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히브리서 9장 / 옛 제사보다 나은 그리스도의 제사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아론의 직분보다 더 나은 것임을 보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더 나은 반열인 멜기세덱의 반차에 속하며(7장), 더 좋은 언약 곧 새 언약 하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8장). 본 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더 좋은 성소로부터 수행되는 까닭에 더 우월한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1. 옛 언약 하의 열등된 성소 (히 9:1-10)
저자는 옛 언약의 성소(Sanctuary)가 열등했다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1) 그것은 세상에 있었다(1절)-
“세상에 속한”이라는 말은 “이 세상 것으로 된, 땅에 있는”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늘에 있는 원형을 제공하셨으나, 모세는 땅 위에 세상의 재료로 장막(성막,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을 세웠다. 성소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곳에서의 섬김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행되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여전히 땅 위에 있었다. 본 장의 후반부에서 볼 것이지만, 새로운 성소는 하늘에 있다.
2) 그것은 장차 올 일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하다(2-5절)-
여기서 저자는 구약 장막의 배치와 그 기구들에 대해 기술한다. 2절과 6절에 있는 “첫장막”이란 성막에서의 첫번째 구역인 성소(the holy place)를 뜻한다. 그리고 7절의 “둘째 장막”이란 모세가 만든 두번째 장막이란 뜻이 아니고, 성막의 두번째 구역인 지성소(the holy of bolies)이다.
놋단과 물두멍은 바깥뜰에 있었고, 첫 휘장(3절에 유의)이 바깥뜰과 성소사이에 드리워 있었으며, 성소에는 촛대, 떡상, 향단이 놓여 있었다. 둘째 휘장 뒤에는 지성소가 있었고 거기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매년 대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레 16장). 지성소에는 언약궤(법궤)가 놓여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모형이었고, 하나님께서 새 언약 하에서 주고자 하셨던 위대한 영적인 실제의 그림자였다.
3) 그것은 백성들이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었다(6-7절)-
제사장들만이 뜰과 성소에서 섬길 수 있었으며,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나오겠지만 하늘의 성소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열려져 있다.
4) 그것은 잠정적인 것이었다(8절)-
사람들과 하나님 사이의 휘장은 하나님의 존전으로 가는 길이 아직 열려 있지 않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다. 9절은 휘장이 가리워져 있는 동안은 장막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모형(표상, 비유)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지상의 성소가 필요없게 되었다.
5) 그것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효과가 없었다(9-10절)-
날마다 제사장들은 같은 제사를 드렸다. 피는 죄를 가리웠으나 죄를 씻어내지는 못했다. 동물들의 피가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이것은 “육체의 예법”, 곧 영혼이나 양심이 아니라 몸을 다루는 의식이었다. 이 의식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를 기다리는 잠정적인 것이었다.
2. 새 언약 하의 우월한 성소 (히 9:11-2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기서 장면이 바뀌어, 바울은 새 언약의 성소(Sanc-tuary)가 왜 우월한지를 설명하며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아론의 직분보다 왜 더 우월한가를 설명한다.
1) 그것은 하늘에 있는 성소이다(11절)-
그리스도는 “드디어 실현된”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이시다. 그의 하늘 성소는 모세에게 제시되었던 원형으로서 더 위대하고 더 완전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 창조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 창조에 속하지 않는다.” 땅의 장막은 옛 창조, 옛 언약에 속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성소는 새 창조. 새 언약에 속한다(24절).
2) 그것은 생활을 변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다(12-23절)-
참으로 대조적이다! 대제사장은 그의 생애 동안에 여러 번 다른 피를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가지고 단번에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셨다! 구약의 제물들은 의식으로 몸을 정결케 했으나(13절) 결코 마음과 양심에까지는 이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두를 위하여 단번에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는 양심을 깨끗케 하며, 믿는 자에게 불변하는 완전한 신분을 하나님 앞에서 갖게 한다. 유대인의 제반의식은 새 언약 하에서의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와 대조해 볼 때, 단지 “죽은 행실”에 지나지 않았다.
15-23절은 유언의 예를 사용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재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뜻을 정하고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 유산은 그 사람이 죽기까지는 어느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에게 줄 영원한 기업을 가지고 계셨으며, 이 기업은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뜻이며 유언”인 새 언약에서 판명된다.
그러나, 그 뜻이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그가 죽어야만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 뜻의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하여 죽으셨으며, 그리고서 그것을 몸소 시행하기 위하여 죽은 자로부터 다시 되돌아오셨다! 물론 모세아래 있는 첫 언약도 피로써 인쳐졌으며(출 24:6-8) 땅의 성소가 세워졌을 때도 피로써 바쳐졌다. 그러나, 이 짐승들의 피는 단지 의식적 정결은 가져올 수 있었을 뿐, 내적 깨끗함을 주기란 불가능했다.
23절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늘에 있는 것들도 역시 정결케 한다고 암시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케 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12:22-/엡 2:22)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 사단이 나타남으로 인해서(계 12:3-) 하늘 성소를 특별히 정결케 해야 했던 바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3)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성취이다(24절)-
아론의 제사장들은 임시적인 장막에서 섬겼는데 그것은 장막이 장차 올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모형들로 가득 찬, 사람이 만든 장막에서 섬기지 않으신다. 그는 이러한 구약의 모형들의 성취인 하늘 성소에서 섬기고 계신다.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 시은소에 피를 뿌렸으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우리를 대표하신다! 사람들이 감각을 기쁘게 하는 종교적인 의식들에 매달려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하늘 사역을 믿음으로 붙들지 못한다면 이는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4) 그것은 완전한 제물에 근거한다(25-28절)-
그리스도께서 드린 제물의 우월성은 10장의 주제인데도 저자는 여기서 이에 대해 언급한다. 제사장의 사역은 그들의 제물이 확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최종적인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죄를 단지 가리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
이것은 휘장이 찢어져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나타나시며,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구약의 유대인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했으며 감히 지성소에 들어갈 생각도 못했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완전한 사역으로 인해서(“다 이루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열린 길이 우리에게 있게 된 것이다.
24-28절에서 “나타나다”라는 단어가 세 번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리스도께서 죄를 없게 하시려고 과거에 나타나셨던 일(26절)과 우리를 위하여 현재 하늘에 나타나신 것(24절)과,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시려고 미래에 나타나실 것(28절)이 있다. 대제사장이 대 속죄일에 장막 안으로 사라지면 사람들은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밖에서 기다렸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거절하셨다면 그는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가 다시 나오면 거기에는 큰 기쁨이 있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 영원한 지성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시어 함께 거하려고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참으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히브리서 연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히브리서 11장 (0) | 2020.03.19 |
---|---|
10. 히브리서 10장 (0) | 2020.03.19 |
8. 히브리서 8장 (0) | 2020.03.19 |
7. 히브리서 7장 (0) | 2020.03.19 |
6. 히브리서 6장 (0) | 2020.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