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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묵상

에스겔 5 - 6장

by 은총가득 2021. 3. 1.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에스겔 5:1-17)

 

[ 성경묵상 ]

5장 요약 ; 전반부는 에스겔이 행한 네 번째 상징적 행동으로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과 백성들의 흩어짐에 대해 예고한다. 후반부는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그 참상을 밝히는 부분이다.

5:1-4 ; 칼과 터럭의 상징은 예루살렘의 완전한 파멸을 묘사한다. 에스겔이 취하는 이러한 상징적 행동은 에스겔의 메시지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곧 심판과 재앙은 반드시 임한다는 것이다.

5:5-17 ;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으며, 다른 민족들에게는 보편적인 도덕법을 주셨다. 하나님의 분노는, 하나님의 법에 대항하는 자들에게 퍼붓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 특히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실천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의 분노는 필연적으로 임한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과 땅을 심판하시는 일은 유일무이한 일로, 온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 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 질문 하나 ] 에스겔의 마지막 '무언극'은 예루살렘 성에 어떤 재앙이 닥칠 것을 예고하는가?(2절)

에스겔의 무언극이 절정에 달한다. 그는 날카로운 칼로 자기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삼등분 한 후, 삼분의 일은 모형 성읍 안에서 불태우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날린다.

예루살렘 거민이 불타 죽거나, 칼에 죽거나, 바람같이 흩어질 것이며, 남은 자들도 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극한의 절식과 고행에 지친 몸을 던져 비극적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의 모습에서 이스라엘이 당할 고난뿐 아니라, 하나님의 고통을 보게 된다.

[ 질문 둘 ] 마침내 에스겔이 입을 열었을 때 그는 예루살렘에 대해 어떤 말씀을 전하였는가?(5-7절)

430일간의 무언극이 끝난 후 마침내 에스겔이 입을 연다. 그가 온 몸으로 전했던 메시지가 예루살렘에 관한 것임이 이제 분명해지게 된다.

예루살렘은 열국의 중심이 되라는 특권과 책임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내버림으로 열국보다 더 못하고 악하게 돼 버렸다. 열국 가운데 밝은 빛이 되어야 할 존재가 열국의 오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엄청난 은혜와 특권을 받았음에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 오늘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질문 셋 ] 예루살렘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8-17절)

예루살렘이 받은 특권과 사명으로 인해, 예루살렘의 실패와 죄에 대한 심판은 더 막중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을 치는 적은 적국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들이 하나님의 미쉬파트(정의)를 무시한 만큼, 하나님이 친히 그들에게 미쉬파트(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그 결과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렇게까지 혹독하게 다루실까?

예루살렘이 열국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실패는 이제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될 것이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5장 1-4절은 앞선 4장에 이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과 멸망의 면면을 예고하기 위하여 에스겔에게 행하라고 명하시는 네 가지 상징적 행위 가운데 네번째 것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그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어 날려 버리라는 명령을 하신다.

1.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상징)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너 사람아, 너는 날카로운 칼을 한 자루 가져 와서, 그 칼을 삭도로 삼아 네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고, 그것을 저울로 달아 나누어 놓아라.

제사장은 원래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가 되어서도 안되고, 수염 양편을 깍지도 말아야 하며, 살을 베지도 말아야 한다(레 21:5). 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수염을 미는 것이 큰 수치와 불명예였고, 때때로 극도의 애도와 연관된 풍습이기도 했다. 이것(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를 삼는 것)은 제사장으로서 자기를 더럽히는 수치일 뿐 아니라, 온 몸을 면도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칼에 살이 여기저기 베이기도 하는, 큰 고통과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네 번째 상징적 명령은 에스겔이 선지자이기 전에 제사장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가히 충격적인 명령이라 할 수 있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들은 여호와에 대한 헌신의 표시를 몸에 간직하기 위해 머리털과 수염을 자르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레 21:5). 머리털을 자를 경우 제사장직이 상실될 수도 있었으며(Feinberg), 수염을 자르거나 잘리는 것은 제사장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수치스런 일이었다(삼하 10:4,5).

욥의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을 당했을 때, 자신이 겪는 처절한 슬픔의 표시로 머리털을 잘랐으며(욥 1:20), 여호와는 범죄한 자들에게 애통하는 심령으로 머리털을 뜯어 버리라고 명령하셨다(사 22:12).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에스겔 선지자는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모두 깎아 버림으로써 주변의 동족들에게 비난을 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이와 같은 행위는 여호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치를 마다하지 않고 감당해 내는 의로운 여호와의 종, 고난의 종의 본(사 53:7)을 따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날카로운 칼’은 양쪽 날이 매우 날카로운 칼을 지칭하는 것이다(잠 5:4). 고대 근동에서는 가위가 아닌 이러한 칼로써 머리털을 잘랐다(삿 13:5). 본문에서 날카로운 칼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이용하실 바벨론과 바벨론의 잔인한 군대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스겔은 옆으로 눕는 390일 동안 자신이 먹을 음식을 저울에 달아 나누어 먹었듯이(4:9), 자신이 자른 머리카락과 수염을 저울에 달아 동일한 무게로 등분하여 나누어야 했다. 본문에서 ‘저울에’은 ‘무게의 저울’이라는 의미이다. 이 저울은 좌우로 달린 추처럼 생긴 접시가 있어서 그 위에 물건을 각각 올려 놓아 무게를 측정하던 고대의 천칭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종종 저울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단 5:27). 본문에서도 에스겔이 자른 머리카락과 수염을 그렇게 달아서 나누어 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계획하신 바에 따라 엄정하게 임함을 상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2.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

그리고 그 성읍의 포위 기간이 끝난 다음에, 그 털의 삼분의 일을 성읍 한가운데서 불로 태우고, 또 삼분의 일은 성읍 둘레를 돌면서 칼로 내려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게 하여라. 그러면 내가 칼을 빼어 들고, 그 흩어지는 것들을 뒤쫓아 가겠다.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은 문자적으로 ‘그 에워쌈의 날들이 찰 때에(ESV, when the days of the siege are completed)’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차거든'은 ‘완성될 때에’, 혹은 ‘끝날 때에’라는 의미로 해석 할 수 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바벨론 제국을 통해 예루살렘을 멸망시켜 그 포위가 끝나는 때인 유다 왕 시드기야 재위 제11년인 B.C. 586년을 지적하는 예언이다.

"불사르고 ... 칼로 치고…바람에 흩으라"의 세가지 상징적 행위가 나타내는 이면적 의미는 12절에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절의 해석에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

먼저 ‘불사르는 행위’가 12절에서는 ‘전염병과 기근으로 멸망시킨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있기 때문에, 성내의 삼분의 일이 불에 타 죽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구약 성경에서 ‘불’, 혹은 ‘불로 사름’이라는 개념이 파괴와 멸망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연관성은 보다 쉽게 이해된다(민 11:1 ; 사 30:33 ; 렘 4:4).

또한 칼로 치라는 것은 바벨론 군사들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 실제로 칼로 죽임을 당하는 자가 많을 것을 자연스레 연상케 한다.

그리고 바람으로 흩어 버리는 행위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과 관련하여 전염병과 기근, 그리고 칼에 죽는 일을 피한 자들이 이방 여러 지역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것,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이방 땅에 추방 당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흩으라’는 타작을 할 때에 알곡을 얻고 쭉정이를 바랍에 날려 보내기 위해 키로 까불리는 것(룻 3:2 ; 사 41:16 ; 렘 15:7)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바람에 날려 까불리는 것은 언약 백성이 범죄할 경우에 임하는 저주 예언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열방에 흩어 버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묘사할 때에 사용되었는데(레 26:33) 여기서도 동일한 맥락에서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것이다. 이는 이 모든 일이 결국 이스라엘의 언약에 대한 불성실, 불순종으로 인한 언약적 저주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는 예언 역시 레 26:33에 예언된 범죄한 선민에 대한 심판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예언은 생존하여 이방 땅으로 흩어진 자들의 목숨까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흩어진 이방 땅에서도 범죄할 경우 그들을 쳐 심판하시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 준다.

표현 자체는 하나님이 사람처럼 칼을 빼 들고 뒤를 쫓아가는 것처럼 되어 있으나, 이는 사실상 심판의 생생함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한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anthropomorphism)일 뿐이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칼’은 가차 없는 심판이 예비되었음을 상징한다. 그것을 휘두르지 않고 단지 흩어진 자들을 향해 뺀다는 것은 흩어진 자들이 무조건 다 심판에 걸려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언제나 여호와의 심판의 위협에 직면해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위협은 그들이 실제로 끝없는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에 실제 심판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3.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네 옷자락에 싸고

그러나 너는 그것들 가운데서 조금을 남겨 두었다가 네 옷자락으로 싸매어라.

1,2절에서는 예루살렘의 함락이 이루어질 때 처처에서 살육이 있을 것을 보여주고자 터럭을 삼등분하여 처리하는 내용의 명령을 다루었다.

이어지는 3,4절에서는 남은 자의 보존을 예고하는 일부 터럭의 보존과 보존된 터럭의 일부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다룬다. 이러한 3,4절의 상징적 행위는 예루살램 멸망으로 인해 대다수가 죽임을 당할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로 얼마를 생존케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생존자들 가운데 또다시 얼마가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3절의 행위는 에스겔이 잘라낸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모두 다 제거해 버린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는 한 줌도 안 되는 적은 분량의 머리카락을 자신의 옷자락에 싸야 했다.

본문에서 ‘조금을’에 해당하는 ‘메아트 삐미쓰파르’는 문자적으로 ‘수에 있어서 매우 적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사실상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 분량의 머리카락을 나타내며 여호와께서 심판의 와중에도 그의 긍휼하심의 은혜로 남겨 두시는 남은 자(remnants)를 상징한다(사 6:13 ; 렘 23:3 ; 슥 13:8,9).

그것을 옷자락에 싸는 행위는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한다는 것을 상징한다(Block), 이들은 예루살렘성의 함락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애굽이나 바벨론 등지로 흩어져 생존하게 된 남은 자를 포함하는 무리들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다 남은 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어지는 4절에서 그들 중 일부가 또다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4. 또 그 가운데에서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

너는 또 그것들 가운데서 얼마를 꺼내서 불 한가운데 집어 던져서 살라 버려라. 그 속에서 불이 나와서 온 이스라엘 족속에게 번질 것이다."

"얼마를 불에 던져 사르라"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명하시는 행동은 남은 자 가운데서도 일부가 죽임을 당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불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로 나올 것이라는 예언은 흩어진 남은 자들에게 고난이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며 그들이 계속해서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겪을 것임을 암시하며(Feinberg), 불이 그들 중 얼마를 사를 것이라는 예언은 그들이 이방에 흩어져 살면서도 과거처럼 여호와를 배반하고 죄악을 범함으로 심판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Wright).

이와 같은 사실은 렘 29:20-23에 예언되어 있다. 이방 포로지로 흩어져 사는 것이 그들의 안전을 완전히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서도 진정한 남은 자를 가려내기 위해 그들에게 두 가지 불같은 고난을 주신다. 예루살렘 멸망이 그 하나요, 이방 포로지에서 최종적으로 구원받을 남은 자를 골라내기 위해 주시는 고난이 그 두번째이다.

본문에서 ‘불에’는 문자적으로 ‘불 한가 운데로(ESV, into the midst of the fire)’라는 의미이다. 이는 ‘불 같은 고난의 한 가운데로’, 혹은 ‘살라버리는 심판의 한 가운데로’라는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하다. 문맥상 시련과 연단의 의미가 내포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적합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불이 이스라앨 온 족속에게로 나오리라"는 표현이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 속에서’에 해당하는 ‘빔벤누’를 앞 문장과 연결하면 ‘그 불 속에서’라는 의미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거기에서 불이 나온다는 이어지는 표현을 고려할 때 적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난점을 해결하려면 본절을 앞선 2절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본절의 ‘그 속에서’에 해당하는 ‘멈벤누’는 ‘예루살렘성에서부터’라는 의미가 된다. 즉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심판의 불은 그곳에 거하는 자들에게만 멈추지 않고 재난을 피해 이방 땅으로 흩어진 자들까지 따라가 그들이 여호와 앞에 지속적으로 범죄할 경우 그들까지 태워버린다는 예언이다(Block). 이러한 사실은 레 26:38,39에도 예언되어 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온 족속’에 해당하는 ‘콜 빼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 세계 전역으로 흩어져 살아가는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지칭한다. 따라서 본문은 그들 모두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심판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불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를 신실히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별하실 것이며 그 위험을 면케 하실 것이다.

7-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앞선 네 가지 상징적 행위에 나타난 심판의 원인을 제시하고 이방 앞에서 철저하고도 확실하게 심판을 집행하실 것을 강조하신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4:1-5:4에 기록된 에스겔의 상징적 행위에 대한 해석을 내리시는 부분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되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에 두어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거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예루살렘이다. 내가 그 성읍을 이방 사람들 한가운데 두고, 나라들이 둘러 있게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시작하는 본절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주’에 해당하는 ‘아도나이’를 사용하여 신명 여호와를 수식한다. 이 단어는 ‘주인’, ‘주권자’를 의미하는 ‘아돈’의 강조형으로 구약 성경에서 도합 434회 나오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창 15:2). 본문에서는 이하의 내용이 시간을 초월하여 역사의 시작과 끝을 아시며 국가와 개인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이 절대적이며 온전히 받아 들여야 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6.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런데도 그 성읍은 다른 민족들보다 더 악하여 내 규례를 거스르고,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내 율례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내 규례를 거역하고, 내 율례를 지키지 않았다.

6절과 7절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먼저 예루살햄이 여호와의 율법을 받고 그의 규례를 알며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통해 여호와를 직접적으로 섬길 수 있는 성읍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즉 예루살렘이 이방 여러 성읍들보다 객관적으로 악을 덜 행했지만 그 성읍이 여호와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악을 한 가지만 행해도 매우 큰 악을 저지른 것처럼 판단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이 객관적으로도 이방 여러 성읍들보다 악을 더 행 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으로 맡겨 준 자에게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시다(눅 12:48). 따라서 여호와의 뜻을 아는 위치에 있었던 예루살렘은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이방 성읍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 면을 감안한다면 전자의 견해가 더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다 말기, 특히 아하스, 므낫세와 아몬,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로 이어지는 악한 왕들의 치리 하에 있던 유다의 면모는 실로 이방인들이 저지르는 모든 죄악상들, 온갖 이교적 악행들을 다 모아 놓은 것이라고 이를 만한 것이었다. 이 면에서 볼 때 후자의 견해도 분명한 타당성올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어지는 7절의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와 ‘너회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는 표현은 연속적인 비교를 통해 예루살렘이 이방 어느 나라보다 사악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힘주어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전자의 견해도 나름의 타당성이 있지만 후자의 견해에 보다 무게가 실린다 할 수 있다.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보다 더 거스르는 사람이 되어서, 내 율례를 따르지도 않고, 내 규례를 지키지도 않고, 심지어는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들이 지키는 규례를 따라 살지도 않았다.

5-7절에서는 선민 심판의 원인으로 선민이 이방을 능가하는 범죄를 저지르며 여호와 하나님 앞에 반역을 일삼았음을 지적하였다.

이제 8-12절에서는 이와 같은 이방 앞에서의 선민의 타락에 상응하는 철저하고도 확실한 심판 집행을 강조한다.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친히 너희를 대적하겠다. 그리고 뭇 이방 사람이 보는 앞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벌을 내리겠다.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너희의 온갖 역겨운 일들 때문에,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그런 일을, 내가 너희 가운데서 일으키겠다.

10. 그리한즉 네 가운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잡아먹고 아들이 그 아버지를 잡아먹으리라 내가 벌을 네게 내리고 너희 중에 남은 자를 다 사방에 흩으리라

너희 가운데서 아버지가 자식을 잡아 먹고, 자식이 아버지를 잡아 먹을 것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 벌을 내리고, 너희에게 남은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어 버리겠다.

인육(人肉)을 먹는 행위, 그것도 아비가 아들을, 아들이 아비를 잡아 먹는 이 일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서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이 지닌 보편 양심이나 인륜만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추악하며 처절하다 못해 처참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참혹한 일은 극심한 굶주림이 지속될 때 겪게 되는 경우에 역사 가운데 종종 있어 왔다. 본절은 장차 예루살렘이 포위되어 함락되는 과정에서 식량난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지를 함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일은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 백성들이 자신과의 언약을 어길 때 정계와 심판의 일환으로 이루어질 일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레 26:29).

이와 관련하여 고대 근동에서 주종 계약을 맺을 때 언약적 저주 구문 가운데에 이러한 인육을 먹게 될 것이라는 조항이 있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Ancient Near Eastern Texts). 그리고 실제 이 일은 과거 북이스라엘의 제9대 왕이었던 여호람 통치 당시 아람이 사마리아를 포위할 때에 이루어졌다(왕하 6:28,29). 그런데 이 일이 이제 유다, 그것도 평강의 성읍이라 일컬음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거소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질 것이라 본절은 말하고 있다.

한편 여기에서 ‘아비’와 ‘아들’에 해당하는 ‘아보트’와 ‘바님’은 각각 복수형이며, 이러한 표현은 이처럼 참혹스러우며 참담하며 처참한 일이 예루살렘에서 무수히 자행될 것임을 합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스겔 선지자의 이같은 예언은 실제로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자비한 여인들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자기 자녀들올 삶아 먹음으로 이루어졌음올 예레미야 선지자는 기록하고 있다(애 4:10).

11.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진실로 너희가 온갖 보기 싫은 우상과 역겨운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혀 놓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넘어뜨리겠고, 너희를 아끼지 않겠으며, 너희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겠다.

이스라엘 역사상 성소를 가증한 것들로 더럽혔던 비극적인 일이 가장 현저히 일어난 시기는 유다 제 14대 왕인 므낫세의 통치 때이다(왕하 21:2-7). 그는 성전 마당에 일월 성신을 위한 단들을 쌓았으며 아세라 목상을 전에 세워 숭배하였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그의 목전에서 대놓고 능멸한 행위였다.

12. 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

너희 가운데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에 걸려 죽거나 굶어 죽을 것이며, 또 삼분의 일은 성읍의 둘레에서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으로 흩어 버리고, 칼을 빼어 들고 그들의 뒤를 쫓아가겠다.

13.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이렇게 나의 분을 다 쏟아야, 그들에게 품었던 분이 풀려서, 내 마음도 시원하게 될 것이다. 내가 내 분을 그들에게 다 쏟을 때에, 그들은 비로소 나 주가 질투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하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이르되 또 너를 황무하게 하고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 중에서 모든 지나가는 자의 목전에 모욕 거리가 되게 하리니

또 내가, 둘러 있는 이방 사람 가운데서 너를 폐허 더미와 웃음거리로 만들어, 지나다니는 사람마다 너를 비웃게 하겠다.

15.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 거리가 되고 두려움과 경고가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래서 내가 분과 노를 품고 무서운 형벌을 내리면서 너를 심판할 때에는, 너를 둘러 있는 이방 사람에게 네가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네가 받은 심판은 그들에게 두려움과 경고가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다.

16. 내가 멸망하게 하는 기근의 독한 화살을 너희에게 보내되 기근을 더하여 너희가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쏘는 기근의 화살과 재난의 화살, 곧 멸망시키는 화살은, 너희를 죽이려고 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기근을 더 심하게 하여, 너희가 의지하는 빵을 끊어 버리겠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보내시는 기근을 두가지 표현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중 하나는 ‘독한 화살’이다. 재앙의 화살은 ‘기근 , 즉 비가 오지 않음으로 인해 백성들에게 임하는 굶주림의 고통올 상징한다.

이런 기근의 예언은 이미 10절에서 부모가 자식을 먹고, 자식이 부모를 먹을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으로 주어졌으며, 12절에서 전염병과 함께 임하는 저주로 다시 예언되었다.

본문에서 기근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은 ‘멸망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아쉐르 하유 레마쉬히트’는 바로 재앙의 화살인 기근이 예루살렘 성읍올 멸망으로 이끈 주요 원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레마쉬히트’의 어근 ‘마쉬히트’는 그 산업, 기업을 파산에 이르게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고 부패시켜 멸망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9:6 ; 21:36 ; 출 12:13 ; 단 10:8).

17. 내가 기근과 사나운 짐승을 너희에게 보내 외롭게 하고 너희 가운데에 전염병과 살륙이 일어나게 하고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기근과 사나운 짐승들을 보내어, 너희 자식들을 앗아가도록 하겠다. 너희는 전염병과 유혈사태를 너희 한가운데서 겪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쟁이 들이닥치게 하겠다. 나 주가 말하였다."

[ 복있는사람, 2018년 11,12월호 ]

머리카락과 수염의 상징 ( 5:1-4 )

여기에서부터 예루살렘 성읍의 완전한 파멸을 나타내는 표징이 시작된다. 앞장에서처럼 선지자는 자신이 예루살렘의 처지를 얼마나 애달파하며 예루살렘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가를 백성들이 목도하도록 스스로 그 표징이 되고 있다.

(1) 에스겔은 자기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야 했다(1절).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살려둘 가치가 전혀없는 세대로 여기사 완전히 배척해 버리실 것을 상징한다. 이전에는 예루살렘이 머리였으나 타락하여 자라남에 따라 귀찮기만 한 머리카락처럼 되어 버렸다. 에스겔은 쓸데없이 길게 자란 머리카락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잘라버려야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완전히 멸하시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2) 에스겔은 머리카락의 무게를 달아 그것을 삼등분해야 했다.

사람들 중에는 머리카락을 완전히 밀어버리는 것을 자유와 명예의 상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그러한 모양은 하눈이 다윗의 사신들에게 준 모욕과 같은 수치의 표시로 여겨졌었다. 또한 즐거움의 상실을 뜻하는 행위로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큰 슬픔을 당했을 경우 머리카락을 잘랐던 것이다.

(3) 에스겔은 그 머리카락을 삼등분하여 불사르고, 칼로 잘라, 흩어 버려야 했다(2절).

1) 삼분의 일은 성중에서 불태워야 했다. 이는 '에워싸는 날이 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역병과 큰 화제로 인하여 죽게 될 것을 나타낸다.

2) 또 다른 삼분의 일은 '칼로 쳐서' 토막을 내버려야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포위 기간 동안 전투에 출전하였다가 포위군들의 칼날에 죽임을 당할 것을 나타낸다.

3) 나머지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어지게' 해야만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정복자의 땅에 끌려가며 그 일부는 피난처를 찾아 이웃 나라로 도망할 것을 나타낸다.

(4) 에스겔은 바람에 흩어 버려야 할 삼분의 일의 머리카락 중에서 아주 적은 양을 보존하여 귀하게 다루어 옷자락에 싸놓아야 했다(3절).

이는 아마도 거의 전 백성이 포로로 끌려갈 때 그 땅을 지키려고 하였던 그달랴의 지하에 남아 있었던 극시 호수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처럼 그들이 스스로 잘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잘 해주실 것이다.

예루살렘의 죄악상 ( 5:5-17 )

여기에 있는 설명은 앞서 말한 것과 유사하다.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5절). 머리카락을 깎아야만 하는 선지자의 머리는 예루살렘을 상징한다. 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그 속에 있던 모든 장식품들을 빼앗기고 거민이 없는 텅빈 성읍이 될 것이며 '세 내어온 삭도에 의해 모든 털이 깎여서 벌거벗기울'것이다(사 7:20). 제사장이면서 선지자요 거룩한 사람이었던 자의 머리는 거룩한 성읍이었던 예루살렘을 예시하기에 적절하였던 것이다.

(1) 과거에 예루살렘은 큰 특권을 누렸었다(5절).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예루살렘은, 인구가 많고 문명이 발달하였으며 지식과 예술과 학문이 유명한 여러 왕국들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즉 예루살렘은 그러한 열방들을 능가하면서 그들 '가운데에 위치하여' 마치 등경 위의 등처럼 이웃 나라의 어두운 구석구석까지 심지어 땅 끝까지라도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퍼뜨렸던 것이다. 예루살렘은 마치 우리 몸 안의 심장과 같이 이 죽은 세상에 거룩한 기운으로 생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역할을 하였었다. 만약 예루살렘이 이런 명성(왕상 4:34)을 유지하였다면 주변 모든 민족들에게 얼마나 큰 축복을 주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 실패하였음으로 이러한 의도는 훗날 시온으로부터 복음이 나오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주 예수의 말씀이 나오게 된 때에야 비로소 성취되었다.

(2) 예루살렘은 범죄하였다.

여기에 그들의 죄에 대한 비난이 퍼부어진다. 그 사실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율례대로 행치 아니했고 규례대로 행치 아니했다'(7절). 아니 오히려 예루살렘 거민들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버렸다(6절).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왜곡시키고 남용하여 자기들의 행악의 구실과 변명거리로 삼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례와 규례 대신에 이방인의 구역질 나는 관습과 행태를 끌여들였다. 예루살렘은 우상 숭배와 거짓 예배로 '둘러있는 열방'보다도 더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렸으며(6절), 우상들과 그 제단들을 그리고 이방신들과 그 산당들을 세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오, 그의 이름도 하나이시며 그의 제단도 하나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백성들은 신들의 수자를 증가시킨 것이다.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자연 종교를 타락시키는 것보다 더욱 심하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계시 종교를 타락시켰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것들을 더럽혔는데 이것들은 예루살렘이 과거에 자신을 의탁했던 것들이요, 자기의 명예로 삼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3) 예루살렘이 받을 형벌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 하나님께서는 자기 손으로 직접 예루살렘을 벌하실 것이다.

"너희는 너희를 대적하고 있는 것이 갈대아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말지어다. 갈대아 군사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 아니 오히려 하나님의 손 안에 쥐어져있는 매에 불과하다. '너를 치는'자 선지자를 통하여 너를 대적하는 말을 하게 하는 자도, 섭리를 통하여 너를 대적하게 하는 자도 바로 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것에 주의하지 않는 자는 그분의 손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2) 이러한 형벌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에 오게 될 것이다.

그 백성 전체에 대해 사랑에서 나오는 시정의 회초리로 하지 않고 '중한 책망'으로 내릴 것이다(15절). 이 책망이란 어휘는 "진노는 내게 있지 않으며 은혜롭고 자비롭다"고 선언하사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걸맞지 않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표현은 죄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 주려는 뜻이 있는 것이다. 인간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게 되었을 때 '근심하신다'고 표현된 것같이(시 95:10), 죄인들을 멸망시키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때 그분은 위로를 받으신다.

3) 형벌은 공적이며 공개적일 것이다.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희 중에 벌을 내리되(8절). 공적인 죄악은 공적인 책망이 따르게 마련이다. 책망도 효과가 없으면 공적인 심판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열방들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 얼마나 냉엄하게 엄벌하시는가를 목도하고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 것이다. 내 노와 분과 중한 책망으로 네게 벌을 내린즉 너를 둘러 있는 이방인에게 네가...경계와 괴이한 것이 되리라(15절). 예루살렘은 마땅히 그 경건과 덕행으로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주변 열방들에게 가르쳤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심으로써 열방에게 그것을 가르치실 것이다.

4) 이러한 형벌들은 그 선례가 없는 전무 후무한 징벌이 될 것이다(9절).

"비록 너희가 오래 전부터 그 형벌을 받을 만하였지만 전에는 내리지 않았던 그 일을 이제 너희에게 내리리라." 이 형벌에 대한 묘사는 히스기야의 성격을 묘사할 때, '그와 같은 왕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라고 표현했던 것같이 가장 슬픈 심판을 나타내는 수사적 표현이다. 이 징벌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혈육의 정도 끊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징벌은 그들의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의무의 유대를 어겼기 때문에 오는 징벌이 될 것이다(10절). 아비가 아들을 먹고 아들이 그 아비를 먹으리라. 이러한 일은 극심한 기근이나 혹은 야만스런 정복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으로 죽을 것이라. 너희 가운데서 삼분지 일은 온역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12절). 또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리라(17절). 또 다른 사람들은 '악한 짐승'들에게 삼키우게 되리니, 몸을 피신하기 위해 사막이나 산야로 도주한 자들이 결국 이 짐승들의 제물이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징벌을 피해 탈출한 자들은 세상 구석 구석 사방으로 흩어지게 될 것이다(10,12절).

5) 이러한 징벌로 그들은 점차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미약하게' 될 것이다(11절). 그들의 기쁨과 의자가 되었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17절) 그들은 빈털털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예언이 로마인에 의한 예루살렘의 최후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6)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권위와 진실성에 의해 비준된다(17절).

나 여호와가 열심히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13절). 이 예언들의 선지자가 단지 일시적으로 자기 도취에 빠져 한 말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기의 말씀을 입증하실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유다 백성에 대한 징계 ( 5장 )

전장에 이어 본장은 계속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패역한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이 임할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머리카락 비유와 이어지는 칼과 온역과 기근에 의한 멸망의 예언은 그 진노의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가를 보여 줍니다.

1. 터럭의 비유

1) 전쟁에 의한 죽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 두었다가 저울에 달아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을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유다 백성 중 삼분의 일은 침략해 온 바벨론 군대의 공격에 의해 성안에서 불에 타 죽고, 삼분의 일은 성밖에서 살육 당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성에서 멀리 도망치다 사로잡혀 죽을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a.살육(왕하25:21)

b.죽음 당함(렘39:6)

2) 일부의 보존

예레미야는 그의 깎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태우고 칼로 치고 바람에 날리되 그중에서 조금을 남겨 옷자락에 싸서 보관하라는 명령을 덧붙여 받았습니다. 이 명령은 전쟁으로 인해 유다 백성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살육 당하는 와중에서도 그 일부가 보존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전쟁의 살육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유다 백성의 일부는 그 목숨을 보존받아 얼마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고 또 얼마는 유다 땅에 남았습니다(참조, 왕하25:22;대하36:20).

a.남은 자(겔6:8)

b.일부의 보존(겔12:16)

3) 보존된 일부의 죽음

터럭의 비유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하나님의 명령은 남긴 터럭 중에서 일부를 다시 취하여 그것을 불에 태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목숨이 보존된 유다 백성 가운데 일부가 다시 이방 군대에 의해 죽음당할 것을 상징적 행위를 통해 예언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은 실현되어 유다가 멸망한 뒤에도 목숨을 보존한 본토 일부 사람과 애굽으로 도망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a.애굽에서의 살육(렘43:11)

b.애굽에서의 멸절(렘44:27)

2. 이방인보다 악한 유다 백성

1) 이방인보다 더 우상을 숭배함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어떤 민족도 경험하지 못한 확실한 권능을 보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이라는 놀라둔 구원을 주신 여호와를 그들의 신으로 모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들 주변에 있는 여러 민족의 온갖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이러한 배신적 행위와 지조 없는 행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도 하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를 이방인보다 더 악한 행위라고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a.다른 여인과 다른 유다(겔16:34)

b.아들까지 죽임(겔20:31)

2) 이방인보다 더 불법을 행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어떤 이방 족속들이 가진 법보다 공의롭고 자혜가 담긴 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과, 더욱이 지켜야 할 의무까지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방 사람들보다 더 불공정한 재판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였으며, 나그네를 학대하고, 무죄한 생명을 죽였습니다. 따라서 객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들보다 더 불법을 행하는 백성이었던 것입니다.

a.불법의 가득함(겔9:9)

b.악을 좋아함(미3:2)

3) 결코 회개하지 않음

만일 이방 족속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낸 것같이 보냈다면 이방인들은 회개했을 것입니다(참조, 욘3:1-10). 그러나 수없이 많은 선지자가 보냄을 받았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회개의 측면에서도 이방인보다 강퍅했던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무후무한 벌을 받게 됩니다.

a.니느웨의 회개(욘3:5)

b.회개치 않는 고라신(마11:21)

3. 전무후무한 벌의 내용

1) 잔혹한 칼

앗수르의 군대는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여 그 백성들을 가차없이 쳐죽였습니다. 바벨론의 군대는 남유다를 닥치는 대로 살육하고 그들의 보물과 아울러 거룩한 성전의 기물과 보화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을 그들의 땅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땅은 황무케 되었습니다(참조, 대하36:17-21). 이 재앙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재앙이었습니다.

a.긍휼 없는 칼(겔9:6)

b.살육 당한 시체 더미(겔11:7)

2) 아비와 아들이 서로를 먹는 기근

전에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침공 할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참조, 왕하6:28-29). 마찬가지로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할 때에도 바벨론 군대의 포위로 인해 예루살렘에서도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본문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여겨집니다(참조, 애4:10).

a.아들을 삶아 먹었더니(왕하6:29)

b.자녀를 식물삼음(애4:10)

3) 무서운 질병

이방의 군대가 수도를 포위하여 남북왕조의 각 수도인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모든 물자 공급을 차단하였습니다. 그 결과 물이 끊겨 성안의 위생 상태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염성의 각종 악질이 성안에 창궐하였습니다. 그 악질은 순식간에 퍼져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무서운 질병이 돌아 이방인보다 더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회개치 않는 자들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 간 것입니다.

a.온역(겔6:12)

b.임박한 재앙(겔7:5)

결론

본장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말로는 처절한 죽음뿐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새롭게하여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말씀을 준행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잘못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을지라도 속히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에만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에스겔 6:1-14)

 

[ 성경묵상 ]

에스겔은 우상숭배의 온상이던 이스라엘의 산들에 대해 심판을 예언한다. 심판을 피하고 남은 자들은 회개할 것인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 질문 하나 ]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산들에게 심판을 예언하신 이유가 무엇인가?(3-4절)

에스겔은 계속해서 이스라엘 산들을 향해 심판을 예언한다. 이스라엘의 산들은 산당이 세워져 있던 곳이다. 원래 산당은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의 예배 장소였는데, 성전이 세워진 후에도 가깝고 편하다는 이유로 남아 있다가, 나중에는 우상숭배의 온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럼에도 산당 제사가 워낙 백성의 삶에 깊이 파고들어 있었기에, 이스라엘 왕 중 누구도 산당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산당을 없애려고 하신다.

산당제사는 제단을 둘러싸고 춤을 추는 이교적 행위가 동반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제단이 우상숭배자들의 시체로 둘러싸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행하였다.

[ 질문 둘 ]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 살아 남은 자들 앞에는 어떤 선택이 놓여 있는가?(9,11-14절)

산당이 심판을 받아 없어진 것으로 끝이 아니다. 심판의 죽음을 피하고 남은 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기다로 있다. 그 모든 일을 겪은 후에, 뒤늦게라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아, 우리가 이렇게 우상숭배를 하다 망했구나'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킨다면 한 줄기 희망이 있다. 문제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돌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자들을 행한 예언도 어조가 매우 불길하고 어둡다. 멸망을 피하고 남은 자들도 먼 데 있는 자나, 가까이 있는 자나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한줄기 희망조차 걷어차 버리고 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뜻이다.

우리 시대의 우상은 무엇인가? 우상을 떨쳐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알고 깨어 있도록 하자.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여호와께서는 3장 이후 타락한 유다에 당신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시되, 특히 4장과 5장에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에게는 기이하게 보이는 네 가지 상징적 행위를 통해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언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6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순수하게 여호와의 말씀만으로 유다 왕국 전체의 멸망을 예언하라고 명하신다. 이와 같은 본장은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다는 본절의 진술로 시작된다. 그리고 2절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예언하라고 명하신다. 그런데 본장에서 예언되는 것은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선민의 대표적 범죄인 우상 숭배에 대한 현장 심판 집행 예언과 관련된 암울한 내용이다. 즉 여호와께서는 산당을 멸하고 황무케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며(4,6절), 특히 산당 제사에 관여했던 모든 우상 숭배자들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여 그 시체가 그 산 위에 널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3절).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람이 무엇을 행하든 그대로 갚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임을 분명히 하신다.

특별히 본장에는 여호와께서 그처럼 무서운 심판을 통해서 목적하시는 바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멸하시고 산당을 엎어 버리시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그들이 무시했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이다(7,13,14절). 그리고 이는 이스라옐 땅에서 멸망을 당하는 자들 뿐 아니라, 이방 땅에 흩어져 사는 남은 자들까지도 알게 되는 진리이다(10절).

이처럼 무서운 심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공의로우심과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심을 나타낸 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선민들이 도무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만 가지고는 돌이킬 줄도, 깨달을 줄도 모르는 완고한 자들임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러한 내용을 가진 본장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우상 숭배 현장에서의 심판 집행을 강조한 1-7절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산당 및 산당 우상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멸망시키고 말 것이라는 예언이다.

둘째는 8-10절로 여호와는 그러한 심판 중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긍훌을 베푸사 남은 자들을 남기시고 그들을 이방 땅으로 흩으실 것이며 그들을 회개의 자리로 이끄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셋째는 11-14절로서 산당의 우상 숭배자들을 여호와께서 가혹하게 심판하심으로 그들의 시체가 그들의 우상 숭배의 터에 산더미처럼 쌓이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이다.

[ 산당예배에 대하여 ]

산당 예배는 하나밖에 없었던 중앙 성소로 나아오기 어려운 먼 곳에 사는 자들이 거기 올라가지 않고 대신 산에서 제사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거할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가 택하실 곳, 곧 중앙 성소에서 자신에게 예배를 드리라고 명하셨다(신 12:5,6,12,14,18 ; 14:24 ; 16:2).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그곳을 기업으로 삼은 초기, 즉 여호수아 시대부터 선지자 사무엘 시대까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실로’에 중앙 성소를 만들어 놓고 여호와를 섬겼다(삼상 1:9; 4:3).

그러나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과의 전쟁 패배로 실로에 있던 언약궤를 빼앗겨 버렸고 그 후 다시 되찾기는 했지만(삼상 6:1-21) 언약궤는 기랏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 무려 20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삼상 7:1).

다윗이 왕이 된 후 언약궤는 그곳에서부터 옮겨져 잠깐 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해 두었다가(삼하 6:1-12) 자신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 즉 시온성에 옮기게 되었다(삼하 6:12-15). 그리고 마침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그곳에 성전을 건축함으로써 명실공히 온전한 성전 예배가 시작될 수 있었다(왕상 8:1-11).

그러나 점차 선민들은 예루살렘까지 오는 것을 번폐스럽게 여겼고 자신들의 임의대로 그들이 있는 곳에 산당을 세워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이러한 산당 예배가 처음에는 여호와께 드리는 예배라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으나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 숭배의 영향력을 받아 차츰 부패되어 우상 숭배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McGregor).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이 이처럼 산당으로 인해 신앙적으로 부패하게 될 것임을 잘 아셨기에 이를 일찍이 엄격히 금지하셨다(왕상 14:22-23 ; 왕하 17:9 ; 왕하 18:4,22 ; 21:3). 그러나 산당 제사와 우상 숭배는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왕하 21:3-9). 여호와께서는 본장에서 에스겔을 통해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니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인 산당을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을 단호하게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주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2.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을 향하여 그들에게 예언하여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산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에게 내릴 심판을 예언하여라.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사람들이 아닌, 인격과 생명이 전혀 없는 산들올 향하여 예언하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산들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의 온상인 산당이 세워졌기 때문이다(Feinberg). 이처럼 산당은 산의 높은 곳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산들 그 자체가 산당올 대표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3절).

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가슴에 있는 말을 제어하지 못하고 토하여 내는 것, 누군가의 말을 대신해서 전하는 것 등이 ‘나바'란 단어가 함의하는 의미들이다. 이러한 원어상 함의에 기초를 둔 선지자의 예언은 흔히 ‘예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즉 미래의 사실을 미리 말하는 측면으로서의 예언이라는 의미보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하게 감동하신 결과, 그가 계시하신 것을 전혀 가감하지 않고 정확하게 대언하는 측면으로서의 예언을 의미한다. 지금 에스겔에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예언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3.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는 이렇게 외쳐라. 이스라엘의 산들아, 너희는 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산과 언덕에게, 계곡과 골짜기에게,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전쟁이 들이닥치게 하여 너희의 산당을 없애 버리겠다.

4.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또 번제물을 바치는 너희의 제단이 폐허가 되고, 너희가 분향하는 제단이 부서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너희의 우상들 앞에 던져 버리겠다.

5.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또 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체를 가져다가 그들의 우상 앞에 놓고, 너희의 해골을 모든 제단의 둘레에 흩어 놓겠다.

6. 내가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성읍이 사막이 되게 하며 산당을 황폐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분향제단들이 찍히며 너희가 만든 것이 폐하여지며

너희가 거주하는 모든 성읍마다 황무지로 변하고, 산당들도 황폐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제단들도 무너져 못쓰게 되고, 너희의 우상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사라지고, 너희가 분향하는 제단들이 파괴되고, 너희가 손으로 만든 것들이 모두 말끔히 없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7. 또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게 하여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너희 한가운데서는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을 것이니,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회가 알게 하려 함이라"는 여호와께서 산당에서 행해지던 유다의 우상 숭배에 관련된 모든 것을 완전히 진멸해 버리시는 궁극적 목적이 그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그들을 심판하시는 분 즉 여호와께서 진정 참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에 해당하는 ‘위다으캠’의 원형 ‘야다으’는 단순히 어떤 특정한 사실 관계에 대한 앎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인격적, 실제적 체험을 통해 깨닫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앎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부부가 동침하며 같이 생활함으로 서로를 깊이 있게 인격적으로 알거나(창 4:1) 전쟁의 잔인함과 처절함 등을 경험함으로 생생하게 깨달아 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삿 3:1).

이미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이 여호와를 뒷전에 두고 우상을 숭배하였지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앎은 지적인 측면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지적인 이해만을 소유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하였고, 참 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러한 본문 표현은 궁극적으로 선민이 이처럼 멸망할 우상 숭배에 빠져든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임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 선지자를 통해 무수히 이 사실을 가르쳤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깨닫지도 배우지도 못함으로 파멸 당할 우상과 함께 비참한 운명에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본장을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때(1-7,8-10,11-14), 본문과 유사한 표현이 각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 공통적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7,10,14절). 이는 본장에서 강조하는 바가 선민의 범죄인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엄위한 심판이 단지 그들을 파멸에 내던지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기 위함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이 여호와에 대한 참 지식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징계하시는 것이다.

8. ○그러나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질 때에 내가 너희 중에서 칼을 피하여 이방인들 중에 살아 남은 자가 있게 할지라

그러나 나는 너희 가운데서 얼마를 남겨, 전쟁을 모면하게 하고 여러 나라에 흩어져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살아가게 하겠다.

9. 너희 중에서 살아 남은 자가 사로잡혀 이방인들 중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되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나를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겨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을 기억하고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였음이라

전쟁을 모면한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 이방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비로소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들이 음란한 마음으로 내게서 떠나갔고, 음욕을 품은 눈으로 그들의 우상들을 따라 가서, 내 마음을 상하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악행과 그 모든 혐오스러운 일을 기억하고, 스스로 몸서리를 칠 것이다.

10.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그 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이런 재앙을 내리겠다고 공연히 말한 것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지에서 환난을 당하면서 자신들의 과거 행적에 대해 스스로 자신들의 죄를 인정할 때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형벌을 가하신 분이 그들의 언약의 주 여호와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는 여호와께서 자신 의 언약 백성에게 크나큰 형벌을 주시는 목적이 그들이 자신올 여호와로 알게 하시는 것에 있음을 말씀하신 7절 내용과 깊은 연관성올 갖는다.

여호와의 심판 역사는 단순히 악인들을 죽이고 진멸 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이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스러움을 드러내고 인정케 하는 데에 있다. 이는 단지 심판과만 관련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역사 가운데 개입 하셔서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현시하시며 때로는 심판을, 때로는 구원을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뿐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드러내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출 6:7 ; 7:5,17 ; 8:22 ; 10:2 ; 14:4,18 ; 왕상 20:13,28 ; 사 49:23 ; 렘 16:21).

여기에서 사용된 ‘여호와’라는 신명(神名)은 자존자 곧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의 신명으로 주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적 관계를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는 신명이다.

아울러 ‘그 때에야 그들이 ... 알리라’에 해당하는 ‘혜야데우’의 기본형 ‘야다으’는 사실 관계를 객관적으로 아는 것, 곧 지적인 앎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생생한 체험에 입각한 앎, 인격적 관계에 근거한 깊이 있는 앎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따라서 본문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여호와로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들과의 관계를 바르게 확인하고 그들이 섬겨야 할 분이 바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이심을 몸소 깨닫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언약에서 그들이 당신을 신실하게 섬길 경우 그들에게 축복을 내리며 보호의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들이 당신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할 경우 그들에게 온갖 무시무시한 형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신 28장). 이제 그들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 대한 자신들의 태도와 신실성의 여부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심판과 축복을 내리시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범죄 에 대한 심판과 정벌로 포로된 상황에서 얻게 된 깨달음이었지만 이 모든 일의 주관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게 된 것은 그들이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선민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쫓겨난 포로지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여호와의 형벌을 순히 받게 될 것이며(레 26:41), 여호와는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고 기억하여 그 황폐케 하신 고토로 그들을 인도하사 다시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실 것이다(레 26:42-45).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마침내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망하되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면서 외쳐라. 아, 이스라엘 족속이 온갖 흉악한 일을 저질렀으니, 모두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 때문에 쓰러질 것이다.

하나님이 우상숭배자들에게 내리는 심판의 3종 세트(칼, 기근, 전염병)에는 항상 기근이 포함되어 있다(참조, 레위 26장, 계 6장). 사람이 하나님 대신 가장 쉽게 의지하는 대상이 바로 '양식' 즉 먹고 살아가는 문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들이다.

12. 먼 데 있는 자는 전염병에 죽고 가까운 데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지고 남아 있어 에워싸인 자는 기근에 죽으리라 이같이 내 진노를 그들에게 이룬즉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서 죽고,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전쟁에서 쓰러지고, 아직도 살아 남아서 포위된 사람들은 굶어서 죽을 것이다. 내가 이와 같이 나의 분노를 그들에게 모두 쏟아 놓겠다.

13. 그 죽임 당한 시체들이 그 우상들 사이에, 제단 사방에, 각 높은 고개 위에, 모든 산 꼭대기에,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무성한 상수리나무 아래 곧 그 우상에게 분향하던 곳에 있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서 전쟁에서 죽은 시체들은 그들의 우상들 사이에서 뒹굴고, 그들의 제단들 둘레에서도 뒹굴고, 높은 언덕마다, 산 봉우리마다, 푸른 나무 밑에마다, 가지가 무성한 상수리나무 밑에마다, 자기들이 모든 우상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던 곳에는, 어디에나 그 시체들이 뒹굴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내 손을 그들의 위에 펴서 그가 사는 온 땅 곧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 황량하고 황폐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내가 그렇게 나의 손을 펴서 그들을 치고, 그 땅을 남쪽의 광야에서부터 북쪽의 디블라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거주하는 모든 곳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 때에야 비로소 내가 주인 줄 그들이 알게 될 것이다."

심판의 범위로 상정된 본문의 ‘광야에서부터 디블라까지’라는 표현은 ‘단에서 브옐세바까지’라는 표현을 반대 방향으로 나타낸 것으로서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모든 영토를 의미한다(Block).

‘광야에서부터’에 해당하는 ‘멈미드빠르’의 원형 ‘미드빠르’는 유다 남쪽의 네게브 사막을 의미하는데, 이는 선민이 거주하였던 땅의 남쪽의 극단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디블라까지’에 해당하는 ‘띠블라타’의 원형 ‘띠블라’는 북이스라엘의 북단에 있는 시리아의 한 장소인 ‘리블라’의 오기(誤記)로 보이며 이렇게 볼 경우 이스라엘의 경계 중에서도 가장 북단을 대표하는 땅을 지칭한 것이 된다.

본문의 ‘디블라’, 즉 ‘리블라’는 북쪽 경계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본절은 가나안의 온 전역이 여호와의 권능의 심판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란 사실과 더불어 그 심판에서 살아 남은 자들이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여호와로 바로 알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Ⅰ. 우상과 함께 망할 이스라엘 6:1-7

(1) '이스라엘의 산'들을 향한 예언이 시작된다(1,2절).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산을 향하여' 얼굴을 돌려야 했다. 선지자가 그 곳 유배지에서 이스라엘 땅까지 볼 수 있다면 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리하여 선지자 에스겔은 재판장이 죄수에게 언도를 내릴 때 죄수를 바라보듯이 준엄하게 그 산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산'들이 아주 높고 강할지라도, 선지자는 그것들의 기초를 흔들어 놓을 만한 재판권을 가지고서 그 산들을 향하여 예언해야 했다. 과거에 이스라엘의 산들은 거룩한 산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당으로 인하여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산들을 향해 얼굴을 드셨으므로 선지자도 그렇게 해야만 하였다. 그 산들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작은 산들과 시내와 골짜기로 울려 퍼진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역시 말씀하시는 것이다.

(2) 이 예언은 모든 우상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완전히 멸망 당하리라는 경고이다.

하나님께서 몸소 말씀하신다.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3절). 이것은 갈대아 사람들의 칼은 하나님의 지휘하에 있다는 의미이다. 산 꼭대기에 세워 놓은 산당들은(3절) 평평하게 되고 황무하게 될 것이다(6절). 이방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던 제단들은 훼파되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신상들과 우상들은 도말되고 파괴되어 없어질 것이다(4,6절). 산당들이 전부 황무하게 되듯이 우상을 섬기던 자들의 거처도 역시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심지어 그들의 성읍들 조차 그리되고 말 것이다(6절). 거기에 다음과 같이 주목할 만한 상황이 더해질 것이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모시던 우상 앞에서 엎드려져 시체들이 즐비할 것이며(4절), 그들의 뼈가 제단 사방에 흩어질 것이다(5절). 이렇게 됨으로써 우상들은 자기를 섬기던 자들도 구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인해 비난을 받게 되며 우상 숭배자들도 그따위 것들을 의지한 어리석음에 대하여 비난을 받을 것이다.

Ⅱ. 남은 자에 대한 약속 6:8-10

지금까지는 심판에 관한 내용만 있었으나 이제 본문에서는 자비하심을 기뻐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파멸이 만방에 다 미치는 것 같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친히 극소수의 '남아 있는 자'를 남겨두실 것이다.

(1) 그들은 멸망에서 건짐을 받아 구조받은 자들이다(8절).

예루살렘 주변에서 칼로 엎드러졌던 자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약간은 '열방 중에서 칼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 곳에서 그들은 다른 모든 것을 빼앗기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해서 살게 될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은 다음 세대의 씨가 되어 그들로부터 다시 예루살렘이 번창하게 될 것이다.

(2) 이 남은 자들은 통회하는 자들이다(9절).

너희 중 피한 자가...나를 기억하되.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은혜를 계획하실 때 회개할 장소도 마련해 주신다. 칼을 피하여 회개할 장소를 가지게 된 사람들 중에 더러는 은혜를 구하나 더러는 죄를 버리지 아니한다.

1) 그들이 회개하는 계기 : 그것은 심판과 자비의 두 가지가 혼합되어 있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 갔지만, 포로가 된 땅에서 칼을 피하였다. 참된 회개는 비록 그 회개가 고난에 의하여 오게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실 것이다. 성결하게 하는 고난은 때때로 회개의 수단이 된다.

2) 회개의 근본 원인과 원리 : 그들이 이방인 중에서 나를 기억하되. 탕자는 먼 이국에서 굶주림으로 시달리게 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집을 결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법으로 삼아야 할 그의 말씀에서 떠나고 자기들의 업으로 삼아야 할 그의 일에서 떠났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그들의 눈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들을 뒤쫓았다. 우상 숭배를 사악한 죄라 하는 이유는 그 죄가 영적인 음행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는 음란한 마음이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슬픈 일이며 얼마나 그의 분노를 자극했던 일인가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회개하게 될 참회의 날에, 그들은 평화가 깨지고 나라가 부서졌다는 사실보다도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근심하셨다는 사실로 인해 겸손해 질 것이다.

3) 회개의 중지 : 스스로 한탄하리니 이는 그 모든 가증한 이로 악을 행하였음이라(9절). 참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죄를 가증히 여긴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가증히 여기시며, 심지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예배는 가증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렘 44:4;사1:11). 죄는 인간의 양심을 더럽히는 것으로 만일 죄인이 죄를 자각한다면 그는 그것을 가증스럽게 여길 것이다.

4) 그들의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10절).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한 말이 선을 이루며 선을 위해 역사하며 선한 뜻을 이루는 것임을 그들이 알리라."

Ⅲ. 심판받을 우상 숭배자들 6:11-14

선지자에게 그들을 위해서 슬퍼하라는 지시와 함께 똑같은 경고가 반복된다.

(1) 에스겔은 설교 중에 자기가 이스라엘 족속의 사악함과 재앙에 대하여 느끼고 있는 바를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다(11절).

너는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말할지어다. 에스겔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을 애통해 해야 했다.

첫째, 민족적 죄악상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죄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에게 슬픔이 아닐 수 없다.

둘째, 민족적 심판이다.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우리 자신의 죄와 고통에 대하여 괴로워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와 고난에 대하여 가슴아파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사악한 사람들이 죄 때문에 스스로 당하는 재난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우셨던' 것이다.

(2) 에스겔은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파멸에 관하여 자기가 전에 말했던 내용을 다시금 되풀이하여 전해주어야 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을 찾아내 뒤쫓아 올 다양한 심판으로 말미암아 넘어지고 파멸할 것이다(12절).

2) 그들은 이런 징벌을 통해서 자기들의 죄가 어떤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5-7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상들에게 절하였던 바로 그곳에다가, 그들을 책망하며 우상들을 견책하시는 뜻으로 그들의 죽은 시체들을 흩으실 것이다.

3) 땅들도 앞에서 말한 성읍들처럼 모두 황폐하게 될 것이다(6절). '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라.' 죄악은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행하여 죄를 범치 말아야 한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우상 숭배에 관한 징계 ( 6장 )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거룩한 땅 가나안 곳곳에 우상을 위한 단을 쌓았습니다. 특히 산 위에 산당을 짓고 그 곳에서 우상에게 제물을 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이 죄악이 창궐하자 급기야 하나님께서는 산당과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유다 백성을 징계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본장은 그 징계의 말씀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유다의 우상 숭배

1) 태양신 숭배

유다의 조상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것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먹던 양식을 그리워하는 마음하에(참조, 출16:3) 애굽의 신들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애굽의 대표적 신은 태양입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인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조상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그 태양신을 숭배했습니다(참조, 겔6:4-6).

a.태양 숭배(겔8:16)

b.애굽의 우상을 떠나지 아니함(겔20:8)

2) 바알 숭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그 곳에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족속이라 그들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신은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은 풍년을 가져다 준다는 농경 신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자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바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을 섬기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후손들인 유다 백성들도 그 가증스런 바알 숭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참조, 왕하16:31).

a.바알을 섬김(삿2:11)

b.많이 섬김(왕하10:18)

3) 몰렉 숭배

가나안의 현주민들이 숭배하던 신들 가운데는 몰렉 또는 몰록이라는 이름을 가진 신이 있었습니다. 이 신은 섬기는 자의 자녀를 제물로 요구하는 아주 비도덕적인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몰렉 숭배에 대해서 각별한 경고를 주었습니다(참조, 레18:21). 그러나 그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참조, 왕상11:7) 유다 백성(참조, 겔16:20-21)들은 그들의 자녀를 몰렉에게 주었습니다.

a.몰렉 숭배자는 사형에 해당(레20:2)

b.몰렉에게 기름을 들고 감(사57:9)

2. 우상 숭배에 대한 징계

1) 온갖 재앙에 의한 죽음

유다 백성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따라 애굽과 및 가나안의 온갖 잡신들까지 다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갖 재앙을 내려 죽게 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재앙들은 칼과 질병과 기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재앙들로 인해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 앞에서 죽음을 당할 것이 예언되었고 이 예언은 성취되어 유다 백성을 실제로 바벨론 군대의 칼에 의해 그리고 굶주림과 질병에 의해 그들의 생명을 늑탈당하였습니다. 그나마 그 가운데서 겨우 생명을 보존한 자들도 산과 들에서 유리하거나(참조, 겔7:16) 포로로 잡혀 갔읍니다(참조, 렘52:27).

a.짐승의 밥이 됨(렘16:4)

b.세 가지 재앙(겔5:12)

2) 죽음 당한 시체가 숭배 제단에 누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무참히 죽음을 당하는 것만으로도 징계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죄악이 너무 컷기에 그들은 죽음을 당한 뒤에도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그들이 섬기던 우상과 제단 뒤에 처참하게 누임을 당합니다.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 없는 진노가 임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시에 사람이 섬기는 우상은 그 사람을 구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a.매장되지 못함(렘16:6)

b.위로자도 없음(렘16:7)

3) 국토가 황폐화됨

유다 백성은 죽음을 당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터전마저도 불모지가 되는 징계를 받습니다(참조, 겔6:14).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들의 힘으로는 회복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징계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길 때에 받는 벌이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무서운 형벌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a.시온의 황무(사3:26)

b.거민이 없는 땅(렘6:8)

3. 남은 자

1) 이방 땅에서 목숨을 보존함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 백성을 멸하시되 다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남겨 두시고 그들을 보존하십니다(참조, 겔6:8). 그러나 이들은 그 민족의 죄로 인해 이방 땅에서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a.남은 자(겔12:16)

b.연단(단3:23)

2) 우상 숭배의 죄악을 깨달음

물론 남은 자 중에는 여전히 이방의 낯선 땅에서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은 그들이 받고 있는 고난을 통해 그들이 지은 죄를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대표적인 예로 본서를 기록한 에스겔 선지자나 다니엘 선지자(참조, 단9:3-19)를 들 수 있습니다.

a.허물의 자복(느9:2)

b.죄의 자백(단9:5-6)

3) 여호와께 돌이킴

죄악을 깨달은 자들은 그 죄악을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는 당신의 백성이 이처럼 돌아오기를 기대하였고, 또 돌아오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참조,스1:1-4;느1:1-11). 한편 이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베풀어졌습니다(참조, 요3:16).

a.회개(느9:1)

b.돌이킴(느10:28)

결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벌하십니다. 그 벌에는 아무런 긍휼도 내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사람을 베푸사 자기백성을 일부 남기십니다. 그들은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돈과 권력과 쾌락의 우상으로부터 떠나 하나님만을 섬길 때, 우리는 남은 자 곧 구원자의 대열에 설 수 있습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