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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본문 핵심 3. 히브리서 3장

by 은총가득 2020. 3. 19.


3. 히브리서 3장 /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세번째 논증으로 들어가, 그리스도께서 모세보다 뛰어나심을 다룬다. 물론, 모세는 유대 민족에게 위대한 영웅이었는데 바울이 모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입증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유대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것이 훨씬 더 위대할 것이었는데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유대주의로 되돌아갈 수 있었을까?

 

1. 직책에 있어서 더 위대하신 그리스도 (히 3:1-2)

 

모세가 비록 제사장의 기능과(시 99:6) 심지어는 왕의 기능을 담당하였지만(신 33:4-7), 본래는 선지자였다(신 18:15-19/행 3:22).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내심을 받은 “사도” 또는 “보내심을 받은 자”였다(요 3:17/요 5:36-38/요 6:57/요 17:3/요 17:8/요 17:21/요 17:23/요 17:25).

 

그리스도는 또한 대제사장이셨는데 이는 모세가 결코 종사해 본 일이 없었던 직책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직분은 이스라엘의 지상적 소명이 아닌 “천상적 소명”과 관련이 있다. 모세는 이 땅의 백성을 위해 사역하였으며, 이들의 소명과 약속들은 이 땅에 속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이 땅의 나그네요 순례자들인 하늘나라 백성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시다.

 

모세는 율법의 선지자인 반면에 그리스도는 은혜의 사도라고 부언할 수 있다(요 1:17 참조). 모세는 죄를 범하였으나 그리스도는 죄 없는 삶을 사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주의해서 관찰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2. 사역에 있어서 더 위대하신 그리스도 (히 3:3-6)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충성했던 것처럼(민 12:7)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셨다고 분명히 밝히신다(3:2). 그러나, 이들의 사역도 바로 이 지점에서 나눠진다. 모세는 종으로서였으나 그리스도는 아들이시다. 모세는 집 안에서 섬겼으나 그리스도는 집 전체를 관장하신다. “집”은 물론 성전이나 성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을 말하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구약의 전인 이스라엘 안에서 종으로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오늘날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전반을 관장하는 아들이시다(히 3:6/히 10:21/벧전 2:5/벧전 4:17/엡 2:19 참조). “집”이 “백성”을 뜻하는 데에 대한 한 예를 들자면, 사무엘하 7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한 집을 이루고...” 라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그의 가계와 그의 보좌를 영원히 세울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지상의 전인 반면, 교회는 하나님의 하늘의 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이 언제나 믿음으로 결정지어 진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구약의 백성들은 오늘날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두 언약 하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서로 연결시켰던 것도 바로 이 믿음의 연속성이다. 갈라디아서 3장 7절에서 참된 신자들을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인 것이다.

 

모세와 그리스도 사이의 대조에 있어서 두 가지 다른 문제들이 남아 있다.

 

첫째로, 모세는 종인 반면에 그리스도는 아들이시다. 이 말은 구약에서의 사역이 속박과 노예 상태에 대한 것인 반면, 새 언약 하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해방과 기쁨에 대한 것임을 암시한다. 구약의 율법은 “종의 멍에“로 언급된다(갈 5:1/갈 2:4/갈 4:1- 참조).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믿음으로 누리는 아들됨의 축복된 특권들이 옛 언약 하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둘째로, 모세는 모형과 그림자로 섬겼으나, 그리스도는 이러한 것들의 성취로 나타나신다(3:5-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된 밝은 빛을 가지나, 모세 안에서는 우리가 그림자 안에 있게 된다. 바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유대주의로 돌아간다는 것은 성취를 모형과 그림자로 바꾼다는 것을 뜻했다.

 

3. 안식을 주시는 데 있어 더 위대하신 그리스도 (히 3:7-19)

 

4장에서 안식이라는 말이 12회 사용되었는데, 반드시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이를 상세히 연구할 것이지만, 이 지점에서는 그 기본적인 개념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영적인 진리를 예증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사용한다(고전 10:1-13 참조).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은 마치 죄인들이 세상에서 종된 것과 같으며,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써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던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과도 같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땅을 유대인에게 약속하셨고, 자기 백성들에게 복된 삶을 약속해 오셨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이스라엘은 불신앙으로 반역하였으며, 하나님을 따르기를 거절하였다(민 14장).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한 회중 전체를 심판하셨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백성의 결의를 반대한 이들이었다. 유대인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해야 했는데, 이는 정탐꾼들이 그 땅에 갔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한 연수였다. 달리 말하자면, 이 민족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신 12:9/수 1:13-15).

 

여기서 저자는 그의 독자들에게 경고를 한다. 이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으며 세상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었다. 이제 이스라엘처럼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복된 삶으로 들어가지 않고 되돌아가려는 유혹을 받았다. 3장과 4장에는 세 가지 다른 안식이 나오는데, 다음 장에서 이를 상세히 다룰 것이다.

 

-구원의 안식 4장 3, 10절

-시련 가운데서의 승리의 안식-가나안으로 상징된다:4장 11절

-미래의 영원한 안식-하늘의 안식:4장 9절

 

여기에 나오는 권면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약속된 안식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가나안은 하늘나라의 표상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가나안은 축복과 투쟁, 진보와 승리의 생활에 대한 표상인 바, 우리가 그리스도께 굴복하여 그를 믿고 의지할 때 그 안에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시험과 시련의 한복판에서조차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것이 바로 현재의 안식이다. 이 안식은 모세나 여호수아(4:8)가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바울은 시편 95편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완악한 마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이 진행하기가 힘들 때 어떻게 하나님을 힐난하고 시험하였는지를 잘 알기 위해서는 출애굽기 17장을 읽어 보라. 믿는 자들이 오늘날 이런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히브리서의 근본적인 주제를 보게 되는데, “상황이 어려울 때 낙심하지 말고 원수들을 정복하며 온전한 데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가나안이라는 우리의 기업을 주장하자!

 

12절에 나오는 이 경고를 신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할 수 있다! 불신앙도 그리스도인이 빠지기 쉬운 죄의 하나인데, 이것은 악한 마음에서 생겨난다.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을 믿는 일이 있으면, 우리의 의지와 생활을 그에게 굴복시켜서 매일 인도하심을 받으며 봉사의 삶을 살게 되는 또 다른 일이 있다.

 

좌절과 불신앙의 “광야에서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너무도 많다. 이들은 애굽에서 구원은 받았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기업을 주장하며 가나안으로 횡단해 들어간 일은 없었다. 유대인들은 피로써 값주고 산 바 되었고 구름으로 가리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광야에서 죽었다! 이것은“구원을 잃게 되는 문제”인가? 물론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인생과 축복을 잃게 되는 문제인 것이다.

 

무엇이 이같은 불신앙의 악한 마음을 일으키는가? 첫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7, 15절)이며, 둘째는 죄에게 속도록 자신을 방치해 두는 것(13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첫째로 우리는 말씀에서 떠나가며(2:1-4) 다음으로는 말씀을 의심한다(3:18-19), 우리는 우리를 돕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권면을 거절하며(3:13) 말씀에 대해 둔감하게 될 때까지 고집부리며 계속해서 불순종한다(5:11-6:20 , 서론 참조).

 

믿는 자의 삶에서 죄란 실로 거짓된 것이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나 점점 더 커지게 된다. 어떤 점에서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일이 불신앙의 악한 마음으로까지 이끌어 갈 수 있지만,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전진해 가며 그 신념을 굳게 붙들고 있는 사람들은 진실로 그들이 구원받았음과(3:6/3:14) 하나님의 징계와, 마치 이스라엘이 그러했듯 이생에서의 심판조차도 즐겨 받는 것을 입증해 보여 준다. 불신앙이란 심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