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더쉽

리더의 영향력

by 은총가득 2010. 6. 24.

 


리더의 영향력

(리더의 사람을 이끄는 방법)


  리더십은 영향력입니다. 리더십은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향력입니다. 사람들을 인도할 때 중요한 부분은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야할 것인가?”하는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네 가지 면에서 리더의 영향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참된 리더는 기도를 통해 사람들을 이끕니다.


  성경이 말하는 리더는 기도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리더로서 기도하는 자여야 합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리더로서 기도로 학생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목사 역시 성도들의 리더로서 기도로 성도들을 인도해 나가야 합니다. 사장은 직원들의 리더로서 기도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상사는 부하직원들의 리더로서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리더들은 기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리더가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기도의 첫째 이유입니다.


영원한 의미를 지닌 것치고 하나님 없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여러분,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솔직히 말해 예수님을 떠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표현대로라면 오늘날 교회는 성령이 계시지 않아도 교회 프로그램의 90% 이상이 아무 지장 없이 진행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열매 맺는 삶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전체가 열매 맺는 삶에 관해 말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11절입니다.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열매가 맺히는 곳은 가지이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일은 나무가 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열매는 저절로 맺히게 마련입니다. 영향력이 나무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위 구절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을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열매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개념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흔히 열매라고 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성취하는 것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열매는 우리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일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치고 하나님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목회를 한다고 합시다. 목회할 때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인간적인 프로그램과 방법들을 동원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가 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성공한 목회자로 명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한 사람도 진정으로 거듭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한 사람도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한 사람 속에도 주님을 향한 열정을 불어 넣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한 사람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도록 만들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한 사람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도 회사의 최고 경영자로서 많은 수익을 내고 매출 수익에 있어서 엄청난 확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셔야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지도력은 정의에서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있기 원하는 자리로 인도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도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기도란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목적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리더가 기도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로 ‘성령 충만’을 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이 필수이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 충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리더의 요건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하려면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함께해 주십니다. 그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을 찾으면 더 놀랍게 하나님이 함께해 주십니다. 두 세 사람이 모이면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더가 될 사람은 중보기도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모여서 하는 중보기도회를 월요일에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는 중보기도회를 수요일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떨 때 하나님은 통일전망대에 가서 기도하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의중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군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하십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우리 모두 더 기도해야 합니다.


  모여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의중,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이십니다. 또 마음에 평안이 넘칩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가서 텔레비전 앞에 한 시간만 앉아있으면 금방 친밀함,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고자 하는 열망, 하나님의 의중을 선명히 보았던 것 등이 사라집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이유로 더욱 기도하는 시간을 더 가져야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도움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에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현실로 돌아가면 잘 안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배웠으면 실제로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실제로 찾으셔야 합니다. 그 때라야 이론적으로 배웠던 것들이 실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없습니다. 인간 모두가 그렇습니다. 결단과 의지가 아무리 강하다고해도 안됩니다. 실제로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력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로는 의지력이 약한 사람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기에 그렇습니다. 비교적으로 약간 우위에 있는 것뿐이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뜻은 성령 충만으로 가능한 일들이기에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리더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기도해야 하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유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보상으로 하나님의 지혜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


  야고보 1장 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리더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리더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의 말입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권력에도 불구하고 나를 무력감으로 몰아넣으며 극히 겸손해지게 한 상황들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뿐이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있어도 그는 무력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만 기도하는 일에 의지할 때가 있었다고 술회합니다.


  한 목사님이 미국의 첨단 과학 시설 단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웅장한 기가 막힌 시설과 과학적 지식을 둘러보고 나오는 목사님의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고 합니다. 거의 완전에 가까운 장비 앞에 무력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느 과학자가 옆에 오더니 “목사님, 저와 제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하더랍니다. 이 때 목사님은 그래, 이들에게도 하나님은 필요하다“라고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기도를 스트레스 해소책으로도 말합니다. 리더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스트레스의 해소책의 일환으로 아주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에 어떤 목사님이 계셨는데 아주 뛰어난 부흥강사로 활약을 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조금씩 술 한 잔씩을 마셨는데 어느새 중독이 되어 사역을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한 예입니다. 사실, 리더는 어떤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몸으로서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는 존재들입니다. 이 때 기도는 스트레스의 해소책으로 놀라운 치유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는 분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성전에 엎드려 한 바탕 속에 있는 짐들을 주님 앞에 쏟아내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잡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욱 어렵습니다. 학생들도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합니다. 압박 가운데 시달립니다.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자살충동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기대, 선생님의 기대에 압박당하고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 때문에 또 시달립니다. 정신적 압박이 심합니다. 오죽했으면 자살충동을 느끼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스트레스가 있으면 다른 방도보다 기도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한 마디라도 들으면 쌓였던 스트레스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평안이 찾아오고 안식이 찾아옵니다. 주님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스트레스 해소의 최선책입니다.


  또한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기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기 때문에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장 32절부터 39절입니다.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문앞에 모였더라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예수님은 바쁘신 중에도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주님을 찾나이다”라고 고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우리를 매우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자마자 놀라운 성공을 거두시고 계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 주변에 몰려들었습니다. 흔히 사람 심리가 성공을 거두는 곳에서 오래 머물기 원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말씀하시길 다른 마을로 가자고 제자들을 재촉하셨습니다. 잘 나가고 있는 장소를 떠나 불확실한 곳으로 가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주님은 기도를 통해 아셨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열려야 우리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지 않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환경이란 수시로 변하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만일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면 바람에 흔들리는 파도처럼 요동칠 수밖에 없어집니다. 이런 까닭 때문에 리더는 기도해야 합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있기 위해서 기도는 필수입니다.


  모세는 리더 중의 리더였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모세같은 훌륭한 리더의 영향력 아래 있었음에도 그들은 타락한 것입니다. 모세가 인도했으니 얼마나 잘 인도했겠습니까? 그런데도 백성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전가를 백성들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이 리더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히려 백성들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0절부터 35절입니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32절의 “합의”는 하나님과 선의의 타협을 하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리더임을 알았습니다. 마땅히 멸망당할 일을 한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서 중보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백성들을 멸망시키실 바에는 차라리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부탁하는 모세의 모습에서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모세가 기도로 사람들을 인도했음을 엿보게 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모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직원들을 인도할 때나, 성도들을 인도할 때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리더는 자신이 먼저 열심히 일함으로 사람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한 말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땀을 흘리게 하려면 리더는 코피 흘려야 한다.


  이 말은 리더가 코피를 흘릴 만큼 노력해야 따르는 사람들이 땀을 흘릴 만큼 일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도하는 사람들 앞에 솔선수범 앞장서서 열심히 섬기는 자여야 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리더들에게 이렇게 자문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 조직 사람들이 나 정도로 일한다면 이 조직의 운영은 발전할 것인가, 답보 상태에 빠질 것인가?


  이 질문은 리더의 가슴을 정면으로 찌르는 질문입니다. 모든 조직의 리더들이 생각해볼만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있습니다. 물론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둘의 차이는 작은 것에서부터 나뉘었습니다. 예수님은 솔선수범했던 반면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예를 들자면, 예수님은 먼저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되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하지도 않은 채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절부터 4절입니다.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이 구절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열심히 일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풍랑을 만난 배에서 곤히 주무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식사할 틈도 없이 사람들을 섬기셨던 주님이셨습니다. 핍박을 당하면서도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오스왈드 샌더스의 말입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동시대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부지런히 공부할 마음이 없는 자는 자기 세대에 큰 감화를 끼칠 수 없다


  존 윔버 목사님은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리더들은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리더들을 분별하여 세우는 법 중에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열정을 불어넣어주셨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작은 일을 하나 하더라도 열정으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셋째, 리더는 능숙한 의사소통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의 의미는 리더는 말을 잘 해야 한다는 의미만은 절대 아닙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설교할 때 촛불 아래 두꺼운 안경을 끼고 긴 설교를 단조로운 어조로 읽는 목사님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뒷받침하시자 사람들은 떼굴떼굴 바닥에 뒹굴며 회개하고 애통해 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철학자요 설교자였습니다. 반면 윈스턴 처칠의 경우는 “언어를 동원하여 전쟁터에 내보냈다”는 평을 받을 만큼 탁월한 연사였습니다. 그는 “나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 내놓을 것이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처칠도 처음부터 말을 잘하진 못하였다고 합니다. 처칠의 경우 언어를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셰익스피어 책이나 영어 성경을 많이 읽으며 언어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배웠다고 합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말합니다.


리더는 언어와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고 어휘를 넓히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중요한 진리를 전달할 때 정확한 단어를 활용할 수 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이것과 아울러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있으면 미사어구를 동원하여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전달할 때 언어의 노력도 필요하고 성령의 도움 역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우심이 더 필요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증을 한답시고 자기의 관점을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바 베이츠 이야기 (경험하는 삶)


  가끔 하나님 앞에 기다리며 정확한 표현을 달라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한 마디 표현이 놀라운 능력이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미사어구를 말하지 않습니다. 말쟁이의 말 한 마디 잘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표현, 하나님의 의중을 잘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을 말합니다.


  이렇게 내 삶 가운데 주변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넷째로, 리더는 섬김의 삶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여야 합니다.


  섬김의 삶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좋은 본은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3장 4절부터 17절 말씀입니다.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 니라 [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저희 발을 씻기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오늘날도 세족식을 거행하곤 합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가리켜 자신은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것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당시의 인식에는 제자들은 스승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했습니다. 돈을 주고 배우기보다는 물건이나 스승이 필요한 물품을 채워주면서 공부를 했던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스승의 신발 끈을 풀어주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천한 일이었기에 노예가 주인에게 했던 일입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메시야가 워낙 크신 분이라 자신은 신발 끈을 풀기에 감당치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사건은 너무나 천한 일을 주님이 친히 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세족식과는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유는 영적 리더십이 종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리더가 되는 사람들이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의 자세입니다. 우스운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훈련원에서 ‘사도와 선지자’란 과목을 배운 후 집에 가서 하나님께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전 사도입니까? 아니면 선지자입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또렷하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종이야”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도나 선지자나 어떤 직분이던지 모두가 종입니다. 영적 리더십은 곧 종이라는 말입니다. ‘리더=종’입니다. 신분은 자녀이며 사역적인 면에서는 종입니다. 종이 먼저 되며 사역의 종류에 따라 직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영적 리더십은 섬김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헨리 블랙가비 목사님은 “영적 리더십은 자기 사람들을 향한 사랑에서 나오는 법이다”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보십시오. 예수님의 섬김이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하신가를 말입니다. 본이 되어주신 모습입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말씀입니다.


[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14]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 을 받겠느냐


  바울은 자신의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허비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신 것과 내가 너희들의 종 된 것을 전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리더쉽' 카테고리의 다른 글

Self Leadership School  (0) 2020.09.11
자질의 분별  (0) 2010.06.24
리더의 섬김  (0) 2010.06.24
영향력  (0) 2010.06.24
리더의 목표  (0) 2010.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