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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본문 핵심. 히브리서 4장

by 은총가득 2020. 3. 19.


4. 히브리서 4장 /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안식

 

본 장은 앞의 3장 11절에서 시작된 “안식”에 관한 주제를 계속해서 다루고 있는데, 사실상 이 “안식”(rest)이라는 말은 이 부분에서 다섯 가지의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하나님의 안식일 : 창세기 2장 2절/ 히브리서 4장 4, 10절

② 가나안-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던 끝에 맞이한 이스라엘의 안식 : 3장 11절 등

③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현재의 구원의 안식 : 4장 3, 10절

④ 승리한 정복자의 현재의 안식 : 4장 11절

⑤ 미래의 영원한 안식 : 4장 9절

 

하나님의 안식일의 안식은 우리가 현재 소유한 구원의 안식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사역으로 말미암은 안식과, 장차 있을 영광된 “영원한 안식”의 모형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안식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행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을 주장할 때 갖는 전투와 축복의 생활을 모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본 장에는 안식의 생활에 관한 네 가지 권면이 나온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히 4:1-8)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안식을 주기로 약속하셨으나, 불신앙으로 인한 불순종 때문에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안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외관상으로는 불가능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주시며, 시련의 한복판에서도 평화를 주신다는 약속이다.

 

우리의 신령한 가나안에서의 “안식의 생활”을 가리켜 6장 1절에서는 “완전(또는 성숙)한 데 나아감”으로, 11절에서는 “소망의 풍성함”, 12절에서는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음”으로 일컫는다.

 

당시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시험의 때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사실(10:32-39/12:3-14/13:13)과, 옛날의 이스라엘처럼 옛 생활로 “돌아가자”고 유혹받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승리의 안식을 약속하셨으나 이들은 거기에 미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으나 “믿음을 화합지” 않았으며(4:2) 그들의 생활에 적용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저자의 논증은 이렇게 전개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안식을 약속하셨으나(4:1), 이스라엘은 그 안식에 들어가는 데에 실패하였다(4:6).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서 있는 것은, 여호수아가 비록 그들을 국가적 안식으로는 인도하였지만(수 23:1) 그들에게 이같은 신령한 안식을 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히 4:8). 또 다른 예로서, 수 세기가 지난 후 시편 95편에서 다윗도 이 같은 안식을 말한 적이 결코 없었다.

 

결론은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는 것이다(4:9). 그는 이러한 안식을 하나님의 안식일에의 쉼과 연관시키는데(4:4, 10), 그것은 지쳐버린 후의 쉼이 아니라 만족한 상태에서의 안식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후 지치지 않으셨다. 창세기 2장 2절에서의 안식은 완성과 만족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안식”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약속하시는 믿음의 안식”이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태복음 11장 28절의 쉼은 구원이며 선물이다.

 

승리의 안식은 우리의 헌신과 순종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라는 구절은 하나님의 경고이다. 왜냐하면 그의 자녀들 중에서 이러한 승리의 생활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2. 그러므로 우리가 힘쓸지니 (히 4:9-13)

 

여기서 “힘쓰다”라는 말은 “부지런하다”는 의미로서, “이러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부지런할지니”의 뜻이다. “부지런하다”는 말은 “흘러 떠내려감”의 정반대이다(2:1-3).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부주의하거나 게으른 상태로 성숙에 이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베드로후서 1장 4-12절과 3장 11-18절을 자세히 보면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부지런하라고 세 번이나 권면한다. 만일 우리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며, 약속된 안식과 기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이것은 구원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의 승리임을 다시 주목하자).

 

이러한 안식에 들어가는 비결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온갖 영적인 상황에 대한 해결을 제시해 준다. 만일 우리가 말씀이 우리를 심판하며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도록 허용한다면 그 축복을 기업으로 받기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말씀에 대적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므로(시 55편) 그들은 40년간 광야에서 좌절하며 방황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이다(계 1:6/계 2:12-16/계 19:13). 그리하여 그 검은 마음을 찌른다(행 5:33/행 7:54- 이스라엘이 재차 말씀에 순복하기를 거절함). 너무도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삼가는 데에 실패함으로 인하여, 축복을 빼앗긴다. 영적으로 성숙하려면 부지런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3.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 (히 4:14)

 

이 말은 “우리의 구원을 굳게 붙들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믿는 도리”란 말은 실로 “동일한 내용의 신앙고백”인 바, 4장 14절에서와 같이 3장 1절, 10장 23절, 11장 13절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그의 믿음을 증거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그의 신실함, 그리고 약속된 상급을 얻는 것과 관련이 있다(10:34-35 참조).

 

광야에서 방황한 유대인들은 구름 아래 있었고 애굽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았지만 간증이 될 만한 것을 잃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증거자들이었던가!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해 내셨으나 이들을 이끌어 들일 수는 없으셨다. 그들의 불신앙이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아갔다.

 

이 일은 바울이 11장에서 위대한 “믿음의 거성”을 그의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 사람들은 모두 다 역경과 시련에 직면했으나 그것들을 극복하고 선한 간증을 남겼다. 히브리서 11장 13절은 이 모든 사람들이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였던 것을 “증거하였다”고(4:14 과 같은 단어임) 말한다. 에녹은 하늘로 들리워가기 전에 좋은 증거를 받았다(11:5).

그 장 맨 끝에 가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한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며...” 믿음이 있는 곳에는 좋은 증거가 있고(11:2) 불신앙이 있는 곳에는 증거가 없다.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은 들으려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믿음이 없었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은 3장 7, 15절과 4장 7절에서 반복되는 경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삼가는 그리스도인은 좋은 신앙고백을 유지할 것이며, 세상에서 그의 증거를 잃지 않을 것이다.

 

4.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5-16)

 

이 구절들은 신자들이 그의 구원을 잃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유혹과 연약함을 아시는 대제사장이 계시며, 그분은 우리가 결코 당하지 않는 시험들을 참으셨다. 시험의 때가 오면 우리는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도움을 받고자 은혜의 보좌 앞으로 돌이킬 필요가 있다.

 

바울은 마지막 장들에서 본 주제를 더욱 세밀하게 다룬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이 권면을 첨부하고 있는 것은 독자들이 낙담하여 “계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계속 전진하는 데 필요한 것이 우리에게는 없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물론 당신은 이런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신자도 요단강을 건너가 원수를 정복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비로우시며 “때를 맞추어 돕는 은혜”를 주시는 대제사장이 계신다.

 

저자가 이 시점에서 “보좌”를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구절은 출애굽기 25장 17-22절에 나오는 황금으로 된 시은소와 관계가 있다. 법궤는 금으로 입힌 나무로 된 상자인데, 모세는 이 궤의 맨 위에다가 양쪽 끝에 그룹이 있는 황금 “시은소”를 두었다. 이 시은소가 하나님의 보좌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중에 좌정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셨던 곳이다. 그러나 구약의 시은소는 은혜의 보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민족은 율법의 멍에 아래있었기 때문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그리스도는 우리의 시은소이시다(요일 2:2-“화목제물”).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올 때는 심판의 보좌가 아닌 은혜의 보좌로 나오는 것이며, 그는 우리를 만나시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본 장을 다시 읽으면 우리가 구원을 잃으리라는 그런 경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말씀과 기도 가운데 살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령한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안식과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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