2) 차별이 없음
심판이 집행될 때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성은 심판의 대상에 대한 차별이 없기 시행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나 연약한 여자이기 때문에 심판이 유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다 받아들일 만한 구원의 조건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가진 조건에 의한 차별이란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죄인에겐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참조, 계20:12). a.모든 자가 살육당함(대하36:17)
b.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렘16:6)

3) 지도층으로부터 시작됨
에스겔이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심판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진행되되 순서에 있어서는 성전 앞의 늙은 자들로부터 시행됩니다. 늙은 자란 백성의 장로들과 성전의 제사장들, 곧 지도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백성들보다 더 부패하였으며 또한 백성들의 부패를 막지 못한 죄로 인해 누구보다도 먼저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이 함락되던 날 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더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a.왕가의 수난(왕하25:7)
b.왕가와 귀인들이 죽음 당함(렘39:6)

3. 심판의 변

1) 여호와는 없다
긍휼 없고 차별 없는 단호하고 냉정한 심판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그러한 심판을 내리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십니다. 그 이유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다고 거짓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거짓은 자신들의 죄악을 하나님께 전가시킨 있을 수 없는 극악한 죄악이었습니다.
a.말씀을 멸시함(대하36:16)
b.하나님이 없다 함(사29:15)

2) 악에는 공의로
따라서 악을 심판하셔야 그 분이 가라 않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그러한 극악한 유다 백성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면 벌을 내리시기로 약속하셨기에(참조,신28-신30) 그 약속을 이행하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a.행위대로 갚으심(사59:18)
b.보복의 하나님(렘51:56)

3) 집행자의 복명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고 심판에 대한 정당한 근거가 있었기에 심판은 집행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심판은 집행자의 충성된 순종으로 말미암아 집행되었습니다.(참조, 렘9:11). 하나님의 말씀은 한치의 어김도 없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a.식언치 않으심(민23:9)
b.말한 것은 반드시 이루심(겔22:14)

 

결론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고 정확하며 완전합니다. 또한 심판은 철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시행됩니다. 따라서 악인은 그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고 의인은 그 앞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고(참조, 갈2:16) 의롭게 된 가운데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서 구원함을 입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