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 이야기(1)- 창세기
1. 하나님의 창조
“태초에 하나님이 그 하늘과 그 땅을 창조하셨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하샤마임 왜 에트 하아레츠-창1.1)
성경의 첫 말씀은, 위대한 창조선언이자 창조주 하나님을 나타내는 최고의 신앙고백이다. 구약성경은 태초에(베레쉬트)라는 말로 시작한다. 첫 단어 베트는 유한한 인간과 영원한 하나님 세계를 구별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이 히브리어 베트(ב) 형상을 통해 인간의 시공간의 세계를 열어 주어서,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와 질서를 이해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데서 부터 신앙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고 자연계를 창조하지 않았다는 이론(진화론)을 말한다. 아무리 자연과학이 발전해도 하나님의 창조를 거부하는 이론은 무익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창조 안에서 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발전시키고 그런 과학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스티브 호킹 같은 석학이 빅뱅설을 얘기하며 창조론을 거부하고 있으니 문제이다. 아직도 현대과학이 올바른 신학이론에 바탕을 둔 과학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설득력있는 창조 과학이론이 보다 더 많이 요구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는 창세기 1장에서 말씀으로 이뤄진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고 말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는,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생명의 언어를 발하며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지, 죽음의 언어 · 어둠의 언어를 사용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며, 낮과 저녁을 창조하신다. 그리고 창공 위의 물과 창공 아래의 물을 나누시고 하늘 아래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게 하고 뭍(육지)이 드러나게 했다. 분리의 창조를 보여 주신것이다. 거룩과 세속, 안식일과 평일을 구별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이렇듯 말씀의 창조, 구별의 창조, 하나님 형상으로 인간 창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창조 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닮도록 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2. 아담과 하와의 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담과 하와 사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창세기는 원인론(Aetiology)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쓰여졌다. 왜 인류가 죄를 짓게 되었는가, 남자가 왜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해야 하는가, 여자가 왜 잉태하는 고통과 산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가, 뱀이 배로 다니며 평생을 흙을 먹어야 하는가 등등. 그 원인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고, 그 죄가 인류의 문제를 야기시켰으며 낙원에서 쫓겨나는 결과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죄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지은 것으로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는 이 원죄(Origin Sin)를 물려받았고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롬5.9-12) 인류의 모든 문제는 죄(罪)에서 근원하는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언약 관계가 파기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닌데 금령을 어기면서 관계 파괴가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 아담과 하와와의 관계, 여자와 뱀과의 관계가 어긋난 것이다.
원시복음(Proto-Evangelium)에서 그 사실을 말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예수가 뱀(사탄)의 후손을 상하게 할 것이다. 오직 예수로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예언한 것이다.
죄는 간교한 뱀을 통해 시작되었다. 뱀이 여자(하와)를 꾄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3.3-5).
죄의 속성은 거짓, 탐스런 유혹, 부끄러워함, 은닉성 등을 보여준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밝아진다는 교만성이 내포된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게 된다(약1.15). 죄는 결국 사망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세기 3장 본문에서 죄를 문책하신다. 먼저 아담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 아담은 하와에게 전가하고, 하와는 뱀에게 핑계를 된다. 하나님은 거꾸로 죄의 대한 벌을 내린다. 먼저 뱀에게 심판 선고를 내리고 하와는 잉태의 벌을, 아담에게는 노동의 땀을 댓가로 지불하게 하는 벌을 내린다. 죄와 회개에 이은, 용서의 표징으로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창3.21). 아담의 죄는 인류의 죄 문제, 죄의 속성과 댓가 등을 알게 된다. 결국 구속사의 관점에서 구원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의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롬5.17).
3. 노아 홍수
원역사(原歷史) 이야기는 창세기 1-11장 부분이다. 이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노아홍수와 방주 이야기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원역사(Origin History)에서 다루고 있다. 그 중에 노아 이야기는, 인류의 구원은 소수의 사람 만 임을 보여주며 천국의 문은 좁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창6.1-9.29). 노아의 홍수 심판 이야기는, 인간의 죄가 관영하였음을 보고 인간을 지은 것을 하나님이 한탄하면서 시작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창6.11).
죄의 시작은 창세기 6장1절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다고 지적하며 그들이 육신이 됨을 문제 삼는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창6.3).
그들이 영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후회하시는 모습이다. 그 후에 의인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을 물로 쓸어버리겠다고 한다.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7.4).
많은 사람들 중에 노아와 그의 부인, 셈, 함, 야벳 아들과 그 며느리들 등 가족 여덟 만이 살고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물에 잠기는 불행이 있게 된다(창7.21-23). 물이 백 오십 일 간 땅에 넘치게 된다. 그 후 비둘기를 날려 물이 바람에 의해 마른 것을 보고 아라랏 산에서 내려온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새 언약을 맺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무지개(케쉐트) 언약 증표를 준다. 이 무지개 언약은 영원한 언약(브리트 올람)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보여준다. 무지개는 다시는 물 화살(케세트)을 내리지 않겠다는 상징으로, 화살을 거꾸로 뒤집는 모양으로 보인다. 화살(케세트)과 무지개(케쉐트)는 같은 말로서, 언어 유희(language game)로 강한 이미지를 준다.
노아를 통한 새 인류의 시작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언약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성취로 이뤄진다. 다시 말해 노아 홍수를 통해 인류의 종말, 말세 심판을 보게 된다. 하나님 심판이 가까웠다. 우리는 종말이 다가옴을 알고 있다.
물의 심판이 아닌 불의 심판이 도래할 것이고 인류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이 유황불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 우리는 새 방주(테바),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도록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방주(테바)를 지어,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주의 신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4. 아브라함 언약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19)
구약 성경의 주제 중 언약은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신학적 주제이다. 아브라함, 노아, 모세, 다윗, 예레미야 등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신약 성경으로 이어진다. 즉 예수의 새 언약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맥락이다. 이 구약 언약은 신약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창세기 15장, 17장에 두 번 나온다. 창세기 15장 아브라함 언약에서는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다메섹 엘리에셀이 아니라, 이삭이라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15:4). 그를 이끌고 나가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후손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창15:9-10).
이 본문은 고대 세계의 계약 체결의식을 보여준다. 고대 근동 사회에는 동물 신체를 둘로 쪼개서 계약 위반시 위반 당사자가 이렇게 낭자하게 피를 흘리게 될 것처럼, 비참한 결과를 가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꼭 계약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 아브라함과 여호와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장면은 특이하다. 과거 계약 당사자들이 동물 사체를 지나가는 풍습이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깊은 잠(타데마)에 든 다음, 타는 횃불(신神현현, Theophany)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감으로 언약을 체결한다(17절). 이 언약에서 바빌론 포로에 대한 예언을 보여준다(13-14절). 또한 구약세계에서 후손들이 살 삶의 자리, 애굽강에서 유프라데까지 후손에게 주겠다고 그 기업을 약속한다.
창세기 17장은 제사장문서(P) 언약이다. 할례 언약으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는다. 아브람이 구십 구세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영원한 언약(베리트 올람)을 맺는다(창17:7).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10-11절). 이 계약의 특징은 할례와 영원한 언약,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비)으로 개명, 사래에서 사라로 개명(열국의 어미), 이삭의 탄생(19절), 이삭의 후손과 영원한 언약, 이스마엘의 십이 방백, 이스마엘 할례 등이다.
할례가 언약의 표징(11)이 되는 것은 신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창세기 17장은 바빌론 포로의 신학적 의미가 담겨졌다고 본다. 바빌론 포로시대 이스라엘은 혼돈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할례로 가져야 했다. 바빌론의 마르둑 신상과 바벨탑, 지구라트의 웅대한 공간의 종교 앞에서 이스라엘은 시간의 종교, 안식일 신앙을 강조한 것이다. 또 신체에 어린 자녀들이 할례(포경수술, circumcision)받아 몸에 언약의 표징을 가짐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인식하였다. 비록 포로지에서 나라 없는 백성으로 정체성 없이 유랑하는 백성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영원한 언약 백성으로서 살고자 하였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과 영원한 언약을 맺은 백성이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포로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한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히브리서11:11-12)
5. 야곱의 축복
꿈의 계보 : 벧엘의 꿈이 요셉의 꿈으로 이어져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8)
야곱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축복 때문에 형 에서의 낯을 피해 멀리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20년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제 고향으로 향하는 야곱이다. 여기부터 야곱의 인생 후반전이라고 볼 수 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 40년 세월을 보내고 80세에 바로의 궁전에 가서 여호와의 백성을 보내달라고 말할 때, 그의 공생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 시기가 모세에게는 본격적인 인생 절정기라고 볼 수 있다. 꽃이 피고 마지막 지는 때, 나무가 열매를 맺고 낙엽이 되고 떨어지는 것처럼, 야곱은 그 인생 절정을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은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겨루는 장면이다. 야곱은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야곱은 이 이름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된다. 열 두 지파(열 두 아들)가 형성되고 나라의 골격을 이루는 조상이 되니, 그의 믿음과 축복권이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그 어른이 된 것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야곱은 축복의 사람, 축복의 사모자, 열정적 축복인이다. 형 에서와 삼촌 라반 사이에 그렇게 축복을 쟁취했고, 지금 천사와도 축복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야곱은 에서와 사백 인을 맞이하여 예물을 먼저 드려 환심을 사고, 기쁜 해후를 한 후 이별을 하고 세일로 간다(창33:14). 그러나 야곱은 세겜에서 불행하게도 딸 디나의 강간 사건을 당하고 화난 야곱 아들들이 할례를 미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여서 곤경에 빠진다.
그 후 벧엘로 올라가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한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창35:8)와 베냐민과 요셉의 모친 라헬을 장사지내고(창35:19),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눈 감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창35:29).
야곱은 고향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 더 많은 슬픔과 고난을 겪고 아버지와 아내를 장사한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여 편애한 결과, 그 아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갖는다(창37:3-4).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꿈의 연속, 꿈의 족보, 꿈의 세대는, 신앙 사대(四代)로 나타난다. 야곱의 벧엘의 꿈은 이제 꿈꾸는 아들 요셉을 통해 복의 민족 형성의 씨앗이 된다. 요셉의 꿈 이야기는 창세기 37-41장까지 나타나는데, 야곱의 축복 여행(창27-35)은 요셉을 통해 애굽까지 이르게 된다. 기근을 피해 대가족을 살리는 피신의 역사, 유랑의 역사를 보여준다.
결국 신앙 사대의 결실이 선교사 요셉을 배출하는 역사로 나타나고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신앙인물이 된다. 야곱은 그 중심에서 축복을 사모하는 자의 전형, 그 상징 인물이 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러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행7:12,15).
6. 요셉 비전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요셉이 다시 꿈(하롬)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창37:9)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 결론이다. 요셉은 신앙 사대의 끝으로 신앙의 명문 가문을 이루는 중요한 인물이 된다. 신앙 사대에 이르면 선교사를 배출 할 수 있는 가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요셉은 꿈의 사람으로 어렸을 때부터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 비전은 그를 평탄하게 살도록 하지 못하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게 했다. 꿈의 댓가를 톡톡하게 지불해야 했다(창37:1-39:23).
요셉이 꾼 꿈 이야기와 아버지 야곱의 편애는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사서 미디안 상인들에게 종으로 팔려가게 된다(37.18-36).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37:19-20)
꿈꾸는 자(바알 하 할로모트 하라제). 이 꿈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꿈 이야기로 인해 시련을 겪게 된다. 하나님의 꿈인가 시험하는 형들의 도전은 결국 형제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애굽에 팔려 보디발 시위대장의 종살이 생활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형통하게 되어 가정 총무(와이사레)가 된다. 하지만 또 거기서 꿈의 시련을 받아, 보디발 주인의 아내 유혹을 받는 어려움을 당한다(39:7-23).
꿈쟁이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술 맡은자와 떡 굽는자의 꿈을 해몽해주어 한 사람은 복직되고, 한 사람은 죽게 되는 꿈을 해석해 준다(40.1-23). 그 후 바로 왕이 꿈을 꾸게 되고 일곱 암소와 일곱 이삭 꿈을 꾸지만 애굽 전국에 아무도 그 꿈을 해몽하지 못한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 때야 자신이 복직되었던 꿈을 생각하고 왕에게 추천하여 꿈 전문가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해몽한다.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다.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41.25).
7년 풍년, 7년 흉년의 문제를 풀 사람은 그 꿈을 푼 요셉임을 분명했다. “왕이시여, 오일조(1/5)세를 풍년 때 거둬 각성에 보관하여 흉년 때 임할 재앙을 예비하시오!” 그러자 바로가 감탄하며 그 신하들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41:38)
애굽 전국의 총리가 된 삼십세 요셉은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고 두 아들을 낳는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갖고 흉년을 맞게 된다. 우리의 인생 경영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갖게 된다. 7년 풍년, 7년 흉년이라는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비전을 볼 수 있는 것은 믿음과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이 기근은 온 세상에 퍼졌고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으로 곡식을 구하러 가게 된다(42:1-5). 요셉은 형들이 올 것을 미리 꿈을 통해 알았고 형들을 정탐꾼(메라겔림)으로 몰게 된다(42:9). 지혜로운 요셉은 형제 상봉과 가족 구원을 염두에 두고 해 달 열두 별들이 절하는 꿈, 열두 벼집단(곡식단)들이 절하는 꿈을 성취할 때임을 알았다.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탐이 아니요 독실한 자임을 내가 알고 너희 형제를 너희에게 돌리리니 너희가 이 나라에서 무역하리라 하더이다 하고”(창42.34)
드디어 친 형제 베냐민을 보자 눈물을 흘리는 요셉,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요셉은 자신이 동생임을, 우리들이 형제들임을 알리고 방성대곡한다. 형제들과 화해하고 아버지 야곱과의 상봉은, 하나님 꿈의 결과였다. 반드시 꿈은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45:28).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11:22)
7. 요셉의 완성
창세기의 완성, 족장사의 완성, 비전의 완성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50:20)
인생의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 야곱의 노년과 죽음, 유언과 축복의 장면이 창46-50장에 나온다. 창세기 결론부에서 요셉 스토리는 한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신앙 사대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 어떻게 선택되는지 보여준다.
신앙 족장들은 하나님의 꿈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큰 그림을 그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던 신앙인이다. 아브라함은 큰 비전을 가졌고 이삭은 그 비전을 완성하는 인격과 품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야곱은 축복을 쟁취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국부(國父) 비전을 가진 거목이다. 요셉은 세계적인 인물로 선교사의 전형이 된 족장들의 완성 인물로 구원자가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기초를 이루는 토대를 제공했다.
창세기의 완성, 결론이자 신앙 사대의 걸쭉한 인물, 꿈꾸는 자 요셉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의 근원이 시작되는 신앙 아버지가 된다. 꿈의 완성자, 애굽의 국무총리, 신앙의 인물로서 야곱의 꿈과 신앙이 보다 넓은 의미에서 하나가 되는 차원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3).
야곱에게 한 약속이 요셉을 통하여 이뤄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칠십 명 가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 살면서 장정만 60만 명의 큰 백성을 이뤄 출애굽하게 된다(출12.27,37,41) . 60만 명(케세쉬 메오트 엘레프, 6×100×1000). 이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은 야곱의 대가족이 고센 땅에 가서 본업인 목축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민족이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는 지혜를 보여준다(창46:28-47:26). 안전하고 평안하게 여러 세대를 생존할 수 있게 아버지 야곱의 가족들이 거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정치적 바람을 타지 않도록 그는 지혜롭게 비전의 사람처럼 이스라엘 민족 형성의 선구적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이어 아버지 유언과 죽음, 장례식을 치른다(창47:28-31). 이전처럼 죽기 전 축복이 에브라임에게 이어지는 자녀 축복권과 아버지 기도를 받고 야곱이 12자녀들에게 축복 예언을 함으로 그의 인생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창48:8-49:27)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49:28).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에브라임으로 이어지는 신앙 열조의 영적 가계는 창세기 족장사(창12-50장)의 큰 맥으로 표출되었고 요셉 이야기로 대단원을 맺는다. 요셉 아버지 야곱의 장례식 이야기로 결론 맺으며 형제 화해 장면으로 감동을 준다. 아버지 사망이후 형제간 갈등은 심화될 수 있는데 요셉은 가족사의 모든 문제를 구속사의 입장에서 보고 대 화해를 선포한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50:21)
요셉의 결론은 가족 간 화해, 평화, 화목이어야 함을 가르쳐준다. 요셉은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늘 꿈속에서 이상적인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과 공동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요셉은 창세기의 완성, 족장사의 완성, 비전의 완성자로서 멋있는 삶을 보여준다.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행7:14,18)
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2) - 출애굽기
1. 히브리 산파의 믿음
출애굽기의 서론, 하나님 경외와 그 신앙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은 출애굽 신앙이다.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결정적인 사건(Crucial Event)이었다. 구약의 중심은 바로 이 출애굽 사건이며 그 중심 신앙은 출애굽의 신앙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출애굽기 서론은 히브리 산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즉, 출애굽의 대서사시, 그 서론에 히브리 산파의 하나님 경외가 있다는 것은 출애굽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그 동력이 하나님 경외와 그 신앙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야레우)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1:21)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였다’는 말은 ‘와이야스 라헴 바팀’(그들의 집을 세웠다, 만들었다)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세웠다는 말을 의역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였다(출1:7). 이스라엘 백성이 강해지면서 애굽과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나타나 두려워한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출1:10) 애굽 땅에서 해방되어 출애굽 할까(왜알라), 두려워하는 모습이 여기서부터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하였다(출1:12).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출1:13-14).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을 심하게 함을 볼 수 있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데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운 생활을 하게 됨을 알게 된다.
더욱이 애굽 왕의 계획은 악하여 유아 살해 정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키고 씨를 없애려는 의도를 가진다.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이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유아 살해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출1:15-22). 하지만 출애굽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애굽 왕의 계획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그 역사 앞에 무력화 되는 것이다.
히브리 산파의 경외심과 그들의 믿음을 꺾을 수 없음을 본다(출1:21). 히브리 산파의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에 대표적인 인물로 나타나고 출애굽 사건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임을 서론에서 나타내준다. 바로가 결국 히브리 산파를 통한 유아 살해정책 명령이 불발로 그치자 모든 애굽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출1:22). 애굽 땅에서는 히브리인 남아들이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태어난 것이다(출2:1-6).
모세는 예수의 전형이 된 것이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히11:23)
2. 해방, 열 가지 재앙
출애굽 열 가지 재앙 사건을 우리의 거울로 삼는 신앙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출11:1)
출애굽 해방은 이스라엘 신앙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이자 근원적 신앙이 되었다. 구약성경은 이 출애굽 사건을 재해석하고 재선포하고 있는 말씀이다. 이 출애굽 해방 사건에는 애굽과 바로의 옹고집을 꺾는 열 가지 재앙이 있었다.
이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우리가 편안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지 않을 때 동일한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이러한 동일한 사건들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우리는 출애굽기 6-11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열 가지 재앙과 출애굽 사건의 서곡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우리 신앙과 결단에 중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먼저 모세가 팔 십 세, 아론이 팔십 삼세에 전조 사건으로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을 바로에게 행한다(출7.8-13). 애굽 술사들도 이 지팡이 마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재앙의 전조(前兆)가 미미하여 보이지만 지혜로운 사람, 믿음의 사람들은 그 일을 보고 앞으로 더 큰 재앙이 닥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슬기롭게 벗어날 대안을 찾는데 대다수가 그렇지 못한 것을 본다.
드디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니 이 백성을 보내라고 전하라는 여호와 말씀(7:16).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바닷물이 피바다로 바뀌어 물이 악취가 나고 애굽 사람들이 하수 물을 마지시지 못하게 된다(7:17-25). 첫 번째 재앙이다.
두 번째 개구리 재앙과 뒤를 이어 세 번째 파리 재앙으로 파리가 천지이다. 하수에서 침상으로 침상에서 파리로, 애굽의 하늘까지 재앙이 일어난다. 애굽의 육해공 재앙이 일어난 것이다. 이 재앙들은 애굽 땅과 이스라엘 백성의 땅 사이에 구별하여 나타난다.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페두트)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출8:23)
넷째 생축에게 악질이 생기고 다섯째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여섯째 애굽 땅에 온역(다벨르)으로 총체적으로 심판한다(9:1-16).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리베카)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9:14). 마음(레브)의 병, 심리적 병이 언급된 것은 특이하다.
오늘날 정신병과 마음의 병을 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군대 귀신 들린 사람과 진배없는 것이다. 치매가 오면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매한가지인 것 같다. 동물과 사람을 쳐도 바로는 끄덕하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조직과 국가 권력이라는 것은 개인 혼자의 운명이 아니라 집단의 사활이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천재(天災) 재앙이 시작된다. 우박과 메뚜기, 흑암의 재앙이 연달아 일어난다. 일곱 번째부터 아홉 번째까지는 천재이다. 우박이 내려 애굽 사람과 경작지가 죽어버려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강퍅하여 메뚜기 재앙으로 남은 밀과 나맥을 먹어버리니 또 거짓으로 바로가 여호와에게 재앙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은 강퍅케 될 것을 알고 재앙을 거둔다(10.16-20).
그러나 해방시키지 않자 다음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이다. 캄캄한 흑암이 삼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거래, 양과 소는 나두고 떠나라(9:24). 희생제물을 가지고 떠나야 진정한 해방이라, 천재보다 더 무서운 인재(人災) 마지막 애굽의 장자, 첫 맏물, 첫 생축을 치니 애굽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게 된다(11:6). 드디어 해방, 유월절이다. 출애굽의 해방은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재앙과 더불어 일어난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히11:27)
3. 성막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성막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40.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출25:1-2, 40)
출애굽 신학의 중심은 성막 건축과 성막 제도에 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출애굽의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예배할 처소인 성막은 중요한 것이다. 성막을 지으라고 말하며 보여준 양식, 그 양식대로 지으라고 말한다.
출애굽기 25-31장은 증거궤로부터 진설병, 등잔대 기구들, 성막, 제단, 제사장 옷, 판결 흉패, 제사장 다른 옷, 제사장 직분, 매일 드릴 번제, 분향제단, 회막 봉사 속전, 놋 물두멍, 거룩한 향기름, 거룩한 향, 회막기구, 안식일, 증거판 등 언급한다. 성막에 대한 지시(출애굽기 35-40장)를 모세가 시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막 지시와 그 명령의 시행으로서 성막을 완성하는 구조는, 예언과 성취의 도식을 보여준다.
오경과 출애굽기의 중심과 결론으로서 성막 이야기는 출애굽 공동체가 예배하는 공동체였으며 하나님은 예배와 경배, 찬양받으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선민이 시내산 성산(聖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이야기가 출애굽기 19장-민수기 10:10 사이에 나온다(시내산 계시). 이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 선민 삼으시고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그 성막은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고 갱신하는 예배처소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주일 교회를 가고 매일 새벽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리 인생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성막의 구조와 단락은 출애굽기의 중심과 결론임을 보여준다. 출 19장 신현현, 출20장 십계명, 출21-23장 언약책, 출24장 계약 인준을 말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32장 금송아지상 사건이 나오면서 첫 번째 언약이 파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면서 언약 공동체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백성이 계속 성결을 유지하면서 긴장 가운데 살며 거룩 공동체를 보존해야 함을 가르쳐준다. 출애굽기 19장부터 레위기 26장 까지 이야기를 통해 언약(체결된 언약)-조항(십계명, 언약법전, 성막)-실패(금송아지), 언약(갱신된 언약)-조항(제사장 법전)-실패(수염소 우상)-조항(성결법전)-언약(갱신된 언약)구조를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신앙과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법이 주어지면 우리가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의 법이 폐기되고 다시 갱신되는 과정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를 유랑한다. 그들은 출애굽하면서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진행하고 법궤와 성막을 중심으로 이동하였다. 법궤를 보관하는 성막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심이고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던 것이다.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 결론 부는 성막, 회막을 세우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출40:2-3, 34, 38)
이 출애굽기 결론, 오경의 중심은 성막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회막(오헬 모헤드)은 언약궤와 하나님 임재가 있는 곳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이 거하시는 모습을 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번제와 화목제, 소제와 속건제, 속죄제 예배를 드리는 곳이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라”(히13:16)
창세기 궁금증 30가지
Q 1
태초의 창조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고, 맨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셨는데, 이는 무얼 뜻할까요? (1:27)
A 1
그 말은 육체적인 면을 가리키지 않고, 영적인 면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양심, 인격, 도덕성, 의로움, 거룩함, 의지 등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공유되는 것들로서,
이런 영적인 속성들로 인해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상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Q 2
창세기 2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은 에덴 동산의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후에,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따먹을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 선악과 나무를 두셨을까요?
A 2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자유 의지를 지닌 인격체로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조종을 받는 로봇이나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를 받는 애완 동물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주체적인 자유 의지로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순종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Q 3
창세기 2장 20절에서 2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든 후에, 그녀를 아담에게 데리고 옵니다.
이는 인류 최초의 결혼인데, 그러면 남녀의 ‘결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A 3
세 가지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부모의 영향력에서 독립하여 주체적인 인격체로 살아가는 ‘독립’의 원리입니다.
둘째, 상호간의 지배나 예속이 아니라 동등한 두 인격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연합’의 원리입니다.
셋째, 남자와 여자라는 두 인격이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는 ‘합일’의 원리입니다.
Q 4
창세기 3장 1절에서 6절을 보면, 태초의 에덴 동산에서 뱀이 등장합니다.
그 뱀은 혼자 있는 하와에게 다가가서 거짓말로 여자를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에덴 동산에서 여자를 유혹한 이 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A 4
그 뱀의 정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땅으로 내어쫓긴 ‘사탄’입니다.
사탄은 창조의 면류관인 사람을 타락시키려고,
영특한 뱀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여자를 유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2장 9절과 20장 2절을 보면, 사탄을 ‘옛 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Q 5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죄를 지은 하와에게 저주를 내릴 때,
장차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A 5
장차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메시야 예수’를 가리킵니다.
사람의 타락 이후, 사탄과 여인의 후손은 끊임없는 투쟁 관계에 있는 원수로서,
사탄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써 그의 발꿈치를 잠깐 상하게 할 것이지만,
예수는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 영원히 승리하실 것입니다.
Q 6
창세기 4장 4절과 5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기꺼이 받아들이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A 6
각자가 드린 제물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직업에 따라 제물을 선택했고, 후일의 모세 율법에 의하면 모두 합법적인 제물입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을 보면, 둘의 차이점은 ‘믿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은 받아들이셨고, 믿음 없이 형식적으로 드린 가인의 제물은 거부하셨습니다.
Q 7
창세기 6장 6절을 보면,
하나님은 대홍수 이전 노아 시대 사람들의 심각한 타락상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자신이 하신 일에 대해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시는 것일까요?
A 7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탄이나 근심은 실수나 후회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에 대하여 가지시는 하나님의 실망과
안타까운 심정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수사학적으로 묘사한 말입니다.
Q 8
창세기 9장 11절은,
대홍수 이후에 방주 밖으로 나온 노아와 더불어 하나님이 언약을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홍수가 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습니다.
왜 노아 시대 이후에도 큰 홍수로 인해 사람들이 죽는 것일까요?
A 8
하나님의 약속은
노아 시대처럼 지구 전체를 휩쓰는 전면적인 대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국지적인 큰 홍수는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습니다.
Q 9
오늘날처럼 인류가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인류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이후의 일입니다.
창세기 11장 1절을 보면, 바벨탑 사건 이전에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이며 말이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인류의 초창기에 사용된 하나의 언어는 무엇일까요?
A 9
그것이 무슨 언어인지 구체적으로 알 길은 없습니다.
각 종족마다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을지라도,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이해되었던 공통 언어가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Q 10
창세기 12장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본토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즉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아브라함이 땅의 모든 족속들에게 복이 되는 것일까요?
A 10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좇아 이 땅에 '메시야 예수'를 보내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누구든지 메시야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된 자들은 구원의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Q 11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왜 아브람은 자신의 아내를 애굽 사람들에게 '누이'라고 소개하기를 원했을까요?
A 11
당시 중근동의 악한 풍습상, 여행자들에게서 아내를 빼앗고 남편을 죽이는 일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브람의 아내는 아름다웠기에 그럴 가능성이 더욱 높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름대로 목숨을 위해 대비책을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에 근거한 세속적인 처세로서, 아내를 궁지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기대했어야 옳았습니다.
Q 12
창세기 15장 10절에서,
왜 아브람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희생 짐승의 중간을 반으로 쪼개어 마주 놓았을까요?
A 12
그것은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상호간에 계약을 체결할 때 일반적으로 시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
어떤 계약을 맺는 쌍방은 희생 짐승을 잡은 뒤에 그것의 고기를 쪼개 양편으로 벌려 놓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그것은 만일 쌍방 중에 누구든지 계약을 깨뜨리게 되면,
쪼개진 그 짐승처럼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엄숙한 서약 행위였습니다.
Q 13
창세기 17장 5절에서,
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을까요?
A 13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름은 한 개인의 인격을 특징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에게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심으로써, 후손의 번성이라는 약속을 재확인시켰습니다.
따라서 당시 99세에 친아들조차 없었던 아브람은
오직 믿음으로 ‘아브라함’이라는 약속의 새 이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Q 14
창세기 19장 4절과 5절을 보면,
소돔 사람들은 소돔 성의 죄악을 살피러 간 천사들에게조차도 성폭행을 자행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만큼 소돔 성은 동성애자들로 차고 넘쳤습니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왜 나쁜 것일까요?
A 14
무엇보다도 동성애는 하나님의 거룩한 창조 질서를 거스리고 깨뜨리는 패역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서 ‘가증한 일’(레 18:22),
‘부끄러운 일’(롬 1:27), ‘불의한 일’(고전 6:9) 등으로 언급함으로써, 분명히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Q 15
창세기 19장 30절에서 38절을 보면,
소돔 성에서 빠져나온 롯의 딸들이 후손을 잇기 위해 아버지와 동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A 15
롯의 딸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소돔 성의 타락한 문화에 깊이 영향받았을 것입니다.
그곳은 동성애, 수간, 근친상간 등 온갖 변태적인 죄악이 판을 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의 딸들은 주변에 배필될 사람이 없고,
또 후손을 이어야한다는 명분으로 별 양심의 가책없이 술을 매개로 아버지와 동침했던 것입니다.
Q 16
창세기 21장 8절에서,
왜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베풀었을까요?
A 16
고대 사회에서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떼는 3세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그 당시에는 젖을 떼는 시기가 되기 전에 아이가 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젖을 떼는 시기까지 살았다는 것은 이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특히 이삭은 어렵게 얻은 ‘약속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는 그 날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Q 17
창세기 22장 1절에서,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했을까요?
A 17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독자 이삭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상식을 초월하는 어려운 요구를 했습니다. 엄청난 갈등을 했겠지만,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응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시험은 욥을 시험했던 사탄처럼 사람을 실족시키기 위함이 아니고,
연단과 인내를 통해 성화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Q 18
창세기 24장 2절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종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 전에,
자신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말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A 18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키기 위함입니다.
이 같은 행위는 충성스런 맹세나 절대적인 복종, 그리고 친밀하고도 엄숙한 서약을 표시하던 고대의 맹세 관습이었습니다.
이런 맹세의 행위는, 후일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의 경우에서도 나타나는데(창 47:29-31),
오늘날까지도 베드윈 족속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습니다.
Q 19
창세기 25장 23절에서,
왜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하는 것일까요?
A 19
여기서 ‘큰 자’는 쌍둥이 가운데 형인 에서를 가리키고, ‘어린 자’는 동생인 야곱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 말은, 큰 자인 형 에서의 후손 에돔이 어린 자인 동생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근거한 그분의 절대적인 주권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사회의 전통적인 관습을 초월하여, 오히려 어린 자가 큰 자를 지배하도록 예정하고 섭리하셨습니다.
Q 20
창세기 25장 33절을 보면,
들판에서 늦도록 사냥하다가 배가 고파진 에서는 동생인 야곱에게 팥죽을 얻어먹기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포기한 것이 왜 나쁜 것일까요?
A 20
나쁘다기보다는 어리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육적인 장자로서의 특권뿐만 아니라,
특히 언약 가문의 장자로서 에서는 무한한 영적인 축복을 물려받을 수 있는 복된 위치에 있었지만,
어리석게도 그는 순간의 만족을 위해 영적인 특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Q 21
창세기 27장을 보면,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처럼 속여서라도 장자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의 행동은 옳은 일일까요?
A 21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일찍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야곱에게 작정되어 있었다고 할지라도(창 25:28),
야곱과 리브가가 꾀를 내어 인간적인 속임수로 그것을 성취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야곱과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일깨워 주면서, 이삭을 진지하게 설득했어야 옳았습니다.
Q 22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은 왜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야곱 두 아들 모두에게 복을 내릴 수는 없었을까요?
A 22
이삭 당시의 고대 족장 사회에서는 집안에서 오직 한 명의 아들만이 가족의 축복을 물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된 족장의 축복은 비록 그 축복을 베푼 자라고 할지라도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족장의 공식적인 축복은 신적인 권위를 가졌기 때문에, 마음대로 선포되어서도 안 되었고,
또 한 번 선포되면 취소될 수도 없었습니다.
Q 23
창세기 29장 2절을 보면,
형 에서의 보복을 피해 멀리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친 야곱이 그곳의 어느 우물에 이르렀을 때,
우물 아귀는 큰 돌로 덮여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A 23
물이 귀한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는 평상시에 우물을 무거운 돌로 덮었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모래 먼지로 오염되거나 뜨거운 태양열에 증발되는 것을 막고,
또한 물이 도난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길 모르는 여행자나 혹은 동물이 우물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Q 24
창세기 29장 25절을 보면,
야곱은 레아를 라헬로 착각하고 첫날 밤을 치렀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A 24
신혼방은 어두웠고, 야곱은 기쁨 마음에 결혼 잔치 때 술에 만취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풍습상 신부는 베일로 얼굴과 몸 전체를 가리웠기 때문에, 야곱이 라헬과 레아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딸 레아가 사전에 아버지 라반의 계획을 전해듣고
기꺼이 응하여 마치 라헬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야곱은 라반의 속임수에 넘어갔을 것입니다.
Q 25
창세기 30장 37절에서 43절에서 보여지듯,
어떻게 껍질 벗겨진 가지로 점 있는 양을 생산할 수 있었을까요?
A 25
야곱은 동물들이 짝짓기할 때 눈에 보여지는 것에 의해 수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론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일어난 껍질 벗겨진 나무와 얼룩무늬 양의 비밀은 그것들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결국 모든 일이 이루어지도록 운영하신 분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나중에 야곱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신앙 고백했습니다.
Q 26
창세기 32장 24절을 보면,
얍복 강가에서 기도하던 야곱은 어떤 사람을 붙들고 밤새도록 씨름했습니다.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요?
A 26
씨름을 한 후에, 야곱과 씨름한 그 사람은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면서 야곱을 축복했고,
또한 야곱은 그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 가운데 제2위 하나님으로서 성육신 이전의 구약 시대에 나타나신 성자(聖子)‘그리스도’로 보여집니다.
Q 27
창세기 36장에서,
지금껏 야곱의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에서의 족보가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27
첫째, 성경 역사상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언약 백성인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일 산을 거처로 삼고 있는 에서의 후손들을 보여줌으로써 약속의 땅
가나안의 주인은 야곱의 후손들임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에서의 후손들도 하나의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Q 28
창세기 37장 5절에서 11절을 보면,
요셉은 꿈을 꾸고, 그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꿈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A 28
그렇습니다.
특별히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종종 꿈을 통해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곤 했습니다.
따라서 꿈은 환상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시 전달의 방편으로 적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특별 계시 말씀인 성경이 완성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꿈이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서의 기능과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Q 29
창세기 39장 20절을 보면,
애굽 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이 자신의 처를 강간하려 했다는 말을 듣고서도 요셉을 처형시키지 않고
단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A 29
당시 노예가 주인의 처를 강간하려는 죄는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왕의 죄수들만 있는 격있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보디발이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보디발은 평소 아내의 단정치 못한 행실을 잘 알고 있었고, 반면 요셉의 고결하고 진실된 인격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Q 30
창세기 41장을 보면,
애굽 왕 바로는 자신이 꾼 꿈을 기어코 해석하기를 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A 30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꿈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왕이나 사제들이 꾼 꿈은 더욱 그랬습니다.
고대 애굽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神)이 밤 시간 동안에 계시를 내리는 것으로 믿고 있었고,
더욱이 바로는 애굽 사람들에 의해 신으로 받들어졌기 때문에, 바로가 밤에 꾼 꿈은 극히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꿈이 깬 후에도 뚜렷이 기억되는 자기의 꿈을 기어코 해석하려 했습니다.
성서원의 <존더반 QA성경>
cafe.daum.net/correcttheology
'구약의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 53장 (0) | 2022.05.19 |
---|---|
이사야 35장 주석 (0) | 2022.05.10 |
오경에 나타난 '축복'과 '심판' (0) | 2022.04.29 |
히브리어 분해, 번역, 문법요약 자료 (0) | 2022.02.18 |
이사야(Isaiah) 65장 주석 (0) | 2022.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