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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연구

12. 히브리서 12장

by 은총가득 2020. 3. 19.


12. 히브리서 12장 /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

 

본 장의 핵심 단어는 인내이다(1-3, 7, 20절). 이 단어는 “시련 아래서 견디다, 진행이 곤란한 때에도 계속되다”는 뜻이다. 이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의 때를 통과하고 있었고(10:32-39) 포기해 버리려는 유혹을 받았다(12:3). 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위해 죽도록 부름받은 자는 없었지만,(4절) 더 쉬운 상황은 아니었다. 바울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계속 강건하도록 지원하려고 세 가지의 격려의 말을 상기시키고 있다(5절에 유의).

 

1. 하나님의 아들의 모범 (히 12:1-4)

 

11장에서 그의 독자들은 구약의 위대한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을 통하여 생의 경주에서 승리하였는지를 회고하여 살펴보았다. 이제 그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며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굳게 하라고 훈계한다. 여기에는 경기장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관중들은 이전 앞 장에서 열거한 믿음의 영웅들이며, 경주자들은 시련을 통과하고 있는 신자들이다(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거나, 여기 이 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하나의 예화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경주에서 이기려고 한다면 달리는 데에 힘들게 하는 무거운 것들과 죄를 제거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목표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눈을 고정시켜야만 한다(빌 3:12-16 참조). 그리스도는 이미 믿음의 경주를 마치셨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이기셨다!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요, 새 길을 닦는 개척자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시작과 나중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가 마치신다. 그는 우리로 승리하도록 내내 지켜보신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시련을 통과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시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목표였는데, 그것은 어느 날 하늘에서 아버지 앞에 그의 교회를 서게 할 기쁨이었다(유 24절/요 15:11/요 16:20-24/요 17:13).

 

죄에 대항한 그리스도의 전투는 그를 십자가로 이끌어 갔고 그 생명을 값으로 지불하게 하였다. 우리들 대부분은 피흘리기까지 경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를 생각하라!” “예수를 바라보자!” 이것이 경주가 어려워질 때 격려와 힘을 주는 비결이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환경에서 눈을 돌려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고정시켜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 (히 12:5-13)

 

5장 12절에서 언급한 대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이미 잊었다. 5절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고난에 관하여 말씀하신 바조차 잊었다고 전해 준다. 그는 잠언 3장 11절 이하를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고난은 형벌이 아닌 징계임을 상기시킨다.

 

징계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는 “아이들을 훈련시킴, 훈육”이란 뜻이다. 그들은 영적인 갓난아이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숙시키시는 한 방법은 시련을 과하게 하는 것이었다. 형벌은 재판관의 일이지만 징계는 아버지가 하는 일이다. 형벌은 율법을 세우는 일이나, 징계는 자녀를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한 사랑의 증거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징계의 손길에 순복하여 성장해야 할 때에 도리어 거스리는 일이 종종 있다. 사단은 우리가 시련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고난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최선의 증거라고 말해 준다.

 

신자의 삶에 고난이 닥쳐 올 때에는 몇 가지의 다른 반응이 나타난다. 환경에 저항하며 하나님의 뜻과 맞설 때에는 환경이 더욱 어렵고 힘겹게 된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은 더 이상 날 돌보지 않으신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당할 일이 아니야!” 이러한 태도는 영혼의 슬픔과 쓰라림만을 더해줄 뿐이다.

 

바울은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고 논술한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사생자가 아니라는 최선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단련하신다는 사실에 있다. 9절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순복시키지 않으면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해 준다. 이것이 죽음에 이르는 죄이다.

 

또는 그리스도인이 포기하고 중단하기도 찬다. 이것은 그릇된 태도이다(3, 12-13절).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를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지 우리를 쓰러뜨리려는 매질이 아니다. 바른 태도는 믿음으로 견디며(7절) 하나님께서 그의 온전한 계획을 이루시도록 허락하는 데에 있다. 11절의 “후에”라는 축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전진하게 된다. 징계는 우리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욱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 (히 12:14-29)

 

이 부분은 히브리서에 나오는 다섯번째 권고이며, 그 중심 사상은 은혜이다(15, 128절), 여기서는 모세와 그리스도, 시내산과 시온산,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대조점이 나온다. 율법 하에서는 연기와 불로 뒤덮인 산으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 떨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가졌던 경험보다 더 위대한 영적인 체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하늘의 제사장, 하늘의 집, 하늘의 교제, 그리고 은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 주는 하늘의 음성이 있기 때문이다.

 

22-24절의 묘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언약의 축복들에 관한 것이다. 시온산은 곧 멸망될 운명에 처했던 지상의 예루살렘과 대조되는 천성이다13:14/갈 4:26). 거기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곧 성도를 섬기는 천군 천사와 장자들의 총회(1:6), 그리고 구약 성도들이다.

 

“온전케 된”이란 말은 영광 중에 있는 신자들이 지금 완전한 부활의 몸을 입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도리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하여 이제 온전케 된 구약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11:40/10:14). 구약의 성도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의 온전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의 죽음이 있기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명부의 맨 위에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록되어 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곧 파괴될 지상의 도성과, 역시 파괴될 지상의 성전, 지상적 제사장들과 제물들로 되돌아갈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의 피는 모든 것을 해결하였다! 아벨의 피는 복수해달라고 땅에서 부르짖는다(창 4:10).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는 구원과 용서를 위해 하늘로써 말씀하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리스도는 은혜의 사역자이시며, 새 언약은 은혜의 언약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실패하는 일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하는 일이 없다(15절).

 

바울은 신령한 일들을 업신여기다가 축복을 잃은 한 예로서 에서를 든다. “망령되다“는 말은 “성전 밖에 있다” 또는 “세상적인, 일반적인”이라는 뜻이다. 에서는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실패하였다(6:6 에 유의). 신자들은 말씀과 성령의 사역을 의지하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에 실패할 수도 있다.

 

“진동케 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본 장을 종결짓는 구절들의 주제이다. 우리들은 아무도 사물들이 진동케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견고함과 안전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의 경영을 혼돈케 하고 계셨으며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자 하시는 것이었다. 물질적인 것들은 신령한 실재들이 제자리를 차지하도록 물러나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인 새성전을 짓고 계셨으므로 옛 성전은 물러나야만 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어느 날 세상 자체를 진동케 하여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끄실 것을 보이기 위해 학개 2장 6절을 인용한다.

 

여기에 실제적인 적용이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자!” 어떻게 우리가 은혜를 받는가? 은혜의 보좌에서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에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지만 옛 율법이나 제도로써가 아니다. 우리는 진동치 않을, 또는 옮겨지지 않을 한 나라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하고 불변한 신령한 실재 위에 우리의 생활을 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하게 하나님을 섬기자. 그의 말씀을 간직하고 듣기를 거절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의 말씀 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은혜와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25절의 경고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의 다른 경고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이 생에서의 하나님의 징계를 다루는 것이지 내생에서의 심판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이유로 경건함과 경의를 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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