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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서신 - 베드로전후서

요한 3서 - 가이오의 인품, 디오드레베의 성품,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찬

by 은총가득 2022. 5. 29.

 

 

가이오의 인품 (요한 3서 1:3-8)

 

 

Ⅰ. 사도가 그의 동료에 대해들은 바 좋은 평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3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6절).

 

1. 가이오에 대한 증거 즉 그 안에 있었던 진리, 믿음의 진실성, 신앙 생활의 성실함,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그를 말해 준다. 그리고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가난한 자에 대한 친절, 나그네에게 베푼 호의와 복음적인 봉사로써 그들을 돌보아 줄 준비를 포함한 그의 사랑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믿음은 사랑에 의해 완성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은 사랑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그 빛을 발하게 되며 다른 사람들을 온전한 믿음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2. 가이오로부터 온 형제들이 전해 준 증거, 좋은 평판은 좋은 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훌륭한 명성은 값진 봉사에 대해 적은 상급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귀한 향유"보다 낫고 지혜보고 신앙적인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3. 평판과 증거는 회중석 혹은 재판석, 다시 말해서 "교회 앞에서" 이루어졌다. 이 교회는 사도가 당시 거하고 있었던 곳으로 보이나, 어떠한 교회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또한 어느 형편에서 그들이 가이오의 믿음과 사랑을 증거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렵다. 아마도 마음이 감동되는 대로 말한 듯 싶다. 그들이 단순히 보고 느낀 바를 증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도록 이러한 후원자의 일상 생활과 유익을 위해 교회에서는 시도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 같다.

 

Ⅱ. 사도는 재차 사랑스러운 칭호로써 가이오를 칭찬하고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진실한 일이니"(5절).

 

1. 그는 언제나 형제들과 나그네들에게 이르기까지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었으므로 가이오의 집에 그들을 천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가이오는 같은 교회 형제들에게만 아니라 먼 곳으로부터 온 사람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그에게서 환영을 받았다.

 

2. 가이오는 도량이 넓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진실한 성도들 간에 나타나는 사소한 불화에 대해서는 관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고 그의 일을 행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3. 그는 모든 일에 양심적이었다.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진실한 일이니"(5절), 즉 "너는 마치 진실한 종과 같이 그것을 행했고, 주 그리스도로부터 크나큰 위안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이러한 진실한 사람은 쉽게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어떠한 놀라운 칭찬이 주어진대도 그것은 우리의 교만을 북돋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계속 격려하며 고무시키기 위한 것이다.

 

Ⅲ. 좋은 소문으로 인한 사도의 기쁨과 소문의 근거.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3절).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와 기독교 신앙의 법도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진리를 소유한 가장 명확한 증거는 "진리 안에 행함이다. " 선량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영혼이 잘됨을 보고 크게 즐거워할 것이다. "내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사람의 명성을 기뻐한다. 자녀들의 진실한 신앙과 열매를 보는 것이 선량한 부모에게 기쁨이 되듯이 또한 선한 목자에게 기쁨이 된다.

 

Ⅳ. 사도는 함께 있는 형제들을 보다 좋은 대접을 하도록 그의 친구에게 지시하였다.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 그 당시에는 여행 중인 전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의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이 하나의 통례이었던 것 같다(고전 16:6). 길을 안내해 주는 것은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요, 적당한 동행자를 만나는 것은 여행자들에게 기쁨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 합당하게 또한 가치있게 행해진 일이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 일이 무엇임을 생각해야 한다. "도량이 큰마음은 위대한 것을 창안해 낸다. "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영광을 위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평범한 생활규칙으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선의적인 규범에 이르기까지 성실히 행하도록 힘써야 한다.

 

Ⅴ. 이러한 것을 권고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1.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7절). 이들은 전도자로서 복음을 전하고 기독교를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사도요한에 의하여 파송을 받은 자들일 것이다. 즉 그들은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나아갔다. 이것은 놀라운 사명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전도자의 최상의 목적이며, 그의 이름을 위하여 사람들을 모으고 세우는 일에도 이것이 기본적인 조건과 공기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어디에 가든지 값없이 나누어 줄 복음을 들고 나아간다. 즉 그들은"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않는다. " 이들은 많은 영광을 받을 만한 자들이다. 한편 복음 전파를 위해 공헌하고 있을지라도 직접 복음을 전파하도록 부름을 받지 않은 자들이 있다.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어지는 자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져야 한다. 복음을 아는 자들은 그 복음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와 열심있는 성도들은 이방 나라에 거룩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적극 협조해야만 한다. 성도들은 각기 자기의 역량에 따라 이 일을 조력해야 한다. 보수없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경제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 마땅히 도움을 입어야 한다.

 

2.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또한 참된 신앙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8절). 그리스도인의 성직 수임이 참된 종교를 이룩한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증거되었다. 참된 종교 안에서 진실되고 또한 참된 종교에 대해 진실한 자들은 세계에 그 참된 종교의 전파를 위해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며 힘 쓸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진리는 도움받고 협조를 얻게 된다. 복음을 친히 전하지 못하는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영접하며 지지하고 도우며 후원할 수 있다.

 

 

 

 

 

디오드레베의 성품 (요한 3서 1:9-11)

 

 

Ⅰ. 평신도를 보다 관대하지도 못하고 포용력도 없으며 친절하지도 못한 별개의 표본과 개성으로 나타난 전도자가 교회 안에 있다. 전도자들은 때로 아름답게 빛나고 또한 훌륭하게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전도자는 아래와 같은 면모로 드러나 있다.

 

1. 그의 이름. 이방인의 이름, 즉 디오드레베인데 불신자들의 정신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2. 그의 성품과 정신. 교만과 욕심으로 차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항상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로 인한 격동은 자주 일어나 추태를 부린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며 지배와 상석을 즐기는 것은 전도자의 좋지 않은 성품이다.

 

3. 그는 사도의 권위와 서신과 친구들을 경멸하였다.

 

(1) 사도의 권위를 경멸하였다. 즉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함으로" 사도의 사명에 배역한 행위를 말함이다. 경멸함이 그토록 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욕심은 그 욕심을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적의를 조장할 따름이다. 마음 안에 있는 적의와 악의는 스스로 입술을 통해 그 돌출구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입은 서로를 감시해야 하

 

(2) 사도의 서신을 경멸하였다. 형제들을 권면하기 위하여 "내가 두어자를 교회에 썼으나" 디오드레베는 우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우리들의 서신이나 증거를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아마도 이 교회는 가이오가 있었던 교회인 것 같다. 복음적인 교회는 편지를 주고받는 교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적인 교회들은 그들에게 들어오기를 바라는 낯선 사람들을 접대하고 신임했을 것이다. 사도는 이러한 형제들에게 서신을 보냈으나 사도적 권위와 서신이 욕망에 차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3) 사도가 천거한 친구들을 경멸하였다. "형제들을 접대하지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 (첫째절). 유대인과 이방 그리스도인간에 어떤 상이점이나 혹은 상이한 관습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그 중 어떤 점을 용납할 것인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목회자는 절대로 자기 중심적이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오만해서도 안 된다. 선을 스스로 행치 않는 일은 나쁜 일이나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을 방해하는 일은 더욱 나쁘다. 교회의 권력과 책망은 종종 남용된다. 만족과 기쁨으로 영접되어야 할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사귀사 하늘나라 백성으로 삼게 될 형제들을 교회에서 내어쫓는 자들에게 무서운 형벌이 있으리라!

 

 

4. 이 교만한 권세 남용자에 대한 사도의 책망.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고(10절) 그들을 책하리라." 이것은 사도적 권위를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도는 디오드레베를 호출하여 감독 주관하의 재판에 임하려는 의도는 아닌 듯 싶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관계된 이 사건을 받아 심리하려고 하였다. 교회의 지배와 횡포의 행위는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하교회의 능력의 원천이 되시는 자에게 순응하는 것만이 더욱 바람직한 일이다.

 

Ⅱ. 여기에 각이한 충고와 절대로 어떠한 죄악도 표방하지 말라는 권고가 있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11절). 불신자의 이러한 극심한 죄악을 모방하지 말라. 오직 선과 지혜, 순결, 화평과 사랑을 추구하라. 주의와 권면은 이미 선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주어지는 주의와 권면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 이 주의와 권고에 각기 하나의 이유가 첨부되고 있다.

 

1. 권면의 이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이는 기쁨으로 자연스럽고도 진실하게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기 때문이다. 선행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의 증거가 된다.

 

2. 주의의 이유. "악한 것을 본받지 말라." (마음의 경향의 악을 추구하므로)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며,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뜻에 둔감하기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해 헛되이 난 체하며 교만을 부린다.

 

 

 

 

 

 

 

가이오에 대한 문안과 축복 (요한 3서 1:1,2)

 

 

Ⅰ. 본서를 기록해 보낸 경건한 저자는 그의 이름을 알리지 않고 일반적인 신분으로 본서를 보내고 있다. 즉 연조와 사명에 의해 주어진 "장로"의 신분만을 밝혀 주고 있다. 그에 대한 존경과 경의는 그의 연조와 사명에 의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장로가 사도 요한이라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의 문체와 사상이 본서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로 말미암아 형제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가이오는 이 편지가 누구에게서 왔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사도는 보다 화려한 수많은 명칭을 나열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자의 직임을 돋보이게 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사도는 자신을 장로라 소개함으로써 교회의 보다 평범한 사역자의 위치에 자신을 가져다 놓았다. 아마도 훌륭한 사역자들과 사도들의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경건한 생존자는 보다 평범한 신분, "장로"라는 신분으로 전도 사업을 계속 후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전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벧전 5:1)라고 한 말씀 중에서 알 수 있다.

 

Ⅱ, 우리는 또한 서신을 통해 문안과 함께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을 본다. 요한 2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에게 또한 본서는 선택함을 입은 한 신자에게 편지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다.

 

1. 그의 이름은 가이오라고 나타나 있다. 이 이름은 다른 곳에도 나타나 있는데 특별히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또한 그는 바울을 친절히 대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롬 16:23). 만일 이 사람이 그가 아니라면 그의 이름이나 신분 또는 성품으로 보아 그의 형이었을 것이다.

 

2. 가이오는 그에 대한 사도의 친절한 표현으로 소개되고 있다.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1절). 사랑스런 표현은 사랑의 촛불을 켜게 된다. 여기에서 사도의 사랑의 진실성과 사랑의 믿음을 찾아보게 된다. 사랑의 진실성은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란 말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랑의 믿음은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 안에 거하고 행함과 같이 진리로 말미암아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란 말에서 나타나고 있다. 진리로 말미암아 친구를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이요 신앙적이며 복음적인 사랑이다.

 

Ⅲ.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자"란 애정어린 호칭으로써 기원을 포함한 인사와 문안을 볼 수 있다. 사랑을 받은 사역자는 필히 그 사랑을 또한 자신이 보여 주어야 한다.

 

1. 여기에 동료의 영혼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도의 경건한 기원이 있다. 영혼의 잘됨은 하늘나라에서 비롯되는 가장 큰 축복이다. 이것은 중생과 영적인 삶에 대한 내적인 자원이 된다. 이런 축복의 증가와 영적인 보화가 더해감에 따라 영혼은 영광의 하늘나라로 이르게 된다.

 

2. 동료에 대한 경건한 기원은 그의 영혼이 잘되며 아울러 몸의 강건함을 바라는 것이다. 은혜와 강건함은 함께 풍성하게 하는 것들이다. 은혜는 강건함을 증진하며 강건함은 은혜를 동반한다. 부요한 영혼이 때로 연약한 육체 안에 깃들이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곧 은혜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함으로써 주어진다. 그러나 건전한 영혼을 소유한 자들이 또한 건강한 육체도 지닐 수 있도록 기원하고 또한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은혜는 넓은 활동의 영역 속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친과 본서의 결론 (요한 3서 1:12-15)

 

Ⅰ. 여기에는 다른 곳에서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데메드리오란 사람의 인품에 대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의 이름이 돋보이고 있다. 복음서나 교회들 안에 나타나 있는 이름과 좋은 평판은 다른 후손들의 이름이나 평판보다 더욱 훌륭한 것이다. 데메드리오의 성품은 사도 요한의 칭찬을 받을 만하였다. 사도 요한의 칭찬은 아래와 같다.

 

1. 일반적인 면에서. 데메드리오는 뭇사람들로부터 좋은 증거를 얻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러나 절대적인 성실과 선의는 절대적인 찬사를 얻게 되는 지름길이 된다.

 

2. 칭찬을 받을 만한 데메드리오. "그는 진리에게도 증거를 받았다"(12절). 어떤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증거를 받을 수도 있으나, 진리의 증거를 받기란 어렵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마음과 행실에 있어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복된 사람이다.

 

3.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찬은 사도와 그의 친구들의 증거로 말미암아 확실해졌다. 즉 "우리도 증거하노니"라는 말 가운데서 나타나고 있는데, 더구나 이는 가이오 자신이 알고 있는 바다. "너는(너와 너희 친구들은) 우리의 증거가 참된 줄을 아느니라"(12절). 아마도 이 데메드리오는 사도와 가이오가 거하고 있던 교회에 잘 알려진 사람인 것 같다. 선한 일로 훌륭한 평판을 얻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좋은 사람을 위해 찬사를 아끼지 아니할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이는 훌륭한 덕성과 선행에 대한 마땅한 본분이기 때문이다. 칭찬하는 자들이 그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을 때, 칭찬은 칭찬을 받는 사람에게 참으로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이다.

 

Ⅱ. 본서의 결론 부분에서 다음 몇 가지를 찾아 볼 수 있다.

 

1. 개인적인 면담에 대한 몇 가지 언급.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13,14절), 편지보다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간단한 개인적 면담은 많은 글을 쓰는데 필요한 시간과 수고와 부담을 덜 수 있다. 그리고 선량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만나기를 기뻐한다.

 

2. 축복.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저희에게 있기를 축원한다. 착하고 복된 사람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3. 가이오에게 보내는 공적인 문안.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15절).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하는 자는 모든 이들

의 문안을 받을 만하다. 이 귀한 사람들은 가이오에게 뿐만 아니라 복음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정을 나타낸다.

 

4. 가이오의 교회의 성도와 이웃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도의 특별 문안.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개인적으로 문안을 받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사랑과 또한 겸손을 배워야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몸된 교회에서는 가장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문안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 함께 거하기를 바라는 땅 위의 성도들은 피차간 문안과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품안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친구들은 그의 마음속에 잊지 아니하고 늘 그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