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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서신 - 베드로전후서

야고보서 3- 4장 묵상

by 은총가득 2021. 2. 15.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야고보서 3:1~12)

 

* 본문요약

 

선생이 많이 되려하지 마십시오. 사명감도 없이 무작정 선생이 되었다가 함부로 말하여 사람들을 실족하게 하면 더 큰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작은 키로 큰 배를 움직이듯 작은 혀가 온 몸을 움직이고, 작은 불이 큰 숲을 태우듯 혀는 온 몸을 더럽히고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와 생의 수레바퀴를 태웁니다. 혀는 죽이는 독이 가득하여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사람을 저주하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찬 양 : 217장(새 425)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218장(새 286)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 본문해설

 

1. 많이 선생이 되려 하지 말라(1~2절)

 

1)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아는 바와 같이

선생이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니,

선생이 많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너도나도, 저마다 선생이 되겠다고 나서지 마십시오).

2) 우리는 다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는 자기의

온 몸을 제어할 수 있는(자기의 온 몸을 다스릴 줄 아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 선생(1절) :

초대교회의 선생은 오늘날의 구역장이나 교회학교 교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랍비와 같은 정도로 교회에서 권위와 존경을 인정받는 자입니다. 당시에는 신학교가 없던 때였으므로 성도들 중에서 믿음이 좋은 자들이 목사가 되었는데, 교사는 목사가 되기 전 단계로, 오늘날로 보면 준목(강도사)과 장로의 직책을 합친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 선생이 많이 되려고 하지 마십시오(1절) :

교회에서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하는 사람들을 격려해야 할 사도가 오히려 교사가 많이 되려하지 말라고 했던 것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명감이 없이 교사의 권위와 명성에만 매료되어 무작정 교사가 되려는 욕심을 품었던 것에 대하여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사명보다는 직분에만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교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2.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3~8절)

 

3) 말(馬)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고분고분해져서 우리는 그 말을 마음대로 끌고 다닙니다.

4) 또 배를 보십시오. 그렇게 큰 배들이 거센 바람에 밀려가지만,

지극히 작은 키로 조정하여 사공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배를 운행합니다.

5) 이와 같이 사람의 혀도 몸의 작은 지체에 불과하지만, 큰 것을 자랑합니다.

보십시오, 작은 불씨가 얼마나 많은 나무를(숲을) 태웁니까?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입니다(혀는 불과 같고, 우리 몸 가운데 악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그 혀도 지옥 불에 떨어져서 타버리고 맙니다.

7) 짐승이나 새나 벌레나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다 길들여질 수 있어서

사람에게 길들여져 왔습니다.

8) 그러나 혀를 길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혀는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입니다.

 

- 여는 불이요(6절) : 통제되지 않은 혀는 지옥불과 같은 힘을 가졌습니다.

 

- 혀는 불의의 세계(6절) :

통제되지 않은 혀는 불의가 가득한 세계, 즉 악마의 소굴인 지옥과 같다는 것입니다.

 

-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8절) :

혀로 형제를 비방하고 넘어뜨리고 모함하고 죽입니다. 온갖 거짓을 만들어 퍼뜨리고 진리를 흐리게 하고 불신을 조장하고 미움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통제되지 않은 혀는 흉기를 가지고 마구 날뛰는 강도와 같다는 것입니다.

 

 

3.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지 말라(9~12절)

 

9) 우리는 이 혀로 우리의 주님과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10) 또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내 형제들이여, 이것도 마땅한 일이 아닙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11) 샘이 한 구멍에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습니까?

12) 나의 형제들이여,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짠물을 내는 샘이 단물을 낼 수 없습니다.

 

-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10절) :

야고보서 1: 6~8에서 기도한 후에 의심하는 것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이라 한 것처럼,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오는 것 역시

두 마음[두 신(神)]을 품은 혼합주의와 같습니다.

 

 

* 묵상 point

 

1. 많이 선생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1) 초대교회의 선생(교사)의 위치(1절)

 

오늘날처럼 신학교가 따로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므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는 감독(오늘날의 목사)이 되기 직전의 위치에 있어서 당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는 꽤 존경을 받는 직분이었습니다. 선생은 오늘날의 교회로 보면 목사고시에 합격한 준목(강도사)의 직책과 장로의 직책을 합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더구나 당시 유대 사회에서의 교사(랍비, Rabbi)는 최고의 존경을 받았으므로

사람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하려는 것보다

‘선생’이라는 직분 그 자체에 더 욕심이 있었습니다.

 

2) 말씀을 가르치는 직책은 분명 복된 직책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직책은 분명 복된 직책입니다. 주께서 마련하신 모든 구원의 길이 말씀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멸망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책은 분명히 사모해야 할 귀하고 좋은 직책입니다.

 

3) 그런데 야고보는 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많이 되지 말라 했을까(1절)

 

교사의 자리를 사명의 자리가 아닌, 정치적인 자리로만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있는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와 권세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명감도 없이 교사의 직책만 가진 자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는 관심이 없이, ‘교사’의 권위로 두려움 없이 함부로 남을 정죄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교사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자들이 그 자리만 탐을 내어 교사가 되려는 일에 대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마태복음 23:8~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묵상 : 사명감이 없는 자는 목사나 장로나 권사가 되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권사나 장로로서의 책임을 감당할 영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자들을 사회적인 위치만 보고 함부로 임명한다든지, 또는 직분을 탐내기만 한다면 역시 더 큰 심판을 받는 자리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목사나 장로나 권사의 직책을 단순히 직분이나 받는 자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직책들은 일하라고 주신 것이지

그 직책을 움켜쥐고 호통이나 치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2. 온 몸을 지옥에 빠뜨리는 혀(말)의 위력

 

1) 말과 배와 불과 각종 짐승들의 예화

 

야고보는 사람이 하는 말(言)의 위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힘이 세지만 사람에 의해 길들여지는 세 가지를 예로 듭니다.

 

① 말(馬)이 크고 빠르지만 그 입에 재갈을 물려 제어합니다(3절)

 

말이 비록 힘이 세고 빠르지만

그 입에 재갈을 물리면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② 큰 배도 작은 키로 움직입니다(4절)

 

큰 배가 바람에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공이 지극히 작은 키로 그 배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③ 그 밖의 모든 짐승은 물론 새와 벌레들까지 사람에 의해 길들여집니다(7절)

 

2) 길들여지지 않는 혀는 불과 같습니다(8절)

 

지극히 작은 불씨가 큰 숲을 모두 다 태워버리는 것처럼,

혀도 작은 것이지만 온 몸을 더럽힙니다. 혀는 불이요 불의의 세계입니다.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와 생의 수레바퀴를 태웁니다.

 

우리는 흔히 도적질이나 살인같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행위의 죄만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말(언어)로 행하여지는 죄가 훨씬 더 심각하고 중한 죄라고 경고합니다.

심지어 통제되지 않은 혀에서 지옥불이 나온다고까지 했습니다.

 

3) 우리를 지옥 불에 빠뜨리는 악이 가득한 혀(5~6절)

 

말(언어)로 행하는 죄가 이처럼 무서운 이유는 내가 뱉은 말이 저 혼자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뱉은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이 옮겨지면서 조금씩 덧붙여져서 그 사람을 아주 흉악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이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히틀러(Hitler)와 같은 독재자들 역시 악마적인 혀의 힘을 이용하여

세상을 온통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묵상 : 이처럼 남에 대하여 함부로 험담하며 남에게 퍼뜨리는 사람은

그 입에 지옥불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11).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편에 있던 강도들도

그들이 한 말(언어)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었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언어 습관을 갖도록 힘쓰십시오.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말로 천국을 얻기도 합니다.

 

 

3.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하지 마십시오(9~12절)

 

남을 저주하기보다 축복하십시오. 그에게 한 축복이 그와 맞지 않으면 다시 당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내가 남을 평가한 그 잣대로 내가 다시 주께로부터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 격려하고, 위로하고, 축복하는 말을 하면 할수록 내가 복을 받게 됩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언 17: 9).

 

 

* 기도제목

 

1. 주께서 주신 직분에 충성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남을 험담하거나 저주하는 못된 말을 하지 않게 하옵소서.

 

3.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축복하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


* 위로부터 오는 지혜(야고보서 3:13~18)

 

* 본문요약

 

지혜와 총명이 있는 사람은 착한 행실을 통하여 온유함으로 자기가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십시오.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는 자는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이런 지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들입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모든 요란한 일들과 악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찬 양 : 488장(새 428)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246장(새 208) 내 주의 나라와

 

 

* 본문해설

 

1. 선행으로 나타나는 지혜(13절)

 

13) 여러분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선행(선한 행동)을 통하여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자기의 행위를 보이십시오.

(혹은, 온유함으로 자기가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를 나타내 보이십시오.)

 

- 지혜 :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하나님의 뜻대로 판단하는 분별력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 총명 : 에피스테몬

‘총명’으로 번역된 ‘에피스테몬’은 훈련을 받은 전문가의 지혜와 지식을 가리키나,

성경에서의 총명의 뜻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진 자가

그 지혜를 구체적인 삶에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입니다.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처럼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온유함입니다.

 

-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라고 생각하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 것으로,

그런 자는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과 선한 행동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 선한 행동 : 칼로스

‘선한(good)’으로 번역된 ‘칼로스’는

주님의 백성 안에 나타나는 선한 마음과 행실의 사랑스러움과 매력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생활방식입니다.

 

 

2.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14~16절)

 

14)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기적인 야심)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고(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고),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입니다(이 땅에 속한 것이고, 육신에 속한 것이며, 악마에게 속한 것입니다).

16) 시기와 다툼(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한 행위가 있습니다.

 

- 시기(14절) : 젤론

다른 사람의 행운과 행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기적인 야망, 이기적인 열정.

 

-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14절) :

마음속에 이기적인 야망이나 다투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또한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으면 함부로 말하여 죄를 짓지 말라는 것.

 

- 자랑하지 말라(14절) :

시기와 다툼, 이기적인 야망을 지혜로 착각하여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세상적(15절) : ‘에피게이오스’, 눈에 보이는 땅의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지혜

 

- 정욕적(15절) : ‘프쉬키케’, 동물적인 본능으로, 육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지혜

 

- 마귀적(15절) : 다이모니오데스(마귀와 귀신에게서 나오는 지혜)

상대방을 제어하기 위한 권모술수로 가득한 지혜는 마귀에게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3. 위로부터 난 참된 지혜(17~18절)

 

17) 오직 위로부터(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 성결(순결)하고,

다음으로 화평하며, 관용하고, 양순하며(친절하며),

긍휼과(자비와)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위선)이 없습니다.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둡니다.

 

- 성결하다 : 하그네

성결로 번역된 ‘하그네’는 악한 태도나 이기적인 동기가 없는

생각과 말과 행동과 동기가 깨끗하고 순전한 지혜와 말과 행동을 가리킵니다.

 

- 화평하다 : ‘에이레니케’분쟁을 고치고 치유하고 평화를 이루려는 열망을 가리킵니다.

 

- 관용하다 : 에피에이케스

관용으로 번역된 ‘에피에이케스’는

용서하고 인내하는 온유와 자비에서 나오는 넓은 마음과 아량을 가리킵니다.

 

- 양순하다 : 유페이데스

① 언제나 복종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갖춘 것. 하나님께 잘 순응하는 성품,

② 다른 사람의 말과 호소를 잘 들어주고,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힘쓰는 자세를 갖추며 살아가는 것.

 

-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다 :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선한 행위, 이 둘은 항상 함께합니다.

 

- 편벽이 없다 : 의심이나 편견이 없이 사람을 대한다.

 

- 거짓(위선)이 없다 : 위선, 이중의 마음을 갖지 않고 사람을 대한다.

 

-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둔다(18절) :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화평케 하려는 거룩하고 새로운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 거룩하고 새로운 본능이 의의 열매이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됩니다(마 5:9).

 

 

* 묵상 point

 

•• 야고보의 경고 :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가 누구냐?

 

야고보는 스스로 지혜와 총명을 가졌다면서,

자기들이야 말로 교회를 다스리는 성경교사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고

떠벌이며 자랑하고 다니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이들은 마치 오늘날 선거철이 되면 자기들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유세를 하고 다니는 후보들처럼,

자기들만이 말씀을 바로 가르칠 지혜를 자진 자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야고보는 이 사람들의 치명적인 잘못을 경고하면서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는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증거합니다.

 

 

1.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

 

1) 지혜와 총명(13절)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특징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총명이 있는지를 가지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① 지혜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분별력과,

말씀을 생활 속에 적용할 줄 아는 영적 통찰력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② 총명

 

총명으로 번역된 에피스테몬은 훈련을 받은 전문가의 지혜와 지식을 가리키나,

여기에서는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전문가를 뜻합니다. 지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영적 능력, 영적 전문가입니다.

 

➠ 지혜와 총명의 차이

 

지혜와 총명은 거의 같은 뜻으로, 비슷한 단어를 두 번 반복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굳이 이 두 단어의 뜻을 구분한다면

지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능력을 뜻하고

총명은 그가 깨달은 지혜를 가지고

실제 삶속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합니다.

 

2)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

 

여기에서 말하는 온유함이란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에게서 나오는 성품이 온유함입니다.

지혜와 총명이 우리 안에 제대로 자리 잡아서 그 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을 때

나오는 성품이 온유함입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수기 12:3)

 

민수기는 모세의 위대함을

‘그가 이 땅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5)

 

또 예수님은 온유함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 중의 하나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저 영원한 하늘의 땅, 하늘의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온유함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에서 나옵니다.

오직 참된 지혜를 가진 자만이 주께서 가지신 하나님의 온유함을 닮은 자가 됩니다.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처럼

오직 하나님과 늘 동행하는 자만이 이 온유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선한 행동(칼로스)

 

선한 행동은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에게서 온유한 사람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선한 행동은 주님의 백성 안에 나타나는 선한 마음과 행실의 사랑스러움과 매력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선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생활방식입니다.

 

➠ 칼로스 : 성령의 열매, 믿음의 열매

 

본문에서 ‘선행(선한 행동)’으로 번역된 ‘칼로스’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좋은 열매’(마3:10). ‘좋은 나무’(마 7 :17), ‘좋은 땅’(마 13 :8).

‘좋은 물고기’(마 13 :48). ‘좋은 일꾼’(덤전 4:6)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혜와 총명에서 나오는 온유함을 가진 자에게서만 나타나는 선한 행동인 칼로스는

천국에 들어갈 증명서와도 같은 것입니다.

 

 

••• 지혜와 총명과 온유함과 선행(칼로스)의 정리

 

이 단어들은 뜻이 비슷한 것을 반복한 것이기도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그 뜻을 구분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지혜 : 하나님의 뜻을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무언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지혜입니다.

 

② 총명 : 하나님의 뜻을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가진 자가

구체적인 실제 생활에서 그 지혜를 적용하여

그 지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하고 신실한 삶의 능력이 총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총명은 지혜보다 좀 더 구체적이라 하겠습니다.

 

③ 온유함

 

지혜와 총명은 분별하는 능력과 그 분별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정적인 것입니다.

몸과 마음에 담겨 있는 분별력과 그것을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뿐입니다.

 

그 지혜의 분별력과 총명의 능력으로 변화된 신령하고 건강한 성품이 온유함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선하고 진실한 성품이 온유함입니다.

 

④ 선행(칼로스)

 

믿지 않는 자도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선행인 칼로스는 지혜와 총명을 가진 사람이

그 마음의 성품까지 온유함으로 바뀐 상태에서 나타나는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건강하고 신령한 말과 행동, 신령한 삶의 태도가 바로 칼로스(선행)인 것입니다.

 

이 네 가지가 하나님의 백성 된 증거들입니다.

 

 

2.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혜

 

그러나 자기들만이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라며 자기를 자랑하고 과시하는 자들은

결코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이나 선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고 구원의 열매가 없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악한 본성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특징은 구원 받지 못할 저주의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1) 세상의 지혜의 실체 :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들(15절)

 

신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진보하고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나 지혜는 어디에서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직 돈과 명성을 얻는 기술만 발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무엇인가를 열심히 배우지만, 자기의 이기심을 만족시키는 기술만 배울 뿐입니다. 옆에 앉은 친구들도 모두 경쟁자들일 뿐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세상의 지혜를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① 세상적인 지혜

 

세상의 지혜는 하늘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 세상에 속한 것만 판단하는 지혜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만으로 판단하는 지혜입니다. 눈앞에 있는 위기만을 보게 합니다.

지금 손에 잡히는 즐거움과 쾌락만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혜로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런 지혜만을 가진 자들은 주께서 인도하시는 은혜의 세계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지금 야고보가 책망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교회에서는 자기들이 가장 거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자랑하고 다니지만,

그들은 주께서 주시는 복을 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직 세상에서의 성공과 인기를 바랄 뿐입니다.

 

겉으로는 지혜와 거룩을 말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돈과 권세에 대한 욕심만 가득합니다.

그들이 하는 신앙행위들은 모두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② 정욕적인 지혜

 

동물이 자기 보호본능으로 살아가듯, 육체의 보호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혜만을 가진 자들은

 

㉮ 어떻게 나의 세력을 확장시킬 것인가,

㉯ 어떻게 나와 나의 조직을 보호할 것인가,

㉰ 어떻게 내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만 생각합니다.

 

③ 마귀적인 지혜

 

사람들은 자기의 영역을 확장하고,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지혜를 사용합니다.

 

자기를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다툼과 혼란이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으키는

이런 헛된 야망을 지혜로 착각하여 과시하며 자랑하기까지 합니다.

 

권모술수와 거짓과 간사함으로 가득한 이런 지혜는 모두 마귀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지혜를 따라 사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지혜를 따라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2) 악한 영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마귀는 이런 세상의 지혜로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파괴시킵니다.

 

① 사람들의 마음속에 시기심을 심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되는 모습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② 마귀는 이런 세상의 지혜로 사람들을 이기적인 야망을 가진 자들이 되게 합니다.

 

③ 그래서 이런 이기적인 지혜를 가진 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고 훼방하여

세상을 온통 무질서와 혼란 속에 빠뜨립니다.

 

➠ 독한 시기심과 다툼이 있는 자는 차라리 입을 다물라(14, 16절)

 

마음에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독한 시기심이 있든지, 다툼과 싸움을 일으키고 싶은 못된 다툼의 욕망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느껴지거든 차라리 말을 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기를 자랑하든지 남을 깎아내리는 말을 하면 싸움만 일으킬 뿐이기 때문입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말을 할 자신이 없을 때는 차라리 입을 꽉 다물고 있으십시오.

그런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말의 가장 큰 피해자는 본인 자신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착한 행실을 통하여 그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증거를 보이라(13절)

 

야고보는 만일 그들이 말하는 대로 지혜를 가진 것이 정말 맞는 일이라면 착한 행실을 통하여 그 지혜에서 나오는 온유함으로 자기들의 지혜가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거룩한 자라고 떠들고 다녔으니 실상 죄에 가득한 자였던 것처럼,

이들 또한 말로만 지혜를 자랑했지

실제로는 늘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허풍쟁이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떠들지 말고 진짜 참된 지혜를 가진 자답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이 땅에 속한 지혜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잘 분별하는 자가 되십시오.

 

심지어 교회와 성도들도 이렇게 불의한 세상적인 지혜로 이룬 성과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며 간증하기까지 합니다.

가령 선거 때를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운동을 하여

이기면 승리했다며 축배를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가 아니라 마귀가 준 지혜입니다.

 

 

3. 위로부터 오는 참된 지혜(14~16절)

 

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이런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지혜가 아닙니다.

야고보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의 일곱 가지 특징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

이 지혜를 가진 자들은 다음과 같은 새로운 본능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열매가 있는지의 여부를 통해

그가 가진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악마에게서 받은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지혜는 성결하게 합니다.

 

성결로 번역된 ‘하그네’는 악한 태도나 이기적인 동기가 없는

생각과 말과 행동과 동기가 깨끗하고 순전한 지혜와 말과 행동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사람을 성결하게 합니다. 영적 고결성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사람을 깨끗하고 순전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시 119:9~10)

 

2) 하나님의 지혜는 화평을 이루려는 강렬한 열망을 갖게 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브리서 12:14)

 

3) 하나님의 지혜는 서로 관용하고 용납하게 합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8~42)

 

4) 하나님의 지혜는 양순(온유)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복종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갖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의 말과 호소를 잘 들어주고,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힘쓰는 자세를 갖추며 살아갑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5) 하나님의 지혜는 긍휼과 선한 열매를 갖게 합니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6:36~37).

 

6) 하나님의 지혜는 편견이 없이 사람을 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들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비록 누추하고 남루한 옷을 입었더라도

그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를 귀하게 여깁니다.

 

7) 하나님의 지혜는 거짓(위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이런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능력이 있어서 우리를 이와 같이 신실한 삶을 살도록 힘과 능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집에서도 지혜를 구하고 들에서도 구하라고 말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주께 구하십시오. 그 지혜가 당신을 새롭게 합니다.

 

 

* 기도제목

 

1. 세상에 살되 세상에 빠지지 않고

주님의 주신 지혜로 살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주신 지혜를 가진 자답게

선한 열매를 맺으며 살게 하옵소서.

 

3. 이런 지혜를 갖기 위하여

늘 주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  왜 교회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가(야고보서 4:1~10)


* 본문요약


성도들 사이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싸우는 정욕을 좇아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싸우고 다투는 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이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주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세상에 빠지지 않게 도우십니다.
먼저 주께 겸손하게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손과 마음을 깨끗이 하십시오. 슬퍼하며 애통하여 우십시오.
그리고 주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나의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찬 양 : 391장(새 353) 십자가 군병 되어서
480장(새 361) 기도하는 이 시간




* 본문해설


1. 성도들 간의 싸움과 다툼(1~3절)


1)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오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여러분의 지체 속에 있는 싸우는 정욕(싸움을 즐기는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2) 여러분이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해도(탐을 내어도) 얻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욕정과 쾌락을 채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 싸움과 다툼(1절) : 플레모이, 마카이
• ‘싸움(wars)’으로 번역된 ‘플레모이’는 국가 간의 전쟁을 뜻하는 단어로,
여기에서는 계속해서 적개심을 품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 ‘다툼(fighting)’으로 번역된 ‘마카이’는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분쟁을 뜻하는
단어로, 여기에서는 그 적개심이 어떤 상황에서 폭발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 싸우는 정욕(1절) : 헤도논
‘싸우는 정욕’에 해당하는 ‘헤도논’은 ‘쾌락을 뜻하는 단어로, 싸우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탐욕스러우며 남의 주목을 끌기를 원하는 자가 싸우고 다투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주 사악한 것임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 싸우는 정욕을 좇아 난 것(1절) :
예수를 믿어 새 본성을 받았으나, 아직도 여전히 예수를 믿기 전에 가졌던
‘옛 본성’인 싸우는 정욕을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자는 그의 싸우는 행동으로
인하여 자신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입니다.
 
- 살인하며 시기하여도(2절) :
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이 아니라, 말(言, 언어)로 인격을 손상시키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격을 손상시키는 일 역시 생명을 빼앗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죄입니다. 이런 욕망은 시기하고 살인하기까지 해도 결코 그 욕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다(3절) : 헤도나이스
‘정욕으로 쓰려고’는 ‘자신의 향락과 쾌락을 위하여’를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싸움과 다툼에서 쾌락을 느끼는 자들이 그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싸움을 일으킬 목적으로 구하는 것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다’고 말했습니다.




2. 세상과 벗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4~5절)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되는 것(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한다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한 성경말씀을 헛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 간음하는 여자들이여(4절) :
간음하는 여자들이란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랑인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간 자들,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지 못할 만큼 세상일에 분주한 사람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긴 것일 수도 있고, 오락이나 취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세상에서는 그리 나쁠 것이 없으나, 그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방해할 정도로 마음을 빼앗긴 정도가 된 것을 야고보는 ‘간음’이라고 규정합니다.
 
-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5절) :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셔서
우리가 세상과 벗이 되어 살도록 그냥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




3. 하나님과 가까이 하십시오(6~10절)


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라고 한 것입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여러분을 피할 것입니다.
8)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순결하게) 하십시오.
9) 슬퍼하고 애통하며 우십시오(통곡하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여러분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10)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 마귀를 대적하라(7절) :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은 단순히 마귀의 유혹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불순한 충동을 일으키는 마귀의 공격에 저항하라(resist)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왜 교회에서 싸움이 끊이지 않는가


1) 싸움과 다툼은 지체 속에 있는 싸우는 정욕에서 나온다(1절)


• 싸우는 정욕은 : 싸우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정욕을 뜻합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싸워서라도 기어코 얻고야 말겠다는 것이 싸우는 정욕입니다.


탐욕스러우며 남의 주목을 끌기를 원하는 자는 싸우고 다투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이런 싸우는 정욕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옛 본성’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것입니다. 싸우는 정욕을 가진 자들은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것에서 쾌락을 느낍니다. 야고보는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몸 되신 교회를 파괴시키는 자들이므로 곧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여 싸우는 아주 사악한 것임을 경고합니다.


2) 욕심을 내고, 시기하고 살인해도 얻지 못하므로 싸운다(2절)


• 다툼 : 어떤 상황에서 울컥하고 분노가 일어난 상태
• 싸움 : 그때 생긴 분노를 계속해서 마음에 품어 적개심으로 발전된 상태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싸움과 다툼을 전쟁(wars)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적개심을 가지고 계속 진노의 눈으로 바라보는 상태가 마치 전쟁을 앞두고 서로 대치상황에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런 싸움은 싸우는 정욕을 좇아 행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들은 시기하고 살인하기까지 할지라도 그 마음에 있는 욕망을 채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다툼과 싸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다투고 싸워서 서로 분열되는 것에서 즐거움과 쾌락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3)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조차도 싸움의 도구로 이용한다(3절)


이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조차도 싸움의 도구로 이용합니다.
‘정욕으로 쓰려고’는 ‘자신의 향락과 쾌락을 위하여’입니다.
자신의 향락과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지금 다투고 싸우는 일을 통해서 쾌락을 얻고 있으므로, 그 쾌락을 계속 얻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계속 싸움을 일으켜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싸우도록 하기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기도 응답이 없는 이유 :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3절)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3절)의 말씀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정욕으로 쓰려고 구한다는 뜻은?


‘정욕으로’로 번역된 ‘헤도나이스’는 욕망 정도가 아니라 ‘향락, 쾌락’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의 향락과 쾌락을 즐기기 위해 구한다는 뜻입니다. 더 강한 육체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세상 것을 더 많이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자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쓰레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2) 예배와 경건을 욕망을 채우려는 도구로 이용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나갔던 자들에게 다시 회복의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와 경건입니다. 세상에 나가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허물과 죄를 용서받은 후에 예배와 경건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이어갑니다.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바로 예배와 경건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죄악에 빠진 사람이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통로인
예배와 경건을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도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유일한 탈출구를 콘크리트로 막아버리는 것과 같이 위험하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와 경건을
자기의 마음에 위안과 감동을 얻기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거짓 예배, 거짓 경건을 경고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주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기도이고,
우리도 평생에 해야 할 기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나를 사용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어주옵소서.”
“나를 사용하여 주님의 일을 다시 행하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내가 부족하니
그 부족한 것을 채워달라고 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변화시켜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한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변해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바꾸시고, 하나님께서 길을 바꾸셔서 나를 좀 즐겁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 역시 하나님 나라에서 쓰레기 취급받는 못된 기도라는 것을 야고보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3. 세상과 벗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


1) 세상과 친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4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한 적이 없으니 바울만큼은 아니라도 보통 수준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야고보는 보통의 오락이나 취미 활동이나 직장이나 학교생활일지라도 그런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사귐을 갖지 못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일이라고 경고합니다.


• 여기에서 우리가 분별해야 할 것은
‘내 마음속에 담겨 있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려는 것이냐,
무엇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세상일에 지나치게 분주한 것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을 통해 영의 생명을 얻어 구원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성령께서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5절)


우리 안에 계신 성경께서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면 성령께서 이를 시기하셔서
우리가 다른 것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시기하신다고 표현했으나, 사실은 시기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사랑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니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을 내려서라도 하나님을 다시 찾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4. 죄의 욕망을 이기는 법 : 하나님께 가까이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 오던 복도 달아납니다.
또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하여도,
또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 믿음을 잃어도 주께서 주시는 복은 사라지고 맙니다.


야고보는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귀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능들을 자극하고 충동하여
불평하게 하고, 좌절하게 하고, 유혹에 빠지게 합니다.


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마귀를 대적하라 : 마귀의 충동을 거부하고 저항하라(7절)


①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을 자극합니다(약 4:1).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마귀가 우리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싸우는 정욕’이란 싸우고 다투는 것을 통해서 쾌락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귀는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욕망을 자극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야고보가 말하는 싸우는 정욕을 자극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돈에 대한 욕망을, 어떤 사람에게는 좌절과 절망의 마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향락과 쾌락에 대한 욕망을 자극합니다,


② 마귀를 대적하라. 마귀를 저항하라


야고보는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욕망을 자극하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대적하라는 것은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내 안에 있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울컥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에 저항하고, 나에게 좌절과 절망을 심는 것에 저항하고, 향락을 좋아하는 내 안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에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③ “마귀야 물러가라”하고 저항하십시오.


갑자기 유혹이 불같이 일어날 때, 갑자기 울컥하며 화가 날 때,
갑자기 죽을 것 같은 좌절감과 절망감이 밀려올 때
마귀가 나를 자극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 나를 자극하는 마귀를 향하여 “마귀야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외치며 저항하십시오. 그리고 주께 이 욕망에 무너지지 않도록 도움을 청하십시오.


3)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마십시오.


우리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마귀가 우리 안에 있는 옛 본성을 건드려서 우리를 흉악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파괴시키려는 마귀와 싸워야 합니다. 나에게 미움과 증오심을 갖게 한 것도 마귀요, 나에게 세상 즐거움에 빠지게 한 것도 마귀입니다.


마귀는 나 혼자서는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주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4) 성령께서 도우십니다(약 4:5절)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에 벗되어 살도록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성령을 내 안에 채워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5) 하나님께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십니다(약 4:8절)


하나님을 찾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결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를 만나시고 그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6)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8절)


마음을 정결하게 하라는 것은
회개하여 주님의 피로 나의 허물과 죄를 날마다 씻어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사귐의 시간을 가지면 우리의 마음과 영이 정결해집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보고
나의 잘못된 점을 발견할 때마다 주님의 피로 씻어내는 일을 날마다 계속 하십시오.


7) 슬퍼하고 애통하며 우십시오(9절)


회개는 단지 내가 잘못한 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8)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높여주십니다(10절)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나는 단 하루도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우리에게 죄를 이길 힘을 주십니다. 주께서 나를 높여주십니다.


● 묵상 :


① 거듭난 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어도 죄의 습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주께로부터 새로운 신령한 본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신령한 본성이 들어왔다고 해서 옛 본성이 다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렇게 두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때로 갈등과 마음의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② 신령한 새로운 본성으로 살아가기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늘 주님 안에서 신령한 삶을 살기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여 주께서 나의 죄를 씻어주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옛 본성이 힘을 잃고,
주께서 주신 신령한 본성이 더욱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순간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워
우리의 영의 건강이 말할 수 없이 나약해지면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옛 본성이 기어 나와 나를 사로잡아서
나를 아주 흉악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싸우는 정욕에 사로잡혀서
다툼과 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하옵소서.


2. 세상과 벗되어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늘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신령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4. 중보기도 : 이 땅의 교회들이 그 신령한 모습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안개와 같은 인생(야고보서 4:11~17)


* 본문요약


형제(다른 성도)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비방하고 그를 심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을 만드시고 재판하시는 이는 우리를 구하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시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이기에 남을 판단하겠습니까? 일 년을 하나님을 떠나 멀리 가서 장사를 하여 이를 보리라고 하는 자들은 인생이 안개와 같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이면 이것이나 저것도 하리라고 말해야 합니다. 허탄한 자랑을 일삼는 것이나 마땅히 해야 할 줄 알면서도 선을 행치 않는 것도 죄가 됩니다.


찬 양 : 350장(새 320) 나의 죄를 정케하사
356장(새 216) 성자의 귀한 몸




* 본문해설


1.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11~12절)


11) 형제들이여, 피차에(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형제를 비방하거나 자기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율법을 판단한다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심판하는 자입니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율법을 만드신 이와 심판하시는 이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는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망시키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심판)합니까?


- 비방하지 마십시오(11절) : 카탈랄레이테
‘비방하다’로 번역된 ‘카탈랄레이테’는 ‘타인을 멸시하며 말하다, 다른 사람을 적대하여 비방하고 험담하여 말하다’는 뜻입니다. 비방은 악마의 일입니다. 악마(디아볼로스)라는 말은 ‘참소자’, ‘비방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잘못을 크게 부풀려 그를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공격해서 스스로 자멸에 빠지게 하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 판단하는 자(11절) : 크리논
‘판단하다’로 번역된 ‘크리논’은 ‘심판하다, 판결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상대를 최종적으로 심판하고 판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위에 서서 그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고 그를 비방하는 것,
남을 판단하며 멸시하는 것’은 형제의 명예를 손상시켜 삶의 의욕을 꺾는 행위로
하나님의 심판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 너는 누구관대(12절) :
남을 판단하고 있는 사람 역시 그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데, 마치 자신이
생명을 움켜쥔 심판자인 것처럼 남을 판단하느냐고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2. 허탄한 생각을 경고함(13~17절)


13) 들으십시오. 여러분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하여 돈을 벌겠다”하고 말하는 자들이여,
14) 내일 일을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아침 안개입니다.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일도 할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16)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우쭐대면서 교만한 마음으로
허탄한 자랑을 하니), 이런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17) 그러므로 누구든지 해야 할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죄가 됩니다.




* 묵상 point


1.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


1) 서로 비방하지 마십시오(11절)


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서로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웃은 서로 염려하고, 서로 관심을 가져주며, 서로의 곤경을 돌보아주어서 어려움 속에서 이길 힘을 갖게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 좋은 예입니다. 그는 강도 만난 자가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 평가하지도 않았고,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곤경에 처한 그를 도와주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피차에 이런 좋은 이웃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②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멸시하고 비난하는 자는 마귀에 속한 자입니다.


그런데 남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험담하는 것은 곤경에 처한 자를 비난하여 더 큰 곤경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지도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갈 의욕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본래 이런 일은 마귀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마귀를 뜻하는 (다아볼로스)는 ‘참소자, 비방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잘못을 발견하면 그것을 지속적으로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여
스스로 자기를 파괴하게 만듭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은 마귀의 이런 참소 행위를 닮은 것입니다.


● 묵상 :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남을 비방하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요즘 인터넷으로 남을 비방하는 악플들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고통을 받다 목숨을 끊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가 다른 사람을 고통 받게 한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이 익명으로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이라 여기지 마십시오.
사람보다 더 무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12절)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는 사람을 구원하기도 하시고 멸망시키기도 하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별하는 판단은 해야 하겠지만, 마치 내가 심판관이 된 것처럼 그를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권을 빼앗는 일입니다.


3) 그런데 당신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12절)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돌로 치라고 말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같은 죄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사람이 남의 교만을 더 참지 못합니다. 음란한 사람이 남의 음란을 더욱 비방합니다. 거짓된 사람이 남의 거짓을 더 쉽게 밝혀냅니다. 자기가 거짓말을 잘 하니까 남이 거짓말 하는 것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입니다.』 - 홍정길 목사


● 묵상 : 우리는 그 사람의 극히 일부분의 것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 사람이 그 말과 행동을 하기까지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모든 일들을 다 알고 파악하기 전에 함부로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심판권을 탈취하는 행위로
감히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2. 허탄한 생각에 대한 경고


1) 시간을 자기의 소유로 여긴 죄(13절)


① 잠시 하나님을 떠나 어느 도시에 가서 일 년 동안 돈을 벌겠다는 자들이여(13절)


어떤 사람이 오늘이나 내일, 혹은 1년 동안 아무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하여 큰 이익을 남기리라는 계획을 세웠다면 이것을 죄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은 자기의 미래에 대하여 미리 계획을 세우며 사는 자입니다. 꿈과 비전을 갖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자가 아닌가요?


그런데 야고보는 이런 자를 향하여 인생이 아침 안개와 같이
쉬 사라지는 허망한 것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라고 공격합니다.


② 잠시 동안만 하나님을 떠나는 것인데 왜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야고보는 미래를 전혀 계획 없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미래의 계획을 세울 때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잠시 동안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육신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겠다고 말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마귀는 단 몇 달이 아니라 며칠 동안의 틈만 있어도
우리를 얼마든지 타락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이라는 것을
가볍게 여긴 것이 문제입니다.


③ 물질 뿐 아니라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몸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 중에 십일조를 주님의 것으로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시간 중에 일부는 분명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계획을 세우더라도 주님의 뜻 안에서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관계없이 오직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그 시간을 자기가 마음대로 움직이는 자로 여기고 있으니
이 역시 자신을 창조주와 동급으로 여기는 것이므로 엄청난 죄가 되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14절)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내가 내일을 맞이할지 그것조차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은 고사하고 단 한 시간 후의 일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라도 하나님을 떠나 살겠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 사는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거두시면
그는 그때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3)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모든 것이 죄이다(16절)


하나님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이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곧 자기 인생의 주요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자기 인생의 하나님이니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기도했더니 이렇게 교회가 부흥했다든지, 내가 전도했더니 어떻게 되었다든지... 이렇게 자기 경건을 자랑하는 일도 조심하십시오. 자기 실력이나 가문이나 학벌이나
그 밖에 어떤 것이라도 자기를 자랑하는 일을 조심하십시오.


4)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17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죄에는 ‘허물’과 ‘죄’의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허물’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을 말하고,
‘죄’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고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만 죄라고 여기지만,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도
죄의 다른 한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죄의 목록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것을 알면서도 예배드리지 않은 죄,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사귐을 가져야 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과 사귀지 않은 죄, 다른 성도나 이웃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있고, 또 그 일을 내가 능히 도울 수 있는 일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죄... 이 모든 것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과 같은 죄인 것입니다.


5)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도 할 것이라”하고 말하라(15절)


그러므로 야고보는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도 할 것이라고”하고 말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내가 계획을 세웠을지라도 주께서 나를 더 살게 해 주셔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주님의 뜻을 묻는 자가 되십시오.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크고 엄청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주님의 뜻을 묻는 사람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자주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 뜻을 알려주시면 그 뜻대로 행하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 25:4~5)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시 32: 8)


인생의 꿈과 목표와 비전을 세우기 전에
먼저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내게 그 길을 보이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 기도제목


1.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고 멸시하며 비방하는 죄를
범하지 말게 하옵소서.


2. 마치 내가 시간을 내 소유로 움켜쥔 자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나를 자랑하는 죄를 범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4. 주께서 내게 말씀을 주실 때마다
그 말씀대로 행하기를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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