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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길(눅 9:46-62)

by 은총가득 2020. 11. 18.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길(눅 9:46-62)

 

 

[ 성경묵상 ]

[ 질문 1 ]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변론의 내용은 무엇인가?(46절)

[ 질문 2 ] 사마리아에 불을 내려주기를 구한 제자들은 누구인가?(54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제자들 사이에서는, 그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예수님이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몰랐다. 그들의 생각은 명에, 권력, 지위를 누리기 위해 경쟁하고자 하는 현제석인 국가관의 성격을 넘지 못하였다.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릇된 생각을 아시고 제자들은 누가 크냐, 누가 더 높으냐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남을 받들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신다. 고대 세계에서 '어린 아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어린 아이조차 중요하게 여기고 관심을 쏟으며 받드는 자세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자의 자세임을 강조하신다. 이처럼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가장 작은 이로 보고,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을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누가 높고 누가 낮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하냐의 문제이다(Manton).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실 날이 찼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스스로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셨다.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그는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는데, 그들이 가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주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그리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기를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였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는 표현은 한 서기관(마 8:19)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요청할 때 하신 예수님의 대답이다. '머리 둘 곳도 없는, 편히 쉴 수도 없는 고생길이니 원멘하면 따라오지 말라'는 뜻이다. 서기관이 제자가 되면 홍보 효과가 엄청날텐데 거절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불러주셨다.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은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였다.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을 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Ⅵ. 그리스도의 수난 예고와 제자들의 변론 9:43-50

1. 그리스도의 기적이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준 영향(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을 놀라니라
그들의 놀라움은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들 각자가 모두 놀랐다. 각자가 놀란 원인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놀랐다. 그의 행하는 모든 일에는 특이하고도 놀랄 만한 것이 내포되어 있었다.

2. 그리스도가 다가올 고난에 대해 제자들에게 하신 예고(43-45)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라. 여기에는 다른 복음기자들이 기록한 "그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는 특이한 점이 몇가지 있다.

(1) 여기 본문의 귀절은 바로 앞에 있었던 사건, 즉 그리스도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찬양한 일과 관계가 있다. 저희가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기이히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43절). 제자들은 그리스도가 세속적인 권위와 권세로 다스릴 현세적인 왕국에 대해 강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전능하신 힘으로 그 일을 쉽게 이루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그의 손에 넘기워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질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시게 되었다.

(2) 그리스도는 근엄하게 말문을 여셨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내가 말한 것을 받아들이고 복종하라". 시리아어와 아랍어로는 "이 말을 너희 심령에 담아두라"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 머리와 심령에 담아두지 않는다면 유익이 없다. (3) 제자들은 말할 수 없이 어리석었다. 마가복음은 저희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말씀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는데도 제자들은 실제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것을 어떤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잘못을 깨달으려고도 또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문에는 '저희가 깨닫지 못하게 숨김이 되었음이라'고 부언되어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상하여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그 말씀이 자비로써 숨겨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 가장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심(45-48)

이 귀절은 앞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일을 다시 본문에서 대하게 되었다.

1) 명예에 대한 야망, 그리고 우위에 대한 자리다툼은 걸핏하면 우리 주 예수의 제자들에게 찾아드는 죄였다. 그들은 그토록 극복해야 하며 부끄럽게 생각해야 했던 부패에 물들게 되었다(46절). 이 세상에서 크고자 하는 자들은 높은 자리를 노린다. 그러나 그들을 높혀 주는 것은 없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많은 유혹과 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작아지는 것, 가장 작아지는 것, 가장 작은 것보다 더 작아지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은 그러한 고통과 유혹을 받지 않는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완전히 알고 계시다.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47절). 그에게 있어 생각은 말이고 속삭임은 큰 외침이다.

3)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묵묵히 겸손해짐으로써 얻게 될 명예를 구하고 끊임없이 치솟는 야망에 의해서 얻어질 명예는 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는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셨다(47절). 왜냐하면 그는 항상 어린아이들을 애정과 친절로 대하셨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 어린아이의 품성처럼 겸손하고 조용하고 평온하라고 하셨다. 만일 그렇게 됨으로써 유익을 끼칠 수만 있다면 가장 작은 자가 되기를 즐거워하라.

(2) 이것이 바로 높아지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케 하셨다. 그들(제자들)은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자들이므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그의 이름으로 그들을 영접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가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그들도 사랑을 받게 하고자 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48절).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들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것보다 더 큰 명예가 어디 있겠는가?

4.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편협됨을 책망하심(49,50)

그리스도는 그를 존경하고 섬겼던 한 사람을 실망시킨 데 대해 제자들을 책망하셨다. 그 사람은 제자들의 동료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를 믿었으며, 진실한 태도로 믿고 기도하면서 그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쫒은 자였다. 제자들은 그를 비난하고 견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기도하고 전파하는 일을 못하게 하였다. 그것은, 그가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행한 일을 꾸짖으셨다. 금하지 말라(50절). "오히려 그를 격려해 주라. 그도 너희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느니라. 그는 똑같은 길에서 너희와 동행하고 있지는 않지만 똑같은 목적지에서 너희와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이다. 그러니 그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친구는 적고, 적은 많으므로 우리는 친구를 잃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자들은, 비록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 인정받게 될 것이다.


Ⅶ. 제자들의 그릇된 열심 9:51-56

이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비신자들을 죽이고 싶어 한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는 그들을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독단과 박해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정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예수께서 예루살렘행을 결심하심(51)

속죄와 구원을 위해 고난받을 때가 되자 우리 주 예수께서는 준비하시고 결심하셨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우리 주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때는 정해져 있었다. 예수께서도 그 때를 잘 알고 계셨다.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 공공연하게 자신을 드러내셨으며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분주하게 일하셨다. 그는 자기의 죽음과 고난이 다가왔음을 알고, 그것들을 통해 뒤따라올 영광을 바라보셨다. 그 때가 되면 그는 '영광 가운데 올리우심을' 받게 될 것이다(딤전 3:16).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해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죽음은 올리움을 받는 것이요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다가올 기쁨을 예상하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그리고 그 일을 단념하지 않으시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그는 기쁨을 가지고 용기있게 그곳에 가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의롭다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영광도 받을 것이며, 수치를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리우심을 받을' 것임을 아셨으므로 실망하지도 낙담하지도 않으셨다. 이 일을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2. 그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들의 무례함(52,53)

(1)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예의를 지켰다.

그는 쉴 곳을 정하고 자기와 제자들이 쉴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사자들을 앞서 보내셨다(52절). 그는 그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몇 사람을 보냐 준비하게 하셨다.

(2) 사마리아인들은 예수께 무례하게 대했다(53절).

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들의 마을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였다. 만일 그들이 예수를 영접했다면 그는 가장 큰 축복을 베푸셨을 것이지만, 그들은 예수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대인들과 사라미아인들 간의 논쟁은 예배 장소에 관한 것이었다. 즉 예루살렘이냐 시갈 근처의 그리심 산이냐 하는 문제였다(눅 4:20). 그들 사이의 반목이 극심하였으므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했으며 사마리아인도 마찬가지였다(요 4:9). 사마리아인들은 특히 세상에 잘 알려진 그리스도를 환영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을 인정하고 그것을 지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전의 전도여행때 그에게 보여 주었던 것과 같은 예의를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

3. 이러한 모욕에 대해 야곱과 요한이 분개함(54)

이 두 제자는 이 소식을 듣고 화를 냈다. 그리고 이 마을에 소돔의 저주를 내리도록 그리스도께 청했다.

1) 여기서 제자들에게 몇 가지 칭찬할 만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능력에 대한 큰 확신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말로써 하늘에서 물을 내려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 말을 우리가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 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2) 그들의 선생님의 명예를 위해 열심이었다. 가는 곳에서 마다 선을 베풀었고 환영을 받았던 그들의 선생에게 하찮은 사마리아인들이 마음대로 통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선생님의 선의를 따랐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4) 그들에 앞서 간 선지자들의 예를 언급하였다. 그들은 "엘리야처럼 할까요"라고 물었다(개역 한글 성경에는 이 말이 없다-역주). 그들은 이러한 전례가 오늘의 행위를 정당화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우리도 훌륭한 사람들의 본보기를 잘못 적용하기가 쉽다.

2) 그들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지만, 잘못된 점이 더 많았다.

(1) 우리 주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처럼 모욕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저주하지 않으시고 모욕을 끝까지 참으셨다.

(2)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서는 더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마 10:5)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던 다른 사람보다 나쁜 것은 아니다.

(3) 그 말을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그리스도에게 무례하게 대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리스도가 그 마을에 가셨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나와서 그를 환영했을 것이다.

(4) 그들의 선생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늘로서 불을 좇아 내리지 않았다. 야고보와 요한은 그리스도가 보아너게 (우리의 아들 막 3:17)라고 불렀던 제자들이었다. 그 이름처럼 그들은 행동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들 역시 빛의 아들이 아닌가?

(5) 엘리야의 예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엘리야는 율법의 두려움을 알리도록 보내졌지만, 여기에서 선포되고 있는 것은 은혜의 법이다. 그토록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는 여기에 전혀 맞지 않는다.

4. 그리스도가 야고보와 요한을 책망하심(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을 몹시 사랑하는 만큼 꾸짖고 벌하신다. 특히 그리스도에 대해 열심히라는 미명하에 그들에게 어울리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일을 했을 때 그렇게 하신다.

1) 그리스도는 특별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준다.

"너희는 너희에게 어떠한 영이 있는지 모른다"

(1) "너희는 너희 주님에 대한 열성이라는 구실 속에 감추어진 자만, 분노, 원한이 얼마나 많은 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선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부패가 숨어 있다. 아니 그것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2) "너희는 선한 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무엇인지 확실히 배워야 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하늘로부터 불이 아닌 은혜가 그들에게 내려오기를 구하라고 배우지 않았느냐? 너희는 사랑 자유 은혜의 법 아래 있다." 그것은 땅에는 평화요 사람에게는 축복이다라는 선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2) 그리스도는 그의 종교의 일반적인 뜻과 취지를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56절).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개역 한글 성경에는 난외에 기록되어 있음-역주). 그리스도는 그의 거룩한 종교를 불과 검으로가 아니라 사랑과 친절,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끌고 애정을 느끼게 하는 모든 방법으로 전파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처럼 천벌과 파괴의 기적으로가 아니라 치유의 기적을 행함으로써 전파하고자 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적의를 제거하고 그것을 마음에 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생명도 구하러 오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으며, 인간적인 유대나 사랑의 끈으로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라고 가르치셨다.

5. 그리스도가 이 마을을 떠나가심(56)

그리스도는 그들의 무례함을 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용히 그리고 평화스럽게 다른 촌으로 가셨다. 즉 그다지 완고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례히 행동하다면 우리는 복수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그와 마찬가지로 대우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Ⅷ. 주님을 따르려는 세 부류의 사람들 9:57-62

본문에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즉각적으로 따르고자 나서는 자이다. 그는 너무 성급한 나머지 생각도 하지 말고 앞일을 내다보지도 못하는 것 같다.

1) 그는 그리스도에게 큰 약속을 하였다(57절). 길 가실 때에 혹이 어찌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이것은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결심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어디로 가들지 그를 따라간다.

2) 그리스도는 그에게 필요한 주의를 주었다. 즉 그를 따르는 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에게 큰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자는 머리 둘곳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주 비천한 상태로 계셨다. 그는 훌륭한 왕자들이 으레껏 가지고 있는 장식품을 물론 여우나 공중의 새에게 있는 것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셨다. 그는 모든 것을 만드셨지만 자기를 위한 거처, 즉 머리 둘 곳은 만들지 않으셨다. 본문에서 그는 자신을 인자, 곧 육과 피를 가진 아담의 아들로 부르고 계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있는 곳에도 낮아지는 것을 기뻐하시며, 이로써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고 이 세상에 대한 거룩한 경멸과 저 세상에 대한 계속적인 소망을 가르쳐 주신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비천해져서 가난한 그의 백성들에게 가난을 견디기 쉽게 해주셨으며 정당화 해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이 받으신 것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에 당연히 만족해야 한다.

② 이 말은 예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심사숙고해야 될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한다면 다른 어떤 것도 우리가 믿는 하늘나라보다 더 중시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는 아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춥고 불편하게 되며 푸대접을 받고 모욕을 당하면서 살게 된다는 것을 염두해 두라고 말씀하셨다. 만약 이 일에 복종할 수 없다면 그리스도를 따르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사람은 돌아갔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하늘나라에는 이와 반대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실망하지 않는다.

(2)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하루만 기다려 달라고 청하였다(59).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먼저 이 사람을 부르셨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가 부르셨던 이 사람은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나중에는 복종했던 것 같다. 원하는 것도 그가 아니고 행하는 것도 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불러주시는 것이다.

1) 그의 변명 :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나에게는 집에 늙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며 살아 있는 동안 나를 필요로 합니다. 가서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보살피게 하옵소서. 그러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유혹을 볼 수 있다.

① 일반적으로 제자직을 수행할 때 우리는 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래서 그 일을 미해결인 채로 내버려 두게 된다.

② 우리의 의무로 알고 있는 일을 연기하라는 유혹을 받게 되어 그 일을 어떤 다른 때로 연기한다. 우리는 그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신앙적인 일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시간에 속음으로써 모든 시간에 속게 되는 것이다.

③ 우리는 우리 친척에 대한 의무 때문에 그리스도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하도록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의의 나라는 무엇보다도 먼저 구하고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그리스도의 대답 :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60절). "너에겐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를 따르는 자들이나 사역자들에게 몰인정하게 되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가족 하나하나에 대하여 친절하게 대하고 선을 베풀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데 대한 변명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만약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자들인 사랑하는 가족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멀어지도록 방해한다면, 차라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잊을 정도로 그리스도를 향한 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일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3) 본문에는 기꺼이 주를 따르고자 하는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친구들과 잠깐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1) 그는 간청했다.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61절). 이 말을 "가서 가사를 정리하게 하소서"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보자.

①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서글프고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였다. 그 일이 그에게는 마치 죽으러 가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를 때, 그는 그들과 계속해서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큰 위안과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② 그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로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철저하려고 하기보다는 세상적인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는 가족과 친척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그를 주저하게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는 작별인사를 한 번 했었을 것이다. 떠나기가 싫어서 다시 한 번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집에서 편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③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그의 계획이 유혹받도록 하는 데에 자진해서 뛰어들고 있다. 집에 편히 있는 자들에게 가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은 그의 결심을 바꾸게 할 정도로 강한 유혹을 받게끔 자신을 유도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집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자기들을 떠나지 말라고 간청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세주를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그들을 유혹하는 것들을 가까이 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2) 그리스도는 그의 간청을 듣고 다음과 같이 책망하신다(62절).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그렇게 되면 쟁기질을 잘못하여 쟁기질한 땅에 씨를 뿌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나를 따르고자 하면서도 세상적인 생활을 되돌아 보고 그것을 갈망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 만일 네가 무성의하게 쟁기질을 한다면 너는 하나님 나라의 좋은 씨를 뿌리기에 적합한 땅이 되지 못한다." 쟁기질은 씨를 뿌리기 위해 하는 것이다. 묵혀진 땅을 경작하는 법을 모르는 자들은 씨뿌리는 일에 적합하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한 자들은 쟁기를 잡고서도 수시로 뒤를 돌아보고 그 일을 그만 둘 생각을 하게 된다. 뒤를 돌아보다가는 후퇴하게 되며 후퇴는 곧 파멸이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였다가 뒤돌아보는 자들은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끝까지 견디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