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히브리서 7장 / 그리스도와 멜기세덱
본 장은 히브리서의 두번째 부분으로, 우월한 제사장 직분에 대해 소개한다. 이 부분에서의 저자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아론이나 땅에서 봉사하던 그의 후계자들의 직분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인데(8:4), 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더 나은 반차(7장)를 따른 것이며, 더 나은 언약 아래서(8장), 더 좋은 성소에서(9장), 더 나은 제물로(10절)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 장의 핵심 인물은 신비로운 왕이며 제사장인 멜기세덱으로서, 그는 구약전체를 통하여 단 두번 나올 뿐이다(창 14:17-20/시 110:4). 바울은 아론을 능가하는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세 가지를 논증한다.
1. 역사적 논증-멜기세덱과 아브라함 (히 7:1-10)
첫째로, 저자는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본다(3, 14절). 그는 제사장인 동시에 왕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역시 그러하시다. 아론 계통의 제사장으로서 보좌에 오른 자는 아무도 없다. 사실상 영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사역은 결코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앉지 않았다(히 10:11-14). 더우기 멜기세덱은 살렘(“평강”)의 왕이었으며 예수께서도 우리의 평강의 왕이시다.
또한 멜기세덱의 이름이, 하나님의 의로운 왕이신 그리스도께 분명하게 적용되는 “의의 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과 직무상으로 볼 때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적절한 표상이다.
그뿐 아니라 저자는 또한 멜기세덱의 근원에서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성경 기록에 관한 한 멜기세덱의 출생과 죽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물론 이것은 멜기세덱이 부모가 없었다거나 죽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구약의 기록은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침묵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처럼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 그의 제사장 직분은 영원한 것이다.
그의 제사장 직분이 자연적인 혈통에 의존되지 않았던 반면, 아론의 제사장들은 계보(系譜)의 기록들을 통해 그들의 직책의 정당성을 변호해야만 했다(느 7:64). 아론을 계승한 모든 대제사장은 다 죽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처럼 “계속해서 제사장으로 머물러 계신다”(8, 16, 24-25절),
다음으로 저자는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와 같이 봄으로써 이제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왜냐하면 아론은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레위도 축복받고 있었다.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빎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땅에서, 유대인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제사장들은 십일조를 받았다. 그러나, 창세기 14장으로 돌아가 보면 제사장들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이것은 분명히 그들이 낮은 것을 보여 준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오늘날 신자들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십일조를 바침으로써 아브라함을 본받고 있다. 저자는 십일조가 중단되었다거나 그리스도께 십일조를 바치면 그가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2. 교리적 논증-그리스도와 아론 (히 7:11-25)
바울은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탁월하다는 역사적인 기반을 굳게 세운 후, 이제는 교리적인 관점에서 멜기세덱의 우월성을 보여 준다. 여기서 그는 시편 110편 4절을 본 논증의 근거로 인용하며 세 가지 점을 제시한다.
1) 아론은 멜기세덱으로 대치되었다(11-19절)-
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로써 하나님은 제사장 직분을 폐지하시는 것이었다. 신적 제사장 직분이 두 가지로 병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반차를 세우셨다는 사실은 아론의 옛 반차가 연약하고 비효과적인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아론의 기능을 뒷받침해 주었던 율법 역시 폐지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케 못할지라”(19절).
따라서 결론적으로, 제사장 직분도 역시 “아무것도 온전케 할 수가 없었으며”(11절), 저들이 드리는 제사로도 온전케 할 수가 없었다(10:1). 물론 히브리어의 “온전함”이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선다”는 뜻으로서, 무죄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단어이다. 아론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에 의해 제사장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은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16절) 그 기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아론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결코 죽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2) 아론은 맹세로 세움받지 않았다(20-22절)-
출애굽기 28-30장에 나오는 정교한 의식들을 통하여 아론과 그의 계승자들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지만 그들의 제사장 직분을 인치셨다는 신적 맹세에 대한 기록은 없다. 사실상 하나님은 그들의 사역이 어느 날 끝이 날 것임을 아셨기 때문에 맹세로써 그들의 반차를 인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하여금 제사장이 되도록 정하셨을 때는 불변하는 맹세로써 그 직분을 확증하셨으며, 이러한 사실이 그리스도께서 아론보다 더 우월하심을 입증한다.
3) 아론과 그의 계승자들은 죽었으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계신다(23-24절)-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선하였으나 육체의 약함으로 인하여 제한을 받고 있었다. 아론은 죽었으며, 그를 뒤이은 자손들도 죽었다. 제사장 직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더 이상 죽지 않으시며 살아 계신다. 그는 불변하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시는데, 이는 그가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영원히 살아 계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중재하시며 이로 말미암아 그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가 있으시다. 대체로 25절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적용시키지만 사실상 그것은 주로 구원받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매일 중재하시고 계신다.
3. 실천적인 논증-그리스도와 신자 (히 7:26-28)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라는 말은 우리에게 알맞으며, 우리의 필요에 대처하며, 우리의 환경에 적합하다는 뜻이다. 아론의 어떤 후손도 이 구절들에서 그리스도께 주어진 묘사에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론 자신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이끌어갔으며, 또한 엘리의 아들들도 탐식과 부도덕의 죄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완전한 대제사장이 계신다. 그는 지상의 어떤 제사장보다 거룩하시며 하나님의 존전의 하늘 장막에서 섬기는 그 어떤 직분보다 높으시다. 아론과 그의 후손들은 먼저 자신들을 위해, 다음으로는 백성들을 위해서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기에 자기 죄를 위하여 속죄하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다. 그가 드린 단번의 제사가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염소와 황소의 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는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런 저런 종류의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모든 죄와 연약함으로부터 자유하신 분이다.
이제는 멜기세덱의 반차가 아론의 반차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레위보다 멜기세덱을 더 높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입증되었고, 시편 110편 4절에서 하나님께서 제사장직을 변역하심으로 율법도 변역하셨다고 명확히 언급하는 것으로서 교리적으로 입증되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대제사장이 되는 자격을 지닐 수 없기 때문에 실천적으로 입증되었다. 다른 식으로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며,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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