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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다니엘서 1-3장 배경 및 다니엘의 꿈 해석/풀무불 사건

by 은총가득 2021. 2. 21.

다니엘서는 바벨론을 중심으로 전개 됩니다. 그곳은 다니 엘 선지자가 포로생활을 하던 곳으로 영감 속에서 이상 곧 계시를 받은 곳입니다. 바벨론은 세상 을 말합니다. 마귀가 주인이요, 신이요 죄와 사망의 권세를 휘두르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다니엘은 선조들의 타락과 죄로 인해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온 인류를 말하며 성도들을 의 미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바벨론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바벨론


먼저 역사적 바벨론입니다. 성경에 최초로 나타나는 바벨론은 홍수 후 노아의 후손들이 함의 손자 중 니므롯이 건설했습니다(창10:10, 11, 11:2). 바벨은 시날 평원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니므롯 의 주동 하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므로 바벨탑 건축 시도가 실패하고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최초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였던 장소입니다. 홍수 이전까지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 나, 홍수 후 바벨탑 사건으로부터 인간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죄로 빠지 게 되었습니다. 이 바벨론은 지정학적으로 고대 인류문명의 발상지입니다. 동쪽은 티그리스강이 있고, 서쪽은 아라비아 사막이요 남쪽은 페르샤 바다요, 북쪽은 앗수르입니다.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있으며, 이 지역은 고대 제국의 교통 요지였습니다.


정치적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을 비롯한 바벨론 제국의 왕들과 앗수르 제국, 페르샤 제왕들은 물론 알렉산더 대왕이 머물던 곳입니다. 바벨론은 세계사에서 나타난 권력의 중심지로 그 도시의 규모 와 문화, 도시의 발달 양태는 역사상에 나타난 제국들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종교적 바벨론은 사실상 종교적 의미로 더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자리 잡은 역대의 제왕들은 언제나 위대한 우상숭배자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모든 세계의 우상의 온 상이요 중심지였습니다. 인류에게 있어 최초의 우상숭배가 여기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원수로 불리어지고 있으며, 큰 음녀 바벨론이라고 하 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강한 세속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심판의 대상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계시 록에서는 아마겟돈전쟁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관계된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서는 이렇게 역사적 바벨론, 정치적 바벨론, 종교적 바벨론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둘째,  다니엘이 다니엘서를 집필한 신학적 동기와 배경


다니엘이 가장 마지막으로 받은 묵시가 힛데겔 강가의 묵시인데(단10-12장), 이것이 주어진 시 기가 BC 536으로 명시된 것으로 볼 때에 다니엘서의 기록 시기는 BC 536년에서 그의 사망 연 대인 BC53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다니엘서는 정확히 말하자면 BC 586-BC 539년 사이의 포 로시대 및 BC 538년에 이르러 소위 포로귀환이 갓 허락된 시대 곧 포로귀환(BC 538-400)의 초 기라는 실로 격변하던 과도기적 역사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던 초기에 이스라엘은 절대 초월자요 유일하신 참 신으로 믿어오던 여호와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이 무너지고 왕과 제사장들을 위시한 귀족이 죽음을 당하거나 이방인들의 노예가 되었고, 숱한 백성들도 바벨론 제국의 식민정책에 따라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 근경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큰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 곳곳에 흩어진 선민 이스라엘은 특별한 개인적 경우를 제외한다면 바벨론-메대-파사 과도제국 그리고 파사제국 등으로 이어가면서 제국의 체제와 지배자들은 변했으나 특별한 위험 없이 그런대로 살아 갈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때로는 대제국을 일정 수준 안에서 무리 없이 유지하려는 각 제국의 식민 정책에 따라 보호내지 우대까지 받으며 이방 문화에 급속히 동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선민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 하여 마침내 포로귀환이 허락되었을 때에도 이것이 그 옛날 하나님이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회복 성취라는 감격은 극히 일부 사람에게만 국한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저 우 연한 정치적 환경 변화로 받아들이는 형편이었습니다.


한편 근동의 모든 민족들은 그 스스로 그리고 우주에는 저절로 존재하고 있는 많은 신들이 있어서 각 지역과 민족에 따라 신들이 각각 다를 수 밖에 없고 어떠한 신들을 얼마나 잘 섬기는가에 따라 각 민족이나 민족의 운명이 좌우된다는 다신교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미묘한 격 변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두 가지의 극단적 오류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더 이상 당신의 선민으로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 절대 유일신이지만 선민 이스라엘이 끝없이 패역한 결과 마침내 저주를 받아 이스라엘은 하나 님의 선민의 지위를 영원히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북국 이스라엘의 멸망과 남국의 멸망은 일개 민족국가의 멸망을 넘어 하나님과 그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관계의 철 폐이며 아울러 다윗 언약 즉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의 왕권을 영원히 보존하시겠다는 약속(삼 7: 11-16)을 파기하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두 왕국의 멸망은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있어서 더할 수 없이 절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또 한편 다른 오류는 여호와 하나님 자체가 절대 초월자로서 유일신이신 것이 아니라 다만 여러 신들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지금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방 민족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더욱 열등한 한 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오류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포로시대의 걸출한 신앙영웅인 다니엘은 여호와 절대 신앙의 지조를 사수하려는 와중에서 끝없이 극한 시련을 당해야 했으나 언제나 궁극적으로는 모든 시련이 하나 님의 역동적 개입으로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와 영광의 전환점으로 반전됨으로 해서 평생에 걸쳐 포로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영육간에 위대한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니 엘에게 초월적 지존자요 창조주로서 전 역사에 대해 주권을 홀로이 가지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작 정하신 바 선민의 종말론적 구원과 승리를 위하여 진행되어간 구속사의 전개 과정이라는 웅대한 주제를 대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해서 다양한 측면과 관점에서 다중적으로 보여 주는 놀 라운 묵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중심한 사건과 묵시들은 모두 다 앞서 말한 양대 오류의 가능성을 극복할 수 있 게 해 주었습니다. 즉 선민 이스라엘이 그 국권을 상실하고 또 끝없이 포로나 속국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거나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이방신들보다 무능하셔서가 아님을 확인케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만 끝없이 패역하던 자 신들을 향한 일시적 징계일 뿐이며 하나님은 곧 자신들을 회복하사 선민을 중심으로 완전한 종말 론적 평화와 승리가 오는 그 날까지 자신들은 물론 지금 당장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대 제국들 의 역사까지 주관 섭리해 주실 것이라는 원대하고도 성숙한 역사 인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한편 이제 다니엘 말년인 BC 538년에 이르러 바사 제국 초대 황제 고레스가 이스라엘 포로의 귀 환 허가 조서를 공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이스라엘 출신의 많은 포로들이 고토로 돌아가 다 시금 옛 땅의 주도 세력이 되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아직 완전한 독립국가 체제를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성령의 영감으로 포로시대의 연장선에 있는 이런 미묘한 상황에 처한 선민 이스라엘의 후예들에게 과거 자신이 평생에 걸쳐 체험한 역동 적 사건들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간접으로 주신 대 묵시들을 후 시대에 기록 전수하고자 본 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즉 선민의 후예들이 그 어떤 상황 하에서도 역사의 겉 모습만을 보고 일희일비를 거듭할 것이 아 니라 역사의 이면에 있는 실체 곧 절대 초월자로서 전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 그리고 선민의 종말론적 승리와 구원을 위해 일직선으로 진행되는 역사의 목적과 그 기본 전 개의 틀과 그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선민 지위의 불변성을 확신하고 여호와 안에서 선민의 축복 과 평안을 온전히 누리게 해 주시고자 본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포로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된 에 스겔서와 다니엘서를 비교해 볼 때, 에스겔은 제사장이요 다니엘은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은 평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사역을 했으나, 다니엘은 궁중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사역했습니다. 에 스겔서는 주로 성전 중심으로한 선민 자신들의 종교적 회복을 보여 주고, 다니엘서는 이방 대 제 국들에 대한 선민의 정치적 회복과 승리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전 12장으로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전반부 제1-6장까지는 상호 연이어 일어나는 이방 대 제국의 황실에서 다니엘이 여호와 절대 신앙 지조를 사수하려는 와중에 서 겪어야 했던 시련과 그 시련이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 개입과 강력한 구원 행동으로 결국에는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와 영광을 얻는 도약의 기회로 반전되던 파란만장한 대사건들을 보여 줍니 다. 그러한 대 사건들의 와중에서 다니엘이 여호와의 계시와 명철에 의지하여 자신이 섬기던 왕들 의 꿈이나 이상을 통해 받은 묵시들의 해석자로 등장하게 됨으로써 다니엘의 입장에서 보자면 간 접적으로 받았던 묵시들을 중심으로 전개 됩니다.

 

그리고 후반부 제 7-12장은 다니엘이 직접 받은 4대 묵시들을 각 묵시가 주어진 연대순으로 제 시됩니다.


셋째, 다니엘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성장 배경(단 1:1-7)


다니엘은 계시의 은총을 입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고 큰 계시의 환상을 받아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을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예 언은 메시야와 그의 왕국에 대하여 열렬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과 함 께 4대 선지자의 위치에 오르고 있습니다. 최악의 시대에 최선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서가 우리에게 주는 네 개의 중요한 메시지는 첫째로 하나님은 살아 계신 주권자이시다. 둘째는 성도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는다. 셋째는 세상 나라는 성도구원을 위한 연단의 도구요 성 도를 징치하는 기구이다. 넷째는 세상 나라는 종말이 있고 메시야 왕국은 영원하다 입니다. 다니 엘 서는 성도들에게 성도의 궁극적 승리입니다. 예수님과 그의 교회는 결국 승리합니다. 또한 다 니엘서는 우리들에게 신앙과 행위가 일치한다는 진리를 보여 줍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유대왕국이 망하는 종말 의 비운 때에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동료들과 함께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갈 때 그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소년’이라 했는데 히브리어 엘라딤(םיְלָדִי)은 15세에서 20세에 이르는 청년을 말합니다.유대왕족의 핏줄을 타고난 왕가의 자손이 아니면 귀족출신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레미야, 에스겔 등과 함께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던 시기에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포로귀환 때에 백성들을 이끌고 왔던 제사장 여호수아와 스룹바벨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세살때부터(BC 605) 고레스(BC 530)까지 오랫동 안 사역하면서 세상 제국 멸망과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살았던 기 간은 느부갓네살 1년부터 바벨론 5대왕을 거치고 바사 제국 고레스 3년까지 이릅니다. 이 기간 은 유대가 포로된 첫해부터 포로 귀한 후 2년까지의 기간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이 BC 605년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유다 제 1 차 침입 당시 포로로 바벨 론에 끌려와 황실에 설치된 일종의 각 속국 출신 별 황실 종교자문위원 또는 비서관 등의 지위로 황실에 입문하기까지의 배경 및 다니엘의 전반적 활동 연대가 간략히 소개 됩니다. 이 때 역사 지 리적 배경을 객 관적으로 밝히는 부분과 함께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인격을 한 눈에 가름할 수 있는 일화로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우상제물로 바쳐졌던 산해진미를 거부하고 물과 채소만 을 먹었으며 또 그러한 이들 네 청년들이 영육간에 더욱 준수하고 강건하였던 사건이 소개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이방 대 제국들의 황실 한 가운데서 일사 각오의 신앙으로 여호와 절대 신 앙의 지조를 지키려는 와중에 겪어야 했던 극한 위기에서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 개입과 강력한 구원 행동으로 오히려 더욱 더 큰 승리로 귀결되어 일평생을 통해 세 제국을 거치면서 부 동의 정치적 지위와 명망을 누림으로써 여호와의 영광과 선민의 기상을 만방에 펼쳤던 다니엘이 었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은 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이었습니다. 그 때 유다왕은 여호 야김인데 여호야김은 위에 있은 지 3년째 되던 해 였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 범한 것은 세 번이나 계속되었는데 1차는 BC 605년, 2차는 BC 597, 3차는 BC 586년이었 습니다. 본문은 제 1차 침입 때이며 이때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왔었던 것입니다. 여호야김은 유다 제 18대 왕으로 25살에 즉위했습니다. 그는 선왕의 악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그 본명은 엘리야김이었습니다. 애굽왕 느고가 유다를 침략하여 고친 이름이 여호야김입니다. 그의 형제 여호아하스가 왕이 된지 3개월 만에 애굽왕 느고에 의해 폐위되어 애굽으로 잡혀가고 대신에 여호야김이 애굽에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애굽에 바칠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을 압박하고 악한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 선지자를 통해서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였건만 바벨론 대신에 애굽을 바라보다가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고 선왕 므낫세의 악을 답습할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침공해서 여호야김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 갈 때에 많은 왕족들과 귀족들과 백성 들을 끌고 갔습니다. 이 때에 다니엘과 세 청년도 끌려 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1차 침공한 이유는 그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왕 바로느고를 격파하고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후 그 여세를 몰아 아프리카 대륙과 근동 아시아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 유다왕국을 자신의 세력권 안으로 복속시키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의 아들이었습니다. 여호야긴은 아버지가 바벨론에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음 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지 않았고 바벨론 대신에 애굽을 섬기다가 다시 바벨론의 침을 당했습 니다. 세번째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했을 때는 여호야긴의 삼촌, 요시야의 아들인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1차, 2차, 3차에 걸쳐 침략할 때마다 왕들과 귀족, 백 성들을 사로잡아가고 왕궁과 성전의 보물들을 앗아가고 3차 때는 성전을 불태우고 예루살렘 성 도 불태워서 유다국을 패망시켰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 그리고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한결 같은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징치의 도구로 이방의 강국인 애굽과 바벨론으로 하여금 침략케 했습니다.


다니엘서 1:1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웠더니’했습니다. 예루살 렘은 시온산이 있는 성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한 축복의 성지입니다. 이러한 성지에 적 기독인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침략하여 그 성이 포위를 당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 도 래했습니다. 성지가 원수의 침략을 당하여 포위를 당한 것은 하나님이 진노하신 결과입니다. 그것은 선민들의 범죄의 결과입니다. 할례 없는 이방의 사나운 개들이 성지를 침략하고 공략하며 애워싸고 짓밟는 일은 참으로 수치스러운 불명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할 땐 언제나 이방인의 침략을 당했습니다. 죽음의 수치를 겪게 됩니다.


유다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다니엘 1:2에 ‘주께서 유다와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유다는 정치적으로 왕과 왕족과 귀족과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갔습니다. 여호야김 왕은 포로로 끌려갔고 이 때 다니엘을 위시한 왕족들 일부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끌려 갔습니다. 왕은 나라의 주권의 표식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입니다. 왕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정치적 수욕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구를 거의 빼앗아 갔습니다.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라고 했는 데 이 ‘얼마’는 히브리어 미크찻 (תמִקְצָ)은 본래 ‘끝’ 또는 ‘극단’을 의미하는 말로 끝에 서 끝까지 그 분깃을 가지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을 의미합니다. 이 성전 기구를 가져 다가 자기 신의 묘의 신의 보고에 넣었다고 했습니다. 이 신의 묘는 신을 섬기는 신 전을 말합니다. 바벨론의 최고 신은 므로닥, 혹은 마르둑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유다 성전의 성전기구들을 모야 므로닥 신전에 바친 것은 바벨론 신 므로닥이 전쟁에서 이 기게 해 주셔서 감사한다는 표시인 것입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과 왕과 왕족이 이방 정복자의 전리품으로 전략했습니다. 예루살 렘의 하나님의 성전 기명들이 이방인의 손아귀에 들어가 전리품이 되어 그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마음의 성전을 지키지 못할 때 저들이 보이는 예루살 렘 성전을 타락하고 부패한 종교의식과 외식으로 악용했을 때에 하나님은 그 성전과 성전기명 마저도 이방인들의 발굽 아래 짓밟히게 하고 빼앗기게 하고 더욱 이방 우상 신전의 창고 속으로 옮겨 버렸습니다. 다니엘 1:2에 ‘주께서 이 일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얼마’라고 했습니다.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 1차 침략 시에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어쨌던 유다는 종교적, 정치적 수치를 당했 습니다. 이제 유다는 종교적 자유가 침해를 당했습니다. 정치적 권력이 약탈당했습니 다. 백성의 주권이 상실당했습니다. 생존권의 억압을 당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선 민이 범죄한 결과입니다. 범죄한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는 힘이 없습니다. 범죄한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중단됩니다. 그 결과로 영적, 육신적, 경제적 힘이 없어집니다. 결국은 이방의 강자에게 침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다니엘과 세 청년에게 미친 시험 (다니엘 1:3-7)


포로가 된 히브리 소년들은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현 주소가 유다에서 바벨론으로 바뀌었고, 생활양식이 바뀌고, 종교적 행위에 압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입는 것, 살 아가는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포로가 당하는 수욕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시험인 것입 니다. 또한 이방학문이 시험이었습니다. 다니엘 1:3-4에,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 언을 가르치게 하였고’했습니다. 갈대아 학문과 언어는 바벨론 제국의 역사와 문화와 정치, 종교 를 가르쳐 바벨론화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결코 학문이나 언어 자체가 악하거나 죄가 될 수 없습니다. 애굽이나 바벨론 제국들은 이런 학문들을 미신과 결부시켜 다루기 때문입니다.


세상 학문 자체가 죄가 될 수 없으나 학문을 우상숭배나 미신의 도구나 불신앙의 도구로 악용할 때 그것이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연과학에 거짓과 미신인 진화론이 죄요 악인 것 입니다. 철학이나 과학이나 문학, 예술, 음악 등의 세상지식을 가지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 식을 도전하거나 의심하거나 불신앙 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들입니다. 세상 학문을 연구하는 핑계 로 성경을 읽지 않거나 예배에 등한 하거나 세상 지식을 숭상하는 지경에 이르면 그 학문들은 신 앙생활에 시험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 소년들은 이러한 미신적이요 우상숭배요, 반신 적인 바벨론 학문을 열심히 배운 것은 적을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포로된 이 소년들에게 이방 음식이 시험이었습니다. 다니엘 1: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 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했습니다. 왕의 진미는 그 당시 최고의 음식입니다. 없어서 못 먹을 음식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맛보기를 원하는 최고의 음식을 이 포로 소년들이 3년 동안이나 먹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궁에는 유다에서 포로로 잡혀 온 소년들만 있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바 벨론에 패망한 여러 나라의 왕족, 귀족 청소년들의 집단입니다. 이들이 왕의 진미를 먹게 되었으 니 얼마나 영광스럽고 기뻐했겠습니까?


그러나 히브리 청소년들에게는 이 왕의 음식이 시험거리였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진미 가운데는 레위기 11:44-47 중에 부정한 짐승이나 생물들을 먹지 못하게 함으로서 선민의 몸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바벨론 임금의 음식물은 언제나 므로닥 신전 앞에 먼저 제사를 드린 후에 먹는 것이었습니다. 우상제물은 선민들에게는 금하는 음식물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시험 거리는 창씨 개명의 시험이었습니다.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 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습니다. 다니엘의 뜻은 하나 님은 나의 재판장이시다 였으나 벨드사살은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소서란 의미입니다. 벨은 바벨론에서 가장 중요한 신의 명칭입니다. 하나냐의 뜻은 주의 은혜인데 사드락은 갈대아인이 숭배하는 태양의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미사엘은 강하신 하나님이란 뜻인데 메삭은 삭 여신에 속했다는 뜻입니다. 아사랴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다인데 아벳느고는 밝은 느보의 종 이라는 뜻입니다. 이러 창씨 개명은 인격적 굴욕이었습니다. 또한 민족 동화의 정치적 수단이 었습니다. 히브리식 이름을 바벨론식 이름으로 개정함은 히브리 민족의 말살을 뜻하는 것입니다.


종교적 의미로는 히브리 소년들의 이름의 뜻은 모두 유일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 러나 바벨론식 이름은 우상신과 관계된 이름들입니다. 이런 적 기독적 운동이 하나님의 사람들 에게는 시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다니엘의 세 친구이 이름을 바벨론식 이름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잘 못된 습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름을 우상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이 세 사람들이 통탄하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유년주일학교 에서부터 히브리식 이름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로 바로 가르쳐야 될 것입니다.


다섯째, 다니엘과 세 청년의 도전과 승리 (다니엘 1:8-14)


다니엘과 그 친구들 뿐만 아니라 점령국의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에게 왕의 진미가 주어진 것은 단 지 그들을 우대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을 속히 바벨론식 생활에 적응하고 바벨론 왕에게 절 대 복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청소년들에게는 자신들의 순수한 신앙적 인 동기에서 유대율법에 어긋나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이라 하여 왕의 진미를 거부한다는 것은 바벨론의 입장에서 볼 때에 일종의 반항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한 행위인 것입니다. 당 시에 지배국의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거부하는 행위는 곧 그 신에게 복종치 않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상에게 바쳐졌던 왕의 진미를 거부하고 물과 채소 만 먹기로 결심한 것은 목숨을 건 신앙적 용기가 아니고는 참으로 힘든 시험이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위기에 처할 때에 그가 무슨 결심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생사가 판가름 납니다. 특히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결심이 중요합니다. 그 결심이 신앙적인 결단일 때는 하나님의 권능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이들은 청소년들입니다. 인생의 출발기에 거룩 한 결심을 하면 그 만큼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조용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환관장 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환관장이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것은 매우 위험한 모험입니다. 다니엘에 게는 자신의 신앙의 결단이지만 이방인 환관장에게는 위험천만입니다. 만약 다나엘과 세 청소년 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것이 왕에게 알려지게 되는 날에는 환관장은 죽게 됩 니다. 그리고 만약 10일 후에 이 청소년들의 몰골이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 좋지 않게 된 사실을 왕이 알게 되어도 환관장에게 위험이 닥칩니다. 그렇지만 환관장이 다니엘의 결심대로 10일간 물과 채소를 먹도록 허락한 것이 하나님이 환관장에게 다니엘에게 은혜를 베풀게 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환관장과의 대화에서 환관장이 무조건 거절하지는 않고 도와줄 의사가 있다 는 것을 확인한 후에 도전장을 내 밀었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기간을 갖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는 절대자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이는 이런 목숨을 건 도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열 흘 후에 결과는 그들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들의 체질도 왕의 진미를 먹 은 다른 소년들 보다 더욱 좋게 되어 계속 그렇게 하도록 허락을 받게 됩니다.


이제 3년간의 바벨론 왕실에서의 교육과정을 마치고 함께 교육받은 다른 소년들과 함께 느부갓 네살 왕 앞에 시험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자기를 절대 신뢰한 이 히브리 소년들에게 당대의 모든 지식과 학문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셨으며 거기에 지혜와 총명을 더해 그들을 양육하셨습니다. 이들은 이방의 학문으로 지혜와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의 학문과 함께 유입되기 쉬운 각종 불경한 요소들인 우상숭배와 마술, 술객들의 가증한 행위 등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수천년 동안의 경험으로 집적한 예언 해석능력과 해몽 등 바벨론의 각종 학문과 지식을 능가하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왕은 모든 소년들을 일일이 면접시험을 보았을 때에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뛰어난 자질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뛰어난 풍모와 신체를 구비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탁월한 지식 과 지혜와 모든 학문과 재주를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이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왕실 종교자문 기관의 관리로 등용되었습니다. 이 기관은 종교자문기관이지만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권세를 가진 고관들인 것입니다. 다니엘 1:20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이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당시의 지식계급인 박수, 술객들과 비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정사에 관해서 이것 저것 물었을 때에 박수 술객들에 비해 열배나 나은 줄을 왕이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는 그 묵시의 내용적인 면에서 볼 때에 대 제국의 흥망사를 중심으로 종말론적 메시야의 나 라가 최종 도래하기 까지의 이 세상의 역사의 전개 과정을 다양한 측면에서 다중적으로 보여 주는 묵시록입니다. 다니엘서 2장은 다니엘서에 기록된 묵시 전체 중에서 첫번째일 뿐만 아니라 느부갓 네살의 꿈을 통해 주어진 두 큰 묵시 중에서 첫번째 묵시인 큰 신상에 대한 꿈에 대한 사건을 기록하 고 있습니다. 이 느부갓네살의 꿈 사건은 이제 바벨론 황실에 입문한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 제일의 황실 종교자문 위원으로서 포로 출신이라는 정치적 한계를 극복하고 황실의 최고위직의 자리에 오 르게 되는 동기가 제공된 사건인 동시에, 대제국의 왕인 느부갓네살과 그 친위 세력들에게는 비록 당장은 그들이 인간 세상의 권력을 쥐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을지라도 역사 전체를 궁극적으로 주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사실을 재 각성시켜 주는 대 사건인 것입니다.

첫째, 꿈이란 무엇인가?


먼저 꿈 사건이므로 꿈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벨그송은 ‘꿈이란 잠자는 상태에서 일어 나는 모종의 정신적 활동을 보여 주는 의미 있고, 일시적인 표현이다. 꿈은 감각과 기억의 직접 연결 이며 우리가 보고, 말하고, 원하고, 행한 것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또 어릴 때부터 잠재의식 속 에 축적되고 보존된 기억의 영상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꿈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 은 ‘꿈이란 어떤 형태로든지 마음 속에 형성된 생각의 재현인 것입니다. 꿈이란 되살아난 지난 날의 개념이나 인상의 일부이며 그것들이 아무렇게나 연결되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동양문화에서는 꿈을 중요시했습니다. 특히 동방인인 유대인들은 꿈을 중요시했습니다. 고대 제국에서는 꿈을 중요시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페르샤, 로마의 제왕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제국들의 궁중에는 꿈 해몽자들이 명예를 누렸습니다. 어쨌던 꿈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인간역사의 운명과 관계되기도 하는 경우들이 많았 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꿈은 일반적 경우의 꿈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적 꿈입니다.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고 잠자는 중에 생기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전도서 5:2의 공동번역에, ‘2걱정이 많으면 꿈자 리가 사나워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짓된 꿈이 있다고 했 습니다(신13:1,2 렘23:32,). 시편 73:19에서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의 허황 된 꿈이라고 말했습니 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으로써 꿈이 있습니다. 민수기 12:6에서는 ‘나 여호와가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했으며 꿈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욥 33:14-18). 하나님이 꿈에 아비멜렉에게 현몽해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돌려주라고 지시 하시 는데 꿈에서 하나님과 그 사람이 대화하기도 합니다(창20:3-7). 또한 꿈에 라반에게 현몽하셔서 야곱을 해하지 말고 고향으로 돌려 보내라고 지시하기도 하셨습니다(창31:24), 꿈에 야곱에게 사닥 다리 위에서 계시하기도 하시고(창28:12). 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현몽하셔서 야곱의 미례의 수 많은 양떼들을 보여 주셨습니다(창31:11). 요셉이 꾼 곡식단과 해달별들에 대한 꿈, 술 맡은 관원장, 떡 맡은 관원장이 꾼 꿈들, 애굽의 장래에 있을 풍년과 흉년에 대한 바로 왕의 꿈, 미디안 병사가 꾼 기드온이 이긴다는 꿈(삿7:13-15), 느부갓네살의 바벨론제국의 장래에 대한 꿈(단2:1-45).


신약성경에는 꿈에 대해서 마태복음 1:20-23의 마리아의 예수 수태를 요셉에게 일러줄 때에, 동방 박사들에게 헤롯에게 가지 말라고 지시하실 때에, 요셉에게 예수를 데리고 어서 애굽으로 피난 가라 고 지시하실 때에, 요셉에게 유대로 돌아가라고 하실 때에, 빌라도의 아내의 꿈에 예수님은 의인이 라는 꿈을 주신 일 등입니다.


둘째, 느부갓네살의 즉위 2년의 문제


다니엘서 1장을 읽고 2장을 읽으면서 항상 걸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BC 605년에 느 부갓네살의 예루살렘 제 1차 침략 때에 포로로 잡혀 왔었고, 다니엘서 1:3에서는 이 때에 느부갓네 살은 이미 왕으로 호칭되고 있었으므로 그의 즉위 연대도 BC 605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니 엘 1:5에서는 다니엘과 다른 속국의 포로 소년들이 바벨론 황실에서 받은 교육기간을 만 3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기를 느부갓네살 즉위 3년이라고 해야 하는데 2장에 서는 왕의 즉위 2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2장에 기록된 느부갓네살의 큰 신상 꿈 사건은 다니엘 과 그의 세 친구가 이미 교육과정을 완수하고 황실종교 자문 기관의 관리로서 다른 바벨론 술사들과 함께 황실에서 일하고 있던 때에 있었던 일이므로 이 사건은 적어도 BC 602년 이후에 일어 난 것으 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BC605-3=BC 602).


그리고 그 해는 즉위년 다음 해를 치세 1년으로 계산하는 바벨론식 즉위 연대 계산 방식에 따를 때 에 앞에서 이미 언급한 느부갓네살 왕이 BC605년에 즉위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꿈 사건의 때는 그 의 즉위 제 3년이 되어야 할 것인데 다니엘서2장에는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 지 2년이라고 했기 때문에 약 1년 간의 차이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느부갓네살이 바벨 론제국의 왕위를 계승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BC 612년에 수도 니느웨의 함락으로 멸망 직전에 있던 앗수르 제국의 잔류병을 돕기 위해 원정 온 애굽의 바로느고 군대와 맞서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에서 전투하여 승리한 때가 바로 BC 605 년 이었습니다. 바로느고가 갈그미스 전쟁을 하기 위해 북상하고 있을 때에 그 길을 막아서다가 유다왕 요시야가 죽게 됩니다.


바로느고는 갈그미스 전쟁에서 느부갓네살에게 참패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분풀이를 유다에 행하 게 되는데 유다백성들이 세운 요시야 왕의 큰 아들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 가고 다른 아들 여 호야김을 세워 엘리아김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이 일 이후로 유다왕국은 급속도로 망하게 되는 계기 가 됩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애굽 군대에게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근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아프리카 대륙과 근동 지역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 유다 왕국을 공격해서 정복하려 했는데 그 계획은 전 3차에 걸친 침략으로 성취하게 됩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 그리고 남 유다의 왕족들 과 귀족들이 BC 605년 제 1차 침입 때에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갔습니다.


한편 BC 605년에 갈그미스에서 애굽 군대를 격파하고 남왕국 유다를 정복할 때에 느부갓네살은 분 명 왕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 나보폴라살 왕의 군대 사령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혁혁한 전공으로 인해 그의 부친은 그를 자신의 왕위 계승자로 확정하고 그가 실질적인 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 습니다. 그 때부터 곧BC605년부터 느부갓네살은 아직 정식으로 왕위 즉위식을 갖지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바벨론의 왕으로 불리워졌습니다. 그래서 다니엘 1:3에서 언급한 왕은 바로 BC 605년 당시의 느부갓네살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BC 605년은 그의 정식 즉위년은 아니며 그의 통치 연수에도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르는 즉위식을 가진 것은 그가 시리아와 불레셋 지역의 정복을 마쳤을 즈음 그의 부친 나보폴라살의 갑작스런 죽음 으로 급히 바벨론으로 돌와왔던 BC604년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다니엘은 정식 왕의 즉위식을 거치지 않고 왕권만을 가졌던 BC605년이 아닌 명실상 부 하게 바벨론 제국의 왕으로서 즉위식을 가졌던 해인 BC 604년을 기점으로 계산하여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 및 다른 속국의 포로 소년들의 황실교육 기간을 다 마친 해인 BC 602년을 느부갓네살 제 2년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셋째, 느부갓네살의 꿈 내용과 해몽 요구


‘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록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에 선지라. 3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 민 하도다 하니’에서 여기 박수에 해당하는 ‘하르툼밈’은 신전에서 일하는 성직자들로서 주로 우상의 제단을 관리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에게 인간의 운명에 관한 지식이나 신을 숭배하는 자세 따 위를 가르쳤습니다. 술객과 점쟁이는 마술사를 지칭하며, 갈대아 술사는 갈대아인 출신의 성직자로 서 바벨론 박사들 중에 가장 높은 계급이었습니다. 갈대아 문명은 바벨론 제국의 지배 세력이었으며 이 갈대아인 가운데서도 술사들은 미래에 대해 예언한다 하여 특별히 신성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라 하여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박수, 술객, 점장이, 갈대아 술사 등이 고관으로 대접받았습니다.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불러 들인 목적은 자신이 꾼 꿈의 상세한 내용과 그 해석을 듣기 위해서 입니 다. 그런데 왕이 박사들에게 꿈의 내용까지 말하게 한 것은 정확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박사들이 자신의 꾼 꿈에 대하여 설명하고 해석할 때에 그 진위를 파악 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왕은 꿈의 내용을 흐릿하게 알고 있었으므로 박사들의 입으로 확실한 내용을 듣고자 원했으며, 동시에 해몽하겠다고 나서는 자가 있을 때에 그 꿈의 내용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가의 여부를 그의 해몽의 정확성을 재는 근거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박사들은 왕에게 꿈의 내용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이들은 왕의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왕 의 꿈 내용을 알기만 하면 거짓 해석이라도 꾸며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은 준엄합 니다. 만약 그 꿈의 내용을 알아내고 해몽하지 않으면 능지처참할 것이며 온 집안을 멸하고 거름 터 로 삼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꿈의 내용을 알려주고 해몽해 주면 큰 선물과 상과 영광을 얻을 것 이라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박사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요구하였을 때에 박사들은 속수무 책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영예의 기로에 서서 상식적인 요구만을 되풀이 할 뿐 근본적으로 아무 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답변은 단호하게,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거절한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왕이 박사들의 능력을 의 심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내린 명령을 번복하는 것은 왕으로서의 위엄과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박사들이 현재의 위험한 순간을 얼버무리고 적당히 넘 어가려 하거나, 아니면 왕의 관심을 다른 데로 끌만한 다른 대단한 일을 꾸미거나 또는 최후의 수단 으로 재산과 몸을 도피시킬 시간의 여유를 얻으려고 하는 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2:9, ‘9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 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하더라.’


이것이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박사들에게 단호하고 엄하게 행동을 취한 이유입니다. 박사들은 과거 에도 거짓 해몽으로 느부갓네살에게 아부하여 왔고, 그런 속에서 적당히 때워 넘기려는 무사안일 주 의적 태도를 취해왔었습니다. 지금도 느부갓네살의 마음이 변해 꿈의 내용을 이야기 해 줌으로써 자 신들이 적당한 해석을 꾸며 낼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거나, 그 일에 무관심해지기를 기다리며 최 후의 순간에는 느부갓네살에게서 도망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왕은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2:10-11, ‘갈대아인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한 사람 도 없으므로 어떤 크고 권력 있는 왕이라도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인들에게 물 은 자가 없었나이다. 11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이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왕이 꾼 꿈을 해석할 수 없다고 시인하면서 자신들의 무지와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왕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무리한 요구를 한 탓으로 돌립니다. 그들은 힘없고 어리석은 보통 사람들 앞에서는 특별하고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처럼 행세해 왔으면서도 정작 그러한 능력을 나타내 보여야 할 때에는 인간의 능력의 한 계를 내세우며 자신들을 합리화 하려 했습니다.
바벨론 신들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있는 육체에 속한 신들이었기에 박사들은 자신들이 왕의 꿈을 알 지 못하는데 대한 합당한 이유를 대기 위해 바벨론에도 없는 보다 위대한 능력 있는 신들을 끌어다 대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참으로 영이시며 전능하신 여호 와 하나님이 계심을 고백하고 있으며, 왕의 꿈을 알려줄 유일하신 신은 하나님 뿐임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지 중에 어떤 신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왕의 꿈을 드러낼 다니엘의 사역 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2:12-13에, ‘12왕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 라 명령하니라. 13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이와 같이 박사들의 장황한 변명에도 불구하고 왕은 그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격 노합니다. 왕은 더 이상 박사들을 신의 사제로 인정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자들로 여기고 그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니엘을 사용하셔서 오직 하나님 만이 계시를 발현하 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의 왕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준비를 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박사들은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24절을 보면 아직 전부 죽임을 당하지 않았음을 봅니다. 아 마도 사형집행은 왕을 알현할 정도로 왕의 가까이에 있던 갈대아 술사와 같은 고위 관료로부터 시작 되어 점차 하위 관료들에게까지 확산되어 가고 있던 참입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 더라고 했는데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그들이 왕실에서 교육을 받은 뒤 박사들의 계열에 속한 왕실 종교 자문기관의 하급 관리직에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위가 낮은 데다가 나이가 어린 하급 관리였기 때문에 왕 앞에 불려 가지 않았기에 즉각적인 사형 집행은 모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넷째, 다니엘의 용기와 지혜


다니엘 2:14-16에서, ‘14그 때에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바벨론 지혜자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 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15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에게 물어 이르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 하냐 하니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알리매 16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 왕의 근위대장 아리옥이 왕 앞에 불려온 갈대아 술사들을 죽이고 이제 그 외 박사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급히 나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때에 어리고 최하 급 관리였던 다니엘은 왕이 박사들을 다 죽인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왜 그런 명령이 떨어졌는지에 대 한 상세한 상황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는 아리옥 근위대장 앞에 섰습니다.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냐’란 말을 의역하면, ‘왕의 장관이시여 어찌하여 그러한 가혹한 선고가 내려 지게 되었습니까’란 질문인 것입니다.


이때는 모든 바벨론의 박사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잠적한 때입니다. 다니엘도 숨어야할 사람이 었습니다. 자신에게도 체포령이 내려진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옥 시위대장에게 나타나 살륙 명령이 내려진 진의를 물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용기와 지혜와 침착성을 볼 수 있습니다. 다 니엘은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물었고 아리옥은 그 질문에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고 합니다. 여 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어떠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정확 한 처방을 가능케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발하여지게 된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당면한 사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모든 일에 있어서 궁극적인 해결 의 열쇠는 하나님께 있었지만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능력의 지식과 주권이 행사될 수 있는 준비를 확실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평소에 자신의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덕을 쌓고 원한을 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것이 결정적인 위기에서 그를 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 것입니다. 만일 다니엘이 아리옥 근위대장에 게 덕을 쌓지 않았다면 서슬이 시퍼렇게 해서 박사들을 잡아 죽이려 다니던 시위대장관이 다니엘을 만나자 마자 다자고자로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는 왕의 명령을 받은 시위대 장 아리옥은 더 이상 박사들의 질문을 받고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박사들을 만나면 바로 죽이는 것이 시위대장의 임무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건대 시위대장 아리옥과 다니엘은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친밀한 친구관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다니엘은 황실에서 유명한 인물로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다른 박사들 보다 학식과 총명이 10배다 뛰어났다고 인정을 받은 존재였으니 황실 내의 모든 사람들이 다니엘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아리옥 장관과는 그냥 지나다니며 인사나 하는 정도가 아니고 친밀한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이미 왕 앞에 있었던 몇몇 박사들을 죽이고 이제 다른 모든 박사들을 죽이려고 나선 시위대장을 모든 박사들은 피하고 숨고 대면하지 않 았는데 다니엘은 아리옥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아리옥이 자세히 다니엘에게 왕의 급한 명령의 원인 이 무엇인가를 설명했다는 것을 볼 때에 아리옥과 다니엘 사이의 관계를 짐작 해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 앞에 서기 위해 교육받던 때에도 환관장에게서 예의 바른 소년으로 인정 받았으며 관직 에 임명되었어도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덕과 인품을 쌓은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화 를 면하고 오히려 차분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런 태도는 바울사도께서 말씀하신바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 평하라’는 교훈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2:16에서, ‘16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 드리 리이다 하니라.’에서 시위대장관 아리옥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일의 진상을 파악한 다니엘 은 이제 왕에게로 들어가 일정 기간을 주면 꿈의 내용과 그 해석을 보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였 습니다. 이때 다니엘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즉시 이미 그 일이 하나님이 진행하고 있는 일임을 직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지체하지 않고 왕에게로 들어가 그런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담대하고 명철하고 슬기로운 행동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일단 왕의 진노가 멈 추어지고 사형집행이 연기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니엘이 아직 사건 해결을 위한 꿈의 내용이나 해몽을 가지고 있기 전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께 기도도 드리지 않았 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는 왕에게 장담을 하고 난 뒤에야 기도에 들어갔 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믿음인 것입 니다. 목숨을 건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동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청년 다니엘은 부정한 음식을 거절하여 자신의 건강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표명하였던 소년 시절의 행적에 이 어 또 다시 생명과 직결된 느부갓네살의 꿈 해몽 사건과 정면으로 부딪침으로써 다시 한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가 세 친구들을 불러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다니엘 2:18-19에서, ‘‘18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 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다니엘은 세 친구들과 함께 기도하기를 자신들뿐만 아니라 다른 박사들의 목숨도 구해 주십사고 기 도했습니다. 한편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어렵고 두려운 문제 앞에서 전혀 동요하지 않고 합심 하여 기도한 것은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깊은 신앙적인 교제를 나누고 있었는지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개 인적인 야심이나 상대방을 질시함이 없는 네 청년의 순수한 신앙과 우정이 잘 나타납니다. 이들의 기도는 합심기도였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십니다. 그 하나님 은 전지전능하시며 긍휼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기도는 생명보존을 위한 기도입니다. 다니엘 자신과 함께 죽게 될 세 친구들과 그리고 다른 박사와 술객들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생사가 걸려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19절에서, ‘19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자마자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꿈 뿐 만 아니라 그 꿈이 상징하는 하나님의 섭리 전체를 밤에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는 잠자는 중에서가 아니라 의식이 또렷한 중에 보여 주셨습니 다.


다섯째,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감사와 찬양


그는 왕 앞에 가기도 전에 승리를 내다 보았습니다. 그는 느부갓네살이 못 보고, 못 느끼고, 못 깨달 은 역사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먼저 보고, 먼저 깨닫고 먼저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깨 닫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혜와 권능이 무궁하신 하나님께 감 사했습니다. 다니엘 2:20에, ‘20다니엘이 말하여 이르되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 할 것은 지혜와 능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여기 지혜는 하나님의 전지를 의미합니다. 능력은 전능 하신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했습니다. 21절에,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은 역사 세계를 주장하시 는 분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은 그 환상 속에서 장래의 세상 제국을 어떻게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신가를 깨달았습니다. 시간 속에 전개될 이 세상 온갖 제국들의 흥망성쇠 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세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21절,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에 서 다니엘은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밀한 환상 속에서 세상 제국의 왕들이 가진 주권이 어떻게 되어 져 가고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주권은 결코 느부갓네살 개인의 소유가 아님을 보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늘은 느부갓네살에게 내일은 또 다른 사람에게 주권을 주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모든 세 상 권세의 원천이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또한 지혜와 지식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 2:21에,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 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 이 체험은 벌써 다니엘 1장에서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체험 한 사실들입니다. 지혜는 신령한 이치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지식의 원인이 됩니다. 지혜는 지식의 뿌리가 됩니다. 지식은 지혜가 사람에게 나타나는 면입니다. 세상 제국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지혜 와 지식을 받고 가진 사람만이 그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 위대한 사실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 2: 22에서 ‘그는 깊 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사형이라는 왕 의 명령은 참으로 캄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살 수 있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암흑 중에 비추어 온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은밀히 나타내신 그 환상은 그에게 빛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소망이었습니다.


끝으로 언약의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다니엘 2:23에, ‘나의 조상들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이제 내 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 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하니라.’에서 나의 열조의 하나님은 바로 언약의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다니엘은 그와 세 친구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즉시 환상으로 느부갓네살의 꿈의 내용과 해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시위대장 아리옥을 만나러 갑니다.

 

 

첫째, 왕 앞에선 다니엘(24-30)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지만 그 내용은 어렴풋하여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 을 깨닫고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 박사들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의 내용과 해석을 하라고 명령하였으나 모든 박사들이 왕의 명령을 시행할 수 없었으므로 살륙당하고 있을 즈 음에 다니엘이 시위대 장관 아리옥을 통해서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말미를 주시 면 꿈의 내용과 해몽을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이 일을 위해 하나 님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환상을 통하여 그 꿈의 내용과 해몽을 받게 되었습니 다. 아리옥 근위대 장관에게 찾아 가서 왕에게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박사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비록 박사들이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해 왔지만 그들이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이 유 만으로 살륙 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해 창 피를 당하고 무능한 자들임이 드러난 것 만으로도 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박사들의 곤경과는 반대로 이제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고 그 영광이 더 높여질 것이므로 다니엘은 보다 넓은 안목으 로 집단 참형이라는 잔인한 행위를 멈출 것을 종용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요청은 인간의 생 명을 해치는 것을 악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하는 선한 행위였습니다.


이에 시위대 장관은 급히 왕 앞에 들어 갔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대 제국의 최고 관리 중의 한 사람인 시위대 장관이 단지 포로에 지나지 않는 유대 출신의 젊은 관리의 말을 듣고 이처럼 급히 서두른 사실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그는 왕이 내린 박사들을 살륙하는 명령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내끼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런 중에 다니엘의 말을 듣고 이제 살륙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 도감으로 성급히 서둘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시위대 장관 자신이 왕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인물을 왕 앞에 대령시킴으로써 왕의 신 임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서둘렀을지도 모릅니다. 왕에게 충성과 열심을 보임으로서 거기서 얻는 반대급부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시위대 장관이 다니엘은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 하에 이런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을 왕 앞에 데리고 가는 것은 생사가 달린 중대한 일입니다. 만약 왕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으면 다니엘은 물론, 박사들의 생명 뿐만 아 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다니엘을 데려 간 책임을 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 렇다면 아리옥은 어떤 근거에서 다니엘을 이렇게 신뢰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다니엘이 느부 갓네살도 인정한 바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보다 지혜와 학문과 총명이 열배나 더한다는 사실을 알았 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이상과 몽조를 깨닫는 능력이 있음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5절에, ‘25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아리옥이 좀 엉뚱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시위대 장관은 이미 두 차례나 왕을 알현 한 적이 있는(16절, 1:18-20) 다니엘을 전혀 알려 지지 않은 무명의 사람인 것처럼 왕에게 소개했 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가 다니엘이라는 유능한 꿈 해몽가를 발견하여 왕의 진노를 가라 앉힌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는 다니엘이 유다라는 식민지 출신이라는 것을 부연한 것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식 민지 포로 중에서 쓸만한 사람 하나를 발탁한 사림이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6절에서, ‘6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며칠 전에 와서 자신이 꿈을 해몽하겠다고 시간의 말미를 달라고 해서 허락은 했지만 그리고 다니엘이 지혜와 총명과 학문이 출충하고 이상과 몽조를 깨닫는 능력이 있는 줄은 알지만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이 말했듯이 이 꿈은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큰 신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일을 다니엘이 말하겠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다니엘이 왕께 대답합니다. 27-28절에, ‘27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28오직 은밀한 것 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 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했습니다. 여기에서 박사 들 자신들도 시인했지만 박사들,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고 오직 오직 은밀한 것을 알 수 있는 분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영광된 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려 주시기 위해 꿈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느부갓넬살이 꿈을 꾼 그 밤의 배경을 먼저 설명합니다. 꿈을 받은 그 날 밤에 왕 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다가 잠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뇌 속으로 그 꿈을 주셨다고 했습니 다. 이렇게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자신만 알 수 있는 그 밤의 일까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함으로 느 부갓네살로 하여금 확신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2:30에서 다니엘은 여기서 자신이 왕이 꾼 꿈의 내용이나 해몽을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한 것이며 자신의 지혜는 실질 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음을 밝힘으로써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지혜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에 바벨론의 박사들이 소유한 지식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0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 니엘의 겸손을 보게 됩니다. 남이 받지 못한 것을 받고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은 교만하 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 다니엘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위대하신 하나님의 실존을 보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나타내려 함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만 증거하게 됩니다.


둘째, 다니엘이 밝힌 큰 신상의 꿈 내용(31-35)


다니엘서에는 대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사 전개과정에 관한 묵시가 제2장, 7장, 8장, 9장, 10-12장까지에서 각각 하나씩 전부 다섯 개가 나옵니다. 그 중에 세계사 전개 과정 전체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본문의 큰 신상 묵시와 제 7장의 네 짐승에 관한 묵시입니다. 이 두 묵시의 차이점에 대해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 큰 신상의 묵시는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적인 나라로서 역사의 절대 주 권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필히 멸망에 이르게 되는 세상 나라의 동질성과 동일한 운명을 강조하 며, 다른 세 제국, 곧 바사, 헬라, 로마 제국보다 상대적으로 큰 신상의 금머리로 상징된 바벨론제국 의 영광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뜨인 돌,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세상 나라에 대한 대 심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네 짐승의 묵시는 네 제국의 각각의 잔인함과 포학성을 강조함으로써 세상 나라의 배후에는 사단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 짐승의 묵시에서는 넷째 짐승의 열뿔과 작은 뿔을 통해 로마 제국 이후부터 그리스도 재림 시까지의 세계사 전개와 적 그리스도의 등장 및 적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과 궁극적인 승리 등을 보여줌으로써 본 장의 큰 신상의 묵시의 내용을 보충하고 심화시킨 점이 돋 보입니다.


‘31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 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여기 ‘한 큰 신상’에 해당 하는 아람어 ‘첼렘’(צַלְמָא)은 창세기 1:26에서 우리의 형상(צַלְמֵנוּ)에서도 나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이 큰 신상이 사람의 형상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이 신상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나라들이 인본주의적임을 암시해 줍니다. 한편 34절에서 이 신상을 부술 뜨인 돌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는 데서 이런 개 념이 더욱 확실히 드러납니다. 한편 신상이 하나라는 표현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외적으로 보면 각기 다른 근원을 가지고 흥망을 거듭하는 것 같이 보이나 실제로는 모두 하나의 뿌리, 곧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본주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 신상이 크고 광 채가 특심하여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에서 신상이 크고 광채가 특심하고 모양이 두렵다는 것은 그 신상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나라들이 외형적으로는 매우 크고 화려하며 강력하게 보일 것임을 암 시합니다.


이 신상이 상징하는 나라들이 모두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고 막강한 세력을 펼칠 제국들 일 것임을 뜻합니다. 이 신상의 특징은 머리에서 다리로 가면 갈수록, 곧 역사가 흐르면 흐를수록 다음에 오는 나라들을 상징하는 신상의 부위의 재료가 앞선 나라들을 상징하는 신상 부위의 재료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아 뒤에 오는 나라들은 앞선 나라보다 국가적 통합의 정도에 있어서나 도덕적, 윤리적인 면에서 저열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국가의 국력이나 영토의 크기와 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역사가 흐를수록 나라들의 국력은 더 강하고 국토는 광대했지만 통일성이나 도덕성에 있어서는 선재한 과거 열방보다 뒤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 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그 때 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 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에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 부분을 쳐서 부순다고 했습니다. 이 돌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부터 왔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대 종말의 때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친히 심판하실 심판의 궁극 적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움직이지 못하는 신상은 거짓되고 유한하며 죽 어 있는 세상 나라의 속성을, 그리고 움직이는 돌은 운동력을 가졌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실 참되고 영원하며, 생명력이 있는 영원한 나라를 나타냅니다.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돌이 날아와 신상의 가장 약한 부분을 부숩니다. 신상의 밑부분은 세상 마지막 때를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바람에 날려 간 곳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모든 나라들의 종국이 영원하고 완전한 멸망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역사상 영속하는 나라 들은 없었습니다.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헬라도 로마도 다 쇠잔하여 멸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열방들도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신상을 친 돌은 태 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날아온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 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실 것 입니다.

셋째, 다니엘의 큰 신상 꿈 해석(36-45)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 나와 이제까지 왕이 꿈을 꾼 장소와 동기를 말하고 그 꿈의 내용을 재생시킨 후에 이제 해석하겠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36그 꿈이 이러한즉 내(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37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 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넘기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여기 개역 개정판에서는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했지만 KJV, NIV, RSV 등 영어번역본에서는 ‘내가’가 아니라 ‘우리’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함께 왕 앞에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환상을 보았고 말하는 자는 다니엘임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이 하나님의 응답은 네 친구가 합심해서 기도하여 얻은 것이요 비록 환상은 다니엘이 받았지만 응답은 모두의 합심 기도의 결과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갈 때에 혼자들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으로부터 상을 받을 때에 세 친구들도 함께 받아야 하겠기에 같이 들어간 것 입니다. 49절에서 세 친구들도 각 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것입니다.


36'This was the dream, and now we will interpret it to the king.’(NIV)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왕에게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셨고 왕은 왕 중 의 왕이요 사람들과 들 짐승과 공중의 새와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왕의 손에 넘겼다고 했 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누리고 있는 대 제국의 황제로서의 권세 영광이 자신의 능력에 의 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분명 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때 쯤은 느부갓네살도 다니엘이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했던 꿈의 내용을 알아 맞추는 것을 보고 듣고 목격하면서 다니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증하였 기에 다니엘이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당시 세계의 최대의 제국 을 이룩하고 자신이 곧 절대자인 양 군림하던 느부갓네살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 대상으로 인간과 함께 들 짐승과 공중의 새들까지 언급된 것은 그의 권력이 천 하를 호령할 정도로 실로 대단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왕은 곧 금 머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금머리는 바벨론 제국을 상징합니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이 곧 바벨론제국이라는 말로서 바벨론 제 국이 느부갓네살에게 속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표현입니다. 바벨론제국과 느부갓네살을 이처럼 동일시하는 이유는 느부갓네살이 신 바벨론 제국을 건립했으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면서 세계적인 대 제국으로 발돋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어떤 왕보다도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느부 갓네살왕 다음의 왕은 에윌므로닥(BC 562-560), 네르갈 사레셀(BC 560-556), 라바시 말둑(BC 556), 나보니두스(BC 556-539), 벨사살(BC550-539)등이 바벨론을 통치하였지만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을 대표합니다.


왕의 후에 바벨론을 잇는 두번째 나라는 신상부분의 가슴과 팔 부분으로서 이 나라는 메대, 바사의 과도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메데 바사제국이 느부갓네살의 바벨론보다 못한 나라라고 말합니 다. 정복한 영토의 크기나 민족의 수 그리고 누린 영화 등의 외형적인 면에서는 이 나라는 바벨론 제국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이후에 역사에 나타난 메대 바사, 헬라, 로마제국들은 외 형적으로는 바벨론에 못하지 않았지만 내적 통일성을 이루지 못했고 도덕적으로도 저열했습니다. 후대로 갈수록 내적인 면에서 열등했습니다. 세번째의 나라는 신상의 배와 넓적다리부분으로서 그 것의 특징은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이 나라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할 것을 나 타냅니다. 그 외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실제로 놋 같은 나라인 알렉산더의 헬라제국은 10년이 채 못 된 짧은 기간 동안에 광대한 영토를 정복, 소유하였을 뿐 역사적으로 별 달리 주목할 만한 업적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 나라는 신상의 종아리부분입니다. 강하기가 철 같아서 뭇 나라를 부서뜨릴 것이라 했습니 다. 이 나라의 첫번째 특징은 강한 힘과 파괴적인 성향입니다. ‘40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 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 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했습니다. ‘부수고 찧는다’는 것은 군대를 통해 정복한다는 것을 의미하 며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하였던 로마제국의 속성을 표현해 줍니다.


다섯번째 나라는 발과 발가락입니다. 그런데 32절과 33절에서 신상은 머리, 가슴과 두 팔 부분, 배 와 넓적 다리와 종아리와 발 부분의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 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 이었나이다.’에서 신상은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0-42에서는 넷째 나라 이후의 나라에 대해서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마치 넷째 나라가 계속 연결되어 가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네번째 나라인 로마제국이 AD 476년에 망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1500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므로 다섯번째 나라는 로마제국과 관계가 있는 어떤 멸망 직전의 나 라들임을 보여 줍니다.


‘40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41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 인 것을 보셨은 즉 그 나라가 쇠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그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 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43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 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런 사실을 볼 때에 ‘이 발과 발가락 부분은 신상에서 다섯째 부분으로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다섯째 부분인 발과 발가락은 철과 진흙으로 섞여 있습니다. 다섯째 나라는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 는 부서질만한 것처럼 분열한 나라들 중 일부는 강하고 일부는 약하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서로 각기 다른 핏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화합하지 아니하고 내적으로도 분열된 상태에 있게 된 다는 것입니다. 제각기 다른 민족들은 동일 국가 내에 있으면서도 합쳐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오늘날의 국가들을 의미합니다. 아프리카, 중남미, 북유럽, 러시아, 미국과 중국, 캐나다 같 은 나라는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들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는 강하고 다른 나라들은 약한 것들이 쇠와 진흙의 관계를 설명하며 또한 철과 진흙이 다르듯이 다른 민족들 로 국가가 구성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철과 진흙의 발과 발가락 시대는 역사의 마지막 때를 보여 주는 때인데 이런 때에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왜 철과 진흙 시대가 말세냐 하면34절 35절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 돌이 날아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상의 진흙과 발부분은 역사의 마지막 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뜨인 돌이 날아와 발부분을 침으로 신상의 쇠 와 진흙과 은과 금이 다 부서진다는 것은 세상 역사가 끝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44절에,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세상 끝날에 하늘의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한 나라를 세우시는데 이것은 첫째로 천년왕국을 말하며 백보좌 심판이 있은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세계로 들어갈 것을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보았고 이것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설명한 것입니다.


넷째, 느부갓네살의 다니엘 등용(46-49)


느부갓네살왕은 인간의 힘과 지혜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왕 자신의 꿈의 내용과 그 정확한 해 석을 제시한 다니엘에 대해 느부갓네살 왕은 경탄해 마지 아니하며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다니엘에게 예물과 향품과 그를 왕실 종교 자문 기관에 속한 모든 술사 중에 우두머리로 삼고 또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세 친구들에게는 도의 총독으 로 삼았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총리가 된 것은 세계사를 선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 선민이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줍니다. ‘46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46절에 느부갓네살왕이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합니다. ‘엎으려 절했다’는 말은 아람어 ‘싸가드’(כַדְנֶ)는 신에게 드리는 경배를 나타낼 때에 사용하는 용어입니다(사44:15,17, 19,46:6, 단3:5). 향품 ‘니호힌’역시 신의 제단에 바치는 제물의 일종인데 향품과 예물을 주었다는 것은 신들에 대한 일종의 경배의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나타나는 느부갓네살의 행동을 종합해 볼 때에 그는 다니엘을 신들의 하나 혹은 신의 사자 중 하나로 보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47절에서, ‘47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에서 ‘너희 하나님’은 다니엘을 비롯 세 친구들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에 왕 앞에 다니엘 뿐만 아니라 세 친구들도 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36절에서 다니엘 이 왕 앞에서 꿈과 해몽을 하겠다고 섰을 때에 ‘우리가’라고 한 사실과 47절의 느부갓네살왕의 ‘너 희 하나님’이라는 말을 종합해 볼 때에 네 사람이 왕 앞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49절에서 다니엘의 요구대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각 도의 총독으로 세웠다고 했는데 신과 같은 존재인 다니엘의 요구를 무엇이든 안 들어 주겠습니까? 다니엘과 함께 서 있는 다니엘 친구들에게도 높은 벼슬을 내렸습니다.


48절에 다니엘에게는 귀한 선물을 주고 바벨론의 모든 도를 관장하는 총리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여 애굽의 총리에 임명된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당 시대에 최고의 지혜자요 선생들로 여겨진 모든 박사들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의 다니엘의 나이는 15-20세 사이에 포로로 잡혀 왔고, 그 후 3년 이기에 아마도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 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의 꿈 해몽으로 죽게 되었던 모든 박사들이 살아나게 되었으니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경사이었겠습니끼? 그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겠다고 했으니 가족까지 멸한다는 말이아니 겠습니까? 이들은 갈대아 출신 최고 엘리트들이요 경력과 가문과 연세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위 에 새파랗게 젊은 포로출신이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어도 탓할 사람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다니엘 때문에 죽다가 살아 났으니까요. 할렐루야 아멘.

 

 

첫째, 왕 앞에선 다니엘(24-30)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지만 그 내용은 어렴풋하여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 을 깨닫고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 박사들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의 내용과 해석을 하라고 명령하였으나 모든 박사들이 왕의 명령을 시행할 수 없었으므로 살륙당하고 있을 즈 음에 다니엘이 시위대 장관 아리옥을 통해서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의 말미를 주시 면 꿈의 내용과 해몽을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친구들과 함께 이 일을 위해 하나 님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환상을 통하여 그 꿈의 내용과 해몽을 받게 되었습니 다. 아리옥 근위대 장관에게 찾아 가서 왕에게로 자신을 인도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박사들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비록 박사들이 거짓으로 사람들을 미혹해 왔지만 그들이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이 유 만으로 살륙 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해 창 피를 당하고 무능한 자들임이 드러난 것 만으로도 족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박사들의 곤경과는 반대로 이제 하나님의 권능이 드러나고 그 영광이 더 높여질 것이므로 다니엘은 보다 넓은 안목으 로 집단 참형이라는 잔인한 행위를 멈출 것을 종용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요청은 인간의 생 명을 해치는 것을 악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하는 선한 행위였습니다.


이에 시위대 장관은 급히 왕 앞에 들어 갔다고 했습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대 제국의 최고 관리 중의 한 사람인 시위대 장관이 단지 포로에 지나지 않는 유대 출신의 젊은 관리의 말을 듣고 이처럼 급히 서두른 사실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도 그는 왕이 내린 박사들을 살륙하는 명령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내끼지 않았던 일입니다. 그런 중에 다니엘의 말을 듣고 이제 살륙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 도감으로 성급히 서둘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시위대 장관 자신이 왕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인물을 왕 앞에 대령시킴으로써 왕의 신 임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서둘렀을지도 모릅니다. 왕에게 충성과 열심을 보임으로서 거기서 얻는 반대급부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시위대 장관이 다니엘은 능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 하에 이런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을 왕 앞에 데리고 가는 것은 생사가 달린 중대한 일입니다. 만약 왕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으면 다니엘은 물론, 박사들의 생명 뿐만 아 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다니엘을 데려 간 책임을 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 렇다면 아리옥은 어떤 근거에서 다니엘을 이렇게 신뢰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다니엘이 느부 갓네살도 인정한 바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보다 지혜와 학문과 총명이 열배나 더한다는 사실을 알았 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은 이상과 몽조를 깨닫는 능력이 있음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5절에, ‘25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찾아내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알려 드리리이다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아리옥이 좀 엉뚱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시위대 장관은 이미 두 차례나 왕을 알현 한 적이 있는(16절, 1:18-20) 다니엘을 전혀 알려 지지 않은 무명의 사람인 것처럼 왕에게 소개했 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그가 다니엘이라는 유능한 꿈 해몽가를 발견하여 왕의 진노를 가라 앉힌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는 다니엘이 유다라는 식민지 출신이라는 것을 부연한 것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은 식 민지 포로 중에서 쓸만한 사람 하나를 발탁한 사림이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6절에서, ‘6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이 며칠 전에 와서 자신이 꿈을 해몽하겠다고 시간의 말미를 달라고 해서 허락은 했지만 그리고 다니엘이 지혜와 총명과 학문이 출충하고 이상과 몽조를 깨닫는 능력이 있는 줄은 알지만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이 말했듯이 이 꿈은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큰 신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일을 다니엘이 말하겠다고 하니 믿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에 다니엘이 왕께 대답합니다. 27-28절에, ‘27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28오직 은밀한 것 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 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했습니다. 여기에서 박사 들 자신들도 시인했지만 박사들,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들은 절대로 알 수 없고 오직 오직 은밀한 것을 알 수 있는 분은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영광된 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려 주시기 위해 꿈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느부갓넬살이 꿈을 꾼 그 밤의 배경을 먼저 설명합니다. 꿈을 받은 그 날 밤에 왕 이 침상에서 장래 일을 생각하다가 잠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뇌 속으로 그 꿈을 주셨다고 했습니 다. 이렇게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자신만 알 수 있는 그 밤의 일까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함으로 느 부갓네살로 하여금 확신을 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2:30에서 다니엘은 여기서 자신이 왕이 꾼 꿈의 내용이나 해몽을 알게 된 것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한 것이며 자신의 지혜는 실질 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음을 밝힘으로써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지혜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에 바벨론의 박사들이 소유한 지식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0내게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심은 내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낫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해석을 왕에게 알려서 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던 것을 왕에게 알려 주려 하심이니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 니엘의 겸손을 보게 됩니다. 남이 받지 못한 것을 받고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들은 교만하 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 다니엘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신앙의 사람은 언제나 위대하신 하나님의 실존을 보기 때문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나타내려 함이 아니라 위대하신 하나님만 증거하게 됩니다.


둘째, 다니엘이 밝힌 큰 신상의 꿈 내용(31-35)


다니엘서에는 대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사 전개과정에 관한 묵시가 제2장, 7장, 8장, 9장, 10-12장까지에서 각각 하나씩 전부 다섯 개가 나옵니다. 그 중에 세계사 전개 과정 전체에 관한 가장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본문의 큰 신상 묵시와 제 7장의 네 짐승에 관한 묵시입니다. 이 두 묵시의 차이점에 대해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 큰 신상의 묵시는 세상의 모든 나라가 다 하나님을 떠난 인본주의적인 나라로서 역사의 절대 주 권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필히 멸망에 이르게 되는 세상 나라의 동질성과 동일한 운명을 강조하 며, 다른 세 제국, 곧 바사, 헬라, 로마 제국보다 상대적으로 큰 신상의 금머리로 상징된 바벨론제국 의 영광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뜨인 돌,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한 세상 나라에 대한 대 심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네 짐승의 묵시는 네 제국의 각각의 잔인함과 포학성을 강조함으로써 세상 나라의 배후에는 사단의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 짐승의 묵시에서는 넷째 짐승의 열뿔과 작은 뿔을 통해 로마 제국 이후부터 그리스도 재림 시까지의 세계사 전개와 적 그리스도의 등장 및 적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과 궁극적인 승리 등을 보여줌으로써 본 장의 큰 신상의 묵시의 내용을 보충하고 심화시킨 점이 돋 보입니다.


‘31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 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여기 ‘한 큰 신상’에 해당 하는 아람어 ‘첼렘’(צַלְמָא)은 창세기 1:26에서 우리의 형상(צַלְמֵנוּ)에서도 나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이 큰 신상이 사람의 형상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이 신상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나라들이 인본주의적임을 암시해 줍니다. 한편 34절에서 이 신상을 부술 뜨인 돌이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는 데서 이런 개 념이 더욱 확실히 드러납니다. 한편 신상이 하나라는 표현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외적으로 보면 각기 다른 근원을 가지고 흥망을 거듭하는 것 같이 보이나 실제로는 모두 하나의 뿌리, 곧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본주의의 뿌리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 신상이 크고 광 채가 특심하여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에서 신상이 크고 광채가 특심하고 모양이 두렵다는 것은 그 신상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나라들이 외형적으로는 매우 크고 화려하며 강력하게 보일 것임을 암 시합니다.


이 신상이 상징하는 나라들이 모두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고 막강한 세력을 펼칠 제국들 일 것임을 뜻합니다. 이 신상의 특징은 머리에서 다리로 가면 갈수록, 곧 역사가 흐르면 흐를수록 다음에 오는 나라들을 상징하는 신상의 부위의 재료가 앞선 나라들을 상징하는 신상 부위의 재료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아 뒤에 오는 나라들은 앞선 나라보다 국가적 통합의 정도에 있어서나 도덕적, 윤리적인 면에서 저열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국가의 국력이나 영토의 크기와 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역사가 흐를수록 나라들의 국력은 더 강하고 국토는 광대했지만 통일성이나 도덕성에 있어서는 선재한 과거 열방보다 뒤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 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그 때 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 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에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 부분을 쳐서 부순다고 했습니다. 이 돌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부터 왔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대 종말의 때에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친히 심판하실 심판의 궁극 적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움직이지 못하는 신상은 거짓되고 유한하며 죽 어 있는 세상 나라의 속성을, 그리고 움직이는 돌은 운동력을 가졌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실 참되고 영원하며, 생명력이 있는 영원한 나라를 나타냅니다. 이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돌이 날아와 신상의 가장 약한 부분을 부숩니다. 신상의 밑부분은 세상 마지막 때를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바람에 날려 간 곳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모든 나라들의 종국이 영원하고 완전한 멸망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역사상 영속하는 나라 들은 없었습니다.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헬라도 로마도 다 쇠잔하여 멸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열방들도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반면에 신상을 친 돌은 태 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고 합니다. 날아온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 시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실 것 입니다.

셋째, 다니엘의 큰 신상 꿈 해석(36-45)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 나와 이제까지 왕이 꿈을 꾼 장소와 동기를 말하고 그 꿈의 내용을 재생시킨 후에 이제 해석하겠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36그 꿈이 이러한즉 내(우리)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37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 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넘기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여기 개역 개정판에서는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아뢰리이다’ 했지만 KJV, NIV, RSV 등 영어번역본에서는 ‘내가’가 아니라 ‘우리’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함께 왕 앞에 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환상을 보았고 말하는 자는 다니엘임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이 하나님의 응답은 네 친구가 합심해서 기도하여 얻은 것이요 비록 환상은 다니엘이 받았지만 응답은 모두의 합심 기도의 결과입니다. 다니엘이 왕에게 갈 때에 혼자들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으로부터 상을 받을 때에 세 친구들도 함께 받아야 하겠기에 같이 들어간 것 입니다. 49절에서 세 친구들도 각 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것입니다.


36'This was the dream, and now we will interpret it to the king.’(NIV)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왕에게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주셨고 왕은 왕 중 의 왕이요 사람들과 들 짐승과 공중의 새와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왕의 손에 넘겼다고 했 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누리고 있는 대 제국의 황제로서의 권세 영광이 자신의 능력에 의 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임을 분명 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때 쯤은 느부갓네살도 다니엘이 자신도 다 기억하지 못했던 꿈의 내용을 알아 맞추는 것을 보고 듣고 목격하면서 다니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증하였 기에 다니엘이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당시 세계의 최대의 제국 을 이룩하고 자신이 곧 절대자인 양 군림하던 느부갓네살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 대상으로 인간과 함께 들 짐승과 공중의 새들까지 언급된 것은 그의 권력이 천 하를 호령할 정도로 실로 대단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왕은 곧 금 머리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금머리는 바벨론 제국을 상징합니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이 곧 바벨론제국이라는 말로서 바벨론 제 국이 느부갓네살에게 속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 표현입니다. 바벨론제국과 느부갓네살을 이처럼 동일시하는 이유는 느부갓네살이 신 바벨론 제국을 건립했으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면서 세계적인 대 제국으로 발돋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어떤 왕보다도 우수했기 때문입니다. 느부 갓네살왕 다음의 왕은 에윌므로닥(BC 562-560), 네르갈 사레셀(BC 560-556), 라바시 말둑(BC 556), 나보니두스(BC 556-539), 벨사살(BC550-539)등이 바벨론을 통치하였지만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제국을 대표합니다.


왕의 후에 바벨론을 잇는 두번째 나라는 신상부분의 가슴과 팔 부분으로서 이 나라는 메대, 바사의 과도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메데 바사제국이 느부갓네살의 바벨론보다 못한 나라라고 말합니 다. 정복한 영토의 크기나 민족의 수 그리고 누린 영화 등의 외형적인 면에서는 이 나라는 바벨론 제국보다 결코 못하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이후에 역사에 나타난 메대 바사, 헬라, 로마제국들은 외 형적으로는 바벨론에 못하지 않았지만 내적 통일성을 이루지 못했고 도덕적으로도 저열했습니다. 후대로 갈수록 내적인 면에서 열등했습니다. 세번째의 나라는 신상의 배와 넓적다리부분으로서 그 것의 특징은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이 나라가 광대한 영토를 지배할 것을 나 타냅니다. 그 외 별다른 언급이 없습니다. 실제로 놋 같은 나라인 알렉산더의 헬라제국은 10년이 채 못 된 짧은 기간 동안에 광대한 영토를 정복, 소유하였을 뿐 역사적으로 별 달리 주목할 만한 업적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 나라는 신상의 종아리부분입니다. 강하기가 철 같아서 뭇 나라를 부서뜨릴 것이라 했습니 다. 이 나라의 첫번째 특징은 강한 힘과 파괴적인 성향입니다. ‘40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 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 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했습니다. ‘부수고 찧는다’는 것은 군대를 통해 정복한다는 것을 의미하 며 잔인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하였던 로마제국의 속성을 표현해 줍니다.


다섯번째 나라는 발과 발가락입니다. 그런데 32절과 33절에서 신상은 머리, 가슴과 두 팔 부분, 배 와 넓적 다리와 종아리와 발 부분의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 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 이었나이다.’에서 신상은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0-42에서는 넷째 나라 이후의 나라에 대해서는 뚜렷한 구별이 없이 마치 넷째 나라가 계속 연결되어 가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네번째 나라인 로마제국이 AD 476년에 망했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거의 1500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므로 다섯번째 나라는 로마제국과 관계가 있는 어떤 멸망 직전의 나 라들임을 보여 줍니다.


‘40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41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 인 것을 보셨은 즉 그 나라가 쇠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그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 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43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 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런 사실을 볼 때에 ‘이 발과 발가락 부분은 신상에서 다섯째 부분으로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다섯째 부분인 발과 발가락은 철과 진흙으로 섞여 있습니다. 다섯째 나라는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 는 부서질만한 것처럼 분열한 나라들 중 일부는 강하고 일부는 약하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서로 각기 다른 핏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 화합하지 아니하고 내적으로도 분열된 상태에 있게 된 다는 것입니다. 제각기 다른 민족들은 동일 국가 내에 있으면서도 합쳐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현상은 오늘날의 국가들을 의미합니다. 아프리카, 중남미, 북유럽, 러시아, 미국과 중국, 캐나다 같 은 나라는 서로 다른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들입니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는 강하고 다른 나라들은 약한 것들이 쇠와 진흙의 관계를 설명하며 또한 철과 진흙이 다르듯이 다른 민족들 로 국가가 구성된 것을 말합니다.


이런 철과 진흙의 발과 발가락 시대는 역사의 마지막 때를 보여 주는 때인데 이런 때에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신다고 했습니다. 왜 철과 진흙 시대가 말세냐 하면34절 35절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 돌이 날아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신상의 진흙과 발부분은 역사의 마지막 때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뜨인 돌이 날아와 발부분을 침으로 신상의 쇠 와 진흙과 은과 금이 다 부서진다는 것은 세상 역사가 끝난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35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44절에,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세상 끝날에 하늘의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한 나라를 세우시는데 이것은 첫째로 천년왕국을 말하며 백보좌 심판이 있은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영원세계로 들어갈 것을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보았고 이것을 느부갓네살 왕에게 설명한 것입니다.


넷째, 느부갓네살의 다니엘 등용(46-49)


느부갓네살왕은 인간의 힘과 지혜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왕 자신의 꿈의 내용과 그 정확한 해 석을 제시한 다니엘에 대해 느부갓네살 왕은 경탄해 마지 아니하며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고 다니엘에게 예물과 향품과 그를 왕실 종교 자문 기관에 속한 모든 술사 중에 우두머리로 삼고 또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세 친구들에게는 도의 총독으 로 삼았습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는 총리가 된 것은 세계사를 선민 중심으로 전개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 선민이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 줍니다. ‘46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46절에 느부갓네살왕이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고 합니다. ‘엎으려 절했다’는 말은 아람어 ‘싸가드’(כַדְנֶ)는 신에게 드리는 경배를 나타낼 때에 사용하는 용어입니다(사44:15,17, 19,46:6, 단3:5). 향품 ‘니호힌’역시 신의 제단에 바치는 제물의 일종인데 향품과 예물을 주었다는 것은 신들에 대한 일종의 경배의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나타나는 느부갓네살의 행동을 종합해 볼 때에 그는 다니엘을 신들의 하나 혹은 신의 사자 중 하나로 보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47절에서, ‘47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에서 ‘너희 하나님’은 다니엘을 비롯 세 친구들을 향해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볼 때 에 왕 앞에 다니엘 뿐만 아니라 세 친구들도 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36절에서 다니엘 이 왕 앞에서 꿈과 해몽을 하겠다고 섰을 때에 ‘우리가’라고 한 사실과 47절의 느부갓네살왕의 ‘너 희 하나님’이라는 말을 종합해 볼 때에 네 사람이 왕 앞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49절에서 다니엘의 요구대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각 도의 총독으로 세웠다고 했는데 신과 같은 존재인 다니엘의 요구를 무엇이든 안 들어 주겠습니까? 다니엘과 함께 서 있는 다니엘 친구들에게도 높은 벼슬을 내렸습니다.


48절에 다니엘에게는 귀한 선물을 주고 바벨론의 모든 도를 관장하는 총리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바로왕의 꿈을 해몽하여 애굽의 총리에 임명된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당 시대에 최고의 지혜자요 선생들로 여겨진 모든 박사들의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이 때의 다니엘의 나이는 15-20세 사이에 포로로 잡혀 왔고, 그 후 3년 이기에 아마도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 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의 꿈 해몽으로 죽게 되었던 모든 박사들이 살아나게 되었으니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경사이었겠습니끼? 그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겠다고 했으니 가족까지 멸한다는 말이아니 겠습니까? 이들은 갈대아 출신 최고 엘리트들이요 경력과 가문과 연세가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 위 에 새파랗게 젊은 포로출신이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어도 탓할 사람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다니엘 때문에 죽다가 살아 났으니까요. 할렐루야 아멘.

 

 

때는 바야흐로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킴으로서 남왕국 유다를 완전히 정복한 BC 586 년인 그의 통치 18년째인 해로 추측합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서 2장에서의 한 큰 신상에 관한 꿈을 꾼지 16년이 지난 해입니다. 다니엘 3장의 다니엘 세 친구들의 풀무불 처형사건과 다니엘 6장인 BC538년의 메데-바사 과도기 제국 시대의 다리오왕 통치 시대에 다니엘이 한 달 동안 오 직 황제만 숭배할 것을 명한 다리오왕의 조서를 어기고 여호와 신앙을 사수하다가 사자굴에 던져 지는 시련을 겪어야 했으나 이것 역시 여호와의 궁극적 임재와 역동적 구원행동으로 영광과 승리 로 반전된 사건을 보도 합니다. 이 두 사건은 상황과 인물은 다소 다르지만 포로시대 선민 이스라 엘 중 여호와 신앙의 맥을 이어가던 소위 남은 자들의 고난과 역동적 승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근본 적으로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포로시대 선민 이스라엘을 제외한 세계 모든 민족들은 모두가 다 각 지역과 민족마다 많은 신들이 있었고, 그러한 신들의 우열에 따라 민족과 지역의 운명이 결정되고, 또 각 개인은 그러한 신들을 어떻게 잘 섬기는 가하는 여하에 따라 복을 받거나 적게 받는다는 소위 범신론적 다신교와 그러한 신들에 대한 기복신앙이 팽배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시대에 대 제국의 일개 속 국에 불과한 선민 이스라엘의 후예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대 제국의 황실이 섬기며 또한 제국 내의 전 신민들이 섬길 것이 명령된 바로 그 우상 숭배를 거부하였으며 또한 황제가 처형하고자 하였던 선민의 후예를 여호와께서 놀라운 초자연적 임재와 이적으로 구원하여 심지어 대제국의 황제와 그들의 추종자들 모두도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높일 수 밖에 없었던 실로 불가사의하고도 장렬한 사건을 본 장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여호와 신앙을 절대 사수하여 이처럼 위대한 신앙 승리의 주역이 될 수 있었 던 것은 여호와 신앙을 가진 선민 이스라엘은 대 제국의 포로가 된 반면 다신론 사상에 젖은 이방 인들은 대 제국을 이루고 번영을 구가하는 당장의 현실을 피상적으로만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 다. 자신들 민족의 현재의 수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무력하시거나 절대 유일신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 여호와를 자신들 선민이 끊임없이 배역하였기 때문에 역사의 주인이신 여호와께 서 이방 대 제국을 도구로 사용하여 일시적 징계를 가하시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역사의 맥을 간파 하고 당장의 화려한 이방 우상 문화에 함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통해서 구속사적 역사 인식의 중요성과 그런 인식을 가진 자만이 영원한 구원과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건립과 숭배 명령(1-7)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신상을 건립한 때는 예루살렘정복 직후인 BC 586 년 으로 추정합니다. 이 신상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 그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 이 큽니다. 금 신상을 건립한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 큰 신상 꿈 사건 이 있은 후 느부갓네살이 한낱 포로에 지나지 않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중용하고 유대인들 이 믿는 하나님 여호와만을 존중함으로써 본래 다신교신앙을 인정하고 있는 바벨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을 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로는 남 유다를 완전히 정복한 후 그들이 믿는 신 여호와를 그 백성들 조차 온전히 지 키지 못한 나약한 신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남 유다를 정복한 자신이야 말로 여호와 하나님보다 더 강한 자임을 과시하고 자신을 절대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느부갓네살 이 꾼 꿈 속에서 본 한 큰 신상의 머리가 정금으로 되어 있었던 사실과 그 금 머리가 느부갓네살 자 신이라고 다니엘이 지적했던 사실을 반영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은 금신상의 머리 뿐만 아니라 신상 전체에 금을 입힌 것은 다니엘이 예언한 바 그 영광스러운 바벨론 왕국도 결국 멸망할 수 밖 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치 아니하고 그 나라가 영원히 번창할 것이라고 믿는 그의 교만과 과대망상 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느부갓네살왕이 금신상을 제작했다고 해서 그가 나니엘을 통해 보았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 과 위엄을 잊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의 첫번째 꿈은 느부갓네살을 극심 하게 괴롭혔던 것이며 또한 평소 신임하던 바벨론의 박사들을 살해하던 참사를 빚었고, 그리고 다 니엘을 통하여 그 묵시가 여호와께로부터 왔음을 깨닫고 여호와를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 이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높이가 30m, 너비가 3m의 거대한 신상을 만들면서 그 신상에 금을 입혀 금 신상으로 보이도록 한 것을 볼 때에, 그리고 다니엘서 4 장의 두 번째 꿈 해몽을 다니엘에게 의뢰했다는 사실을 보아서도 그가 첫 번째 꿈 속에서 한 큰 신 상의 머리가 정금이요 그것이 자신이라는 다니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여 호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지 않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2-3절에서, ‘2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3 이 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했습니다. 여기 신상 낙성식은 금 신상과 금 신상을 안치할 신당을 완성한 뒤에 그 사실을 기념하는 헌당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통치 하에 있는 모든 지도급 인사들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금 신상의 낙성식을 거행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금 신상에 대한 느부갓네살 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은 대단한 위력을 발 휘하였습니다. 그 만큼 그의 권력은 대단한데 이것은 다니엘의 예언에서도 보여 줍니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그 대단한 권력이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한 것임을 잊고 그 권력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인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데 사용하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권세가 세계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본주의적 통치자들은 필경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자리에 서게 되는 바 이를 필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4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 게 명하시나니 5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이 구절에서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 어로 말하는 자들’이라 했는데 이 백성은 바벨론제국에 속한 모든 백성들, 곧 바벨론 거민과 여러 식민지 거주자들을 포함한 백성 전체를 말합니다. 바벨론제국에 정복된 각 나라들을 포함합니다. 이들 백성들 속에 포로로 잡혀 온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각종 악기 소리가 들릴 때에 일제히 금 신상에게 절해야 합니다.


‘6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누구든지 절하지 않는 자는 즉시, 어떤 재판 과정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가차 없이 맹렬히 타는 풀 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했습니다. 극단적인 우상숭배 강요입니다.


금 신상 숭배 거부한 다니엘 세 친구들(8-15)


‘8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9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 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 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여기 갈대아 사람들이 다니엘 세 친구들을 참소하고 있 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구 바벨론 제국(BC 2300)시대로부터 바벨론의 지배 세력을 형성하였던 갈대아 후손들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신 바벨론 제국 시대에도 계속해서 지배 계층으로 남아 있었 습니다.


여기 갈대아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참소했다는 사실을 특별히 보도하는 이유는 다니엘 자신은 물론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 중에서도 이방의 우상숭배에 물들지 않고 여호와 유일 신앙의 지조를 사수한 자들이 많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실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 를 망하게 내버려 두신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라 했습 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유대인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우상 신들을 섬기지 않을 것을 굳게 결심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이었습니다. 실로 많은 신들을 숭 배하던 이방인들의 입장에서는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을 하나 더 숭배한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 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일신 하나님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 위하여 많은 유대인들은 왕의 풀무불 위협까지도 감내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런 금신상 헌당일에 그 신상에게 절해야 하고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즉시로 처형될 것에 대해 백성들은 알고 있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을 걸어야 할 도전이었습니다. 이제 더디어 그날이 왔고 금 신상 앞에 서야 했으며 신상에게 절해야 하느냐 아니면 불에 타서 죽어야 하느냐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죽기로 결심하고 그 신상 헌당식에 참석했습니다. 악기 소리가 들리고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절할 때에 이들은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상에 절하지 않은 많은 신실한 유대인들의 대표격으로 일차적으로 먼저 참소당했습니다.


이때에 왜 다니엘은 참소당하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가정 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당시 다니엘이 바벨론 내에 부재했을 가능성입니다. 즉 다니엘이 공 무로 인해 외국에 나가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다니엘의 지위가 너무 높았고 그에 대한 왕의 신 임이 너무 두터웠음으로 갈대인들이 직접 참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 다. 그래서 갈대아인들은 일차적으로 먼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참소하여 처벌을 받게 함 으로써 다니엘도 자연스럽게 처벌 대상이 되도록 유도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셋째 금신상의 낙성 식 당시 다니엘이 병에 걸려 있어 거론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동할 수 없는 병중에 있었다면 왕의 낙성식 초청도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 어떤 문 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들은 당시 상황을 근거로 하여 합당하다고 생 각되는 견해를 제시해 본 것일 뿐 다니엘이 갈대아인들의 참소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정확한 이 유는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16년 전 느부갓네살의 꿈 사건으로 인해 갈대아인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에 다니엘의 꿈 해몽으로 인해 죽다가 살아난 자들이 이제 그 은인들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금 신 상에게 경배하라는 것은 종교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황실 종교자문기관에서 이 신상 봉헌식을 주동하고 있었을 것이요 종교문제라면 갈대아인 술사들이 주동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황실 종 교자문기관의 최고 우두머리들이 갈대아인 술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갈대아인들이 신 상에게 절하지 않을 유대인들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번 금 신상 경배 행사에 다니엘 세 친구들을 잡을 계획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11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 지 아니하셨나이까 12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 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 하며 왕 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이 구절에서 갈대안인들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왕 에 의해 고위관직을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세 친구가 왕의 은혜를 저버렸다는 것과 그와 같이 고위직에 있는 자들이 왕명을 어긴 것을 용서한다면 백성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왕의 권위에 흠집을 남기에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점을 강력하게 암시함으로써 세 친구를 반드시 처형하도록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기 위함입니다.


다신론 신관은 모든 바벨론 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인식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바벨론 사람들에게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하고 인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왕은 하나 님의 전능하신 역사를 다니엘 2:47, 3:28,29, 4:1-3, 37절에서 여러 차례 경험하였고 그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 도 이 같은 다신론적 신관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대아인들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참소할 때에 문제의 본질을 떠나 사실이 아닌 것을 먼저 참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을 참소자들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본질을 왜곡시켜 세 사람을 불충한 신하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왕 이 이들을 신임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왕이 가장 신임하는 다니엘의 친구라는 이유로 처벌을 보류 할 수도 있을 까 봐 왕에 대한 불순분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참소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이 이렇게 여호와 신앙 때문에 애매하게 핍박 받는 일들은 사단이 공중 권세 잡고 있는 현 세상에 서는 항상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경계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하겠습 니다.


‘13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14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 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갈대아인의 참소는 성 공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금신상에게 절하게 함으로써 자기의 절대 권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노발 대발 했습 니다. 그런데 본래 왕의 명령은 신상에게 절하지 않은 자는 즉시로 풀무불에 쳐 넣는다고 했는데 왜 갈대아인들은 다니엘 세 친구들을 즉시로 처형하지 않고 왕에게 참소했을 까요? 여기에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보통 백성이 아니고 나라의 높은 관직에 있었기 때문에 재판 없이 처형되기에는 그 지위가 너무 높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 세 사람은 모든 정사를 처리함에 있 어 남다른 능력과 신실성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정평을 얻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느 부갓네살 왕이 이들이 왕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하더라도 한 번 정도 확인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왕이 이 세 사람에게 매우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세 사람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예외적으로 왕이 세 사람에게 우상에게 경배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재차 주고 있다는 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정치적 지혜를 지닌 지배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 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이 구절에서 신상 낙성식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든지 아니면 이 세 사람을 위해 특별히 기회를 줄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 세 사람에 대한 왕의 깊은 신임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다른 한편 그들의 여호와 신앙의 정절을 빼앗으려는 그의 집요함 을 나타냅니다. 또한 절대 권력자인 자신의 명령에 불복한 자로 인해 실추된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왕이 내리는 벌인 풀무불에 던져 넣는 형벌에서 너희들을 살려 낼 신은 어떤 신도 없다고 한 말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염두에 두 고 어떤 신도 풀무불에서 건져낼 수 없다고 했을 것입니다. 이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반 격입니다.


 세 친구들의 반격과 풀무불에서의 구원(16-30)


‘16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먼저 이들은 단합된 마음으로 도전을 합니다. [우리가]라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신상 헌당식에 참석하기 전에 이미 함께 결의했습니다. 신앙운동의 공동 전선을 펼쳤습니다. 그리 고 이들은 대답할 가치의 여지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도전 입니다. 심사숙고할 여지나 기도할 시간이나, 다시 재고할 것이 전혀 못된다고 즉시로 반응했습니 다. 참으로 무서운 대답입니다. 전 바벨론 제국이 왕 앞에서 엎드려 벌벌 떨고 있을 때입니다. 이들 은 죽더라도 우상에 게 절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0:3,6에, [너희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 찌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 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란 말씀을 죽기로 지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관료들이나 백성 들에게 있어 금 신상은 그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 외에 하나 더 추가하 는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 세 사람들에게는 다른 경배의 대상 을 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신상 경배가 무가치 하고 대답할 가치 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에서 세 친구들은 왕의 말을 정면으로 반대합니다. 왕의 말을 정면으로 반대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제주의 국가에서 왕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라는 일반 적인 인식조차 부정하였습니다. 즉 왕의 권력 자체가 세계의 역사의 절대권자이신 여호와로 말미 암은 것인바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왕의 권력 자체를 폐하실 수도 있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사람은 일반적인 정사에 있어서는 왕의 부하로서의 직임을 충실히 감당하였으 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경우 느부갓네살 왕의 부하로서의 직임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우선하는 분명한 판단기준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준에 따라 행동의 방향을 정하고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들은 단지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 죽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왕의 생명에 대한 위협까지도 자신들의 여호와 신앙 지조를 꺾을 수 없다는 강한 선언임과 동시에 여호와 신앙 지조를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고 지나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의 이름은 히브 리식 이름인 다니엘이라고 부르면서 왜 친구들의 이름에 대해서 히브리식 이름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 라고 부르지 않고, 이방신의 내용을 담은 바벨론식 이름들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라고 부르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이 사건을 통해서 비록 이들이 포로로 잡혀와 인권을 유린당하고 민족성과 유일신 신앙을 강탈하기 위해 주어진 이름을 사용할지라도 결코 여호 와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19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군대 중 용사 몇 사람 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 라. 21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터번과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 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그래도 느부갓네살 왕은 이 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전혀 그들의 신앙지조를 굽히지 않 음으로 인해 분이 가득하여 얼굴빛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왕은 이들을 회유하려고 편안한 얼굴을 보여 주다가 분노의 얼굴로 바꾸고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하여 이들을 불에 처 넣으라고 명 령하였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그대로 불에 처넣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들이 입고 있었던 옷들을 상세히 언급한 것은 이런 옷들이 하나도 불에 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 것 입니다. 이 불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이 세 사람을 불 속에 떠밀었던 용사들이 불에 타 죽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성경이 이 사실을 언급한 것은 이렇게 강한 불길 안에서도 이 세 사람은 불에 타 죽 지 않았음을 통해서 왕과 주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 해서 입니다.


‘24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 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 25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 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 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 었더라.’ 풀무불은 금속을 녹이거나 벽돌을 굽기 위해 사용되던 용광로인데 밖에서 볼 수 있는 구 조로 된 것입니다. 풀무 주변에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관람하기 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불속에 들어 갔는데도 죽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서 불 속을 주시하고 있는데 그들을 결박한 포승줄만 타고 불 속에서 다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세 사람이 아니고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른 분은 느부갓네살이 표현하기를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했습니다. 역시 이 왕이 신들의 아들이라 한 것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신론적 신관에서 말한 것 입니다. 이 분은 바로 성육신 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얼마나 놀랐으면 맹렬 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불 속에서 나오라고 합니까?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간 왕은 타 죽지 않고 이 세 사람을 불속에 넣으려던 용사들은 죽 었습니다. 이제 이 세 사람이 불 속에서 나오자 모든 방백들이 이 세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먼저 몸을 조사해 보고 옷을 조사해 보고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는데 아무 불탄 냄 새도 맡지 못했다 고 했습니다.


‘28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 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29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 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 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30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비록 느부갓네살 왕이 이 세사람을 불가운데서 살려 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였다고 해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니고 역시 많은 신들 중에 가장 크고 능력있 는 신으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일로 인해 왕은 이 세사람에게 더 높은 벼슬을 줍니다. 그리고 다 니엘과 세 친구들을 참소하고 죽이려던 사람들은 아마도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왕의 말 중에 사드락고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 것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니엘 6장에 다니엘을 참소하여 사자굴 속에 처넣게 만든 신 하들을 다리오왕이 처단한 사례에서 볼 수있습니다.(단 6:24>. http://loveofjesus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