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1장 - 핵심
1:1-11문안 인사와 함께 성도들이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확고한 믿음에 입각한 경건 생활에 힘써야 한다는 교훈이다.
신의 성품에 참예함(1:4)후기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신성하고 불멸하는 것이므로 부단한 자기 수련에 의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불교나 힌두교에서도 인간의 내면에 신과 같은 거룩한 성품이 있으므로 참선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의 타락 이래 모든 인간의 본성이 부패해졌다고 한다(롬 3:10-18).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성도가 스스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성화의 단계에 따라 점차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후서 1장 - 묵상
‘하나님을 안다’는 것 ( 1:2 )‘하나님을 안다’라는 표현의 의미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인식을 말합니다. 이 인식을 통하여 천국에 관한 잘못된 사실을 구별할 수 있고 거짓 교사와 유혹자들에게 담대히 맞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성도들의 덕목 ( 1:5-7 )성도의 덕목은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이같은 덕목이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믿음을 통해서 그 외의 덕목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의 확신 ( 1:10, 11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하여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이것들과 함께 실족지 아니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넉넉히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실족이란 영적인 범죄를 가리키고 부르심과 택하심의 보장은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이 약속은 성도가 그리스도인의 덕목을 지켜야만 성취됩니다.
베드로가 말한 예언 ( 1:21 )베드로는 예언에 대해서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 없이 기록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 Q&A
1장2절Q-본서에서 ‘하나님을 안다’라는 표현의 의미는(1:2)?
A-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성품에 대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인식을 말합니다.
-이 인식을 통하여 천국에 관한 잘못된 사실을 구별할 수 있고 거짓 교사와 유혹자들에게 담대히 맞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1장3,4절Q-영적 성숙이 왜 중요한가(1:3, 4)?
A-이단의 거짓된 사설에 대처할 수 있는 길은 정통 교리에 대한 바른 지식 뿐이기 때문입니다.
1장5-7절Q-성도들이 가져야 할 덕목들은(1:5-7)?
A-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사랑.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믿음을 통해서 그외의 덕목들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1장10,11절Q-‘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해야 할 이유는(1:10, 11)?
A-언제든지 실족치 아니할 수 있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넉넉히 받을 수 있기 때문.
-여기에서 실족은 영적인 범죄를 가리키고 보장은 약속으로 주어지는데 그리스도인이 덕목을 지켜야만 이러한 약속이 성취됩니다.
1장21절Q-베드로는 예언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1:21)?
A-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류 없이 기록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 Study
서론 ( 1:1-4 )Ⅰ. 서론 1:1-4
1. 이 서신을 기록한 사람에 대한 묘사(1)
그는 시몬과 베드로라는 이름뿐 아니라 사도와 종이라는 직함으로 이 서신을 기록했다. 그는 여기서 스스로를 사도라고 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칭하고 있다. 이러한 주님의 종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가! 그것은 죄없고, 부끄럼없는 일이다.
2. 이 서신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1)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로 묘사되고 있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참된 믿음은 보배로운 은혜라고 하겠다. 참된 믿음은 매우 탁월한 것이며 그것을 소유한 자에게 큰 유익과 이득을 가져다 준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믿음은 각각의 그리스도인과 사도에게 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것이다. 즉 그것은 양자에게 똑같이 보배로운 것이다. 즉 그것은 양자에게 똑같이 보배로운 결과를 가져다 준다. 누가 믿든 믿음은 동일하게 '보배로우신' 구세주를 붙잡는 것이며 동일하게 보배로운 약속들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믿음을 얻는 것도 그렇거니와, 믿음이 보배로운 것도 그리스도의 의 때문이다.
3. 사도 베드로의 축복(2-4)
〔1〕은혜와 평강이 더욱 많게 되는 방법과 수단. 그것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이다.
〔2〕우리가 이미 받은 것이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구하도록 독려해 준다. 참된 영적 생명, 그리고 경건한 삶과 경건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며 관계하고 있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를 믿는 것은 모든 영적인 도움과 위로를 얻는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를 효과적으로 부르신 분으로서 모시고 그렇게 인정해야 한다. 본문에서도 그렇게 묘사하고 있다: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3절). 사람들을 부르시거나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을 영광과 덕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이다.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것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능력이다. 베드로는 은혜와 평강이 증가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고무시켜 가고 있다. (1) 약속이 가져다 주는 선한 것들은 지극히 위대한 것들이다. 죄의 용서는 그 축복들 중의 하나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가증한 죄들을 용서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2) 복음이 약속하는 축복들은 매우 보배로운 것이다. 신약에서의 위대한 약속은 성령이시다. (3) 복음의 약속들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있게 되며 그를 위해 봉사하게 된다. (4) 성령께서 신의 성품을 일으키는 자들은 타락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된다. 죄가 세상 사람들을 정욕으로써 지배하고 있다. 그들의 욕망은 죄에 매여 있으며 따라서 죄가 그들을 지배하게 된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방법은 우리가 그 안에 머물기를 기뻐하게 하는 것이다.
믿음의 진보에 대하여 (1:5-11 )Ⅱ. 믿음의 진보에 대하여 1:5-11
이미 보배로운 믿음을 얻고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 자들은 매우 복된 출발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마치 우리가 이미 온전케 된 것인 양 그안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더 큰 은혜를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강조하여 역설하고 있다. 신앙 안에서 진보를 가져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매우 부지런히 힘쓸 수 있어야 한다. 더욱 힘씀이 없이는 거룩케 되는 일에 있어서 아무런 결과도 얻을 수 없다.
〔1〕신자들이 나아가는 단계 (5-7절)
(1) 신자는 덕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공의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뒤이어 지식과 절제와 인내가 오게 된다. 우리는 이 덕이, 신자들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게 해주는 힘과 용기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겁많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실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이 덕은 우리가 살아 있을 동안 뿐 아니라 우리가 죽게 될 때에도 아주 뛰어나게 필요하게 될 것이다.
(2) 신자는 그의 덕에 지식을, 즉 용기에 분별을 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분별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과 우리가 속해야 할 처소와 무리에 대해서 살펴 보게 해 준다.
(3) 우리는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본능적인 삶에 필요한 것들을 바라고 사용함에 있어서 절제 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것들을 지나치게 욕망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좇고자 하는 열망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4) 절제에 인내를 더하라. 그것은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시련을 받으며,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 우리가 받는 고난들은 우리가 죄값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더욱 적은 것이다.
(5) 우리는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인내로써 환난을 견뎌내게 될 때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며 그렇게 됨으로써 그들은 참된 경건에 기초한 어린아이와 같은 경외와 경외하는 사랑을 갖게될 것이다.
(6) 우리는 형제 우애 즉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인된 모든 자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더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한 분 아버지의 자녀된 자로, 특별히 우리에게 가깝고 사랑스러운 자와 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 혹은 모든 인류에 대한 선의의 사랑을 더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혈통으로 모든 사랑을 더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혈통으로 모든 족속을 만드셨다. 따라서 모든 인류는 동일한 인간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로 동일한 자비와 동일한 환난에 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모든 사람에 대해서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2〕받아야 할 은사.
이러한 것들이 '그들에게 있되 흡족히 있기'를 위해서 계속적으로 힘쓴 자들에게 주어지는 유익들(8-11절).
1) 보다 일반적인 면(8절): 우리안에 그리스도의 온갖 은혜가 있되 넘치게 있게 되면 우리는 일이 없거나 열매 없는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의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열심 있고 활달한 자들이 될 것이며 뛰어난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많은 열매를 내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거나 아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것이다. 이것은 한 은혜에 다른 은혜를 더함으로 잇달아 오게되는 필수적인 결과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모든 은혜가 마음 가운데 있게 될 때 그것들은 서로 개선되어지고 강화되어지기 때문이다. 은혜가 넘치는 곳마다 반드시 선한 일도 넘칠 것이다.
베드로가 증거하는 그러한 경우에 있게 되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일인가(9절). 앞서 언급한 은혜들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영적인 것과 하늘에 속한 것에 대해서 소경인 자다. 원시치 못하고, 즉 그는 이 악한 현세를 볼 수 있고 사랑하지만 다가올 세계에 대해선 아무런 분별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내세의 두렵고 큰 일에 대해서 소경인 자들의 상태란 얼마나 가련한 것인가. 그러나 이것이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을, 공급하지 않는 자들에게 있게 될 비참함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은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 만큼이나 뒤도 역시 돌아볼 수 없다. 그들의 기억력은 분명하지 못한 것이어서 지난 일을 오래 기억할 수도 없다. 자주 마음을 일깨워서, 주님의 것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진지한 약속과 '육체와 영의 모든 더러움'을 벗어 버리는 것에 대해서 자주 진지하게 숙고하라.
2) 두 가지 특별한 이익(10-11절): 그것은 은혜 안에 견고하게 있는 것과 영광에 이르는 승리이다.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는 것은 대단히 많은 수고와 애씀을 필요로 한다. 즉 반드시 우리자신에 대한 면밀한 시험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수고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서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라. 이는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얻게 되는 유익이 크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넘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오 가운데 떨어질 때, 그들은 반드시 믿음안에 바르게 보존되어질 것이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온전하고도 완전하게 서게 될 것이다. 은혜 가운데서 성장하되 주의 일 가운데 풍성한 자들은 주님의 기쁨에 넉넉히 들어갈 것이며, 영원히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베드로가 준 최상의 도움 ( 1:12-15 )Ⅲ. 베드로가 준 최상의 도움 1:12-15
〔1〕베드로는 결코 나태하지 않을 것이며 부지런함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특히 생각나게 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12,13절).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지식을 더욱 진보시키고 그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리의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야 한다. 이는 우리로 어떠한 풍조의 교훈에도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진리 즉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 알 필요가 있는 더욱 특별한 진리 가운데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육신가운데 있는 동안 권면과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면, 사역자들이 이 장막에 있는 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권고하며 그들이 이전에 들었던 진리들을 기억나게 하는 것은 적합하고도 당연한 것이라고 하겠다.
〔2〕베드로는 이 문제에 대해 그를 열심있게 만든 것을 우리에게 말해간다(14,15절). 몸은 단지 영혼의 장막이다. 이 장막은 반드시 벗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 땅에 속한 집에 계속해서 오래 잊지 않게 된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베드로로 하여금 살아 있을 동안의 일에 더욱 열심을 내게 하였다. 그는 틀림 없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과 곧 작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후에 그가 그들에게서 떠난 다음이라도 그가 그들에게 전해 준 가르침을 그들이 기억하기를 바란다음 자신의 권면의 그의 글에 담고 있는 것이다.
복음의 신실성을 확증함 ( 1:16-18 )Ⅳ. 복음의 신실성을 확증함 1:16-18
이 복음은 근거 없는 이야기거나 또는 헛된 것이 아니라, 의심할 바 없는 사실과 지대한 관심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베드로의 가르침은 다음의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1) 복음의 전파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알게 해 준 것이다. (2) 또한 그리스도의 강림이 복음의 전파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강림을 매우 명료하고 상세하게 제시해 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로 언급 되어지고 있다. 그는 영원한 복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의 복되신 구주께서 이곳 지상에서 계실 때 그는 자주 자신의 신성을 보여 주셨다. 특별히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에게 그와 같이 증거하셨는데 '그들은 주의 모습이 변형될 때 그의 신적 영광을 친히 본자들'이다. 볼 수 있는 영광 외에도 귀로 들을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소리가 있었다.
얼마나 은혜스러운 말씀인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1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하신 가장 귀하신 말씀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매우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신 자였다. 여기서 지극히 큰 영광으로 일컫고 있는 이 음성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이 음성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이해할 수 있도록 들려진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이해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알고자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귀와 이해를 열어 주신다. 들을 뿐 아니라 이해하는 자들, 그리고 진리를 믿으며 하늘로부터 오는 소리의 능력을 깨닫는 자들은 복있는 자들이다.
영감된 성경 ( 1:19-21 )Ⅴ. 영감된 성경 1:19-21
본문에서 베드로는 복음의 진리성과 실재성을 증거하기 위해 또 다른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복음이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되어진 것으로 그들은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말하고 썼기 때문이다.
1. 구약 성경에 대한 설명(19)
그것은 더 확실한 예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구주의 능력과 강림에 대한 예언적인 선포이다. 그러나 구약이 예언인 것에 반하여 신약은 그 예언한 바의 역사이다. 구약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읽어라. 그리고 신약을 구약에 대한 가장 좋은 주해로 감사함으로 힘써 활용하라. 그러한 확고하고 확실한 말씀에 기초하고 있는 우리 믿음은 얼마나 확고하고 확실한 것인가!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은 그것들의 성취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더 확실하며 분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2. 성경을 상고하게 한 베드로의 격려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19절). 이는 곧 우리 지각으로 이 확실한 말씀을 이해하도록 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그 진리를 믿도록 하라는 말이다. 만일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일에 힘쓴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모든 면에서,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나 우리 자신에게 유익된 것에 있어서 잘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성경을, 하나님께서 온 땅위에 있는 어두움을 쫓아내시기 위해서 세상에 주신 빛으로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어두움을 고백해야 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영생을 얻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만일 인간이 구원을 얻을 만큼 지혜롭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이해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경의 빛이 성령에 의해서 어두워진 지각에 비추어 질 때'날이 새어 샛별이 그 마음에 떠오름'과 같이 된다. 이와 같이 어두워진 마음을 밝히는 것은 날이 새는 것과 같아서 온전한 날이 되기까지 전 영혼에 확산되며 퍼져간다. 그것은 성장해가는 지식이다. 진리를 행하는 자는 이 빛에 거하며, 행악자는 그 빛을 피한다.
3. 선행되어져야 할 조건(21)
그것은 모든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아는 것이다. 성경의 어떤 예언이라도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차이점이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은 그들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행하지 않았다. 성경의 선지자들과 기자들은 하나님의 뜻인 것만을 말하고 기록했다. 모든 개개인은 그것을 상고함으로 그 의미와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확실한 예언의 말씀을 주의하는 모든 사람은 성경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중대한 진리를 깨닫고 그렇게 인정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각별한 친구가 갖가지 두드러진 점과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지 믿을 뿐 아니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이라는 갖가지 합당한 점과 특성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서 잘 주의할 수 있기 전에 먼저 그것의 신적인 권위가 주지될 수 있어야 하며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4. 구약의 기록 과정(21)
〔1〕그것을 기록한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책을 위해 종사했던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성경을 기록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었다.
〔2〕이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성령께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되시며 거룩한 사람들은 단지 도구였다. 성령께서는 그들이 전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영감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술하였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가 그들의 입에 넣어 준 것을 효과적으로 말하고 쓰게 하였다. 그러므로 믿음은 성경에서 발견되어지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즉 우리는 성경을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 영감받고 영향받고 도움받아 쓴 책으로 높이 평가하고 존중해야 한다.
베드로후서 2장 - 핵심
2:1-22거짓 교사들의 이단 사설과 비도덕성을 지적함으로써 성도로 하여금 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내용이다.
유기(2:9)인간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인 예정은 선택 및 유기와 불가분적 관계에 있다. ‘유기’란 ‘내버리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구원받을 자로 선택되지 못함으로 필연적으로 멸망의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죄사함받고 구원에 이르지만, 믿지 않는 자는 죄에 대한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선택’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인 반면, ‘유기’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죄인인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항의할 수 없다.
베드로후서 2장 - 묵상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 ( 2:1 )거짓 선지자란 거짓 신을 대표하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된 예언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거짓 평화를 외치고 우상 숭배와 거짓말을 하고, 거짓 환상을 전하며 죄를 감추고 살았습니다. 또한 거짓 선생은 이단을 끌어들였고,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했으며,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으로 진리를 부인했으며 무례와 방종을 일삼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했으며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이단 ( 2:2, 3 )베드로가 말한 이단은 도덕적 방종을 조장하는 쾌락주의적인 영지주의(Gnosticism)를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고, 악한 속성인 호색과 탐심을 일삼았던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반드시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 2:9, 10 )하나님의 공의는 시험당한 자들을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심판날까지 그대로 두시며, 육체를 따라 정욕 가운데 행하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형벌을 내리심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거짓 교사의 불법성 ( 2:13-15 )거짓 교사들은 종교적으로 교만하고 도덕적으로도 부패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거짓 사설로 유혹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범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거짓 교사를 분별할 때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최후 ( 2:17-22 )거짓 교사들은 그리스도를 알았다가 배교한 사람들로, 이들은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에 얽매이게 됩니다.또한 이들은 거짓 교훈을 일삼는데 특히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며 심지어는 부활과 재림까지도 부인함으로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 Q&A
2장1절Q-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이란(2:1)?
A-거짓 선지자 - 거짓 신을 대표했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된 예언을 했음. 이들은 거짓 평화를 외치고 우상 숭배와 거짓말을 하고, 거짓 환상을 전하며 죄를 감추고 살았습니다.
-거짓 선생 - 이단을 끌어들였고,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 했으며,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가진 지식으로 진리를 부인했고 무례와 방종을 일삼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했으며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2장2,3절Q-베드로가 말한 이단은(2:2, 3)?
A-도덕적 방종을 조장하는 쾌락주의적인 영지주의 (Gnosticism)입니다.
-이들은 주를 부인하며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고, 악한 속성인 호색과 탐심을 일삼았던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반드시 멸망의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2장9,10절Q-하나님의 공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2:9, 10)?
A-시험당한 자들을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심판날까지 그대로 두시며,
-육체를 따라 정욕 가운데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의 공의를 따라 특별한 형벌을 주실 것입니다.
2장13-15절Q-거짓 교사의 불법성은(2:13-15)?
A-이들은 종교적으로 교만하고 도덕적으로도 부패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도 거짓 사설로 유혹하여 자신들과 동일한 범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거짓 교사를 분별할 때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2장17-22절Q-거짓 교사들의 최후 상태는(2:17-22)?
A-그리스도를 알았다가 배교한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더러운 세상에 얽매이게 됩니다.
-이들은 거짓 교훈을 일삼는데 주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부인하며 심지어는 부활과 재림까지도 부인하여 성경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 Study
거짓 선생들의 출현 ( 2:1-3 )Ⅰ.거짓 선생들의 출현 2:1-3
1. 거짓 선생의 정체(1)
교회의 전 시대에 걸쳐서 마귀는 속이는 자들을 보내는데 구약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신약에서는 거짓 선생들이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파괴적인 과오, 더 나아가서는 '멸망케 하는 이단'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파괴적인 이단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이단을 전하는 자들은 자기들을 값 주고 사신 주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과오를 가져다 주는 자들은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멸망케 하는 자들은 곧 자신들도 멸망하게 한다.
2. 다른 사람들에게 있게 되는 결과(2)
타락한 지도자들은 자기들을 따르는 많은 자들을 쉽사리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물 마시듯 죄악을 마시며 죄 가운데 살기를 기뻐한다. 죄악의 만연은 진리의 도에,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도에 악한 소문을 낳게 할 것이다.
3. 유혹자들이 자기들을 따르도록 추종자들을 이 끌어가는 방법(3)
그들은 아첨하는 말을 하며 달콤한 말과 허울 좋은 말로 순진한 이들의 마음을 속인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을 따르는 자들이 갖고 있는 부와 명성, 칭찬에 대한 욕망을 악이용하는 것이다.
거짓 선생들에게 임할 심판 ( 2:3-6 )Ⅱ.거짓 선생들에게 임할 심판 2:3-6
거짓 선생들이 아무리 성공해서 번성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심판은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불신자들은 이미 정죄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의의 심판의 본은 다음과 같다.
1. 범죄한 천사들(4)
죄인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형벌을 면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 범죄한 자가 훌륭한 자이면 훌륭한 자일수록 그가 받게 되는 형벌은 더욱더 엄하다. 죄는 죄를 범한 자들을 비천하게 하며 그 지위를 격하시킨다. 하늘의 천사들은 불순종 때문에 그들의 모든 영광을 빼았겼다. 죄는 어두움에 속한 일이며 어두움은 죄의 삶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비춤과 지시에 따라 행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얼굴 빛을 잃게될 것이다.
2. 옛 세상을 용서치 않으심(5)
만일 죄가 보편적인 것이라면 형벌 또한 모든 자에게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적은 수의 의인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보존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를 악한 자와 함께 멸하지 아니하신다. 그는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기억하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불경건은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거두어가며 그들을 철저한 파멸 가운데 빠지게 한다.
3. 소돔과 고모라(6)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셨으며 불로 소돔을 멸하셨다. 자기 백성을 불과 홍수에서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원수들을 멸하실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주 앞에서 크게 죄인된 자들은 가장 두려운 보응을 각오해야만 한다. 이전 세대에 죄인들에게 주어진 형벌은 다음에 오는 자들의 본을 위해 계획되어진 것이다. 경건치 아니한 삶을 사는 자들이 계속해서 불경건한 가운데 머무는 한 그들은 자신들이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의인을 구원하심 ( 2:7-9 )Ⅲ. 의인을 구원하심 2:7-9
하나님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심판하실 때 의인들에게는 구원을 베푸신다. 우리는 하님께서 롯을 구원하신 사실에서 이것을 알 수가 있다.
〔1〕롯의 특성(7절):그는 의인으로 일컬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악행하는 것을 좇지 않았으며 불의의 도시에서 홀로 바르게 행한 사람이었다.
〔2〕죄의 영향(8절):이 의로운 사람도 다른 사람들의 죄에 영향을 받았다. 악한 무리 안에서 우리는 죄책감이나 비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3〕의인의 상함(9절):이 의로운 사람의 비탄과 심령의 상함이 계속되었다. '날마다'라는 말이 그것을 보여 준다. 사람들의 사악함을 보고 듣는 데 익숙해졌다 할지라도 그는 그것에 섞이지 않았다. (1) 주께서 자기 백성된 자들을 아신다. 그는 경건한 자들을 따로 세우신다. 또한 혹 다섯 도시에 단 한 명의 의인 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는 그 한 명을 아신다. (2) 하나님의 지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이나 수단에 있어서 결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때때로 몹시 난처한 지경에도 빠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보여 주신다. (3) 경건한 자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그 방법을 모색하시며 자신의 능력으로 시험에서 구원하시는 역사를 행하신다. (4) 불의한 자들은 의로운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동참하지 못한다. 악한 자들은 심판의날까지 남겨지게 된다.
거짓 선생들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함 ( 2:10-22 )Ⅳ. 거짓 선생들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함 2:10-22
우리에게 거짓 선생들에 대해 경계시키고자 한 사도 베드로는 이제 더욱 신중히 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 육체를 따라 행하는 자들(10)
그들은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로운 가르침과 정반대되게 행하며 타락한 본성의 지시에 순응한다. 악한 생각은 종종 악한 행위를 수반한다. 또한 죄를 퍼뜨리는 자들은 사악을 증진시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죄의 길을 걷는 자들이며 더더욱 경건치 아니한 가운데로 나아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께서 권세로 그들 위에 세우시고 명예롭게 한 자들을 멸시한다.
2. 천사들의 모범(11)
베드로는 더욱 뛰어난 피조물인 천사들의 전혀 다른 행위를 제시함으로 그들의 죄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 가운데서 능력과 권세를 덧입은 자들보다도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자해 송사한다. 송사는 모든 경건치 않은 자들과 불의한 자들에 대해 심판자가 되시며 보수자가 되실 주 앞에서 행해지게 된다. 선한 천사들은 어떤 송사를 하든 혹독한 욕이나 천박한 비난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천사들을 닮아야 하겠다. 만일 악한 자들에 대해서 불평할 일이 있으면 격노나 욕으로 말고 동정함으로 하나님께 맡기라. 이는 우리가 온유하고 자비로우신 이에게 속해 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3. 이성 없는 짐승과 같음(12-14)
베드로는 그들이 가장 미천한 피조물과 어떻게 같은가를 설명해 간다.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므로 이성을 사용하지 못한다. 짐승들이 감각적인 욕망의 본능을 따르듯이 죄인들은 육욕적인 마음의 성향을 따른다. 이러한 자들은 그들 자신의 부패 가운데서 아주 파멸되어질 것이다. 그들이 무슨 일을 당하게 되든 그것은 그들의 불의에 대한 마땅한 대가라고 하겠다. 자신들을 망치는 난봉군과도 같이 그러한 죄인들은 자신들을 속이는 자들이며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곳의 모든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하는 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행하는 한 가지 죄가 자신들을 또다른 죄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눈은 음심으로 가득차 있으며 그들의 음탕한 외모는 그들 자신의 불결한 정욕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 안에 마찬가지의 것을 유발시키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이것이 그들이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이유이다. 스스로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마찬가지의 지나친 방탕 가운데 끌어 들이는데 아주 종종 성공을 거두곤 한다. 죄와 불경건 가운데 끌려 들어갈 가장 큰 위험 가운데 있는 자들은 굳세지 못한 자들이다. 마음이 은혜로 굳세게 서지 못한 자들은 쉽사리 죄의 길로 돌이키게 된다. 이러한 자들은 방탕하고 음란할 뿐 아니라 또한 탐욕하는 자들이다. 즉 그들은 부귀를 열망하며, 그들의 영혼의 바램은 이 세상의 재물이 된다. 온갖 정욕에 빠진 사람을 향해서 베드로가 '저주의 자식'이라고 일컬은 것에 대해 우리는 하등 놀랄 필요가 없다.
4. 저주의 자식(15-16)
베드로는 그들이 '저주의 자식'인 것에 대해서 증거해 간다. 그들은 바른 길을 떠났으며 잘못된 길로 갔다. 즉 그들은 생명의 길을 벗어났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는 이 길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임을 나타냄으로 이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 길을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 할지라도 부와 명예에 대한 욕망으로 발람은 그가 마땅히 행해야 할 길로부터 돌아섰다. 마음이 굳은 죄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책망에 부딪히곤 한다. 하나님께서는 도중에 그들의 길을 막으신다. 만일 한 죄인에 대해 그의 죄를 책망하는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의무 가운데로 돌이킬 수 있다면 발람에 대한 책망이 틀림없이 그러한 효력을 내었어야 했을 것이다. '말 못하는 나귀'가 말을 하여 그의 행위의 '미친 것'을 드러냈으며 악한 길로 가는 그의 길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5. 거짓 선생의 본성(17-20)
베드로는 계속 거짓 선생들에 대한 설명을 해 간다.
〔1〕그들은 '물 없는 샘'이다(17절). 진리의 말씀이 곧 생명의 물이다. 그러나 이 사기군들은 죄를 유포시키고 증진시키기 위해 텅빈 것을 가르치는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그들 안에 아무 진리도 없기 때문이다.
〔2〕그들은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이다(17절). 이것은 비를 수반하지 않는 구름이다. 이는 그 구름이 성령으로부터 난 바람에 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욕망의 광풍에 밀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름은 태양빛을 가리우며 하늘을 어둡게 한다. 이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어두움을 진전시키는 것으로 보아, 오는 세상에 그들이 어두움의 안개에 속한 자들인 것은 틀림이 없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과 만나는 자들을 미혹한다. 소리는 크나 아무 의미도 없는 허탄한 자랑의 말로 미혹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음란과 육체의 정욕으로 유혹한다. 사람들은 열심히 그리고 부지런히 범죄에 대한 기술과 기교를 터득한다. 그들은 매일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처럼 능수능란하며 성과를 거두는 자들이다. 진리를 고수하며 죄에서 멀리 있던 자들일지라도 한동안 그들이 피해있던 죄 가운데 들어서도록 미혹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혹자들에 의해서 배도자들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그들이 멸망의 종들인 것을 말해간다. 즉 그들은 그들 자신의 정욕에 매인 바 된 자들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함으로 우리는 이 미혹자들에게서 피할 수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여기에다가 또다른 사항을 덧붙이고 있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20절). 어떤 사람들은 한동안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다. 신앙적인 교육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제지시켜 왔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화되지도, 구원받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죄에 얽히게 되었을 때는 쉽게 극복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한 번 죄를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된다.
6. 배교의 상태(21,22)
배교의 상태는 무지의 상태보다 더 악하다. 이는 의의 도를 안 후에 그것을 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버린 자들의 비참함은 다른 범죄자들의 경우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행위로써 복음과 은혜를 멸시하고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서, 보다 더 분노 하신다. 사람들이, 토한 것을 다시 집어 먹을 때 그리고 자기들이 한번 벗어 버린 그 불경건에로 되돌아가 깨끗케 된 상태로부터 더러움 가운데로 뒹굴게 될 때 역시 그처럼 되어지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베드로후서 3장 - 핵심
3:1-13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재림관을 반박하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에 관해 교훈하는 내용이다.
베드로후서 3장 - 묵상
주의 재림 ( 3:1-10 )거짓 교사는 주의 재림에 대하여 만물이 자고 이래 여전하였듯이 우주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의 재림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지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고, 이미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헛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날’이 그렇게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날’은 도적같이 임하며, 그때가 되면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피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매일 성결하며 준비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조롱하는 자들 ( 3:3 )기롱하는 자들이란 헬라어로 ‘아무렇게나 취급하다’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무책임하고 무가치한 거짓 선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며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마지막 날에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의 경건한 자들 ( 3:11-13 )경건한 자들은 주님의 날이 이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이곳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더 가까이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재림에 대한 성도의 자세 ( 3:12 )성도는 재림을 위해서 준비하고(마24:44), 직분을 수행하며(눅19:13), 기다리고(고전1:7), 사모하며(딤후4:8), 기도하고(계22:20), 인내하며(요일2:28), 기쁜 소망을 가지고(단2:3), 확신하며(욥19:25, 26)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 Q&A
3장1-7절Q-주의 재림에 대한 거짓 교사와 베드로의 주장은(3:1-7)?
A-거짓 교사- 만물이 자고 이래 여전하였듯 전 우주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의 재림은 없다고 주장함.
-베드로 - 천지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고, 이미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헛되다고 비판했습니다.
3장3절Q-말세에 나타나는 ‘기롱하는 자들’은 누구를 가르키는가(3:3)?
A-거짓 선생을 말함.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하며 인본주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반드시 마지막날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3장9절Q-‘주의 날’은 왜 그렇게 더디 오는가(3:9)?
A-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 권고는 재림 지연을 비웃는 이단들에 대처하기 위한 영적인 무기를 수신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 한 말입니다.
3장10절Q-‘주의 날’은 어떻게 임하는가(3:10)?
A-도적같이 임하며,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심판을 피하려는 노력보다는 그 심판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매일 성결하며 준비성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장12,13절Q-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의 날에 어찌 될까(3:12, 13)?
A-주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할 것임.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이곳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3장12절Q-재림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3:12)?
A-준비하고(마24:44), 직분을 수행하며(눅19:13), 기다리고(고전1:7), 사모하며(딤후4:8), 기도하고(계22:20), 인내하며(요일2:28), 기쁜 소망을 가지고(단2:3), 확신(욥19:25, 26)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 Study
본 장의 목적 ( 3:1,2 )Ⅰ. 본 장의 목적 3:1,2
베드로는 그 문제를 더 잘 권고하기 위해, 말씀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거룩한 선지자들이 기록하였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1절).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서 명하신 것은 자주 기억되어져야 하며 또 기억하도록 강요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순수한 마음은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격려되어져야한다.
기롱하는 자들의 등장 ( 3:3-7 )Ⅱ. 기롱하는 자들의 등장 3:3-7
기롱하는 자들, 즉 죄와 죄로부터의 구원을 조롱하는 자들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다. 말세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도, 즉 복음을 조롱할 것이다. 신약에서의 신령하고 순결한 예배는 인간의 정욕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언급되고 있다.
〔1〕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가(3절):그들은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는 자들'이다. 즉 그들 자신의 마음의 생각과 욕망을 좇는 자들이다. 그들은 임의대로 살며 임의대로 말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길을 행하며 그들 자신의 말을 말하듯이 또한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며 그들 나름대로 원칙들을 정하게 될 것이다
〔2〕그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뇨' 하고 기롱하여 말할 것이다(4절): 만일 이 신앙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의 다른 모든 신조들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이 신앙은 다른 모든 신조에 결정적인 의미를 채워 주며 부여해 준다. 우리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그들은 주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그들은 그가 재림하시리라는 말조차 비웃을 것이다. 신자는 그가 재림하실 것을 바랄 뿐 아니라 그가 재림하실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가 재림하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확신한다. 그러나 이 유혹자들은 그가 재림하시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는 온갖 것을 행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그가 결코 재림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온갖 것을 행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 약속을 비웃을 것이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3〕그들은 조롱하면서도 마치 논쟁하는 척 할 것이다(4절): 이것은 기초가 탄탄한 추론의 방법은 못된다 할지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음흉한 것이다. 이것은 약한 심령을 가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쉽다. 그 약속을 받았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그들의 시대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어떤 시대에서도 그것이 실현될만한 가능성이 없다. 그런데 왜 우리가 스스로 그것으로 인해서 근심하는가? 바로 오늘까지도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행하시지 않은 일은 행하실 수 없거나 아니면 결코 행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결론지었을 것이다.
〔4〕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미 과거에 있었던 변화, 즉 노아의 시대에 세상이 물에 잠겼던 사건을 기억하게 하고 있다.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다(5절). 즉 그들은 입은 다문 채 슬쩍 넘겨버리려고 하였다. 사람들을 설득해서 그들이 찾으려 하지 않는 진리를 믿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알고자 유의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죄 가운데 빠지게 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1) 물심판(5,6절): 우주적인 대홍수의 때에 원리원칙이 이상하게 바뀐다. 즉 하나님께서 전에 둘로 갈라 놓으셨던 물을 이제 진노 가운데서 다시 하나로 합치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되어진 것이었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던 것도 바로 그의 능력있는 말씀에 의해서 였다.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고 했다. 후에 세상이 혼돈케 되어지고 파멸케 되어진 것 뿐만 아니라 그곳에 사는 인간까지 철저히 멸망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로 말씀에 의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남께서 이전에 세상에 행하신 변화이며 이들 기롱하는 자들이 보지 못하고 넘어간 변화이다.
(2) 앞으로 임할 불심판(7절): 우리는 여기서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 대한 두려운 기사를 접하게 된다.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심판은 아직 임하지 않는 것으로 비록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분명히 임하게 될 것이다. 세상이 한번 우주적인 대홍수에 의해 멸망되었던 사실은 세상이 다시 우주적인 큰 불에 의해서 멸망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 주께로 하여금 그것이 있을 것이다는 것을 알게 해 주자. '이제 하늘과 땅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다. 즉 그것들은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되어진 바 된것'이다. 심판의 날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이 멸망하는 날이다. 이제 장래 있게 될 심판을 기롱하는 자들은 그 날이 보응의 날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힘쓰라. 이는 그 날이 너희에게 구원의 날이요 유쾌하게 되는 대가 되게 하려 함이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음 ( 3:8 )Ⅲ.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음 3:8
우리는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부름을 통해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온유함과 애정을 가지고 말하고 있음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기를 거절한 경건치 않은 가련한 자들에 대해서 자비로운 관심과 선의의 사랑을 가졌다. 그리고 참된 신자들에 대해선 특별한 존대를 표하고 한다.
〔1〕베드로가 역설한 진리(8절). 그것은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의 하루 같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것이 항상 주 앞에 드러나 있다.
〔2〕이 진리의 중요성. 이것은 베드로가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당부한 한 가지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의 화평에 관한 진리이다. 따라서 그는 그것이 우리의 눈에 가려지지 않기를 위해서 애쓰고 있다. 즉 원문에 있는대로 하자면 '이 한가지가 너에게 숨겨지지 않도록'이란 말이다. 그러나 영원을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 ( 3:9-10 )Ⅳ.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 3:9-10
우리는 여기서 '주께서는 더디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즉 그는 정해진 때를 늦추지 않으신다. 그는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강림하시기로 정해진 때를 지키실 것이다. 선한 사람조차 하나님께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실상 그 시간이란 자신들이 정한 것으로서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는 다르다.
〔1〕사람들이 더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상은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심'이다. 즉 그것은 그 자신의 백성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시간을 더 주기 위함이며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로 자랄 시간을 더 주기 위함이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그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본성으로 행한 모든 죄에 대해서 회개하기를 요구하신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을 더 엄하게 다루실 것이다.
〔2〕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올 것이다(10절). (1) 주의 날의 확실성: 그 날이 아직 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날을 약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2) 그 날의 불시성: 그 날은 도적 같이 밤에, 즉 사람들이 모두 안심한 가운데 잠자고 있을 때에 임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생각지도 못하는 시기에, 따라서 사람들이 가장 마음을 놓고 있을 시기에 주께서 강림하실 것이다. (3) 강림의 장엄성: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모든 것은 불, 곧 죄가 세상에 가져온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불을 통과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에 대해서는 단지 정케하는 불이 되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점이 있는가! 우리 모두 그 날을 예비하는 현명한 자들이 되어 그 날이 우리에게 보응과 파멸의 날이 되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한 여러 가지 권면들 ( 3:11-18 )Ⅴ.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계한 여러 가지 권면들 3:11-18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교리를 교훈한 후에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1〕모든 행실에 있어서 경건하고 정결하라(11절).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런 풀어짐이 그들의 본래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회복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면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에 합당한 자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정결해야 하는가! 우리가 이제 보고 있는 것들은 잠간 동안에 사라져 버릴 것이며 또한 더이상 지금과 같이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남은 것을 바라보자. 이와 같이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온갖 행실이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소망하며 열심으로 바래야 한다. 가시적인 하늘과 체질이 풀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자들은 그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가시적인 하늘과 체질이 풀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자들은 그것들이 이 세상의 모든 가시적인 피조물의 찌꺼기들을 태우는 두려운 불에 의해 정제되어져서 더욱 영광스러운 하늘로 변하리라는 것을 소망함으로 기뻐할 수 있다.
(1)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바래야 하는가(13절):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에만 의가 거하고 있다. (2) 이러한 기대와 소망의 근거와 토대는 무엇인가(13절):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지 않은 것을 바라는 것은 억측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기대가 약속에 의한 것이라면 우리는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2〕14절에서 베드로는 그들이 다시 새롭게 될 것을 고려하며 재삼권면 한다. 온 세상의 심판주가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 때, 우리는 어떤 상태로 있을 것인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피도록 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준비를 해야 한다.
(1) 너희는 주 앞에서 평강 가운데서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고 화목한 상태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죄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케 된 자들은 유일하게 안전하고 복된 백성이다. 그러므로 평강을 좇으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하라. 우리 자신의 양심 안에서 화평하라.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하라.
(2) 너희는 그리스도 앞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는 화평 뿐 아니라 거룩함을 좇으라는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점도 흠도 없는 정결, 즉 절대적인 완전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완전히 거룩해야만 한다. 주의 날에 복된 그리스도인이 될 자들은 오직 부지런한 그리스도인들이다. 만일 그가 우리에게 정해 주신 일에 우리가 부지런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보답하실 것이다. 이제 우리로 부지런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다. 이는 "너희 주께서 강림을 지체하시는가? 이는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많이 줌으로서 영원을 준비할 시간을 많이 갖게 하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이다.
베드로는 사도 바울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참으심을 마찬가지로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을 인용하고 있다. 전에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를 책망한' 적이 있는 그 사람에 대해 이 할례자들의 사도는 얼마나 존경할만한 언급을 하고 있는가! 베드로는 그를 '형제'로 부르고 있으며 함께 그리스도인 된 자로서가 아닌 함께 사도된 자로서 부르고 있다. 많은 거짓 선생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했으나 베드로는 그가 사도인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그를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있다. 그는 바울을 비범한 지혜를 받은 자로 언급하고 있다.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베드로가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서로 관계한다면 이는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① 바울에게 있었던 뛰어난 지혜가 '받은 것'으로 언급되어지고 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각과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②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는 그 자신이 복음의 신비한 지식 가운데로 이끌려 간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이끌림 받기를 위해서 힘썼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더러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음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어떤 것들은 그 자체의 난해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또 어떤 것들은 그것의 탁월함과 고상함 때문에 이해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으며 또 다른 어떤 것들은 사람의 지성의 연약함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또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불행한 일을 행한다. 이는 그들이 성경을 곡해하며 억지로 풀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잘 배우지 못한 자들과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할 큰 위험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진리 가운데 굳게 서게 해주는 곳에서는 사람들은 과오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보호받는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빠지게 되는 죄의 치명적인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 심지어는 그들 자신의 파멸까지 가져오는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살펴 봄으로 우리가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3) 베드로는 그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다(17,18절).
〔1〕경계해야 할 두 가지 위험(17절):(1) 우리는 미혹 받음으로 진리로부터 돌이킬 위험이 있다. 성경을 가지고 읽는 자들 중에는 많은 사람이 자기들이 읽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또한 올바르게 이해한 사람들 가운데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믿음 가운데 굳게 서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이 모든 자들은 죄 가운데 떨어지기가 쉽다. (2) 우리는 미혹된 것에 의한 큰 위험 가운데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비참한 멸망을 가져올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했을 때'그들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떨어지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또한 그들의 행위도 닮게 될 것이다. 미혹에 이끌린 자들은 '그들의 굳센데서 떨어지게 된다.' 그들은 전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며 혼란 가운데 있는 자들로 쉴 곳을 알지 못한다.
〔3〕베드로의 권면(18절):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 가야' 한다. 우리 안에 은혜가 강하면 강할수록 우리는 진리 안에 더욱더 굳건히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그를 따르게 하며 그로 하여금 더욱 우리를 사랑케 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는 때에 우리를 타락의 자리에서 지켜주는 것이다.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JOY 조이 >
베드로후서 3장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천년 같이 하루 같이/베드로후서 3장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 속에 살며, 그 시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살고 있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천년 같이 하루 같이
베드로후서 3장
흐르는 시간의 길이는 과거나 현재, 남녀노소, 그리고 어느 곳에 살든지 누구에나 동일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시간 속에 살아가지만, 각 사람이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다 다릅니다.
어린이와 노인의 시간이 다르며, 아프고 힘들 때와 기쁘거나 즐거울 때의 길이는 다릅니다. 나이 들면 ‘세월이 쏜 살 같다’거나 ‘눈 깜박할 사이’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나이가 곧 속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구원의 길/베드로후서 3장
주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오심은 오늘 당장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할 때에 주께서 도적과 같이 갑자기 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천년 같이 하루 같이/베드로후서 3장
종말은 나와 무관한 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오늘 갑작스럽게 임하신다는 경고입니다. 나의 개인적 종말이나 전 우주적 종말의 때가 순식간에 닥칠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베드로후서 3장
그러나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실 백성을 위해 천년을 하루 같이 참고 기다리시기에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천년 같이 하루 같이/베드로후서 3장
천년을 하루같이 참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 심판 받을 존재를 향해 참고 기다리셔서 우리로 구원의 은총과 회복을 바라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의 은총을 덧입고 있습니다. blo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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