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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시대의 유물

신 바벨로니아의 왕들

by 은총가득 2020. 6. 2.

신 바벨로니아의 왕들

 

1. 나보폴라살 / 나보폴라사르[ Nabopolassar ] (B.C 625 ~ 605)

이칭 : Nab?-apli-usur

B.C. 7세기경 신(新)바빌로니아 왕국 초대의 왕(재위:B.C. 625~B.C. 605). 아시리아의 쇠운을 틈타 B.C. 625년 신바빌로니아 왕국(갈대아 왕국)을 건설, 612년 메디아(Media) 왕 큐아크사레스, 유목민(遊牧民) 움만 만다(Umman-Manda)와 함께 니네베(Nineveh)를 함락하고, 609년 하란(Harran)에 의거한 패잔의 아시리아를 멸했다. 이집트는 유다왕 요시아를 메기돈(Megiddon)에서 깨치고 북상(北上)하여 아시리아를 원조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는 바빌론을 비롯하여 바빌로니아의 여러 시에 왕궁ㆍ신전을 짓고 이집트ㆍ메디아ㆍ리디아(Lydia)의 삼국과 함께 오리엔트(Orient)의 강국(强國)이 되는 기초를 쌓았다.

 

2. 느부갓네살 /네부카드네자르 2세 [ Nebuchadnezzar II ] (B.C 605 ~ 562)

느부갓네살 2세라고도 한다. 부왕(제국의 창건자) 나보폴라사르의 생전에 네코 2세가 거느린 이집트군을 카르케미시전투에서 격파하고(BC 605), 왕위계승 뒤에는 시리아 ·팔레스티나지방의 평정에 진력하였다. BC 597년 예루살렘을 공략하였으며, 이어 BC 587년에는 유대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멸망시켜 그 곳의 수천 주민을 바빌로니아로 강제 이주시켰다(바빌론의 유수). 이때가 BC 583년 이었으며 유대민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역사기록에 메달리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의 기록이 현재의 구약성서로 전하게 되었다. 또한 국내 각지의 신전을 부흥시키고 상공업을 장려하여 국력의 충실을 꾀하였다.

또 수도 바빌론을 정비하여 성벽을 쌓고 그 주위에 도랑을 파서 해자(垓字)를 만들었으며, 성문을 단단히 구축하였다.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만든 바빌론의 공중정원(空中庭園)과 마르두크 신전 등을 수복하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歷史)》 및 《다니엘》에 그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3. 에빌므로닥 / 아벨 마르둑 [ Evil-merodach ] (B.C 562 ~ 560)

느부갓네살의 아들로 그의 뒤를 이은 바빌론의 왕.

그는 포로로 잡혀온 유다의 여호야긴 왕을 옥에서 풀어 주고 다른 포로들보다 특별히 대우해 준 일로 기억된다(왕하25:27; 렘52:31-34). 그는 자기 누이의 남편인 네리글리사르의 음모에 의해 왕권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4. 네르갈 사레셀 / 네리글리사르 [ Nergal-sharezer ] (B.C 560 ~ 556 )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사위로 네리글리사르(Neriglissar)와 동일 인물이다. 그는 느부갓네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되었는데, 이후 처남인 에윌므로닥을 죽이고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렘39:3,13).

 

5. 라바시 마르둑크 [ Labasi-Marduk ] (B.C 556 )

라바시 마르둑(, B.C.556-556)은 기원전 556년에 두달 동안 통치한 후, 바벨론 제국은 주전 556-539년까지 나보니두스(Nabonidus)의 통치하에 있게 된다.

네르그리살(BC620-556년, 렘39:3, 네르갈 사레셀)은 4년의 짧은 통치로 끝나고, 네르갈사레셀이 죽고 그의 어린 아들인 라바시 마르둑이 주전 557 년에 부친을 계승했다. 라바시 마르둑(기원전 556?)은 9개월 만에 살해되고, 나보니두스(BC556-539)는 반란으로 정권을 잡는다.

 

6. 나보니두스 / 나부나이드 [ Nabonidus] ( B.C 556 ~ 539 )

이명 : Nabu-na'id '나부의 숭배자'

신(新)바빌로니아 왕국의 마지막 왕(BC 556~539).

시(市)의 주신(主神) 마르두크의 사제들이 이끈 대중반란이 지난 다음, 나보니두스는 아들 벨샤자르를 공동섭정으로 세우고, 통치기간의 대부분을 아라비아에서 보냈다. 그는 달의 신(神)인 신(Sin)을 좋아했다. BC 539년 바빌로니아에 돌아왔을 때,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의 침략을 받고 장군 고브리아스에게 체포당해 추방되었다.

 

7. 벨사살 [ Belshazzar] 바빌로니아의 공동 섭정왕(?~BC 539경)

선지자 다니엘이 벨사살의 축제일에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쓴 글(mene, mene, tekel parsin-단 5:25)을 해석하면서 도시의 파괴를 예언했다(BC 539). 벨사살이란 인물은 오직 다니엘 5장과 크세노폰의 〈Cyropaedia〉를 통해서만 알려져오다가, 1854년 그에 관한 글들이 당시 바빌로니아인들의 비문에서 발견되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의 왕 나보니두스(BC 555~539 재위)와 느부갓네살 왕의 딸인 니토크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이었다. 나보니두스는 추방당하면서(BC 550) 아들 벨사살에게 왕위와 군대의 대부분을 위임했다. 벨사살은 비록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BC 540경) 기근과 경제적인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정부와 그들 왕족의 재산을 관리했다. BC 539년 10월 12일 바빌로니아는 페르시아의 장군 고레스에게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멸망함과 동시에 그날 밤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였다(단 5:30).

 

바벨론

신 바벨로니아의 왕들

1절 느브갓네살 왕의 야심

 

i) 앗시리아 제국의 최후와 유다 왕국의 멸망

에사르하돈(Esarhaddon, 681-669 B.C.)의 아들 아슈르-바니팔(Asshur-banipal, 669-626 B.C.) 말기부터 Assyria 제국은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했다. 제국 내 깊숙히 침입한 스키타인(The Scythians)의 약탈과 방화, 그리고 도처에서 봉기되는 반란이 그치지 않았다. 거기에다 아슈르-바니팔 사후에 왕위 계승권 쟁탈전으로 내분이 그치지 않자 제국의 중앙 집권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었다.1) 그 와중에 Egypt는 독립을 선언하고 Ellam도 제국의 세력권에서 벗어 나갔다. 설상가상으로, Assyria 제국이 완전히 괴멸하게 된 결정타는 두 지역에 Asshur-banipal이 죽기 전에 총독으로 임명한 두 봉신들의 배신이었다. 그 하나는 Babylonia 지역 최남부 “바다의 나라”(The Sea Land)2) 총독으로 임명받은 나보폴라사르(Nabopolassar, 625-605 B.C.)3)와 다른 이는 이란 고원 지역의 Medea 총독으로 임명된 키악사레스(Cyaxares)의 반란이었다.

B.C. 625년에 Asshur-banipal이 죽자 Nabopolassar은 반란의 주모자로 변신하여 그 해에 Babylon 성에 입성하고 Chaldea의 Neo-Babylonia 왕조를 창건하였다. 그것으로 잦은 전투가 계속되다가 Assyria 제국에 항쟁으로 돌변하더니 B.C. 616년부터는 아예 Eupretes강을 건너서 Tigris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수도 Nineveh를 향하여 고도 Asshur에 진격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란 고원의 Ellam과 손잡은 Medea의 총독 Cyaxares는 Medea군을 재편성하고 수도 Echbatana를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테헤란 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독립 왕국을 선포했다. 드디어 B.C. 615년에 Zagros산맥의 험준한 계곡길을 넘어 Assyria를 기습 공격하여 Arapah(현재의 Kirkuk)를 단숨에 점령하고 다시 그 여세를 몰아 B.C. 614년에 Assyria의 옛 수도 Asshur를 먼저 함락했다.4)

그리하여 한 발 늦게 Asshur에 도착한 Nabopolassar은 그 성벽 아래서 Cyaxares와 함께 제국 Assyria를 멸망시키기 위해 모의하던 중 혈맹을 맺기에 이르렀다. 즉 Nabopolassar의 아들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605-562 B.C.)와 Cyaxares의 손녀(Astyages의 딸) 아미티스(Amytis)와 정략혼을 하게 한 것이다.5) 이렇게 해서 결성된 Medo-Neo Babylonia의 연합군은 드디어 B.C. 612년 여름에 Assyria의 수도 Nineveh를 급습하였는데, 파괴와 약탈에 열광적이던 Scythians도 합세했다.

약 2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Nineveh는 함락되고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Assyria 왕 신-샬-이쉬쿤(Sin-sar-iskun, 621-612 B.C.)은 그 많은 중신들과 궁녀들과 함께 살해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B.C. 611년에 제국내 여러곳에 흩어진 패잔병들을 한 곳으로 집결하고 군을 재편성한 한 용장은 자신이 Assyria의 새 왕 아슈르-우발리트(Asshur-uballit II, 611-609 B.C.)라 선언하고 왕위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란(Haran)을 새 수도로 삼고 마지막 방어진을 구축하면서6) Egypt에 원군을 긴급 요청하였다.7)

B.C. 610년에 Nebuchadnezzar은 연합군을 재정비하자 곧 Haran을 포위 공격했다. Asshur-uballit는 Egypt의 원군을 더이상 기다릴수 없어서 Haran에서 철수하였다. Haran은 Nebchadnezzar이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고 말았다. Haran의 성주 나부-바라추-이크비(Nabu-baratsu-iqubi, ?-610 B.C.)는 처형되고, 그의 아내인 월신 신(Sin)의 여사제 슈무-아담쿠아(Shumu-adamqua)는 그의 어린 아들 나보니더스(Nabonidus)8)와 함께 생포되어 월신 Sin과 화성신 네르갈(Nergal)의 신상들과 함께 전리품들 속에 이끌리어 Babylon도성에까지 끌려왔다.

 

한편, Assyria의 Asshur-uballit가 Haran에서 Egypt에 원군을 그렇게 간곡히 요청했는데도 왜 Egypt의 바로는 제때 응하지를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부왕 프삼메티코스(Psammetichos, 663-609 B.C.)9)의 임종을 기다리다, 부왕 사후 뒤늦게 왕위에 즉위하고 나서야 출동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체된 것이 아닌가 싶다. 여타간에 B.C 609년에 Asshur-uballit도 구하고 동시에 빼앗긴 Pallestine과 Syria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느고(Nechoh, 609-593 B.C.)도 대군을 이끌고 북상했으나 돌연 예상치 못하게도 Megiddo에서 유다왕 요시아 군에 의해 저지당해 버렸다.10)

비록 Nechoh는 Megiddo에서 요시아 군을 파하여 대승하였으나 상당량의 군력을 손실하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하여 Euprates강 상류에서 Assyria의 잔존병과 합세하여 Carchemish성을 Babylonia군에서 탈환했다. 아마도 그 전투에서 Assyria의 최후의 왕 Asshur-uballit 2세는 전사했는지도 모른다. B.C. 609년의 사건이었다.

Nechoh는 Carchemish에 Assyria의 잔병들과 Egypt의 수비병을 두고 일부 병력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유다 Jerusalem성을 공략하여, Megiddo 회전에서 상처를 크게입고 결국 그것 때문에 죽은 요시아(640/639-609 B.C.)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여호아하스를 생포하여 3개월만에 왕위에서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여호야김을 유다왕으로 봉하고 무거운 벌금을 부과시키고 강제로 Egypt와 군사동맹을 체결하고 바로에게 충성을 다짐 받기 위해 여호야하스를 볼모로 끌고 우선 시리아로 다시 북상하여 Riblah로 끌고 갔다가 다시 Egypt로 잡아 내려와서 죽을때까지 포로로 지나게했다.11)

 

B.C. 605년에 Nebuchadnezzar은 부왕 Nabopolassar의 명령으로 Carchemish성을 탈환하기위해 Medo-Neo Babylonia 연합군을 이끌고 출동했다. 그리하여 그해 5-6월에 Assyria-Egypt의 연합군과 대회전이 벌어졌다. Carchemish 대회전에서 대승을 거둔 Nebuchadnezzar은 “한사람도 그의 나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패잔병을 하맛(Hamath)까지 추격하였다.12) Nebuchadnezzar은 그길로 Jerusalem성까지 공략하여 함락시키고, 유다왕 여호야김으로 하여금 Egypt와의 동맹관계를 폐기토록 하였다. 그리고 성전의 기구들을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Egypt국경선까지 진입하여 일전을 위한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있을때 본국에서 부왕 Nabopolassar이 8월 15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사자(使者)로부터 전해듣고 Egypt공략을 포기하고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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