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고 (요한 1서 2:18,19)
Ⅰ. 여기에서 "때"에 대한 예시가 나타나 있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18절). 우리들은 여기에서 사도 요한이 다시 한번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항상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신앙에 있어서 어린 상태에 있는 아이들아!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라고 타이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경고를 주기 위한 호칭이 될 수 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곧 교회나 국가에 있어서 유대인들의 모든 무리는 마지막을 재촉하고 있다. 모세의 제도와 교훈은 사라져가는 중이다. 또한 다니엘의 때(weeks)는 끝나 가고 있으며 히브리인들의 성읍과 성소의 멸망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그의 종말은 홍수에 밀려남 같을 것이며, 또한 전쟁이 있으리니 크게 황폐할 것이다"(단 9:26). 제자들이 때의 종말에 대해 경고하며 예언적인 종국을 설명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Ⅱ. 이 마지막 때의 징조는 무엇인가? 이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이다(18절).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과 나라를 대적한다. 적그리스도가 용납되어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섭리 중에 하나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이를 경우 제자들이 적 그리스도를 식별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목회자들은 이스라엘 집을 지키는 파수군들이다. 이러한 적 그리스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타격이나 손실이 될 수 없다.
1. 적 그리스도의 도래는 이미 예언된 바로 "적 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바와 같다"(18절).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지속적이며 숙명적인 적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드러났다(살후 2:8-10). 그러므로 이에 대한 많은 전조와 증거가 나타났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지금 악한 일을 이루고 있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다.
2. 적 그리스도는 마지막 때의 징조로써 이미 예언된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로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이러한 것들은 유대인의 나라와 민족 그리고 종교의 몰락에 대한 전조를 나타낸 것이었다. "이로써 마지막 때가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18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미혹자들이 있음을 이미 알았으므로 이러한 예견으로 모든 미혹자를 대항해 싸울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강화하자.
Ⅲ. 미혹자들 또는 적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자.
1. 좀 더 적극적인 면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한 때 사도적인 교훈을 받아들이며, 또한 이 교훈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 15장 1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우리들의 동료와 예루살렘 교회와 유대 교회로부터 나갔다"(19절). 가장 순수한 교회는 배교자와 배신자를 가지게 된다. 사도적 교훈이 이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개종시키지는 못했다.
2. 소극적인 면을 들어 생각해 보자. "그들은 우리들과 같은 자가 아니었다. 즉 그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바 건전한 교훈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 즉 머리대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못한 자였다."
(1)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고, 진실하지 못했다는 결혼을 얻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배신적인 행위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을 것이다."(19절). 만일 거룩한 진리가 그들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그 진리가 그들과 우리를 하나로 묶어 놓았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위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이로써 진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편으로부터 떠나 배교의 상태에 이른 자들은 배교 이전의 신앙이 위선적이었음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인 자들은 파괴적인 죄로부터 보호함을 받게 된다.
(2) 이와 같이 그들이 사도적인 교훈과 친교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 이유는 그들의 불성실함에 기인된다. "저희가 이런 일을 행함은(저희가 나간 것은)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다"(19절). 교회는 누가 그의 진실하고 생명적인 성원인지 아닌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교회는 내적으로 성화된 상태를 점검하게 된다. 여기에서 위선자는 드러나게 되며, 그들이 죽을죄를 짖지 아니하였다든가, 타인에 대해 귀찮은 존재나 경계를 요하는 인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진리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의 부드러운 점이나 덕스러운 점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7,
적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 (요한 1서 2:20-27)
Ⅰ. 사도 요한은 미혹자들이 성행하는 위태로운 시대에 그의 편지를 받고 있는 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즉 배교가 성행하는 이 시대에 그들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기 위해 격려하고 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20절). 여기에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1. 제자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기름으로 말미암아 부요해지는 축복을 얻게 되었다. "너희가 기름 부음을 받았느니라."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이며 그들의 이름은 이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은혜의 기름과 은혜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사와 온갖 영적인 선물로써 기름 부음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들로서 주님의 사명과 흡사한 것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성령은 불과 물이라고 비유될 수 있는 것같이, 기름으로도 비유될 수 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심은 곧 기름 부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말씀하신 이는 거룩하신 자로 이러한 축복은 거룩하신 자, 성령 혹은 두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다(계 3:7). 두 그리스도는 그의 거룩하심에 있어서 탁월하신 자다. 주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성령의 은혜를 부어 주신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이 그 자신과 같도록, 또한 그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그의 제자들에게 기름을 부으신다.
2. 기름 부음의 효과는 안약과 같다. 기름 부음은 이해의 눈을 밝혀 주며 또한 이를 강화한다.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20절).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신앙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약속되어지고 또한 부여된 것이다(요 14:26). 주 그리스도는 그의 모든 제자들을 똑같이 취급하지 않았다. 어떤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 보다 더 많은 기름 부음을 받았다. 이와 같이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리스도에 대해 진실하지 못하게 되므로 오히려 적 그리스도에게 돌아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와 영광에 반역하는 자리에 이르게 될 위험이 있다.
Ⅱ. 사도는 본서를 기록한 의도와 뜻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
1. 첫째로 부정적인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가 본서를 기록한 의도가 그들의 지식을 의심하거나 복음의 놀라운 진리에 대해 무지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다(21절). 진리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너희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할 수도 없으며 또한 위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것도 경하할 만한 것이 못된다." 믿는 형제에 관해 심사숙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들의 추측을 뒤엎을 때까지 우리는 그들을 주시해야 한다. 즉 신앙인들에 대한 정당한 신뢰는 그들의 신실성을 더하게 하며 고무시키는 결과가 된다.
2. 확신과 인정의 방법으로써 사도는 본 서신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너희가 예수 안에 진리를 앎을 인함이니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점에서든지 진리를 아는 자들은 이로써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 무엇임을 식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Rectum e stindex sui et obligui - 즉 목 바른 줄은 삐뚤어진 줄이 어떤 것임을 보여준다. 참과 거짓은 혼합되거나 함께 어울릴 수 없다. 기독교의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이로써 적 그리스도의 죄악과 미혹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강화하게 된다. 거짓말은 자연 종교나 계시 종교 어느 것에도 속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도들은 거짓을 저주한다. 그리고 그들의 교훈과는 모순됨을 폭로했다. 만일 거짓말로 진리를 전파했다면 사도들은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멸망케 하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기독교가 자연 종교와 일치하고 있음은 기독교를 높이 평가해야 할 점인데 기독교는 자연 종교의 기초가 되며 기독교의 요소와 원리를 지니고 있는 유대교와도 곧잘 일치하고 있다.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즉 사기와 협잡은 진리를 선포하는데 가장 부적합한 도리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부적합한 방법이 사용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종교의 상태가 보다 낫게 되었음을 상상해 보자. 사기와 협잡의 부적합한 방법을 사용한 결과가 우리들의 어지러운 시대에 나타나고 있다. 예로부터 이루어진 사기와 사악한 행위에 대한 탐색이 무신론과 불신앙 가운데 있는 우리의 세대에서 행해졌다. 그리고 기독교의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 보다 크게 공헌을 이룩한 사람들은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Ⅲ. 사도는 새로 일어난 미혹자들을 또 다시 소추(訴追)하며, 고발하고 있다.
1. 그들은 거짓말쟁이며, 거룩한 진리에 대해 지독한 반대자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누가 거짓말쟁이, 아니 누가 악명 높은 거짓말하는 자이겠는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닌가?" 하나님은 거짓되며 거짓말하는 자들의 아버지라고 세상에 유포된 낭설은 가장 유해하며, 오래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허위와 거짓을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완전 무결하게 증명되어진 진리는 없다. 오히려 혹자들은 진리에 반대하며, 또한 진리를 부인한다.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은 하늘과 땅 그리고 지옥에 의하여 증거 되었다.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으로 말미암아 어떤 자는 강한 미혹에 버려짐을 당한 자가 있는 것 같다.
2.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는 아버지의 증거와 증언을 거부하며,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 대해 나타낸 확증을 거부한다(22절). "즉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임을 거부한다(요 6:27).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아버지의 증거와 증언을 거부하는 자는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심을 거부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계시와 세상과 화해를 이룩하는 바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든 특별한 계시를 저버리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추론하고 있다(23절). 즉 그는 아버지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이다. 그 이유는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최선의 계시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그의 호의와 은혜 그리고 구원에 대해 무관심한 자다. 이는 "아무도 아들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나타난 대로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과 같이 양자간에는 교훈과 지식 그리고 관심사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동일한 점이 있다. 그러므로 아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기독교의 계시를 고수하는 자들은 그 위에 자연 종교에 대한 능력과 축복을 얻게 된다.
Ⅳ. 여기에서 사도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들리어진 옛 교훈을 지키라고 권고하고 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24절). 진리는 오류보다 더 오래 된 것이다. 성도들에게 맨 처음으로 주어진 그리스도께 대한 진리는 어떤 새로운 사건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받은 바 그리스도께 대한 진리는 가장 확실한 것이며 이 진리는 그들의 수고와 노력 끝에 얻어진 것으로 길이 소유하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진리는 옛 것을 변호하며 이로써 또한 권고할 수 있다. 권고는 이러한 면에서 강화되어진다.
1. 기본적인 진리와 믿음을 고수함으로써 참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1)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24절). "그리스도의 진리가 우리 안에 거함은 죄를 멀리하게 하고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를 연합하는 수단이 된다"(요 15:34). 아들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와 연합하게 하는 매개체 또 매개자가 된다. 이러한 복음의 진리에 우리들은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2) 이로써 그들은 영생의 약속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까지도, 5:11)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이다"(25절). 하나님이 그를 진실하게 따르는 자에게 이루시는 약속은 실로 위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위대한 능력과 선하심에 기인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다. 축복의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게 위대한 가치와 진리를 부여하신다. 그들이 진리 안에(진리의 빛과 능력과 그 영향권 안에) 거하게 될 때 하나님은 영생을 약속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2. 본문 기록의 목적을 말하는 바 앞에서 언급된 권고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본 서신은 미혹하는 자들을 대항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강화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26절). 그러므로 처음부터 들은 것에 거하지 아니하면 본서의 기록과 또한 모든 봉사는 헛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의 모든 서신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의미하며 열매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도다"(호 8:12).
3. 하늘로부터 받은 유익한 축복으로 그의 권고를 강조하고 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니"(27절),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들이 받아들인 바 거룩한 진리에 대한 내적인 확증을 가지고 있다. 즉 성령이 그들의 마음과 심령에 진리에 대한 내적인 확증을 나타내셨다. 주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의 심령에 계속적인 증거를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신실한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쏟아 부어 주는 은사 곧 기름 부음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교훈에 대한 하나의 징표(seal)이다. 이 징표는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며 다만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고후 1:21) 이 거룩한 성유(聖油) 또는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권유할 만한 것이다.
(1) 그것은 지속적이며 영원한 것이다. "기름이나 연고는 물과 같이 쉽게 말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27절에 있는 말씀대로 거하는 것이다. 너희 안에 확실한 것을 위해서 거룩한 조명은 지속적이며 영구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시험과 올무 그리고 미혹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기름 부음은 영원히 존속하게 된다.
(2) 기름 부음은 인간의 교훈보다 월등하다. 즉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27절). 주어진 사명이 없이는 당신에게 기름 부음으로 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기름 부음으로 당신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면 기름 부음이 우리들 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을지라도 기름 부음으로 해서 당신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27절). 당신들이 기름 부음을 받기 전에 우리들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나 우리의 가르침은 기름 부음에 족히 비교될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 권능으로 큰 일을 청하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욥 36:22) 거룩하게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은 부수적인 교훈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케 한다.
(3) 기름 부음은 명확한 진리이며, 그것이 가르치는 모든 것은 틀림없는 진리이다.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7절). 성령은 진리의 영임이 틀림없다(요 14:17). 그가 주신 교훈과 모든 가르치심은 진리 안에 있는 것이며 또는 진리에 속한 것임이 확실하다. 즉 진리의 영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현세에서 필요한 모든 것과 그리스도와 복음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지식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신다.
(4) 거룩한 기름은 보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즉 거룩한 기름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로 하여금 유혹자들과 그 유혹들로부터 보존함을 받도록 할 것이다.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7절). 기름 부음은 당신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을 인도하듯이 또한 당신을 구원할 것이며 그리스도를 반역하지 않도록 당신의 마음과 심령을 주장할 것이다. "우리에게 기름을 붓고 또한 인을 치고 우리의 심령에 순수한 성령을 부어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고후 1:21).
그리스도의 강림 (요한 1서 2:28,29)
거룩한 기름 부음 받음에 대한 축복을 언급한 다음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또는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라는 충고와 권고를 하고 있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28절). 사도는 "어린 자녀"란 친절한 칭호를 반복하고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 칭호는 작은 자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자녀"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는 사랑으로 타이르고 이성으로 뿐만 아니라 사랑스러운 표현으로 권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라 너희에 대한 사랑이 너희에게 인내를 가르치도록 우리를 강권한다. 이는 그의 인격을 말하고 있는 진리 안에와 그와 연합된 가운데 그리고 그에 대한 충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복음적인 특권은 복음적인 의무를 수반한다. 주 예수에 의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은 어떠한 반대에도 저항하여 그와 함께 살아야 할 크나큰 의무를 지닌다. 시련기에 있어서 참고 견뎌야 할 의무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관점에서 강조되어진다.
1. 이는 주의 재림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28절).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은 여기에서 당연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들은 사실이다. 그가 다시 오시게 될 때,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에 비하면 그의 탄생은 은밀한 중에 이루어졌다. 그는 태초로부터 나와 조용히 마구간에 누이셨다. 그러나 그가 다시 오실 때에는 열려진 하늘로부터 임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게 될 것이다. 모든 시험 중에도 그와 함께 거하는 자들은 그를 봄으로써 담대함과 확신,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로부터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으므로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머리를 들게 될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를 저버린 자들은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자처하고 구세주의 영광을 저버린 가운데 불신앙과 배신, 만용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를 저버림으로 소망과 기대에 반해 비겁과 위선과 모든 불의의 삶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함이다." 사도는 자기 자신도 그들의 수에 포함시키고 있다. "너희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있게 하려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들로 하여금 그가 오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m,n aivscunqwmen avpV autou/). 그가 공공연하게 나타나서 그를 저버린 모든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며, 그들을 모른다고 부인함으로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 것이며,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부끄럽게 할 것임을 선포하면서, 그들을 어둠과 마귀와 끝없는 절망의 구렁이로 내던질 것이다(막 8:38). 사도는 동일한 충고와 권고를 계속하고 있다.
2. 시련기에 있어서 참고 견뎌야 할 의무는 그리스도와 그에 대한 신앙을 고수하고 있는 자들에게 주어질 권위와 특권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29절). 의를 행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에게 주시는 또 다른 명성을 얻게 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법과 사랑에 거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그에게 충성하며 복종하는 생활에 이르기 때문이다.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역사하고 실천하며, 의와 복음의 능력을 행하여야 한다. 이렇게 행하는 자는 "그에게서 난 자임이 틀림없다." 그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었고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주 그리스도가 의로우신다는 것(그의 본질과 성품에 있어서 우리를 성결케 하시는 자요 우리에게 성결함이 되시는 의로우심)을 안 이상 믿음의 행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는 이것이 당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관심이 되는 그리스도로 난 자임을 알게 된다. 새로운 영적인 성품은 주 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다. 시련기에 있어서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계속 힘쓰는 자는 위에 계신 주 그리스도로부터 난 자임을 나타내는 좋은 확증을 얻게 된다. 주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아버지시다. 그에게서 난다는 것은 크나큰 특권과 권위가 아닐 수 없다. 그에게서 난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 말씀은 3장의 문맥과 연결이 되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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