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7장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그리스도
1. 기자는 서신의 수신자들이 듣는 것이 둔하여 멜기세댁에 대하여 할 말이 많지만 다 할 수 없다고 밝혔었지만(5:11), 7장에서 조금 더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월한 제사장이신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멜기세댁은 창세기 14장 아브라함의 기사에 등장하고는 유일하게 시편 110편에서 한 번 더 언급되는 신비로운 인물로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살렘의 왕-제사장인 멜기세댁은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어려운 순간에 그를 붙들어주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예물을 아브라함으로부터 받고 그를 위해 복을 빌어주었다. 신앙의 박해로 인하여 신앙을 버리고 과거의 유대교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성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유대교가 가진 아론의 제사장 제도의 연약함을 더욱 부각시킬 뿐 아니라 예수님이 그와 비할 수 없는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말하려는 것이다. 멜기세댁은 살렘의 왕-제사장이었고 아브라함이 그에게 예물을 바쳤을 때 아브라함의 자손인 레위 뿐 아니라 모든 지파가 다 예물을 그에게 바친 것이다. 그는 또한 족보도 없는 신비로움을 드러내며, 항상 제사장으로 존재한 자라고 언급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어느 지파에 속하였는가로 그 제사장 되심을 입증하실 필요가 없는 이유다. 멜기세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기자는 레위 지파 아론 자손의 제사장 제도는 온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12). 만일 이것이 온전한 것이었다면 왜 다른 제사장이 필요했겠는가? 이처럼 제사장 제도에 변화가 있다면 그 제사제도를 규정하는 율법에도 변화가 있는 것이다(12). 히브리서 기자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율법의 임시적 성격이다. 율법은 그리스도 오시기까지 초등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같은 이해이다(갈 3:24). 전에 있던 계명이 연약하고 무익하여 폐지되었다고 기자는 덧붙인다(18~19). 기자는 예수님이 이 연약하고 무익한 제사장의 계열을 따라서 제사장이 되시지 않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멜기세댁의 계열에 속한다고 예언한 시편 110:4을 인용한다(17).
2. 주님께서 더 우월한 제사직분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기자는 주님의 제사장 되심이 시편 110:4에 하나님의 맹세대로 된 것임을 보여준다(20~21). 예수님은 이 맹세(쌍방의 언약이 아닌)의 언약의 보증이시다(22).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이루어졌고 확보되었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직도 영광의 소망이 다 주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예수님께서 그 언약의 보증이 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죽음으로써 사역을 마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제사장들과는 다른 우월함을 지니고 계신다(23~24). 또 주님은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들을 온전하게(절대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으신 언약의 보증이시다(25a).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항상 저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시다고 주님의 현재의 사역을 설명한다(25b). 구약 시대 모든 제사장은 다 죄인이었지만, 주님은 거룩하고 악이 전혀 없으시므로 하나님께 온전하게 용납 받은 분이 되셨다(26). 이런 근거에서 주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죄인을 대속하신 일은 완전하게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었다. 또 주님은 반복적으로 제사를 행하실 필요가 없으시니, 단번에 영원한 효력이 있는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27). 구약의 율법은 약점 많은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었지만, 주님이 세움을 입은 것은 맹세의 말씀을 인함이며 영원히 온전케 된 아들로서 세움을 입으셨다(28).
3. 기자가 강조하여 가르치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성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서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어오셨고, 예수님을 그 언약의 보증으로 주심으로써 언약의 모든 효력이 성도들에게 미치게 하셨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신들이 당한 상황에 의해서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기자의 권면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께서 맹세로써 세우신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이루신 우리의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것을 아는 자들마다 흔들리지 않고 영광의 소망 가운데 영혼의 닻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히브리서 8장 옛 언약은 새 언약으로
1. 기자는 이제 독자들의 시선을 하늘로 돌린다. 유대인의 제사 제도는 제사장 직분 자체(7장에서 설명한) 그리고 성소(8:1~5)와 연결되어 있다. 기자는 여기서 하늘의 성소로 주제를 옮긴다. 이것은 아론의 대제사장 직분과 관련하여 세 가지 주제로 분류되는데 성소와 언약과 제사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멜기세덱의 계열을 좇는 제사장 직분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처럼 옛 언약은 새 언약에 자리를 양보하고,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에 자리를 양보하며, 일시적 상징에 불과한 제사는 효과적이고 영원히 유효한 제사에 자리를 양보한다. 기자는 이제 자신의 요점(‘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으로 왔다(1). 그것은 그리스도의 위격과 사역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높아지시고 승천하셔서 승리하신 주님으로서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에 앉으셨다(1). 예수님께서 절대 주권과 권위의 자리에...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것을 전형적인 히브리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기자는 서신서 전반에서 신약의 어느 기자 보다 두드러지게 승천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강조를 한다. 기자는 지금 신앙의 위기 가운데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전혀 고백하지 않는 것이다”(John Donne). 그리스도는 하늘의 참 장막인 성소에서 섬기고 계신다(2).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알았던 성막과 성전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며 그림자였다(5). 이 장막은 주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곳, 영원한 하늘의 영역을 가리킨다. ‘섬기는 이’(minister)라는 말은 제사장의 활동을 가리킨다(2).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드리신 제사는 반복될 수 없는 단회적 제사였다. 제사는 이미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드려졌다(3). 그 제사의 유익은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백성들에게 유효하다.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사역하신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은 흔들리기 쉬운 우리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보자가 계시는 하늘의 영원한 처소에 보장되어 있다.
3. 아브라함 언약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것으로 여전히 유효한 영구한 것이지만, 모세의 언약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새 언약의 예언으로 인하여 영구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자는 이 두 언약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은 옛 언약의 유일한 성취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유대교의 연속선상에서 설명하고 싶어한다. 새 언약이 필요한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로 옛 언약은 불완전했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7). 이 말씀은 도덕법의 폐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법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다 성취되었으므로 그리스도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로 옛 언약은 무력했다. 옛 언약은 표지판이었다면, 새 언약은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준다. 셋째로 옛 언약은 낡았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13). 옛 언약은 그 소임을 다하고 새 언약으로 대체될 때가 된 것이다. 반면, 새 언약은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다(10). 새 언약은 하나님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그 가르침에 순종할 능력을 제공해준다. 또 새 언약은 보편적이다. 유대인이 독차지하는 언약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미치는 복음의 좋은 소식이다.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11). 그리고 새 언약은 보증된 것이다. 새 언약은 능력 면에서 제한이 없고, 그 기간 면에서 영원하며, 그 효력 면에서 완전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나의 언약을 세우겠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새기겠다.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 내가 나를 그들 모두에게 나타내겠다. 내가 나를 큰 자들뿐 아니라 작은 자들에게도 알리겠다. 내가 긍휼히 여기겠다. 내가 그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10~12).” 이것이 복음이다.
4.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를 원한다. 그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명확하게 보게 하는 것이다. 그 위엄과 영광과 승리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는 새 언약으로 옛 언약을 성취하고 폐하신 그리스도를 보게 함으로써, 여전히 옛 언약의 전통 속에 묶여있거나 그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들의 믿음을 붙들어주고 있다. 당신은 이런 복음의 은혜,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이루어주신 구원을 과거에 당신이 하던 모든 선행과 의지에 근거한 삶과 바꾸겠는가? 그리로 돌아가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과 안전과 평강을 얻어 누리라.
히브리서 9장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사역.
1.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더 좋은 언약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1~10). 첫 언약에서 지성소에 나아가는 일은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일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이 대속죄일에 들어가는 것이 전부였다(7). 또 제사를 통하여 외적으로는 뭔가가 이루어졌지만 내적인 삶과 양심에는 평강을 줄 수 없었다(9~10). 그러나 더 좋은 언약은 이런 첫 언약과는 다르다(11~14). 새 언약은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고 우리의 양심을 정결케 하며 우리의 봉사를 거룩하게 만들어준다. 지상의 장막이 아닌 하늘의 성소,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 임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것, 자발적이지 않은 짐승의 피가 아닌 자발적인 하나님 아들의 피, 반복적이고 불완전한 제사가 아닌 영단번의 완전한 제사, 인간 대제사장들의 불완전한 사역이 아닌 큰 대제사장의 완전한 사역, 서서 섬기던 대제사장들이 아닌 구...원을 완성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에게 속한 것이 바로 새 언약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너무나 완전해서 죄인의 양심도 정결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만든다(14).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불안한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2.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인하여 얻는 유익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한 유업이다(15~22). 히브리서 기자는 유언이라는 법적인 예화로 이것을 설명한다(15~17).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로 오셔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자신을 주셨다. 이 죽음은 유언을 효력 있게 만드는데, 누가 그 유언의 수혜자가 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가 그 수혜자가 될 것이다. 당장 외적 위협을 받고 있던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효력이 있게 된 유언을 따라 믿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늘의 유업을 바라보아야 한다. 대적이 그들에게서 지상의 소유나 심지어 육신의 생명까지도 빼앗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소유한 하늘에 속한 기업이나 영원한 생명은 모두 불멸하는 것이다. 대적들이 건드릴 수 없는 불변의 유산이다. 성도들의 보화는 하늘에 쌓여진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다 미래를 위해서만 예비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장차 올 세상에 이미 들어간 자들이다. ‘내세의 능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은 이미 누리는 축복이다. 구약시대에 피를 뿌림으로써 언약이 맺어졌듯이(출 24), 새 언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우리가 정결함을 받고 언약이 맺어졌다(18~22). 피흘림이 없다면 죄사함은 없다(22
3. 지상에 있는 성소의 기구들은 짐승의 피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지만, 하늘의 성소는 짐승의 피보다 나은 제물이 필요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의 영적 예배 안에서 이전의 제사제도가 포함되는 거룩한 규약과 성결 의식을 그리워하게 되었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기독교에는 비록 보이지는 않지만 더 위대한 제사가 부여하는 장엄한 규약들이 있음을 확신시킨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간다(10:19). 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인 교회는 그 피로 씻김을 받은 자들로 이루어졌다(12: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셨다는 것을 성도들은 기억해야 한다(24).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들어가신 것은 영원한 성취가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외적 표지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24b).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필요를 말씀 드리고 계신다(7:25). 그리스도의 제사는 반복될 수 없다(25~28). 그리스도께서 죄를 없이하시려고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이로써 죄의 세력이 폐기되었다. 인간을 지배하던 사탄의 힘은 무력하게 되었다. 또한 죄의 형벌이 우리로부터 옮겨졌다(28). 죄를 담당하신다는 말은 ‘운반하다’, ‘가져가다’ 또는 ‘제단에 바친다’는 뜻이다. 속죄염소가 죄를 가지고 광야로 나간 것처럼 죄를 옮기셨다는 말이다(레 16:21~22).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완전하게 성취되고 완성되었다.
4.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너무나 완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으셨다.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것만이 요구될 뿐이다. 또한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과 핍박이 오고 세상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빼앗긴대도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우리가 얻게 된 하늘의 유업은 빼앗기지 않을 것을 알고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붙잡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성부 하나님 앞에 우리를 위해 나타나셔서 우리가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간구하신다(7:25).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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