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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눅 9:51-19장)/ 70인제자 파송 및 보고

by 은총가득 2020. 11. 18.

눅-12, 후기 유대 사역의 전반부(눅 9:51-10:37)

 

 

9:51-19:27은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까지인 A.D.29년 가을 무렵부터 이듬해인 A.D.30년 봄 무렵까지 약 6개월 동안에 유대(Judea) 및 베레아(Perea) 지역에서 사역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유대 및 베레아 지역 사역을 제19-20장의 두 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으며, 마가복음에서는 제10장 단 한 장에 걸쳐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해 누가복음은 무려 열 장에 이르는 지면을 할애할 정도로 예수님의 유대 및 베레아 지역의 사역을 다른 공관복음서에 비해 매우 상세히 기록하는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긴 여행 과정에서의 예수님의 발자취를 가능한 자세히 추적해 보고자 하는 누가의 역사가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이 부분은 사건(Events)보다는 강화(Discourses)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총 23개의 비유 중 16개가 이 부분에서 발견되며, 반대로 총 20개의 이적 중 단 4개만이 이 부분에 기록되었을 정도로 비유와 교훈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사건이나 교훈이 행해진 구체적인 장소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이 부분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9:51-19:21의 내용을 지역에 따라 좀더 세분해 볼 수 있는데, 곧 9:21-13:21까지를 후기 유대 사역, 13:22-17:10까지를 베레아 사역, 마지막 17:11-19:27까지를 최후 순회 전도 기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다룰 9:51-10:37까지의 내용은 후기 유대 사역 기사의 전반부로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 초기의 몇 개의 일화들(Episodes) 및 70인 전도와 관련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9:51-56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을 출발하시는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 나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의 시작은 곧바로 그의 십자가 수난의 절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대 지역에서의 사역 기간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단, 누가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51절), 예수께서 유대 사역을 수행하시는 도중에도 자신의 최종 목적지(Final Destination)인 예루살렘에 늘 시선을 집중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예루살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 구속 사역을 완수하게 될 장소였다. 따라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는 것은 자신에게 닥쳐올 험난한 십자가의 길(the Way to the Cross)을 자발적이고도 의지적으로 수용하셨음을 보여 준다. 예루살램 으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첫 문단에서 한 사마리아 동네의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은 사건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수난을 예표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곧 십자가로 향하는 길임을 정확히 아셨던 반면 제자들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을 때 하늘로서 불 심판을 내리자고 제안하는 야고보와 요한의 모습은(54절) 제자들이 예수님의 거듭된 수난 예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음 9:57-62의 문단에서 예수께서는 세 사람들의 경우를 통해 제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들에 대해 다각적으로 교훈하시는데, 이는 문맥상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으면서도 그 길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교훈하는 의미가 강하다고 하겠다. 예수께서 단 일 주일이면 가능한 예루살렘으로의 여행길을 여러 차례 장소를 이동하시면서 6개월 동안에 걸쳐 하신 이유에는, 어쩌면 유대 지역을 중심으로 마지막 사역을 수행하고자 하시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한편으로 그 기간 동안 제자들을 교훈하고 훈련하고자 하시는 측면도 많았다고 할 수 있다.

10:1-16은 70인 전도 파송과 관련한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지금껏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공생애 사역을 수행해 오셨다. 이제 자신의 공생애 사역 기간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유대의 많은 마을에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70인의 제자를 따로 세워 전도단을 구성하고 그들을 파송하시며 동시에 그들이 복음 전도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를 교훈하고 나아가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 심판을 경고하신 것이다.

이어 10‘17-24에는 70인 전도대의 성공적인 귀환 보고를 받으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복음 계시에 관한 오묘한 섭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천국의 복음이 세상의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졌으나(hidden), 어린 아이들과 같은 자들에게는 나타내신(revealed) 것에 대해 감사하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인정하신다(21절).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신과, 자신이 택하여 계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선언하신다(22절). 이는 후에 바울이 말한 바대로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세상의 지혜의 방식으로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세상적으로 미련해 보이는 전도의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방법을 택하셨다는 오묘한 구속사의 비밀을 보여 준다(고전 1:21).

마지막 10:25-37은 예수님과 한 율법사와의 대화를 그 내용으로 한다. 대화의 내용인즉 영생의 방법과 이웃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율법사는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25절). 이에 대해 주님은 직접적인 답변 대신에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고 다시 역질문하심으로써(26절) 율법사 스스로 자기 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하셨다. 그 대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다(27절). 이는 율법의 대강령으로 이 주님의 역질문에는 원칙적으로는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28절) . 그러나 사실 사람이 결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감안할 때, 주님의 말씀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구약 율법이 예언하고 있는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편, 율법사는 율법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율법의 대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자 자신의 이웃에 대한 선행을 과시할 목적으로 주님께 다시금 ‘내 이웃이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하였다(29 절). 이에 예수께서는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the Parable of the Samaritan)’를 통해 내 이웃이 누구인가를 찾기 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바로 그 자신이 그러한 선한 이웃이 되어 이 땅에 오사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주가 되셨음을 드러내셨다. 우리는 여기서 누구보다도 율법에 정통하였던 율법사가 정작 율법의 근본 정신에는 무지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윗문단에서 언급된 내용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감추어졌다는 사실과 문맥적으로 밀접히 연결되고 있다. 복음의 비밀이 세상의 지혜로 알려지지 않는 것처럼,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는 단순한 성경 지식만으로 얻을 수 없다. 성경의 내용에 대한 정보(Inf ormation)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Understanding)는 별 개의 차원이다.

메시야와 더불어 길을 동행하면서도 그 길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율법의 지식에 정통하면서도 정작 율법 정신의 실천과는 무관했던 율법 전문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할까? 메시야가 행했던 수많은 기적을 목격했던 고라신과 뱃새다와 가버나움 사람들이 끝내 그 기적들의 의미를 깨닫는 데는 실패한 사실에서(10:13-15) 우리는 어떤 경고를 받아야 할까? 천국의 비밀을 이해하고 있노라고 자족하고 있기에는 성경의 무지한 인물들이 우리의 모습을 너무 많이 투영(投影)시키고 있다. 성경에 투영된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교만과 허영을 버리고 다시 한번 어린아이들과 같은 겸손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한 시편 기자의 간구를 우리 자신의 기도로 드려야만 할 것이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70인의 제자 파송(눅 10:1-16)

[ 성경묵상 ]

10장 요약 ; 예수님은 이제 사도들만이 아닌 70인의 전도대를 세우심으로 천국 사업을 점치로 확대시키셨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와 마르다와 마리아의 영접 기사는 본서에서만 등장하는데, 전자는 참된 이웃 사랑의 본질을, 후자는 예수님을 섬기는 자가 견지해야 할 태도에 대해 교훈해 준다.

10:1-16 ;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암시된다. 처음에는 예수, 다음에는 열두 제자, 이제는 칠십 인이 나가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로도 부족하다. 따라서 주인에게 일꾼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10:1-16은 70인 전도 파송과 관련한 내용이다. 예수께서는 지금껏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공생애 사역을 수행해 오셨다. 이제 자신의 공생애 사역 기간이 끝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예수께서는 천국 복음을 아직 듣지 못한 유대의 많은 마을에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70인의 제자를 따로 세워 전도단을 구성하고 그들을 파송하시며 동시에 그들이 복음 전도자로서 지녀야 할 자세를 교훈하고 나아가서는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해 심판을 경고하신 것이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 질문 1 ] 70인의 제자를 파송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첫 번째 말씀은 무엇인가?(2절)

[ 질문 2 ] 예수님이 심판을 선언하시는 세 도시는 어디인가?(13,15절)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 일이 있은 뒤에 주께서는 달리 일흔두 사람을 세우셔서, 친히 가려고 하시는 각 성읍과 각 고장으로 둘씩 둘씩 앞서 보내셨다.

2.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그 때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3.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가거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

4. 전대나 배낭이나 신발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전대도 자루도 신도 가지고 가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아라.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9:1-6)와 70인의 제자를 파송할 때 주신 말씀이 비숫하다. 단 하나 뚜렷한 차이가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이다. 문안하느라 시간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는 뜻으로 복음 전파의 시급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거기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내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너희는 한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에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자기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이집 저집 옮겨 다니지 말아라.

8.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어느 성읍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에게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을 먹고' ; 이들이 보냄을 받은 지역은 이방인들이 많이 살던 베레아 지역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식사하는 것을 꺼리지만,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복음 안에서 이 둘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9.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그러나 어느 성읍에 들어가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성읍 거리로 나가서 말하기를

11.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우리 발에 묻은 너희 성읍의 먼지를 너희에게 떨어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아라 하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날에는 소돔이 그 성읍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고라신아, 너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벳새다야, 너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에게 행한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그러나 심판 날에는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너희 말을 들으면,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누구든지 너희를 배척하면,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배척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것이다."

 

칠십인의 사명 ( 10:1-16 )

본문을 보면 70인의 제자들이 둘씩 둘씩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이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70인의 제자들은 열두 제자와 똑같은 지시를 받는다.

1. 그들의 수(1)

그들은 칠십인이었다. 그리스도는 열 두 명의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열 두 족장, 열 두 지파, 그리고 열 두 지파의 왕을 염두에 두었던 것과 같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의 칠십 장로들을 생각하셨던 것같다.

(1)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파송하기에 적합한 추종자들이 많았음을 보고 기쁨을 느낀다.

그리스도는 비록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의 수고는 모두 헛되지 않았다. 이들 칠십인은 열 두 제자들처럼 항상 그리스도와 가까이 있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의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목격하고 그를 믿었다. 이 칠십 인들은 베드로가 말한대로 '주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었으며, 백 이십 명 중에 포함 된 자들이었다(행 1:15,21).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 나오는 사도들의 동행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이 칠십 인의 제자들에 속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2) 많은 사역자들에게 수행할 임무가 있고 설교자들에게 청중이 있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기서 겨자씨가 자라기 시작하였으며 누룩의 향기는 가루 속에서 발하기 시작하였다.

2. 그들의 활동과 사업(1)

그리스도는 그들을 둘씩 보내어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도록 했다. 그는 이들을 열 두 제자들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고을에 다 보내시지는 않고 그의 선구자로서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만 보내셨다(1절). 그들은 그리스도가 가시는 곳마다 행하셨던 것과 같은 두 가지 일을 수행하라는 명령받았다.

(1) 그들은 병자들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보기를 갈망하고 자기 이름으로 그토록 권능을 나타내는 자를 영접하게 되도록 해야 했다.

(2)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음을 알려야 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우리의 이익과 기회를 알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것들을 얻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나가서 맞아야 한다.

3. 그리스도의 지시(2-16)

(1) 그들은 기도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2절).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 그들은 둘러 보아 추수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한다. 거두어 들이는 일손이 모자라면 버리고 잃는 곡식이 많은 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일군이 매우 적다는 것을 염려해야 한다. 장사꾼이 손님이 적은 것이 곤란한 문제임을 그의 포도원의 일군들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사명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추수할 일군으로 보내셨으며 다른 사람들도 앞서 보내셨다. 하나님이 그들도 보내셨기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고 그들을 성공으로 이끄실 것을 기대하게 된다.

(2) 그들은 고통과 박해를 예상하고 출발해야 한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3절). "그러나 가라 너의 적은 이리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비록 그들의 먹이가 된다 해도 평온하고 참을성있는 양이 되어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성령과 용기를 그들에게 주시지 않으셨다면 이리 가운데 양을 보내는 일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3) 그들은 장거리 여행을 할 것처럼 많은 준비를 할 필요가 없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과 친구들에게 의존해야 한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4절).

1) 그들은 바쁜 사람처럼 가야 한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의식이나 인사로 방해받거나 늦어져서는 안 된다.
2) 그들은 사업가로서 가야 한다. 그들의 사업은 저 세상에 관계된 것으므로 세속적인 일에 얽혀 들지 말아야 한다.
3) 그들은 엄숙한 모습으로 가야 한다.

(4) 그들은 가는 곳에서마다 자신들의 호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어야 한다(5,6절).

1) 그들의 임무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5절).

① 그들은 개인의 집에 들어갔던 것 같다. 즉 그들은 회당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선생님과 같이 집에서 말씀을 전파하였다. 상당수의 그리스도의 교회가 처음에는 가정 교회에서 시작했다.

② 그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라고 지시를 받았다. 이는 곧 "의례적으로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인사하지 말고 너희가 들어간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평안할지어다라고 진실한 마음으로 문안하라"는 말씀이었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평안을 빌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평안, 즉 지상의 평안을 전파하고 사람들에게 와서 그 은혜를 받도록 초청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안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2) 사역의 성공여부는 그들이 전파하고 기도해준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그 집의 거주자들이 평안의 자녀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집의 평안을 기대할 수 있기도 하고 기대할 수 없기도 한 것이다. "너희는 평안의 자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빛과 사랑 속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너희의 평안으로 그들을 찾아내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희망을 걸게 될 것이다. 너희 기도는 응답될 것이며 복음의 약속을 그들에게 확신시키게 될 것이다. 또한 너희는 너희가 전하는 말을 도무지 들으려고도 마음을 쓰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 따라서 그들의 집에는 평안의 자녀가 하나도 없는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평안은 분명히 그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책임을 다함으로써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평안이 되돌아오는 것은,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평안의 자녀들에게 그것을 전달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5) 그들은 자기들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자들의 친절을 받아야 한다(7,8절).

"복음을 영접하는 자들은 그것을 전파하는 너희를 영접하고 환대할 것이다."

1) "부끄러워하지 말라. 너희를 환영하는 것을 의심치 말고 폐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이 주는 것들을 진심으로 먹고 마셔라. 너희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일군은 그 삯을 받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배운 자들이 그것을 가르쳐 준 사람들에게 삯을 주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정당한 일이다."

2) "너희에게 준 음식을 꺼리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7,8절). "그것이 일류요리가 아닌 간소한 음식이라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하라." 좋은 음식을 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답지 못한 일이다. 아마도 그리스도는 본문에서 장로들의 식사 관습에 대하여 언급하신 것같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장로들의 식사 관습 같은 것에는 상관하지 말고 그들에게 준 것을 가리지 말고 먹으라고 하셨다.

(6) 그들은 그들과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거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공포해야 한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10절). "그들이 너희를 집으로 영접지 아니하면 그 거리로 나와서 그들에게 경고하라." 그리스도는 열두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해야 할 일을 지시하였다. (참조. 눅 4:5). "이렇게 그들에게 말하라.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11절). 그들에게서 어떠한 친절도 받지 말고 그들을 쳐다보지도 말라." 그들이 선생님의 명령에 따라 거기에 갔었다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자라는 증거가 될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는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분명히 말하여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라. 여기에 분명한 은혜가 너희에게 주어졌다. 너희가 만일 그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것은 너희의 잘못이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너희가 하나님 나라에 이르러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너희 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은혜와 생명을 분명히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훗날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렇게 받은 것들을 소홀히 여긴다면,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12절). 소돔 사람들은 사실 롯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더욱 큰 죄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복음서 기자들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1) 그리스도가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고을의 특별한 운명(마 11:20-24).

① 그 말을 사람들은 큰 특전을 누렸다. 이 일로 그 사람들은 하늘나라로 오라간 것처럼 의기양양해졌다. 그들은 외적인 수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하여 하늘나라와 가까워졌던 것이다.

②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그들이 회개하고 삶을 개혁하며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있게 하는 것이었다.

③ 그들은 이러한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였다. 즉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린 특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④ 만약 그리스도가 두로와 시돈 그리고 이방 도시에 가서 전파하고 이적을 행했었다면 그곳 사람들은 오래전에 회개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그들은 즉시 회개하고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았을 것이며, 그만큼 깊이 회개했을 것이다.

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한 자들의 운명은 매우 암담할 것이다. 이렇게 높임을 받은 자들은 높아지는 것을 이용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⑥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이 도시들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그의 사자들에게 하는 것이 곧 그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16절).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자를 저버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저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칠십 인 전도자의 전도 보고(눅 10:17-24)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7.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일흔두 사람이 기쁨에 넘쳐 돌아와 보고하기를 "주님, 주님의 이름을 대면,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였다.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보아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를 주었으니,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해서 기뻐하지 말고,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넘쳐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총명한 사람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22.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과 또 아들이 계시하여 주고자 하는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23. 제자들을 돌아 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예수께서 돌아서서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칠십 인의 보고 ( 10:17-24 )

1. 전도 여행의 성공을 보고함(17)

그들은 전도여행의 성공에 대해 그리스도에게 보고하였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그들은 여행으로 인한 피곤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자기들의 성공을 기뻐하였다.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그들은 이 모든 영광을 그리스도에게 돌렸다. 그 일은 '주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사단에 대한 우리의 모든 승리는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영적 대적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어떤 일이 그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영광은 그의 이름에 돌려야 한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귀신이 우리에게 항복한다면 우리 앞에 무엇이 설 수 있겠는가?

2. 그리스도께서 이 보고를 인정하심(18-24)

(1) 그리스도는 그들이 말한 것이 그가 본 것과 일치하고 있음을 확증하셨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18절).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 사단과 그의 나라는 멸망한다. 그때 사단은 졸지에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진다. 즉, 인간 마음속에 있는 그의 왕좌에서 떨어질 그때 사단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복음이 전파됨으로써 어디든지 사단의 왕국이 멸망할 것을 예견하였다. "이제 이 세상의 왕이 쫓겨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그들의 사명을 다시 인정하고 확장시켜 주셨다.

내가 너희에게 뱀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19절). 그들은 그들의 능력을 사단에 대적하여 힘있게 사용하였고, 이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더 큰 능력을 주신다.

(1) 공격적인 능력:즉 뱀과 전갈을 밟고, 마귀와 극악한 귀신 그리고 그 옛 뱀을 제어할 힘을 주셨다. 귀신이 지금 너희에게 항복했듯이 저들도 항복할 것이다.

(2) 방어할 능력을 주셨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뱀도 전갈도 너희를 해하지 못하리라. 만일 사악한 자가 너희에게 뱀같이 굴고 전갈 같이 너희를 해하려 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의 포악함을 제어하고 밟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겁을 줄지는 모르나 너희를 해칠 수는 없을 것이다."

(3)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기쁨의 동기를 올바른 것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20절). "너희는 이런 일만으로 값없이 기뻐하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그리스도는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세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은 자일지라도 마지막날에 그리스도에 의해서 부인될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양이며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다. 거룩한 사랑은 방언을 말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이다.

(4)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렸다(21,22절).

이와 같은 감사기도는 전에도 하신 적이 있었다(마 11:25,27). 그러나 본문에는 '이때에 예수께서 기뻐하사'라는 말이 앞에 덧붙여져 있다. 사단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리스도는 기뻐하셨다. 그리스도의 기쁨은 참으로 본질적인 기쁨이요 내적인 기쁨이었다. 그는 성령으로 기뻐하였다. 그 이유는, 감사에 넘치는 찬양은 거룩한 기쁨의 순수한 언어이며, 거룩한 기쁨은 감사 찬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다음 두 가지 사실에 대해 감사드렸다.

1) 아들을 통해 아버지께서 계시하신 것을 감사하였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감사하나이다(21절). 그가 감사한 내용은 이러하다.
① 하나님 자신과 인간의 화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적합한 몇몇 사람들에게 계시된 것을 감사하였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감추어져 왔던 비밀을 드러내셨다.

② 그것들을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그 어린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들의 능력을 끌어올려 주기 전에는 그러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과 같은 그러한 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도록 하는 명예를 주셨기 대문이라기보다는 그가 약한 자를 강하게 해 주셨다는 사실 때문인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 사실을 나타내셨으면서 지혜롭고 지식있는 자들, 즉 이방 철학자와 유대의 랍비들에게는 숨기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의 사건을 나타내시지도 않으셨으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일을 맡기시지도 않았다. 바울은 사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 가운데서 교육받은 자였다. 그러나 그가 사도가 되었을 때는 어린 아이가 되었다. 또한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외에는 어떠한 지식도 나타내 보이지도 사용하지도 않았다(고전 2:2,4).

④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사하신 것에 대해 감사하셨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와 그의 아들에 관한 지식을 보다 합당치 않다고 생각되는 자들에게 주시고 유효하게 전도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만족스러운 것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기술로 미화하려는 자보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파하려는 자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맡기셨던 것이다.

2)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비밀에 대해서 감사했다(22절). ①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큰 확신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그리스도 안에 모든 충만한 것이 있으며 그에게서 모든 관리하는 가장 신임받는 자이다. ②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잘 알고 있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성령의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다.

(5)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일이 그들에게 나타난 것이 얼만 복된 것인가를 말해 주셨다(23,24절).

제자들을 돌아보시며(23절). 그것은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된 것과 사람들에게 이 비밀을 알리는 일을 맡게 된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그들은 얼마나 복을 받았나? 비록 이러한 사건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 구원은 아니지만 그것은 구원의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 그들은 그들보다 앞서 간 자들보다 얼마나 높아졌나? "많은 선지자와 의인(마 13:17), 많은 선지자와 임금(24절)이 너희가 매일 계속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듣고자 했으나 보지도 못하였고 듣지도 못하였다." 신약의 성도들의 명예와 행복은 구약의 선지자나 왕의 명예와 행복을 훨씬 능가했다. 구약의 성도들이 메시야 왕국의 은혜와 영광에 대해서 가졌던 일반적인 관념들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에게 희미하게 가려져 있었던 것들의 실체를 봤으면 하는 바램을 오랫동안 가지게 하였다. 출처 ; 메튜헨리주석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