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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누가복음 - 갈릴리 후기 사역(눅 9:1-50)

by 은총가득 2020. 11. 18.

눅-11, 갈릴리 후기 사역(눅 9:1-50)

 

9:1-50은 A.D. 28년 가을 무렵부터 이듬해인 A.D. 29년 가을 무렵까지 약 1년간에 걸친 주님의 갈릴리 후기 사역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열두 제자의 전도 파송을 기점으로 하여 전 · 후기로 구분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이 때를 기준으로 하여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과 성격이 크게 전환되기 때문이다. 즉 갈릴리 전기 사역은 주로 일반 무리들을 대상으로 한 사역인 반면, 갈릴리 후기 사역은 주로 열두 사도들의 훈련에 집중한 사역이다.

 

공생애가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예수님은 점차 자신의 십자가 수난 이후의 일에 대해서도 대비하셔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십자가 수난을 통해 죄와 죽음 아래 있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모든 조건들은 충족이 되겠지만, 이미 완수된 그 사역의 효력이 온 세계의 택한 백성들 모두에게 미치려면 그의 사역을 알리고 계승할 자들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제자들을 불러 훈련을 시작하셨지만, 이제 공생애를 1년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더욱 제자들의 훈련에 사역의 초점을 맞추신 것이다.

 

먼저 첫 문단인 9:1-9은 갈릴리 전 · 후기 사역의 분기점이 되는 열두 제자의 전도 파송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능력과 권세(Power and Authority)를 열두 제자들에게 부여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치유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다. 이로써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영적 전쟁의 실전(實戰)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으로서 세례 요한을 죽인 사단의 하수인인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B.C. 4-A.D. 39년 재위)가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을 보면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의 활동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힘 있게 전개되어 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여기서 헤롯이 주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한 것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의 유사성으로 인해 미신적 사고에 붙잡혀 있던 그가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의 환생으로 오해한 까닭이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전도 파송하시는 장면 /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 9:1,2)

이어 9:10-17은 예수께서 전도 여행에서 귀환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북동쪽의 벳새다(Bethsaida)라고 하는 지역으로 물러가신 후, 거기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신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벳새다는 당시 행정구역상 헤롯 빌립 2세(Herod Philip II, B.C. 4-A.D. 34년 재위)가 관할하던 드라고닛 지방에 속한 곳이었다. 빌립 2세는 갈릴리 분봉왕이던 헤롯 안디바와 마찬가지로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세 아들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을 비교적 평온하게 다스린 인물이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전도 활동 이후 벳새다 지역으로 이동하신 것은 헤롯 안디바와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전도 사역으로 지친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오천 명 가량 되는 무리들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구속주가 되심을 보여 주는 명백한 사건이며, 사복음서가 공히 기록할 만큼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마 14:13-21 ; 막 6:30-44 ; 요 6:1-14). 그리고 이러한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은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는 그 구속의 대상인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우리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이를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채워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아울러 이는 또한 우리 주님은 생명과 축복의 근원으로서 단지 이 땅에서의 현세적이고 부분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주시는 분임도 깨닫게 해 준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구속의 은총은 물론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놀라운 진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제자 훈련의 관점에서 볼 때 오병이어 사건은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에 동참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돕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어 9:18-27의 두 문단은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Faith Confession), 최초의 수난 예고(Passion Prediction) 및 제자도(Discipleship) 교훈에 관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누가는 복음서들 중에서 이 기사를 보도하는 서두에 예수께서 기도하셨음을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다(18절). 이는 기도를 강조하는 누가의 특징을 보여 주는 동시에, 그만큼 제자들의 신앙 고백과 그와 관련한 수난 예고 및 제자도 교훈이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 사건은 실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주지하다시피 베드로는 예수님에 의하여 신약 선민인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성도들이 주님이 구속 사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다시 재림하시기까지 신앙과 생활의 중심으로 삼게 될 교회의 창설자로 세움 받은 12제자 중의 수제자였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한 이 사건은 전(全)신약 교회의 예수님께 대한 첫 신앙 고백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베드로가 이러한 신앙 고백을 했다고 해서 그가 예수의 사역과 본질까지 명확히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가 이 사건 직후에 예수님의 수난을 만류하다가 주님께 심한 책망을 들었던 사실(마 16:22,23)은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고백은 그간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훈련의 성과를 보여 주는 것으로서 주님의 승천 이후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한편,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신앙 고백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드디어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고하기 시작하시며 또한 제자도를 가르치시는 데 사역의 역점을 두신다. 특별히 여기서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아적 신분(Messianic Identity)을 제자들에게만 드러내시고 그들에게 이에 대한 함구령을 내리신 것은(21절), 왜곡된 메시야 사상 곧 정치적 메시야 사상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당신의 신분이 노출됨으로써 아직 남겨두고 있는 십자가 수난 등의 메시야 사역에 지장을 초래할 것을 방지하시기 위함이었다.

계속하여 9:28-36은 예수님의 변형(Transfiguration)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세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빛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셨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본래의 영광스런 모습을 현시(顯示)하는 사건인 동시에 또한 부활 이후의 예수님과 그에게 속한 모든 성도들의 영광스런 모습을 예견케 하는 사건이었다. 또 제자 훈련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사건은 ‘메시야의 길(The Way of the Messiah)’ 및 ‘제자의 길(The Way of His Disciples)’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하는(35절) 하나님의 직접적인 시청각(視聽覺) 교육이기도 하였다.

 

이어 9:37-45은 윗 문단과 이어지는 사건으로 예수께서 간질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시고(37-43a절), 계속해서 두 번째로 당신의 수난에 대해 예고하신 사건(43b-45절)을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께서 간질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신 사건은 영계까지도 지배하시는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주권과 능력, 그리고 그에 상반되는 제자들의 영적 무기력함이 확연히 드러난 사건으로서 우리가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허락하신 역동적인 권세와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이 세상 가운데서 종종 실패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 준다. 곧 그것은 절대자이신 주님께 대한 절대 신앙의 부족에 있는 것이다. 결국 본 사건의 핵심은 주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절대 신앙을 갖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 한편, 예수께서는 이 사건 직후에 다시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는데 이 역시 당신이 십자가 수난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9:46-50은 서로 누가 크냐 하는 문제로 다투며 또한 자신들과 일행이 아닌 자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제자들을 향해 겸손과 관용의 교훈을 주시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마지막 문단은 거듭되는 주님의 수난 예고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능력을 결핍함으로써 세상적인 지위에 마음이 빼앗겨 서로 다투고 갈등하는 제자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이상의 문맥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제자도에 관한 교훈이 엇갈리는 형태로 연속적으로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예수께서는 1차로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후 곧바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에 관해 교훈하셨으며, 또 2차로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신 후 겸손과 관용에 관해 교훈하셨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및 겸손과 관용은 제자도의 핵심 원리이자 대표적 윤리 덕목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제자도가 밀접히 연관되어 제시되고 있는 것은, 곧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곧 진정한 제자의 길을 걷는 것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신앙고백 하였으면서도 여전히 세속적인 야심과 교만으로 갈동을 빚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 그들이 따르고 있는 스승의 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메시야의 길은 십자가를 통해 영광에 이르는 길이다. 희생을 통해서 열매를 맺게 되고 죽음을 통해서 부활에 이르는 길이다. 제자의 길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마 16:23). 높아지기 위해 싸우는 자가 아닌 낮아져 섬기는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될 것이며, 바로 그 희생과 겸손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전파를 위한 제자 파송(눅 9:1-9)

[ 성경묵상 ]

9:1-9은 갈릴리 전 · 후기 사역의 분기점이 되는 열두 제자의 전도 파송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능력과 권세(Power and Authority)를 열두 제자들에게 부여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치유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다. 이로써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영적 전쟁의 실전(實戰)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으로서 세례 요한을 죽인 사단의 하수인인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B.C. 4-A.D. 39년 재위)가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을 보면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의 활동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힘 있게 전개되어 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별히 여기서 헤롯이 주님의 소문을 듣고 두려워한 것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의 유사성으로 인해 미신적 사고에 붙잡혀 있던 그가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의 환생으로 오해한 까닭이었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 질문 ] 제자들을 파송할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은 무엇인가?(1절)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셨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예수께서 그 열둘을 불러모으시고,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능을 주셨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라고 그들을 내보내셨다.

3.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그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에 머물다가, 거기에서 떠나거라.

5.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않거든, 그 성읍을 떠날 때에,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려서, 그들을 거스르는 증거물로 삼아라."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린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열성적인 유대인들이 이방인의 집에서 나올 때 하는 습관으로서, 선민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행위이다.

음을 전할 때는 가장 낮아질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을 끝까지 거절하는 자에게는 복음의 가치가 낮지 않다는 것, 복음 전하는 자의 거룩한 자존심이 낮지 않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이다.

6.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제자들은 나가서, 마을마다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7.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분봉왕 헤롯은 이 모든 일을 듣고서 당황하였다. 그것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8.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달리, 옛 예언자 가운데 하나가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9.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
헤롯이 말하기를 "요한은 내가 목을 베어 죽였는데, 내게 이런 소문이 파다하게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하였다. 그는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였다.

 

 

제자들의 사명과 헤롯의 공포 ( 9:1-9 )

1. 그리스도가 그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택하신 방법(1-6)

그리스도는 그 자신이 두루 여행을 다니셨다. 그러나 그는 한 번에 한 곳에만 있을 수 밖에 없었으므로 그의 제자들을 내어 보내셨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이런 저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게 되었다. 그들의 가르침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기적을 행할 능력과 권세를 주셨다(1,2절). 그는 그들에게 '모든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어' 귀신들의 소유를 빼앗고 그들을 내쫓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능력을 주었고, 그러한 일들을 하도록 그들을 임명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들이 정확한 판단을 내리게 하였으며 그들의 호의를 얻게 하였다. 이것이 곧 제자들의 임무였다. 이 일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1) 이 임무의 수행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지시하신 일은 무엇인가?

(1) 그들은 외모로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가야 하며 옷을 바꿔 입어서도 새 신을 신어서도 안 된다.

(2) 그들은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며 그들의 친구들의 돈을 가져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친절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기대하라고 하셨다.

(3) 그들은 자기들을 받아들인 자들이 그들을 지겨워 하지나 않을까 해서 숙소를 옮겨서도 안 된다. 즉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야 한다(4절). 사람들이 그들의 있는 곳을 알 수 있도록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고, 그들에게 익숙해 진 자들과 함께 있으라는 것이었다.

(4) 그들은 권위를 가져야 되며, 그들을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위로를 주고 그들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경고의 말을 해야 한다(5절). 만약 너희를 영접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 버려라. 그리고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2)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그들은 무엇을 하였나(6절).

그들은 주의 곁을 떠나갔다. 그들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각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다. 제자들의 행할 일은 그들의 주가 행한 것과 마찬가지로써 영혼과 육체에 대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었다.

2. 제자들의 복음 전파를 전해들은 헤롯의 놀라움(7-9)

우리는 여기서 헤롯이 이 일을 듣고 당황하고 고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진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메시야라는 놀랍고도 확실한 증거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기적들을 행하셨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적을 행할 능력을 부여하셨다. 그리고 이 일은 다른 어떠한 일보다도 그리스도의 명성을 널리 퍼뜨렸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있었었다'(행 4:13). 각 촌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을 보고 놀랐다.

(1) 사람들은 여러 가지 추측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잘 알 수는 없지만, 우리 주 예수님을 존귀한 자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세례 요한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옛 선지자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였다. 혹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7,8절).

(2) 헤롯의 마음에 큰 고민이 생겼다.

그리스도가 행한 이 모든 일을 듣고 헤롯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하였다. "어찌 하여야 할까?" 헤롯이 말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 사람은 누군고." "그는 요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요한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하여 왔는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들은 점점 더 당황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헤롯은 그를 보고자 하였다(9절). 그런데 왜 가서 그를 만나지 않았을까? 헤롯은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였으나, 법정에서 만나기 전에 그를 보았는지의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심(눅 9:10-17)

[ 성경묵상 ]

9:10-17은 예수께서 전도 여행에서 귀환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북동쪽의 벳새다(Bethsaida)라고 하는 지역으로 물러가신 후, 거기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신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벳새다는 당시 행정구역상 헤롯 빌립 2세(Herod Philip II, B.C. 4-A.D. 34년 재위)가 관할하던 드라고닛 지방에 속한 곳이었다. 빌립 2세는 갈릴리 분봉왕이던 헤롯 안디바와 마찬가지로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의 세 아들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지역을 비교적 평온하게 다스린 인물이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전도 활동 이후 벳새다 지역으로 이동하신 것은 헤롯 안디바와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전도 사역으로 지친 제자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오천 명 가량 되는 무리들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구속주가 되심을 보여 주는 명백한 사건이며, 사복음서가 공히 기록할 만큼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마 14:13-21 ; 막 6:30-44 ; 요 6:1-14).

그리고 이러한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은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는 그 구속의 대상인 우리 인간의 연약함과 우리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이를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먼저 채워 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아울러 이는 또한 우리 주님은 생명과 축복의 근원으로서 단지 이 땅에서의 현세적이고 부분적인 축복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주시는 분임도 깨닫게 해 준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결국 우리가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신뢰할 때 구속의 은총은 물론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놀라운 진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제자 훈련의 관점에서 볼 때 오병이어 사건은 백성들의 어려운 문제에 동참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을 갖도록 돕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출처 ; 옥스포드주석]

[ 질문 ] 오병이어 사건 직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11절) -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고 병을 고치셨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0.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모든 일을 예수께 말씀드렸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라고 하는 성읍으로 물러가셨다.

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그러나 무리는 그것을 알고서, 그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시고, 또 병 고침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12.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그런데 날이 저물기 시작하니, 열두 제자가 다가와서, 예수께 아뢰었다. "무리를 흩어 보내서, 주위의 마을과 농가로 찾아가서 잠자리도 구하고 먹을 것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입니다."

1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나가서, 이 모든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을 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14.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러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 하시니
거기에는 남자만도 약 오천 명이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한 오십 명씩 떼를 지어서 앉게 하여라."

15.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제자들이 그대로 하여, 모두 다 앉게 하였다.

16.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예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셔서, 무리 앞에 놓게 하셨다.

17.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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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돌아온 일과 오천 명을 먹이신 일 ( 9:10-17 )

(1) 제자들은 그들의 사역의 결과를 예수께 고하였다.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10절).

(2) 그들은 잠깐 동안 은거하여 휴식을 취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떠나 가셨다. 우리의 남종과 여종을 쉬게 하라고 명하셨던 그리스도는 그의 종에게도 쉬게 하셨다. 지극히 공적인 자리에 있는 자들은, 육체의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명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채워 더 나은 일을 하기 위하여 때때로 은밀하게 은거해야 한다.

(3)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그리스도는 그들을 영접하셨다.

그리스도는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무리들이 그를 따라왔다. 그는 그들을 영접하셨다(11절). 여기서 우리는, 경건한 열성을 품은 자들이 그 열성으로 인하여 다소 무례를 범한다 해도 용납받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용납받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그랬으며 우리 또한 이러한 자들을 허용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은 때 아니게 찾아왔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이 와서 구하는 것을 주셨다. 곧 그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 하셨다. 그리고 병든자를 고치셨다. 그리스도는 육체적인 질병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셨으므로 치유를 필요로 하는 그의 백성들을 치료해 주신다. 우리에게 있어서 때때로 육체의 편안을 위한 치유 보다는 영혼의 유익을 위한 질병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스도는 알고 계셨다. 죽음은 그리스도의 종이므로, 그는 성도들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다.

(4) 그리스도는 그를 따라온 무리를 충분히 먹이셨다.

곧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오천 명을 먹이셨다. 이 기사는 앞에서 두 번 나왔는데, 여기서 다시 대하게 된다. 우리 구주의 기적들 중 4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것은 오로지 이 사건뿐이다. 이 기사를 세밀히 살펴 보자.

(1) 열심히 그리스도를 쫓아 임무를 행하며 그러기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기도, 그러내기도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다. 그는 그를 두려워하고 충실하게 섬기며 어떠한 선한 것을 바라는 자들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2) 우리 주 예수님은 아낌없이 주시는 관대한 분이시다. 그의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라고 말했지만, 그리스도는 "아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데까지 주어서 그들이 자유로이 먹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는 그의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할 것'을 가르치셨다. 적게 가진 자들은 적은 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것이 바로 그것을 많게 하는 방법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병든 자를 치유하실 뿐 아니라 음식이 필요한 자에게 음식도 주신다. 그리스도는 영혼의 질병으로 인한 죽음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구해 주실 뿐 아니라 영혼을 살찌게 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힘을 주신다.

(4) 그리스도의 모든 선물은 정해진 격식에 따라 받아들여져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14절)고 말하고 계시다.

(5) 우리는 우리에게 안락을 주는 것들(음식, 등등)을 받을 때 하늘을 우러러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렇게 하셨으며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것들을 받고 그것들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의지하며 또한 그 축복을 간구한다.

(6) 그리스도의 축복은 작은 것을 크게 만든다.

(7) 그리스도가 먹인 자들은 '다 배가 불렀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실 수 있을 만큼 부요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먹고 남을 정도로 풍부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궁핍하지않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