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에 관한 연구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에 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이 8회나 나타나며(5:6, 10; 6:20; 7:1, 10, 11, 15, 17), 그리스도의 제사직의 우월성을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7:1-10). 저자는 5장 11절에서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고 한다. 저자가 살던 시대까지 멜기세덱은 어떤 인물로 전승되어 왔으며, 또 저자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회는 그를 어떻게 해석했는가?
1. 자료 문제
멜기세덱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자료들로써는 성경(intra canon)과 성경 밖(extra canon)의 자료들로 나뉠 수 있다. 성경 내에서는 구약의 창세기 14장 18-20절, 시편 110편 4절, 그리고 신약의 히브리서 경우이고, 성경 밖에서는 필로(Philo), 요세푸스(Josephus), 쿰란의 두 문서(The Genesis Apocryphon과 11Q Melchizedek), 랍비문서들(녀ㆍ모, Song of Songs), 영지주의 문서들(The Pistis Sophia, The Second Book of Ieû), 속사도 교부들(Justin Martyr, Tertullian, Epiphanius, Clement of Alexandria, Cyprian, Chrysostom, Jerome, Augustin, Theodoret) 등이 있다. 이 자료들은 그러나, 거의가 단편적이고 그 해독이 주관적이어서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멜기세덱의 신분을 두고(천사적인 존재인지, 단순한 인간인지) 많은 논쟁이 있어 왔다. 히브리서 이외에서는 멜기세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잠시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창세기(14:18-20)
본문은 멜기세덱이 기원전 18세기경의 인물인 아브라함을 만나 그로부터 전리품의 십일조를 받고 축복을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아브라함과 똑같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신앙했으며, 왕과 동시에 제사장이었다. 이 기록의 고대성은 멜기세덱이란 이름이 고대 가나안 신의 이름들 가운데 나타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El Elyon)이란 신명이 ‘라스 샤므라’(Ras Shamra, 기원전 14세기) 문서에도 나오는 신명인 데서 보인다.
이 기사의 중심점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서 축복을 받은 사실에 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아버지로 그를 통하여 만민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 했는데(창 12:2, 3), 그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았으니, 전자보다 후자의 우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관심은 멜기세덱의 우위성을 증명하려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멜기세덱이 축복한 축복 자체에 있다(F.L.Horton).
3. 시편(110:4)
시편 110편은 다윗이 미래에 임할 한 이상적인 왕 메시야를 두고 노래한 시로써(제왕시), 그 이상적인 왕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통치권을 행사하며,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그 통치권을 행사할 것을 말한다. 그는 열왕을 쳐서 원수를 정복하는 권능의 왕이며(5-7),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될 것이다(4). 그의 왕권은 그를 통해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카리스마적인(제사적인) 능력까지도 부여되어 있는 특수한 왕권이다.
그러나, 시편 기자의 관심은 제사적인 것보다는 제왕적이라 할 것이다. 그는 왕의 제사장직을 찬양하고 그것이 왕권보다 높다는 것을 말하려 하기보다는 왕권의 부대적인 축복으로 제사장 직권도 주어졌음을 말한다. 창세기 14장 8-10절의 기자의 관심이 멜기세덱의 제사직에 있었다면, 본 시편 기자의 관심은 멜기세덱의 왕권을 배경으로 메시야의 왕권을 찬양함에 있다.
4. 필로
필로는 멜기세덱을 역사적 인물임과 동시에 로고스로 보았다. De Cong.§99에서 필로는 십일조 실행의 근거로 창세기 14장 18-20절을 인용하고 있으며, De Abr.§235에서는 창세기 본문에 없는 몇 가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곧 아브라함은 그의 원정에서 한 사람의 전사자도 내지 않았다는 것과 이를 안 멜기세덱은 이것이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의 지혜와 도우심의 결과였음을 알고 두려움에 싸였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기도를 했으며, 싸움에 참가했던 모든 이들을 위해 승리제를 드린다. 그는 아브라함의 승리를 마치 자신의 승리처럼 기뻐하며 아브라함과 깊은 친구가 된다.
그런가 하면 Logum Allegoriae Ⅲ.§§79-82에서는 멜기세덱을 로고스와 동일시한다. 멜기세덱은 ‘의의 왕’으로써, 폭군의 반대되는 무엇이며 영혼에게 기쁨의 음식을 주는 자다. 그는 또한 ‘살렘’ 왕으로써 ‘평화’의 왕이다. 그는 제사장으로써 영혼에게 강한 독주를 주어 거룩한 술취함을 얻게 한다. 제사장으로서의 멜기세덱은 바로 로고스 자신이다.
5. 쿰란 문서들
쿰란 공동체는 멜기세덱에 대해 역사적 인물(Genesis of Apocryphon), 혹은 신적인 인물(11Q Melchizedeck)로 간주했다. Genesis of Apocryphon은 창세기 14장 18-20절을 아람어로 직역하면서, 그러나 창세기 본문에 없는 사항을 첨가하고 있다. 그것은 곧 멜기세덱이 떡과 물을 아브라함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자들에게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문서는 멜기세덱을 (예루)살렘 왕, 제사장으로 보고 있으며, ‘엘 엘리욘’(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겼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았으며, 군대를 거느렸던 한 역사적인 인격으로 본다. 이에 비해 11Q Melchizedeck은 멜기세덱을 하늘에서 내려올 종말론적 구원자로 생각했다. 그는 벨리알을 섬김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은 경건한 유대인의 남은 자들을 구원하러 오실 자며, 그의 강림은 제 2의 대속죄일과 희년을 가져온다. 그는 ‘엘로힘’으로써, 그의 천사장으로서의 위엄은 아론 사해 문서에서의 미가엘의 위엄과 맞먹는 것이어서, 멜기세덱과 미가엘은 동일한 실제로 보인다.
6. 요세푸스
요세푸스(Josephus)는 그의 War vi.§438과 Antiquities i.§§179-81에서 멜기세덱을 역사적 인물로 언급했다. War§438에서의 멜기세덱 언급은 로마의 장군 티토의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멸망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사 끝에 나온다. 요세푸스는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설립자는 어떤 가나안인 추장이었으며, 그의 이름은 모국어로 ‘의로운 왕’을 의미하였다고 한다. 그는 성전을 건축한 제일 첫 사람이며, 이 때문에 원래는 ‘솔루마’로 알려졌던 그 성은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세푸스는 그러나 그의 Antiquities i.§180에서 멜기세덱을 솔루마, 후에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한 고을의 왕이라고 본다. 요세푸스는 Antiquities에서 창세기 14장 18-20절을 해설하고, 멜기세덱이 ‘왕들의 평야’에서 아브라함을 맞게 함으로써 창세기 14장 17절과 14장 18절 사이의 전이의 난점을 해결한다. 그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과 그의 사람들에게 주었던 많은 선물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축하잔치 도중에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사실도 기록하고 있다.
7. 랍비 문서들
그리스도교가 멜기세덱을 신비적 인물로 보는 데 반하여, 유대교는 그를 노아의 아들 가운데 하나인 셈으로 간주했다. Genesis Rabbah XLIV.7은 그를 셈과 동일시하고 있으며, 탈굼(Targum) 역시도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노아의 아들 셈은 500세 이상을 살았고(창 11:11), 그리하여 175년을 산 아브라함보다 35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 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전리품의 십일조를 받고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은 제사직을 그로부터 계승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창세기 14장 19절에서 보듯이, 셈이 아브라함을 축복함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함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말을 먼저 한 관계로 아브라함에게 꾸중을 당하고, 제사직은 마침내 그에게서 박탈되어 아브라함에게로 옮겨 갔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너는 네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내 우편에 앉으라”고 했다(시 110:1). 그리고는 이어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했다는 것이다(T.B.Nedarim, 32b). 이런 아브라함 격상과 멜기세덱 격하는 그를 신격화하는 그리스도교(히브리서)에 대한 유대교의 반작용으로 보인다(Hughes).
8. 영지주의 문서들
멜기세덱을 역사적 인물로 그리고 신비적 인물로 보는 견해는 영지주의 문서들에도 나타나 있다. 보다 초기의 문서인 The Second Book of Ieû는 멜기세덱을 세례식에 있어 물을 들고 있는 자로 보고 있으며, 이는 창세기 14장의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가져온 사실을 역사적 사건으로 본 데 기인한다.
그런가 하면 Pistis Sophia Book Ⅳ에는 멜기세덱이 “조로코도라 멜기세덱”(zorokodora Melchizedek)이란 이름으로 나와 있으며, 그는 영혼들이 어떻게 세상으로부터 취함을 당하는가에 대한 미리암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에온들 속으로 내려오는 두 빛의 형상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빛들의 사신(ambassador)이며, 또 다른 빛의 형상인 Ieû와 더불어 영들의 세상으로 내려와 ‘정결케 하는 일’을 한다. Pistis Sophia Books Ⅰ-Ⅲ에 의하면 멜기세덱은 빛의 위대한 수납자(Receiver)이며, 그는 에온들 가운데로 내려와 그들로부터 빛의 순결을 취해간다. 이런 것은 멜기세덱을 천상적인 존재로 본 좋은 증거라 하겠다.
9. 속사도 교부들(기원 5세기까지)
속사도 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사이의 논쟁에서 멜기세덱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던 사람은 순교자 저스틴(기원 165년에 죽음)이었다. 그는 멜기세덱은 무할례자였으며 따라서 이방인의 제사장이었음과 할례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십일조를 바치고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으로 무할례자들, 즉 비유대인의 제사장이 되려 했다는 주장을 했다. 구원은 어디까지나 이방인을 위한 것이며, 유대인 중에 그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의 축복을 구하는 자들은 그 구원에 들어오게 되며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히브리서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써, 터툴리안(3세기), 에피파니우스(5세기)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3세기), 키프리안(3세기), 에피파니우스(5세기), 크리소스톰(5세기), 제롬(5세기), 어거스틴(5세기), 데오도레트(5세기) 등은 이와 달리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온 사실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성찬식 설리브이 예표를 보았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가져왔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예표하는 식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심한 반대를 받았다. 그것은 본문에 없는 인간의 억지 해석에서 온다는 것이다.
오리겐(Origen)과 그의 제자 디디머스(Didymus)는 멜기세덱을 천사적인 존재(angelic being)로 이해하는가 하면 또 다른 제자 히에락스(Hierax)는 그를 성령이 인간의 형체를 입고 나타난 존재라 보았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성령은 성도를 위해 대신 간구하시는 이로 나와 있고, 이는 성령계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심을 보여주므로, 멜기세덱은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2세기의 여지주의자 데오도투스(Theodotus)는 멜기세덱을 “가장 큰 능력”, 즉 신적인 자, 실제에 있어 그리스도보다 위대한 자라 보았다. 이런 견해는 멜기세덱당파(the Melchizedekians)를 낳기까지 했다.
어떤 이단 종파는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성삼위 하나님 가운데 제 3위가 아닌, 제 2위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레니우스(Irenaeus), 히폴리투스(Hippolytus),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에메사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Emesa),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유스타티우스(Eustatius) 등은 모두 멜기세덱은 하나의 인간이었으며, 가나안 땅에 살았고, 예루살렘의 왕이었다고 본다.
암브로스(Ambrose)는 그의 “믿음에 관하여”(On the Faith)에서 이 견해는 당시 교회의 일반적인 견해였으며, 멜기세덱은 하나의 거룩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써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한 자였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시릴(Cyril of Alexandria) 역시 멜기세덱은 한 인간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완전의 한 모형이었으며, 성령이나 천사나 다른 어떤 천상적 존재의 현현이 아니라고 한다. 에피파니우스는 멜기세덱의 부모에 관해 우리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엘리야나 다니엘이나 구약의 다른 인물들도 그들의 가계(家系)가 알려져 있지 않음을 예로 든다. 그는 요한복음 3장 13절을 인용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나니.”
10. 결어
이상에서 우리는 멜기세덱에 관한 해석을 전승사적으로 간략히 고찰하였다. 가장 원래적인 자료가 되는 창세기 14장 18-20절과 시편 110편 4절은 멜기세덱을 역사상에 살았던 실제 인물(아브라함보다 높은, 살렘의 왕이며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로 본다. 그런데 전승은 그를 천상적 인물로 혹은 아브라함보다 못한 인물로 격상 혹은 격하시켰다. 본문(text)이 환경(Context lexical: circumstance)에 의해 해석되었던 것이다. 본서가 멜기세덱을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이런 해석학적 입장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본서의 저자는 멜기세덱을 이데아에 해당하시는 그리스도의 모형(prefigure)으로 보려 한다. 그리스도는 실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영원한 분이시며, 동시에 레위 계통의 제사직이 아닌, 레위 이전의 보다 우주적이고 원초적인 제사직을 따르는 제사장이신데, 멜기세덱이 바로 이 후자에 합한 인물이었으므로 멜기세덱을 마치 그리스도와 같은 신분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 전승을 근거로 그리스도 제사직의 특수성(비레위 계통)과 우월성을 지적하고, 시편 본문을 근거하여 그리스도 제사직의 영원성을 지적하려 했다. 그리하여 히브리서에 나와 있는 멜기세덱 언급들은 이 두 본문들을 근거로 하여 저자가 예수를 통한 별다른 한 제사직(7:11, 15)의 역사적 신학적 의의를 밝힌 것(하나의 간단한 ‘미드라쉬’)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서를 근거로 하여 멜기세덱을 천사적 존재나 신적인 존재로 보려 하는 모든 시도들은 성경기자들의 원래 의도들을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멜기세덱을 영원한 존재로 묘사한 저자의 말을 원형과 모형, 실재와 기호의 관계에서 이해할 것이다.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재”(reality)와 기호(sign) 사이의 유비(analogy)가 언제나 고려되어져야 한다. 그가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실제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어리석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산 사람의 형상이 초상화 가운데서 보이나 그 사람 자신과 그림은 다르듯이, 그리스도의 얼굴 모양이 그 안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브루스 역시 같은 견해를 취한다: “모형(type)이 원형(antitype)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이 모형을 결정한다. 예수가 멜기세덱의 패턴을 따라 묘사되지 않고,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한’ 것이다.” - 글: 박수암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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