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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6. 히브리서 6장

by 은총가득 2020. 3. 19.

6. 히브리서 6장 / 새롭게 하는 회개

 

성경의 그 어떤 장도 히브리서 6장만큼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실한 신자들조차 “타락”에 관한 교리로 다투게 되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 구절들에 대해서는 해석들이 분분하다. 그 예를 들어보자.

 

① 이것은 배교의 무서운 죄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② “거의 구원을 받을 뻔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스코필드 주석).

③ 이것은 아직 성전이 파괴되지 않은 시기 동안에 생존해 있던 유대인들만이 범할 수 있는 죄이다.

④ 이것은 “가상적인 경우” 또는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존중해야 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견해들은 거절해야만 한다. 우리는 6장이 이 책의 나머지 부분과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 쓰인 것이지만, 신자가 “그의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책의 전체적인 문맥과 사용된 단어들을 주의깊게 보면 본 장의 주된 교훈이 회개와 확신임을 발견할 것이다.

 

1. 호소 (히 6:1-3)

 

저자는 독자들의 영적인 우둔함을 신랄하게 꾸짖었는데(5:11-14), 이제는 성숙한(완전한)데 나아갈 것을 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이는 물론 이 책의 핵심 주제이다. “완전”(성숙)이란 단어는 누가복음 8장 14절의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이다(“...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이 단어는 히브리서 6장 7-8절에 나오는 밭의 예화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뜻을 마음에 꼭 새겨 두자.

 

“나아 갈지니라”는 호소는 직역하면 “지탱함을 받자, 또는 계속해서 나아감을 받자”는 뜻으로, 1장 3절에서 “붙드시며”라고 번역된 말과 같은 단어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자기 노력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곧 온 우주를 붙들고 계시는 바로 그 능력에 자신들을 굴복하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면 어찌 떨어질 수 있겠는가!

 

이 유대인들은 전진하는 대신 2-3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초보”를 다시 세우려는 유혹을 받았다. 이러한 초보에 들어 있는 여섯 가지 항목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주의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가리키고 있다. 박해가 극렬해지자 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고백을 버리고 “곁길로 빠지려는” 유혹을 받게 되었다(4:14/10:23).

 

이들은 이미 “유아시절”로 돌아가 있었고(5:11-14), 급기야는 유대주의로 돌아가려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충만한 빛을 드러내기 위해 길을 예비했던 그 기초를 다시 세우게 된다.

 

이들은 죽은 행실, 곧 율법 아래 있는 행위를 회개했었고(9:14),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보였었다. 이들은 씻음의 교리를 믿었는데 이는 신약적 세례가 아닌 레위기에서의 씻음이다(막 7:4-5/히 9:10 참조). 안수는 대 속죄일을 가리키며(레 16:21), 모든 참된 유대인은 장차 부활과 심판이 있다고 주장한다(행 24:14-15). 만일 이들이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후퇴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것은 그림자를 위해 본체를 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2. 논쟁 (히 6:4-9)

 

처음부터 문제가 된 것은 구원이 아니라 회개인 것에 유의하자.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4, 6절). 만일 이것이 구원에 관하여 말하는 것으로서 신자가 구원을 잃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신자는 구원을 다시 얻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는 결과가 된다. “그런데도 구원을 잃는다”고 가르치는 교회들이 타락한 자들을 향해 주께로 돌아오라고 언제나 초청하고 있다. 이것은 비논리적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회개인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는 자의 태도이다. 4-5절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며(10:32/2:9/2:14 참조). 9절은 저자가 그들이 참으로 구원받았다고 믿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는 “구원받을 뻔한” 사람들이 아니라 참된 신자들인 것이다.

 

6절에 나오는 두 개의 핵심 단어는 “타락한”과 “십자가에 못박아”이다. “타락하다”의 헬라어는 “배교”라는 말이 유래한 아포스타시아(ajpostasiva)가 아니라 파라핍토(parapivptw)로서, 이는 “벗어나다,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나오는 “범죄”라는 단어와 비슷하다(“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따라서 6절은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맛보았지만 곁길로 벗어났거나 또는 범죄한 신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행하였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히 12:15-13) 영적으로 버려지게 될(고전 9:24-27)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상급을 잃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비난을 받게 된다는 뜻이지 구원을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십자가에 못박아”라는 구절은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동안에”로 번역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히브리서 6장 4-6절은 죄짓는 성도는 전혀 회개에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해서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께 욕을 돌리고 있는 동안은, 회개에로 인도함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계속 죄 가운데 있는 신자는 그가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삼손과 사울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히브리서 12장 14-17절은 이와 마찬가지로 에서의 경우를 인용한다.

 

7-8절에 나오는 밭의 예화는 히브리서 12장 28-29절과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에 주어진 진리, 곧 하나님의 시험의 불에 대한 개념과 연관된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열매를 맺도록 하시기 위해서 구원하셨다. 우리의 삶은 언젠가 시험받을 것이며 인정받지 못한 우리의 행실은 불에 타게 될 것이다. 밭이 불에 타는 것이 아님을 주목하자. 불에 타는 것은 열매이다. 이러한 신자는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은” 구원을 받는다.

 

결국 이 난해한 구절이 주는 전체 메시지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신령한 생활에서 후퇴할 수 있고 그리스도께 욕을 돌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는 동안 그들은 회개함으로 인도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위험에 처한다. 고집을 부린다면 그들의 생활은 불에 견디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잃는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신자들이 죄에 대한 핑계로 “은혜”를 헛되이 하는 일이 없도록 히브리서 10장 30절은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고 상기시킨다.

 

3. 확신 (히 6:10-20)

 

저자는 독자들이 그의 권면을 오해하지 않도록(벧후 3:16),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영원히 보증받는 견고한 구절로 종결한다. 그는 먼저 그들의 삶을 지적하고(10-12절)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갖 증거를 나타내야 할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이 세 구절에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은 참된 신자의 특성이다(살전 1:3/롬 5:5).

 

그러나, 그는 12절에서 “게으르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게으르다는 말은 5장 11절에서 “듣는 것이 둔하므로”와 같은 단어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주셨으므로 그들은 축복을 받기 위해 다만 믿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인내하는 믿음의 실례로서 아브라함을 든다. 물론 아브라함은 죄를 범하였으며, 같은 죄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들은 확실성 있는 성도들의 믿음에 달려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약속들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창세기 22장 16-17절의 약속을 친히 맹세하심으로써 확증하셨고, 이루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선함이나 순종으로 말미암아 약속된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히브리서의 독자들처럼 여러 가지 시련들과 시험들을 통과했고, 하나님은 그를 내내보고 계셨다.

 

17절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행하셨던 것은 “후사들”에게 그의 뜻과 약속의 불변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쓰고 있다. 18절에 의하면 이런 후사들은 우리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갈 3장 참조). 그러므로 우리를 확신시키는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이 있는데, 곧 하나님의 약속(하나님은 거짓말할 수 없으시다)과 하나님의 맹세이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과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인격은 우리가 구원받아 영원히 보존된다고 확신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이다.

 

우리는 영혼의 닻 같은 “소망”을 가지며, 이 “소망”이 바로 그리스도 그분이시다(7:19-20/딤전 1:1).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닻을 내리고 있는데 어찌 표류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확실하고 견고한 닻을 지니며, 우리를 위하여 길을 열어놓고 앞서 가신 “선두 주자”(그리스도)가 계신다. 또한 우리는 언젠가 영광중에서 그와 함께 하게 됨을 볼 것이다.

 

본 장은 성도들에게 버림받는다는 생각을 들게 하여 두렵게 한다기보다는 회개치 않는 마음에 경고를 하며, 우리가 영원에 닻을 내리고 있음을 확신시키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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