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복음서 연구

선한 사마리아 사람/ 마리아와 마르다- 눅10장

by 은총가득 2020. 11. 18.

선한 사마리아 사람(눅 10:25-37)

 

[ 성경묵상 ]

10:25-37은 예수님과 한 율법사와의 대화를 그 내용으로 한다. 대화의 내용인즉 영생의 방법과 이웃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율법사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25절). 이에 대해 주님은 직접적인 답변 대신에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고 다시 역질문하심으로써(26절) 율법사 스스로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하셨다. 그 대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다(27절). 이는 율법의 대강령으로 이 주님의 역질문에는 원칙적으로는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28절). 그러나 사실 사람이 결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감안할 때, 주님의 말씀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구약 율법이 예언하고 있는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율법사는 율법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율법의 대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자 자신의 이웃에 대한 선행을 과시할 목적으로 주님께 다시금 ‘내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하였다(29절). 이에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the Parable of the Samaritan)’를 통해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찾기 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바로 그 자신이 그러한 선한 이웃이 되어 이 땅에 오사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주가 되셨음을 드러내셨다. 우리는 여기서 누구보다도 율법에 정통하였던 율법사가 정작 율법의 근본 정신에는 무지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윗문단에서 언급된 내용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어졌다는 사실과 문맥적으로 밀접히 연결되고 있다. 복음의 비밀이 세상의 지혜로 알려지지 않는 것처럼,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단순한 성경 지식만으로 얻을 수 없다. 성경의 내용에 대한 정보(Inf ormation)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Understanding)는 별 개의 차원이다.

메시야와 더불어 길을 동행하면서도 그 길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율법의 지식에 정통하면서도 정작 율법 정신의 실천과는 무관했던 율법 전문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할까? 메시야가 행했던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던 고라신과 뱃새다와 가버나움 사람들이 끝내 그 기적들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실패한 사실에서(10:13-15) 우리는 어떤 경고를 받아야 할까? 천국의 비밀을 이해하고 있노라고 자족하고 있기에는 성경의 무지한 인물들이 우리의 모습을 너무 많이 투영(投影)시키고 있다. 성경에 투영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교만과 허영을 버리고 다시 한번 어린아이들과 같은 겸손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한 시편 기자의 간구를 우리 자신의 기도로 드려야만 할 것이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강도 만난 자의 이웃(눅 10:25~37)

[성경묵상] 1. 율법 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 가. 첫 번째 질문과 대답 :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질...

 

진정한 이웃 사랑-선한 사마리아인(눅 10:25-37)

찬송: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들어가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비유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naver.me


[ 성경대조 및 주해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러면 살 것이다."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예수께서 응답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 두고 갔다.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서,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그가 대답하였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hg)

 

우리의 이웃 ( 10:25-37 )

본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양심의 문제에 대하여 한 율법사와 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분명한 대답을 듣게 된다.

(1)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선을 행해야 되는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율법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려고 그리스도께 질문을 던졌다(25절). 율법사는 일어나서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만일 그리스도에게 이에 대해 지시할 특별한 처방이 있다면, 율법사는 이 질문으로 그것을 얻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특별히 지시할 사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의 가르침이 무용한 것이라고 헐뜯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 율법사는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런 악의가 없었고 사람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가듯이 그리스도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한 질문은 훌륭한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나 나쁜 의도로 그러한 질문을 했을 때 그 질문의 가치는 전적으로 상실되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질문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올바른 관심을 가지고 말하고 질문해야 한다.

1) 그리스도는 그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아셨지만 그의 질문의 어리석은 면에 의거하여 대답하지 않고 지혜롭고 선한 면에 대하여 대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그리스도는 그를 문답식으로 가르쳐 그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직업을 알고 계셨으므로 그에게 잘 가르쳐 주실 수 있었다. 그의 지식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어떻게 읽느냐'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가 하늘나라로 가는 데에 매우 유용할 것이다. 성경과 율법은 그리스도의 수중에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의지하고 거기에 나타난 길로 가야 한다. 기록된 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을 때 그것에 관해 율법에 기록된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 그는 율법, 즉 율법의 중요한 명령에 대해 훌륭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장로들의 전통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율법의 명령 중 첫째 가는 중요한 두 가지 율법에 대하여 말하였던 것이다. 이 두 가지 명령은 나머지 모든 율법을 포함하는 것이었다(27절).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가장 온화하고 완전하며 뛰어난 최상의 존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되고 열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최고의 사랑 즉 죽음만큼 강한 사랑이면서도 지적인 사랑이어야 한다. 우리는 온 영혼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으로 섬겨야 한다.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살아한다면 쉽게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해야 하며 악을 행해서는 안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3) 그리스도가 그의 대답에 대하여 칭찬하셨다(28절).

그리스도는 그가 한 말이 옳다고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도다. 그리스도 자신도 이것을 율법의 가장 큰 두 가지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2:37). 대답은 옳았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아 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즉 "너는 영생을 얻을 것이다."

4) 그는 지금 막 자기에게 지시될 일을 피하려 했다.

그리스도가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자기가 이 일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스도가 시인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려 했으므로 그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보다는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 속에 있는 그릇된 점을 겸손하게 알아보기 위해서보다는 자기들의 선행을 교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훌륭한 질문을 한다.

(2)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 율법사의 또 다른 질문이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그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이웃에 대해서라면 계율을 잘 지켰다고 확신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매우 친절하였고 공손하였기 때문이다.

1) 여기서 율법사의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그는 "너는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모든 이방인은 제외시켜라.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이웃이 아니고 우리 민족과 우리 신앙을 가진 자들만 우리 이웃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죽어가는 이방인을 보고도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도와 줄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2) 그리스도는 이 비인간적인 생각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비유로써 우리가 친절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과 우리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리 이웃으로 간주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① 이 비유의 내용 : 이 비유는 곤경에 처한 유대인이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구원받는 것을 보여준다.

㉠ 그 유대인은 강도에게 무슨 일을 당했다. 이 정직한 사람은 볼 일이 있어 평화롭게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큰 길이었다(30절). 아마도 이 일은 본문에 기록된 대로 그 당시 최근에 일어났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강도들을 만났다. 그들은 매우 잔인하였다. 그들은 그의 돈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옷도 벗겨 갔다. 또한 강도들은 그를 때려 상처를 입혔고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는 가버렸다. 우리는 강도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 그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 일을 보고 냉담했다. 그들은 거룩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할 자들이었다. 많은 제사장들이 여리고에 살면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그 길을 많이 오르내렸으며 레위인들은 그들의 수행원이었다. 그들은 그 길에서 강도를 만나 부상당한 사람을 보았다.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 그는 한 낯선 사람 즉 사마리아인에 의해 구출되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멸시할 뿐만 아니라 상대도 하지 않는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인정이 있었다(33절). 제사장은 자기 백성인 그 사람에게 마음을 닫았으나 사마리아인은 다른 민족인 그 사람에게 마음문을 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다. 비록 그가 유대인이었지만, 한 인간 그것도 불행을 당한 인간이었다. 이 사마리아인은 모든 사람을 존중하라고 배워왔으므로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는 마치 자신이 그와 같은 처지에서 동정을 받고 있는 듯했다. 이 사마리아인의 동정은 값싼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동하여 이 불쌍한 사람에게 손을 뻗쳤다. 이 사마리아인은 얼마나 친절한가. 그는 제사장과 레위인이 피해 지나갔던 그 불쌍한 사람에게로 갔다. 그는 그 이상의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 자신이 외과 의사의 일을 했다. 그는 그의 상처를 싸매기 위해 자신의 옷을 찢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름과 포도주를 부었다. 포도주는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사용했던 것이다. 그는 마치 자기가 상처를 당한 것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그 불쌍한 사람을 자기 짐승에 태우고 자기는 걸어서 주막이 있는 곳을 향해 갔다. 이 사마리아인도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일이나 하나님의 제자가 이와 같은 자비로운 행동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막에서 그를 돌보아 주었다. 그는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 적당한 음식을 주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기도를 했을 것이다. 그 불쌍한 사람이 자기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다음날 아침 주막을 떠나면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내어 주고 더 필요하면 돌아와서 갚겠다고 말하였다. 그 당시 돈으로 두 데나리온이 필요한 모든 액수에 대한 계약금임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일은 친구나 형제에게 기대할 수 있는 친절과 관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낯선 이방인이 그 일을 행하고 있다.

이 비유는 본래의 의도와 다른 목적에도 적용된다. 그 중에도 특히 죄많고 불행한 인간에 대한 우리 구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 준다. 우리는 곤경에 빠진 이 불쌍한 여행자와 같다. 모세의 율법은 우리를 돕기 위한 동정심도 능력도 갖고 있지 않았으므로 곤경에 빠진 우리를 피하여 다른 것으로 가 버렸다. 그러나 축복의 예수 즉 선한 사마리아인이 오셨다. 그는 우리를 동정하시고 우리를 돌보신다. 이것은 그의 사랑의 풍성함을 보여 주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졌으며 어떻게 이것을 갚을 것인가?"

② 이 비유의 의미 :

㉠ 그 속에 포함된 진리를 율법사는 시인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이 세 사람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다(36절). 즉 "이들 중 누가 이웃이 할 일을 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율법사는 "분명히 사마리아인입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그가 선한 이웃이었읍니다"라고 말했다.

㉡ 이 비유가 의미하는 의무가 율법사의 양심을 찔렀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만일 사마리아인이 곤경에 빠진 유대인을 도운 것이 잘한 일이라면, 유대인이 곤경에 빠진 사마리아인을 그와 같이 구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러므로 가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하라. 너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그들이 비록 너희 민족이 아니라 해도 관심과 동정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라." 이 율법사는 자신의 질문으로 그리스도를 당황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인에게서 그의 의무를 배우라고 그를 보냈다. "가서 그와 같이 행하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도와 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특히 율법사의 의무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눅 10:38-42)

 

[ 성경묵상 ]

10:38-42에서는 공관복음서에서 유일하게 보도하고 있는 기사로서, 마르다 · 마리아 자매와 관련한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제자도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일화는 많은 일로 분주한 것보다는 예수님과 함께 하며 그의 말씀을 듣는 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우선되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들이 길을 가는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마르다라고 하는 여자가 예수를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그러나 마르다는 여러 가지 접대하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마르다가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십니까? 가서 거들어 주라고 내 동생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주께서는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필요한 일은 하나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그는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마르다와 마리아 ( 10:38-42 )

(1) 마르다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그녀의 집에서 대접하였다(38절).

1) 그리스도는 마르다가 사는 동네에 가고 있었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는 한 촌에 들어가시매. 이 마을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베다니였다. 그리스도는 크고 사람이 많은 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에도 가서 은혜를 베풀었다. 그 이유는 그가 은밀한 곳에 때로 가셨듯이 가난을 동정하였기 때문이다.

2) 그는 마르다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마르다는 그리스도를 환영하였다. 그리스도는 특별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는 다른 친구들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여 자주 방문하였다. 그는 마르다의 가족을 사랑하였으며(요 11:5) 그들에게서 자주 초대를 받았다. 그 집은 마르다의 집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마르다가 과부였고 그집 주부였기 때문이었던 것같다. 이 즈음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특히 예루살렘과 가까운 곳에서는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험을 당하는 것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이 그를 반대하고 영접하지 않았지만, 그를 환영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2)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39절).

마리아는 그의 말씀을 들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집에서 좋은 설교를 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다. 그리스도가 말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들어야 한다. 마리아는 앉아 그의 말씀을 들었다. 이 말은 그녀가 매우 주의를 집중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리스도가 전하는 말을 어쩌다. 한 마디만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 했다. 우리가 그의 발 앞에 앉아 있다면 머지 않아 그의 보좌에 그와 함께 앉게 될 것이다.

(3) 마르다는 가사를 돌보았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이것이 바로 그녀가 마리아와 한 자리에 있지 않게 된 이유였다. 주부는 큰 손님 접대를 하려면 얼마나 마음을 쓰고 부산을 떨어야 하는지를 잘 안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 보자.

1) 마르다에게도 칭찬할 만한 점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우리 주 예수에 대해 칭찬받을 만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대접은 겉치레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여기서 또한 그녀의 가사에 대한 칭찬할 만한 보살핌을 볼 수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든가 편안한 것을 좋아하면 가족들을 등한시하게 된다.

2) 마르다에게는 책망받아야 할 점이 있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았다. 그녀는 정성을 다하여 호화찬란하게 대접하여 했다. 그녀는 많은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많은 준비를 하는 티를 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듭지 못한 행동이다. 도움도 되지 않는데 많은 준비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마르다는 준비하느라 분주하였다. 그녀는 그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맡기시든지 우리는 그것 때문에 부산스럽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일은 선한 의무이지만 분주함은 죄요 어리석음이다. 마르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그의 발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와 함께 있어야 할 때에 준비하는 일이 많아 분주하였다.

(4) 마르다는 그녀의 동생 마리아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불평하였다.(40절).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1) 이러한 마르다의 불평은 그녀의 속된 마음가짐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그녀의 지나친 염려와 분주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세속적인 일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고 추구하다보면 가족간의 불안과 친지간의 분쟁을 야기시키게 된다. 동생에 대해 화가 난 마르다는 그리스도에게 간청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나이까. 마르다는 자기가 근심하면 마리아도 그리스도도 그리고 모두가 같이 걱정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열렬하게 간청하는 자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부당하고 근거 없는 불평을 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맡긴 일은 즐겁게 해야 하지만 어리석게 자신을 의지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2) 마르다의 불평은 마리아의 경건과 헌신에 대한 방해로 생각할 수 있다.

마르다는 마리아의 경건과 헌신에 대해 격려해 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마리아가 할 일을 하지 않는가고 불평하였다. 신앙심이 많은 사람들이 대적들의 반대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비난고 모욕을 받게 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5) 그리스도는 마르다의 지나친 염려에 대하여 책망하였다(41절).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으로 족하리라.

1) 그리스도는 손님이었지만 그녀를 책망하였다.
그리스도는 사랑하는 만큼 책망도 하고 벌도 준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도 잘못을 하면 책망을 들어야 한다.

2) 그리스도는 그녀를 책망하실 때 '마르다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마르다야 마르다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그리스도는 그녀의 평안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자로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 생활에 대한 염려에 빠진 자들은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3) 그리스도는 그녀가 많은 일로 근심하고 염려한다고 책망하였다.
그는 그녀가 일에 골몰하는 것과 (너는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며, 망설이고 혼란을 겪고 있구나) 일이 많은 것에 대해 (많은 일로) 책망하였다. "가엾은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화를 내고 있구나. 그것이 너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갔으니 적게 일하는 것이 좋겠구나." 이 세상 일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근심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결함이다. 정당한 이유 없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 때문이다.

4) 그녀의 염려의 어리석음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마리아가 선택한 일, 즉 그리스도의 발 앞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는 일을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 가지 일에 진력해야 할 때에 마르다는 많은 일로 근심하였다. 세상이 분열시킨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결합시켜 주신다. 마르다가 근심한 많은 일들은 불필요한 것이었고 그녀가 소홀히 한 한 가지 일은 필요한 것이었다. 마르다의 염려와 봉사는 적당한 때와 장소에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녀는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했고 그것은 분명히 더욱 필요한 일이었다.
마르다는 그리스도가 그녀처럼 일하지 않는 마리아를 책망하기를 바랐지만, 그리스도는 마리아와 같이 있지 않은 마르다를 책망하였다. 마르다도 마리아와 같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때가 올 것이다.

(6)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진실된 신앙을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42절).

1) 마리아는 가장 가치있는 일을 올바르게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행한 이 한가지 일은 가장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가장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필요한 한 가지 일이다. 이것 외에 우리를 하늘나라로 이끌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 마리아는 스스로 현명하게 행동하였다.

그리스도는 마르다의 비난에 대해 오히려 마리아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조만간 마리아의 선택은 옳다고 인정받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선택을 하고 그것을 따르는 모든 자들이 옳다고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녀의 지혜를 칭찬하였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 이유는 그녀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편을 택하였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임으로써 마르다같이 자기 집에서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일보다 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① 그리스도의 편은 좋은 편이다.

② 그리스도의 편은 그것을 택한 자들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는 편이다. 어느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의 편에서 우리를 분리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인간과 악마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에서 떼어내지 못할 것이다.

③ 이 좋은 편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지혜요 의무이다. 마리아는 염려하는 마르다와 일을 같이 하여 좋은 주부라는 칭찬을 받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발앞에 앉아서 열성적인 제자임을 증명해 보이든지 둘 중의 한 가지를 택해야 했다. 이 특별한 경우에 마리아가 선택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는 그녀가 평상시 어떤 선택을 하는지 판단할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주석 <청지기>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있는 그리스도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Jan Vermeer) / 네덜란드 / 1632~167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