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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묵상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에스겔 7:1-13) / 7- 8장

by 은총가득 2021. 3. 1.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에스겔 7:1-13)

 

[ 내용분해 ]

- 선민의 행위에 따른 긍휼없는 징벌이 집행될 선민 심판의 임박성 삼중 경고(관련 문단, 왕하 21:10-15)

A. 여호와의 말씀 선포 사실이 부각된 심판의 임박성 일차 경고(1-4절)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1-2a절)

2.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2b절)

3.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나타내어 네 행위를 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3절)

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네 가증한 일이 너회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4a절)

5.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4b절)

B. 심판 행위의 주체이신 여호와를 부각시킨 심판의 임박성 이차 경고(5-9절)

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5절)

2.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6절)

3. 이 땅 주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7a절)

4.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7b절)

5.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8절)

6.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9a절)

7.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9b절)

C. 심판의 철저함을 부각시킨 심판의 임박성 삼차 경고(10-13절)

1.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10a절)

2.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10b-11a절)

3.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며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11b절)

4.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엄함이로다(12절)

5. 파는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13a절)

6. 이는 묵시가 그 모든 무리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사람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13b절)

[ 성경묵상 ] -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종말이 선포됩니다. 영원할 것 같던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였지만, 포악과 죄악으로 인해 심판이 선포됩니다. 갑자기인 듯하지만. 그간 쌓아온 죄의 결과입니다.

[ 질문 하나 ] 선지자를 통해 주께서 다급하게 선포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2-3절)

끝이 왔도다 (1-4)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선지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백성에게 선포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하나님 백성의 나라 이스라엘에 종말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더 이상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더 이상 내가 너를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었는데, 이제 그것이 철회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국 교회를 향해 이 말씀이 선포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드는 시절입니다.

한국 교회를 향해 "끝났도다!" 이런 선언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 질문 둘 ] 이 메시지를 들은 백성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어떻게 반응했어야 할까?

심판의 재앙이로다 (5-9) 이스라엘의 끝은 단지 자연적인 소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선지자의 목소리에 하나님의 진노가 묻어납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가증한 행위를 향해 주께서 말씀하시길,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리라"고 선언하십니다. 주께서 너무나 두려운 이름을 다시는데, "여호와는 때리는 이"시라. 하나님의 공의가 더 이상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좌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교회를 향해 이 말씀이 선포되지 않을까 두려움이 드는 시절입니다.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가장 큰 죄목은 무엇이 될까요?

철저하고 두려운 심판이로다(10-13)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적인 술수나 요행으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백성이며 재물이며, "하나도 남지 아니하며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는 철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여유가 있어 땅을 사는 자가 기뻐할 것도 없고.

여유가 없어 땅을 파는 자가 슬퍼할 필요도 없는 것은, 모두에게 두려운 심판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 구석구석에서 가증한 죄를 범한만큼, 하나님의 심판도 빈틈없이 철저하게 임할 것입니다.

교회의 다음 세대가 줄어드는 것이 혹 우리 시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아닐까요?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 에스겔 7장

할렐루야!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I wil...

naver.me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너 사람아, 이스라엘에게 전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스라엘 땅을 두고 말한다. 끝이 왔다. 이 땅의 사방 구석구석에 끝이 왔다.

"끝났도다 ~ 끝났도다" ; 5,9절과 함께 반복과 점층을 통해 메시지를 선명히 하는데, 그만큼 죄악된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고하고 임박하다는 의미다.

3.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나타내어 네 행위를 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이스라엘아, 이제는 너희에게 끝이 왔다. 나는 이제 너희에게 내 분노를 쏟고, 너희 행실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며, 너희의 역겨운 일들을 너희에게 보응하겠다.

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네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너희를 아끼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겠다. 오히려 나는 너희의 모든 행실에 따라 너희를 벌하여, 역겨운 일들이 바로 너희의 한가운데서 벌어지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재앙이다. 너희가 들어보지 못한 재앙이다. 이미 다가왔다.

6.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끝이 왔다. 너희를 덮치려고 일어났다. 이미 다가왔다.

7. 이 땅 주민아 정한 재앙이 네게 임하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요란한 날이요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로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아, 정해진 멸망이 너희에게 들이닥쳤다. 그 시각이 왔고, 그 날이 다가왔다. 산에서 즐겁게 환호하지 못할 당황할 날이 가까이 왔다.

8.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

나는 이제 너희에게 내 분노를, 나의 분을 너희에게 풀어서, 너희 행실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며, 너희의 역겨운 일들을 너희에게 보응하겠다.

9.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

내가 너희를 아끼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겠다. 오히려 나는 너희의 모든 행실에 따라 너희를 벌하여, 역겨운 일들이 바로 너희의 한가운데서 벌어지게 하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주가 이렇게 치는 것임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10. ○볼지어다 그 날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이 피며 교만이 싹이 났도다

그 날이다. 보아라, 들이닥쳤다. 정해진 멸망이 시작되었다. 매질할 몽둥이가 꽃을 피우고 교만을 꺾을 채찍이 싹터 나왔다.

본절과 11절에서 홍미로운 것은 이 막대기에 꽃이 핀다는 표현이다.

본문에서 이 ‘몽둥이’, 즉 ‘맛테’는 유다의 압제적인 지도자들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것일 수도 있으며(19:11 ; 사 9:3), 역으로 유다를 공격해 올 바벨론의 통치자 느부갓네살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사 30:32). 그러나 본절이 속한 문맥을 고려할 때 이는 이스라엘 땅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 바벨론 제국, 특히 그 제국의 통치자를 상징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여호와를 모르는 자로서, 교만하고 포악하고 무자비하게 예루살렘 성을 공략할 것이며 그곳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 몽둥이에 꽃이 피었다는 것은 그의 세력이나 교만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만’은 방자하고 거만한 마음의 태도를 의미한다(신 18:22 ; 잠 21:24 ; 렘 50:31). 본문에서는 앗수르 제국을 무너뜨리고 주변의 소국들을 차례로 점령한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 느부갓네살이 품었던 거만함을 나타낸다. 그것이 싹이 났다는 표현은 그 교만한 태도가 주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만큼 확연히 드러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교만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는 다니엘서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천하에 자기보다 높은 신이나 통치자가 없음을 과시하고자 두라 평지에 자기 형상을 한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들에게 엎드려 절할 것을 명하였다(단 3:1-7). 그리고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든 다니엘의 세 친구를 향해 뜨거운 열기로 타오르는 용광로에 쳐 넣겠다고 협박하면서 능히 너회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라고 빈정거릴 만큼(단 3:15) 그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다. 이러한 그의 교만과 거만함은 그에게서만 아니라 자연스레 그를 따르는 모든 군사들에게서도 나타나게 된다(합 1:10).

11. 포학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가 되었은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며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

폭력이 일어나서 죄악을 징벌하는 몽둥이가 되었다. 이 백성 가운데서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이 백성의 무리들 가운데서도 더 이상 남을 사람이 없고, 그들의 재물이나 그들이 가진 것들 가운데서 눈에 띌 만한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12.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그 시각이 왔고, 그 날이 이르고야 말았다. 사는 사람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사람도 슬퍼하지 말아라. 이 땅의 모든 무리에게 진노가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본문과 13절 상반절은 유다의 멸망 직전에 있을 경제 활동, 즉 토지 매매에 관련한 예언으로 풀이된다(Taylor, Block).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토지를 사는 자에게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이는 바벨론이 거듭 유다를 침범하고 포로로 잡아가는 국가적 혼란기(B.C. 605-586년)를 틈타 토지를 사는 사람이 소유자에게 땅을 헐값으로 사들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돈이 궁해 토지를 어쩔 수 없이 파는 자가 시류에 영향을 받아 제값도 못 받고 헐값에 처분한 결과 큰 슬픔에 잠기며 구매하는 사람은 헐값에 토지를 사 기뻐하는 상황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본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토지 매매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토지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무상으로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친척 사이에는 토지 매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었으며, 가난한 자가 큰 빚을 져서 채권자에게 토지를 빼앗기게 될 경우에도 회년이 되면 채권자는 그 토지를 다시 돌려줘야 하며 그 이전에라도 가까운 친척이 돈으로 그것을 사 빚 을 지닌 친척의 기업을 물려주어야 했다(레 25:23-28).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토지에 대한 율법이 잘 지켜지지 않게 되자 토지의 편중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즉 가난한 자의 토지를 부자들이 전당잡고 그것을 매수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여호와께서는 헐값에 토지를 사는 것을 기뻐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몇 년이 되지 않아 구입한 그 땅을 외적에게 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토지를 헐값으로 판 자도 슬퍼하지 말 것은 팔든 팔지 않든 어차피 몇 년 후면 강탈당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13. 파는 자가 살아 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가서 그 판 것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묵시가 그 모든 무리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사람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판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 하여도, 팔린 것을 얻으려고 돌아갈 수가 없을 것이니, 이 땅의 모든 무리에게 보여 준 묵시는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서는, 어느 누구도 자기 목숨을 굳게 부지할 수가 없다.

"이는 묵시가 그 모든 무리에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사람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목숨을 유지할 수 없으리라"는 왜 땅을 판 사람이 비록 살아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되찾을 수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즉 본문은 문자적으로 ‘왜냐하면 그 모든 무리에 대한 묵시(이상)가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묵시’는 문자적으로 ‘보는 것’, 혹은 ‘이상’이라는 의미이다(13:16 ; 삼상 3:1 ; 사 1:1). 에스겔이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본 유다의 멸망에 관한 이상을 나타낸다. 그 이상은 유다에 거주하는 모든 무리에 대한 이상이며, 그것이 여호와를 통해 한 번 보여진 이상 결코 취소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다가오는 종말 ( 7:1-15 )

여기에서 선지자는, '끝이 났도다 끝이 났도다,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외친다.

(1) 이전의 모든 심판들의 목적이며 수단이었던 그 끝이 더디 오긴 했지만 마침내 임하였다.

이 내용은 더 나아가 이 민족이 로마인들에 의해 당했던 마지막 멸망을 의미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일의 끝이 다가왔다. 예루살렘의 최후의 종말은 '세상 끝'의 한 예표였다(마 24:3).

(2)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다(5절).

죄는 재앙 중에서도 '비상한 재앙'이요, 그 속에 선이라고는 티끌 만큼도 없는 재앙이다. 즉 재앙 중에 가장 악한 재앙이다. 이는 고통스런 재앙인 것이다. 이는 전례도 없고 유비도 없는, 특별한 앙화이다. 어디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악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찌끼까지도 다 마셔야 하나, 의인에게는 그 잔에 자비가 가득 담겨질 것이다(시 75:8).

(3) 때가 이르렀고. 정해진 때가 이르렀다.

하나님의 모든 뜻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 것이다. 경고로 예고한 심판들은 오래 지연될 수는 있으나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내심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연기하실 수는 있으나 죄인들의 진정한 회개와 개혁만이 심판을 면케 할 것이다.

(4) 이 민족 전체는 멸망하여 마땅한 진노의 그릇이 되었다.

은혜가 베풀어졌을 때 그 은전을 소홀히 여긴 자들은 무자비한 심판을 당케 될 것이다.

(5)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업 자득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심판들을 내리도록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킨 두 가지 죄상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교만과 학정으로 대별된다. 첫째, 그들이 자기들을 높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사 그들을 낮추실 것이다. 심판의 몽둥이에는 꽃이 피었으나 저들의 마음 속에는 교만이 싹텄던 것이다(10절). 둘째, 그들이 자기 백성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였으므로 원수들도 그들에게 냉혹하게 대해 줄 것이다(11절).

(6) 이러한 심판에서 피할 곳이 없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안전치 못할 것이다. 들판에 나간 자는 칼에 죽을 것이고(모든 벌판이 그들에게는 전쟁터가 될 것이다) 성 안에 있는 자는 그 성이 거룩한 성기긴 하지만 방벽이 되어 주지는 못하여 기근과 온역에 삼킴을 당할 것이다. 죄악은 성읍만이 아니라 시골에까지 관영하였다. 멸망하는 자들에겐 문상할 자들조차 없을 것이다(11절). '그들을 생각해서 우는 울음소리가 없으리로다'(한글 개역은 '그 중의 아름다운 것도 없어지리로다'로 되어 있다. 흠정역 참조 바람-역주). 그곳에는 그들을 위해 울어 줄 자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역하여 자신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자가 흥할 리가 없다. 악행으로 자신을 든든하게 하는 자는 자신을 쇠약케 하는 자요, 멸망시키는 자였음이 판명될 것이다(시 52:7). 이 심판의 급류를 그들은 막을 수도 없으며 머리를 돌려 피할 수도 없다. 그들이 자기 군사들을 소집하게 위하여 '나팔을 불어도'(14절) 온갖 것이 다 소용없는 짓일 뿐이다. "토지가 높고 구매자가 되었다고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며, 파는 자도 토지가 줄고 파산해 버렸다고 슬퍼하지 말지라"(12절). 이 세상 것들의 허망함을 보라. 환란의 때에 그것들의 무가치함이란!

여기에 또 다음과 같은 말이 첨가된다(13절).

"판 자가 비록 칼날을 피하여 희년이 올 때까지 살아 있을지라도, 율법에 따라 희년에 판 땅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칠십 년이 차기까지는 어떤 재산도 향유할 수 없다. 다만 그 후에야 사람들이 자기들의 소유로 돌아가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행위대로 갚고 죄악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에스겔 7:14-27)

 

[ 성경묵상 ]

에스겔 7장 요약 ; 본문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으며 결단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네 차례나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에스겔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결코 예루살렘 성전을 파멸치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은 긍휼히 여기실지라도 죄는 간과하지 않으신다.

7:1-27 ; 7장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이 당하게 될 처절한 파멸이 묘사되어 있다. 2-4절에서 선포된 심판에 대한 예언은 5-9절, 10-13절, 14-22절, 23-27절의 네 단락으로 나누어져 더욱더 긴박감을 조성해 주고 있다.

이처럼 심판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까닭은 유다 백성들에게 만연했던 안일한 낙관주의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이방인에 의하여 훼파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선지자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심판을 앞두고 회개하기보다는 평강을 외치며,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의 처참한 멸망이었다. 종교적 혼합주의는 종교,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침투되었고, 모든 것은 세속화되었다. 따라서 악행은 계속되었고, 불의한 압제는 극에 달하여 도저히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 질문 하나 ]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이스라엘의 형편이 어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는가?(15절)

[ 질문 둘 ] 하나님의 성소마저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22,24절)


[ 내용분해 ] - 여호와의 심판으로 선민이 당해야 할 두려운 참상의 삼중 경고(관련 문단, 렘 4:5-31)

A. 여호와의 심판으로 선민이 당할 일차적 고통들(14-19절)
1. 이방의 침입에 맞설 자가 없을 것임(14절)
·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14a절)
·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14b절)
2. 칼과 전염병과 기근의 재앙이 함께 덮쳐올 것임(15절)
·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어서(15a절)
·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망할 것이며(15b절)
3. 모든 이가 자책과 공포와 수치에 떨 것임(16-18절)
·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때문에 골짜기의 비둘기들처럼 슬피 울 것이며(16절)
·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17절)
·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18a절)
·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18b절)
4. 의뢰하던 재물에 실망하고 후회하며 던져버릴 것임(19절)
·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물 같이 여기리니(19a절)
·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내리는 날에 그들의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의 걸림돌이 됨이로다(19b절)

B. 여호와의 심판 도구로 사용된 강포한 이방 세력의 백성 약탈과 성전 모독(20-24절)
1. 재물로 치장하며 교만과 우상에 빠졌던 백성들이 약탈당하고 성전이 더럽혀짐(20-22절)
·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풍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만들었은즉(20a절)
· 내가 그것을 그들에게 오물이 되게 하여 타국인의 손에 넘겨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넘겨 그들이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20b-21절)
·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포악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22절)
2. 살인과 강포가 가득하던 성이 점령 당하고 성전이 더럽혀질 것임(23-24절)
·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갔음이라(23절)
·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데려와서 그들이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강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24a절)
· 그들의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24b절)

C. 심판 이후의 평강과 영적 은혜의 상실과 자신들의 행위에 따른 징벌을 당한 이후의 때늦은 각성(25-27절)
1. 여호와의 심판 이후의 평강과 영적 은혜의 상실(25-26절)
·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25절)
·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26a절)
· 그들이 선지자에게서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책략이 없어질 것이며(26b절)
2. 자신들의 행위에 따른 놀랍고 떨리는 징벌 이후의 때늦은 각성(27절)
· 왕은 애통하고 고관은 놀람을 옷 입듯 하며 주민의 손은 떨리리라(27a절)
·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리니(27b절)
·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27c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13절에서는 선민의 행위에 따른 여호와의 긍휼 없는 심판이 집행될 그 날이 임박하였음을 삼중으로 경고되었다.
14-27절에서는 여호와의 심판으로 선민이 당해야 할 두려운 참상에 대해 삼중으로 경고한다.

그 때 사람들은 환난을 피해보기 위해 각종 수단을 강구할 것이지만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침략해 온 외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팔을 불고 전쟁을 예비할 것이지만 출전할 군사들을 찾지 못할 것이며(14절), 외적의 칼날을 피해 도망을 치겠지만 그것이 안전책이 되지 못할 것이며(16절), 평소에 모아 둔 금, 은까지도 목숨을 구하는 데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19절). 심지어 이스라엘 자손이 지금껏 섬기고 의지해 왔던 우상까지도 그들을 환난에서 구할 수 없을 것이다(20절).

이와 같은 예언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그 환난의 때에 사람들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인간적인 수단을 모조리 동원할 것이지만 허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14.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
그들이 나팔을 불고 모든 장비를 갖춘다 하여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내 진노가 이 땅의 모든 무리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심판으로 선민이 당해야 할 두려운 참상을 삼중으로 경고하는 14-27절 가운데 14절 이하 19절은 첫번째 경고로서 여호와의 심판으로 선민 모두가 극심한 고통 가운데 빠질 것임을 지적한다.

먼저 본절에서는 이방인들이 침입을 하나 맞셜 자가 없을 것임이 예언된다. 즉 선민들이 나팔을 불어 이방 침입에 맞셜 준비는 하였으나 결정적 순간에는 전쟁에 나가는 자가 없을 것이라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팔’에 해당하는 ‘맛타코아으’의 어근 ‘타코아으’는 구약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사용된 단어로 ‘타카으’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타코아’는 문자적으로 ‘부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는 고대 근동에서 흔히 사용하였던 산양이나 염소의 뿔을 잘라 만든 양각 나팔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양이나 염소의 뿔을 잘라 만든 나팔은 그 소리가 매우 깊고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고 한다. 그래서 양각 나팔은 큰 대회를 위해 사랍들을 소집하거나 전쟁에 출전하기 위해 군사를 모집하거나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표현에서는 이처럼 전쟁을 위해 군사를 모집하였지만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을 것임을 지적한다. 이러한 결과가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하여는 다음의 견해들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실제 전쟁을 위해 준비된 군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전쟁에 나갈 만한 남자들이 이미 심판으로 죽었거나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당시 멸망 당하기 이전 유다는 바벨론의 3차에 걸린 침공으로 인해 무수한 군사들이 살상 당하였고 2차에 걸쳐 무수한 장정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본문은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유다는 비록 파멸은 되었지만 1년 반 동안이나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인 바벨론을 상대로 항전하였다. 이로써 어느 정도 성을 지킬만한 군사들이 존재하였음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본문의 의미는 문자적 의미보다 여호와의 진노의 심판 앞에 대처할 방법조차 찾지 못하고 무력하게 파멸될 것이라는 내용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마치 군사를 징집하고자 나팔을 불어도 누구도 소집에 응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태에 이를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절 말미의 표현은 원문상 ‘내 진노’로 번역된 ‘하로니’와 ‘진노’로 번역된 ‘하론 ’만을 제외하면 본장 12절 하반절과 동일하다. 진노의 주체가 보다 구체화되어 있는 것 외에 동일한 것이다.


15. 밖에는 칼이 있고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어서 밭에 있는 자는 칼에 죽을 것이요 성읍에 있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에 망할 것이며
"거리에는 전쟁이 있고, 집 안에는 전염병과 기근이 있다. 들녘에 있는 사람은 칼에 찔려 죽고, 성읍 안에 있는 사람은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는다.

14절에서는 여호와의 심판 날 이방인들이 침입해 들어올 것이지만 이에 맞설 자가 없다는 사실이 예언되었다. 이제 본절에서는 칼과 전염병과 기근의 재앙이 한꺼번에 밀어 닥칠 것이 예언되고 있다. 이는 바벨론이 예루살렘 성읍을 완전히 함락하기 직전, 포위하고 있었을 때의 상황을 예언하는 것이다.

그 때에도 예루살렘 성내에 었던 자들이 완전히 안전한 것만은 아니었다. 1년 6개월 동안 포위되어 있었기 때문에(왕하 25:1,2), 성내에는 식량난과 식수난, 또 물의 오염으로 인한 전염병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왕하 25:3). 또 그같은 상황을 피해보고자 성 밖으로 도망친 자들은 기다리고 있던 적군의 창과 칼에 찔려 죽고 말았을 것이다. 이처럼 비참한 참상은 이미 에스겔이 머리카락과 수염을 잘라 불사르고 자르는 등의 상징적 행위를 통해 예언한 것이기도 하다(5:2,12).


16. 도망하는 자는 산 위로 피하여 다 각기 자기 죄악 때문에 골짜기의 비둘기들처럼 슬피 울 것이며
더러는 살아 남아서, 계곡에서 놀란 비둘기처럼 산으로 피하겠지만, 저지른 죄를 생각하며 슬피 울 것이다.

17. 모든 손은 피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
사람들은 모두 손에 맥이 풀리고, 무릎을 떨 것이다.

18.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묶을 것이요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
굵은 베 옷을 입고, 두려워서 온 몸을 떨 것이다. 모든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가득할 것이요,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다.

19. 그들이 그 은을 거리에 던지며 그 금을 오물 같이 여기리니 이는 여호와 내가 진노를 내리는 날에 그들의 은과 금이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하며 능히 그 심령을 족하게 하거나 그 창자를 채우지 못하고 오직 죄악의 걸림돌이 됨이로다
그들은 은을 길거리에 내던질 것이며, 금을 오물 보듯 할 것이다. 내가 진노하는 날에, 은과 금이 그들을 건져 줄 수 없을 것이다. 은과 금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못하고, 허기진 배를 채워 주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은과 금은 그들을 걸어서 넘어뜨려, 죄를 짓게 하였을 뿐이다.

20.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말미암아 교만을 품었고 또 그것으로 가증한 우상과 미운 물건을 만들었은즉 내가 그것을 그들에게 오물이 되게 하여
그들이 자랑하던 아름다운 보석으로, 역겹고도 보기 싫은 우상들을 만들었으므로, 내가 보석을 오물이 되게 하겠다.

21. 타국인의 손에 넘겨 노략하게 하며 세상 악인에게 넘겨 그들이 약탈하여 더럽히게 하고
또 내가 그 보석을 외국 사람에게 넘겨 주어 약탈하게 하고, 세상의 악인들에게 넘겨 주어 약탈하고 더럽히게 하겠다.

22. 내가 또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리니 그들이 내 은밀한 처소를 더럽히고 포악한 자도 거기 들어와서 더럽히리라
내가 간섭하지 않을 것이니, 외국 사람들이 나의 은밀한 성소를 더럽히고, 도둑들이 그 곳에 들어가서 약탈할 것이다.

'은밀한 처소'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한다.


23. ○너는 쇠사슬을 만들라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 포악이 그 성읍에 찼음이라
너는 쇠사슬을 만들어라. 이 땅에 살육이 가득 차 있고, 이 도성에는 폭력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20-22절에서는 재물로 치장하며 교만과 우상에 빠졌던 백성들이 장차 약탈을 당하게 되며 백성들이 더럽힌 성전 또한 이방인들에 의해 훼손될 것이 예언되었다. 이제 23절과 24절은 살인과 강포가 가득하던 예루살렘성이 점령당하고 성전이 더럽혀질 것이 예언된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예언하시면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또다시 행위 예언을 명하신다. 그것은 쇠사슬을 만드는 일이었다.

여기서 ‘쇠사슬’에 해당하는 ‘하핫토크’의 원형 ‘라토크’는 포로를 결박하는 것을 의미하는 어원 ‘라타크’에서 유래한 단어로 포로를 먼 곳으로 끌고 가기 위해 결박하는 쇠사슬을 의미한다. 왕하 25:7에는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지만, 바벨론 왕이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를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데 본문은 이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RSV는 본문을 ‘황폐케 하라(make a desolation)’로 번역하였고, 헬라어 구약 성경 번역본인 70인역(LXX)은 ‘그들이 매우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는 의미의 ‘포이에수시 뛰르몬’으로 번역하였다. 이와 같은 입장은 본문의 ‘쇠사슬’에 해당하는 ‘하라토크’가 원래 원본에서는 ‘하바토크'였는데, 필사 과정에서 그렇게 변질되었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이 ‘하바토크’의 원형 ‘빠타크’는 구약 성경에서 오직 본서 16:40 한 곳에서만 사용되었으며, 날카로운 무기로 찌르고 조각조각 잘라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맥에서 ‘빠타크’는 이방의 잔인한 군사들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칼로 사람들을 난도질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만약 본문에서도 ‘하라토크’가 아닌 ‘하바토크’를 취한다면, 본절의 명령은 사실상 22절의 포악한 자들의 행동을 예언하는 문장이 된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충분히 가능하며 이를 지지하는 학자도 있지만(Brownlee), 탈굼(Targum) 및 맛소라 사본(MT) 등은 ‘쇠사슬을 만들라’라는 문장을 지지한다.
"이는 피 흘리는 죄가 그 땅에 가득하고"는 왜 쇠사슬을 만들어야 하는지, 즉 왜 이스라엘 자손이 이방으로 끌려 갈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셜명해 준다.

여기에서 ‘피 흘리는 죄’에 해당하는 어구 ‘미쉬파트 따멈’을 문자적으로 직역할 경우, ‘피들의 재판’이라는 의미이다. YLT가 이를 ‘피의 재판들(bloody judgments)’로 번역하여 원문의 의미를 충실히 반영하였다. 그러나 개역 개정판 성경을 비롯하여 많은 영역본들은 이 어구를 ‘피의 범죄들(bloody crimes)’이라는 의미로 의역하였으며(ESV, KJV, NASB, NRSV), 공동 번역은 ‘유혈 참극’으로 의역하였다.

중요한 사실은 ‘미쉬파트’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사용될 때 ‘범죄’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 단어가 원래 법에 따라 재판을 시행함을 나타내는 동사 ‘좌파트’에서 유래하여 공의, 재판, 심판, 형벌, 규례, 법도 등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5:6,7,8), 그러므로 본문의 ‘미쉬파트 따멈’은 살인 등 피를 흘리는 범죄들이 아닌, 피의 재판, 즉 법과 규례를 어기면서 행해지는 재판, 무고한 자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게 되는 부당한 재판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흑자는 이러한 사실을 근거로 이를 ‘잔학한 사법적 결정들(murderous judicial decisions)'로 번역하는 것이 최상의 번역이라고 주장한다(Block). 유다 말기에 그처럼 부당한 사법적 판결들이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은 이사야 선지자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사 5:7,23 ; 10:1,2 ; 28:7). 당시 거의 대부분의 재판관들 및 정치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고 가진 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림으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으며 심지어 법을 만드는 자들이 힘있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도록 개악하여 착취의 행위를 합법화하기까지 하였다.

"포악이 그 성읍에 쳤음이라"는 잔인하고 부당하며 불의한 폭력과 학대가 성읍에 가득 채워졌으며 심지어 이미 넘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본문 표현은 노아 홍수 심판이 단행되기 직전의 상태를 연상케 한다(창 6:11). 실로 당시 유다는 과거 홍수로 그 죄악이 쓸어버림을 당해야 하였던 노아 시대처럼 강포와 죄악으로 가득하였다.

이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는 예레미야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당시 예루살렘은 의인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곳, 의인이 살아남을 수조차 없는 포악으로 충만한 곳이었다. 과거 죄악이 넘쳐나는 세상에 홍수 심판이 불가피했던 것처럼 이처럼 죄악이 포화 상태에 이른 예루살렘 성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 또한 자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4.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데려와서 그들이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강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들의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이방 사람들을 데려다가 그들의 집들을 차지하게 하겠다. 강한 사람들의 교만을 꺾고, 그들의 성소들이 모두 더럽혀지게 하겠다.

25. 패망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파멸이 이미 이르렀다. 그들이 평안을 찾지만, 전혀 없을 것이다.

26. 환난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서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요 장로에게는 책략이 없어질 것이며
재앙에 재앙이 겹치고, 불길한 기별이 꼬리를 물 것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예언자에게 묵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가르쳐 줄 율법이 없어질 것이고, 장로들에게서는 지혜가 사라질 것이다.

"묵시, 율법, 책략이 없어질 것이며"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의 군사적, 경제적 자산과 함께 영적인 자산까지 사라질 것이라는 경고이다.

27. 왕은 애통하고 고관은 놀람을 옷 입듯 하며 주민의 손은 떨리리라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왕은 통곡하고, 지도자들은 절망에 빠지고, 이 땅의 백성은 무서워서 벌벌 떨 것이다. 내가 그들의 행실대로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이 심판받아야 하는 그대로 그들을 심판하겠다.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임박한 재앙 ( 7장 )

유다의 죄악은 관영하였고 그러한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말씀이 선포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진노가 임하리라는 말씀도 패역한 유다 백성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 하니라 곧 일어날 임박한 일이라는 것을 알리도록 했습니다. 본장은 그러한 심판의 임박성을 선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재앙을 부른 죄악

1) 우상 숭배

유다가 임박한 재앙에 직면하게 된 첫번째 이유는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썩어질 우상을 만들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산당과 우상의 제단을 쌓았습니다(참조, 겔16:15-29).본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이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었으나 그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행위를 함으로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유다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a.우상을 만들지 말라(레26:1)
b.노름 격발하는 우상(왕상14:9)

2) 교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뒤 그들이 풍요하고 안정된 가운데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넓은 땅과 재물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가나안 땅에서 풍성한 소실을 얻도록 함으로 그들에게 부를 주셨던 멋입니다. 그러나 부를 손에 쥐자 그들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자신들의 힘으로 취한 것인양 교만하였습니다. 자신들의 풍요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교만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a.교만은 패망의 선봉(잠16:18)
b.교만한 자는 넘어짐(렘50:32)

3) 강포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재앙을 부른 세번째 이유는 그들이 가난한 자를 착취하며, 불법으로 이를 취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강제로 흘리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정의와 선으로 살도록 율법을 주셨으나 그들은 그 법을 어긴 것입니다. 그에 따라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a.자기를 소멸하는 강포(잠21:7)
b.강포하지 말 것(눅3:14)

2. 재앙의 긴급성

1) 하나님이 극히 노여워하심

하나님은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할 때에도 인내하였고(참조, 출32:30-35) 가나안 땅에서도 거역하는 백정들을 향해 인내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내하면서 회개를 촉구하여도 이스라엘의 후손들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죄악이 멈추어지기는커녕 날로 더 점점 흉포해져만 갔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인내는 극에 달하였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도 극에 달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 북이스라엘은 그 진노에 의해 이미 멸망하였고 남유다에게도 진노는 눈앞에 있었습니다.
a.여호와의 노를 당하면 거기 빠짐(잠22:14)
b.노하기를 더디하심(사48:9)

2) 선지자가 애타게 경고함

에스겔 선지자는 히브리 강조법을 사용해 가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성에 임할 재앙의 긴박성을 선포했습니다(참조, 겔7:1-4). 히브리 강조법이란 세 번 강조하는 것으로서 세 번 강조하는 것은 강조되는 말씀이 반드시 곧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지자의 경고에서 징계의 임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선포가 있은 후 얼마 안 있어 예루살렘은 멸망하였습니다(참조, 겔33:21).
a.파수꾼(겔33:7)
b.화,화,화(계8:13)

3) 몽둥이에 꽃이 핌

여기서 몽둥이는 바벨론을 상징하며 꽃이 폈다는 것은 바벨론이 강성해져서 예루살렘을 공격할 힘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로 유다가 정신차리지 못하면서 교만하는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고 강포를 행할 때 느부갓네살은 정복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조만간 그의 군대는 유다를 향해 진군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풍전등화의 상황 앞에 놓였던 것입니다.
a.바벨론 왕의 올라 옴(왕하25:1)
b.바벨론 군대의 위용(겔23:24)

3. 재앙이 임할 때

1) 죽음과 멸망을 당함

재앙은 임박했으므로 곧 현실로 닥쳐올 것입니다. 그것이 현실로 닥쳐올 때의 그림은 이렇습니다. 유다는 멸망을 말합니다. 그리고 유다의 백성들은 바벨론 군대의 칼에 의해 살육 당하거나(참조, 왕하25:9) 기근과 질병으로 죽습니다(참조, 겔5:12). 게다가 죽은 자들의 시체는 장사지내지도 못하며(참조, 렘16:6) 백성들의 재물은 그들이 착취했던 멋처럼 바벨론 사람들에게 약탈당합니다(참조, 겔7:21). 또한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전을 우상으로 더럽힌 것처럼 성전을 이방 군대에 의해 더럽힘을 받습니다(참조, 겔7:22).
a.거짓 백성의 망함(사66:16-17)
b.죽음(렘16:4)
c.멸망(겔33:21)

2) 다 버리고 도망하여 유리함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바벨론 군의 칼과 기근과 질병으로부터 살아난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여 그 곳에서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애통해 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배고플 것이며 한데서 고난을 겪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부는 낯선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 그 곳에서 나라 잃은 슬픔과 고통을 겪을 것이며 손가락질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탐하던 재물도 기뻐하지 않는 가운데 오직 절망하며 애통해 할 것입니다(참조, 겔7:14-27).
a.여호와의 날에 곤비함(사13:7)
b.비둘기 같이 운 히스기야(사38:14)
c.유다 백성의 눈물(시137:1)

결론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자에게만 진노를 내리십니다. 그리고 진노 내리시기를 한 번 결정하시면 속히 내리십니다. 그때 진노를 받는 자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절망과 슬픔과 비참 속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닫노라면 우리는 결코 범죄하지 말아야 하겠고 범죄했을 때에는 속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죄에서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환상(에스겔 8-11장)

 

본 단락은 3:16-32:32의 전기 심판 예언 중에서도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주어진 예언들로서 주로 남유다 멸망 예언을 수록한 전반부 3:16-24:12의 연속 부분이다. 이러한 본단락은 3:16-7:27의 계시가 주어진지 약 1년 2개월 정도가 지난 B.C. 592년 6월 5일에 받은 것으로 보이는 계시를 수록한 제8-13장까지 이어지는 일련 기사의 전반부이기도 하다.

또한 본단락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우상 숭배를 보여주는 환상과 그에 따른 심판 집행 예언을 그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소위 ‘성전 환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성전 환상’은 예루살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이 하나님의 성전까지 우상 숭배로 더럽힌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있음을 보여주는 의의를 지닌다.

이러한 본단락을 개관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성전 환상의 개시 부분인 8:1-18은 에스겔의 영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전 경내에서 행하여지던 가증하고도 광범위한 우상 숭배의 실상을 목격한 사실을 보도한다. 에스겔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문 어귀 북쪽에는 ‘질투의 우상이 있었고(5절), 성전 뜰 문과 연결된 담 안의 비밀 공간에서는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를 비롯한 칠십 인의 장로들이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의 형상을 사방 벽에 그려 놓고 숭배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으며(7-13절), 성전 뜰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페니키아 지역의 우상인 담무스를 위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14,15절). 또 성전 안뜰의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는 25인의 제사장들 곧 대제사장과 24반열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여 태양신 숭배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16절).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위한 만신전(萬神殿, Pantheon)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다음 9:1-11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까지 우상 숭배로 더럽힌 우상 숭배자들을 심판하기 위한 심판 집행자에 의한 선민의 구분과 살육 환상을 보도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상 숭배로 성전까지 더럽힌 예루살렘을 심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천사들을 호출하시는데 그들은 모두 일곱이었다(1,2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심판을 집행하게 하시기에 앞서 이들 중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 복장을 한 한 천사로 하여금 우상 숭배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시고 손에 살상 무기를 들고 있던 여섯으로는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 곧 우상을 숭배한 예루살렘 거민들을 살육하게 하셨다(3-7절). 여기서 가는 베옷을 입은 천사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는 다른 여섯 천사에 앞서 구원받을 의인에게 인친 행위는 최후 심판 때에 네 천사가 세상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앞서 한 천사가 구원받을 의인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행위를 연상케 하여 주는데(계 7:3,4),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섬세하고도 깊은 사랑을 잘 반영하고 있다.

다음 10:1-8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거민 중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위하여 의인의 이마에 표를 하였던 서기관 복장의 천사를 향하여 예루살렘 성읍 위에 숯불을 살포하도록 명하신 사실과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천사의 일련의 행위들을 보도한다(1,2,6-8절). 특별히 여기서는 지성소의 그룹 위에 머물던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3-5절), 하나님께서 이처럼 지성소 그룹으로부터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것은 우상으로 더럽혀진 성전과 예루살렘성으로부터 떠나가시기 위한 일단계 행동으로써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에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임박하였음을 나타내준다.

다음 10:9-22은 성전 지성소로부터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성전을 나와 그룹을 타고 성전 바깥뜰의 동문으로 이동하신 사실을 보도한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이동 수단으로 삼으신 네 그룹의 면모를 밝히며 그 네 그룹이 에스겔의 소명 당시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네 생물임을 거듭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에스겔이 네 그룹의 면모를 밝히며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네 생물과의 동일성을 거듭하여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일전에 본 네 생물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지 못하였다가 여기서 확실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은 비록 지상 성전을 떠나가시고 그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읍은 파괴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지상 성전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우주 만물과 역사와 인생 각자를 섭리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다음 11:1-13은 에스겔이 하나님의 명에 따라 성전 동문에서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아니한 즉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는 말로써 예루살렘은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짓 안전을 유포하는 이십 오인의 고관들을 대항하여 고관들이 주장한 가마와 고기의 비유의 역설적 인용을 통하여 무죄한 사람들을 죽인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선포한 사실(1-12절)과 에스겔의 예언을 확증하는 증거로 에스겔이 심판 예언을 선포하는 중에 이십 오인의 고관 중의 하나인 블라다가 죽은 사실과 남은 자를 위한 에스겔의 호소(13절)를 보도한다.

끝으로 11:14-25은 ‘성전 환상’ 기사의 종결 부분으로서 11:13 후반부의 에스겔의 남은 자를 위한 호소에 대한 답변으로서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이방 포수로부터의 회복 약속을 보도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remnant)’의 개념을 에스겔과는 달리 말씀하신다. 즉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오지 않고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던 자들을 남은 자로 부르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열방에 흩어진 자들의 신앙 회복과 그에 따른 그들의 귀환을 말씀하심으로 진정으로 남은 자는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 포수되어 있는 자들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21절)고 말씀하심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남은 자는 지역과 같은 외적 조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결정됨을 강조하시고 있다.

한편 본문은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떠나 성 밖 감람산으로 이동하신 사실과 에스겔의 영이 다시 바벨론으로 복귀한 사실도 함께 보도하고 있는데(22-25절), 여기서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랩성 밖으로 이동하신 사실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임박성을 동시에 시사하여 준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본문에서 다음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택한 선민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의 지상 임재 처소로 삼으신 거룩한 성전에서 갖가지 우상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숭배한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을 행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우상 숭배가 가장 가증하고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라도 쉽게 범할 수 있는 범죄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약 선민으로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도리를 알고 있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을 숭배하되 심지어 하나님의 성전에서까지 우상 숭배에 몰두하였다. 이는 우리 성도들 역시도 인간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하는 우상 숭배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비록 유형의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 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형의 우상들을 두고 숭배할 수 있다. 특히 무형의 우상에 대한 숭배는 성도들도 너무도 쉽게 빠지기 쉬운 유혹이다. 그리고 우상 숭배는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든지 우상 숭배자를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우상 숭배에 대해서는 아무리 주의하고 경계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성도들은 무형의 우상들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의 처소로 삼으시는 우리의 마음속에 두고 숭배하지 않도록 각성하며 자신을 늘 살펴야 할 것이다(고전 3:16,17).

둘째,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기에 앞서 먼저 의인들의 이마에 인(印)을 쳐 그들을 보존하신 사실에 대하여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때문에 악인에 대하여는 절대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하신다고 해도 의인은 반드시 구별하여 보존하신다. 이는 죄악이 관영한 소돔을 멸하시는 와중에서도 먼저 의인 롯을 구원하신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돔에 대한 심판 작정을 듣고서 롯을 염두에 두고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는 것이 불가함을 피력하였다(창 18:2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멸하기에 앞서 천사를 보내어 롯을 소돔으로부터 이끌어 내셨다. 이는 아브라함의 주장을 하나님께서 수용하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마지막 때에도 세상을 심판하여 악인들을 모두 멸하기에 앞서 먼저 이마에 인쳐진 의인들을 하늘로 들어 올려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보존하실 것이다(살전 4:17).

셋째, 하나님의 영팡이 성전과 예루살렘 성읍으로부터 떠나가심과 동시에 예루살렘이 재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끝내 멸망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두시고자 택하신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그곳 성전의 지성소에 임재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성전에 임재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안전의 보장이었다. 히스기야 시대인 B.C. 701년 앗수르의 수십만 대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함으로써 예루살렘은 멸망의 위기에 처하였다. 누가 보아도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았다. 멸망한 것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앗수르의 대군이었다(사 37:36-38). 이는 예루살렘 성이 견고해서가 아니라 전능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셔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신 까닭이다. 그에 반해 유다 말기에 하나님께서는 성전까지도 온갖 우상으로 더럽힌 예루살렘 거민들의 우상 숭배로 인하여 성전은 물론 아예 예루살렘 성읍으로부터 떠나가시고 말았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초토화되고 말았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 하나님의 함께하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은 평강과 안전과 승리와 축복의 보장이 된다. 반면 하나님의 떠나섬은 파멸과 패배와 실패의 단초가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절대 자기에게서 떠나시지 않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성도들은 우상 숭배를 비롯한 모든 죄악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함께하시지 않 으며 죄가 있는 곳에 머물지 않으신다.

넷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본토에 남아 있던 자들이 아니라 바벨론 땅에 포수된 자들을 ‘남은 자’로 규정하시고 그들이 신앙의 회복을 통해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씀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겉으로 나타난 양상만 보면 남은 자는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 남아 었던 자들이며 바벨론 땅에 포수된 자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자들이다. 때문에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은 자신들을 의로운 자요 남은 자라고 여기며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악인들이라고 멸시하였다.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남기신 남은 자로 여긴 것은 에스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던 자들이 남은 자가 아니라 바벨론 땅에 포수된 자들이 남은 자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신앙 회복을 통하여 회복될 것임과 그들 중에서도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따르는 자들 곧 우상 숭배자들은 회복되지 못하고 행위대로 심판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심으로 진정한 의미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는 자들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렇다. 남은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은 자를 남겨두시어 당신의 구속사를 종말까지 이어가시며 마침내 남은 자들을 다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나 단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성결하게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심판 날에 영원한 파멸 가운데 버려 자신들의 위선과 교만의 결국이 무엇인지 알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남은 자들이 되라. 아합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의 남은 자와 같이 온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어가고 신앙이 변질되어 가는 중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성결하게 지키자.

 

 

 

 

 

예루살렘의 우상 숭배 현장(에스겔 8:1-18)

 

[ 성경묵상 ]

성전 환상의 개시 부분인 8:1-18은 에스겔의 영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성전 경내에서 행하여지던 가증하고도 광범위한 우상 숭배의 실상을 목격한 사실을 보도한다.

에스겔이 목격한 바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문 어귀 북쪽에는 ‘질투의 우상이 있었고(5절), 성전 뜰 문과 연결된 담 안의 비밀 공간에서는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를 비롯한 칠십 인의 장로들이 각종 곤충과 가증한 짐승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의 형상을 사방 벽에 그려 놓고 숭배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으며(7-13절), 성전 뜰 북문에서는 여인들이 페니키아 지역의 우상인 담무스를 위한 종교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14,15절). 또 성전 안뜰의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는 25인의 제사장들 곧 대제사장과 24반열의 제사장들이 성전을 등지고 동쪽을 향하여 태양신 숭배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16절).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곳이 아니라 이방의 모든 우상들을 위한 만신전(萬神殿, Pantheon)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 질문 하나 ]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 예루살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모습이 어떠한가?(3-6절)

[ 질문 둘 ] 우상 숭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소개되고 있는데, 누가 보이는가?(11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에스겔서는 에스겔이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은 시점이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지고 었으며 본서 전체가 대체적으로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은 시간 순으로 배열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1:1에서 그 시점이 제시되며, 두 번째는 8:1에 제시되고, 세 번째로는 12:1에 제시된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로 시점이 제시되는 제8-11장은 하나로 묶어질 수 있다. 이처럼 한 단락으로 묶여지는 제8-11장에서는 에스겔이 예루살렘에 관한 환상을 본 것과 그 환상 가운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분노를 격발시키는 가증스런 우상 숭배에 탐닉하여 있는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해 여호와께서 성전을 떠나 심판을 준비하시는 모습과 관련된 일련의 예언이 주어진다.

이러한 예언은 앞선 7:20-22절에 예언된 예루살렘 멸망이 유다의 범죄 행위로 말미암은 정당한 하나님의 심판이란 사실을 확증해 준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유다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 등이 예언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어지는 예루살렘 멸망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시드기야 왕은 그런 사실을 예언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는 등 노골적으로 극심한 핍박을 가했다(렘 32:1-5).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본장에서 제시되는 예루살렘의 만연하고 패역한 우상 숭배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과 심판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의 내용을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먼저 1-4절은 성전 환상에 대한 서언으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에스겔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동하는 환상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다음 5,6절은 성전 북문 입구에 세워진 질투의 우상에 대해 기록한다.

다음으로 7-13절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던 은밀한 우상 숭배에 대해 기록하며,

14-15절은 담무스 우상을 숭배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16-18절은 태양신 숭배와 더불어 이처럼 가증한 우상 숭배로 인해 여호와께서 조금의 긍휼하심도 없이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임을 선언하신 사실을 기록한다.

여기서 제시되는 이상의 네 가지 우상 숭배가 모두 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참으로 경악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고, 여호와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두시겠다고 약속하신 그곳이 가증한 우상 숭배의 온상으로 변해 버린 사실은 여호와께서 더 이상 그곳에 임재해 계실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더군다나 이러한 각종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정치적 · 종교적 지도자들과 더불어 여자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이라는 사실은 유다 백성 전체가 다 우상 숭배에 골몰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9장에서 11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성전으로부터 시작됨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이 성전으로부터 떠나가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떠나심이 유다 백성들이 성전에서 저지른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패역한 범죄 행위 즉 우상 숭배로 말미암은 것임을 부각시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즉 심판은 유다 백성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성전에서 떠나시도록 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1. 여섯째 해 여섯째 달 초닷새에 나는 집에 앉았고 유다의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는데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에서 내게 내리기로

제 육년 여섯째 달 오일에 나는 집에 앉아 있고, 유다 장로들은 내 앞에 앉아 있을 때에, 주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서 나를 사로잡으셨다.

2.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내가 바라보니, 사람의 형상이 보였는데, 허리 밑으로는 모양이 불처럼 보이고, 허리 위로는 환하게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처럼 보였다.

3.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

그 때에 그 형상이 손처럼 생긴 것을 뻗쳐서, 내 머리채를 잡았다. 하나님이 보이신 환상 속에서, 주의 영이 나를 들어서 하늘과 땅 사이로 올리셔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안뜰로 들어가는 북쪽 문 어귀에 내려 놓으셨다. 그 곳은 질투를 자극시키는 질투의 우상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4.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들에서 본 모습과 같더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있는데, 내가 전에 들에서 본 환상과 같았다.

5.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제 너는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라 하시기로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제단문 어귀 북쪽에 그 질투의 우상이 있더라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어서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아라." 내가 눈을 들어 북쪽을 바라보니, 문의 북쪽에 제단이 있고, 문 어귀에 바로 그 질투의 우상이 있었다.

6.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에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이스라엘 족속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이느냐? 그들은 여기서 가장 역겨운 일을 하여, 나의 성소에서 나를 멀리 떠나가게 하고 있다. 그러나 너는 더 역겨운 일들을 보게 될 것이다."

7.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그는 나를 이끌고, 뜰로 들어가는 어귀로 데리고 가셨다. 내가 거기에서 바라보니, 담벽에 구멍이 하나 있었다.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 한 문이 있더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어서 그 담벽을 헐어라." 내가 그 담벽을 헐었더니, 거기에 문이 하나 있었다.

9.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하고 있는 그 흉악하고 역겨운 일들을 보아라."

10.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방 벽에 그렸고

내가 들어가서 보니, 놀랍게도, 온갖 벌레와 불결한 짐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담벽 사면으로 돌아가며 그려져 있었다.

11.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명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에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이 그 우상들 앞에 서 있고,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는 그들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들은 각각 손에 향로를 들고 있었는데, 그 향의 연기가 구름처럼 올라가고 있었다.

12.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에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자기가 섬기는 우상의 방에서, 그 컴컴한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았느냐? 그들은 주께서 우리를 보고 있지 않으시며, 주께서 이 나라를 버리셨다고 말하고 있다."

13.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다시 그들이 행하는 바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그들이 하고 있는 더 역겨운 일을 보게 될 것이다."

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에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리고 나서 그는 나를 주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북문 어귀로 데리고 가셨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 곳에는 여인들이 앉아서 담무스 신을 애도하고 있지 않은가!

15.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잘 보았느냐? 이것들보다 더 역겨운 일을 또 보게 될 것이다."

16.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 안뜰에 들어가시니라 보라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더라

그가 나를 주의 성전 안뜰로 데리고 가셨는데, 주의 성전 어귀에, 바로 그 현관과 제단 사이에 사람이 스물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주의 성전을 등지고, 얼굴을 동쪽으로 하고 서서, 동쪽 태양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1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에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그 땅을 폭행으로 채우고 또 다시 내 노여움을 일으키며 심지어 나뭇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네가 잘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하고 있는, 저렇게 역겨운 일을 작은 일이라고 하겠느냐? 그런데도 그들은 온 나라를 폭력으로 가득 채워 놓으며, 나의 분노를 터뜨리는 일을 더 하였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자기들의 코에 갖다 대는 이교 의식까지 서슴지 않고 하였다.

나뭇가지를 코에 두는 것을 단순히 불쾌하게 모욕하는 행위로 보는 이도 있고, 이교 의식의 일부로 보는 이도 있다. 문맥상 이교 의식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8.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나도 이제는 내 분노를 쏟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조금도 가엾게 여기지도 않겠다. 그들이 큰소리로 나에게 부르짖어도,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겠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Ⅰ. 투기의 우상 8:1-6

에스겔은 당시 바벨론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전장들에서 전했던 진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과 관계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일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되며 이 환상은 11장 끝까지 계속된다.

(1) 에스겔이 보았던 첫 번째 환상은 포로된 지 제 5년 4개월 5일째 되는 날에 있었다(겔 1:1,2).

이 환상은 그 후로부터 정확히 14개월 후의 일이었다. 이는 아마도 그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짊어지기 위하여 좌편으로 390일 동안 누워 있었던 후요, 그가 유다의 죄악을 짊어지기 위하여 우편으로 40일 동안 눕기 시작하기 전이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그가 당시에 누워 있지 않고 집 안에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2) 선지자는 아마도 깊은 명상에 잠겨 그의 집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포로로 잡혀왔던 유다의 장로들이 선지자 앞에 앉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어떤 비상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곧 그 장로들이 여호와께 묻기 위하여 그에게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자 선지자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유다의 장로들은 포로가 된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더욱 존경하였으며 그의 말을 자신들의 입에 두었다. 사역자의 집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이웃들을 위하여 일종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로마에서 바울은 자신이 세를 낸 집에서 설교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그를 두셨으므로 아무도 그를 금하지 못했다.

(3) 선지자는 당시 하나님의 감화 아래 있었다.

주 여호와의 권능이 거기서 내게 임하기로(1절).

(4) 선지자가 본 환상은 다음과 같다(2절).

그는 한 현상, 즉 그 허리 이하의 모양을 불 같고 허리 이상은 광채가 나는 형상을 보았다. 이 형상에 대한 묘사는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묘사와 동일하다(겔 1:27).

(5)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그는 '천지 사이로'들려 올라갔다. 그때 아마도 황홀경 또는 무아 지경 속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던 듯하다. 생각컨데 바울의 경우와 같이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땅 위에 올려지며 또 땅의 것들에서 올리움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통과 그 광채가 접하기에 최상으로 예비된 사람들이다. 선지자는 환상 중에 예루살렘에 옮기워져 그 곳에 있는 하나님의 성소로 안내되었다.

(6)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보았다.

1) 그는 전에 보았던 것과 동일한 모습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참조. 1장).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환상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그러나 그 영광의 환상이 여기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욱 영광스럽게 보이면 보일수록, 죄 특히 우상 숭배의 죄는 더욱 추악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2) 그 곳에서 이스라엘의 치욕거리 곧 '제단 북향 문에 있는 투기의 우상들'을 보았다(3,5절).

이 우상은 아마도 므낫세가 만들어 성전 안에 세워둔 바알의 상이었던 듯하다(왕하 21:7;대하 33:3).

이 상들은 요시아가 제거해 버렸으나 그의 후계자들이 되돌려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요시아가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는 곳에서 발견했던 태양 수레들을 그들이 다시 되돌려 놓았던 것과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그것들이 문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선지자는 우리로 하여금 그 상이 무엇이든지간에 그 우상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극도로 대적하는 것이요, 투기를 자극하는 것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그 우상을 '투기의 우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이것이 이 백성들을 내어쫓을 근거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자기의 성소를 존귀케 하지 아니하시고 성소를 보호하지도 아니하시며 오히려 수치를 당하도록 버려두실 것이다.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한 가지 가증스런 것이 있는 곳에는 다른 가증한 것들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죄를 한 번 짓게 되면 계속 짓게 된다.

장로들의 타락상 ( 8:7-12 )

예루살렘의 성전 경내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가증한 일에 대한 설명이 여기에 나타난다.

(1) 어떻게 이러한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는가.

환상 중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뜰 문' 곧 성전의 바깥 뜰로 데리고 갔다. 그 뜰의 좌우에는 제사장들의 숙소가 있었다. 그런데 '담에 구멍이' 있었다(7절). 즉 첩자가 염탐할 수 있는 구멍이 있었다. 에스겔이 그 구멍이 있는 '담을 허니 문이 하나' 나타났다(8절;흠정역에는 '그 구멍을 넓히니'라고 되어 있다-역주). 에스겔은 이 문 안으로 들어가 창고 또는 제사장들이 기거하는 방 중 하나를 택하여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이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목격한다(9절).

(2) 그 내용은 무엇인가.

선지자는 우상의 그림으로 사면이 그려진 방을 보게 된다(10절). 이는 판테온 곧 온간 우상을 다 모아놓은 일종의 수집소같은 것이었다. 제 2계명이 금하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새긴 우상'이었지만 그려진 우상 역시 사악하고 위험한 것임에 틀림없다. 선지자는 이 방에 우상 숭배자들이 꽉 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곳에는 이 그려진 우상들에게 분향하고 있는 칠십인의 '이스라엘 장로'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각자 손에 향로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자칭 모두 제사장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눈 밖에 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12절).

태양과 담무스 숭배 ( 8:13-18 )

(1) 선지자는 더욱 가증스런 일들을 목도하게 된다(13-15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14절). 혹자는 이 여인들이 애곡한 우상은 헬라인들의 우상 가운데 하나인 아도니스(Adonis)였다고 생각하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애굽인들의 우상인 오시리스(Osiris)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 우상의 형상은 우는 모습이었고 따라서 숭배자들도 그 우성과 더불어 울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여인들은 이 담무스의 죽음을 슬퍼했으나 얼마 안되어 담무스가 다시 소생하였기 때문에 기뻐했다. 이 애곡하는 여인들은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복문'에 앉아서 우상 숭배의 가증한 눈물을 뿌렸다. 어떤 이들은 이 여인들이 육체적인 간음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태양을 숭배하였다(16절). 여호와의 전 안뜰에...여호와의 전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오 동방 태양(떠오르는 태양)에 경배하더라.

(2) 이러한 광경들에서 이끌어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17절).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너는 여호와의 전에서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을 전에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기소를 하신다. "하나님의 계시와 규례들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이와 같은 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수난을 당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들이...또 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계속해서 자극하고 또 자극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비웃는 것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이 구절을 마소라 사본처럼 "그들이 나무가지를 자기들의 분노, 또는 그의 진노에 두었느니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이미 불붙여 놓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그들이 계속해서 더 많은 땔감을 가져오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자비를 구하는 그들의 기도소리보다는, 복수를 부르는 죄악의 소리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겔8:1-18]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성전의 우상숭배 환상과 다원주의(에스겔8장)

▣ 본문: 에스겔 8장 1-18절 ▣ 제목: 에스겔이 본 예루살렘 성전의 우상숭배 환상과 다원주의 ▣ 포스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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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8장] 우상이 가득한 예루살렘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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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은밀한 우상 숭배 ( 8장 )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 온 때로부터 6년, 에스겔이 첫 환상을 본 때로부터는 만14개월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 해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신에 이끌리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유다 백성들의 가증한 우상 숭배의 모습을 환상으로 봅니다. 본장은 그때에 본 환상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1. 우상 숭배의 종류

1) 신상 숭배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보여 주신 유다 백성의 우상 숭배 죄악을 유형별로 분류해 보면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눠집니다. 첫번째 유형은 사람이 만든 신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애굽의 태양신이나 가나안의 아세라 상을 그들의 손으로 만든 뒤 그 신상들에게 절을 하며 복을 빌었습니다. 이 행위는 광야에서 금 송아지를 만든 것(참조, 출32:1-6)과 같은 것으로 있지도 않은 신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는 우상 숭배 형태입니다.

a.신상을 만들지 말며(출20:23)

b.예루살렘의 신상을 치심(사10:11)

2) 자연 숭배

유다 백성이 행한 우상 숭배의 두번째 유형은 자연 숭배입니다. 그들은 나무나 돌등과 같은 자연물에서부터 시작하여 곤충(참조, 겔8:10), 태양(참조, 겔8:16)과 같은 피조물들을 숭배하였습니다. 이러한 우상 숭배는 모든 우상 숭배 형태 중에서 가장 원시적이고 유치한 형태의 우상 숭배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지존한 여호와를 그들의 신으로 섬길 권리와 의무를 가진 유다 백성들이 그와 같은 저열한 우상 숭배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a.나무를 아비라 함(렘2:27)

b.목석 숭배(겔20:32)

3) 물 신 숭배

유다 백성들은 신상이나 자연물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보다 더 힘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신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당장 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물 신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찾은 것은 그 시대에 있어 가장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 곧 풍년을 가져다 주는 신인 바알과 바벨론의 담무스였습니다. 그들은 바알과 담무스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들을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a.바알 숭배(렘19:5)

b.양식 숭배(겔4:16)

2. 우상 숭배의 장소

1) 산과 들

유다의 숭배 대상이 자연물이었기에 유다 백성들은 숭배 대상이 될 만한 것들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유다 백성들은 돌과 나무를 숭배했기 때문에 자연히 산과 들에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또한 자연물이 아니더라도 신상을 만들어 산속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기 때문에(참조, 겔6:1-7) 특히 산은 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주요 장소였습니다. 더욱이 산은 남의 눈을 피하기에 좋은 장소였기 때문에 선호되는 장소였습니다.

a.신당에서의 제사(왕상3:2)

b.색스러운 산당(겔16:16)

2) 마을

유다 백성들은 점점 강퍅해져 갔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숨어서 은밀히 우상을 숭배하다가 점차로 노골적으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유다 백성들은 산과 들에서부터 우상을 그들이 사는 마을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우상을 숭배함으로 사람들은 점차 담대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a.마을 거리에서 행음(렘3:2)

b.길가에 앉아 행음함(겔16:24)

3) 성전과 성소

유다 백성들의 노골적인 우상 숭배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극악해져 갔습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고(참조, 겔9:9) 악을 행하여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하였습니다(참조, 렘12:4). 그들은 극도로 마음이 강퍅해져 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강퍅은 마침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과 성소 은밀한 곳에서도 행하기까지 이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본장의 내용은 바로 이 극악한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있습니다(참조, 겔8:3).

a.제단 문 어귀의 우상(겔8:5)

b.성전 안 뜰에서의 태양 숭배(겔8:16)

3. 우상 숭배의 무리

1 ) 평민들

유다 백성 가운데 우상을 숭배한 장본인들은 어느 면으로 보나 즉물적이고 단순한 평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삶의 노예가 되어 당장에 풍년을 가져다 주고 당장에 육체의 풍요와 안위를 가져다 주는 신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에서 비교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또한 보다 쉽게 그러한 신들에게 미혹되어 넘어지기 쉬었습니다. 그리하여 평민들은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그들에게 그들의 배부름과 안위를 구하였습니다. 본장에서 보이는 유다의 아녀자들이 바벨론의 곡식의 신이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는 장면은 그러한 평민들의 우상 숭배 모습을 잘 드러내 줍니다.

a.여인들(겔8:14)

b.남녀 노소(겔9:6)

2) 장로들

유다의 심각성은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마저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 성전 산 뜰에 있는 은밀한 방에서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 인이 사면 벽에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그려 놓고 숭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참조, 겔8:10-11).

a.방백들(렘44:17)

b.칩십 장로(겔8:11)

3) 제사장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선택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해도 그들만은 그러지 말아야 했으며 나아가 자기 백성이 우상 숭배의 죄악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참조, 겔8:16). 이로 보건대 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전민족적으로 우상 숭배에 빠진 것이며 이것은 유다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a.제사장의 수치(렘2:26)

b.백성과 같은 제사장(호4:9)

결론

우상 숭배는 온갖 형태로 다가와서 그 어떠한 사람도 거기에 빠지도록 미혹합니다. 그 대상에는 가장 거룩한 자리에 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사단의 올무에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