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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힛데겔 강가의 네번째 묵시(다니엘 10:1-12:4)

by 은총가득 2021. 2. 21.

                                blog.naver.com/korea-007/221992765023

 


다니엘 10장은 제 9장의 ‘다니엘의 70이레 예언’이 주어진지 약 2년 후인 BC 536년 곧 바사왕 고레 스 삼년에 다니엘이 3주간 동안 힛데겔(티그리스강) 큰 강가에서 금식기도하던 중에 받은 묵시를 기록 한 10:1-12:4절까지의 기사의 개시부분입니다. 이때는 바사왕 고레스 2세의 칙령(BC 538)에의해 선 민 이스라엘의 제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져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재건 사업이 개시된 이후였습니다 (에스라3:8-13). 그리고 이 당시에 다니엘의 나이는 적어도 90세 가량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힛 데겔 큰 강가에서의 묵시가 제 7-9장 사이에서 기록하고 있는 묵시들과 차이점은, 묵시의 내용이 상징 적인 이미지들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보다 직설적으로 후대의 실제 역사를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 2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 하며 3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 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4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 는데’


첫째로 다니엘의 금식기도와 인자의 환상(다니엘 10:1-9)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다니엘이 제 1차 포로귀환이 있었는데도 바사제국에 남아있다는 사실 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다니엘은 이미 연세가 90이 넘었습니다. 먼 여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남은 생애를 이국 땅에 아직도 머물고 있는 동포들을 위해 바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제 1차 포로귀한 이후에도 옛 바벨론 지역에는 포로로 끌려왔다가 정착한 유대인들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다니엘이 이들을 위해 바벨론에 남아서 더 활동하기로 작정했을 것입니다. 이 때에 다니엘은 3주 동안 금식하며 슬퍼했습니다. 이유는 고레스 왕의 포로귀환 칙령의 선포와 함께 BC 537년에 역사적인 제 1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며 포로 귀환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제 1차 귀환자 수는 불과 5만 여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동안 다져 놓았던 생활 기반을 버리지 못해 바벨론 땅에 그대로 머물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고국으로 돌아간 유대인들이 신정 국가 재건을 위해 1차적으로 성전 재건 공사를 시도하였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그것 마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에스라 4:4-5). 이런 이유로 다 니엘이 고령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슬퍼하며 금식하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 때는 BC 536년 1월 24일이라 했으니, 유대의 큰 절기인 유월절 기간이 끝난 3일 이후입니다. 유월절은 보통 정월 10일경부터 준비 기간을 갖기 시작하여 14일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1일까지 지속됩니 다. 다니엘은 유월절 기간에 맞추어 유월절이 시작되기 전후로 금식을 한 후에 이 묵시를 보았던 것입 니다. 그 장소는 힛데겔 강변이었습니다.


‘4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5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7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 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8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


다니엘의 금식 중에 환상에서 ‘한 사람’이 다니엘에게 나타났습니다. 그의 모습은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고, 그의 몸은 황옥같고,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같고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았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이 환상 속에서 본 분 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약 630년 후에 사도요한도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을 때에 그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모습이 같았습니다. 계시록 1:12-16에, ‘2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 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 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 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우바스 정금 띠는 대제사장과 왕의 위엄과 권세를 동시에 상징하는 것으로 대제사장이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주님을 다니엘이 혼 자 보았습니다. 다니엘과 함께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주님을 보지 못하였고 무서 워 도망을 쳤다고 했습니다.

 

‘7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8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 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 졌 으나 9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 들었느니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환상을 주실 때에 아무리 그 주위에 사람들 이 많이 있더라도 계시를 주시고자 하는 그 사람에게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예가 성 경에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2:28-29에, ‘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 럽게 하리라 하시니 29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이며, 또한 사도행전 9:6-8에서, ‘6너는 일어나 시 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 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 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다니엘10:9에서 그가 환상 중의 주님을 뵙고 깊은 잠에 빠졌다고 한 것은 다니엘이 하 나님의 은총 가운데 있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 앞에서 온전히 버틸 수가 없었기에 결국은 쇠잔한 나머지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이 렇게 다니엘이 환상을 보면서 고통하는 것은 이 환상이 실현됨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 이 당할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천사 가브리엘과 인자(人子)의 위로(다니엘 10:10-11:1)


‘10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 으키고 11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 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 그가 내게 이 말을 한 후에 내가 떨며 일어서니’

 

이 단락은 바사 제국의 발흥과 멸망과 그 이후 등장한 헬라제국의 발흥과 4대 지역으로 의 분열과 그리고 헬라제국에서 분열한 4대 왕국 중 하나인 시리아, 셀류쿠스 왕조의 제 8대 왕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해 선민 이스라엘이 큰 환난을 받을 것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핍박자인 에피파네스가 죽고 선민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과 그리고 말 세에 성도가 적 그리스도에 의해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이나 핍박자 적 그리스도와 세상 나라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고 성도는 환난을 이기고 최종 승리할 것을 예언한 제 4묵시인 ‘힛데겔 강가 묵시’를 기록한 10:1-12:4의 서론 부분으로서 힛데겔 묵시의 배경을 기록한 10:1-11:1의 두번째 단락입니다.

 

앞 단락에서 나니엘은 영광스러운 인자의 환상을 보고 그 위엄에 눌려 혼절했었습니다. 본 단락은 그런 장면에 이어 천사 가브리엘이 바사국 군(君) 즉 바사를 배후에 조종하는 악한 영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천사 미가엘의 도움을 얻어 다니엘에게 와서 정신을 잃은 다니엘을 일으키고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말세에 받게 될 환난에 관한 묵시를 받을 준 비를 하도록 도와 줍니다.

 

10절에서 ‘한 손이 있어 나를 일으킨다’고 했는데 이 한 손의 주인공은 6절에서 묘사하 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천사 가브리엘인 것입니다. 이 손의 주인공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리고 다니엘서에서 환상을 깨닫도록 보내심을 받은 자는 항상 가브리엘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이 기력이 쇠진한 다니엘의 몸을 직접 일으키 고 환상을 깨닫도록 도우는데 그 뒤에 그리스도께서 서 계신 상황은 8:15-16의 상황과 매우 비슷합니다.

 

‘12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 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 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 아 왔느니라.’ 다니엘 9:23에서도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백하며 예루살렘의 회 복을 간구하던 때도 하나님은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한 즈음에 그 응답을 가브리엘을 통해 보내셨습니다. 이 때도 마찬가지인데 이런 사실을 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벌써 응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에서 두번이나 이 런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데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경우는 무응답이 응답일 수 있고, 기도의 목적이 잘 못되었든지 아니면 탐욕으로 잘 못 구하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 다.

 

‘13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 그런데 20일이 되어서야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 오게된 이유는 오는 길에 바사국 군주가 가로막아 서 있었는데 천군장 미가엘이 와서 막아선 무리들을 물리침으로 가브리엘이 다니엘에 올 수 있었다 합니다.

 

다니엘 10:20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 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 주가 이를 것이라.’여기 13절과 20절에 나오는 바사 군주 혹은 헬라 군주란 바사국왕과 헬라국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사국과 헬라국의 배후에서 조종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왕국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탄왕국 체제의 신하들을 말합니다. 미가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이름을 가진 천사장으로서 천상의 군대장관으로서 하나님의 위엄을 보좌하고 다른 많은 천군천사들을 지휘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와서 가브리엘을 도운 것도 그 역할 중 하나인 것입니다.

 

‘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 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 여기의 마지막 날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한 시기를 마감하는 때 즉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구약시대가 마감되기 전 얼마 동안 의 기간을 지칭합니다. 다니엘이 환상 중에 본 예언이 성취되는 기간, 즉 안티오쿠스 에피 파네스에 의한 유대인의 환난 기까지인 BC 4세기 후반에서 BC 2세기 중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랜 후의 일 즉 다니엘이 살아있는BC 536에서 약 300년 후 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15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16인 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 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 17내 몸에 힘이 없어졌고 호흡이 남지 아니하였사오니 내 주의 이 종이 어찌 능히 내 주 와 더불어 말씀할 수 있으리이까 하니 18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 를 강건하게 하여19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 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 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

 

가브리엘에게서 말을 듣고 있을 때에 다니엘은 그의 얼굴을 땅에 향하여 말문이 막힙니다.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의 싸움과 같은 영계의 일과 장차 이스라엘이 당할 큰 환난에 대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기절하여 있을 때에 인자와 같은 이 즉 그리스도께서 그의 입술 을 만져 주심으로 힘을 얻습니다. 18절에 다시 인자께서 다니엘을 만져 주시면서 강건하 라 두려워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두번이라 강건하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의 말 씀대로 다니엘에게 힘이 나게 되어 ‘강건하게 되었사오니 내게 말씀하시옵소서라'고 합니 다.


‘20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왔는지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 군주 와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21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 뿐이니라.’ 바사 군주는 바사 나라를 조종하는 영계의 배후조종자를 말하며 헬라 군주 역 시 헬라 나라를 조종하는 사탄의 졸개입니다. 이 세상 나라는 마귀가 왕입니다. 사탄의 왕 국에도 체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들인 바사, 헬라의 배후에 조종하는 사탄의 무리들 이 있다고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20절의 ‘내가’를 가브리엘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있지만 이 ‘내가’의 내는 16절과 18절의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다니엘 8:15, 16에서도 그 리스도를 가리켜 ‘사람 모양 같은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15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16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 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 게 하라 하더니

 

‘내가 가면 바사 군주와 싸우리라’에서 가브리엘은 이 영계의 왕들과 싸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3절에서 다니엘에게 주기 위한 하나님의 응답을 가져 오는 길에 이 바사왕을 지배하는 영계의 악한 왕이 막아 섰을 때에 꼼짝 없이 머물러 섰다가 미가엘이 와서야 움 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가브리엘이 ‘내가 가면 바사군주와 싸우리라’는 말을 할 수 없 습니다.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볼 때에 헬라제국의 알렉산더가 바사제국을 정복한 것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체제에서 헬라제국을 조종하는 배후 영계의 왕에게 바사제국을 조종하던 영계의 왕의 세력이 밀려 난 결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위에 군림하는 최고 권세자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또한 배후 에서 조종하십니다. 예를 들면 20절에서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 고 그리스도께서 다니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사 나라가 헬라의 알렉산더 왕 에게 멸망 당할 것이란 말씀인데 이것을 다시 말하면 헬라의 군주는 헬라 나라를 조종하 는 배후의 영계의 왕 즉 헬라나라의 왕 알렉산더를 조종하는 영계의 왕이 바사 나라를 배 후에서 지배하는 영계의 왕을 이겨 알렉산더가 바사나라를 처부수고 바사국을 정복할 것 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최종적으로 조종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 다. 내가 나간 후에 헬라의 군주가 이를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이 21절에서도 보입니다. 20절에서 ‘내가 돌 아가서 바사군과 싸우리라’는 말씀이 그리스도께서 직접 싸운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군대장관인 미가엘로 하여금 그렇게 한다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21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나를 도와서 그들을 대항할 자는 너희의 군주 미가엘뿐이니라.’ 여기서 ‘너희의 군주 미가엘’이란 말씀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영계 의 군주는 바로 미가엘이란 뜻입니다.

 

다니엘 11:1, ‘1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도와서 그를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 라.’ 이 11:1절은 전후 문맥을 살펴 볼 때에 10장에 붙은 것입니다. 그리 고 여기의 ‘내’ 역시 10:20-21에서 나오는 ‘내’인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은 BC 538년을 말합니다. 메데 사람 다리오는 6:1과 9:1에 나오는 다리 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메대 사람 다리오를 강하게 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 께서 메대-바사 연합국이 앗수르, 그로수스, 바벨론제국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리 오 군대를 도운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세 나라의 멸망이 세속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단순히 약육강식의 원리에 의한 결과처럼 보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구속사를 진행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였다 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니엘 11:1에서는 다리오를 도우셨다고 했지만 이사야 45:1에 서는 고레스를 도왔다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 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 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다니엘 제 4묵시 계속 II (다니엘 11:2-20)

 

다니엘서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서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하여 강대국들의 발흥을 보 여 줍니다. 계시록 11장에서도 바사, 헬라국이 성립되고 헬라국의 4분열과 분열된 두 강대국들의 다툼과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박해를 가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힛데겔 강가의 묵시는 다니엘이 바사 제국의 첫 왕인 고레스 3년인 BC 536년 힛데겔 강가에서 3 주간 금식 기도 중에 받은 묵시였습니다. 끝없이 패역하던 구약 선민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 하 나님의 공의의 징계로 야기된 시대였으나 동시에 단순한 징벌이나 저주의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징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각성하여 만연한 죄악을 일시에 청산하고 감연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를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현되고 있던 이중적인 전환 의 시대였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의 말미에 포로시대의 신앙영웅 다니엘이 자신과 민족을 위한 회 개 금식기도 중에 받은 묵시가 바로 이 힛데겔 강가의 묵시였습니다.


다니엘11장의 내용이 아주 복잡하게 전개됨으로 먼저 오늘 접할 내용들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주일의 다니엘10:1-4은 다니엘이 이 힛데겔 강가의 묵시를 받은 때의 배경을 제시했 습니다. 그리 고 10:5-9은 묵시의 궁극적 수여자인 인자의 현현을 보여 줍니다. 이 때 인자는 구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주어진 묵시의 근원이 성자 하나님, 나아가 삼위 하나님인 것인 바 묵시의 절대 진정성을 갖고 있는 것임을 시사받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주신 종말의 말씀이요,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천상에서 천사를 통해 사도 요한에게 주신 종말의 말씀이요, 다니엘서 역시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이므로 종말을 연구하는 자는 마태복음과 계시록과 다니엘서가 일치함을 깨달아야 하며 이 세 책 의 내용들을 다 연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자를 수행하고 묵시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가브리엘 천사가 향후 주어질 묵시는 바사 및 헬라제국과 관련된 묵시임을 서론적으로 알려준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이로서 10:1-11:1은 힛데 겔 강가의 묵시 기사의 전반부로서 일단 전 묵시의 배경, 수여자 및 묵시의 핵심내용을 서론적으로 밝히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은 본문인 다니엘 11:2-4은 힛데겔 강가의 묵시의 중반부 첫 단락입니다. 이 묵시가 주어질 당시의 패자인 바사제국의 영화도 곧 끝이 나고 새로이 헬라제국이 발흥한 후 그 헬라제국도 곧 4분될 것을 예언합니다.


다음은 다니엘11:5-20인데 헬라제국의 창건자인 알렉산더 대제 사후 4분된 헬라제국 중 양대 강국이었던 프톨레미와 셀류쿠스 왕조 사이의 150년 간의 대결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당에 영향력을 끼치고 서로 차지하기 위한 각축 과정에 대한 예언을 보여 줍니다. 먼저 11장의 하일라이트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민족에게 어떤 일을 감행했는가를 다음에 살펴 보게 될 것입니다. 11장에서 등장 시킨 후 12장에서는 이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종말에 나타날 적 그리스도의 원형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첫째로 바사제국의 멸망과 헬라제국의 발흥 및 분열(다니엘 11:2-4)


‘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들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 의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 을 충동하여 헬라 왕국을 칠 것이며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 리며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 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 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 임이라.’


바사에서 일어날 세 왕은 바사제국의 첫 왕인 고레스 2세의 후계자인 캄비세스 2세(B.C.529-522), 스멜디스(B.C.522-521), 다리우스 히스타피스1세(B.C.521-486)이고, 네 번째 일어난 왕이 크세르크세스(B.C486-465)입니다. 여기 네 번째 왕 크세르크스는 에스더에 언급된 아하수에 로왕과 동일 인물입니다. 이 왕의 치세 기간이 바사와 메대에서 전성기였으며 그 부를 바탕으로 하여 세계 최강의 군대를 조직하여 그 군사력이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왕은 마라톤 전투(BC 490)와 B.C.480년 아태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편성된 헬라 도시국가 연합군에게 살라미스 해전에서 크게 실패한 후 나라가 기울게 되었습니다.


3절에서 “한 능력 있는 왕”이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을 말합니다. 그는 세계 어떤 정복자보다 더 월등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두고 성경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라’했습니다. 4절의 예언은 알렉 산더 이후 헬라 제국이 나누어 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8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렉산더 이후 헬라 제국은 네 명의 계승자(카산더, 리시마쿠스, 프톨레미, 셀류쿠스)에 의하여 지배권이 분할(分割)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의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11:4). 여기 ‘그의 나라가 뽑혀서 그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라’라는 것은 헬라 제국이 알렉산더의 아들에게 계승되지 않을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20년 동안 7명의 장군들이 권력투쟁을 하였고 그 중 3장군이 죽음을 당했고, 권력투쟁의 앞잡이로 이용당해 모친과 아들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두 아들 중 알렉산더 4세는 카산더에 의하여 살해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형제인 필립 아르히다이우스는 정신 환상 자였는데, 그는 이미 BC317년에 암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에게는 그를 계승할 혈육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서 예언대로 ‘자신이 주장하던 권세 대로 되지’ 않고 말았습니다.

둘째로 남방애굽과 북방 시리아간의 전쟁(다니엘 11:5-19)


다니엘11:5, “5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주들 중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의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
남방 왕은 알렉산더가 죽은 후 헬라제국이 분열한 뒤 애굽을 통치하던 프톨레미 1세(B.C.323-285)인데 그는 알렉산더 제국을 분할한 네 장군 중 가장 유능한 장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통치 하던 애굽을 부강하게 하는데 전력을 다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른 세 나라 보다 애굽이 월등히 강력했습니다. 그리고 북방 왕은 시리아의 셀류쿠스 1세 니카도르(B.C.312-281)입니다. 본래 니카도로는 바벨론의 안티고누스의 밑에 있던 자였으나 B.C.316년에 안티고누스와 불화하여 프톨레미 1세 편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후 안티고누스가 망하자 그는 BC 312년 프톨레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바벨론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2년 후에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셀류쿠스 1세의 시대가 시작 된 공식적인 시기는 B.C.310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셀류쿠스 1세는 애굽의 프톨레미 1세에 예속되어 있었습니다. 셀루쿠스 1세는 동쪽으로 인더스 강까지 서쪽으로 시리아와 페니키아까지 이르는 영토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그의 권세는 그의 후 원자 프톨레미 1세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애굽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시리아 왕국은 독립한 뒤에도 계속해서 국력을 강화시켜 나가고 정복전쟁을 계속하여 나중에는 애굽이 지배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포함해 소아시아 인근 지역까지 석권하 였으며 안티오쿠스 3세 제위기 이후에는 대 애굽 전쟁에서도 우위를 지켰습니다. (북방 왕 셀루쿠 스 왕조는 B.C.63년까지 지속되다가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망했습니다.)


‘6 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단합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그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그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 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니’


6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 줍니다. B.C.285년에 프톨레미1세가 죽자 그의 뒤를 계승한 아들 프톨레미 2세(필라델푸스)이며, 북방왕은 셀류쿠스 1세의 손자인 시리아의 왕 안티 오쿠스 2세입니다. 남방국은 BC252년까지 셀류쿠스 왕가와 계속 싸웠습니다. 프톨레미 2세는 BC 250년에 지중해와 유대 지역의 확보를 둘러싸고 계속되어 온 시리아와의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자기의 딸 베레니케를 당시 ‘신’이라는 의미의 ‘데오스’로 불리우던 안티오쿠스 2세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이른 바 애굽-시리아 상호 결혼 동맹을 맺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복잡한 문제를 야기 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안티오쿠스 2세에게는 이미 영향력 있고 막강한 힘을 가진 라오디케라는 부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티오쿠스 2세가 애굽의 프톨레미 왕조와 동맹을 맺으면 정치적 이득을 볼 것이 분명했지만 라오디케는 순순히 이혼을 승낙하려 하지 않았습니다(11:6). 라오디케는 두 아들 칼리니쿠스와 안티오쿠스를 두고 있었습 니다. 안티오쿠스 2세는 프톨레미 왕조와 정략 결혼을 성립 시킨 후 본처였던 라오디케를 다시 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궁으로 되돌아 온 라오디케는 언제 자신이 다시 내 쫓길지 모른다는 생각 하에 계략을 짜고 자기 남편을 독살하였으며, 베레니케와 그의 아들들을 안디옥에서 죽게 한 뒤 라오디케는 친 라오디케 무리들과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 아들 칼리니쿠스(셀류쿠스 2세)를 왕으로 세우고 섭정을 하였 습니다. 그리하여 애굽과 시리아와의 관계는 이전보다도 더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베레니케와 안디옥에서 그를 도와주던 귀족들이 “버림을 당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11:7-9. “7 그러나 그 공주의 본 족속에게서 난 자 중의 한 사람이 왕위를 이어 권세를 받아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 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은과 금의 아름다운 그릇들을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 북방 왕이 남방 왕의 왕국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


앞 절에서 언급한 사건들 뒤에 있었던 보복 사건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공주는 프톨레미 2세의 딸인 베레니케입니다. 그리고 북방왕은 베레니케를 살해한 라오디케의 아들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입니다. 애굽의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는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직후인 B.C.247년에 죽고 아들인 프톨레미3세가 그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즉위한 후 누이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시리아를 공격했습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누이를 죽인 원수인 라오디케와 칼리니쿠스에게 복수를 하고 시리아에서 금 4000달란트와 2,500개 이상의 우상을 전리품으로 약탈해 왔습니다. 이 전쟁은 B.C.246년부터 B.C.241년까지 계속 되었고 프톨레미 3세가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보복을 위한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9절은 북방 왕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가 또 다시 남방 왕에게 보복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프톨레미 3세에게 수모를 당했으므로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BC 242년 그는 4년간 군대를 재 조직하고 훈련시켜 바다와 육로를 통해 애굽을 공격하였으나 끝내는 남방왕에게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목숨 만을 겨우 건진 채 잔류병과 함께 BC 240년에 시리아로 퇴각 합니다.


이와 같은 세속 역사를 살펴보면서 한 가지 새롭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나라들은 탐욕으로 인하여 자멸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해방의 날이 가까워 옴을 알리는 신호가 되고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처럼 다니엘에게 이방 나라 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말해 주고 있는 지 주목 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의 세계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1:10-12. “10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이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프톨레미 3세에게 철저히 패배한 셀류쿠스 2세 칼리니쿠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안티오쿠스 3세요 형인 셀류쿠스 3세입니다. 형인 셀류쿠스 3세는 BC 225년에 왕위에 올랐으나 소아시아 전쟁을 치루는 도중 동료들에게 살해되어 즉위 3년 만에 죽었습니다. 이에 형 셀류쿠스 3세를 이어 안티오쿠스 3세가 즉위한 즉시(B.C.223) 동부지방의 반란을 진압시킨 후(B.C.220), 다음으로 페니키아와 팔레스틴의 원정 길에 나섰습니다(B.C.219-218). 남방 정책을 펼쳐 당시 애굽의 프톨레미 4세 필로파토르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며 더 나아 가 애굽 본토를 공략하였습니다.


‘11 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는 그의 손에 넘겨 준 바 되리라.’


안티오쿠스 3세에게 계속 공략을 당하던 프톨레미 4세는 전열을 가다듬고 역공을 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라피아(팔레사타인 지역의 가사 근방) 전투에서 큰 군대를 동원하여 방어하는 안티오 쿠스 3세에게 대승을 거두고 팔레스틴 지역을 안티오쿠스 3세에게 빼앗겼던 옛 영토를 되찿았습 니다. 안티오쿠스 3세에게 대승한 프톨레미 4세는 교만하여져서 자신을 신격화하였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을 재탈환하였을 때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의 전을 더럽혔습니다. 이것은 12절의 ‘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의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 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의 예언적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게 되고 그의 세력은 약화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들을 더럽히는 자의 비참한 종말을 보여 줍니다. 그 저주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니엘11:13-19. “13 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군대를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안티오쿠스 3세는 프톨레미 4세에게 패전하여 본국으로 돌아온 후 아르메니아와 파르티아, 박트리아 등 주변의 여타 국가들을 정복하여 어느 정도 자신의 명성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러나 애굽을 공략할 기회를 엿보던 안티오쿠스 3세는 BC 203년 프톨레미 4세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고 그의 아들 프톨레미 5세가 7세의 극히 어린 나이로 즉위합니다. 이 때에 시리아의 남하를 원치 않는 로마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굽을 공격합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마케도니아의 빌립과 애굽을 분할할 것을 약속하고 동맹을 맺고, 연합세력을 형성하여 애굽을 공격합니다. 이 때에 애굽의 장군 스코파스가 이끄는 애굽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BC 198년에 팔레스틴 지역까지 완전히 정복합니다.


‘14 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했던 프톨레미4세가 죽고 나이 어린 프톨레미 5세가 즉위하자 여러 나라 왕들이 애굽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14절은 이처럼 마게도니아의 빌립왕 및 소아시아의 여러 왕들이 안티오쿠스 3세와 연합하여 애굽을 침공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네 백성 중에서도 포악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환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걸려 넘어지리라’는 여기서 ‘네 백성’은 다니엘의 민족 곧 유대민족을 가리킵니다. 여기 강포한 자로 번역된 ‘베네 파리침’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시리아의 세력을 빌어 독립을 꾀하려 했던 어리석은 유대인들을 지칭합 니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당시 이방의 여타 국가들과 동일하게 각종 술수와 군사 력을 바탕으로 유대의 독립을 시도하려는 일 자체를 지칭합니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유대는 시리아와 애굽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안티오쿠스 3세와 애굽의 스코파스 장군이 서로 밀고 당기는 접전을 계속함으로 인하여 양쪽에 의하여 교대로 점령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대 백성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일부는 오랫 동안 팔레스틴의 정복자로 군림하였던 애굽에게 충성하기를 주장했고, 일부는 새로 강자로 떠오 르는 시리아를 섬기기를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안티오쿠스 3세가 승리함에 따라 세력을 잡게 된 시리아파는 안티오쿠스 3세에게 모든 편의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시리아파가 안티오쿠스 3세에게 제공함으로써 얻어진 결과는 그들이 갈구했던 유대의 독립이 아니라 오히려 애굽의 압제보다 더한 재난인 안티오쿠스 3세의 후계자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에 의한 살륙 정치와 종교적인 박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적인 욕심에 끌려 임의대로 행동하였을 때에 필연적으로 받게 될 비참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15 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가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


15절에서 북방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점령한다는 것은 안티오쿠스 3세는 동맹국 마케도니아의 협공과 시리아파 유대인들의 협조로 쉽게 애굽군을 물리치고 유대 땅을 점령했습 니다. 남방 애굽 군대는 시리아왕을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안티오쿠스 3세는 B.C.202년 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애굽을 공략했습니다. 그리하여 BC 201년에 가자의 요새를 멸망시켰 습니다(11:13-14). 그때 유대인들 중에는 애굽을 배반하고 안티오커스 3세 편에 선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스코파스 장군이 반격하여 친 안티오쿠스 3세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처벌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14절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스코파스는 결국 안티오쿠스 3세 에게 패하여 페니키아 해안의 시돈까지 퇴각하였는데 이것이 15절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장군 스코파스는 시돈에서도 패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지는 안티오쿠스 3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6절은 여기에 대하여 ‘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자기 마음대로 행하리니 그를 당할 사람이 없겠고 그는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의 손에는 멸망이 있으리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라'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16절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안티오쿠스 3세가 BC 198년에 유대 땅을 점령하였던 사건 에 대해 예언한 것을 말합니다.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는 말은 안티오쿠스 3세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킽 것을 가리킵니다.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해 멸망될 상대는 그에 의해 정복된 여러 나라들 입니다. 다음 주에 안티오쿠스 3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 제국의 영토를 최고로 많이 가진 자요 알렉산더 대왕에 이어 대왕의 명칭을 얻은 자입니다.


‘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안티오쿠스 3세는 BC 198년 유대 땅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했습니다. 그리고 애굽 본토를 침략하려던 계획을 수정합니다. 안티오쿠스 3세가 팔레스타인 지역을 정복한 후 애굽으로 진군하 지 못했던 이유는 안티오쿠스 3세와 로마 사이의 전쟁인 카르타고(BC 202년)와 마게도니아와의 전쟁(BC 197년)에서 승리한 로마로부터의 위협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안티오쿠스 3세는 무력으로 애굽을 점령하는 대신에 BC197년에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당시 열 살이었던 소년 프톨레미 5세와 결혼 시켜 결혼동맹을 맺고 애굽을 자기 수중에 넣으려는 계략를 꾸몄습니다. 그러나 믿었던 딸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의 남편 프톨레미 5세로 하여금 로마와 동맹을 맺도록 함으로써 안티오쿠스 3세의 계략을 실패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는 3세가 B.C.187년에 죽고 클레오파트라는 B.C.181년 프톨레미 5세가 죽은 후 애굽 정부에 의하여 섭정왕으로 임명되었습니다(다니엘11:17).


‘18그 후에 그가 그의 얼굴을 바닷가로 돌려 많이 점령할 것이나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19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한편 안티오쿠스 3세는 딸의 배반으로 애굽 정복전쟁에 실패한 후 군사를 돌려 지중해의 섬들과 서쪽 해안 지대를 공격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몇몇 섬들과 헬라-마케도니아의 해안지대를 점령했습니다. 18절에 “연안 지역”이란 이와 같이 연안의 나라들을 의미합니다. 이때 서부 중앙 그 리스의 아에톨리안 동맹(confederacy of the Aetolian League)은 마케돈, 펠로폰네소스와 싸우기 위하여 원병을 요청하기 위하여 안티오쿠스 3세에게 사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안티오쿠스 3세는 B.C.192년 해군을 중앙 그리스의 연안에 상륙시켜 아에톨리안 동맹과 협력하게 됩니다. 이들 동맹과 대항하기 위하여 마케돈은 아카에안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때 로마는 테르모필래에 주둔 하고 있는 셀류쿠스 지휘본부를 압도하기 위하여 그리스 동맹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방해로 인하여 안티오쿠스 3세는 B.C.191년 소아시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8 …한 장군이 나타나 그의 정복을 그치게 하고 그 수치를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에 서 ‘한 장군’은 로마의 장군 투키우스 스키피오를 가리킵니다. 스키피오는 B.C. 190-189년에 안티오쿠스 3세는 로마로부터 계속 추격 당하다가 사르디스(sardis) 서쪽 마그네시아 에서 철저히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안티오쿠스 3세는 엄청난 양의 전쟁 보상 금을 로마에 지불했어야 했고 또한 20명의 인질을 로마에 보내야 했습니다. 이 때 20명의 인질들 가운데는 안티오쿠스 3세의 둘째 아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안티오 쿠스 3세 대제의 종말에 대하여 19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1:19 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려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에게 패전하여 본국으로 퇴각하여 돌아온 안티오쿠스 3세는 땅에 떨어진 자기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재기를 다짐하고 자기 영토 내에 있는 여러 성읍들의 재화들을 모아 군비를 재 확충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계획은 반란군에 의해 그가 살해됨으로써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다니엘11:20, “20 그 왕위를 이을 자가 압제자를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


20절은 안티오쿠스 3세의 뒤를 이어 시리아의 왕이 된 그의 아들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BC 187-175)를 지칭합니다. ‘토색하는 자로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요.’에서 ‘토색하는 자’는 히 브리어로 ‘노게쉬’라 하여 일반적으로 ‘조공을 수집하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 이 말은 ‘늑봉하다, 강탈하다’등의 뜻을 가진 말로서 금 은 등 재물을 거두어 들이되 강제로 빼앗듯이 수탈하는 관리들을 지칭합니다.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르는 무기력한 왕이었고,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 3세가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떠맡게 된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재무 장관인 헬리오로루스에게 명을 내려 시리아 본토에 있던 온갖 재화는 물론 유대 반역자 시몬의 말을 듣고 예루살렘 성전의 금을 약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재무장관 헬리오도루스의 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예루살렘 민중 소요가 거세어집니다. 그러던 중 그는 환상을 통하여 천사들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서 성전 약탈을 포기하고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셀루쿠스 4세 필로파토르를 독살하였습니다 (BC175). 이리하여 셀루쿠스 4세는 12년의 통치를 끝으로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이로써 즉위한 날로부터 계속해서 착취와 수탈과 압제를 일삼던 필로파토르의 짧은 생애가 비참하게 마치고 ‘분노도 전쟁 도 없이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라’는 20절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21절부터는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loveofjesus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