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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어디인가? 파사 VS 신라

by 은총가득 2020. 9. 2.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어디인가?

 

파사 VS. 신라

 

 

마 2: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지금까지 서구 성경주석가들은 동방박사들의 고국이 페르시아일 것이라고 추측해 왔다. 그 이유는 BC 8세기에서 6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질 때에 페르시아와 그 주변 나라들의 성읍으로 이주했는데(왕상 17:6, 에 1:9; 9:2), 그 나라들에서 민수기 24장 17절에 기록된 예언에 따라 구세주가 탄생할 때에는 특별한 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파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메시아의 탄생을 알려주는 한 별이 몇몇 페르시아의 박사들에게 나타나자 그들이 새로 나신 유대인의 왕께 경배 드리기 위해 유대 땅을 향해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민 24:17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

유대인들은 이 예언을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계시의 말씀으로 이해한다. 이 구절에 대한 문자적 해석은 “그 별이 동방에서부터 빛나는데 이 별이 메시아 별이다”라는 뜻이 된다. 성경에서 별이 나타나는 것과 이스라엘 왕이 오실 것을 연결해서 예언한 구절은 이곳 뿐이다.

 

그러나 이 고전적인 동방박사 페르시아인 설은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수긍할 만한 이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의 페르시아 설에 너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아마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는 혁신적 주장이 되겠지만,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성경의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볼 때 유대 땅에서 “가장 먼 나라”인 ‘신라’라고 얼마든지 단정할 수 있다. 이제 그 타당한 근거를 살펴보자.

 

브레포스(βρ?φο?)와 파이디온(παιδ?ον)

 

동방박사들의 내방 사건은 마태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고, 목자들의 마구간 방문 사건은 누가복음 2장에 기록되어 있다. 보통 누가복음 2장의 ‘마구간’ 기사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기사를 동일한 시간상의 사건으로 생각한다. 많은 성탄 노래와 그림, 성탄 관련 성극들이 그것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 사건 사이에는 적어도 1년 이상 2년 이하의 시간적 격차가 있다.

 

한글 개역성경은 동방박사들이 방문했던 아기와 목자들이 방문했던 아기를 똑같이 아기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성경에 기록된 아기라는 말의 원어는 전혀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고, 그 의미 또한 같지 않다. 목자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누가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브레포스”가 사용되었고(12절, 16절), 동방박사들이 방문하여 만났던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헬라어 “파이디온”이 사용되었다(8절, 9절, 11절, 13절, 14절, 20절).

 

*헬라어에서 '브레포스'는 'a newborn child’

곧 갓난 아기(baby)를 의미한다.

brephos: an unborn or a newborn child <- 클릭

 

*헬라어에서 ‘파이디온’은 ‘a young child’ 곧

어린아이’(a little boy, a little girl)를 의미한다.

paidion: a young child <- 클릭

 

헬라어 사전에 의하면 “브레포스”는 ‘갓난아기(baby)’를 뜻하는 말이고, “파이디온”은 ‘어린아이(young child)’를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의 모든 용례를 살펴보면 이 두 단어는 나이의 개념을 분명히 할 때, 즉 “더 어리”고 “덜 어린” 아이를 묘사할 때 쓰인다. 영어성경은 원어의 뜻에 맡게 누가복음 2장의 아기는 ‘baby’로, 마태복음 2장의 아기는 ‘child’로 구분하여 잘 번역하였다.

 

아기라는 낱말에 대한 헬라 원어의 이와 같은 분명한 차이점으로 미루어 볼 때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 이야기는 틀림없이 시간적 간격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장의 아기가 누가복음 2장의 아기보다 얼마 더 자란 아기이기 때문이다.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학살당함

 

그러면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사건과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 사건은 어느 정도의 시간적 차이가 있을까? 최하 1년 이상 최고 2년 이하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왜? 헤롯이 동방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베들레헴과 그 온 지경 안에 있는 모든 사내 아이들을 죽일 때,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기 때문이다(마 2:16). 헤롯은 동방박사들에게 별을 처음 본 때를 자세히 물었었다(마 2:7). 그것이 후에 이 어린 왕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데 결정적인 정보가 되었던 것이다.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

 

그 때가 만약 예수님이 갓 태어난 갓난아이(baby)였다면, 헤롯은 결코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한 살부터 그 아래 혹은 생후 6개월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들만 다 죽여도 헤롯은 충분히 안심했을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은 동방박사들이 어린 예수를 만났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고 대략 최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며, 따라서 이 당시 예수님은 이미 2살은 조금 못됐겠지만 상당히 자란 아이였을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이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누가복음 2장의 목자들 이야기와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 이야기는 약 2년의 시간적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약 2년에 걸쳐 여행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고하는 별이 아닌 알려주는 별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동방에서 본 그 별은 아기 예수님이 유대 땅에서 탄생하셨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별이 아니었다. 이것은 마태복음 2장 2절에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았다고 했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실 이”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음을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그들은 왕이 이미 태어나셨음을 확언했다.

 

그 별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 나타났음에 틀림이 없고, 아기(baby)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밤에 베들레헴 근처의 목자들이 천사들이 가르쳐준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고 즉시 마구간에 갔으며, 먼 동방의 현자들은 바로 그때부터 출발하여 약 2년의 긴 기간 동안 여행을 해서 마침내 유대 땅에 이르러 “파이디온”(어린아이: child)이신 예수님께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치며 경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직후 요셉의 가정은 헤롯의 학살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으며(예물로 받은 황금은 요셉의 가정이 애굽으로 여행할 때 긴요한 자금이 되었을 것이다), 베들레헴과 그 지경 안에 있는 두 살 이하의 유아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어린 아이(파이디온; Young Child)였던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신하는 요셉과 마리아.

 

구약신학계의 세계적 거목인 글리슨 아처(Gleason L. Archer) 박사는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는 별이 나타난 후 1년 이상이 지난 때였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보았던 별은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는 사실의 선언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헤롯이 베들레헴으로 병사들과 학살자들을 보내면서 내린 다음과 같은 명령 때문에 알 수 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그러므로 그 별은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나타났으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헤롯과 만날 때까지는 그 별이 나타난 이후 일 년 이상이 경과된 때였다. 따라서 그 별은 어떤 사실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선포한 것이었다.”(글리슨 아처 저, 황영철 역, 「성경 난제 백과사전」, 생명의 말씀사, 1997, p.433)

 

그러니까 당시의 아기 예수님은 ‘갓난아기’(브레포스: baby)가 아닌 ‘어린아이’(파이디온: child)로서, 아기 예수님의 나이는 한 살이 지나 두 살이 조금 되지 않은 나이였던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방문했을 때는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이후로 꽤 시간이 흘렀고, 대략 최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구간과 집

 

따라서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방문한 곳과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 방문한 장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누가복음 2장에서 목자들이 왔을 때 ‘아기’(브레포스: baby)는 마구간 ‘구유(manger)’에 누워 있었다.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눅 2:16~17).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닌 ‘집(house)’에서 아기(파이디온: child)께 경배했고, 목자들이 방문했던 때와는 달리 요셉은 당시에 그곳에 없었다(아마 목수였던 요셉은 일하러 나갔을 것이다).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이 구절에서 ‘집’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마구간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분명히 ‘집’이라고 되어있다. 동방박사들은 마구간이 아닌 집에서 갓난아기(baby)가 아닌 약 2살 쯤 된 어린아이(young child)이신 예수님을 만났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구유에 있을 때 예수님을 방문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아닌 나사렛 요셉의 집으로

 

박사들은 예수님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별의 인도를 받아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다. 그런데 별의 인도를 따라 가서 어린아이(young child)이신 예수님을 만난 그곳은 베들레헴이었을까? 그때에 예수님은 나사렛에 계셨을 개연성이 크다. 동방박사들은 갈릴리의 나사렛에 있는 요셉의 집에서 예수님을 경배했을 여지가 충분히 있다.

 

동방박사들은 헤롯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다가 갑자기 별이 그들의 앞을 인도해서 그 별을 따라가서 예수님을 만났다(마 2:9). 이미 박사들은 베들레헴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에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계셨다면 동방에서 봤던 그 별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서 박사들을 인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동방에서 보던 별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박사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정확히 인도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당도한 곳은 나사렛이었다.

 

 

만약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던 날에 ‘갓난아기’(브레포스)이신 예수님을 방문했다면 그들이 방문한 장소가 베들레헴이 틀림없겠지만 예수님이 탄생하신 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어린아이’(파이디온)이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때 예수님은 베들레헴보다는 갈릴리 나사렛에 있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만삭인 아내를 데리고 고향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서 베들레헴에 간 이유는 베들레헴에 정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렸기에 잠시 베들레헴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눅 2:1~5). 그리하여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미가 5장 2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그 호적 정리를 마치고 요셉은 규례대로 난지 8일 만에 예수님에게 할례를 시행하고, 사내아이를 해산한 여인의 부정 기간이 마치는 40일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마리아의 결례(레 12:2)와 예수님의 헌신례(민 18:15,16)를 필한 후 베들레헴이 아닌 갈릴리의 자기가 살던 마을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눅 2:22~39).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축복하는 시므온(눅 2:25~30).

 

이와 같은 사실을 볼 때 예수님은 태어난 후 최장 40일 동안만 베들레헴에 있었고 그 후에는 동방박사가 방문한 직후부터 헤롯이 죽을 때까지 잠시 애굽에서 피신 차 머물렀던 시기(마 2:13~23)를 제외하고는 줄곧 나사렛에서 사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예수님을 방문했다면 그때 예수님은 이미 베들레헴을 떠난 후였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 ‘집’에 있을 때 예수님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대략 두살쯤 되었을 때라고 추정할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만난 예수님은 ‘갓난아기’(브레포스)가 아닌 ‘어린아이’(파이디온)이셨기 때문이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150km 정도 떨어져 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아닌 베들레헴의 요셉의 집으로

 

만약 예수님의 부모가 베들레헴에 남아 거기에서 아이를 기르기로 결정했다면, 그들은 호적 정리를 마쳤어도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 베들레헴에 거처를 마련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요셉의 가정은 베들레헴에 정착해 그들의 집에서 아기 예수를 양육하며 생활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동방박사들은 일반적인 견해대로 베들레헴에서 어린 예수를 경배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마구간의 구유에 있는 갓난아기(브레포스)가 결코 아니었다. 마구간도 여관도 아닌 ‘집(house)’에 있는 어린아이(파이디온)이신 예수님께 경배한 것이다. 박사들이 유대 나라에 도착한 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약 2년가량의 시간이 지난 후였기 때문이다.

 

마 2:11 집에 들어가 아기(파이디온)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따라서 그때에 다시 나타나 박사들을 앞에서 인도한 별(9절)은 그들이 찾아가는 베들레헴이라는 마을을 정확히 지적해 주는 기능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약 2년이 소요되는 여행 거리,

페르시아인가, 극동인가?

 

별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나타났음에 틀림없고,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헤롯을 만나기까지는 1년 이상이 더 걸렸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동방으로부터 유대나라에 도착하기까지는 2년 가까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동방(the east)’은 그 밤에 별을 보고 그 밤에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결코 아닌 것이다.

 

별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출현하였고, 그와 동시에 박사들이 그 별을 보고 인도되어 왔다면 시일이 상당히 걸린 후에 아기 예수님을 보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동방박사들의 고국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동방박사들이 약 2년에 걸쳐서 여행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서구 성경학자들의 동방박사 페르시아인 설은 결코 지지할 수 없는 이론이다. 페르시아는 유대 나라로부터 가까운 동방으로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일 이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동방박사들이 유대 나라를 내방 하는데 약 2년 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 하였다면 그들의 고국은 유대 땅으로부터 상당히 먼 동방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동방의 나라는 아시아 동쪽 땅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이다. 따라서 동방박사들은 신라인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BC 4년 신라인에 의해 관측된 특별한 별

 

이것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책에 의해서도 뒷받침이 되고 있기 때문에 신빙성이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박혁거세 편에 보면 “54년 봄 2월(음력)에 패성(혜성)이 하고(견우성)에 나타났다”(五十四年春二月己酉. 悖星于河鼓)는 문구가 있는데, 박혁거세 5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년도인 BC 4년에 해당된다(예수님은 한겨울에 탄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틴에 사는 목자들은 한겨울에 들판에서 밤을 지나지 않는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패성(悖星)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 별은 반드시 혜성(패성)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독특한 별의 출현을 목격한 신라의 천문박사들이 그 별을 패성(悖星)이라고 기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박혁거세 54년이었던 그 해는 BC 4년과 일치한다.

 

따라서 신라인에 의해 관측된 그 혜성은 동방박사들을 인도했던 메시아의 별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니치 천문대(Greenwich Astronomical Observatory) 다비드 랭크 씨 등 3명의 천문학자들은 그것이 그리스도 탄생 때에 나타난 별이었음을 입증한다고 한다.

 

더 큰 성경적 증거가 있다. 다니엘의 70이레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년도가 산출되는데 그 해는 AD 27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BC 4년에 탄생한 것이다. ☞→▶ < 다니엘의 70이레와 메시아 예언 > 그런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편에는 54년에 혜성이 나타났다는 문구가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박혁거세 54년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년도인 BC 4년과 일치한다. 필자가 신라인에 의해 관측되었던 그 별이 메시아의 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니엘서의 메시아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BC 4년에 탄생하셨다. 그런데 같은 해에 혜성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있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BC 4년에 태어나셨다.

그분은 BC 3년에 1세셨고, BC 2년에 2세,

BC 1년에 3세셨고,

27년 후인 AD 27년에 그분은 30세이셨다.

 

 

사실 예수님 탄생 당시 천문학이 가장 발달한 곳은 중근동 지역이 아닌 극동지역이었다는 것이 현대 천문학계의 정설이다. 신라는 천문학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였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신라인들이 별을 관측했던 세계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가 우뚝 서 있다.

 

▲첨성대

 

영국의 왕립천문학회(RAS)에서는 1977년 학회기관지 12월호에 메시아의 별이 나타났다는 2천 년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천문학이 발달한 곳이 중동과 극동이었고 중동에서는 태양력을 주로 연구한 반면 극동에서는 별의 운행을 주로 연구했기 때문에 만약 메시아의 별이 나타났다면 그 기록은 반드시 극동 쪽에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한국의 문헌을 뒤져서 앞서 소개한 삼국사기의 기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신라인은 메시아의 별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신라인은 어떻게 메시아의 별을 알아 볼 수 있었을까? 위고다르(G. Wigodar)는 솔로몬 사후인 B.C. 721년 앗시리아 침공에 의해 북이스라엘의 10지파가 포로가 되었으며, 세계의 곳곳에서 그들의 자손들이 발견된다고 한다(G. Wigodar, The Encyclopedia of Judaism, Jerusalem, 1989, pp.714, 715). 고대 이스라엘 역사 연구가인 요셉 아이델버그(Joseph Eidelberg)는 역설키를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했을 때 북왕국 10부족 중 일부가 천산산맥 →중앙아시아→지나(支那)→한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고 한다.

 

동짓날만 되면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던 우리 겨레의 풍습은 바로 그들 곧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지파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붉는 색의 팥죽으로 양의 피를 대신한 유월절 행사였다(출 12:6; 23).

 

 

실제로 흩어진 북이스라엘의 10지파 중 일부가 수세기를 걸쳐 동쪽으로 이주하다가 최후로 한반도 남단까지 내려와서 가야 왕국이나 신라 왕국의 백성들이 되었다면 그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별에 대한 지식이 신라인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보면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은 인도 중부 ‘아유타’ 국의 공주 허황옥이라고 했는데, 그 ‘아유타’ 국은 ‘유대인 공동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유타’의 ‘아’는 히브리어 정관사 ‘하’(??)이고 ‘유타’는 ‘유다’란 말로서, ‘아유타’ 국은 바벨론 포로 이후 흩어진 남유다 왕국의 유민이 세운 나라였다는 것이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이 그 ‘아유타’ 국의 공주 허황옥이라면, 가락국과 아유타국은 허 황후 이전부터 이미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그 때에 메시아의 별에 대한 지식이 우리나라 신라인들에게 전파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자, 국보 제31호인 첨성대.

선덕여왕이 신라를 다스리던 서기 633년에 세운 첨성대는 신라의 천문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첨성대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천문학자 사이에서는 첨성대가 밤하늘을 관측하는 천문대였다는 설이 더 우세하다.

당시 신라 천문관원들은 약 9m 높이의 첨성대에 올라 매일 밤하늘을 관찰했을 것이다.

사진 제공 한국천문연구원,

 

헤롯 대왕의 사망 년도와 동방박사들과의 만남

 

요세푸스(Josephus)는 헤롯 대왕이 죽은 것이 로마 기원 750년이라고 했다. 그 해는 BC 4년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서 헤롯을 만날 수 있었을까? BC 4년은 예수님이 탄생한 해인데, 동방박사들은 바로 그 해에 그들의 고국(신라)에서 별을 보고 유대 나라를 향해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2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한 후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헤롯은 이미 BC 4년에 죽었으니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필자는 요세푸스가 실수로 헤롯의 사망 년대를 정확히 기록하지 않았다고 본다.

 

다니엘의 70이레 예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BC 4년에 탄생하신 것이 맞다. 이것은 동방박사들이 그들의 고국인 동방에서 메시아의 별을 목격한 해가 BC 4년이었다는 뜻이며, 박혁거세 54년(BC 4년)에 혜성이 나타났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관측 기록과도 일치한다. 아마도 요세푸스는 헤롯의 사망 년도를 1년 이상 앞당겨 잘못 기록했을 것이다.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아주 먼 동방 나라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어디인가? 그들은 동방의 어느 나라 사람인가? 성경의 기록을 자세히 고찰해 보면 그들은 유대 땅에서 근거리가 아닌 ‘아주 먼 동방의 나라’로부터 찾아 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까지 당도하는데 적어도 1년 이상, 최장 약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먼 나라는 예루살렘 정동쪽으로 가장 먼 땅인 극동의 신라에 해당된다. 따라서 동방박사들의 고국은 신라였다고 얼마든지 추정할 수 있다. 이같은 이론은 상술한 바와 같이 한국의 고대역사 기록에 의해서도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으로서 기존의 가설인 페르시아 설보다 더욱 큰 객관적 설득력을 갖는다.

 


*이 글은 2009년 출간된 "알이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유석근 저, 예루살렘 간) pp.185~200에 있는

"제6장 동방박사들의 고국과 마지막 세기의 동방박사들"이란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저작권 보호를 받습니다.

 

글쓴이: 셈의장막재건자 -유석근 목사

(알이랑코리아 대표, 한국기독교상고사학회 선임연구원, 알이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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