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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10. 히브리서 10장

by 은총가득 2020. 3. 19.


10. 히브리서 10장 / 온전한 제물이신 그리스도

 

본 장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우월한 제물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우월한 제사장 직분에 대한 부분(7-10장)을 종결짓는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이 구약의 제물보다 더 우월하다는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1. 죄를 없게 함 (히 10:1-10)

 

1) 구약의 제물들은 비효과적이었다(1-4절)-

그 한 가지 예로, 그것들이 모형과 그림자의 시대에 속한 것이었으므로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 제사는 “해마다” 반복되었으며(1절) “날마다”(11절) 행하여졌다. 이같은 사실은 구약의 제물들이 죄를 없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제사장과 그의 조력자들이 제사를 반복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9장 10-14절에 나타난 대로 구약의 의식들은 육체에 관한 일들과 의식적으로 부정함만을 다루고 있었다. 따라서 그것들은 결코 마음이나 양심에 이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의식들은 “죄를 기억나게” 했으나 죄를 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9:22 참조). 주의 만찬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며 우리의 죄를 기념하지 않는다(고전 11:24/눅 22:19).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8:12)

 

2)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은 효과적이다(5-20절)-

여기서 저자는 시편 40편 6-8절을 인용하는데,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이란 구절을 성령께서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는 말로 바꾸신다. 여기 관련된 참고 구절은 아마도 출애굽기 21장 1-6절이었을 것이다. 안식년이 되면 유대인은 그들의 히브리 종을 자유하게 하라는 율례를 받았다. 그러나, 만일 종이 그 상전을 사랑하여 그와 함께 유하기를 원하면 송곳으로 귀를 뚫어 구멍을 냄으로써 표를 삼고, 그 순간부터 종의 몸은 영영히 그의 상전에게 속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성령은 한 몸을 예비하셨으며,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의 몸을 온전히 바치셨다. 그 몸은 세상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되어야 할 몸이었다. 시편 51편 10, 16절과 사무엘상 15장 22절, 이사야 1장 11절 이하와 같은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짐승들의 피로부터 완성된 사역이라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마음을 원하셨다.

 

8-9절에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취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짐승의 제물로 세우신 첫 언약을 폐하시고 그 자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써, 우리는 그에게로 단번에 구별되었다(성별되었다).

 

2. 결코 반복될 필요가 없음 (히 10:11-18)

 

서로 상이한 점들을 살펴보자. 구약 제사장은 매일 서지만 그리스도는 앉으셨으며, 구약 제사장은 같은 제물을 자주 드렸으나 그리스도는 한 제물(자신)을 단번에 드리셨다. 한 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따로 구별된 자들에게 의로운(온전한) 신분을 영원히 허락하셨다. 10절에서는 우리가 단번에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14절에서는 날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간다는 점을 말한다. 이것이 신분적, 점진적 성화이다.

 

구약의 제물들은 죄를 생각나게 했으나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죄의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 “용서”란 “멀리 옮김”을 뜻한다.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고 그 죄는 영원히 멀리 옮겨졌다!(시 103:12/미 7:19) 매년 대속죄일에(레 16장) 대제사장은 속죄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 민족의 죄를 고한 다음 그 염소를 광야로 끌고가 길을 잃게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처리하셨던 바이다. “더 이상 죄를 생각나게 할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은 죄로 인한 고난도 없다.” 성령에서 우리의 마음에 증거하시며, 우리에게 약속된 새언약의 축복이 있다(14-17/ 렘 31:33-).

 

3.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음 (히 10:19-31)

 

1) 설명(19-21절)-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죽으심으로써 믿는 자가 갖게 되는 축복들을 재고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신분의 보장을 받기 때문에 그의 존전으로 나아갈 담력(문자적으로는 “말할 자유”)을 가질 수 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어떠한 휘장도 드리워 있지 않다. 그 장막의 휘장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 몸으로 가리워졌기 때문이다(요 1:14).

 

그의 몸이 제물로 드려졌을 때 휘장은 찢어졌다. 우리가 가진 이 길은 새 언약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이며, 또한 우리에게 살아계신 대제사장이 계시기에(7:25) 그 길은 산 길이다. 하나님의 집(교회)에는 영광 중에 거하시는 위대한 대 제사장이 계신다!

 

2) 초청(22-25절)-

여기에는 “... 하자”라는 진술이 세번 나온다(6:2).

① 흘러 떠내려가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자.”

② 시련으로 인하여 흔들리지 말고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자.”

③ 모범을 보임으로써 다른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진실하도록 격려하며 그들을 “돌아보자.”

 

만일 우리가 서로 책망하려면 사랑으로 해야만 한다(고전 13:5). 하늘에서 오는 우리의 담력은, 땅에서 영적인 성장과 헌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자들은 시련들로 인해서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서로 필요로 하는 상호 격려를 소홀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는 제사장 나라이므로(벧전 2:9), 예배와 가르침과 봉사를 위해 우리는 함께 모여야만 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구약의 유대인은 성막에 들어갈 수가 없었고, 대제사장 역시 원하는 때면 언제라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에게는 하늘로 나아가는 산 길이 있다. 우리는 아무 때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있는 이러한 특권을 이용하고 있는가?

 

3) 권면(26-39절)-

이것은 다섯 가지 권면들 중에서 네번째 것이다(개요 참조). 이 권면은 의도적인 죄를 경고하고 있다. 부디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권면이 신자들에게 하는 것이며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이전의 세 가지 권면에 잇따른 권면이라는 점이다.

 

부주의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등한히 여김으로 인해서 떠내려가기 시작하고, 다음으로 그는 말씀을 의심하며 그 다음으로는 말씀에 대해 점점 무디어진다. 그 다음 단계는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며 자기의 영적 유산을 업신여긴다. 이런 특이한 죄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살펴보자.

 

이 죄는 한 때 범한 한 번의 죄가 아니다. 26절에 나오는 “짐짓 죄를 범한즉”이란 말은 “고의적으로 죄를 계속 범한즉”으로 읽어야 마땅하다. 이 말은 요한일서 3장 4-10절에 나오는 동사의 진행형 시제와 같다. “지속적으로,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용서받지 못할 죄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의적인 반역이라고 보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고의적이며 뻔뻔스러운 죄들(출 21:14/민 15:30)에 대해 희생제물을 드리지 않았다. 모르고 지은 죄와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지은 죄는 덮어졌으나 짐짓 지은 죄는 당연히 형벌을 받았다.

 

29절은 우리의 구원과 그것을 값주고 사신 보혈을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성부께서는 그 아들을 귀히 여기시고, 성자께서는 그의 피를 흘리셨으며 성령께서는 믿는 자에게 십자가의 공로를 적용시키신다. 우리가 짐짓 죄를 범하는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저자는 신명기 32장 35-36절을 인용하여 구약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믿지 않는 자들이 아님) 그들이 심은 것을 거두게 하셨고 고의적으로 불순종하였을 때는 심판하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훨씬 더 큰 의무들을 지게 하였다(암 3:2).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신다(롬 2:16/고전 11:31-32/벧전 1:17 등). 물론 이것은 영원한 심판이 아닌 이생에서의 징계와 내생에서의 상급의 상실을 말하는 것이다. 34-35절에서는 구원이 아닌 충성에 대한 상급에 관하여 강조하고 있음을 유의하자(고전 3:14-15/고전 5:5/고전 9:27/고전 11:30 참조).

 

32-39절에서 저자는 6장 9-12절에서처럼 그들이 진정 거듭났는지는 그들의 생활이 입증할 것이라는 놀라운 확신을 준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그 기초를 둔 사람들 중에 있으므로(합 2:3-4), 진실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하듯이 “뒤로 물러설” 수는 없는 것이다(요일 2:19). 그들의 운명은 파멸에 있지 않고 온전함에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며 그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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