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부갓네살왕이 첫번째 꿈을 꾸었을 때는 유다나라를 제 일차 침략하여 다니엘과 세 청년들을 포 로로 잡아와 황실의 종교 자문기관의 관리로 등용했던BC 602년의 때였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서 3장에서는 첫번째 꿈을 꾼 후16년째 되는 해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정복한 때인 BC 586년이었 습니다. 그리고 본장의 느부갓네살왕의 두번째 꿈은 제 3차 애굽원정이 끝난 해인 BC568년이었 습니다. 이 때는 세계 정복전쟁도 끝나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왕궁과 바벨론 성을 완공한 때였습 니다. 온 세계를 평정하여 고요하고 평화로운 때였습니다.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왕이 자신 의 두 번째 꿈인 개인의 신병과 관련된 한 큰 나무의 꿈이 보여준 내용대로 다 경험한 후에 신앙 고백 형식으로 전 국민에게 반포한 조서의 내용 전체를 한 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 4장에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조서 내용을 자신의 말로 고쳐 적지 아니하고 그대 로 옮겨 놓고 있습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두번째 꿈과 그 꿈의 내용 대로 다 경험한 왕의 심정을 보다 실감 있게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대 제국 바벨 론의 황제의 입술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세계와 역사에 대한 절대 주권을 소유하신 절대자이 심이 고백되었다는 사실을 증거함으로써 이 진리를 보다 확증하기 위해서 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느부갓네살 왕이 당시까지 가지고 있었던 다신교 신앙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만을 유일한 절대자로 믿었는 지에 대해서는 무어라 단정지어 말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다니엘4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조서에서 자신의 경험을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고백 하고 있는 사실을 볼 때에 왕은 적어도 한 큰 신상 꿈과 다니엘의 세 친구의 풀무불 사건을 경험 했을 때와는 달리 세계와 역사를 지배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이 분명 존재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 의 나라는 실로 영원한 것임을 고백하였음이 분명합니다. 다니엘서 4장의 왕의 조서 구조를 볼 때에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고백이 조서의 첫 부분에 언급하고 있으며 또 뒷부분에서 한 번 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을 볼 때에 두번째 꿈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절실히 깨달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본 장을 통해서 우리 각자의 인생이 오직 여호와의 주권 아래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 인간 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겸손과 절대 순복의 자세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구속사의 근 본 진리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런 구속사적 진리는 그에 순종해도 그만이고 또 불순종해도 그만 인 단순한 이론적 진리가 아니라 이에 대한 태도 여하에 따라 우리 전 인격의 실제적 축복과 저주 가 이 땅과 내세에서 영원히 결정된다는 강력한 교훈으로 귀결됩니다. 실로 한 제국의 군주로서 더욱이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까지도 일시나마 속국으로 거느리고 온 천하를 호령하던 제 왕으로서 끝없이 자고하던 느부갓네살이 여호와의 치심을 받아 일곱 때를 짐승처럼 지냈으며 또 반대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낮아졌을 때에는 다시금 그 왕위를 회복되었던 실증적 사실을 통하여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보다 강렬한 설득력을 갖고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첫째로 느부갓네살의 조서(다니엘 4:1-3)
‘1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리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큰 평강이 있을지어다. 2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 과 놀라운 일을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 하노라. 3참으로 크도다 그의 이적이여, 참으로 능하도다 그의 놀라운 일이여,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이 부분과 비슷한 내용이 다니엘3:28-30에서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풀무불에서 구 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난 뒤 느부갓네살 왕이 조서를 반포함으로써 고백한 내용은 사드 락 메삭 아벳느고가 섬기는 이스라엘민족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벨론의 많은 신들 중에 한 위 대한 신으로 인정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4:1-3절까지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통 치권과 주권의 영원성을 찬양하고 있어 여호와 하나님을 단순히 바벨론 신들 중의 하나로 표현했 던 3:29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 의 두번째 꿈 내용대로 다 경험한 후에 다시 왕위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의 주권과 위대하심을 진 심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을 가능하면 모든 세 상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조서를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는 다니엘서에서 세번 있습니다. 첫째는 다니엘 서 2장에서 다니엘을 통해 그의 꿈과 그 꿈의 해석을 알게 하신 것이며, 두번째는 사드락과 메삭 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구원한 것이며, 세번째는 4장에서 한 큰 나무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경 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아 형벌을 받아 일곱 때라는 기간 동안 정신 이상 증세를 일으켜 광야에 서 짐승처럼 지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한 사건입니다. 이 조서의 내용을 보며 느부갓네살 왕 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는 2장과 3장에서보다는 더욱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알게 합니다. 한편 느부갓네살왕이 이 조서를 반포 한 목적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두번째로 느부갓네살의 두번째 꿈인 한 큰 나무의 꿈(4-18절)
다니엘서에 기록된 대부분의 묵시들은 대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사 전개 과정과 관련된 반면 에, 4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의 두번째 꿈은 그의 개인 신상에 대한 묵시입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 묵시는 당시 세계 최 강대국인 바벨론 제국의 황제라 할지라도 그는 세계와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통치와 주권 하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 주권을 가지고 당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세계와 역사를 주관해 나가시되 당신께 순종하는 자 들에게는 궁극적 승리와 구원을, 그렇지 않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세상 끝까지 역사 를 유지하시고 전개해 나가실 것이라는 다니엘서의 다른 묵시들과 일맥상통합니다.
4절에서,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란 이 말씀에서 느부갓네 살 왕이 일시적 정신 이상 증상이 발생하였던 연도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 성의 중건이 일 단락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 시기는 대략 그가 애굽과의 3차 전쟁에서 승리하여 즉위 초기부 터 시작된 정복 전쟁을 완료한 시점인 BC 568년과 그가 사망한 BC562년 사이의 어느 한 때라 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위협이나 근심거리가 전혀 없는 평안한 상태와 정복전쟁에서의 승리로 원하던 모든 것을 성취한 자로서의 만족감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동쪽으로는 엘람과 메대, 남쪽으로는 에굽까지 정복하였고 다시 서쪽으로는 지중해의 섬들, 특히 당시 가장 부강했던 두로를 정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왕위를 넘볼 자가 없을 정도로 왕권을 확고히 다져 놓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태평성대의 시기에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업적과 권력에 도취되어 신상의 꿈과 그 해석,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구출 등 몇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을 잊었으며 이는 교만이라는 범죄의 길로 들어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왕은 침상에서 밤에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으로 인해 그는 두렵고 떨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이 무언가 불길 한 일을 나타내는 신의 계시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그 자세한 꿈의 의미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은 첫번째 꿈의 경우처럼 모든 박사와 술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번에는 이들에게 꿈의 내 용을 알려 주면서 해몽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박사와 술객들이 이 꿈의 해석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왜 느부갓네살 왕이 유명한 꿈 해몽가인 다니엘을 먼저 부르지 않고 박사, 술사 들만 불러 모아 꿈 해몽을 하라고 시켰겠습니까? 이것에 대해 몇 가지 견해들을 소개하면 다니엘 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들의 우상 숭배하는 것과 그들의 점치는 방법에 있어서의 불경건성 등을 이 유로 그들과 합류하기를 거절했든지 아니면 그들이 다니엘의 선함과 지혜로움과 왕의 총애를 받 는 것을 시기하고 싫어하여 같이 행동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왕이 다니엘보다 먼저 갈대아 출신의 박사들에게 해몽의 기회를 주어 그들로 하여금 지난 날의 치욕을 만회하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첫 꿈 사건 때에 이들 박사들이 말하기를 왕이 꿈의 내용을 말씀하시면 자신들이 해석을 해드리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 고 또 다른 이유는 다니엘은 박사들의 어른이었으므로 궁전의 예에 따라 가장 마지막에 불러 자 문하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번에 꿈의 내용을 알려 주었는데도 꿈의 해석을 하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말한 것은 첫째 꿈 때와 같이 적당히 해석했다가는 왕의 진로를 사서 죽을 지 도 모를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술사들도 왕의 꿈의 내용을 들었지만 그 꿈은 하나 님의 특별한 섭리에 따라 주어진 계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왕은 황실 종교 자문기관의 우두머리인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9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어떤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 노니 내 꿈에 본 환상의 해석을 내게 말하라.’이 말씀 속에서 왕이 다니엘의 지혜와 해몽 능력을 깊이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셋째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19-27)
‘19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한동안 놀라며 마음으로 번민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으로 말미암아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 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다니엘은 왕의 꿈 내용을 듣는 순간 느부갓네살 왕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의 예언임을 깨달았기에 마음에 번민이 일어났습니다. 실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전제주의 시대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왕에게 그 위를 박탈 당하고 쫓겨나 미친 사람이 되어 들 짐승과 같이 살게 될 것이라 말하는 것은 생명의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에게 닥쳐 올 그런 위험보다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선고된 사실 을 더욱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의 왕에게 꿈의 해석을 숨기지 않고 다 말했다는 것 과 진심 어린 충고를 하고 있는 점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에 왕이 다니엘에게 말하 기를 그 꿈 해석으로 인하여 번민하지 말고 이야기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꿈의 의미 를 파악했음을 확신했으며 또한 해석할 내용이 결코 좋은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입 니다. 또한 왕이 다니엘에게 주저 없이 말하라고 종용한 것은 그 만큼 왕이 다니엘을 신뢰하고 있 었으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제 다니엘이 꿈을 해석합니다. 먼저 ‘20왕께서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했는데 여기서 나무는 꿈을 꾼 느부갓네살 자신을 말하며 10절에서는 땅의 중앙에 한 큰 나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땅의 중앙에 있다는 것은 느부갓네살 을 최고 통치자로 하는 바벨론 제국이 당대의 세계 패권 국임을 가리킵니다.
11절과 20절에서, ‘11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높이는 하늘에 닿았으니 그 모양이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한 것은 바벨론 제국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점점 강대해져 가고 따라서 느 부갓네살 왕의 권세도 더욱 강해진 사실을 가리킵니다. 느부갓네살은 왕좌에 오르기 전 젊은 시절 부터 주변 국가들을 침범하여 파죽지세로 그 나라들을 정복하기 시작했으며 왕좌에 오른 뒤에는 멀리 이집트, 메대, 지중해의 여러 섬들까지 정복하여 명실공히 당대 최강의 황제로서 명성을 떨 쳤습니다. 그 높이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소유한 권력이 절정에 닿았음을 의미하 며 땅끝에서도 보이겠고 한 것은 왕이 소유한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상징합니다.
‘12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먹을 것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육체를 가진 모든 것이 거기에서 먹을 것을 얻더라.’ 12절과 21절에서는 견고하고 거대하게 자란 나무의 역할에 대 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계 질서가 바벨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기에 바벨론이 그 휘하의 여러 속국들과 세계 각국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때의 바벨론의 역할은 모든 사람들에게 먹을 음식물을 제공한다는 것 입니다. 바벨론 제국은 거대한 영토에 걸 맞는 많은 수의 백성들을 가진 제국이었지 만 효율적인 제도와 행정을 통해 백성들을 부요하게 했습니다. 왕이 제국의 백성들 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느부갓네살은 피정복 국민에게는 잔인한 정복자였지만 그의 제국 내의 백성에게는 자비로운 보호자였으며 자기의 제국으로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안식처를 제공했습니다.
‘13내가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 가운데에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 데 14그가 소리 질러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을 그 아래에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는 왕의 꿈 내용에 대해서 다니엘은 23절에서 꿈의 내용을 해석합니다. 하늘에서 한 순찰자 즉 천사가 내 려와 말하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자르고 그 잎사귀를 떨라고 합니다. 이것은 나무로 비 유되었던 느부갓네살왕이 장차 자신이 가졌던 극대한 권세를 갑작스럽게 상실하게 될 것을 예언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무의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라고 한 것은 느부갓네살이 하나 님의 징계를 받아 권좌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그 일은 한시적일 뿐 그의 권세가 완전하게 무너지 지는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잠시 권좌에서 떠나게 되나 그 징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 능의 위엄과 통치권을 깨닫게 되면 정하신 때에 다시 과거의 권좌를 회복할 것을 예언합니다. 그 런데 그 그루터기를 철과 놋줄로 동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신병자에 대한 조치로서 그 몸을 쇠줄로 묶는 것을 뜻하는데 정신 이상의 증세가 짐승과 같이 난폭하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15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쇠와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풀 가운데에 두어 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에서 짐승과 더불어 제 몫을 얻으리라.’
느부갓네살은 정복전쟁과 각종 건축사업 등 실로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으나 불행히도 그것이 그 를 극도로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으로 느부갓네살은 인간 이상의 신적 존재가 되고자 큰 신상을 만들고 사람들로 그것에 경배하게 했지만 이제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인간 이하의 삶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사람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내리라.’ 했는데 여기 짐승의 마음을 받았다는 말은 정신 이상 증세 중 에는 야생 생활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느끼는 증세를 보이는 질병이 있습니다.(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insania zoan thropica) 이 질병에 걸린 환 자는 자신을 짐승으로 여기고 짐승과 같은 광기를 보인다고 합니다. 의학에서 이 질병을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Insania Zoan Thropica)라고 합니다.
일곱 때를 지내리라 했는데 일곱 때란 느부갓네살이 광기에 사로잡혀 왕위에서 쫓겨나며 모든 권 세를 상실하게 될 일정기간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때’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간을 나타내느냐 하 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일곱 때를 7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일곱 때가 7 년이 아닌 것이 확실한 것은 느부갓네살이 이 두번째 꿈을 꾼 때가 정복 전쟁을 끝낸 때이므로 BC 568 년입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 해가 BC 562년입니다. 그러므로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568-562=6). 그러므로 일곱 때란 일곱은 완전 수 이므로 느부갓네살을 온전케하는 일정 기간을 말합니다. 그냥 일곱 때라고만 말해야 하겠습니다.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절대성과 위대성을 믿도록 하기 위해 주신 일정한 하나님의 징계 기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뿐입니다.
‘25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26또 그들이 그 나무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27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27절에서 다니엘은 왕에게 간구하기를 공의를 행하고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시라고 충언을 했지만 느부갓네살 왕은 이것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느부갓네살이 일곱 때 동안 정신병(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 insania zoan thropica)으로 인해 권좌에서 물러 났다면 그 동안에 그 왕의 자리가 어떻게 보존되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25절에서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에서 그 문제를 암 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 꿈이 하나 님께로 왔으며 다니엘이 그 꿈에 대한 해석을 했으며 그 꿈 내용대로 왕이 정신병이 들어 짐승과 같이 되리라는 예언대로 되었으므로 그 꿈의 내용과 다니엘의 꿈 해석에 의해 느부갓네살이 다시 병에서 회복되어 왕좌를 차지 하리라는 사실도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감히 왕좌를 탐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자 Harris에 의하면 바벨론에서는 계절을 계수할 때에 여름과 겨울만을 세웠다고 하 는데 그렇다면 바벨론의 계수 방법에 의하면 이 일곱 때가 삼년 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의 사람들은 이 일곱 때가 언제까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왕의 자리를 엿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다니엘이 총리였으므로 왕의 빈자리를 잘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서 그 동안 왕의 자리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넷째로 느부갓네살의 꿈의 성취(28-33)
‘28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29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30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의 두번째 꿈인 한 큰 나무의 꿈의 묵시가 다니엘이 해석한 대로 그 꿈이 주어진 지 정확히 12개월 곧 1년 만에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와 다니엘의 회개 근면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회개하지 아니하고 교만해 하다가 끝 내 한 큰 나무의 꿈대로 징계받은 사실을 느부갓네살 자신이 말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의 꿈대로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대략 애굽과의 3차 전쟁에서 승리함 으로써 그의 정복 전쟁이 BC568년에 마감하고,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역사상 보기 드물게 웅장 하고 화려한 바벨론 왕궁과 바벨론 시가 완공되어 문자 그대로 태평성대를 누리던 어느 때일 것 입니다. 실로 천하를 호령할지라도 아무도 그 앞에서 대항치 못하는 절대 권력과 극도의 영화를 누리던 느부갓네살 왕이었습니다.
이 때에 그는 만 1년 전에 한 큰 나무의 꿈을 통하여 주셨던 하나님의 경고도 까마득히 잊고 자 신의 화려한 치적을 내세우며 극도의 교만에 빠졌습니다. 어느날 그가 바벨론 궁 지붕을 거닐면서 말하기를, ‘이 큰 바벨론은 나의 권세와 능력으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 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하면서 우월감에 도취되어 말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 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궁의 지붕이란 현세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공중정원’ 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 대제국의 황제로서의 느부갓네살의 위엄이 어떠했는가를 실증해 주는 것 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 공중정원에서 바벨론 도성을 내려다 보며 자기 도취에 빠져 있었 습니다.
‘31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32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 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33바로 그 때 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는다는 것은 왕이 미쳐서 들로 쫓겨나가 짐승과 같이 살며 짐승의 음식을 먹고 들에서 노숙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왕의 실제 모습에 있어서의 변화 즉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되고 손톱이 새 발톱과 같 이 된 원인은 물론 왕이 손톱을 깎지 않았고 머리털도 깎지 않았고, 목욕도 하지 않아서도 그랬겠 지만 좀 더 직접적인 원인은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라는 정신 질병 탓입니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은 짐승과 같이 되고자 하는 정신적인 욕구가 원인이 되어 외형 마저도 어느 정도 그 짐승과 같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다섯째로 느부갓네살 왕의 회복 후 하나님 찬양(34-37)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 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 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에서 ‘그 기한이 차매’는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인 일곱 때, 곧 느부갓네살이 짐승처럼 살면서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의 절대성 및 지고성(至高性)에 대하여 깨 닫고 회복되기까지의 하나님의 징계 기한입니다. 따라서 이 기한이 찼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하 나님께서 정하신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을 충분히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는 것은 하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그 하나님 만을 경외하 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과 섭리대로 왕은 하나님의 권능과 주권과 위엄을 깨닫자 곧 하나님의 은총 으로 광인으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이성과 왕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느부갓네살 왕이 정신 병 증세의 상태에서 자신의 교만한 죄를 깨닫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 해 보건대 하나님의 예언에서 일곱 때가 차서 정신이 돌아 오면서 자신의 교만했던 것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것 뿐입니다.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 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36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 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하나님께 대한 느부갓네살의 인식이 상당히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인간 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을 소유하였을 뿐 본질적으로는 인간과 다를 것이 없는 이방신들 중 하나 라는 관념을 하나님께도 적용시켜왔으나 이제는 시간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역사를 지배하시는 절대자로서의 하나님의 속성을 어느 정도 깨달은 상태에서 찬송하고 있음을 봅니다.
‘37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 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이제 느부갓네 살은 자신이 교만했던 것도 알고 자신을 벌주셨다가 다시 회복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찬양하 며 칭송한다고 했습니다. 역사는 여호와의 절대 주권 하에 있다는 진리가 대 제국의 황제의 입술 을 통해서 선포됨으로써 이 진리의 진정성과 확실성이 그 누구에 의해서 선포된 것보다 더 극명하 게 확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바벨론 제국의 멸망과 메대-바사제국의 등장(다니엘 5:1-31)
첫째로 벨사살 왕의 역사성
다니엘 5장에서 바벨론 왕 벨사살이 큰 잔치를 베푼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역사 가들은 벨사살 왕이 과연 역사적으로 실제 했던 인물인가에 대해 의심해 왔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여러 문헌에 의하면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였으며, 바벨론 왕의 역대 왕들 중에 벨사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다니엘서 5장에서 만 언급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벨사살이 역사적인 실제 인물이었으며 바벨론 제국 멸망 당시 그 가 바벨론을 통치한 왕이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분명히 증거되었습니다.
벨사살이 가공의 인물이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임을 확증된 것은 1854년 한 영국 영사 가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Nabonidus BC 555-539)가 옛 바벨론의 갈대아 우르 지역의 수호신 인 ‘달의 신’에게 바치기 위해 우르에 세운 신전의 폐허 속에서 몇 개의 조그만 점토 기둥들을 발 굴함으로써 였습니다. 그 기둥들에는 가로 세로 10cm 정도의 정방형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은 나보니두스와 그의 큰 아들의 건강과 장수를 신께 기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바벨론의 왕인 나 곧 나보니두스가 당신께 죄를 짓지 않도록 해 주소서. 그리고 나의 장남이며 사랑하는 아들인 ‘벨사살’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이 있게 하소서.’라 했습니다. 한편 1854년 이후에 벨사살에 대한 바벨론의 문헌들이 더 발견 되었는데, 그 때마다 벨사살의 왕자 또는 왕의 아들로만 언급되었고, ‘왕’으로서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비문에서 벨사살이 비록 법적으로 왕위를 계승 받지는 못했지만 그 부친 나보니 두스와 바벨론의 공동 섭정을 하였음이 밝혀졌습니다.
바벨론의 최고신인 ‘벨’ 또는 ‘말둑’이라 불리우는 신보다 다른 도시 즉 하란과 우르의 수호신인 ‘달의 신’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괴짜 나보니두스 왕은 BC 555년에 등극한 지 3년이 되던 때부터 실제 통치권을 자신의 아들에게 맡겨 버리고 바벨론을 떠나 아라비아의 테이마(Teima) 라는 오아시스 주변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그가 바사 왕 고레스 2세와의 전투에서 패한 후 실의에 빠져 그곳에서 은둔 생활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이런 사실이 다니엘이 어떻게 바벨론 제국의 셋째 치리자가 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즉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정식 왕이었기 때문에 그의 지위가 첫째이고 벨사살 자신은 섭 정왕으로서 둘째 가는 자리에 있었고 따라서 다니엘에게 나라의 셋째 가는 자리를 줄 수 밖에 없 었던 것입니다. 한편 바벨론 제국의 메대-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인 BC 539년에 나 보니두스가 바벨론으로 다시 돌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벨사살에게 실제 왕권을 내어 주지 않 았습니다. 다니엘서5장에서 벨사살이 메대바사 연합군에게 죽게 되고 나보니두스 왕은 메대바 사 연합군에게 항복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 볼 때에 다니엘서의 벨사살이 다니엘이 허구의 인물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 고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었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비록 바벨론 여러 문헌에 벨사살이 법적 인 왕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고고학 자료들은 그가 실질적인 통치자였음을 분명히 증거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기록 의도가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해서가 아닐지라도 반대로 역 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된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 같은 성경 기록의 역사성은 성경 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시 한번 확 증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벨사살의 연회와 하나님 모독사건 (1-4)
이제까지 우리는 다니엘 1장에서 다니엘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성장 배경, 제 2-4장은 느부갓 네살 왕 통치 당시의 주요 사건들과 왕의 꿈을 통한 간접적인 묵시들을, 그리고 본 제 5장은 느 부갓네살왕이 죽은지(BC 562년) 약 23년 후인 바벨론의 마지막 왕 벨사살(BC550-539년)의 통치 말기에 있었던 신비한 손가락이 나타나 왕궁 벽에 글씨를 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 역사의 기록에 나타난 느부갓네살 이후의 바벨론 왕들의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느부갓 네살(BC 604-562), 그이 아들 에윌므로닥 (또는 아벨말둑BC 562-560), 에윌므로닥은 살해 됩니다.
다음 왕으로 느부갓네살의 딸과 결혼한 네르갈 사레셀이 왕이 됩니다. 네르갈 사레셀(또는 네 리 글리솔BC 560-556), 다음으로 네르갈 사레셀의 아들 라보로 소알후드(또는 라바시 말둑 BC556)는 왕이 된지 8개월 만에 암살되어 죽고 느부갓네살의 다른 사위인 나보니 두스(BC 556-539년)가 왕이 됩니다. 나보니 두스의 아들이 벨사살입니다. 느부갓네살은 벨사살의 외 할아버지입니다.
「나보니두스와 벨사살」(Nabonidus and Belshazzar, R. P. 도허티, 1929년)이라는 책에서는 벨사살의 어머니는 니토크리스였고 니토크리스는 느부갓네살(2세)의 딸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만일 사실이 그러하였다면 느부갓네살은 벨사살의 외할아버지였던 셈입니다.
고대 근동 국가에서 왕들이 잔치를 배설하고 귀족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러나 벨사살이 베푼 연회는 정상적인 연회가 아니라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방탕한 것이 었습니다. 왜냐하면 벨사살이 연회를 열고 있을 당시는 바사와 고레스 2세가 바벨론 제국을 다 점령하고 수도인 바벨론 성을 2년 동안 포위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날 밤에 벨사 살 자신이 죽게 될 그런 급박한 상황에 잔치를 베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벨사살은 자신의 생 명과 나라의 존폐가 경각에 달려 있는 위태로운 시기에 자신의 악함과 어리석음을 온 세상에 드 러내려고 한 듯이 술에 취하고 방탕하는 비 정상적인 대 연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귀인 일천명을 불러 모아 잔치를 합니다. 멸망해 가는 제국이었지만 여전히 이 정도의 연회를 열 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에 의하면 식민지로부터 들여온 각양의 좋 은 것들을 엄청나게 쌓아 두었기 때문에 바벨론 성이 포위되더라도 20년은 견딜 수 있었다고 합 니다. 당시 바벨론 제국은 이미 고레스에게 계속 패하여 수도인 바벨론 성까지 밀려 포위되어 있 었습니다. 패전이 거듭되면서 타지에서 바벨론 성으로 도피해 온 귀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벨론이 마지막까지도 그런 국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 니라 그 많은 사람들 중 왕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간언하는 자가 전혀 없었을 만큼 바벨론의 상류 층 전체가 패역하고 부패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한 나라가 멸망할 시기가 가까울 때에 자연 스럽게 나타나는 말기적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벨사살이 잔치를 할 때에 하나님의 전의 기명들로 술을 마시는 지극히 불경스러운 행동을 한 것 은 술에 취해 취기로 한 행동이 아니라 벨사살이 불경을 저지른 핵심 원인은 부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증거된 여호와가 세계 역사의 절대 주권자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자신의 권세가 절대적이며 고레스의 공격으로부터 바벨론을 얼마든지 수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하기 위 한 지극히 교만된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이에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성소 중에서 탈취하여 온 금 그릇을 가져오매 왕이 그 귀족들과 왕 후들과 후궁들과 더불어 그것으로 마시더라. 4그들이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여기서 금은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이란 바벨론의 온갖 잡신 들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이 잡신들을 찬양하며 술에 취했다는 말을 통해 고성방가하며 음란한 행동을 자행하는 광란의 광경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벨사살과 일천의 귀인들이 이럴 때에 왜 하필이면 하나님 전의 기명들을 가져 오게 해서 술을 마시며 우상들을 찬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고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사탄 은 개인이나 국가를 망하게 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죽으려고 발광을 합니다.
셋째로 왕궁 벽에 나타난 신비한 손가락(5-16)
‘5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6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 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그 때에 무리가 술에 취해 성전 기명 모독, 음주, 향락 등 점차 광적인 향락 상태로 고조되어 가던 그들의 악행이 우상숭배로 절정에 이르렀던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바벨론 제국의 궁극적 원인이 절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고 도전한 데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줍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의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왕이 얼굴 빛이 변하고 번민하여 넓적다리가 녹는 듯 하고 무릎이 서로 부딪칩니다. 세상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쓰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촛대 맞는 편 흰 분벽 위에 있는 글을 촛불로 인해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때에 벨사살이 공포에 싸여 소리질러 말하기를 바벨론 박사들을 불러 들이라고 했습니다. 그 들이 왕 앞에 서자 왕이 말하기를. "저 글을 읽고 뜻을 풀어주는 사람은 자주색 도포를 입혀 주고 금목걸이를 걸어주며 이 나라에서 셋째 가는 높은 자리에 앉혀주리라." 제일 먼저 불러들인 사람 들은 바벨론 박사들이었습니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징계로 정신 이상으로 일정 기 간 동안 왕위에서 쫓겨났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사건을 예언하였던 다니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벨사살이 어째서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믿을 만 한 다니엘을 부르지 않았으며 태후의 깨우침이 있은 후에야 다니엘의 존재를 기억하게 되었을까 요?
벨사살은 유대 사람을 경멸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왕권이 바뀌면서 다니엘과 유대인들을 질투 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벨사살 왕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벨사살 정권 하에서는 다니엘이 실권에서 물러났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연회에 참석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사람을 경멸하였고 유대의 하나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왕의 박사들이 다 들어 왔으나 역시 한 사람도 그 글을 알거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박 사들이 홀연히 나타난 손가락이 쓴 글자를 해석하지 못하자 불안과 공포가 급증했습니다. 연회 에 초대된 귀인들도 혼비백산하여 놀라 동요하고 혼란에 빠져 그리하여 흥겨움으로 인해 소란 하고 떠들석 하던 분위기는 멈추어지고 연회장은 갑자기 불안감으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벨론의 박사들이 그 글을 해석하지 못하자 분위기는 완전히 동요와 혼란의 상태에 이르렀습 니다. 이 때에 태후가 소란한 연회장에 대해 듣고 연회장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 태후는 본래는 연회장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벨사살왕의 왕후들과 빈궁들이 잔치에 참여했다고 했으니 벨사살 왕의 왕비는 아닙니다. 아마도 벨사살의 어머니 왕후일 가능성이 큽니 다. 어머니 태후는 아버지 나보니더스의 아내로서 바벨론 궁에 있지 않고 남편을 따라 테이마 (Teima)에 머물고 있다가 나보니더스가 이 때쯤에는 바벨론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왕비가 다니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다니엘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 아 그녀는 느부갓네살의 딸인 나보니더스의 아내요 벨사살의 어머니인 니토그리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후가 이 일로 번민하거나 얼굴이 파래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태후는 다니엘을 불러 글자 를 해석하게 하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 람이라고 다니엘을 벨사살 왕에게 소개합니다.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 때에 있었던 자인데 다 니엘은 신들이 가지는 지혜를 가진 자요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 와 점쟁이의 어른을 삼은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벨드사살이라 이름을 가진 이 다니엘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다니엘의 바벨론 식 이름인 벨드사살과 왕의 이름인 벨사살이 비슷하 고 뜻도 비슷합니다. 다니엘은 본래 히브리식의 이름이며, 벨드사살은 궁중 교육 시절에 환관 장으로부터 받은 바벨론식 이름입니다. 벨드사살이란 뜻은 ‘벨 신이여 그의 생명을 지키소서.’ 이며 벨사살의 뜻은 ‘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입니다. 이렇게 해서 벨사살이 다니엘을 불렀 습니다. 그리고 묻기를 ‘네가 우리 부왕이 유다에서 사로잡아 온 유다 자손 중의 그 다니엘이냐’ 고 묻습니다. 다니엘을 향한 벨사살의 말이 참으로 밉살스럽습니다. 태후의 소개로 불러들인 다 니엘에게 질문하는 벨사살의 태도가 몹시 거만합니다. 지금 벨사살에게 중요한 것은 다니엘의 출신이 아니라 바벨론의 그 누구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분벽에 쓰인 글자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다니엘의 출신을 거론함으로써 은연 중에 포로 출신의 노인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는 오만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 대화에서 밝혀진 것은 벨사살이 이제야 다니엘과 첫 대면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2그분의 아들이신 임금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시고도 겸손해지기는커녕 23오히려 하늘의 대 주재를 거역하시고..’ 22절에서 보여 주듯이 벨사살 왕은 느부갓네살 시대에 행하였던 다니엘의 행적들을 다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벨사살은 이제야 다니엘과 첫 대면을 한다는 것은 그 가 다니엘을 얼마나 경원시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은인이요 느부갓 네살이 정신병으로 권좌에서 쫓겨 났을 때에 왕의 자리를 지키고 나라를 지킨 일등 공신을 이제 야 만난다는 것은 벨사살이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은 인간인가를 보여 줍니다. 지혜자는 지혜자 를 찾아 가까이 해야합니다.
‘16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너는 해석을 잘하고 의문을 푼다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네가 이 글을 읽고 그 해석을 내게 알려 주면 네게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네 목에 걸어 주어 너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
넷째로 왕궁 벽에 쓰인 글자를 다니엘이 해석(17-29)
‘17다니엘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예물은 왕이 친히 가지시며 왕의 상급은 다른 사람 에게 주옵소서 그럴지라도 내가 왕을 위하여 이 글을 읽으며 그 해석을 아뢰리이다.’ 다니엘은 벨사살 왕이 제공하겠다 한 상을 마다한 이유로서 세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다니엘 은 본래 재물이나 권세에 얽매이지 않고 청렴 결백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니엘 자신이 세상 의 재물이나 권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직 진리만을 말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입니다. 셋째로 바벨론은 하루 밤만 지나면 멸망할 것이므로 왕이 주는 상은 하루 밤 만에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럴지라도 왕에게 글의 내용을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18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에게 나라와 큰 권세와 영광과 위엄을 주셨고 19그에게 큰 권세를 주셨으므로 백성들과 나라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의 앞 에서 떨며 두려워하였으며 그는 임의로 죽이며 임의로 살리며 임의로 높이며 임의로 낮추었더니’ 에서 다니엘은 먼저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징계로 정신병에 걸려 폐위되었다가 하나님의 주 권과 위엄을 알게 된 후 다신 회복되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느부갓네살 시대의 융성을 허락하 신 분이 벨사살 왕이 그토록 경멸하는 유대 민족의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며 교만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왕을 폐위시켰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이렇게 느부갓네살 왕의 행적에 대해 벨사살 왕에게 상기시키는 것은 그것이 분벽의 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필연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처럼 그 보다 더 교만한 벨사살에 대한 심판도 필연적임을 교훈하기 위해서 입니다. 벨사살은 하늘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성전의 기명을 가지고 술을 마시고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신상들을 찬양하면서 벨사살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가락을 보내 심판을 선언하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25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26그 글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 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27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함이요 28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하니’에서 ‘메네’라는 문자적인 의미는 ‘그가 세어서 끝나게 했다.’고 다니 엘이 풀이 했듯이 하나님께서 기간을 세어서 바벨론 왕국을 멸망하도록 하였다는 의미인데 메네 메네를 두번 반복함으로써 반드시 속히 될 것을 보여 줍니다. 데겔은 문자적으로 ‘너는 저울질을 받았다’ 또는 ‘너는 너무 가볍다’라는 뜻입니다. 베레스는 히브리음으로 페레스 (פְּרֵס)인데 이 단 어의 복수형은 ‘파르신(וּפָרָס)입니다.
이것을 한글 음역에서는 ‘바르신’으로 음역하였는데 그 앞에 ‘그리고’ 또는 ‘그러나’ 라는 뜻을 가 진 접속사 ‘우’가 결합되어 25절에서는 ‘우바르신’이라고 표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5절의 ‘우 바르신’과 28절의 ‘베레스’는 복수와 단수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을 뿐 동일한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복수와 단수 사이에 의미상 큰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양자는 동일한 단어 로 취급해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바르신’은 또한 ‘바사인’이란 뜻도 가지고 있고 ‘나누다, 조각을 내다’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사가 바벨론을 멸망시킨 사실과 오묘하게도 연결되고 있습니다.
‘29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그들이 다니엘에게 자주색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니라’에서 다니엘의 해석이 벨사살 왕 에게 아주 불리했지만 일천명의 귀족들 앞에서 한 약속이기에 자신의 제안대로 다니엘에게 상금 과 셋째 치리자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벨사살은 그 날 밤에 죽임을 당합니다.
다섯째로 왕궁 벽에 쓰인 글자 예언의 성취(30, 31)
‘30그 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 31메대 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는데 그 때에 다리오는 육십 이세 였더라.’
여기서 우리는 신 바벨론제국의 멸망과 멸망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성경의 놀라운 예언을 알아보 겠습니다. 바벨론은 오랜 세월 동안 존속해 왔습니다. 최초 바벨론은 니므롯이 창시자 였으며, BC 18세기, BC16세기의 고대 바벨론은 함무라비왕 때 가장 왕성했습니다. 그 이후에 점점 약해져 앗 수르에 멸망을 당합니다. 바벨론은 멸망은 했지만 일부가 살아남아서BC 626년 나봇폴라살은 갈 대아인을 모아 신 바벨론을 건설합니다. 그 아들 느부갓네살 왕 시대에 와서 바벨론제국은 강대국 이 됩니다. 바벨론제국의 성은 시날평야의 유브라테스강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바벨론성은 유 브라테스강이 한 가운데로 흘렀고 바벨론성에 도착한 유브라테스강은 세 갈래로 나누어져 흘렀습 니다. 한 줄기는 바벨론성 안으로 흐르고 두 줄기는 바벨론성 주위를 감싸고 돌아서 흐르게 하였습 니다. 이렇게 한 것은 누구도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성벽의 두께가 30m인데 이 30m는 10층 건물 높이 입니다. 성곽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집니다.
성벽의 높이는 약120m인데 성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성벽 둘레로는 유브라테스강이 흘렀습 니다. 성벽의 흙은 해자를 판 흙으로 벽돌을 구워 만들었고, 성벽의 벽돌은 콜타르를 사용했습니 다. 성벽 위에는 양쪽에 가옥들이 마주 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양편 가옥들 가운데 4두마차가 지나갔습니다. 정말 대단한 바벨론 성의 규모입니다. 바벨론 도성은 성안의 집들이 3-4층 건물들 이 밀집되도록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난공불락의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 습니다. 그렇다면 난공불락의 바벨론성이 어떻게 해서 무너졌겠습니까?
바벨론 성이 어떻게 쉽게 무너졌는가 하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 성을 공격하려고 왔는 데 성벽의 높이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성주위로 돌아 흐르는 급한 물살이었습니다.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스 강물을 건너다가 자신의 마차를 끄는 말 중에 아주 아끼던 백마(神馬)가 물에 휩 쓸려 죽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고레스가 말하기를 '내가 이 강물로 하여금 '여자들이 무릎을 적시지 않고도 건널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맹세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군사들을 시켜서 강 양쪽에 180갈래 로 나누어 유브라데스강의 물줄기를 360갈래로 나누었습니다. 이런 고레스의 대단한 고집과 집 념으로 강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성안으로 들어가는 유브라데스의 강줄기가 보인 것 입니다.
그곳으로 군사가 들어가면서 바벨론 성이 힘 없이 함락되었습니다. 벨사살왕은 적이 성안으로 들 어오는 줄도 모르고 주색잡기에 정신이 없다 보니 힘 한번 쓰지 못하고 그 화려했던 바벨론 제국은 한 순간에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성경에 예언되었습니다. 고레스가 바벨론 성을 무 너뜨릴 것을 성경은 이미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에 고레스란 이름을 지어주고 고레스의 앞길을 평 탄케 해주겠다고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44장 26절~28절에,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 구시키리라 하며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유브 라데스 강물이 마르리라),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 하리라.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라고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45장 1절~4절에,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 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이렇게 신 바벨론제국의 멸망과 멸망의 과정이 페르시아 고레스왕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할 일들을 예언한 성경은 확실한 예언입니다. 바벨론성을 어떻게 무너뜨릴 것을 이미 성경은 그 방법을 기록했습니다. 유브라데스 강 물줄기를 막아서 마르게 하고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을 고레스가 태어나기 전에 예언했습니다.
바벨론제국이 멸망함으로써 느부갓네살에게 보이셨던 신상의 꿈을 통한 예언의 일부와 벨사살 과 그 신하들에게 나타난 손가락으로 쓴 글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바벨론 제국 은 완전히 멸망하고 이제 은으로 된 가슴과 팔, 곧 메대 바사 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바벨론을 정복하고 벨사살 왕을 죽인 왕이 바사의 고레스인 줄 알았는데 난데 없이 메 대사람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고레스와 다리오의 관계를 알아 보기 로 하겠습니다. 이 다리오는 역사학자들이 메대 나라의 다섯번째 왕인 카악사레스 2세로 봅니 다. 카악 사레스 2의 아버지인 아스티아게스 왕은 슬하에 두 남매 카악사레스와 딸 만데인을 두었는데 만데인을 바사국왕 캄비세스와 결혼시킵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가 고레스 2세입니다.
한편 부왕 캄비세스 시대는 바사국이 메대국의 속국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레스가 왕이 된 후 에 자신의 외 할아버지인 메대 왕 아스티아게스에게 반란을 일으켜 독립을 선언하고 그로수스, 앗시리아와 메대 나라의 상당부분까지 정복했습니다. 이때에 카악사레스 2세와 고레스가 연합 할 때는 메대와 바사가 동동하기 보다는 오히려 메대가 바사의 속국이 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 었습니다. 그러나 고레스는 카악사레스 2세의 딸 과 결혼하여 양국 간에 결혼동맹을 맺고 자신 은 계속하여 정복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자신의 외 삼촌이자 장인인 카악사레스 2세인 다리오를 존중하여 메대-바사 과도 제국의 왕으로 추대 하였습니다. 그것이 다니엘 5:31의 내용입니다. 그 후 고레스는 2년 후 모든 정복 전쟁을 결론 짓고 정식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 때가 BC 538년이요 그 해에 유다를 고토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다니엘의 사자굴 처형 다니엘 6:1-28
역사는 새로운 궤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본 금 신상에서 금 같은 바벨론 제국은 역사상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이제 세계의 무대는 메대와 바사 제국으로 옮겨졌습니 다. 은 같은 나라의 등장입니다. 우리는 다시 메대와 바사 제국에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구원계시 를 보게 됩니다. 다니엘 6:1에서 다리오왕을 보게 됩니다. 다리오는 다니엘 5:31에서 메대 사람 다리오로 소개 되었습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의 지혜와 총명을 높이 인정하여 피정복국의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정복국의 수석 총리로 중용한 사실과 이런 다니엘을 시기한 다 리오 신하들이 그의 여호와 신앙을 빌미로 하여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세운 사실을 기록하 고 있습니다.
한편 다니엘 1-5장까지에 기록된 기사의 시대적 배경은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왔던 해 인 BC 605년에서 바벨론 제국이 멸망한 BC 539년까지 약 66년 간입니다. 그리고 다니엘 6 장 은 BC 539-BC 538년까지 불과 2년 정도 존재하였던 메대-바사 과도 제국 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다리오는 메대 왕으로서 바사 왕 고레스2세와 함께 연합하여 바벨론 제 국을 정복하긴 했으나 연합군의 군대 지휘권은 고레스 2세에게 넘겨진 상태였으므로 큰 실권이 없었습니다. 단지 당시 고레스 2세가 계속 정복 전쟁을 치르던 중이었으므로 다리오는 바벨론 도 를 다스리면서 메대-바사 전체의 행정을 정비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다니엘은 80세 이상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메대-바사 제국의 3명의 총리 중 수석 총리였습니다.
첫째로 메대 바사 과도 제국
역사적으로 볼 때 BC 539년에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고 바사 제국이 등장하던 과도기에 비록 2 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메대와 바사가 연립 정부 형태로 존재했었습니다. 이 시기 를 가리켜 ‘메대-바사 과도제국시대’라 합니다. 일반 역사에서는 이 시기가 너무 짧은 과도기 였 기에 따로 구분하여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성경에서는 특히 다니엘서에서는 이 과도 제국 시대에 바벨론 지역을 통치한 다리오 왕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대의 역 사를 따로 구분하여 살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과도 제국 형성 이전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메대인과 바사인은 다 같이 BC 2000년 경 카스피해의 동부와 남부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페르시아만 북부 해안 지방인 이란 산맥 남서부 지역으로 아주 정착한 인도 아리안 족에 속한 종족들입니다. 이 두 종족은 정착 초기에는 그 지역 본토인들인 엘람, 앗수르, 바벨론의 위세에 눌려 지내다가 BC 7세기 중반경 메대인은 ‘액바타나’ 를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종족을 끌어 들려 연합 부족 국가 체제를 이루고 앗수르와 대항하기 위 해 국력을 키워나갔습니다. 초대 왕은 ‘데이오케스’ 였으며 제 2대 ‘프라오르테스 (BC 675-BC 653) 때부터 영토 확장을 시작하여 제 3대 카악사세스 1세(BC 625-BC 585)하에서 바벨론과 연합해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점령하고 영토를 리디아까지 확장시켰습니다.
한편 바사인들은 아케메네스의 주도하에서 BC 700년 경 엘람 동부 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그 리고 제 2대 왕 테이스페스는 바사국의 영토를 안산(ANSHAN) 지역까지, 그리고 그의 아들 고 레스1세는 바사 서부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메대국과 바사국이 서로 연합하게 된 것은 바사왕 고레스 1세의 아들 캄비세스 1세(BC 600-559)와 제 4대 메대왕 아스티아케스 (BC 585-BC 550)의 딸 만다인과의 결혼으로 동맹을 맺으면서부터입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고레스 2세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바사국은 메대국과 대등한 동맹 국이 아니라 일종의 속국 형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캄비세스 1세의 아들 고레스 2세가 그의 외조부인 메대왕 아스티아케스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여 안산 혹은 엘람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고 그는 그곳 을 바사라 칭했습니다.
다음으로 과도 제국 형성과 결과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메대국과 바사국이 다시 연합하게 된 것은 고레스 2세와 그의 외삼촌이면서 아스티아케스의 아들인 키악사레스 2세를 통해서였습니 다. 즉 위대한 정복자요 후에 대왕이라고 불리어진 고레스 2세는 카악사레스 2세와 연합하여 그 로수스와 앗수르 및 바벨론을 정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고레스 2세와 키악사레스 2세의 연합은 이전의 캄비세스 1세와 아스티아케스와의 연합할 때와는 정반대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당시 고레스 2세는 메대 왕국을 거의 정복한 상황에서 메대의 군사를 순조롭게 동원할 목적으로 단지 형식상으로만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두 연합국의 군대 지휘권을 획득한 고레스 2세는 자신의 외삼촌이기도 한 카악사레스 2세와 함께 BC 539년 바벨론 제국을 정복하고 메대-바사 과도제국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고레스 2세는 메대 왕 키악사레스 2세, 곧 다리오를 예우하여 메대-바사 제국의 왕으로 추대하고 임시 수도를 메대와 바사가 아닌 바벨론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레스 2세 자신은 계속해서 정복 전쟁을 수행하였습니다. 또 카악사레스 2세는 이 기간 동안에 메대-바사 제국 전 체를 120도로 나누는 등의 행정 정비를 이루었는데 이는 후에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1세)에 의해 바사 제국이 20개의 총독 관구와 127도로 편성될 때 그 기초가 되었습니다(에1:1) 이 과 도 제국은 약 2년 만에 고레스 2세의 정복 전쟁이 마무리 된 후 카악사레스 2세의 외동딸과 결 혼하고 사위 자격으로 메대-바사 제국 전체의 통치권을 정식으로 이양 받음으로써 막을 내리고 인도에서 구스까지 광활한 영토의 바사제국 시대가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메대-바사 제국을 바사 제국으로 칭하게 된 것은 고레스 2세가 바사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다니엘에 대한 다리오 신하들의 시기와 음해(1-9)
다리오는 고레스 2세와의 정복전쟁에서 얻은 국토를 120도로 행정구역을 정하고 총리 셋을 임 명하여 전국 120도의 지방 장관들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이들 총리들의 주 임무는 모든 국사를 관장하되 특히 국고에 들어오는 재정을 관리하고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총리에 다니엘이 포함되었고 세 총리 중에 수석 총리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 가 멸망 할 경우 그 나라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다니엘서 5:30 에 벨사 살이 죽임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연회장에 있었던 1천명의 귀인들도 죽임을 당했 을 것인데 다니엘은 살아 남았을 뿐만 아니라 수석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어떻게 죽기는 커녕 총리가 되고 수석 총리가 되었을까요?
아마도 이런 추리가 가능하겠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망하던 밤에 ‘메네 메네 데갈 우바르신’의 벽보를 읽고 해석했던 소문이 그 날 밤 궁실에 가득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제국이 무너지던 그 밤에 연회석에는 다리오왕의 첩자들이 그 밤의 궁실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참여하고 있었을 것 입니다. 더욱이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던 그 밤에 다니엘의 몸에는 자주옷이 입혀졌고, 목에는 금 사슬이 드리워졌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서 관복 까지 입혀졌던 밤입니다.
그리고 다리오 군대가 바벨론 궁실에 침입했을 때에 모든 자를 멸할 때에 다니엘에 대한 명망을 알았던 저들은 다니엘을 살려 놓고 새 왕국에 그 지혜로운 고문을 받게 하고 싶었던 것은 자연스 러운 일입니다. 분명히 다니엘은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하여 다리오 왕국의 길조를 예언한 셈이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이 바벨론에 입성하여 정국을 수습할 때에 다니엘의 존재는 참으로 귀하고 중한 위치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입니다. 하나님이 바벨론 제국을 엎어 셨습니다. 그리고 그 넓은 판도를 메대와 바사에게 넘겼습니다. 그 것은 이스라엘을 고국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생명을 보호하시 고 다니엘로 하여금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44:26-28에서 예언된 고레스의 이름과 사명에 대해 고취시켰을 것입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수석 총리로 세움으로 인하여 정복국의 관료들의 시기와 질투를 낳게 했습 니다. 포로 출신이며 피정복국 바벨론 제국의 관료였던 다니엘이 정복국 메대-바사 제국의 최고 총리가 되었으니 그들이 피가 꺼꾸로 솟을 판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로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러한 시기와 질투를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느냐 하는 것 입니다. 이것은 다니엘 뿐만 아니라 인류 전 세대에 걸쳐 모든 성도들 앞에 놓여진 과제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도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만으로 성도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 으려 하는데 그 성도의 인격과 능력이 타인에 비해 탁월할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때에 성도 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주의와 나태와 부정과 부정직을 삼가야 합니다.
사탄에게 포위된 성도는 항상 주의하며 긴장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고소할 틈을 주지 않았 습니다. 오직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고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이 익까지도 각오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 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다니엘은 이 때를 위해서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적들이 다니엘을 고소하기 위해서 아무리 뒤져도 먼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넘어뜨리려 의논했습니다. 다리오 왕의 신하들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 만은 절대 포기하 지 않으리라는 것과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다리오 왕께 대한 충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면 틀림 없이 그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선택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 니다. 다리오 왕의 신하들이 다니엘을 이렇게 봤다는 사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다니엘의 신앙 이 형식적이거나 위선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 중요 합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종 노릇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긴 것이 보디발의 눈에 보여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다니엘을 잡을 모의를 합니다. 다니엘을 모함하고자 충동하는 세 력은 다리오 왕이 다스리는 메대바사의 최고 관리들입니다. 그러나 메대 바사 제국의 모든 관리 들이 공식적으로 그러한 모함을 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 고관들이었을 것입니다. 6절에 언급한 다니엘을 제외한 두 명의 총리들과 몇몇 방백들이었습니다. 그 일부 관리들의 획책에 전체 관리 집단이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모함자들의 모임은 전체적이지도 않았고, 공식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을 모함하는 자들이 왕에게 드리는 보고는 거짓말이었습니다.
‘6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 서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 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총리와 방백 중에서도 일부 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관료 중 가장 우두머리인 수석 총리 다니엘이 이들의 의결석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 모함자들의 의견이 ‘모든 총리와 수령과 모사와 방백과 관원’의 의견으로 꾸며질 수 있었던 것은 소수 충동자들의 말이 거짓임을 알면 서도 그대로 묵인한 대다수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특히 다니엘에 대해 적극적 모함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다니엘 총리 등용 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인 다니엘의 편에 설 때 손해가 되면 되었지 이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관리들 사이에서 팽배했을 것입니다. 이런 모 든 상황이 소수 모함자들의 의견을 전체 관리들의 의견인 것처럼 와전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요 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삼십일의 기간을 설정했습니다. 삼십일 동안 다리오 왕을 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금령의 법을 제정하여 30일간 왕 다리오 외에 어느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는 자는 범법자로 규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다니엘을 잡기 위해 다니엘의 하나님 신 앙을 가지고 잡으려는 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은 다니 엘이 이긴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당신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설 것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삼십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한정한 것은 모함자들의 목표가 다니엘 한 사람을 제거시키는 데에 만 집중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즉 다니엘을 넘어뜨리기 위한 기간은 넉넉잡고 한 달이면 족 했습니다. 만일 모함자들의 목적이 다니엘을 옮아 매려는 것이 아니고 정말로 왕을 높이려는 것 이었거나, 제국의 교체로 인해 야기된 사회 불안을 안정시키려는 것이었다면 한 달이 아니라 더 긴 기간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이 모함자들이 하나님 만을 변함 없이 섬기고 있음을 알았으며 따라서 짧은 기간 안에 다니엘이 자신들이 친 올무에 걸려들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서도 그들은 마치 이렇듯 비열한 음모에 다름 아닌 왕에 대한 지극한 충성심에 기인한 것인 양 교 묘하게 위장하여 왕의 교만한 마음과 명예욕을 부추긴 것입니다. 한 마디로 왕을 가지고 놀았던 것입니다. 왕을 능멸한 죄는 달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메대 바사 과도제국에서는 왕을 살아 있는 신처럼 추앙하였습니다. 물론 고대 사회가 다 그랬습니 다. 또한 살아 있는 신인 왕이 잘못된 명령을 내리고 그에 따라 명령을 번복, 혹은 수정한다는 것 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습니다. 그 결과 메대, 바사에서는 한번 어인이 찍혀 확정 발표된 왕의 명령은 그 명령을 내린 왕 자신도 번복할 수 없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함자들은 이 제도 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결의에 의해 세워진 왕명이 그 규례에 의해 고쳐질 수 없도록 못박음으로써 다니엘이 어떠한 경우에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왕은 이들에게 속아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립니다. 다리오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다 니엘을 죽음으로 몰아 넣을 서류에 서명을 하게 됩니다. 다리오 왕은 자신을 높인다는 유혹에 넘 어가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새로 정복한 바벨론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복종심을 시험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간신배들의 제안에 선뜻 응하여 조서에 어인을 찍었던 것입니다.
셋째로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10-18절)
‘10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 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 사하였더라. 11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여기서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란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왕명임을 알고도’란 의미입니다. 매일 하루 세번씩 하던 하나님께 기도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도 다니엘은 그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이 세상 그 어느 것 보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고 사랑 하고 섬기는 여호와 절대 신앙의 다니엘은 그 때 이미 왕이 자신에게 자문도 구하지도 않고 왕을 절대 우상화하는 조서를 내린 상황의 배후에 깔려 있는 적대자들의 음모를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 조서를 보자 마자 그 조서의 내용이 자신을 잡으려는 수작임을 즉각 깨달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적대자들의 사악한 음모라는 사실을 왕에게 고하지 않았고 그런 적대자들의 음모에 넘어간 왕에게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평소처럼 자기의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렇듯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해야할 바를 꾸준히 행하는 그의 신앙 자세가 시사하는 바 교훈이 실로 큽니다. 참으로 성도들의 본분은 편의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깊었던 다니엘이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옳은 가이며 겉으로만 올바르고 선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올바르고 선하게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비참 한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 신앙 지조를 버리지 않았 던 다니엘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모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조서의 기간이 30일이라는 것은 또한 타협의 여지를 준 것입니다. 이 말은 다니엘이 조서의 내용대로 30일만 지나면 되니까 30일 동안 기도행위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30 일이 지난 후부터 다시 기도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상으로 성도들을 박해하는 박해자 들이 성도들에게 신앙타협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네가 한번만 예수를 부인하고 그 다음 계속 신앙생활해도 좋다라든지, 예수님의 초상화를 땅에 놓고 성도들로 하여금 그 초상화를 발로 밟고 지나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계속 하나님을 믿으라고도 유도합니다. 그러나 수 많은 성도 들이 그런 유혹을 뿌리치고 대신에 죽음을 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기도하기는 하되 숨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적대자들이 보란듯이 예루살렘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합니다. 이 본문은 경건 생활에 대한 몇 가지 모범을 제시해 줍 니다. 첫째로 거룩한 곳을 향하는 자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거하시고 역사하시는 곳으로 생각했던 예루살렘을 향해 무릎을 꿇었습니다. 둘째로 규칙적인 신앙 생활입니다. 다니엘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종이 상전 앞에 취하는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항복의 기도입니다.
무릎 꿇는 것은 항복의 자세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죄인 된 자기태도를 취했습니다. 무릎꿇는 것은 애원을 나타냅니다. 또한 경외의 기도를 나타냅니다. 충성의 기도였습니다. 넷째로 단정한 자세입니다. 경건생활은 내용이 중요하지 형식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다섯째 로 감사하는 기도 생활입니다. 그는 죽음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왕 앞에 나아가 서 다니엘이 그 금령을 어겼다고 말하지 않고 먼저 다리오 왕에게 가서 금령의 내용을 확인하고 왕이 어떤 경우라도 금령을 변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에 ‘사로 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의 법령을 어겼다고 고발을 합니다. 여기서 참소자들은 다니엘을 메대바사 과도 제국 의 최고 관료라고 하지 않고 식민지 출신의 포로 중 한 사람으로 비하하여 칭하고 있습니다. 다니 엘이 점령국에게 반항하는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식민지 출신이라는 사실을 왕에게 강조함으 로써 새로 제정된 법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기도한 다니엘의 행위를 왕에 대한 반역 행위 중 하나 로까지 생각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말미암아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내 려고 힘을 다하다가 해가 질 때에 이르렀더라.’이 법령에 제일 먼저 걸려던 사람이 다니엘인 것을 알고서 다리오 왕은 참소자들에게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날온 종일 다니 엘을 구원하기 위한 방도를 찾았으나 허탕이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경솔한 결정 때문에 자신이 가 장 신임하고 아끼던 다니엘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위기에 놓였음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왕은 관리들이 자신 이외의 존재에게 경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령을 세우자고 건의했을 때에 그것은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위해 유용한 것으로만 이해했을 뿐 그 뒤에 사랑하는 신하 다니엘을 죽음으로 내몰 음모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16이에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 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17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 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 려 함이었더라.’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서 과거 느부갓네살 왕의 정신병을 고쳐 주신 하나님, 사 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살려 주신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 나님께서 다니엘도 사자들에게서 살려 주실 것이라 말했습니다. 이제 다니엘을 사자굴에 처넣고 돌을 굴러 아구를 막고 왕의 어인과 고위관리들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돌을 옮 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뜻밖에 사람들에게 떠밀려 사랑하는 신하 다니엘을 사자굴에 처 넣고 다리오 왕은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기악을 그치고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넷째로 다니엘의 구원(19-24)
‘9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20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 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21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 수무강 하옵소서.’ 왕은 근심으로 인해 밤 한숨 자지 않고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신하를 보내 다니엘의 생사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직접 사자굴에 찾아가 소리 질러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 님이 너를 구원하였느냐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혹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구원하실지도 모른다는 가늘한 희망을 가지고 사자굴 앞에 왔었습니다.
이 때에 뜻밖에도 사자굴 속에서 생생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려 나왔습니다. 다니엘은 죽기는 커녕 살아서 평안하게 왕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불안과 초조 속에서 잠 한 숨 자지 못한 다리오왕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 사자굴 속에서도 평안히 지냈던 다니엘의 모습 을 통해 진정한 평안의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평안은 오직 참된 평안의 근원 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그 하나님과의 동행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2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 지 못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에게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여기서 다니엘은 두 가지 사실을 왕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 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이 그와 같이 하나님의 권 능에 의해 구원함을 입은 것은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하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말 속에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왕이 직접 보신 것과 같이 자기 백성을 능히 구원하시는 능력의 하 나님이시라는 것과 자신은 다리오 왕에 대해 처음부터 반역이나 악한 계획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두 가지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은 그의 여호와 신앙과 왕께 대한 충성이 필연적으로 상충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고 그를 모함하려 했었으나 다니엘은 여기서 오히려 자신의 여호와 신앙을 고의적으로 억압하 지 않는 한 신앙과 왕께 대한 충성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한 채로 사자굴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 시사 사자들의 입을 봉했습니다. 대신에 다니엘을 참소했던 자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 속에 던져 졌을 때에 땅에 닫기도 전에 뼈까지도 부숴뜨렸습니다.
‘26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 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 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 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28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 였더라.’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체험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그랬지만 다리오왕 역시 사자굴에서 살려내신 다니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살 아 계시며,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실 것이며 그의 권세는 무궁하시 며 구원도 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BC 605년에 포로 소년으로 바벨론에 끌려 왔다가 바벨론제국이 멸망하고 연이어 메대-바사 과도제국과 바사제국이 등장 하는 역사 속에서 몇몇 위협의 고비를 맞기도 했지만 실로 포로라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왕궁에서 유대인들의 고토 귀환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었습니다.loveofjesus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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