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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에덴의 4대강의 의미

by 은총가득 2022. 1. 5.

 

에덴의 4대강의 의미

 

창2: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아담과 해와를 만드시고 에덴에서 살도록 하셨다. 그리고 에덴에 4개의 강을 만들어 흐르게 하여 그 강을 중심으로 인류의 문명을 이루게 하시려는 뜻을 볼 수 있다. 이 네개의 강을 중심으로 인류의 문명이 발생하게 되는데, 특히 유프라테 강과 힛데겔(티그리스)강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루었고 기혼 강은 구스(지금의 에디오피아)와 이집트 문명이 이루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비손 강에 대해서는 정확한 자료가 나타나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인류 최초의 작은 국가 에덴을 조성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에덴과 같은 천국이 있음을 암시하시는 것으로 잠시 지구상에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 인간은 끊임없이 에덴을 그리워 하게되었고 복 낙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는없지 않은가?

 

   다음은 간단한 4대강의 역사적인 흔적을 기술하지만 이중 살아있는 강도 있지만 역사와 지형의 변화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춘 강도 있으니 참고하기를 바랄뿐이다.

 

   비손강(사우디아라비아 근접 강),

   기혼강(에디오피아에 인접한 이집트의 나일 강 일부일 것으로 추측.)

   힛데겔/티그리스강(터키 북동쪽에서 발원하여 시리아를 거쳐 이라크 바그닷드를 지나 유프라테스 강과 합류하여 페르시아 만으로 유입되는 살아있는 강이다.)

   유부라데(메소포타미아지역을 흐르는 유브라데스 강)

 

  4대 강에 대해서 간단하게 추리

 

  1)비손강(River of Pishon)

 

                                           땅속에 매몰되어 있을것으로 추정하는 비손 강

 

 

    비손강이 그 강이 소아시아로 흘렀든 라우라시아로 흘렀든 어쨌든 그 발원은 에덴동산이므로 이로써 에덴의 위치를 추정해본다면 지금의 이라크 북부 산지에 해당하는 노아홍수 전의 장소였다고 할 것이다. 그것을 확인해보면 결코 에덴의 위치가 동북부에 섬으로 나타난 한국이나 일본이 아니요, 인도도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메소포타미아의 한 지역이었다는 앞에서 결론지은 바대로의 견해로 그냥 두게 되면 자칫 오경편집설과 관련되어지게 된다. 더더구나, 에덴의 위치에 대하여 두로 라고 보고 있는 견해(에스겔 28:11-19).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발견이 있게 되는데, 모든 땅은 하나로 뭉쳐져 있고, 앞의 논의에서 잠정적으로 결론지은 메소포타미아의 에덴 위치 부근은 곤드와날 대륙과 라우라시아 대륙의 뭉쳐진 전 대륙의 동편에 위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동편에 에덴을 창설하시고' 라는 성경 창세기 2:8의 기록을 입증해준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경 창세기 2:8에서 에덴의  위치는 그 기준점이 따로 없이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2장은 J문서이다. 야웨문서 기자는 이스라엘 왕정시대에 살았던 자들로 전제하게 된다. 이들의 세계에서 볼 때, 이들은 가나안 지역에 거주했으므로 메소포타미아의 에덴(왕하 19:12, 사 37:12, 겔 27:23 등) 위치는 북쪽이 된다. 그런데, 문서 설에서 야웨문서 기자의 작품이라고 보게 되는 성경 창세기 2장에서 에덴은 그 위치가 동쪽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이 기록에 대하여 각 성경 역본들은 다음과 같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땅 속에 무쳐진 강으로 추정)

   

 

  2)기혼 강 (River of Gihon)

 

                                          이집트문명과 함께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기혼강

  

   에덴에 강이 생겨 동산을 적시며 흐르다가 거기서 다시 네 강으로 갈라졌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온 땅을 돌아서 흘렀다. 성경에는 구스라는 지명은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오늘날 에티오피아 지역을 살펴보면 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스라는 지명이 에티오피아를 지명하기는 하되 당시에는 지금의 에티오피아보다 훨씬 넓고 큰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가 있지요. 그리고 기혼 강으로 부터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인접한 이집트 지역을 흐르고 있는 나일 강이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나일 강을 중심으로 하여 찬란한 문명의 발달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구스 온 땅을 둘렀던 이 기혼 강이 있었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기혼 강이 오늘날 어느 강에 해당하는지 확실하게 밝히는 게 불가능 하지만은 않은데, 좀더 연구를 한다면 가능할 거 같습니다. 기혼 강은 지금 이란에 카룬강 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니면, 이란 어딘가에 비손 강 같이 말라버린 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말씀 하신 내용 중에 '구스 온 땅을 돌아' 라고 하셨는데요. 영문 바이블을 보면 Land of Cush 라고 되어 있죠. 즉 '구스의 땅'이죠.  노아의 아들 함, 그리고 함의 아들들 중에 구스 라고 있습니다. 영 문으로 Cush 인데, Cush의 아들 니므롯은 바벨 외에 몇몇 지역에서 나라를 세우게 되지요. 대충 그 지역은 후세에 엘림 또는 수사라고 부르는 지역입니다. (확실치 않음)

 

 

  3)힛데겔 강(River of Tigris)

    힛데겔 강은 오늘날 티그리스 강을 가리킨다. 티그리스 강은 자그로스 산지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에서 동남쪽으로 많은 지류들과 합치면서 약 1920㎞를  흘러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 강은 남쪽에서 유프라테스 강과 합류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루었는데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란 뜻이다.

  

                               터키 동북쪽에서 발원하여 시리아, 이락크를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유입되는 힛데겔(티그리스)강

 

    자그로스의 눈이 녹아 남쪽으로 흐르는 이 강은 5~6월에 범람한다. 오늘날에는 많은 문명 도시들이 사라졌으나 고대에는 이 강을 중심으로 앗수르 제  국의 수도인 니느웨(Ninereh), 앗수르(Assur), 그리고 니므롯(Nimrud) 등이 발달하였다. 또 이 강의 북쪽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평야에는 아랍인들이 정착하며 살았는데 시편 기자는 그곳을 아람 나하라임(시60:1, 쌍동이 강변의 아람?이란 뜻)으로 불렀다. 창2:14과 단10:4에 나오는 힛데겔 강은 이 강 으로 여겨진다.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 중 하나인 힛데겔 강는 티그리스 강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관통하여 흐른다

.

   힛데겔은 <결실한다>이란 뜻인데 아라비아어 음(音)으로는 다글라트(Daglath), 수리아 음(音)으로는 데클라트(Deklath), 헬라어 음(音)으로는 티그리스  (Tigris)이다. 이 강 유역에서 앗수르와 바사(페르시아) 제국이 발원했으며, 다니엘은 바사 왕 고레스 3년에 이 강가에서 환상을 보았다(단10:4). 티그리스 강은 에덴동산을 흘렀던 힛데겔강과 동일시되는 강으로 앗수르 동편을 흐르는 강이다. (현재 살아있는 강)

 

 

  4)유프라테스 강(River of Euphrates)

   유프라테스 강(프라트 강)은 티그리스 강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흐르는 주요 강이다. 터키동부 고원에서 발원하여 시리아이라크를 가로질러 흐른다. 이라크 남부에서 티그리스 강과 합류하여 샤트알아랍 강을 이룬다. 티그리스 강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룬다.

  

                                                    티그리스강과 합류하여 페르시아 만으로 유입되는 유프라테스 강

 

 

    유프라테스 강의 길이는 2,680km로 나란하게 흐르는 1,890km의 티그리스 강과 함께 서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이다. 티그리스 강은 터키 동부 고원 80km 동쪽에서 발원하여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에서 흘러오는 많은 지류들을 흡수한다. 두 강이 계속해서 바다를 만나기 직전까지 평행하게 흐르면서 이라크 의 오래된 이름인 메소포타미아(강 사이의 땅)의 어원이 되었다.

 

    두 강은 터키 동부의 고원에서 깊은 협곡을 따라 내려오면서 사막을 만나는데 이곳은 알자지라(섬, 반도라는 의미)로 알려진 곳이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는 물이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물 분쟁이 자주 일어난다. 터키가 유프라테스 강에 아타투르크 댐을 건설하였는데, 하류의 시리아와 이라크는 이를  물 도둑이라고 비난하면서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바그다드 근처에서 두 강은 80km 정도로 가까워지다가 다시 멀어진다.  하류의 유로는 자주 바뀐다.

    범람원은 수많은 구하도와 버려진 관개 수로로 얽혀있다. 강은 밀집된 갈대 숲의 습지를 지나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간다. (현재 살아있는 강)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planted)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 2:8)

에덴동산은 성경을 믿는 우리들에게 늘 꿈같은 장소다. 죄 짓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곳, 특별히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위해 창설하신 그곳은 어떤 곳이었을까? 또한 그곳이 지구상의 어딘가에 있었다면 오늘날 어느 위치에 해당할까? 이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창조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면 자주 받는 질문이다.

 

에덴동산은 성경에 언급된 곳이므로 무엇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성경은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창 2:9-10). 지명은 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성경(NASB)을 넣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Pishon)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Gihon)이라 구스(Cush)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Tigris)이라 앗수르(Assyria)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Euphrates)더라”

 

위의 지명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다. 이 두 강은 지금의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걸쳐서 흐르고있다.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앗수르인데 이는 홍수 이후에 노아의 아들인 함의 손자인 니므롯이 성을 쌓던 도시 이름에서 등장하며(창10:11), 셈의 아들 가운데서도 동일한 이름이 등장한다(창 10:22). 또한 구스는 함의 아들의 이름에 등장한다(창 10:6). 나머지 지명들에 대하여는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실제로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비손과 기혼을 갠지스강과 나일강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자도 만만치 않다.

 

많은 성서 고고학자들은 위의 이름들 중에 확실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앗수르 등을 통해 에덴동산이 그 근처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실제로 많은 창세기 주석과 성경공부 교재들도 이런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는 사람들의 생각을 보면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홍수심판이 전지구적 홍수가 아니었다거나, 기존 지형을 변형시킬만한 격변적 사건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지형 이름만을 통해서 에덴동산의 위치를 지구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홍수심판은 천하의 높은 산이 물로 덮이고, 모든 깊음의 샘들이 터지는, 하나님께서 코로 숨을 쉬는 동물 모두 죽이려 하셨던 전지구적인 격변적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에 무지개 언약을 하실 때도 그 홍수심판이 “땅을 침몰할(destroy) 홍수”라고 언급하셨다. 그러므로 홍수심판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라면 에덴동산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에덴동산을 포함해서 홍수 이전의 지표에 있던 것들은 홍수 기간에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홍수심판이 성경 그대로 일어났다고 믿는 고고학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은 에덴동산을 찾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렇다면 홍수 전과 후에 일치하는 지명 이름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들 모두는 노아 가족이 방주에서 나와 홍수 이전을 회상하고 붙였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할 경우 새롭게 정착한 곳의 이름을 자신들이 살았던 곳과 똑같이 사용하는 예는 너무나 많다. 미국의 많은 도시와 강의 이름들이 유럽에서 자신들이 살던 곳과 동일한데 이들 모두는 유럽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지명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필자가 처음 유학하던 미시간에 Holland라는 도시가 있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민 와서 정착한 곳이다. 이곳에 가면 많은 지명이 자신들이 살던 지역 이름으로 지어졌다. 호주도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명칭들이 영국의 것과 동일하다. 필자가 거주하는 LA의 한인타운을 보더라도 식당이나 상업용 이름들의 많은 것들이 한국에서 보았던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전지구적인 심판 이후에 홍수 이전과 그 이후의 이름이 같은 것이 발견된다는 것은 어쩌면 노아 가족 여덟 명이 홍수 전후를 살았던 중요한 연결고리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격변 전의 지명들을 가져다 쓴 것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좋았던 홍수 이전의 지구환경을 그리워하는 여덟 가족의 마음이 담겨있지 않은가.

 

역으로 보면 노아홍수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지구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지구적 홍수 심판이 희미해지면,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경을 공격할 때 그러면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냐?”라고 질문할 때 분명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때 에덴동산 이야기는 하나의 설화로 전락해버리고 우리의 시작인 ‘성경적 창조’는 막연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 역사에 대한 바른 믿음은 성경에 관한 연구일지라도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By ACT 

 

에덴동산은 페르시아 만으로?

 

          성서적으로 추리해보면 99%는 가능성이 있다고 볼수 있다.  

    
           
창6:1-2,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20년이 되리라. 즉 홍수이전의 종말이 온 것이다. 6절, 하나님께서 땅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절에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 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셨다.

 

           하나님은 노아를 보시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방
           주(배)를 지으라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배를 만들라고 말씀 하실때부터 120년 후에 비가

           내리기 직전에 노아의 8식구와 혈육있는 생물들을 새부터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암수 7쌍 또는 한쌍씩
           방주에 들어간후 1주일 후에 40주40야동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7:11, 노아가 600세가 되던 해

           2월 그달 17일에 큰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에 창들이 열려 40일동안 비가 쏟아져 노아 방주가 뜬

           후 150일 동안 물이 땅에 창일하게 됨으로 모든 사람과 동물들을 비롯하여 모든 생물들이 죽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신 때는 BC 4224년으로 추정하며 창조이후 모세가 출생한 연대는 BC

           3,168년 이었고 노아홍수가 시작된 때는 노아출생 600년 이후인 BC 2,568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

           수 후에 땅이 마르게 된 것은 150일 이후로 방주의 문이 열리고 노아의 8식구와 동식물들과 생물들이

           제작기 흩어져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것이다.

              

          

         창7:11, 노아 홍수가 터질 때 지각변동으로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에 창들이 열리고 장대같은 비
         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높은곳(아라랏산)에서부터 물이 흘러 낮은 곳으로 홍수가 흘러 티그리스와 
         유프라테강을 거쳐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가면서 에덴동산은 지금도 그 형태가 페르시아만 해저에 있다
         는 것을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참조(티그리스와 유브라테스는 현재에도 실존사라진작 강 
         손과 기혼
’ 첨단과학이 규명,  美國 우주왕복선 고대 강줄기를 찾아내
에덴동산 위치 페르시아 만 북
         쪽 끝 물밑에 
이란 북서부 아드지 차이 골짜기’ 유력해노아 대홍수에 묻힌 에덴
은 중동 산유국이 되
         었다.)노아방주가 있던 곳: 
아르메니아 고원에서 돌출하는 해발 5,137m 고산이며, 대(大)아르메니
         아 봉과 소(小)아르메니아 봉(3,896m)이 있다. 1829년 프리드리히 파로트(Friedrich Parrot)와 하차
         투르 아보비안(Khachatur Abovian)이 처음 이 산의
 정상에 올랐다고 알려져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the LORD God planted a garden eastward in

         Eden)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창세기 2:8)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

          (Pison)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

         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Gihon)이라 구스(Ethiopia) 온 땅을 둘렀고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

         겔(Tigris)이라 앗수르(Assyria)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Euphrates)”(2:10-14)

 

           창세기 2 1014절 내용을 보면 에덴동산에서 강()이 발원하여 네 강의 근원이 되었는데, 그 중에 비손과 기

           혼 두 강은 현재 없는 것이어서 잘 알 수 없으나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헬라어: 티그리스)이라 앗수르 동편으

           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2:1015)라는 말씀을 보아 이 두 강은 곧 현재 시리아 동쪽에 흐르는 티

           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틀림없다. 두 강은 현재 이라크에 있다. 역사가들도 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

           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을 꼽고 있다

 

                                 

                                                ‘비손과 기혼 사라진 두 강의 흔적을 찾다

         창세기 2장에는 에덴동산과 첫 사람 아담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에덴동산이 과연 실제 지명인지 아니면

         신앙적 의미로 수용해야할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갑론을박이다. 상징으로 간주하는 이들은 에덴동

         산의 교훈에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있고, 실제 지명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

         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를 신화처럼 생각하고 있는, 인류의 시조(始祖)가 처음에 살았던 에덴동산의 위치는 과연

         현존하고 있는 것일까? 창세기에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선악과 대사건 이전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동산이

         에덴이란 지역의 동쪽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즐거움, 기쁨이라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에덴동산

         의 위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매우 부족하다. 우선적으로, 연구자들은 에덴동산에서 발현하는 네 강- 

         손은 부요를, 기혼은 생명을, 힛데겔(티그리스)은 능력을, 유프라데는 결실을 뜻하는-에 주목하였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는 말씀 따라, 현재 이들 두

           강은 시리아 동쪽에 흐르고 있기에 별 문제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인류의 역사가 시발된 곳은 유프라테스와 티

           그리스 강이 함께 시작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메소포타미아라는 말의 뜻이 

           사이 곧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의 땅이기 때문이다. 두 강은 현재 이라크에 있다. 역사가들도 4대 인

           류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손 강과

            기혼 강에 대하여는 논란이 적지 않다. 오늘날 존재가 매우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최근 첨단과학에 힘입

            어 중요한 단서 하나를 포착했다. 중동지역을 위성사진으로 촬영하니 옛날에는 강이었을 것 같은 거대한 강줄기가

            포착된 것이다. 이는 터키 지역을 통과하는 큰 강이라고 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강이 원래 성경에 나오는 비손이나

           기혼강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흥분을 감추질 못하고 있다
          1982 11 28일자 조선일보는 다음의 소식을 전한다. “콜롬비아호 고대 강 발견이란 제하에 미 우
           주왕복선 콜롬비아 호에서 발사된 레이더가 아프리카 북부의 사하라 사막 깊숙이 묻힌 고대 강줄기를 찾아내
           고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 작년(1981) 11월 두 번째 우주여행 때 콜롬비아
           호가 찍은 레이더 사진을 분석한 미 항공우주국
(NASA)의 과학자 8명이 공동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사
           진이 사하라 사막 땅 속에 숨겨져 있던 큰 강과 계곡
, 홍수가 났던 들판 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위성 사진에서는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생각 되는 두 개의 하상(河床-하천바닥) 자취가 발
           견되었다. 과학전문 잡지 디스커버리   보스턴의 리모트 센싱 연구소 파로욱 엘 바즈 소장 등 연구
           이 랜드샛 위성이 전송해온 사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헤자즈
(Hejaz) 산맥에서 발원한 강이 530마일을 흘
           러 현재 쿠웨이트인 페르시아 만 쪽으로 흘러가는 수로를 발견했다고 보도한바 있다
. 거대한 수로가 현재의
           페르시아만 쪽으로 흘러가고 있음에 주목하자
. 그리고 현재의 페르시아만 지역의 지도를 보면 두개의 큰 강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페르시아만 쪽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여러 연구가들의 신빙성 높은 진술들을 상세하게 투시하여 보기로 한다. 미국 고고학자 주리스 자

          린스(Juris Zarins)는 에덴동산이 페르시아 만 북쪽 끝 물밑에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이곳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이다. 위치는 북경 2947, 동경4838분이다. 에덴

          동산은 페르시아 만 북쪽 끝에 있었다는 것이다

          ▲ 비손 강은 지리학적 조사 결과 오늘날 와디리마와 와디
            이렇듯, 첨단과학 기법에 의해 그 두 강의 흔적이 드러난 셈이다. 비손 강은 지리학적 조사 결과 오늘날 와디리
            마와 와디 바틴으로 알려져 있는 물이 말라버린 두 개의 골짜기가 고대에 있던 강줄기의 경로를 따라 형성된
            밝혀졌다
. 자린스 박사는 이 골짜기들은 비손강의 흔적이고, 기혼 강은 오늘날 페르시아 만으로 흘러 들어가
            는 카룬 강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와디리마와 와디바틴 강, 기혼강            의 방향 모두가 페르시아 만 쪽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은 너무 경이적인 일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넓이 약 50
          만㎢의 대 사막이 전개되어 생물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되어 . 반도 전체를 관통하는 큰 강이
             나 호수는 없고 비가 올 때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와디
(마른 하천)가 남아 있다. 사막 표면 6m 아래에 길이가
             
50나 되는 강이 흘러서 4,500년 전에는 이 강으로 말미암아 사하라 사막이 초록의 대지였음을 생생히 입증하고
            있다

           옛날부터 사하라 사막에는 물 없는 큰 강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왔다. 사진을 분석한 과학자들 중 일부는 현지
           를 답사하여 현장을 발굴하기도 했다. 그 주변에서 발견된 바위와 동굴 벽화에 큰 동물과 사냥하는 모습, 배를
           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이곳이 울창한 숲이었다고 틀림없다는 것이다.
 
          ● 에덴동산 이란 타브리즈(Tabriz)’ 유력
           이란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타브리즈(Tabriz)가 에덴동산이 있었던 곳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에덴동산의
           원위치 파악에 있어 매우 신빙성이 높은 주장이다. 이란 북서부의 타브리즈는 오래전부터 동서교역의 중심
           지였다. ‘문명의 창세기 저자인 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David Rohl) 박사는 성경에 기록된 에덴동산
           의 위치가 오늘날 이란 북서부에 위치한 아드지 차이 골짜기라는 확신에 찬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이 지
           역의 중심에는 타브리즈(Tabriz) 라는 대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 롤 박사는 창세기 2장에서 나머지 2개의 강,
           즉 기   혼강과 비손강의 위치를 추적해 에덴동산의 위치를 찾고, 2장에서 묘사되고 있는 이들 강과 관련된 지
           (구스, 하윌라)에 대해 설득력이 담보된 논거들을 차분하게 제시한다.

           롤 박사는 이슬람이 페르시아를 침략했을 당시 가이훈이라고 불렸던 거대한 아락세스 강(최근에는 아락스
           또는 아라스로 불림), 19세기에는 지크혼-아라스로 불린 것과 빅토리아 시대에 편찬된 성서어휘 사전
           과 해설서에 기혼-아라스라는 이름이 나오는 사실의 토대 하에 기혼 강을 아락세스 강과 결부시켰다 


           그는 북동쪽 기혼, 북서쪽 유프라테스, 남서쪽 티그리스라면 비손을 찾을만한 곳은 남동쪽밖에 없음에 주
           목하고 비손 강에 해당되는 강을 찾았다. 이 지역을 흐르는 유일한 큰 강인 우이준이 바로 그것이다. 롤박사
           는 강 이름의 음운변화 설명을 통해 
비손이 바로 우이준임을 증명했다. 우이준(Uizhun)에서 첫 모 ‘U'
           빼면 이준
(izhun)이 남는데, 음운변화를 고려할 때 성경에서 나오는 비손(Pison)강과 결부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롤 박사는 에덴은 오늘날 이란 북서부 아드지 차이(옛 이름은 메이단) 골짜기와 동일시 할 수 있다
           며
, 이 지역의 중심에는 타브리즈라는 대도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논거를 펼치고 있다. 이에 에덴동산은 타브
           리즈 부근 사한드
(Sahand)산의 동쪽에 펼쳐진 평야에 있었다는 것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역
           의 명칭은 에딘
(Edin)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지역 중심부에는 반호와 우르미아호 분지가 있는데, 이 네 강은 모두 이곳에서 발원하는데, 경에
          서 아라랏
(아시리아어로는 우라르투)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라는 것. 오늘날 이 지역의 서쪽은 터키의 타우루
          스 산맥이 포진하는 아나톨리아 동부
, 북쪽에는 아르메니아고원(Armenian Highland), 동쪽에는 이란의 아
          제르바이잔 주
, 남쪽에는 쿠르디스탄(Kurdistan) 주가 자리 잡고 있다.  성경미스터리 연구재단(Mysteri-
         es of the Bible Research Foundation)
의 탐험책임자 마이클 샌더스(Michael Sanders)역시 에덴동산
         이 터키 동부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터키 동부로부터 발원하기 때문이
         라는 것
.

         샌더스 박사는 성경에 기록된 네 개의 강이 오늘날의 무라트(Murat),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리고 유프라테스 강의 북쪽 지류라고 설명한다. 샌더스 박사는 위성사진을 참조하여 에덴동산이 북위 38
          33 25초와 동경 39 12분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고대 아씨리아(앗수르)의 기록에는 베트
          에덴
’(Beth Eden)이라는 지명이 나온다. 번역하면 에덴의 집’(House of Eden)이다. 역사학자들은 베트 에덴
          고대 아람
(Aram: 옛 시리아 지방)지역의 소() 마을로서 오늘날 터키의 우르파(Urfa)와 하란(Harran) 지방 인
          근에 있는 카르체미쉬
(Carchemish)의 남쪽, 유프라테스 강이 굽어 돌아가는 곳이라고 내세웠다. 카르체미쉬는
          북경 
36 55, 동경 38도에 있다. 샌더스 박사가 주장하는 터키 동부와 거의 일치한다
 
         ● 노아대홍수가 에덴을 석유천국으로
         “첫째의 이름은 비손(Pison)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
          과 호마노도 있으며”(창세기 2:11-12) 

 

         하윌라(Havilah)는 현재의 아라비아의 어느 지역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헤자즈(Hejaz) 산맥에 있는 마드 아드 다하브(Mahd adh Dhahab) 지역은 금의 요람이라고

         부를 만큼 좋은 금이 다량으로 생산되는 곳이다. 헤자즈 지역에서는 좋은 품질의 베델리엄과 몰약(Myrrh)도 생

         산되고 있다. 이를 보면 헤자즈 지역이야말로 비손강과 연관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헤자즈(Hejaz)지방은 홍해

         에 면한 하자즈 산맥을 배경으로 한 아카바 만의 돌출부로부터 북위 20도 부근까지. 해안평야지대와 고도 600-

         2000m의 산맥지대와 고원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고원지 내에 이슬람의 2대 성시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다.

         또한 사한드 산과 바즈구시 산 너머 역시 '금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것은 동쪽의 탈레시 산맥에서 서쪽의

        미얀도아브 평야까지 뻗어 있는 이란의 앙구란 지역이다.

        에덴동산은 노아의 홍수로 인하여 파괴되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십 수세기 후에 전 세계를 황폐화시킨 전 지구적 홍수가 있었

        다고 기록하고 있다.(6-8) 전 대륙은 엄청난 홍수 물로 뒤덮였고, 홍수 이전의 대륙들은 분리되어 떨어

         져 나갔으며, 홍수 이전 세계를 완전히 파묻어 버렸다. 현재 중동 지역은 거의가 불모지이며 사막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세계 석유의 70% 이상이 산출되고 있는 것은 매우 놀랍기 그지없다. 석유가 생산 되려면 그 옛날 그곳에

         많은 동식물 유기물질이 갑작스런 천재지변에 의해 땅 속에 매장된 미증유의 사건이 촉발되어야만 한다


         “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
          이요
”(에스겔 31:18)

         옛날 에덴동산에는 특별한 기후 관계로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울창하고 엄청나게 큰 수목이 자라고 있었으며

         온갖 거대한 짐승들이 활동했을 것이라는 증거가 다수 발견된다. 그것들이 대홍수 및 그 여파의 지각변동에 의

         해 모두 땅 속에 묻혀버림으로 그것이 훗날 석유가 되어 나오게 된 것이라고 우리는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Oct. 22, 2019

         Rev. David Yoo, Th. D

 

http://blog.daum.net/oxhill0215

 


에덴동산 4개의 강


비손강으로 순금과 진귀한 향료와 보석이 있는 하윌라 땅을 굽이쳐 흘렀다. 그리고 둘째는 기혼강이며, 구스 땅을 가로질러 흘렀고 셋째는 티그리스강으로 앗시리아 동쪽으로 흘렀으며, 네째는 유프라테스강 이었다. -창세기 2장 10~ 14절-


에덴동산의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고, 그곳에서 영생하도록 하는 샘물이 솟아나 동산을 적셨다.
동산은 그 샘물을 흘려보내는데 동서남북으로 흘려 보냈다.
동서남북으로 흘려보낸 것이 4개의 강이다.
4개의 강 이름은 첫째의 이름은 비손,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힛데겔), 넷째 강의 이름은 유프라테스다.
셋째 강의 이름 유프라테스(힛데겔)을 말씀하면서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14절) 라고 말씀하고 있다.

‘문명의 창세기’ 저자인 영국의 고고학자 데이비드 롤(David Rohl) 박사는 북동쪽 기혼, 북서쪽 유프라테스, 남서쪽 티그리스라면 비손을 찾을만한 곳은 남동쪽밖에 없음에 주목하고 비손 강에 해당되는 강을 찾았다.
지금도 중동지방에는 힛데겔(티그리스강)과 유브라데(유브라데스) 있다.
없어진 두 강인 비손강과 기혼강의 흔적을 위성촬영으로 발견하기도 했다.

그 모습을 그린 사진을 보니 생수의 강이 동서남북으로 흐르고 있는데 끝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둥근모양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죄가 들어오기전 에덴동산 4개의 강 이름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손강[increase] : 생육과 번성, 발전과 성장, 풍요로워지는(능력과, 부)
 
비손강의 뜻은 흘러넘치는 강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심령에 낙원(에덴)을 소유한 성도는 그 생명의 역사가 창일하게(넘치게) 흘러 나갈 것을 가리킨다.
그 생명의 역사는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 강을 막으면 넘치고, 또 막으면 또 넘쳐서 생명의 역사가 힘 있게 계속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

 로마의 네로 황제가 무자비하게 기독교를 박해하여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으려 했으나 결국 막지 못하였고, 그밖에 여러 세상나라들이 그리스도의 생명 운동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
이 생명의 역사는 전진하고 또 전진하며, 이기고 또 이기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끊임없이 할 때 생명의 역사가 항상 있게 되며 그 생명이 넘쳐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 나가 많은 사람을 살려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하윌라”는 “모래 땅, 모래언덕”이란 뜻이 있다.
하윌라는 비손강에 의해 둘려져 있던 지역으로 금과 은 및 각종 보석류의 산지이다.
이처럼 에덴동산의 비손강은 풍요롭고 풍부함을 상징한다.
 이처럼 하나님에 의해 창설된 에덴동산은 부족한 것이 없다.
 특히 비손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하윌라 땅은 금과 은과 보석이 있는 곳으로 물질적으로 풍성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땅이다.

베델리엄의 뜻은 “진주”이다.
호마노는 보석의 일종이다.
비손 강이 흘러 나가는 곳은 금도 있고 진주도 있고 보석(호마노)도 있다.
영적 낙원(에덴)에서 사는 성도에게는 신령한 복과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이 가득하다.
학개 2: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했다.
우리 속에서 생명의 강이 창일하게 흘러 내려가면 금은과 보석같이 귀한 것을 하나님이 다 주신다는 것이다


둘째, 기혼강[bursting forth] : 용출, 올라가는, 막히지않고 터져남 막히지 않고 터져나옴 (지혜)

 기혼 강의 뜻은 ‘샘솟는 강, 유출(流出), 흘러나간다.’는 뜻이다.
기혼 강은 샘솟아 나오는 샘과 같은 강이라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이 있게 되면 그 생명의 역사는 밖으로 흘러 나간다는 것이다. (요 7:38, 4:14)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는 가만히 있지 않고 반드시 흘러 나가게 되어 있다.
 흐르고 흘러서 먼데까지 퍼져 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을 적시고 그 강물이 땅속에 들어갔다가 솟아나오는 곳이 구스였으며 이 강이 기혼 강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강물이 내 안에서 들어갔다가 샘솟아 나오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내 생명이 되어서 나오게 된다는 뜻이다.
즉 이것이 생명을 소유하게 된 사람의 특징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서 샘솟아 나올 때 자신의 죄성을 발견하고, 그때 극심한 슬픔이 오며 이 극심한 슬픔이 자신의 죄로부터 돌아서는 회개의 역사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와 그 말씀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킨 후 하나님과 세상을 그 생명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기혼 강이라 하겠다.

죄로 오염되고 타락한 듯한 내 영혼의 거룩한 땅이었던 에덴동산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강물이 적셔야 하며 그 후 채워져 기혼 샘물이 터져 나와야 한다.
 우리의 타락한 땅 구스에 기혼 샘물만 터졌다 하면 내 죄된 검은 모습이 보이고, 그러면 나는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천국의 사람으로 변화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며 기혼 샘물을 가지고 얘기 하면 우리는 날마다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되며 그 사람은 기혼 강가에 있는 사람이며 날마다 기혼 강가에 사는 축복된 사람이 될 것이다.


셋째, 힛데겔 강(티그리스) [ rapid, active] 능력, 기운찬, 에너지 넘치는(힘과 존귀)
 티그리스(힛데겔)강은 빨리 흐르는 강이며 “급류(急流)”라는 뜻이다.
이강은 앗수르 동편을 흘러갔다.
그래서 티그리스강, 힛데겔 강은 앗수르가 한발 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강처럼 성도 속에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는 급히 흘러나간다.

그 생명수가 계속해서 많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급히 흘러나가지 않을 수 없다.
 앗수르 한발 짝 동편을 흐른다는 것은 이방 땅으로 흐른다는 얘기한다.
 이 이방 땅은 수준 높은 땅으로 이스라엘의 동편에 이방 땅들이 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에도 사람들이 동방에서 왔다.

 동방의 박사 세 사람 별을 보고 찾아왔다.
 앗수르라고 하는 것은 동편에 있으며 이스라엘도 에덴동산도 동편에 있다.
 그 동편에 있다라고 하는 얘기는 은혜가 있음을 말하며 금 같은 신앙을 가진 자, 그 사람은 그것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 중생하는 사람, 그 사람은 영적인 실력이 커 가면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어 감을 말한다.
 급류라고 하는 것은 급하고 빠른 것인데 급류라고 하는 것에서 뭔가를 건져내려면 이것은 실력이 있어야 한 다.
 실력이 있으면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사망의 위험도 있다.
  신앙이 성장하면 할수록 사탄마귀의 거센 도전을 받게된다.
 그러기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위험도가 따르며 순간에 넘어질 수 가 있다.

그러기에 아주 뛰어난 실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자라가야 하고, 올라간 순간부터 또한 내려가야 하는데 그때는 세상을 향해 다스리고 정복하러 내려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실행하러 가는 것이다.
 다스리고 정복하러 내려갈 때부터 그 사람들한테는 내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이 벌어진다.
 그것은 굉장히 빠른 급류이며 보통 실력이 되어서는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곳이기에
영적  실력이 날마다 자라나야 한다.
 그래서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한 발 한 발이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섰다 함도 아니요” 자기가 섰다고 교만을 부릴 수 가 없다고 고백하며 달려갈 길을 달음박질하며 나갔던것이다.

 자신이 섰다 하면 어느 세 자기가 넘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급류인 티그리스(힛데길)강 한번 타 보시길 바란다.
 스릴이 넘치며 야호소리와 함께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예측 할 수없지만 신나는 도전, 영적싸움이 될 것이다.


넷때, 유브라데 강 ["fruitfulness" fertilizing"] :결실한다. 풍부하다(영광과 찬송)
‘유브라테 강’(Euphrates)의 뜻은 ‘흐른다.’는 뜻이다
 아시아 서부에 있는 동방 최대의 강으로 그 발원지는 에덴동산과 알미니야 계곡이다.

길이는 2,850km로 하류에서 합류되는 티그리스강과 더불어 메소포타미아의 수운과 농어발달에 원동력이 되어 그 지역 고대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다.
 또한 ‘유프라테스 강’은 ‘감미 (甘味)’ 즉 ‘단맛’ 이라는 뜻을 가졌다.

 성도 속에 있는 생명의 역사는 단맛이 있으며 꿀과 꿀 송이보다 더 달다라는 것이다.
 시 19:10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

사람들이 이 생명 강수의 맛을 보면 너무 달고 너무 좋아서 생명 강을 떠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부지런히 나눠주어야 한다.
 낙원에서 흐르는 생명의 역사는 달고 급하고 창일하게 흘러 나가서 만민을 소성케 한다.
 이 물이 적시는 곳은 모두 에덴동산이 되어 낙원이 점점 확장되어 나아가게 된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보면 유브라데 강은 ‘긴 강’인데 이것은 ‘경계를 나타내는 강’이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게 되면 그만큼 선악의 세계로부터 경계가 분명히 서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강물은 이스라엘과 이방의 경계를 날마다 세워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칼 같이 날마다 이스라엘과 이방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즉, 비기독사상과 기독교 사상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혜 받으신 성도는 이 강이 길면 길수록 이 사람은 영적인 영토가 넓어지는 것이다.
 즉, 이 강이 흘러 흘러 넓어질수록 모든 면에서 신앙정신과 사상이 완전히 넓어지고,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된다.
 이것은 심판의 경계가 분명하게 서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 4개의 강의 이름의 뜻을 땅의 생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죄가 들어오기 전의 4개의 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가 에덴동산에 들어옴으로서 4개의 강의 이름의 뜻은 사라지고 말았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그로 구덩이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음부에 떨어뜨리던 때에 열국으로 그 떨어지는 소리를 인하여 진동하게 하고 물 대임을 받은 에덴의 모든 나무 곧 레바논의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들로 지하에서 위로를 받게 하였느니라”(겔 31:16)

“너의 영화와 관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 거기서 할례 받지 못하고 칼에 살륙 당한 자 중에 누우리라 이들은 바로와 그 모든 군대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라”(겔 31:18)

예수님께서 아담의 범죄함으로 인해 지하에 내려갔던 에덴동산과 4대강을 몽땅 가지고 십자가에 달려 함께 못박히시고 창으로 옆구리에 찔림을 받으심으로서 흘리신 피와 물로 에덴동산과 4대강을 새롭게 탄생토록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피와 물로 새롭게 지음받은 피조물들이“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계 5:13)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내 마음에 은혜의 강물, 에덴의 강물이 흐르는 사람들은 그 은혜로 결실하게 된다.
 강물은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결실하고 열매 맺는 것을 돕는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도 맺어야하고(마3:8) 빛을 받아 빛의 자녀로 산다면 빛의 열매를 맺어야하고(엡 5:8-9) 성령의 열매( 갈 5:22-23)도 맺어야한다.
 에스겔 47장은 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은혜와 축복이 성전에서 회복됨을 암시한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은 창세기에서 나타났다가 숨겨진 그 에덴의 강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강물은 치유의 강물이요 풍요의 강물이요 구원의 강물이요 은혜의 강물이다.

중동지방에서 석유가 많이 나는 이유가 에덴동산이었기 때문인가? 질문을 해본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 구덩이(tar pits)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창세기 14:10).

“너의 영화와 광대함이 에덴 모든 나무 중에 어떤 것과 같은고 그러나 네가 에덴 나무와 함께 지하에 내려갈 것이요”(에스겔 31:18).

 에덴의 광대한 나무와 모든 것들이 지하에 묻혀 버림으로 그것이 훗날 석유가 되어 나오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져온글>

 

창세기와 메소포타미아 연구
 
메소포타미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는 그리스어로 ‘강들 사이에’라는 뜻이며, 좁은 의미로는 아랍어로 ‘알-자지라(섬)’라 불리는 두 강 사이의 삼각 지대이지만 문명권의 관점에서 북서쪽의 해발 3000-5000미터 높이의 자그로스(Zagros) 산맥과 남서쪽의 아라비아 광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여러 강과 하천들이 끊임없는 범람하며 실어 온 기름진 퇴적토로 이루어진 경작지가 있어서 기본적인 농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연중 강수량이 150-200밀리미터 정도로 매우 적기 때문에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의 강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하느냐가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적 악조건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비로소 이 곳에서 고등 문명이 발생하게 되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는 북부의 고산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퇴적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목재나 석재, 기타 지하자원이 전혀 생산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일찍부터 자그로스 산악 지대와의 무역을 통하여 필요한 나무와 돌 그리고 구리나 주석 같은 금속들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메소포타미아는 북쪽의 앗시리아와 남쪽의 바빌로니아 문명권으로 양분되는데 이 중에서도 바빌로니아 문명권에서 좀 더 활발하게 도시들과 왕국들이 형성되고 발전하였다. 서기전 3000-2000년경 바빌로니아 문명권은 남부의 수메르 왕국과 북부의 아카드 왕국으로 구분되었다. 메소포타미아를 독립된 하나의 문명으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프라테스

(Euphrates))유프라테스는 아카드어의 푸라투(purattu), 히브리어의 프랏트(???), 그리고 고 페르시아어의 우프라투(Ufratu)에서 유래된 그리스식 이름이다. 전체 길이 2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유프라테스는 오늘날 터키에 위치한 아르메니아 고원지대에서 발원하며 상류에서부터 지역에 따라 터키 지역을 흐르는 상 유프라테스(Upper Euphrates), 시리아 지역을 흐르는 중 유프라테스(Middle Euphrates), 그리고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 위치한 하 유프라테스(Lower Euphrates) 등으로 구분된다. 상 유프라테스의 원류는 두 군데로서 동쪽의 무랏트 수유(Murat Suyu) 하천과 서쪽의 카라 수(Kara Su) 하천이다. 중 유프라테스는 하란 지역에서 흘러오는 발릭크(Balikh)와 카부르(Khabur) 등의 지류와 합쳐진다. 하 유프라테스 지역에는 예로부터 수 많은 운하들이 발달했고 티그리스와 만나는 하류 지역은 늪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유프라테스 강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도시들이 발달했다. 시리아 지역의 카르케미쉬(Karkemish)와 마리(Mari)를 비롯하여, 하류 지역에는 태양신 숭배의 중심지 시파르(Sippar), 수메르의 제 1왕조의 도읍지였던 키쉬(Kish), 폭풍우 신 엔릴(Enlil)의 도시인 니푸르(Nippur), 길가메쉬 서사시의 지우수드라(우트나피슈팀)가 방주를 만들었던 슈루팍(Shurupak), 길가메쉬의 고향인 에렉크(Erech), 그리고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우르(Ur) 등의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다.  
 

티그리스

(Tigris)티그리스 강은 원래 수메르어(Sumerian)로는 이디그나(idigna), 아카드어로는 이디글랏트(idiglat/idignat)로 불렸으며 이로부터 히브리어의 히데켈(????)이 유래되었다. 그리스어의 티그리스(Τιγρι?)는 고 페르시아어의 티그라(Tigra)에서 유래되었다. 전체 길이가 2030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강은 유프라테스와 마찬가지로 터키 동부의 아르메니아 고원지대로부터 발원하며 하자르 걸르(Hazar Golu) 호수에서부터 흘러나온다. 티그리스 강은 하류로 내려가면서 북동쪽의 자그로스(Zagros) 산맥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대 자브(Greater Zab), 소 자브(Lesser Zab), 디얄라(Diyala) 등의 지류들이 차례로 합쳐진다. 특히 중 티그리스 지역은 전통적인 앗시리아 문명권을 형성하였고 그 강변에는 앗슈르(Ashur), 니느베(Nineveh), 칼라(Kala) 등의 도시들이 발달했다. 

베로소스(Berossos)의 바빌로니아학(Babyloniaca)

 서기전 340년경 바벨론에서 태어난 후 에게해의 코스(Cos) 섬에 정착한 베로소스는 모두 세 권으로 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편찬하였다. 하지만 베로소스의 원본은 유실되었고 단지 오늘날 남아 있는 부분은 서기전 1세기 알렉산더 폴리히스토르(Alexander Polyhistor)의 저서에 인용된 것과 서기 4세기 초 유세비우스에 의해 재인용된 것뿐이다. 베로소스의 바빌로니아학은 요세푸스에 의해 인용된 마네토(Manetho)의 이집트학(Aegyptiaca)과 비교될 만큼 아마도 천지 창조에서부터 페르시아 시대까지의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으리라 추정된다. 제 1권은 창조 신화들을 다루고 있는데 반인반어의 존재인 오아네스(Oannes)가 바벨론 강변에 도착하여 여전히 야생 짐승들의 생활을 하던 인간들의 조상이 되었음을 다루고 있다. 제 2권은 천지 창조 때부터 나보폴라사르(서기전 747-734) 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대홍수 이전의 왕명단은 수메르의 왕명단과 비교될 정도로 신빙성이 있다. 제 3권은 나보폴라사르 시대(서기전 747-734)부터 자신의 시대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앗시리아학(Assyriology)

 엄밀한 의미로 앗시리아학은 티그리스 강 유역에 발달했던 앗시리아 문명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오늘날 메소포타미아 전체의 지리, 언어, 역사, 고고학, 종교 등을 다루는 총체적인 학문을 일컫게 되었다. 특히 이 용어는 최초의 이 지역 탐사가 주로 앗시리아의 옛 수도인 니느웨, 니므루드, 코르사바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특히 니느웨의 앗슈르바니팔 도서관에서 많은 양의 토판 문서들이 발견되어 본격적인 메소포타미아의 문헌 연구가 시작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늘날 앗시리아학은 이란학(Iranology), 힛타이트학(Hittitology) 둥과 함께 고대 근동학의 한 분야로서 바빌로니아, 앗시리아의 모든 분야들을 다루며, 특히 메소포타미아 초기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은 수메르학(Sumerology)으로 독립하여 다루기도 한다.  

베히스툰(Behistun) 비문과 쐐기문자의 해독

 원래 쐐기문자(cuneiform)라는 용어는 1700년경 영국의 토마스 하이드(Thomas Hyde)에 의해 처음으로 명명되었고 1802년 독일의 그로테펜트(G.F. Grotefend)는 베히스툰 비문 중에서 고 페르시아어의 왕명단을 참조로 처음으로 쐐기문자의 해독을 시도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로제타 석비라 불리는 베히스툰 비문은 동쪽의 메데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베히스툰에 있는 절벽의 70미터 높이에 새겨진 비문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1세는 서기전 520년경부터 자신의 업적을 엘람어(Elamite), 바빌로니아어(Babylonian), 그리고 고 페르시아어(Old Persian) 등의 세 가지 문자로 기록했다. 영국의 롤린슨(H.C. Rawlinson)은 동인도 회사의 장교로서 1833년 페르시아 지역의 쿠르디스탄에 배치받은 후 베히스툰 비문을 해독하려고 노력했다. 1837년 베히스툰 비문의 탁본을 뜨는데 성공한 그는 1846년 런던의 왕립 아시아학회에서 그 복사본과 번역본을 발표했다. 1857년 크림 전쟁이 끝난 직후 영국의 왕립 아시아학회는 앗슈르에서 출토된 서기전 1400년경 기록된 티글랏-필레세르의 연대기가 나오는 토판문서의 탁본을 유럽의 대표적인 네 명의 언어학자들에게 맡겨 그 내용의 해독을 의뢰하였으며 이 네명의 학자들 - 롤린슨(Henry Creswicke Rawlinson), 힝크스(Edward Hinks), 탈봇트(William Henry Fox Talbot), 오페르트(Jules Oppert) -의 해석은 모두가 일치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인 쐐기문자 연구가 시작되었다. 

보타(Paul Emile Botta: 1802-1870)의 코르사바드(Khorsabad) 발굴
모술의 프랑스 영사였던 보타는 1842년 티그리스 강 건너편의 니느웨라 여겨지는 쿠윤직(Kuyunjik) 발굴에서 이렇다 할만한 유물들이 나오지 않자 주민들의 소문을 듣고 유물들이 많이 나온다는 코르사바드를 1843년 봄부터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코르사바드는 아카드어로는 ‘두르-샤류킨(Dur-Sharrukin)’, 즉 ‘사르곤의 요새’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1844년까지 진행된 이 발굴에서 보타는 사르곤 2세의 궁전을 발견했다.  

레이야드(Austen Henry Layard: 1817-1894)의 니므루드(Nimrud) 발굴 레이야드는 1839년 7월 10일 런던을 출발하여 인도로 가는 도중에 육로로 유럽 대륙과 소아시아 그리고 시리아-팔레스타인 등을 여행하면서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 탐사를 이루고자 하였다. 1840년 4월 10일 모술(Mosul)에 도착하여 티그리스 강 건너편의 니느웨라고 알려진 쿠윤직(Kuyunjik)을 탐사하였다. 1842년 7월 10일 콘스탄티노플의 영국 대사관에서 그간의 여행과 탐사의 능력을 인정받아 대사의 비서로 1845년까지 3년 동안 일하면서 모닝 포스트, 모닝 크로니클, 몰타 타임즈 등의 해외 통신원으로 활동하였다. 레이야드는 27살인 1845년 11월 8일부터 니므루드 발굴을 시작하였다.  

죠지 스밋트(George Smith: 1840-1876)와 홍수 이야기(1872)
죠지 스밋트는 원래 지폐 조판공이었지만 독학으로 메소포타미아에 관한 연구를 한 끝에 26세에는 쐐기문자에 관한 해설책을 펴낼 만큼 이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28세인 1868년부터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앗시리아부(部)에서 조수로 취직하여 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토판문서들을 정리하며 읽던 중 홍수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1872년 12월 3일 영국 런던의 성서고고학회 세미나에서 대영 박물관의 죠지 스밋트(George Smith)는 앗시리아판 노아의 홍수에 관한 토판문서의 내용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 토판문서들은 1840년대 이후로 레이야드와 라쌈이 니느웨의 앗슈르바니팔 도서관 발굴에서 출토된 것들로서 대영 박물관의 수장고에 보관중이었다.
 
하지만 이 길가메쉬 서사시는 창세기의 노아와 필적할 만한 신의 선택자인 우트나피슈팀의 이야기 도중에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홍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왕조시대로서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는 보수 기독교적 분위기에서 구약성서의 신빙성을 증명할 증거로 여겨지면서 영국의 국민적인 관심이 들끓었다. 당시 영국의 최대 일간지인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라프(Daily Telegraph)지는 홍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찾는데 1,000기니아(guinea)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당연히 스밋트는 이 모험을 자처하고 나섰으며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한 끝에 티스리스 강변의 모술에 도착하여 고대의 니느웨로 여겨지는 쿠윤직 언덕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 작업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고 스밋트는 384개의 토판 문서들을 가지고 귀국했다. 이 중에는 물론 잃어버린 홍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도 포함되어 있었다. 
 
셈족의 등장과 메소포타미아의 통일
셈족(Semitic, Semitisch)’이라는 용어는 1871년 독일의 쉘쪄(Scholzer)가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셈족은 시대별로 다음과 같이 발전하였다. 서기전 40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민족, 서기전 30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 가나안의 서부 셈어족, 서기전 1200년 이후: 메소포타미아, 가나안의 아람 민족, 이스라엘 민족, 서기전 200년 이후: 나바테야 민족, 아랍 민족, 유대 민족, 서기 600년 이후: 무슬림 아랍 민족, 유대 민족 
 
셈족의 지리적 고향은 어디인가?
오늘날 셈족의 후예인 모슬렘 아랍 민족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를 비롯한 북부 아프리카 등 광활한 지역에 살고 있다. 서기전 1 만년 경에 발생했던 농업혁명은 북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등지의 야산지대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이 주인공들이 셈족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면 농업혁명 이후 그 장본인들이 계속해서 메소포타미아의 주인공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 셈족은 시리아 광야를 고향으로 하는 아모리 족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시리아 광야, 또는 북부 아라비아 광야를 셈족의 지리적 고향으로 보고 있다. 광활한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서기전 1200년경 낙타가 본격적으로 유목민들의 교통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기 이전에는 소규모 이상의 정착 활동은 불가능한 불모지였다. 따라서 셈족의 중심지는 광야와 산지가 만나는 시리아 광야나 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1)
도시국가(City State) 시대 (서기전 4000-3000)메소포타미아에서 도시들은 남쪽의 수메르 지역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서기전 4000 년경부터 이 곳에서는 우룩(Uruk), 라가쉬(Lagash), 우르(Ur), 니푸르(Nippur), 슈루팍(Shuruppak), 키쉬(Kish) 등의 도시들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2)
왕국(Kingdom)시대 (서기전 3000-2000)이 시대에 들어와서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가장 강력한 도시를 중심으로 동맹을 맺어 일종의 왕국을 형성했으며, 대표적으로 남쪽의 수메르 왕국과 북쪽의 아카드 왕국으로 분류된다. 
3)
제국(Empire)시대 (서기전 2000-330)서기전 2000 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세력권은 좀 더 북쪽으로 확장되었고, 서기전 1800 년경부터는 하무라비왕이 바빌론 도시를 중심으로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하였고, 북쪽의 티그리스강 유역에서는 샴시-아다드(Shamshi-adad)왕이 앗수르 도시를 중심으로 앗시리아 제국을 형성하였다. 이 두 세력이 함께 경쟁하며 발전하다가 서기전 1100 년경부터는 앗시리아의 세력이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통치하기에 이르렀으며, 서기전 612년에는 신 바빌로니아(Neo-Babylonia)가 그 통치권을 이어받았다. 서기전 539년부터는 이란지역의 페르시아가 이 지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으며, 서기전 330년경 마케도니아 출신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제국을 점령함으로써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창조설화와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에 관한 신화는 아카드어로 기록된 에누마 엘리쉬로서 지금까지 니느웨(Nineveh), 앗슈르(Ashur), 키쉬(Kish), 술탄 테페(Sultan Tepe) 등에서 발견됐다. 이들의 기록연대는 서기전 900-200년까지로 다양하며 신화 자체는 7개의 토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1100줄에 달한다. 이 신화의 제목인 ‘에누마 엘리쉬’는 첫 두 단어로서 ‘높이서 --할때’ ‘When on high’라는 뜻이며 신들의 태어나는 태초의 시간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고 있다. ‘저 높은 곳의 하늘이 명명되기 이전에 저 낮은 곳의 땅이 이름 불려지기 이전에’ 

제 1세대: 압수(Apsu): 민물         <---> 바닷물: 티아맛(Tiamat)제 2세대: 라크무(Lakhmu): 진흙 <---> 갯벌: 라카무(Lakhamu)제 3세대: 안샤르(Anshar): 구름  <---> 안개: 키샤르(Kishar):제 4세대: 아누(Anu)제 5세대: 누디무드(Nudimmud)=에아(Ea) <---> 담키나(Damkinna)제 6세대: 마르둑(Marduk)= 앗수르

제 1-3 세대의 신들은 각각 쌍을 이루면서 자연현상을 대표하는데 이것은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의 늪지대를 연상시킨다. 압수(Apsu)는 젊은 신들의 소란함 때문에 편안히 쉴 수가 없어서 그들을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고 이를 알아차린 에아(Ea)가 압수를 결박하여 죽여버렸다. 이 때부터 압수는 에아의 전통적인 거처가 되었다. 이야기는 남편의 죽음을 복수하려는 티아맛 진영과 이에 대항하는 에아의 아들 마르둑과의 전투로 전개된다. 티아맛은 킹구, 후부르와 함께 그녀가 만든 11 괴물들을 동원하였고 마르둑은 활, 곤봉, 번개, 화염, 그물, 폭풍으로 무장했다. 마르둑은 우선 폭풍으로 티아맛을 제압한 다음 활을 쏘아 죽였고 그녀의 시체와 킹구의 피로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였다. (1) 하늘과 땅, (2) 하늘의 성좌: 매달 3개의 성단(constellation): 36 성좌, (3) 달과 태양, (4)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티아맛의 눈물, (5) 인간: 킹구의 피 
에누마 엘리쉬의 정치적, 종교적 의의

 에누마 엘리쉬는 전형적인 바빌로니아의 문학 작품이다. 이것의 집필 의도는 마르둑(Marduk) 신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며 자연과 인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서기전 1750 년경 함무라비가 바빌론을 새 왕국의 수도로 삼으면서 수메르 시대부터 미미한 존재였던 마르둑이 출세하기 시작하였고, 서기전 1120년경 느부갓네살 1세가 신년축제를 통하여 마르둑을 최고의 신으로 격상시켰다. 에누마 엘리쉬는 신년축제(아키투 축제) 제 4일에 마르둑 신상 앞에서 낭독되었다. 앗슈르에서 발견된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마르둑 대신에 앗수르가 들어가 있다. 바벨론의 마르둑교(Mardukism)는 도시, 신전, 신상, 그리고 제의문인 에누마 엘리쉬까지 갖춤으로써 메소포타미아 역사상 최고로 발전된 종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계보(Table of Nations)
 고대 이스라엘이 생각했던 민족들의 기원은 창세기 10장의 자료에서는 대홍수 이후 살아남은 노아의 세 아들들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계보에 의하면 셈, 함, 야벳의 아들들은 모두 70여명에 이르며 이들은 각각 지리적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지로 퍼져나간 것으로 구분 지을 수 있지만, 실제 계보에 등장하는 모든 민족들이 반드시 이 기준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역대기상 1:1-26에 나타난 민족들의 계보는 아담에서 비롯되는 일련의 선적인 족보(genealogy)로 나열되어 있다. 창세기 10장을 참조한 역대기의 자료에서도 민족들의 열거는 야벳(14민족)으로부터 시작하여, 함(31민족), 셈(27민족)으로 이어진다.

갈대아 우르와 지구라트 


갈대아(Chaldea) 뜻: 약탈
바사국의 서편 유브라데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있는 지방. 앗수르어갈두의 희랍어역 갈디아에서 온 이름.


(1) 아브라함의 갈대아 우르는 이 남쪽 바벨론을 말한다(창11:31, 느9:7).
(2) 노아의 증손 니므롯이 니느웨 르호보딜 레센 갈라의 4성을 건설(창10:11).
(3) 그후 이곳에서 세계를 정복한 4대 강국이 일어 났다.
갈대아(주전 2300-1370). 앗수르(1370-606). 바벨론(주전606-538). 메대파사.
(4) 갈대아 인이 욥의 재산을 약탈해 간 일이 있다(욥1:17).
(5) 여호와가 갈대아인의 노략군을 보내어 여호야김과 유다를 쳐서 멸하셨고 (왕하24:2). 유다왕 시드기야를 잡아 눈을 빼고 구리줄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데려감(왕하25:6-15).


창세기의 11장에는 셈과 아르박삭의 후손들이 잠깐 나열된다. 다시 대홍수 이후의 족장들의 나이가 후계자가 출생할 때까지로 주어진다. 이 출생 이후에 그가 산 연도도 또한 주어진다. 이들 족장들에게 주어진 전체 나이는 점차적으로 줄어든다. 셈이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는 602년으로 주어져 있지만(이것 자체도 므두셀라의 969년에 비하면 훨씬 감소한 것이다), 여덟 세대 후인 데라(Terah)1)는 겨우 205년만 살았고, 그의 직계 후손은 200년도 되지 않는 수명만을 살았다.

나이들을 합쳐보면, 데라의 아들인 아브람(Abram)은 홍수보다 292년 후, 즉, 대략, 기원전 2100년에 태어났다. 이것을 성서 외의 어떠한 자료와도 점검할 수 있는 방도는 없지만, 만일 그의 출생이 역사적으로 약간 나중에 놓여진다면, 아마도 기원전 2000년 직후 정도가 된다면, 성서의 나중 사건들이 일어난 때가 더 잘 들어맞게 된다.

 

지금에 와서, 아브람과 그의 직계 후손들이 실제로 개별적인 사람을 나타내는지, 혹은 니므롯의 경우에서처럼, 여러 사람을 끼워 맞춘 것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일 성서의 이야기를 액면가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개별적인 한 사람이며, 잘 서술된 사람이기도 하다. 창세기는 그가 실존했건 아니건, 역사적인 인물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아브람(그의 이름은 나중에, 지금은 더 잘 알려진 이름인 아브라함으로 바뀌게 된다2))은 후세의 유태인들이 육체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자신들의 혈통을 거슬러 가는, 최초의 족장이다. 그보다 먼저 있었던 사람들에 비해 아브라함이 중요한 이유는, 성서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그는 처음으로 가나안으로 간 사람이고,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 전설에 따르면, 그는 우상 숭배를 공개적으로 버리고 충실한 일신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서는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 제작자였고 아브람이 화가 나서 그것들을 깨버렸다고 설명한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성서의 처음 11 장의 중심이었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지역에서 시작한다.

창세기 11:27. . . .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Nahor)과 하란(Haran)을 낳았고 하란은 롯(Lot)을 낳았다.창세기 11:28. 하란은 고향인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idees)에서 자기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따라서 우르(Ur)가 아브람 가족의 고향이며 아브람 자신의 출생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르는 최소한 기원전 3500년 전, 어쩌면 그보다도 더 일찍 세워진 수메르 도시였다. 그것은 바빌론에서 남동쪽으로 약 140 마일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의 오른쪽 강변에 위치해 있었으며, 당시의 페르시아 만 해안이 바로 부근이었다. 그곳은 수메르 시대에 중요한 도시였으며, 달의 신, 씬(Sin)3) 숭배의 중심지, 장엄한 지구라트의 소재지였고, 해안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아마도 중요한 원양 교역으로 재산을 모았을 것이다.

 

기원전 2500년 무렵, 우르는 “1 왕조(first dynasty)” 치하에서 상당한 권력의 기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 세기 반 만에 끝이 나는데, 그 때 우르는 루갈자게씨, 나중에는 아가드의 사르곤의 개선군에게 함락 당했다.

우르의 거주자들과 역사가들은 이 정복자들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것이다. 만일 니므롯이, 다른 사람들도 있지만, 루갈자게씨와 사르곤의 흐릿한 기억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유태인의 전설에서 니므롯이 아브람이 출생할 때의 바빌로니아의 왕을 나타내고, 실패하기는 했지만, 아브람을 죽이려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흥미 있는 일이다.

 

아카드 제국의 몰락 이후, 우르는 “3 왕조(third dynasty)” 치하에서 또 한번의 위대하고 상업적으로 윤택한 시기에 들어서게 된다. 수메르 정권의 이 마지막 시기는 기원전 2050년과 기원전 1950년 사이에 해당하며, 그 시기 동안이 아브람이 태어난 시기이다.

 

우르는 구약의 시대 전반에 걸쳐 계속해서 존재하였으며 기원전 324년이나 되는 최근에도 문서에서 언급된다. 하지만, 창세기가 쓰여지던 시기에, 우르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쇠퇴해버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게 된 마을에 불과했다. 아브람이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덕분에 독자들에게 엄청난 흥미를 끌게 된 마을을 언급하게 된 창세기의 저자들은 어느 정도 그곳을 식별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을 “카스디인들의 우르(Ur kasdim)”, 즉 “갈대아 우르(Ur of the Chaldees)”, 혹은 그보다 낫게는, 현대어역판에서처럼 “갈대아인의 우르(Ur of the Chaldeans)”라고 불렀다.4)

 

갈대아인들는 기원전 약 1150년 무렵, 아람인들의 뒤를 바로 이어(54쪽 참조), 남쪽으로부터 바빌로니아로 압박해 들어온 아라비아인 부족이었다. 따라서 우르가 실제로 갈대아 영토의 일부가 된 것은, 아브라함의 시대로부터 거의 천 년이나 지나서였다. 갈대아인들이 도시 바빌론에 침입한 것은 기원전 9세기(900년-800년)였고, 잠시나마 패권을 다투었던 것은 기원전 700년 무렵이었다. 당시 바빌로니아를 지배했던 앗시리아왕 샬만에쎄르 5세가 죽자, 722년 갈대아 족장이었던 메로다흐 발라단(Merodach-Baladan)이 바빌론에 입성해 바빌로니아 왕임을 선포했다(열왕기하 20:12-19 참조). 여기에 나오는 ‘갈대아의 우르’는 이 때를 반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앗시리아의 시기 동안, 갈대아인들은 바빌로니아 인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족이었으며, 따라서 “갈대아의 우르”는, 그 시대착오적인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마을을 알게 해 주는 가장 경제적인 말이었다.


1) ‘테락흐’라는 발음이 맞으며, 유프라테스 강의 지류인 발리크 강 분지에 있는 <틸투라히>와 이름이 일치한다. 여기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아브라함의 증조부이자 테락흐의 할아버지인 ‘세룩’(공동번역 성서에는 ‘스룩’으로 나와 있다)의 이름도 하란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도시의 이름과 같다.
2)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이고, 아브라함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3) 씬(Sin)은 아카드어로, 수메르 어로는 쑤엔(Suen), 난나(Nanna)라 했으며, 때로는 난나쑤엔이라고 하기도 했다.
4) ‘갈대아’는 공동번역 성서에 나온 명칭이며, 실제 발음은 ‘칼데’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히브리어로 ‘카스딤’ 즉 ‘카스디 인들’이 된 것은 히브리어에서 <르(l)> 발음이 <드(d)> 앞에서 <스(s)>로 변한 경우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이민수 옮김>


갈대아 우르(우르 카스딤)
하란 지역에서 우르를 찾으려는 시도에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물이 바로 ‘갈대아 우르’라는 구절이다. 갈대아 민족은 서기전 900년경부터 독자적인 민족으로 역사에 등장하며 서기전 612년 이후 앗시리아를 점령하고 새로운 제국 바빌로니아를 건설했기 때문에 ‘갈대아 우르’는 바빌로니아의 한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창세기의 여러 구절에서는 분명히 족장들의 고향이 밧단 아람, 즉 하란 지역으로 나타나는데 왜 갈대아 우르라는 지명이 생겨났는가. 이스라엘 민족이 본격적으로 창세기를 편집할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중심 세력은 바빌로니아, 즉 갈대아 민족이었으며, 이 지역에는 우르로 불리는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브라함 고향의 두 후보지인 이라크 남부의 우르와 터키 동부의 하란은 모두가 달신을 섬겼던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 때문에 당시의 기록자들이 하란과 우르를 혼동할리는 없겠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기록하며 편집하는 과정에서 이왕이면 아브라함을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였던 바빌로니아의 우르와 연관시키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로마 교황은 서기 2000년 대희년 성지순례의 여정에 당연히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거절했기 때문에 그의 우르행이 취소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속사정은 아직도 우르의 정확한 지리적 위치를 잘 모른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국민일보 2001.02.10 김 성 교수(협성대·성서고고학)>

 


 1929년 3월17일자 미국 뉴욕 타임스의 머리기사는 모든 기독교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우르의 발굴,새로운 아브라함의 발견’ 그 밑으로는 다음과 같은 소제목들이 이어졌다.‘아브라함은 유목민이 아니라 도시의 창시자’ ‘하갈의 추방은 합법적’ ‘구약성서의 관습들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확인함’ 때마침 몰아닥친 경제공황의 우울한 나날 속에서 실의에 잠겨 있던 미국민들에게 이러한 파격적인 뉴스는 성서적 복음주의에 마지막 희망을 갖게 했다.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아브라함’이라는 제목의 의도는 그가 창세기에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텐트를 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으로 묘사돼 있지만,원래 그의 고향인 우르에서는 엄연히 대도시의 귀족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나아가 아브라함은 빈 손으로 온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도로 발달한 도시문명의 법과 도덕,천지창조와 홍수에 관한 전승을 지니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해줬다는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발견의 당사자인 울리(L.Woolley)는 1880년 런던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고고학으로 진로를 바꿔 대학 박물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1912년에는 ‘아라비아의 로런스’(T.E.Lawrence)와 함께 시리아의 중심도시 카르케미시를 발굴해서 신 히타이트 시대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고고학자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새로운 아브라함의 발견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후원으로 1922년부터 12년 동안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알려진 우르를 발굴하면서 세계적인 고고학자로 명성을 날렸다. 울리의 우르 발굴은 성서고고학사에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실제로 울리는 우르의 유적 중에서 서기전 2000년경 건설된 고 바빌로니아 시대의 한 대형 건물을 ‘아브라함의 집’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우르는 1922년 울리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도시는 아니다.이미 1850년대부터 영국의 고고학자들은 당시 ‘텔 엘-무카야르,즉 역청의 언덕’이라 불리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광야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고대 유적지를 주목했다.무너진 지구라트의 벽돌 사이마다 검은 색의 역청이 덮여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울리와 우르의 발굴
당시 쐐기문자의 해독자로 유명한 영국의 롤린슨(H.Rawlinson)의 부탁을 받은 주 이라크 영국 영사인 테일러는 1856년 텔 엘-무카야르의 지구라트를 조사하다가 서기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기록을 확인했다. 이 기록에서 나보니두스는 자신이 우르의 지구라트를 보수하고 증축했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이곳이 그 유명한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 우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앗시리아 궁전들의 발굴에 치중한 영국은 더 이상 우르를 발굴할 수 없었다.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남부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하면서 비로소 1922년부터 발굴을 시도할 수 있었다.


서기전 2100년경 건설된 우르의 지구라트는 지금까지 발견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전된 것이다. 당시 우르 제III 왕조의 왕 우르-남무는 이 도시의 수호신 난나(Nanna)를 모신 신전을 좀더 높은 곳에 세워 도시의 중심적인 상징으로 만들고자 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의 원형이기도 한 지구라트는 원래 꼭대기의 신전을 받치기 위한 받침대에 불과하다. 따라서 비록 지구라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로부터 그 건축적인 아이디어를 빌려왔지만 이곳에서는 무덤이 아닌 신전 받침대로 활용됐다. 재질이 약한 흙벽돌을 주로 건축자재로 사용했기 때문에 강도를 높이기 위해 역청을 사이사이에 깔았고 어떤 경우에는 갈대로 엮은 매트리스를 일정한 간격으로 흙벽돌 사이에 끼워 넣기도 했다.


울리는 우르의 지하묘지에서 무려 1850기나 되는 무덤을 발굴했다. 대부분 부장품이 빈약한 평민들의 유골이지만 이 중에서 16기는 ‘왕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왜냐하면 황금과 각종 보석으로 만들어진 부장품이 너무나 고급스럽고 화려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서기전 2600년부터 100년에 걸쳐 통치한 왕들이나 귀족들의 것으로 추정된 이 무덤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부장품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특히 한 무덤에서 수십 구의 유골이 발견됐기 때문에 울리는 왕이 죽었을 때 신하들을 산 채로 매장하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함께 출토된 도장을 통해서 왕비로 추정되는 푸아비(Pu-abi)의 무덤에서는 라피스 라줄리와 카넬리안 같은 보석으로 장식된 황금으로 된 머리 장식이 발견됐다. 소나 양이 머리모양 황금으로 치장된 여러 개의 하프는 역사상 최초의 악기로 밝혀지기도 했다.

 


왕들의 무덤
지하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우르의 보물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출토된 이집트 투탕카문의 보물과 함께 몇 해 동안 전 세계 신문의 해외토픽난을 장식했다.
울리는 단순히 화려한 무덤의 부장품에만 만족하지 않고 대홍수의 흔적을 찾고자 했다. 지하 무덤 발굴을 끝낸 1929년 그는 사방 20m 크기의 네모난 구덩이를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12m쯤 내려갔을 때 더 이상 유물들이 나오지 않는 바닥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런 바닥이 나오면 주거지의 기초로 여기며 발굴을 중단했지만 울리는 진흙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더 파 내려갔고 3.5m 아래에서 또 다시 일상적인 유물들을 발견했다.울리는 이 진흙 층의 연대를 서기전 3500년경으로 추정했고 수메르 신화와 창세기에 언급된 대홍수의 증거로 규정했다. 진흙 층 아래에서 발견된 1m 깊이의 주거지가 대홍수로 파괴됐다는 것이다.


갈대아 우르의 발견자라는 공로로 울리는 1935년 영국의 조지 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았지만, 그의 해석은 아브라함의 고향에 관한 논쟁에 다시금 불을 붙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우르는 오늘날 터키의 하란 북쪽에 위치한 우르파(Urfa)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2001.02.09 김 성 교수 (협성대·성서고고학)>