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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동방박사(마2:1-12)에 대한 성경적 재조명

by 은총가득 2020. 9. 2.

동방박사(마2:1-12)에 대한 성경적 재조명

 

성탄절만 되면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전형적인 사건으로 이야기 되어 오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 모습이 성경적인가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성경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래서 2003년 성탄절을 앞두고 ‘동방박사’의 성경적인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마2:1-18의 말씀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한 성경적 의미(진리)가 무엇인지를 말씀 중심으로 살펴보고, 비교를 위해서 눅2:8-20의 말씀을 참고하고자 한다. 장황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인 내용들(동방박사의 전승, 신분, 경배의 스토리 등)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먼저 마태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지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1. 유대인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

-즉, 구약 특히 모세 오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다윗을 민족적인 위대한 왕으로 생각하며, 율법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위한 메시아(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이 세상을 멸하고 유대인을 구원하실 분으로 믿고 있다. 마태복음 전반적인 내용이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갖고 있는 유대인(특히 지도자들)들을 책망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것.


2.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의미를 깨달을 것.

-사단이나 유대 지도자 등이 예수님을 시험(유혹)하기 위해서 묻는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이해 방법 : 항상 예수님의 답변으로부터 그들의 질문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3.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관심을 둘 것.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통해서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구약의 해당 본문에 대한 미래적(2차적) 해석을 이해할 것.


4. 구약의 올바른 이해에 관심을 둘 것.

-유대인들이 잘못된 구약의 이해를 지적하시면서 의미를 재해석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의하여 구약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것.


5. 예언적인 말씀을 유대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것.
-천국이나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유의하여 이해할 것. 특히, 4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만 있는 내용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것.

이제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니”(마 2:2)
그들은 별을 연구함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점성가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상한 별의 출현을 위대한 인물(왕)의 출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믿고, 그 장소를 알기 위하여 동방에서 별의 위치를 추적하다가 유대 땅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서 확신하게 된 결과(‘유난히 큰 별 혹은 특이한 별의 출현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한다.’는 사실)입증해 줄 그 별을 추적하여서 위대한 인물(한 나라의 왕 혹은 세상을 호령할 미래의 왕)을 만나서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자 관심이었다.

경배라는 표현은 헬라어에서 항상 하나님에게 경배한다는 표현만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경외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엎드려 절하는 경우(왕에게[마18:26,])에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오히려 예루살렘이 소동한 것을 보고 그 왕은 일반적인 왕(정치적, 혈통적 왕)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적인 그리스도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10)
그들의 기쁨은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나서 경배하는 신앙적인 기쁨(cf.눅2:25-35[시므온], 36-38[안나])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혹은 예언의 결과가 사실로 입증되는 것에 대한 감격으로 학문적인 성취에 대한 기쁨을 나타낸 것뿐이다. 그리스도 사상이 있었던 유대의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후의 행동과 비교를 해보면 이해할 수가 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눅 2:20)
목자들은 예언의 성취를 본 현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였다. 이것이 신앙적인 사람들의 기쁨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이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현장을 본 후가 아니라 자신들의 학문적 연구의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그들이 연구해온 그 별이 한 인물의 탄생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기쁨이었다.

둘째, 그들이 왜 끝까지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을까?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 ‘동방의 박사들이 이미 유대의 상인들을 통하여 구약 내용이나 그리스도(메시아)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이 그리스도를 의미함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 사상을 갖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출발 했다면, 그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마2:2-6; 미5:2)도 베들레헴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왜냐하면 그들은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막연한 풍문이나 자료만을 근거로 먼 길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 대신에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 것이다(비교, 눅2:10-11[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구주’ 곧‘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한 나라 혹은 민족의 왕이 태어나는 것을 예언하는 별의 출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별이 유대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였을 때에 당연히 유대의 왕이 태어난다는 징조로 확신하였기에 끝까지 별의 인도를 받지도 않고 유대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별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방의 박사들이 아마도 유대의 동방에서 예루살렘의 북동쪽을 통해서 왔을 것이다(사해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위쪽으로 둘러서 왔다면). 그러므로 별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베들레헴까지 인도하려고(아마도 베들레헴 위에 머물러 있었지 않았을까?) 하였으나 그들의 판단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별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육안으로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알 수 있는 정도의 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별의 출현은 예수님의 탄생과 거의 동시였을 것이고, 그 별을 연구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적어도 몇 달 후였을 것이다(길게는 1년 이상. cf. 마2:16). 그 동안에 별의 출현으로 인한 유대의 소동이 없었던 것을 보면 일반 사람들은 그 징조를 알아차릴 수도 없었던 것 같다.

셋째,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들이 바친 예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그러므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것은 한 민족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경외심이고, 그들이 바친 예물은 그들의 연구에 대한 결과로서 만나게 될 미래의 왕에 바치기 위하여 준비한 선물이었다(고대에는 왕을 알현 할 때에는 선물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으며, 아마도 그 예물은 박사들의 고장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물품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 물론 그 의미를 억지로 찾아본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예수님의 왕적(황금), 제사장적(유향)인 사역과 그리스도로서의 고난(몰약)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선물이던 구태여 의미를 붙인다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어떻게 헤롯 왕의 요청보다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게 되었을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 예수님께 경배하게 하는 사람으로 동방의 박사(점성가)들을 사용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점성가들은 하늘의 변화나 징조를 통하여 땅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하고, 그에 대하여 대비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상한 사건들에 대하여 민감하며, 그 사건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루살렘의 소동을 통해서 태어날 아기가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종교적인 왕으로서 현재 유대지방의 왕으로 군림하는 헤롯 가문의 출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꿈에 나타난 지시를 유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신(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의 지시를 권력을 가진 왕의 요청보다도 더 신뢰하고는 다른 길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섯째, 결론적으로 본문이 (특히, 유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하시는데 정작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 있던 이방의 동방 박사들이 자연을 통한 지식(점성술)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잘 알고 맞이해야 할 유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롯 왕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하셨다.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 사실을 유대인들을 위한 마태복음에 기록한 것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유대인을 책망하기 위한 의미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국 이 기록의 의미는 동방 박사들의 예수님께 대한 경배가 초점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핍박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요한복음에 기록한 말씀(요1:9-13) 중에“자기 땅에 오메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요 1:11)라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에 대한 책망의 말씀인 것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9-13)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의 예수님께 대한 경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지고,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탄절 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야 하지 않을까?

베들레헴의 한 별과 동방박사(마2:1-12)

 

 

베들레헴의 별, 역사적 사실인가?

 

마태복음(2:1-12)만이 헤롯 왕때에 동방박사들이 이상한 별을 보고 별빛을 따라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처소를 묻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다고 적고 있다(2:1). 헤롯 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에게 자문을 구하니, 이들은 네게서(베들레헴) 한 다스리는 자(5:1)가 나와서 내 목자가 되리라(삼하 5:2)고 한 구약 말씀을 찾아내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를 방문하였다고 전해 준다. 그리하여 베들레헴의 특별한 별에 관한 천문학적 증거들이 제시되어 왔다.

1) 1606년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토성과 목성이 기원전 7년의 5-6, 9-10, 그리고 12월에 일직선상에 놓였다는 사실을 들어 이를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주장하였다.

2) 피네건(J. Finegan)은 기원전 53월과 기원전 44월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초신성 혹은 혜성 하나가 꽤 오랜 시간 동안 관측되었다는 중국인 천문학자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3) 1925년 동양학자 폴 쉐나벨(P. Schnabel)은 유프라테스 강 부근 시퍼(Sipper)에 있는 천문관측소에서 발견된 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을 해독한 결과, 기원전 7년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자리에서 웅장한 결합이 이뤄진 것이 기록된 것을 확인하였다.

4)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 박혁거세 편에는 박혁거세 54(BC. 4) 2월 하고(河鼓, 견우성)에 우성(牛星, 혜성)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측의 자료 한서충제기(漢書衷帝記)의 기록과 일치한다는 것이 1979년 영국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구약에서도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주변 국가들을 멸할 것이라고 하였다(24:27). 별의 출현이 새로운 구원자의 도래를 알리는 우주적 사건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식인 것이다. 마태는 이 특이한 한 별을 특별한 계시로 여겼던 당시의 통속적 신앙의 일면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동방박사는 누구인가?

 

동방박사 세 사람 귀한 예물 가지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별 따라 왔도다.”는 잘 알려진 성탄 찬송가(116) 때문에 동방박사가 모두 세 사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2:1)라고 표현하였을 뿐, 그들이 몇 명이었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오리겐 이후로 세 명이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세 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바친 예물이 세 가지 즉 황금과 유황과 몰약이었다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어거스틴이나 크리소스톰 같은 이들은 그들이 12명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동방박사로 번역된 마고스(Magos)는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는 마술사(8:9) 박수(13:6)로 번역된 것처럼 무당, 점성가, 해몽가를 뜻하기도 한다. 동방박사의 출신지에 관해서 아라비아나 이집트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바벨론을 동방이라고 본 구약의 관점과 바벨론의 모든 박사(2:48)라는 표현과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제국의 관리로서 정치나 종교 문제를 자문하는 고위직을 마고스라 지칭한 것으로 보아 바벨론 지역인 페르시아 출신일 것으로 추정한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의 역사적 사례들도 밝혀졌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기원후 66년 동방의 점성가 티리다테스(Tridates)와 일단의 동방박사들이 로마를 방문한 사실을 전해 준다. 호슬리(R. A. Horsley)는 실제로 마고스들은 신의 뜻과 사물의 질서를 해석해 내는 임무를 주로 수행하였으며, 새로운 왕의 출현 시 이를 알리고 먼 거리를 여행하여 알현한 역사적 사례들이 있었음을 제시한다. 이들은 왕실 인사의 꿈이나 특이한 자연현상을 풀이하여 신의 뜻을 해석하여 왕에게 조언하는 아주 중요한 종교적, 정치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의 해석 여하에 따라 국내외 정세가 급변하기도 하였다.

 

동방박사 방문의 의미

 

마태는 동방박사의 이러한 정치적 기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태는 동방박사들이 헤롯 왕을 만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두 왕 즉 헤롯왕과 새로 나신 유대인의 왕을 날카롭게 대조시킨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새로 등극할 유대인의 왕으로서 헤롯 왕처럼 권력으로 백성을 노예로 부리는 폭군적인 왕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고대해 온 백성을 양처럼 돌보는 목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메시아의 탄생은 분명히 온 백성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2:10)이었지만 헤롯 왕을 비롯한 당시의 지배세력들에게는 경악스러운 소식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동박박사의 그들이 크게 소동(騷動)한 것(2:3)이다. 이처럼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헤롯과 그 일당들에게는 경악스러운 소식이었고 부자 청년에게는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소식(18:23)이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이방의 종교와 지혜를 대표하는 자들로서 예수를 온 세상의 구세주로 예배한 이방인들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의 거부와 이방인의 수용(8:11-12, 21:43)이라는 마태복음의 전체 주제와 관련시켜 보면, 현명한 이방인들은 저 멀리서 찾아와 예수를 그리스도로 경배하지만, 헤롯을 비롯한 가까이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은 큰 소동을 일으키며 이를 거절한 것이 된다.

 

또한 이 기록에는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이 메시아를 먼저 알아보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예수가 온 세계의 구세주로 나셨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허호익 교수/대전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동방박사와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별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2)

여기 본문에 나온 동방박사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천문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아마도 메데나 파사에서 왔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추정하는 것은 헬라 원문에 마고이(Magoi)란 이들의 명칭이 위의 나라들에서 박사들로 통용되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온 것을 동방에서부터 왔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초기 이들 동방박사를 그린 그림에 이들이 페루샤인의 옷을 입고 있으며 초대교부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파소의 디오도루스(Diodorus), 크리소스롬(Chrysostom), 알렉산드리아의 씨릴(Cyril), 주벤커스(Juvencus), 푸루덴티우스(Prudentius) 그리고 그 밖에 사람들이 그 박사들이 페루시아에서 왔다는데 동의하고 있다.1)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동방박사들이 오늘날의 천문학자와는 다르다는데 있다. 그 당시 천문학은 별들의 움직임을 보고 신들의 뜻에 대한 경고나 운명의 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 그런 불운을 미리 방지하는데 사용되었다. 성체의 변화를 조사하므로 특별한 날에 있을 하나의 운명을 점치는데 사용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종교적으로 이용되어 별들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 따랐다. 따라서 성경은 신명기 17:2-7에서 일월성신을 섬기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점성가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데 쓰여질 수 있겠는가? 그것은 모순이 아닌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저들에게 나타났던 별이 어떤 별이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천문학자였던 케풀러(Kepler 1630년에 사망)는 목성과 토성의 만남이 물고기좌(Pisces)의 12중성좌의 성운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히브리인과 고대 첨성학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이 항성의 만남은 B.C.7년 5월, 10월, 11월에 나타났는데 10월, 11월의 출현이 바로 2:9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또 그 별을 초신성(Supernova)으로 보았는데 어느 주석가는 빛을 변하는 별들(Variable Stars)로 보기도 한다.2)

 

그러나 본문의 사건은 이런 자연적인 성체의 변화와 조화를 시키기에는 너무도 의도적인 것이었다. 황제 가이사에게 호적을 실시케 하도록 칙령을 내려 마리아와 요셉으로 베들레헴에 가게 하시고 거기서 아들 예수님을 낳게 하시므로 메시아 약속을 성취시킨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이 별의 출현도 주권적으로 역사하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2:9의 별은 엄격하게 초자연적이었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여기 동방박사들은 그 당시에 점성가들이 보고 연구하며 점을 치던 그런 별들이 아니라 특별한 별을 본 것이다.


둘째로, 이 박사들은 별을 보고 점성술에서처럼 신들의 뜻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2:16에 보면 헤롯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에 살던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다 죽이게 하였다. 그렇다면 박사들이 헤롯에게 온 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후 꽤 시간이 흘렀으리라 본다. 이렇게 볼 때 그 별은 미리 알리는 경고가 아니라 이미 성취된 사건에 대한 알림이었다. 누가복음 2:16에서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고 하였으나 마태복음 2:11에 박사들이 와서 경배할 때는 구유 대신 집에서라고 하였으므로 두 사건은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셋째로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중 어떤 이교적인 예배행위도 없었다. 이들은 단지 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예고를 받아들여 새로 탄생한 왕을 찾아갔을 뿐이다. 그것이 전부였다.


마지막으로 성경에는 하나님의 예언을 위해 별들의 변화를 이용한 구절들이 있다. 예컨대 마태복음 24:30에 예수님의 재림의 표가 권능과 영광으로 하늘에 나타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그 표적은 해와 달과 별의 성체였다. 역시 베드로 사도는 요엘 2:28-32을 인용하여 재림의 표로 설명하고 있다(행 2:19-26). 이런 점에서 하늘의 성체를 연구하는 이런 점성가들이 이상한 별의 출현을 보고 그것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와서 유대인의 왕을 찾아 만났고 그에게 경배한 사건은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더구나 이 박사들은 그 당시 흩어진 유대인들이 메데의 여러 도시에서 살고 있었음에 비추어(왕하 17:6; 대상 5:26; 에 1:1; 9:2; 행 2:9-11) 유대인의 메시아 대망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며 또 저들의 구약성경을 보면서 메시아 강림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3)


1) W. Hendriksen, The Gospel of Matthew(Edinburgh: Banner, 1973), p.151
2) D. A. Carson, Matthew(The Expositor s Bible Commentary, Vol. 8, Grand Rapids: Zondervan, 1984), pp.86-87
3) 이교도나 유대인을 막라해서 몇 개의 고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별이 위인의 탄생을 알린 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태는 특별히 야곱에게서 나올 별에 대한 발람의 예언을 마음에 두었을 것인데 민수기 24:17의 말씀이 오실 구주를 언급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R. T. France, Matthew,pp.81-82 (R.E. Brown, The Birth of the Messiah, pp.193-196).

 

 

동방박사의 경배와 헤롯의 예수살해 음모

(마 2:1-12)


메시야 예수에 대한 세상 권세의 반응과 예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

마태는 본문을 통해 악한 왕 헤롯과 대조되는 유대인의 왕이며 모든 민족의 메시야 되시는 예수를 강조하고 있다.

1. 동방 박사들의 예루살렘 방문(1-3절)

이방인 박사들의 출현은 예수의 족보(1:1-17)에 이방 여인들이 언급된 것처럼,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예배하는 무리들 속에 이방 출신의 제자들이 포함될 것임을 암시한다. 마태는 이러한 점을 처녀 수태 고지에서(1:23)와 같은 놀람의 의미를 내포한 '보라'(idovu, 이두, 1a절)라는 단어로 강조한다.

1)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
(Tou' de; jIhsou' gennhqevnto"투 데 예수 겐네덴토스, 1a절)
예수의 탄생이 독립속격 구문으로 기록된다. 이는 예수의 탄생이 주체적 의미를 갖고 있으며, 본 절 이하에 언급되는 전체 내용의 서론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F.F.Bruce). 정관사 투(tou')는 '예수'의 이름이 이미 언급되었음을 가리키며(1:21;25), 예수가 지닌 '구원'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켜 준다. 한편 헤롯 왕 때에는 B.C.4년에 사망한 헤롯대왕이 통치하던 때에 예수께서 탄생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나아가 '유대인의 왕'(2절)이신 예수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사악한 왕의 지배시에 탄생하여 어린 시절부터 고난받으실 것을 암시한다.

2)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함
(mavgoi ei[domen ga;r aujtou' to;n ajstevra ejn th'/ ajnatolh마고이 에이도멘 가르 아우투 톤 아스테라 엔 테 아나톨레, 1b,2절)
마고이(mavgoi박사들)는 70인역(LXX)의 단2:2,10에서 유래하는 단어로 현자 또는 제사장을 의미하며, 당시 메대, 바사, 바벨론 지방에 널리 퍼져 있었던 천문학과 점성술 분야의 전문가들을 가리킨다(HDCG Ⅱ, 97-101). 엔 테 아나톨레(en th'/ ajnatolh'동방에서)는 본래 '그 별이 떠오를 때'를 의미한다. 박사들은 동방에 있는 별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별'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Moffatt). 정관사 톤(tovn)과 더불어 소유의 의미를 갖는 아우투 톤 아스테라(aujtou' tovn ajsthvra그의 별)는 '예수의 별'을 가리키며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민24:17)라는 발람의 신탁(神託)과 부합되는 메시야의 별이었다.

3) 예루살렘의 소동
(pa'sa JIerosovluma met! aujtou' 파사 예로솔뤼마 메트 아우트, 3절)
메트 아우트(metj aujtou')는 '그와 함께' 즉 헤롯과 함께를 뜻한다. 이는 정적(政敵)을 두려워하는 헤롯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전체가 새로운 왕의 출현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특히 파사(pa'sa온)는 유대교의 본산인 예루살렘 전체가 예수를 대적하는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2. 동방 박사들을 기만한 헤롯의 궤계(4-8절)

헤롯은 다윗 가문의 왕도, 유대인도 아닌 이두매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불법적 왕권을 지키려고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박사들을 반기는 것처럼 기만하였다.

1) 동방 박사들의 내방에 대한 헤롯의 반응
(sunagagw;n pavnta" tou;" ajrcierei'" kai; grammatei'" tou' laou' 쉬나가곤 판타스 투스 아르키에레이스 카이 그람마테이스 투 라우, 4a절)
헤롯은 메시야의 출생지를 묻고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소집하였다. 사두개파에 속한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더불어 유대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Sanhedrin)을 형성하였다. 마태는 헤롯이 소집한 이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헤롯과 마찬가지로 불신앙적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바리새파 출신인 서기관들은 '회당'을 뜻하는 쉬나고게(sunagwghv)에서 유래한 부정과거 분사 '쉬나가곤'(sunagagwvn모아)을 써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과거에 예수를 배척하였던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2) 헤롯이 예수 탄생 장소를 물음
(ejpunqavneto par! aujtw'n pou' oJ Cristo;" genna'tai 에퓐다네토 파르 아우톤 푸 호 크리스토스 겐나타이, 4b절)
에퓐다네토(ejpunqavneto)는 미완료 시제로 헤롯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집요하게 메시야의 출생지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마태는 미5:2의 '작을지라도'(twOyh}li ry[ix차이르 르흐요트)를 '가장 작지 아니 하도다'(oujsamw'" !elacivsth우다모스 엘라키스테)로 바꿔 인용하였다(6a절). 마태에게 있어서 베들레헴(Bhqlev- eJm떡의 집)은 미가 예언 당시의 작은 마을이 아니라, 다윗 가문에 메시야가 탄생하신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3) 헤롯이 예수 탄생 시기를 물음
(lavqra/ kalevsa" tou;" mavgou" hjkrivbwsen 라드라 칼레사스 투스 마구스 에크리보센, 7,8절)
라드라(lavqra은밀히)와 '에크리보센'(hjkrivbwsen정확히 탐색하다)은 메시야의 출생지와 출생 시기를 확인하는 헤롯이 예수 살해 음모를 숨기고 박사들에게 속임수를 쓰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거짓된 모습을 간교하게 감추는 악한 자의 행위는 사단의 방법이기도 하다.

3. 동방 박사들의 경배(9-12절)

아기 예수께 대한 이방인 박사들의 경배는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받으나 이방인에게는 받아들여지는 메시야의 운명의 전조이다(F.F.Bruce).

1)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감
(ijdou; oJ ajsth;r ■ proh'gen aujtou;" 이두 호아스테르…프로에겐 아우투스, 9,10절)
프로에겐(proh'gen앞서 인도하여)은 미완료시제로서 별이 박사들보다 앞서서 계속 진행하였음을 의미한다. 그 별(2절)은 아기 예수가 계신 베들레헴의 사관(눅2:7)으로 박사들을 인도하였다. 박사들은 별이 아기 예수가 계신 곳위에 머물자 커다란 기쁨과 감격을 감출 수 없었다(10절). 이는 구원을 베푸시는 메시야를 발견한 자가 표출하는 반응이다. 빛과 구원이신 주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화평 안에 머물게 된다(빌4:6,7절).

2) 동방 박사들이 예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림
(ajnoivxante" tou;" qhsaurou;" aujtw'n아노이 크산테스 투스 데사우루스 아우톤, 11절)
데사우루스(qhsaurouv"보배함)는 고대 문필가들 사이에서 통용된 작은 상자, 보물 상자를 말한다(A.T.Robertson). 박사들이 작은 상자에 담아 가져온 예물,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각각 예수의 신성과 왕권과 죽으심을 상징한다(72:10,11,15; 사60:2,3,6). 박사들이 이러한 예물을 예수께 드림은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주며 진정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자의 참된 자세를 보여준다.

3) 동방 박사들이 하나님의 인도로 귀국함
(crhmatisqevnte" kat! o[nar 크레마티스덴테스 카트 오나르, 12절)
크레마티스덴테스(Crhmatisqevnte")는 본래 '거래하다'는 의미이나 70인역(LXX)과 신약에서 '신탁하다, 가르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Deissmann). 박사들이 하나님의 직접 계시인 꿈에 신탁을 받아 헤롯의 박해를 벗어나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던(McNeile)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를 받는다.cafe.daum.net/correctthe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