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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본문 핵심 2. 히브리서 2장 / 우리의 큰 구원

by 은총가득 2020. 3. 19.


2. 히브리서 2장 / 우리의 큰 구원

 

본 장은 1장에서의 논점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나은 분이시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논쟁을 중단하고 권면을 하는데, 이 권면은 본 서의 다섯 가지 권면들 중 첫번째 것이다(개요 참조).

 

1. 권면 (히 2:1-4)

 

천사들로 말미암아 주신 말씀(구약 율법)이 견고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신 말씀도 역시 견고한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구약의 날들 가운데서 그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람들을 처리하셨다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거나 거절하는 사람들도 처리하실 것이다.

 

여기서의 위험은 말씀을 “등한시함으로써 떠내려가는” 것이다. “... 언제라도 그 말씀들을 벗어나는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기를”(“혹 흘러 떠내려갈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번역이다. 3절은 “불신자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라는 뜻이 아니라, “만일 우리(신자들)가 등한히 여기면...”의 뜻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기 시작하는 데에서부터 영적 퇴보가 시작된다. 10장 19-25절에서 주는 권면을 볼 때, 이 서신의 당시 대상자인 유대인들은 기도를 소홀히 하고 하나님의 백성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 같다(딤전 4:14 참조).

 

불순종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듣기를 즐겨하지 않는”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는 성도들은 불순종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으로 그의 말씀을 확증하셨다(4절/ 행 2:22/행 2:43 참조). 이 말씀이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등한히 하다”는 말은 마태복음 22장 5절에서 “돌아보지도 않고”(가볍게 여기고)라고 번역되어 있다.

 

2. 해설 (히 2:5-18)

 

1장에서 제시한 바, 예수님이 천사들보다 뛰어난 분이라는 저자의 논증은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실 때에도 그가 어떻게 보다 뛰어날 수 있는가? 천사들은 자신을 제한하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야기시켰다. 그는 예수께서 친히 육신의 몸을 입으셔야 하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이 물음에 답한다.

 

1) 마지막 아담이 되기 위함(5-13절)-

성경의 그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장차 오는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일이 없다. 창세기로 돌아가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온 땅을 다스리게 하셨다(창 1:26-31). 바울은 시편 8편 5-7절을 인용하는데, 여기서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이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는데, 흑은 문자적으로는 “잠깐 동안 하나님보다 못하게”라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아담과 하와가 시련의 시기에 처해 있었다는 뜻인 듯하다.

 

이들은 하나님보다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므로, 만약 그들이 범죄하기를 거절했었다면 이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였을 것이다. 사탄은 그들이 “잠깐 동안”만 하나님보다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서둘러서 때가 되기도 전에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죄가 들어왔으며, 이 일은 아담에게서 세상을 통치할 모든 권한을 빼앗아 갔다. 그는 왕이 되기를 중지하고 노예가 되었다. 바로 그 점이 8절에서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사람)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말하는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우리는 예수를 본다!”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시며, 그의 죽음과 부활은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을 때 저질러 놓은 모든 것을 원상태로 회복하였다. 그리스도는 잠깐 동안 천사들보다 못한 자리에 이르셨고, 갈보리 밑바닥까지 낮아지셨다(빌 2:1-12).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다. 사람들은 가시로 그에게 관을 씌웠으나, 이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다(벧후 1:17).

 

세상에는 이제 새로운 가족 관계가 있다. 그리스도는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고 계신다. 아담은 그의 죄로 말미암아 그의 가족을 죄와 사망으로 몰아넣었는데, 그리스도는 이제 아담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시키신다. 그는 우리 구원의 “개척자”(대장)이시며 우리가 따라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가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제들인 것은 우리 모두가 그의 거룩한 본성에의 참여자가 되었고, 그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구별된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10:10).

 

그는 시편 22편 22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갈보리에 관한 시에서 부활을 다룬 부분이다. 그는 또한 이사야 8장 17-18절도 인용한다. 이사야의 두 아이는 그 민족에게 보이는 징표였다. 스알야숩(사 7:3)은 “남은 자들이 돌아올 것이다”는 뜻이며, 마헬살랄하스바스(사 8:1)는 “서둘러 탈취하다, 약탈하는 데 재빠르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사야 시대에 다른 사람들이 버림받을 때에도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남은 자”들이 있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이들이 “이사야의 자녀들”인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로 구성된 한 가족, 곧 유대인 중의 남은 한 그루터기를 가지신다. 이들은 장차 다가올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2) 마귀를 패배시키기 위함(14-16절)-

사망과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담의 죄의 결과였다(창 2:17/창 3:10). 사단은 사망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해 왔다. 사단은 “사망의 권세”를 전혀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욥의 경우와 같이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권세”라는 단어는 권위라기보다는 “힘”이라는 뜻이다. 사단은 죄인들과 어두움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졌으나(눅 22:53), 그리스도께서 흑암의 권세로부터 성도들을 건져내셨다(골 1:12-13). 사단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주관하기 위하여 “사망의 권세”를 움켜쥐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이러한 권세의 효력을 깨뜨리셨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여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실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사단을 패배시키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셔야만 했던 것이다(요일 3:8 참조).

 

16절은 그리스도께서 천사들의 본성을 입지 않고 아브라함의 씨를 입으셨다고 분명히 밝힌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는 천사가 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으며, 유대인이 되셨던 것이다. 그는 천사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 타락한 천사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으나, 타락한 인간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3) 동정적인 제사장이 되기 위함(17-18절)-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사람의 몸을 입으신 세번째 이유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약점을 돕기 위하여 동정심 많은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로 고난받게 하셨으며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그의 제사장 직분을 준비시키셨다(10절).

 

그리스도의 인격은 숙달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인(God-Man)으로서 그는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서 고난을 견디셔야 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육신을 입으셨고(요 1:14) 이 땅에서 고난의 생을 사시는 동안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죄로 여김”을 받으셨다(고후 5:21).

 

이제 그리스도는 인간 제사장과는 달리 자비롭고 충성된 대제사장이시다. 우리는 그를 의지할 수 있다. 우리가 도움을 받고자 하여 그 앞에 나오면 그는 우리를 도우실 수가 있으시다. “도우신다”는 말은 “부름을 받고 달려온다”는 뜻으로, 의사에게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를 요청하면 우리를 도우시려고 달려오신다.

 

이상으로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우월하시다는 그의 논증은 완결된다. 이로써 저자는 그리스도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분이신바, 그의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 그 이름에 있어서 우월하심을 보여 주었다. 결론은 명백하다. 그리스도는 우월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말씀을 간직하고 순종해야만 한다. 등한히 함으로써 흘러 떠내려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시편 8편에 대한 부가적 연구

 

시편 9편의 맨 처음에 나오는 주(註, “영장으로 뭇랍벤에 맞춘 노래”)는 8편의 맨 끝에 속한 것이다. 그것은 “싸움을 돋우는 자의 죽음에 붙여”라는 뜻이며,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승리한 것을 가리킨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이름을 조롱하였으나(삼상 17:45) 다윗은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다. 하나님은 40일 동안 참람한 말을 했던 “원수를 잠잠케 하셨다”(시 8:2 /시 17:16). 골리앗은 17장 4절과 23절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로 불리우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린 아이와 젖먹이 같았을지라도(시 8:2) 하나님께로서 힘입어 원수를 무찔렀다(삼상 17:42 참조).

 

다윗은 크게 승리한 후 하나님께 고하려고 밤에 밖으로 나갔는데, 그로 인해 시편 8편이 씌어진 것이다. 이 시편을 사무엘상 17장과 함께 정성껏 읽고 어떤 새로운 의미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