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왕, 우룩의 지배자 길가메쉬의 이야기는 열 한 개의 점토판에 새겨져 있다. 그는 인류 최고(最古) 서사(敍事)의 주역이다. 애초에 그의 육체적인 욕정과 무자비함, 포악함은 비할 데 없었고, 그의 왕국에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어낸 인자한 군왕으로의 갑작스런 변모는 가히 영웅적이라 할 수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와 쐐기문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잊혀져 갔다. 19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인 오스틴 헨리 레어드(Austen Henry Layard, 5 March 1817 ? 5 July 1894)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이 문학 작품을 다시 세상에 끄집어 내었다. 이라크의 현대 도시 모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는 니네베(Nineveh, 니느웨)의 거대한 궁정 중 하나를 발굴해 내었고 그 건물은 깜짝 놀랄만한 비밀을 품고 있었다.
1853년, 왕궁터에서 일하던 한 인부가 획기적인 발견을 한 것이다. 과거의 잔해 속에 거대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놓여 있었다. 벽과 바닥에 수천 개의 (대부분 깨어진) 점토판이 진열되어 있는 그 곳은 2600년 전에 앗시리아의 왕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한글성경에서는 오스납발왕(Osnapper, 스 4:10), 재위 BC 669-627)이 세우게 한 왕궁 도서관이었다.
몇몇 개의 점토판은 좀 특별했다. 그것들은 양면이 빽빽이 채워져 있었으며 몇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헨리 레어드는 그 낯선 표시들이 쐐기문자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해독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이 앗시리아인들의 생활에 관한 이해를 도와줄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점토판들을 영궁에 있는 문자 전문가들에게 보냈다. 이 귀중한 화물들은 실제로 아시리아보다도 훨씬 더 전에 존재했었던 수메르 시대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대영박물관은 세계 각국 학자들을 놀라게 한 학문적 발견의 장소가 되었다. 하필이면 한때 지폐도안을 새기는 일을 배웠었던 독학자 조오지 스미스(George Smith, Mar 26, 1840 ~ Aug 19, 1876)가 점토판의 기록을 해석해 낸 것이다. 그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훌륭하게 쐐기문자를 해독했다. 그 젊은이가 1872년 최초로 해독해낸 아름다운 단어는 왕의 이름, 즉 길가메쉬였다. 이 천재적인 영국 학자는 고대 동방에서 유래한 영웅담을 차츰차츰 형상화 시켰다.
잘생긴 길가메쉬는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그에 걸맞지 않은 성격을 가진 아웃사이더이기도 했다. 자신의 편안함, 자신의 향락, 자신의 육체적 욕망은 그의 지배자로서의 의무보다 우선 순위에 있었다. 그는 그의 신민을 노예처럼 취급했고, 모든 일을 마음 내키는 대로 처리했다. 모든 신부의 초야권도 그에게 있었다.
그 열 한 개의 점토판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왕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즉 길가메쉬가 실재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아니라고 단정짓지도 못한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인류 최고(最古)의 시가(詩歌)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명의 작가들이 그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것은 수많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퍼즐과도 같다. 쐐기문자로 된 3000여 개의 문장들을 재구성 하는 것은 인생의 과제였다. 그 영국 학자는 세계 곳곳에 그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문장들의 조각을 찾았다.
삼분의 이는 신이요, 나머지 삼분의 일이 인간인 남자, 기원전 1200년 경의 한 작가는 이 우룩의 왕을 그렇게 묘사했다. 시인 신-레케-운니니(Sin-Leqe-Unnini)는 오랜 시간 동안 길가메쉬 서사시를 쓴 최초의 작가라고 알려져 왔다. 왕의 모험담은 당시에도 이미 전설이었으며 입에서 입으로 세월을 건너뛰어 전해졌다. 운니니의 버전은 처음에는 사실의 기록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그는 기원전 1800년 경의 더 오래된 버전을 기본으로 삼아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첨가하였고 그 이야기의 형태를 다듬었다. 두 개의 버전은 똑같이 유명해졌다.
열 한 개의 점토판(12번째 점토판은 '참고'쯤으로 분류된다), 3000개가 훨씬 넘는 문장 속에 작가들은 수메르 족 영웅의 여러 행적을 집어넣었다. 길가메쉬는 제멋대로였고, 어느 순간 인내의 한계를 넘어버리자 신들은 그에게 대적자를 보내기로 했다. 엔키두였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휘두르려 했던, 영생을 찾아나선 한 두려움 없는 남자의 이야기다. 서사시는 우룩의 사람들이 떠받들던 지배자는 잔혹한 폭군이었다, 라고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한낱 공놀이에서조차도 이 제멋대로인 신들의 총아는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짓밟았다. 견디다 못한 그의 신민들은 하늘에 도움을 청했다. 신들의 도움이 도달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ayasofya.tistory.com/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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