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저자
전통적인 견해는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분명히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가운데 적어도 몇 가지는 목격한 사람이다(1:1-3).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기록 목적
요한일서의 독자들이 성육신을 부인한 어떤 형태의 거짓된 교훈에 부딪쳤음이 이 편지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런 생각은 교회 안에 잇엇다가 이제는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것임이 분명하다. 요한은 그들이 ‘나갔다’(2:19; 4:1)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후 2세기에 영지주의라 불리는 사상체계가 등장하였는데, 이 사상체계는 기독교적 사상과 이교적 사상을 둘 다 취하는 것이었다. 영지주의는 지식을 강조했으며, 지식을 전수받은 자들에게만 알려진다는 구원의 길을 가르쳤다. 그리고 육체라는 물질적인 감옥으로부터의 해방과 하나님을 향해서 상향적으로 올라가는 단계를 가르쳤다. 초기에 영지주의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영지주의 사상이 1세기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요한은 그러한 사상 체게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그 사상 체계는 물질이 본래 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은 그런 악한 물질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요한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들은 기독교의 핵심을 제거하려고 성육신을 부인했던 것이다.
진짜로 사람이 되지도 않았으며, 진짜로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않았다면, 우리의 죄를 위한 어떠한 속죄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고결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이단들이 지식을 강조하면서, 품행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한은 품행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명책히 밝힌다.
그러나 이 편지가 단순히 이단에 대한 반박은 아닌 것이다. 요한 자신이 우리에게 직접 말했듯이 이 편지에는 매우 적극적은 목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로라’(1:3-4)고 쓰고 있다. 그는 또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복음서는 전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이 편지는 신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그 믿음이 뜻하는 것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르쳐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깨닫게 되면
요한은 요한제 1서신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진 자의 세 가지 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표지는
1. 의로운 삶
2. 형제 사랑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육하신 이로 믿는 믿음
이 편지를 지배하는 두 가지 위대한 사상은
1. ‘하나님은 빛이시다’(1:5)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4:8, 16).
하나님은 우리의 지성에 빛을 주는 원천이시며, 자녀들의 심장에 따스함을 주는 원천이시다. 이 자녀들은 그에 합당하게 최고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살아가야 한다. 이 점에 대한 강조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2:1-6; 3:3, 6, 9; 5:1-3).
연대
저술 연대에 도움되는 자료는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일서가 1세기 말에 작성되었다고 본다.
1:1-4요한일서
저자
전통적인 견해는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분명히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가운데 적어도 몇 가지는 목격한 사람이다(1:1-3).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기록 목적
요한일서의 독자들이 성육신을 부인한 어떤 형태의 거짓된 교훈에 부딪쳤음이 이 편지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런 생각은 교회 안에 잇엇다가 이제는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것임이 분명하다. 요한은 그들이 ‘나갔다’(2:19; 4:1)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후 2세기에 영지주의라 불리는 사상체계가 등장하였는데, 이 사상체계는 기독교적 사상과 이교적 사상을 둘 다 취하는 것이었다. 영지주의는 지식을 강조했으며, 지식을 전수받은 자들에게만 알려진다는 구원의 길을 가르쳤다. 그리고 육체라는 물질적인 감옥으로부터의 해방과 하나님을 향해서 상향적으로 올라가는 단계를 가르쳤다. 초기에 영지주의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하지만 영지주의 사상이 1세기에도 나타나고 있었다.
요한은 그러한 사상 체게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다. 그 사상 체계는 물질이 본래 악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하신 하나님은 그런 악한 물질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을 수 없으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요한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들은 기독교의 핵심을 제거하려고 성육신을 부인했던 것이다.
진짜로 사람이 되지도 않았으며, 진짜로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않았다면, 우리의 죄를 위한 어떠한 속죄도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고결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이단들이 지식을 강조하면서, 품행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한은 품행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명책히 밝힌다.
그러나 이 편지가 단순히 이단에 대한 반박은 아닌 것이다. 요한 자신이 우리에게 직접 말했듯이 이 편지에는 매우 적극적은 목적이 있다. 그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로라’(1:3-4)고 쓰고 있다. 그는 또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복음서는 전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이 편지는 신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그 믿음이 뜻하는 것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르쳐주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깨닫게 되면
요한은 요한제 1서신에서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가진 자의 세 가지 표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표지는
1. 의로운 삶
2. 형제 사랑
3. 예수님을 하나님의 성육하신 이로 믿는 믿음
이 편지를 지배하는 두 가지 위대한 사상은
1. ‘하나님은 빛이시다’(1:5)
2. ‘하나님은 사랑이시다(4:8, 16).
하나님은 우리의 지성에 빛을 주는 원천이시며, 자녀들의 심장에 따스함을 주는 원천이시다. 이 자녀들은 그에 합당하게 최고의 기준에 부합하도록 살아가야 한다. 이 점에 대한 강조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2:1-6; 3:3, 6, 9; 5:1-3).
연대
저술 연대에 도움되는 자료는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요한일서가 1세기 말에 작성되었다고 본다.
1:1-4 서문
1:5-2:6 하나님과의 사귐
2:7-17 새 계명
2:18-27 그리스도인과 적그리스도
2:28-3:10 하나님의 자녀들
3:11-18 서로 사랑하라
3:19-24 확신
4:1-6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
4:7-2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5:1-5 믿음의 승리
5:6-12 아들에 대한 증거
5:13-21 영생에 대한 지식 서문
1:5-2:6 하나님과의 사귐
2:7-17 새 계명
2:18-27 그리스도인과 적그리스도
2:28-3:10 하나님의 자녀들
3:11-18 서로 사랑하라
3:19-24 확신
4:1-6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
4:7-2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5:1-5 믿음의 승리
5:6-12 아들에 대한 증거
5:13-21영생에 대한 지식
<글 : 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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