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히브리서 5장 /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처음 두 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나 천사들보다 더 위대하시다는 것을, 그리고 3-4장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도 크신 분이심을 보여 주었다. 이제 그는 이스라엘의 첫 대제사장인 아론을 가리키며, 그리스도께서 그보다 크신 대제사장이심을 입증한다. 만일 그의 독자들이 유대주의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버린다면 이들은 위대하신 대제사장을 보다 못한 대제사장과 바꾸려고 하는 것이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아론보다 우월한 분이심을 세 가지 방면에서 보여 준다.
1. 그리스도는 더 뛰어난 반열에 속하신다 (히 5:1, 4-6)
아론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대제사장의 직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이 영광을 그의 장자에게 물려주었으며, 이와 같은 식으로 계통이 이어졌다. 아론은 레위 지파에 속하였는데, 이 지파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제사장 지파로 따로 구별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반열은 보다 뛰어나다! 그 한 가지 예로서, 그리스도는 한갓 인간만이 아닌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인자(人子)이시다! 그는 이러한 제사장직의 영광을 자기 본위적인 방식으로 취하지 않으셨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의 자손들이 이런 식으로 행하다가 그들의 죄로 인하여 죽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아들을 임직시키셨다! 여기서 저자는 시편 110편 4절을 인용하는데, 이 구절은 성부께서 성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주시는 구절이다. 그는 이 구절을 5절에서 인용한 시편 2편 7절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그의 부활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며, 시편 2편 7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루고 있다(행 13:33).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은 히브리서 7-10장의 주제이므로 지금은 상세히 다룰 필요가 없겠으나, 그 배경을 알려면 창세기 14장 17-20절을 읽어 보라. 히브리서 7-10장의 논증은 그리스도께서 더 크신 제사장이심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반차가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곧,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인 것이다.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의의 왕”이란 뜻이다. 그는 또한 살렘(Salem)의 제사장, 또는 “평강의 왕”이었다. 아론은 결코 제사장인 동시에 왕(priest-king)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보좌에 앉으신 제사장이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3-4장에서 토론한 안식인 평강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레위 지파가 아니라, 왕의 지파인 유다 지파 출신이셨으며, 멜기세덱은 창세기에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의 시작이나 끝에 관한 아무런 기록도 없다. 따라서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들 되심을 표상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역시 “시작과 끝”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론은 죽었고 그의 자리는 채워져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결코 죽지 않으시며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하다. 아론은 지상의 세대를 맡은 제사장이었지만, 그리스도는 하늘 백성을 맡은 제사장이시다.
2. 그리스도는 동정심이 더욱 뛰어나시다 (히 5:2-3, 7-8)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선택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백성을 동정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만 했다. 물론, 아론 자신도 한갓 인간으로서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어느 정도는 알았을 것이다. 사실상, 그는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해서 희생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의 필요와 문제들에 더욱 깊이 들어갈 수가 있으시다! 7-8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 “고난”을 받으셨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에겐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셨음을 기억하자. 그러나, 인자로서 대제사장이 되신 날에는 그리스도께서 연단과 고통을 겪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2장 10-11절에 언급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것 때문에 그리스도를 경멸하며 그의 신성을 의심하였을 것이나, 이러한 고난들은 바로 그의 신성의 징표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이 그의 백성을 위해 동정심 많은 대제사장이 되도록 예비하고 계셨다.
7절은 겟세마네에서의 주님의 기도에 관한 언급이다(마 26:36-46).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부터”(흠정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음) 구원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out of death) 구해 달라고 기도한 것임에 주의하자. 그는 십자가에서 구해 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그를 일으켜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 이 기도는 응답되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는 기꺼이 십자가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잔을 마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요 12:23-34).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아론과 같은 인간이 했던 것보다도 우리가 당하는 시련을 정말로 더 잘 알 수 있을까?” 물론이다. 첫째로,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으로서, 모든 시련을 완전히 겪으셨다. 그는 사람들과 사단이 제공해야만 했던 온갖 유혹을 맛보시는 온전한 분량의 시험을 받으셨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그 어떤 도덕적인 인간이 견딜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의 것을 견디셨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시험이 참으로 어려워지기도 전에 굴복하기 때문이다. 50톤의 무게를 지탱해 낼 수 있는 교각은 불과 2톤의 무게만을 감지할 수 있는 다리보다 시험에 대하여 더 알고 있는 법이다."
3. 그리스도는 더 뛰어난 제물을 드렸다 (히 5:3, 9-14)
아론의 주된 직분은 특별히 대 속죄일에 나라를 위하여 제물을 드리는 것이었다(레 16장).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그 해 내내 백성을 섬길 수 있었으나, 대속죄일에는 모두가 대제사장만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만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위하여 희생제물을 드려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죄 없으신 어린 양으로서 죄 때문에 희생제물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 백성을 위하여 드려야했던 제물은 짐승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이것은 반복된 제물이 아니었다. 자신을 드릴 필요가 있었지만 단 한 번이었고 이로 말미암아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리스도는 아론이나 그의 계승자들보다 참으로 크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시나, 아론은 이 일을 결코 할 수가 없었다. 수소와 염소들의 피는 다만 죄를 가리울 뿐이었으나,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모든 죄를 소멸하셨다.
저자는 이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로 들어가고자 하나, 난점을 발견하게 된다. 문제는 그가 우둔한 설교자나 저자인 것이 아니라 청중들이 우둔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6장 1-2절에 열거되어 있는 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단순한 일들인 젖을 먹는 상태에서 단단한 식물(그리스도의 하늘의 제사장 직분)을 먹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의 독자들이 자각하고 성장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젖(복음의 초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으로 살며, 단단한 식물(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늘에서 하시고 계신 일)을 먹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단히 많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구세주시라는 것은 알고 있으나, 그가 대제사장으로서 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구원받은 지가 오래 되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제2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누군가 그들이 잊고 있는 것들을 다시 가르쳐야만 했다. 이들은 말씀 안에서 “경험하지 못했다”(익숙하지 못함. 13절). 역시 하나님의 말씀의 문제가 다시 대두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계는 그의 영적 성숙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말씀으로부터 멀리 떠내려갔고(2:1-3), 말씀을 의심하였으며(3-4장), 말씀에 대하여 둔하게 되었다. 이들은 믿음으로 말씀에 화합지 않았으며(4:2),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실천하지도 않았다(5:14). 이들은 “신령한 지각을 사용하지” 않았으며(5:14), 따라서 그들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성장이 둔하고 비효과적이었다. 그들은 전진하는 대신(6:2) 후퇴하고 있었다.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것은 지식에서 자라는 것에 의존한다(벧후 3:18). 우리가 자신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영적으로 더욱 잘 전진해 갈 수 있다. 당신의 영적인 달성은 어디에 와있는가? 젖먹이의 단계에서 아직도 젖으로 살며 불신앙의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숙하여 말씀의 단단한 식물을 먹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의 습성으로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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